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2018

다리미질을 하며

구글 사진. 칸나 꽃말은 행복한 종말이랍니다.

여러 장의 흰 와이셔츠가 다리미질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이 벗어놓은 것들을 한꺼번에 몰아 빨래를 하고 다려놓아야 한다. 한 주에 한 번쯤 하는 일이다. 물 자국이 남아 얼룩덜룩한 다리미판, 스팀 다리미와 물이 담긴 스프레이, 일명 칙칙이가 한 자리에 모이면 일이 시작된다.

다림질이 시작되면 적어도 한 시간은 뚝딱 지나간다. 똑같은 동작을 한 시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휴대전화로 보고 싶은 동영상을 켜 두기도 했었다. 이렇게 하면 조그만 화면 보랴 다려지는 옷 보랴 정신이 없다는 게 흠이다. 대신에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면 이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 팟캐스트는 음성 파일로 된 것이 많기에 이럴 때 듣기에 적합하다. 팟캐스트에는 온갖 분야가 많은데 그 중에서 개그우먼 송은이 & 김숙 씨가 진행하는 비밀보장을 가끔 듣는다. 내 감각으로는 지어낼 수 없는 엄청난 유머와 재치, 요즘 젊은 여성들의 당찬 모습 따위를 담고 있어 단순 반복의 다림질이나 운전하다 졸릴 때 들으면 웃느라 시간도 잘 가고 잠도 깬다. ‘비밀보장한 회를 듣는 시간과 다림질 하는 시간도 얼추 맞아 더 좋다. 이어폰은 계속 움직여야 하는 팔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둘째 아들이 사 준 무선 이어폰을 사용한다. 흡족한 아이템이다. 때로 마음이 시끄럽고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다 집어치우고 다림질만 하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앞에 펼쳐진 하얀 옷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다리미판은 한국에 계신 엄마가 주신 것이고 다리미는 미국에 살러 와서 가전제품 장만할 때 구입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새로운 모든 환경이 낯설고 두려울 때 애틀랜타 교회에서 만난 홍권사님이 동행해주셔서 처음 가본 Bed Bath & Beyond에서 산 것이다. 또 남편의 와이셔츠는 모두 한국산이다. 특별히 와이셔츠는 자신의 체형에 한국 것이 잘 맞는다는 남편의 소신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시거나 우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할 때 몇 장씩 챙긴 덕분에 남편은 아직까지 한국산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내 안과 밖의 모든 것에는 한국과 미국이 섞여 있다. 미국에서 살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여기에 와 있다. 미국은 현재 발 딛고 살아가는 곳이니 이 나라가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가는 훌륭한 모범이 되길 기도한다. 나의 조국을 위한 기도는 한국 사람으로써 간절할 수 밖에 없다.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 위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 부어지길 빌고 또 빈다.

특별히 요즘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거론되는 뉴스에 마음이 많이 쓰인다. 6 12일로 잡혀 있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은 힘겨루기가 대단하다. 서로를 벼랑 끝까지 밀고 가는 외교전술로 각자가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밀당이라고들 말한다. 자국의 실리를 챙기려고 수를 쓰는 것일 텐데, 다행인 것은 남한과 북한이 마음을 모아 회담을 성사시키고, 더욱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이다.

깨끗하게 빨아진 와이셔츠의 구김은 펴고 주름은 잡아, 옷 모양이 반듯하게 되도록 다림질을 할 시간이다. 남한, 북한, 미국 세 나라가 신뢰와 존중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6월이 되길 바라는 간절함을, 천을 부드럽게 헤치고 나아가는 다리미 코 위에 올려 본다.

5/21/2018

느리고 틈이 많은


조지아주 사바나 어느 오래된 농장 입구.

예년과 다르게 봄이 길어지면서 봄철의 매력인 쌀쌀함이 계속되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얼굴과 손 끝만 남겨놓고 담요로 온몸을 돌돌 말았다. 담요를 뒤집어 쓴 채로 소파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차가운 기운이 닿지 못하게 담요 끝을 요리조리 꼼꼼하게 여몄다. 쿠션 두 개를 무릎 위에 포개고 그 위에 책을 올렸다. 담요 밖에서 한 손가락만 움직이면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졌다. 다른 날에는 커다란 창문 옆에 있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집이 좀 추운 편이라 거기 앉아 있으면 더욱 서늘해서 정신도 더 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 주에는 수술을 하신 집사님의 일터에서 일손이 꼭 필요하다고 하여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한 주 동안 수고한 보답으로 몸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마음이었다.

아들 산이는 친구들 만나러 갔고 남편은 주일 예배 준비하러 교회로 갔다. 산이는 일 주일에 한번 만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점심을 먹고 올 것이었다. 지역 장애인 단체가 제공하는 respite service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다. 주중 프로그램에 연결되지 않은 장애인들이 주말 하루는 집 밖 활동을 하도록,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이들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서너 시간 동안 쉴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이다. 산이가 없는 토요일 점심은 남편과 오붓하게 두 사람의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남편은 아들을 놀이 장소에 데려다 주고 그날 따라 교회에 있는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겠다고 전화로 알려 왔다. 포근한 담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던 차에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 혼자 먹는 끼니는 더욱 아무 문제가 없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허전하면 냉장고 뒤져서 바로 먹을만한 것 꺼내서 배만 채우면 된다. 이제 며칠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오후까지 느긋하게 읽어야지, 여유로움이 담요 안에 사르르 퍼졌다.

책의 흐름을 되새기기 위해 목차를 훑어보았다. 그리곤 지난 번 읽다가 멈춘 곳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에 이어서 두어 페이지를 읽었다. 어느 줄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언급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잠깐만, 앞에 무슨 내용이었지? 다시 돌아가 천천히 읽어왔는데, 또 생각이 안 났다. 책장은 넘어가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 졸음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왕 몸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으니 그대로 앉아 좀 졸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앞으로 푹 떨구어진 고개가 뻐근했다. 그럼 몸을 살짝 틀어 소파 등받이에 머리만 기대어 볼까….. 아까 보다는 조금 더 잠잔 것 같았으나 이번에는 허리가 아팠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쯤 되면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러라고 편하게 눕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성의 결단과는 다르게 담요로 꽁꽁 싸매 옹크린 몸은 그대로 소파에 꼬꾸라졌다.

주말의 반나절을 꼬박꼬박 조는 꼴이라니, 물리적인 힘이 조금씩 빠지면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틈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의미 있는 일은 꾸준히 밀고 나갈 수도 있고, 사람이나 환경을 수용하는 폭이 넓으며, 타인의 얘기를 긴 시간 장단 맞추며 들어줄 수 있는 여유로움도 살짝 있다고 내 자신을 두둔해 주어도 그 틈이 다 채워지지 않는다. 느리고 빈틈이 많은 삶이다. 생김새만 보아도 그렇다. 둥글둥글, 물컹물컹, 울퉁불퉁, 중년 여성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묵직한 풍성함, 그 자체다. 행동이 날쌔고 잰 사람들은 아무래도 몸이 가볍다. 난 그렇지 않다. 게다가 직장도 그만두었으니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면서 널널한 시간을 다채롭게 꾸려가려니, 그렇게 또 다른 형태의 분주한 생활을 할 것 같다고 미루어 짐작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덜 바쁘고 경제적으로 덜 여유롭더라도, 더 평안하고 더 단순한 삶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두어 달 지내보니 메말라 버석버석 먼지만 날리는 영성의 안쓰러운 상태도 보게 되었다.

멀리 텍사스에서 사시는 현원 사모님과 심 목사님께서 이틀 밤을 우리 집에서 묵어가셨다. 사모님은 신앙 열정이 뜨거운 분이라 종종 도전을 받곤 한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사모님은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라는 시편 71 9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듯하다고 하셨다. 노년이 된 다윗이 하나님께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시구다. 사모님은 청년 시절 열심히 예수님 닮아 살려고 애쓰던 때와는 달리 나이 들어 가면서는 신앙 열정이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청년의 때보다 덜 할 뿐이지 사모님은 지금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봉사에 열심인 것을 안다.

사모님이 가시고 난 뒤에 시편을 더 읽어보았다. 다윗은 힘 빠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그래도 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 …… /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 …… /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시편 71:14, 18, 24)

느리고 틈이 많은 영성을 가지고서라도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위로가 되었다.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항상 주를 찬송하며, 주의 능력과 의를 읊조리기…… 텍사스 사모님을 통해서 나를 말씀에 비추어 보는 거룩한 순간에 놓였을 때, 주님의 은총이 가까이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5/14/2018

거기 계셔 주세요





아침 햇살이 수줍게 퍼질 즈음이면 뒤뜰에서 겨우 겨우 자라고 있는 고추와 호박이 지난 밤을 잘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4월 중순이 넘어 모종을 사러 가면 부실한 것들만 남아 있는듯하여 올해는 4월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호박은 지난해 추수감사주일에 얻은 늙은 호박에서 씨를 얻었다. 두 그루의 고추는 안전하게 양동이에 심었다. 그리고 호박은 잡초투성이인 텃밭을 삽으로 뒤집어 엎기만 하고 거기에 씨를 꾹꾹 박아 놓았다. 올해는 더도 말고 이 두 가지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으면서 주는 기쁨을 누려보리라 상상하며 넉넉하게 물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고추는 이파리가 군데군데 누렇게 되고 비실비실 댔다. 씨를 심고 3주쯤 지나서 호박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흙 밖으로 나와준 싹에게 고마워서 잘 자라거라, 하며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성하게 자라날 호박을 그리던 끝자락에는 밑거름도 안하고 씨를 뿌렸다는 사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호박은 거름을 충분히 줘야 하는데 까먹었다. 하긴 호박을 제대로 심어 열매를 얻어본 경험이 겨우 한 해 밖에 없으니, 차분히 기억해내고 알아보고 심었어야 했는데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어떻게 살려볼 길이 없을까 싶어 퇴비를 사다가 흙 위에 조심스럽게 뿌려주었다. 어찌 될 지 아슬아슬 하다.

한국에서 지키는 어버이 날이 되어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먼저 강화 어머님과 통화를 하였다. 전화를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부만 여쭙고 있다가 부실한 호박과 고추 생각이 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님한테는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 분명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다. 엉터리 텃밭의 상황을 설명 드렸다.

, 괜찮아. 고추나 호박 싹에서 한 뼘쯤 떨어져서 손가락으로 동그래미를 그려. 거기다가 거름하고 비료를 솔솔 뿌려. 거기 퇴비는 오래 된 건가? 그러면 가까이에 뿌려도 되긴 한데……”

아차 싶었다. 사 온 퇴비를 조금이지만 벌써 가까이에 뿌렸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님은 그게 별로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듯 다음 말씀을 곧 이어가셨다.

거긴 벌 있니?”

뜬금없는 질문에 벌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신할 수가 없어 말끝을 흐리며 네, 라고 대답했더니 어머님은 틈을 주지 않고 설명하셨다. 호박 줄기에 달린 암꽃과 수꽃이 수정을 해야 호박이 되는데, 벌이 있으면 신경 안 써도 되고 벌이 없으면 사람이 수정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박꽃은 다 똑같은 꽃이 아니었나?’ 난 새로운 사실에 살짝 놀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호박의 암꽃과 수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들이 한 그루에서 같이 피는지 아닌지 몰랐다. 어머님은 애기호박에 달려 있는 꽃이 암꽃이고 수정 되지 않으면 호박이 자라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셨다. 어머님께서 사시는 곳에는 벌이 없어 직접 수정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벌이 없다니 정말 심각하네……’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언젠가 적어놓았던 마크 윈스턴이 쓴 『사라진 벌들의 경고』를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이 옆길로 빠지려는 순간, 근황을 전해주실 때의 담담한 목소리가 아니라 빠르고 높은 톤의 어머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내가 어머님 말씀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걸 눈치채신 모양이었다

, 수꽃을 매정하게 확 잘라! 꽃 주둥이 쪽을 쭈욱 도려 내. 그리고 암꽃에다가 꽃가루를 묻혀줘.”
…...”
나는 그대로 꽉 박아놓는다.”

그리곤 호호 웃으셨다. 꽃잎이 일부 잘려진 수꽃을 암꽃에다가 걸쳐놓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머님이 하도 신나게 말씀하셔서 호박꽃이 피면 그리 해 보겠노라 답해 드렸다. 그랬더니 다급하게 한 마디 더 보태셨다.

어머, ! 호박꽃은 하루 이틀 밖에 안 펴. 피면 그냥 해야 돼!”

어머님은 심는 김에 가지나 토마토도 심어보라고 권해주셨다. 키우기 쉬운 것들이고 요즘 심어도 늦지 않았다고 알려주셨다. 난 다른 식물들을 더 심을 생각이 없어 얼른 화제를 바꾸어 가지치기에 대해 여쭤보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전문용어를 써 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잘 이해가 안 갔었다. 어머님은 그것도 쉽게 정리해주셨다.

고추나 가지는 뿌리에서 제일 가까운 이파리와 순만 따주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토마토는 열매가 튼실하려면 곁가지가 자라지 않게 순을 모두 따줘서 원줄기만 살려야 하고, 반대로 호박은 잎이 네댓 장 달린 후에 원줄기를 잘라주면 가지가 더 많이 뻗어나가면서 열매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그거 재밌어!, 라고 강조하셨다.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어 하나 둘씩 따서 드시고, 둘째 아들네나 이웃과 나눠 먹는 재미를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여겨졌다. 어머님과 다른 때보다 훨씬 오래 전화 통화를 했다. 텃밭 가꾸는 데 필요한 좋은 정보는 내가 얻었는데 어머님이 더 즐거우셨던 것 같았다.

엄마네도 전화를 했다. 엄마하고도 통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전화벨이 한참 울린 다음에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온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야.”
, 어버이 날이라 전화했지? 나 씻다가 나왔어. 다음에 통화하자. 별일 없지?”
.”
다음에 엄마한테 전화할 때는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여쭤보아야겠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다음 해에도, 그 다음 다음 다음……해에도 거기 계셔서 내 전화를 받아주시면 참 좋겠다.

5/06/2018

전환시대 3


<2016년 4월 증축 중인 친교실>


2018427일은 나의 조국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는 날이었다. 그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은 한국과 13시간 차이가 나기에 26일 저녁 식사 후에 조그만 아이패드 스크린을 앞에 두고 앉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을 향해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설레었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두 지도자가 만나 두 손을 꼭 잡을 때는 약간(!) 목이 메면서 감격스러웠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있었다. 몸짓, 말투, 목소리에도 집중이 되었다. 유머가 있고 생각에 여유가 있는 젊은 지도자로구나 여겨졌다. 북한에 대한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기분 좋게 잠 자러 들어갔다. 물론 남편은 졸면서도 밤이 새도록 아이패드를 켜놓고 그 앞을 지켰다.

새벽기도 갈 시간보다 조금 일찍 잠이 깨었다. 엉겁결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회담 일정이 잘 진행되고 있음이 확실했다. 들뜬 기분으로 교회에 다녀왔다. 아침을 먹으면서는, 정성스레 잘 준비된 잔칫집에서 격조 높게 손님 접대를 하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랑스러웠다. 8천만 동포의 염원을 담아, 우리 겨레가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전환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장 생활한다고 미루고 쌓아두었던 지난 3년의 개인적인 삶을 정리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내 삶이 곧 교회와 붙어있는 신앙생활이다 보니 교회 얘기가 주가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좌절이 되거나 희망이 있거나 교회는 내 삶터다. 우리교회도 새로운 사명으로 초대받고 있는 전환시대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 사명을 분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우리교회 얘기를 좀 더 해보련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미주연회 동남부지방 실행부 회의를 거쳐 우리교회는 2016 1, 거의 15여 년 만에 교단 재허입이 결정되었다. 지방 목사님들은 교회의 상처가 치유되고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교회를 받아주셨다. 남편도 당시 25년 목회를 한 교단 정회원의 자격을 회복하였다.

친교실 증축을 위한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채우는 기초 공사가 시작되었다. 기존 건물 밖에 콘크리트 바닥만이 마련되었을 뿐인데 교회는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거리에 세워진 오래된 교회 간판도 바꾸었다. 새롭고 산뜻했다. 전교인 야외 예배도 오랜만에 드렸다. 장소 섭외가 늦어져 교회 마당에 있는 쉘터에서 모였다. 우리교회는 터가 넓어서 큼직한 쉘터도 지어져 있다. 하필이면 그날 소나기가 세게 내렸는데,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고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2016 4월에 증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겨우 두 달여 만에 친교실은 확장되었다. 또 한 달쯤 뒤에는 준공검사도 끝났다. 넓어진 친교실에 들어갈 비품들을 마련하느라 건축비가 좀 더 들어갔으나, 에어컨디셔너 구입과 설치, 새 건물에 비해 바래 보이는 곳에 페인트 칠하기 따위는 자원하여 봉사하였다. 어려운 과정 속에서 건축이 마무리 되었음을 아는 교우들은 그들대로, 새로 들어와서 건축되는 기쁨을 짧게 맛본 교우들은 그들대로 하나님이 우리교회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였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2014 8월 폐암 말기라고 진단받았던 양권사님은 암이 온몸으로 전이가 계속 되는 상황이나 지금까지도 주일예배에 꼭 참여하신다

결국 2015 1월에 선포된 교회의 두 가지 목표, 친교실 증축과 교단 가입은 2016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교회 차원에서 큰 일이 다 끝난 듯 했는데 2016 12월에 열린 교인 총회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쯤에서 거참! 일 많은 교회네, 하면서 진부한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십 년 넘겨 살면서 이런 일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나눌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교회가 처음 지어질 때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금이 2017년을 앞두고 5만불(5천5백만원쯤)이 남아 있었다. 우리교회가 받은 융자는 몇 년마다 재융자를 받아야 했다. 재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보증인도 필요하고 처리과정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게 필요했다. 예산도 적은 교회에서 재융자에 드는 비용과 이자가 아까웠다. 남편은 교우들 가운데 교회에게 5만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것으로 은행 융자금을 갚고, 돈은 빌려준 교우에게는 3년 안에 갚되 이자는 주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번에는 선뜻 나서는 분들이 있었다. 남편은 한, 두 분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섯 명이 만불 씩 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남편을 포함하여 다섯 교우들이 금방 채워졌다. 모두 친교실 증축에 필요한 기도, 재정, 봉사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헌신한 교우들이었다. 교회와 교우들 사이에 차용증서도 쓰고 공증도 받았다. 교회에서 갚아주는 순서는 서로의 형편을 고려해 구두로 정하고 공증해 놓았다.

교회에서 돈 거래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며 질색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증축과 교단가입, 대출금 상환은 우리교회가 딛고 일어서야 할 절박한 문제였고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남편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빌려주는 사람은 못 받을 것으로 알고 빌려주고, 받는 사람은 꼭 갚을 마음으로 받으라고. 정말 감사하게도, 3년 안에 다섯 명에게 갚기로 한 5만불을 단지 1년 동안에 다 갚아 버렸다!

남편은 제일교회에서 경험한 일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도 외에는 없어. 때가 찼을 때 그 때를 분별하고, 비전과 당위를 가지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되는 거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믿음으로 선언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야 해.”

불확실하고 위험한 순간들을 교우들과 함께 극복해나가면서 교회, 목사, 그리고 교우들간에 신뢰가 형성되었다. 더욱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우리교회를 진리와 번영으로 가는 전환점에 올려 놓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판문점에서 발표된 남북공동선언문을 들어보니 남편이 한 말을 일반 언어로 풀어놓은 듯 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분별하며,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비슷한 모양이다. 요즘 정치적 상황을 두고불가역이란 말을 종종 듣게 된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 원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동선언문에서 나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교회도 불가역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고, 지나간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신앙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은 전환시대다. 이제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교회의 몸인 우리가 새로 지어져야 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2-8)

잘 되든 안 되든

지난 6 월 하순경 ,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 그 교회는 앞으로 2 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 여러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