『일과 영성』,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두란노 |
『일과 영성』에서 소개하는 사례들 가운데 몇 개를 질문으로 바꾸어 보았다.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올 투자 기회가 손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이 투자는 인류사회에 손실을 줄 가능성이 있으나 불법은 아니다. 당신은 이 기회를 잡겠는가?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조금 더 큰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임금 협상하는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현재 받는 연봉 금액을 묻는다. 이직하면 유급휴가가 두 주나 줄어든다. 당신은 얼마라고 말할 것인가? 갓 입사한 사원이 해고될만한 큰 실수를 저질렀다. 당신이 그의 상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의 세계관이나 신앙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몇 년 전, 뉴욕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을 통해 팀 켈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팀 켈러는 맨해튼에서 많은 젊은이와 함께 목회하는 리디머 교회의 목사라는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그가 쓴 『일과 영성』이라는 책날개에서 "'왜 일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성경의 시각으로 썼다는 소개를 보게 되었다. 전업주부인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성경에 따르면, 생존을 위해서는 일해서 버는 돈만 필요한 게 아니다. 하루하루 연명할 뿐만 아니라 온전한 인생을 살자면 일 자체가 필수적이다"(47쪽), 에 이르러서는 답답함과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교회 찬양단 외에는 하루 내내 노래 부르거나 영화를 보며 레고를 맞추는, 앞으로도 이 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나의 특별한 큰아들의 경우는 이른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일할 수 있도록 엄마로서 뭔가 해야 하는데 놓치고 있는 것이 있나, 그동안 내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대답을 어떻게 다듬어줄지 긴장하며 책을 읽었다.
켈러 목사는 일이란 자아성취, 권력 획득, 경제적 가치 창출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방법이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런 자세는 일상적인 일에서나 직장을 선택하고 업무를 볼 때도 모두 적용되며, 크리스천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이들이기에 일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남들이 애쓰고 수고해서 얻으려는 것들(구원, 자부심, 선한 양심, 평안 따위의)을 크리스천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그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일하면 그만이다. 즐거이 감당하는 희생이자 자유가 보장된 제한이다." (91쪽)
"영향력, 이력서, 거기서 얻는 이득을 포함해서 일하는 삶과 관련된 온갖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모험을 할 수도 있고, 소모해 버릴 수도 있고, 통째로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만큼 자유로워진다."(158쪽)
하지만 인간이 가진 이기심과 교만과 욕망은 이러한 통찰을 유지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켈러 목사는 "인간과 세상이 망가지고 깨어졌음을 인정한다면 제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꾸준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146쪽)고 조언한다.
다운증후군 청년인 나의 아들은 스물여덟 해를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고 불러주며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환대한다. 교회에서 노래할 때와 예배를 마치고 마이크와 전기선들을 정리할 때 보이는 당당한 움직임은 부러울 정도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분명하다. 그의 존재는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함께 살고 있으며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도록 요청한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기 '일'을 태어날 때부터 성실히 감당하고 있구나, 라고 여겨지면서 마음이 꽤 가벼워졌다.
처음 했던 질문들로 돌아가 켈러 목사는 그 물음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성경에 바탕을 둔 논리적인 서술과 실례를 따라가다 보면 그에게 금방 설득당한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은 정직하고 따뜻하고 관대하고 겸손하고 유연한 자질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우고 훈련받는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그런 고귀한 자질들을 발휘하며 하나님이 그곳으로 부르신 뜻을 알아차린다. 일이 힘들어도 즐거워진다.
*이 글은 모바일앱 바이블 25와 인터넷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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