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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2014

학교 이후의 삶을 시작하며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공식적인”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비공식적으로 첫째 아이, 산이는 학교 일정이 마치기 하루 전에, 둘째 아이는 이틀 전부터 방학에 들어갔다. 둘째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일 주일 전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 학교 분위기가 싱숭생숭하다고 했다. 학점을 따기 위하여 필요한 시험이나 과제를 다 끝냈고, 출석 일수에 지장이 되지 않으면 결석 처리가 되더라도 등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도 방학하기 이틀 전부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마무리를 잘 해야 되지 않을까, 하며 수업은 빠지지 않아야 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고정관념을 가진 나에게 둘째 아이는 대놓고 답답하다고 했다. 다 알아보고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 자신이 보편적인 제도나 질서 따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서 스스로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부분도 적지 않다. 둘째 녀석은 나와 닮은 듯하나 똑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나보다 훨씬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멋지게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방학하기 이틀 전 아침, 둘째는 학교를 가든 안 가든 알아서 잘 하겠지, 해놓고 첫째 아이는 학교에 보냈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산이한테서는 아무런 정보를 들은 것이 없으므로, 그리고 공교육을 하는 학교에 다닐 날이 더 이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학교 가려고 나서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이마를 맞대고 잘 갔다 와, 하는데 가슴이 짠하다. 그 동안 한국에서 받았던 조기교육(만 4세)부터 미국 고등학교와 과도기 과정(transition class, 만 18-21세)을 마치기까지 겪었던 일들과 감정들이 뒤섞여 왈칵 왈칵 올라오는 것을 지난 주부터 참고 있었다.

지난 주에 산이가 학교 생활을 마치는데 부모의 사인이 필요하다며 학교로 오라고 했다. 이 모임은 산이를 위한 교육에 대해 재평가하는 자리로 두 달 전쯤 모였어야 했다. 하지만 방학을 코앞에 두고 호출하는 것이니 새로운 정보를 나누는 자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올해 산이와 같은 반 친구들 가운데 네 명이 졸업하는데 모두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를 위해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단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래도 산이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 의논할 것이 없다는 말에 무척 서글펐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학교 생활이 끝나면 아이와 여행도 하고, 평상시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수영과 볼링도 정기적으로 다닐 거라고 얘기했다.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직업재활(Vocational Rehabilitation) 하는 곳에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도 선생님에게 전해주었다.

산이와 우리 가족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해 달라고 부탁했다. 담임 선생님과 직업훈련 담당 선생님은 두 분 모두 산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서두르지 말라(Be patient)는 말을 남기셨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산이의 담임선생님들한테 엄마로서 내가 부탁했던 말이 바로 기다려 달라, 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선생님들로부터 내가 듣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산이를 선물로 주신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인내를 배워가라는 것이라고 늘 말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산이가 학교를 떠난 후 앞으로의 삶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었다.

방학 기간이 끝나도 이제는 돌아갈 학교가 없다는 것이 헛헛하기만 한데 산이는 빨리 방학했으면 좋겠단다. 산이에게는 학교에 가지 말라는 말이 큰 꾸짖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이는 빨리 학교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만 스물한 살의 특별한 청년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을까?

방학을 하루 앞두고 아이가 학교를 갔다 왔는데 시큰둥했다. 친구들하고 선생님들하고 다 만났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네 반 친구들이 많이 안 왔다는 것이었다. 주초에 있었던 피자 파티가 학년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나 보다. 둘째 아이 말 듣고 학교에 보내지 말 걸 그랬다. 남은 하루의 등교를 아무렇지 않게 흘려 보내고 공교육을 끝낸 새로운 삶의 단계로 슬쩍 옮겨갔다. 감사하게도 산이는 여느 날처럼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바심도 조급함도 그에게서 느껴지지 않는다. 정한 때에 일을 이루시며 서두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산이의 어딘가에 숨겨놓으셨나 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공동체로 잘 알려진 라르슈나 캠프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우리도 그런 마을을 이루어 살면 좋겠다는 꿈을 늘 꿔왔다. 산이의 학교 이후의 삶을 시작하며 돌아보니, 물리적인 공간을 가진 마을은 아니었어도 사랑의 관계로 이어진 공동체 안에서 살았음을 깨닫는다. 산이를 중심으로 가족, 친척,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 교우들,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산이를 풋풋한 젊은이로 키웠다. 라르슈 같은 마을공동체도 사랑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니, 꿈 같은 그런 마을을 만들 수 있는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뿌려져 있다. 

1/30/2014

서설(瑞雪)





아이들이 이틀 동안 집에서 쉬다가 학교에 갔다. 등교도 보통 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했다. 휴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 것은 그제 밤에 내린 눈과 낮은 기온 때문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늦게나 눈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교육구에서는 아예 수업이 없는 것으로 전날 저녁에 이미 알려주었다. 교육구나 학교에서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학부모에게 안내 전화를 한다. 궂은 날씨나 비상상황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는 학부모 전화, 교육구 홈페이지, 그리고 지역 TV나 라디오 방송 채널에서도 안내해준다.

그날 볼일은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는 하늘을 살피며 눈이 오기만 기다렸다. 정말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살폈다.

“곧 올 텐데, 뭘 그래?”

남편은 눈 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고 픽 웃는다. 나도 우습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겨울마다 보던 눈인데,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니 눈 오는 걸 보는 것마저 귀하고 그립다.

저녁 8시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을 휘감으며 힘차게 내렸다. 눈발이 굵어지고 잔디 위에 조금씩 쌓이기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같아서는 뒤뜰에 쌓이는 눈을 밤새 감상할 것 같았는데, 몸은 벌써 잠 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청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감성을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로 이사온 지 4년차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보게 되다니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추 2인치(5cm)쯤 쌓여있다. 학교를 쉴 정도의 눈은 5년 전쯤에도 왔었나 보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 많은 눈은 20년 만이라고 하셨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 내린 풍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분된다. 여느 아침과는 달리 바깥이 더욱 환하다. 눈에서 나오는 하얀 색 때문이다. 구름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에 반사된 눈빛이 반짝거린다. 화사하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미국 남동부에 눈 폭풍이 온 것은 뉴스에 나올만하다. 눈이 잘 오지 않으니 제설장비가 제대로 있을 리 없다. 부족한 제설장비와 재해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주지사나 시장을 향한 질책은 예상할 수 있는 뉴스거리들이다. 애틀랜타에서 처음 겨울을 맞이할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애틀랜타에서는 이번에 내린 눈이 미북부 지역에 비하면 많지도 않은 양인데, 그에 대한 행정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이 큰가 보다.

이곳, 콜럼비아는 안전하게 학교도 일찍 문을 닫았고, 교우들끼리도 안부를 물으며 서로 챙겨주었다. 하루, 이틀 먹을 물과 식료품은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오는 교우도 있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한국은 설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음력으로 새해를 다시 한번 시작하는 날이다. 미국에서는 음력 설을 쇠지는 않지만, 한국인인 나와 우리 가족, 교우들에게 이번에 온 눈은 새해에 복되고 좋은 일이 많으리라,고 알려주는 서설(瑞雪) 같다. 


때마침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만났어요.
잘 안보이나요???  ^^

11/07/2013

IEP (2)


Prom 2013


 
앞으로 두 번 정도 남은 IEP 미팅이라도 잘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 년 전 받았던 IEP 서류를 꺼내 다시 훑어보았다. 모든 학교 생활이 끝나면 부모와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음식 조리해 먹기,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사용하기, 시계보고 시간 알기, 동전과 지폐의 가치 알고 헤아리기, 일터에서 다른 사람의 건설적인 비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 이러한 목표들을 학교에서, 집에서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묻고 답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을 적어보기 위해 강산이가 그 동안 일했던 곳과 맡겨진 일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여기 지역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ass, 만 18-21 세)의 직업훈련은 기본적으로 다니던 고등학교에 출석하면서, 학교 안에서 일하는 것(school-based work experience)과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것(community-based work experience)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직업훈련이 ADAPT(Assisting Developing Adults with Productive Transitions)와 STRIVE (Supported Training and Rehabilitative Instruction In Vocational Education)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다. ADPAT는 다니던 고등학교에 계속 머무르면서 학교와 지역사회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STRIVE는 교육 시간 내내 일터로 직접 나가서 직업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것 역시 공교육 과정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4 년을 마친 후 이 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주마다 다르고, 같은 주라도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실 강산이를 통해 미국의 특수교육을 아주 조금 경험했을 뿐 새로운 현실에 맞닥뜨리면 여전히 어리바리 하다.

강산이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직업훈련은 학교 소식지 발송을 위해 라벨 붙이기, 온실 관리, 일정 지역 청소 등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산이가 지역사회에서 했던 일은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수건 정리하는 일, 백화점이나 Family Thrift shop(재활용품 파는 곳)에서 옷 따위를 옷걸이에 걸어 진열,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USC School of Medicine(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약학대학)에서는 사무실 업무 보조 역할로 편지 발송을 위한 라벨 붙이기와 간단한 서류 정리를 했다고 한다. 직업훈련과 관련되어서는 실습을 나간 곳에서 강산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가장 재미있게 잘 하는지를 꼭 물어보리라 적어두었다.

그리고 강산이가 학교 밖에서 잘 하고 있는 일 한 가지를 더 적어두었는데, 교회 재정부에서 집사님들을 도와드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집사님들이 헌금 정리하시는 시간에 강산이가 교회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일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 같아 집사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하루는 사무실 문을 살짝 열고 강산이 보고 그만 나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집사님은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한 집사님께서 강산이가 어디 있느냐며 찾으셨다. 재정부 일 볼 시간이라면서 말이다. 집사님은 일부러 강산이와 함께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집사님들 곁에 강산이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그 배려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강산이가 사무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재정부 일이 끝났는지 종이 두 장을 들고 나온다. 그 중 하나인 헌금 수입 보고서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교회 게시판에 걸어두고, 다른 하나인 재정보고서는 재정부장님과 목사님의 사인을 받아가지고 간다. 그 일을 하는 동안 강산이의 걸음은 얼마나 힘찬지 모른다. 이 사실을 IEP에 가서 얘기하고 싶어 잘 보이게 적어놓았다.

정해진 IEP 미팅 시간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현관에서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이 있는 3층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마침 강산이와 담임 선생님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와 있었다. 회의실이 1층으로 바뀌었다며 내려가자고 했다. 엄마가 학교에 온다고 강산이가 많이 좋아라 했다며 선생님께서 전해주셨다.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바람에 금방 잊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면 조금 헤맬 뻔 했다. 학교가 생각보다 넓고 복잡하다.

담임 선생님은 회의를 시작하자며, 그 동안 여러 차례의 IEP 미팅을 하느라 애쓰셨을 텐데 오늘이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2014 년 1월에 강산이가 스물 한 살이 되므로 이번 학년도가 마지막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장애 학생은 스물 두 번째 생일 전 날까지, 그러니까 교육 받을 수 있는 21 세까지는 꽉 채워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 강산이는 이번 학년도가 끝나는 2014년 6월이 끝이 아니라 스물 두 살 생일이 들어있는 2015년 1월이 끝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년 6월이 끝인지 몇 번 확인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이다. 한 학기 일찍 학교를 마친다고 해서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 심리학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강산이가 학교를 마친 후에 일할 곳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산이가 자원봉사든, 보수를 받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것은 사회와 소통하는 길 가운데 중요한 하나다. 그 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일지라도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어떤 노력도 하기 전에 단정지어 얘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한편 일터와 더 먼 거리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을 생각하면 강산이의 경우는 투정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강산이가 지난 IEP 목표들을 대체로 잘 수행했다고 평가해주셨고, 나는 준비해간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들을 주로 했다. 선생님은 강산이가 특히 사무실 업무를 좋아하고 잘 한다고 하셨다. IEP 초안에도 사무실 일과 관련된 기술들을 강화하는 계획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약학대학 사무실에서도 일을 아주 잘 했다고 하셨다. 강산이가 교회 재정부에서 일을 돕고 있다는 것도 비슷한 종류의 일인 것 같아, 선생님의 평가에 이어 자연스럽게 잊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다. 보통은 IEP 회의에 가도 난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데, 이번엔 미리 준비한 얘기가 적절하게 강산이의 강점을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신기하고 감사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 IEP모임을 한 장에 정리한 문서를 나중에 보내주셨는데, 강산이가 사무실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지역 내 다른 교회나 미술을 가르치는 사무실 등에서 훈련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잘 되었다.

또 마지막 IEP 모임이기 때문에 가디언십(Guardianship, 장애인의 법적인 후견인을 세우는 일)이나 직업재활센터에 대한 정보를 다른 때보다 구체적으로 제공해주었다. 데이케어(day care, 주간보호시설)에 대해서는 지난 번과는 달리 언급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방문하여 알아본 데이케어 종일반에 다닐 경우 매월 3,000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또 현재 어느 장애학생이 다니는 데이케어에서도 그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고 그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다. 이 비용은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도 하고, 메디케이드 웨이버(Medicaid waiver, 연방정부가 정한 기준에 해당되는 장애인에게 주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주정부가 그 비용을 담당하게 되므로 장애인 본인은 무료로 데이케어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메디케이드 웨이버 대기자가 몇 천명에 이른다. 여기는 5,000 명 정도 된다고 했다. 강산이가 데이케어를 이용하려면 그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와우! (더 적은 비용으로 다닐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이 있는지, 이것을 지원하는 정부차원의 다른 서비스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와우! 반면, 만약 저렴한 비용으로 다닐 수 있는 데이케어가 있다면 애틀랜타에서 만난 여러 장애우들이 다니고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내가 만난 이들 중에 한 명도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갑갑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면 되겠지, 하면서도 산 넘어 산 같이 여겨진다. 당장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서 그 짐을 덜어내리라. 애틀랜타에 살 때 알고 지내던 어느 장애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공립학교에 언제까지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대로 스물 두 번째 되는 생일 전 날까지 다니는 거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애틀랜타에서는 스물 두 살 생일이 되는 전 날까지 학교를 다니는데 강산이에게 이번 학년도가 마지막인 것이 맞느냐고 말이다. 선생님은 바로 답장을 주셨다. 주마다 법 적용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정책에 따르면 21 세 생일이 들어 있는 학년도까지만 학교에 다니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내년 6월 6일이 마지막 날, 맞는다고 하셨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답글을 보내드렸다.

보통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직장을 갈 나이쯤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는데 우리 강산이는 더 가까이 오게 된다. 강산이가 학교를 다 마친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패턴의 삶이 딱 한 학기만큼 더 가까이 와 있다.  

10/30/2013

IEP (1)


<고등학교 첫해에 참석한 홈커밍 파티에서 >
 


IEP는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혹은 Individual Education Plan(개별교육프로그램)의 준말이다. 나의 첫째 아들 강산이 같이 장애가 있는 학생(student with special needs-장애인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는 the handicapped, the disabled, 그리고 special needs 따위가 있다. 그 가운데 special needs가 제일 맘에 든다)은 일 년에 한 번씩 IEP를 검토, 수정, 보완하기 위한 모임을 갖는다.

보통은 일 년을 주기로 IEP 모임을 갖지만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장애학생을 교육하는데 IEP 모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모나 교사는 언제고 모임을 요청할 수 있다. IEP 모임 일정은 학교측에서 한 달 전, 그리고 적어도 5일 전, 이렇게 두 번 알려주도록 되어있다. 한 달 여유를 두고 모임 날짜를 알려주지만 사정이 생기면 날짜와 시간을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도 있다.

이 회의에는 학생, 부모, 특수학급 교사, 일반학급 교사는 꼭 참석하고 IEP를 결정해야 하는 사항에 따라 학교 심리학자, 과도기 전문가(transition specialist), 상급학교 교사, 학교 사회복지사(school social worker) 등이 참석하기도 한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부모는 통역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교사들에게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학교 밖에서의 생활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초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교회학교 교사나 과외활동 지도교사 등이다. 이런 경우에 부모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학교에 미리 알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IEP 모임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규칙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미국에서 아이를 어려서부터 키운 부모나 이민 생활이 오래된 부모들은 IEP에 대한 경험이 많을 터이니 여기에 덧붙일 것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산이는 현재 공립학교의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ass, 만 18-21 세)에 속해 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은 공립학교에 만 21 세까지 다닐 수 있도록 특수교육법에 정해져 있다. 과도기 학급은 학교를 떠나서 사회에 나가면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일자리를 얻어 봉사하거나 급여를 받아 생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곳이다. 과도기 과정을 위한 계획은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만 14 세부터 세워진다. 그리고 고등학교 4년 과정 이후에 과도기 학급에서는 사회에 통합할 수 있는 학습과 훈련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모님은 고등학교 이후에 정규 교육 과정으로 과도기 학급에 다니는 아이들을 두고 대학 다닌다고 재미있게 얘기하기도 한다.

미국에 와서 처음 살았던 애틀랜타에서 첫번째 IEP 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선생님들이 물어보는 것에 답하는 것 밖에는 말을 거의 안 한 것 같다. 이 모임의 성격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학교에 처음 다니게 되는 강산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 속이 상해있기도 했다. 낯선 사람과 환경 속에서 강산이는 자기를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 몸도 마음도 웅크리고 있던 때였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선생님이 뭘 지시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그 지시를 따를 수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선 한 학년이 새로 시작되는 시기였으나 미국은 학년 말이어서 많은 부분 기다려주고 설명해주어야 하는 새로운 전학생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고 학교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며 두어 달을 괴롭게 보내고 모인 자리였다.

그 모임에는 고등학교 선생님 두 분이 와 있었다. 강산이는 한국에서 홈 스쿨을 하다가 남편의 목회지가 옮겨지면서 더 이상 홈 스쿨을 할 수 없어 뒤늦은 만 9 세에 초등학교 일 학년에 입학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중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측에서 강산이를 어찌 생각했는지 나이를 문제 삼았다. 미국 학제에 따르면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나이이므로 고등학교 선생님을 초청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중학교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는 것이 어찌 이상했다. 학생, 부모, 선생님이 동의가 되면 나이가 한 살 많아져도 중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다른 장애학생 부모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선생님 두 명 가운데 남자 선생님은 짧지만 한국 경험이 있는 분이었는데, 강산이에게 다가가 한국 말로 인사를 나누어주셨다. 또 다른 선생님도 잔잔한 목소리로 영어 인사를 건네며 웃어주셨다. 강산이는 고등학교 남자 선생님과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면서 관심을 나타냈다. 매가리가 하나도 없고 웃음을 보여주지 않는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 심술궂고 딱딱한 표정의 특수학급 전담 교감 선생님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이러한 인상은 중학교 선생님들이나 나나 서로에게 마음이 열려있지 않았기에 그리 보였을 거란 걸 안다). 세 시간 가까이 엄청 오랫동안 진행된 IEP 모임에서(그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함께 참석하고 있던 강산이는 매우 의젓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중학교 교감 선생님의 친절한(!) 지시에 따라 주어진 과제도 문제 없이 수행했다. 중학교 측의 강산이를 밀어내는 듯한 입장이나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강산이 서로의 호의적인 태도, 공립학교에 소속된 어느 한국인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강산이는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 나갔고, 일 년이 지나 IEP 모임에 갔을 때는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고, 자기 반 친구들 친절하게 잘 도와주며, 게다가 영어로 학교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우리 식구 중에서 영어를 두려움 없이,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강산이가 되었다(강산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한국어를 읽거나 쓰는 것도 문제 없다. 이 또한 자랑스럽다). 또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로 이사 와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 윤이가 전해주는 말에 따르면, 형이 학교에서 무척 인기가 높고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특히 여학생들과 친한데 서로 아는 척하며 포옹하는 것을 늘 본단다. 누굴 닮은 것인지……

지난 주에 강산이를 위한 IEP 모임이 있었다. IEP 회의에 가려면 늘 긴장됐는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여러 해 동안 IEP에 참석했다고 여유가 생겼나, 생각했다. 담임 선생님이 미리 작성한 IEP 초안을 가지고 회의를 하다 보면 그 문서의 내용이 자세하고 강산이에게 필요한 교육 목표들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질문하기 보다는 잘 듣고, 동의하고 그와 관련된 강산이의 강점을 애기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강산이가 사회로 나갈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직업 훈련과 관련된 질문들이 여러 개 떠올랐다.
 
---다음에 이어서

6/03/2011

윤이가 중학교 졸업했어요





저에게는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엄마, 어머님, 어머니.
저를 낳아주신 엄마, 남편을 낳아주신 어머님, 그리고 외동딸인 저와 자매 되기로 한 무남독녀인 동서를 낳아주신 어머니이십니다.

엄마, 어머님, 어머니께

안녕하세요?
여기는 해가 나는 한낮에는 무척이나 더운데 한국도 많이 더워졌겠지요?

어머님은 모내기 하시느라 엄마는 식사 준비로 도우시느라 많이 힘드셨겠어요.
어머니는 수술하시고 건강이 더욱 좋아지셨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몸을 아끼시고 조심하세요.

아이들이 오늘로서 한 학년씩을 마치고 긴 여름방학을 시작했어요.
엊그제는 둘째 아이 윤이가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제가 듣기로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가장 성대하게 치른대요.
아마도 공교육이 끝나고 사회인으로 나아가게 되는 때라 고등학교 졸업을 많이 축하해주는 듯 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식은 가볍게 지나가고요.
특별한 졸업식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윤이네 학교는 그래도 졸업예식을 그럴듯하게 했어요.
정장 바지에 셔츠를 입고 오라 하고, 졸업식장에 입장하는 연습도 하고 그랬대요.

오전에 졸업을 하게 되어 첫째 아이 산이는 자기 학교에 갔고, 남편하고 같이 윤이 학교에 갔어요.
저희는 20분 전쯤 도착했는데 학교 실내체육관에는 벌써 학생들의 가족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앉을 자리를 눈으로 찾고 있는데 어느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어 네 사람 앉을 자리가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이곳 사람들의 몸에 배인 친절함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순간이었어요.

졸업식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학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로 그들을 맞아주었어요.
윤이가 들어오면 사진을 찍어주려고 목을 빼고 찾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눈에 확 띄던걸요. ^^
몇 명 안되는 동양인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그동안 키가 부쩍 자라 아이들 틈에서도 잘 보였어요.

어떤 가족들은 자기네 아이가 입장할 때 이름을 크게 불러서 가족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어요.
우리는 어떻게 하나 하고 있는데, 윤이가 우리를 얼른 찾아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미국에 와서 이곳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으니 기특하고 고마웠어요.
게다가 졸업을 3 개월 앞두고 새로운 곳으로 전학을 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나름대로 학교 일정을 잘 따라가며 중학교 시절을 잘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여기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거의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니 3 개월 동안 친구들 얼굴 익히고 사귀게 된 것이 오히려 잘 된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학과 공부나 오케스트라에서 잘 했는지 상도 받게 되어서 졸업식에 대한 기대 없이 참석을 했다가 무척 기뻤어요.
윤이와 늘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과,
윤이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으시는 할머니들과, 다른 가족들에게 감사 드려요.

한국 시간으로 생신을 맞으셨을 아버님께 윤이의 졸업을 선물로 드려도 될까요?
올 초 30년 넘게 사명을 감당하신 장로 은퇴식 때도 그랬는데, 생신 축하도 말로만 때우려니 무척 부끄럽네요.
아버님, 예쁘게 봐 주세용~.
내년에 여기 오시면 편안히 모실게요. *^^*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해요.

콜럼비아에서 글 올립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디모데후서 2장15절)



<우리교회 고등학생이 졸업하는 모습이에요. 중학교와는 많이 다르죠?>

4/16/2010

아이가 커가고 덩달아 나도 커가고

<학교에서 가져온 LION OF THE WEEK와 상품으로 받은 학교 티셔츠입니다.>


둘째 아들이 LION OF THE WEEK가 되어 카페테리아 앞 복도 쪽에 붙어 있던 것이라면서 코팅된 종이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봄방학 하기 전에 자기 사진이 학교 어디에 걸려 있다고 말하긴 했었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고 해서 “왜?”라고만 물었습니다.
“이번 주 라이온으로 뽑힌 거래.”
아이의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더 물어보든가 했어야 하는데 저도, 아이도 거기서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봄방학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학교에 붙어 있던 것을 떼어주셨다며 가져온 것을 제 앞에 놔두고 갑니다.
이런저런 내용이 담긴 종이 한 장인데, 항목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생각도 여러 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이유를 읽으면서는 기분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지속적으로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었고 새로운 도전들이 있을 때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난 학년까지만 해도 이곳 학교 분위기를 익히는 과정에서 작은 벌칙을 받기도 하고, 같은 반 어떤 친구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선생님께 이르는 바람에 한국 학생 몇 명이 곤란을 겪기도 했었습니다.
투덜대며 그런 이야기를 집에 와서 할 때도 생각해보니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해서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은 것은 있어서 사실이 어떠하든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라도 알아주려고 했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갖고 온 LION OF THE WEEK에 써 있듯이 자기 자신을 돌볼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도와주었다니 대견한 마음이 마구 들면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더 마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이도 자라고 더불어 엄마도 커 갑니다.

오늘은 LION OF THE WEEK와 함께 상품으로 받은 학교 티셔츠인데, 가방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오늘에서야 봤다며 내놓습니다.
털털한 것인지….
한편으로는 대단한 상 받은 것처럼 잘난 척하지 않는 모습인 것 같다고 제 마음대로 생각해봅니다.

요즘은 전에 사용하지 않던 말들도 툭툭 합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엄마 쌩얼 하고 화장한 모습하고 차이가 많이 나.”
“엄마가 젊지는 않지!”
“그렇게 먹고 싶으면 금식하지 말고, 먹고 기도하면 되잖아. 그냥 먹어.”
이런 말을 들으면 엄마한테 관심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서 웃기기도 하고, 함부로 행동하거나 말하면 안 되겠구나, 마음을 다잡는 기회도 됩니다.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 아침마다 아이들 스쿨버스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기도를 더욱 놓치지 말아야 될 것 같습니다.
“Mr. B(스쿨버스 기사님)과 거기에 타고 있는 아이들, Mrs. E(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서로의 관계 맺음을 통해서 앞으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관계들을 배워가게 해 주세요.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이 잘 이해되게 하시고 잘 쌓여서 아이들 삶에 유익하게 하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의 통로로 사용하게 해 주세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자녀로서,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는 자녀들이 되게 해 주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6-18)

1/08/2010

생각지 않은 늦잠이 가져다 준 즐거움

<아침 6시20분, 학교에 가는 강산이. 스쿨 버스가 오는 바람에 서둘러 찍어 사진이 흐릿합니다.>

엊그제 아침, 정신 없이 자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보통은 남편이 새벽 기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강산이를 깨우기 위해 울리는 셀폰의 알람 소리에 깊은 새벽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듯 뒤척거려야 할 시간이라 그랬는지,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 강산이가 들어오면서 바뀐 방안 공기의 느낌만으로 잠이 확 깼습니다.
“엄마, 나 학교 가야 돼.”
“…. 엉?”
셀폰의 시간을 확인해 보니 6시 45분.
스쿨 버스가 불 꺼진 집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떠난 지 25분이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가느라 왔다 갔다 한 것도 모르겠고 5시 30분에 울렸어야 할 알람도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셀폰은 제대로 켜 있는데….

우리가 사는 카운티의 고등학교가 시작하는 시간은 7시 10분쯤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강산이가 순조롭게 준비를 하고, 학교에 데려다 주면 그다지 늦지 않을 시간입니다.
다만 학교에서 아침 식사 할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강산이네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함께 먹습니다.
아침 먹는 시간에 학교에 한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일찍 등교한 학생들 대부분이 아침을 학교에서 먹는 것 같았습니다.
강산이는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 잔 가득 먹고 학교에 가서 또 아침을 먹나 봅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먹는지 궁금한데, 그때 자세히 볼걸 그랬습니다.

스쿨 버스를 놓치고 늦잠을 잔 것이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강산이가 학교에 가기 위해 엄마를 깨웠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줄 몰랐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 날이 학교에 가야 하는 날임을 알고, 다른 날과는 달리 계속 잠을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야 한다는 상황을 판단해서, 말로 엄마를 깨운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가 “엄마” 하고 처음으로 말을 했을 때나 첫 걸음을 걸었을 때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 짓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 기쁨과 웃음을, 며칠 있으면 열 일곱 살이 되는 아들에게서 지금도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언제나 기쁨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몇 달 동안 강산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환경에 적응하라고 무턱대고 던져놓은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깝고 속상했더랬습니다.
이해의 정도나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강산이의 감정 표현으로 어림 짐작했어야 했기에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학교 생활이 어떤지 말로 잘 해주지는 않지만, 어느새 혼란스러움이 아닌 친밀함을 만들어 가는 강산이가 대견스럽습니다.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미국 생활을 시작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강윤이도 별탈 없이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구겨진 종이 조각을 장난 삼아 친구에게 던지거나 점심 시간에 카페테리아 가다가 복도에서 떠들다 걸려서 작은 벌칙을 받았을 때, 이제껏 경험해온 학교 생활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기도 스트레스가 많았을 텐데, 잘 견디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나름 학교 성적에도 관심을 갖고 목표한 점수를 유지하려는 모습도 종~종 봅니다.
아직 ESOL 반(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영어 공부하는 반)에 참여하기 때문에 너그러이 봐주는 과목이 있어서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 강윤이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를 것 같은데요? ㅋㅋㅋ
그래도 강윤이는 수학을 정말 잘 합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는 선생님의 인정을 받아 같은 반 친구들이 바이올린 연습할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학생이 학교 선생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학교에 갈 맛(!)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빠에게 전화해서 집에 올 때 엄마 생일 케이크를 사오시라, 귀띔을 했다고 합니다.
짜아식!

강산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만 닦고 나갈 마음으로, 학교 현관에서 내려줄 테니 혼자 들어가, 라고 했습니다.
강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싫답니다.
교실까지 함께 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강산이는 자기 교실이 어디인지 잘 찾아 다닙니다.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갔더니, 담임 선생님은 강산이가 행사 장소를 알고 있으니 강산이를 따라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강산아, 혼자 들어가도 돼.”
무슨 생각인지 금방 고개를 끄덕입니다.

스쿨 버스, 부모와 학생들의 등교 차량으로 붐비는 학교 앞이 한산합니다.
차가 학교 앞에 멈추자 혼자 내립니다.
웃으며 손을 흔들고 학교 건물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느 만큼 가다가 뒤돌아 보고 엄마가 탄 자동차가 그대로 있으니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니, 건물로 들어가서 차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 갈 길을 다시 가면서 어서 가라고 머리 뒤로 손을 흔듭니다.

강산이나 강윤이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관리를 하며 커가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생각지 않은 늦잠이 커가는 자녀들을 느껴 보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다니, 사는 것이 날마다 새롭습니다.
엊그제도 그리고 오늘도 저는 기쁨과 감사를 선택해봅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3:19-23)

<눈이 조금 왔는데 더불어 기온이 뚝 떨어져서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10/09/2009

기꺼이 하는 약속




지난 5월 우리교회 한국학교 종업식을 하고 교사와 보조 교사들이 공원에 모여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거기에 교사의 자녀들이 같이 있기도 했는데 제 둘째 아들 강윤이도 끼어 있었습니다.
얼추 그 식사 자리가 정리되고 교회 Youth 오케스트라 모임 시간이 다 되어 중고등부 아이들 대여섯 명을 태우고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오는 동안,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셀폰을 잃어버렸는데 집에 있는 세계위인전 60권을 다 읽는 동안 셀폰을 찾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다시 셀폰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인전이라는 말에 살짝 끼어들어 “그 책 우리 강윤이도 빌려주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은 글씨도 크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강윤이한테는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강윤이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것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어, 그래도 괜찮아. 강윤이도 위인전은 많이 읽지 않아서.”
“야, 너 그러면 히틀러 알아?”
“응~~~”
“몰라?”
“그러면 장영실은 알아?”
“뭐 만든 사람.”
“야, 너~”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서로 대가며 아는 둥 모르는 둥 할 때마다 “oh, my goodness!” 를 외쳐대며 낄낄 깔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이들이 물어볼 때마다 강윤이가 너무 대답을 못해서 ‘이거 괜히 책 빌려 달라고 해서 애 기죽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은 “그럼 세종대왕은 알아? 이순신은 알아?” 하며 거의 놀리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운전을 하며 뒤에서 들려 오는 강윤이의 목소리만으로 가만히 가늠해보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먼저 알고 나중 아는 것일 뿐, 모르는 것은 필요하면 배우고 익혀서 알면 되는 것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라면 일찍부터 알고 깨닫는 것이 좋겠지만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강윤이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그 친구가 위인전을 빌려준다고 하면 한번 읽어 볼래? 그거 다 읽고 한국에서 가져온 역사책 5권까지 다 읽으면 너도 셀폰 사 줄게.”
“정말?”
언제 얻게 될 지 모르는 셀폰을 사 준다고 하니 해볼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강윤이 친구는 선뜻 위인전을 빌려주었고 5월말부터 책이 두 집을 오고 갔습니다.
방학 중이라 조금 느슨하게 책을 읽는다 싶었는데 그 친구가 8월에 다른 주(州)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들어오는 강윤이 손을 보니 큰 가방에 위인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친구에게, 조금 있으면 이사 가니 나머지 책들을 다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더니 책장에 꽂힌 역사책 4권도 뚝딱 읽어버렸습니다.
나머지 한 권도 마저 읽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분명히 4권이라고 들었다며 더는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2 주 전에 셀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셀폰을 얻을 수 있는 힌트도 주고, 책도 빌려준 친구에게는 더 없이 고마울 뿐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도록 자극을 준 교회 형들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강윤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강윤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 가운데 하나인 성경 말씀 66권을 컴퓨터로 모두 타이핑 하면 노트북을 사 주기로요.
장(章)과 절(節)을 표시하면서 한글로 타이핑 하기로 했습니다.
타이핑 하다가 모르는 내용이 있거나 타이핑을 더 빨리 하기 위하여 미리 한 권 한 권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해 두었습니다.
강윤이 생활 속에서 성경을 보다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우려고 합니다.





강산이 선생님으로부터 Home Checklist를 받았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연습하는데,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훈련이 이어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침대 정리를 하고, 자기 물건들을 사용한 다음에는 제자리에 갖다 두고, 이 닦고 샤워한 후에 뒤처리와 빨래감을 세탁실에 가져다 두고, 식사 후에 식탁 정리, 숙제나 선생님과 학부모의 편지를 잘 처리하고 전달하는지…. 날마다 체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용을 더 보태거나 빼도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대로 좋다고 하여 9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통계를 내서 잘 했으면 주말에는 한 시간 늦게 자도록 허락한다든지, 비디오 게임 하는 시간을 조금 더 준다든지, 주말 아침을 맥도날드에서 먹는다든지 하는 상(reward)을 고려해보는 것도 제안해 주셨습니다.

체크 리스트 가운데는 이미 강산이가 잘 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침대 정리나 세탁실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시간 안에 침대 이불을 깔끔하게 펴놓고 벗은 옷은 세탁 바구니에 갖다 놓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배운 모양입니다.
Thank you, our Lord!

강산이에게는 어떤 상을 주면 좋을까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강산이가 고장난 아이팟(i-pod)을 찾아와 “이거 사 줘” 합니다.
강윤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학교에서 타 온 조그만(1GB) 아이팟인데,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모르고 빨래를 해서 고장난 것을 어디선가 찾은 것 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듣는 강산이는 CD나 CD 플레이어, 그리고 강윤이의 아이팟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강윤이의 새로운 셀폰 때문에 왁자지껄 했던 터라 강산이도 뭔가 새로운 것을 갔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잠깐 생각한 다음 강산이에게도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체크 리스트에서 하라는 대로 잘 해서 체크를 받은 숫자가 모두 합하여 300개가 되면 아이팟을 사주겠다고 몇 번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강산이와 약속한 내용을 적어 보내면서 강산이를 격려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강산이가 이 약속을 잘 이해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체크를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강산, 체크!” 하고 말하면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낸 그 날 저녁에는 체크 리스트 한 장 곳곳에 자기가 체크를 미리 다 해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깔깔깔.
강산이가 분명히 알고 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강산아, 300개야, 300개!” 하고 있습니다.
한 주에 45~50개쯤 체크가 되니까 300개가 되려면 6~7주 정도가 걸릴 것이고, 이번 주까지 모두 보태면 250개가 조금 넘게 되니까 다음 주말에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도 잘 알 수 없는(--!), 강산이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동안 바뀐 강산이 생활 태도가 쭉 이어지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저에게도 좋은 아이디어 주시면 더욱 감사, 아니 주실 줄로 믿고 미리 감사 드려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3:15-17)

8/14/2009

융통성 없는 정직

<친구들과 학교 뜰에서>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 당시 70여 년의 역사가 있는 학교였는데, 전통이 오래된 만큼 학교 본관 건물도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교실과 복도 바닥은 나무 마루로 되어 있었고, 나무 바닥을 보호하기 위하여 왁스로 걸레질을 해야 했습니다.
청소는 분단별로 나누어 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며칠 동안 모두가 청소를 했고 선생님은 꼼꼼하게 검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청소 시간에 바닥 닦을 손걸레를 개인적으로 마련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청소 시간이 되어 보니, 어떤 친구는 헝겊으로 만든 걸레를 가져 왔고 어떤 친구는 문방구에서 파는 스폰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깜빡 잊고 걸레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스폰지를 살 돈도 없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교문 밖을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청소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쓸고 나르고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딴 생각을 할망정 청소 시간에 딴청 부리는 것은, 제겐 자연스럽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이제 왁스로 나무 바닥을 닦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잠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있는데, “야, 담임 온다!” 하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군데 군데 모여서 수다 떨던 아이들이 모두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 중에 걸레를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은 옆 친구가 가져온 스폰지를 반으로 잘라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교실은 교무실 옆에 옆에 있었기에 선생님이 곧 나타났습니다.
교실 앞 복도에 서있던 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걸레를 가져오지 않고 가져온 것처럼 하는 것은 자신과 선생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소 시간에 한눈 팔아본 적이 없으니, 걸레 한번 안 가져온 실수는 선생님이 어여삐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되지도 않는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모두 쥐 죽은듯 조용히 바닥을 닦고 있는데 손을 놀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던 제가 눈에 금방 띄었나 봅니다.
“야, 너 뭐해. 일어나! 이리 와.”
그 선생(이 부분에서는 “님”을 생략하렵니다)은 손으로 제 머리를 쿡쿡 쥐어박으며 어쩌구 저쩌구 했습니다.
복도 한가운데 여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제 생각일 뿐, 선생님 편에서는 그럴 만도 합니다.
가져오라는 걸레는 가져 오지도 않고, 다들 열심히 바닥을 닦는데 뭐 잘한 것이 있다고 가만히 있냔 말이죠.
얼마나 뻔뻔해 보였겠어요.

정말, 융통성, 순발력, 눈치 같은 것들은 엿장수에게 주고 엿하고 바꿔 먹은 게 분명합니다.
아니, 저에게 융통성 같은 것들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아마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이지, 타고난 DNA 어느 구석에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말하고 보니,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저와 비슷한 강산이가 제 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미안, 강산.”

고등학교 청소 시간 그때로 지금의 제가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걸레 가져오라는 지시를 적은 종이 쪽지를 방 여기저기에 붙여놓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스폰지 걸레를 가져온 친구의 스폰지를 반의 반이라도 잘라내 청소하는 척 했을까요.
아니면 교무실에서 걸어 나오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팔짱이라도 끼면서(여선생님이셨으니까) “선생님, 깜박 잊고 걸레를 안 가져왔거든요. 쫌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하면서 애교를 떨었을까요.
그도 아니면 양말이라도 벗어서 걸레를 만들어 나무 바닥을 닦고 앉아 있었을까요.

80년대 초 경직된 분위기의 고등학교 청소 시간에 융통성 없는 정직함을 선택해서 부끄러움을 당한 제 자신이 그다지 싫지 않다고 여기는, 이처럼 아직도 지혜가 부족하며 융통성도 없는 이런 사람을 자녀로 삼아주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편63:7-8)

10/09/2008

호랑이 그리는 영어공부

오늘이 4일째.
그래도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Community College-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단과대학인가요 아니면 전문대학?-의 평생교육(Continuing Education)원에서 하는 영어반에 들어갔습니다.
큰맘 먹고 일주일에 4일이나 가야하고 교육비도 어느 정도 내는 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9월 중순에 받은 레벨 테스트(Level Test)에 따라 회화반과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반에 이틀씩 나가게 됩니다.

가을 학기(Fall Quarter)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조금 일찍 도착해서 교실에 가보았더니 두어 사람만 와 있었습니다.
어디에 앉을지 교실을 둘러보면서 보통 때는 눈에 띠지 않을만한 자리를 골랐을 텐데, ‘뒤로 물러서지 말자’ 하며 선생님 책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영어를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 어눌하기에 회화를 많이 하는 반이 필요할 것 같았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기에 그다지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고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보니 문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표현을 다들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렇게까지 못하는데.’
거기서 기가 한번 죽었습니다.

선생님이 부르는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다들 마치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겠구나. 기죽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신 있게 하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바로 코앞에 앉은 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저는 다시 용기를 내어 “Excuse me" 하고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다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랬냐며 얼굴 표정으로 해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름 목소리를 보통 때보다 크게 하여 서너 문장으로 제 소개를 해보았습니다.
소개를 마치자 선생님은 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젠장. 다른 사람한테는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만...’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해도 소심한 저는 여기서 기가 또 한번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윤이가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세 시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모처럼 남편과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주자 남편은 어느 영어 강사가 한 말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생결단, 체면불구, 초지일관!!!”
이곳에 오기 위해서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순간부터 되지 않는 영어 실력을 알기에 영어와 관련된 체면은 그때부터 없었으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그때부터 놓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의 마음은 아니었나 봅니다.
‘적당히(?) 하다보면 되겠지’ 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영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살기 힘들거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죽기 살기로 해야 되려나 봅니다.

나이 사십 넘어 살면서 그래도 많이 담대해졌는지 되든 되지 않든 화요일에 몇 마디 더 하고, 수요일에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부러 손들고 말하고, 오늘은 미국 와서 아마 영어로 제일 많이 말한 것 같습니다.
같은 아시아인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과 남미, 유럽 사람들과도 몇 마디(!) 주고 받았습니다.
물론 수업 시간에 해야만 하는 활동이었어요.*^^*

지켜보아 주세요.
호랑이를 그리고자 하니 못 그려도 고양이는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착한 척을 좀 하려고 합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아직 자가용이 없는 어떤 분을 제 차에 태워드리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 가지 도움을 참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다 되갚을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면 마음의 빚을 조금 덜 수 있을까 싶어서요.
또 혼자 있기 즐겨하고 계획된 틀 안에 있는 것을 편안해 하면서 안으로 잦아드는 제 자신의 기질에 도전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제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수요일에 하고 싶었는데 목요일이나 금요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그런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니지만, 고맙게도 저희 가족을 기억하고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어서 알려드립니다.
살아가는 얘기를 일주일에 하나씩이라도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6-7)

8/20/2008

기억 속의 그 향기를 또 다시 맡다



새벽 5시 30분.
"Get Happy" 라는 휴대폰 리듬을 듣고 침대에서 내려옵니다.
자는 것인지 조는 것인지 기도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자세로 반시간을 보냅니다.

적어도 6시에는 강산이를 깨워야 합니다.
마음이 내키고 의미가 부여가 되어야 움직이는 강산이를 잘(!) 깨워야 합니다.
“오늘 점심에 강산이 뭐 먹을 거야?”
“이따 학교 갔다 와서 아빠랑 수영하러 가자!”
“엄마가 써준 편지 선생님 보여드려야지?”
“저녁 때 수요 예배 갈 거지?”
강산이가 좋아할만한 일들을 골라 슬쩍 던져 놓고 강산이 방을 나옵니다.

쉐이커에 먼저 우유를 따르고 다음에는 미숫가루를 넉넉하게 덜어 넣고 거기에 꿀을 달달한 맛이 나도록 넣어 흔들어 섞으면 강산이가 먹을 아침이 준비됩니다.
준비된 것을 가지고 강산이 방으로 올라가면 잠이 덜 깬 얼굴로 침대에 앉아있습니다.
이 정도면 강산이 등교시간에 맞추는데 성공입니다.
강산이 손에 미숫가루 탄 것을 쥐어주고 나오면 그 다음에는 강산이가 알아서 씻고 옷 입고 내려옵니다.

6시 35분쯤 집을 나서면 아주 적당하게 학교에 도착합니다.
아이들이 개학한 지난 주에는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느라 제가 강산이 등하교를 도왔습니다.
이번 주에는 학교 가는 길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제가 맡았습니다.
강윤이는 이 시간에 자고 있습니다.
강윤이 말로는 형 깨우는 소리에 자기도 깬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된 강윤이가 스쿨 버스 타는 시간은 8시40분입니다.
초등학생이 7시20분쯤에 가니까 아침 시간은 중학생이 가장 여유롭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순서도 학교에 간 차례대로 입니다.
이 등하교 시간은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스쿨 버스 타는 것과 시간이 결정되면 집 현관문 앞에서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장애우 친구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다만 아침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멀리 사는 친구들은 5시 45분에 스쿨 버스를 타기도 한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스쿨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부모가 출근하면서 학교에 내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강산이를 데려다주는 것이 마음이 편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강산이 기분에 따라 학교 갈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시간에 오는 스쿨 버스를 타려면 꼭 시간을 맞추어야 되니 은근히 스트레스가 됩니다.
알아서 척척 하는 강윤이가 고마워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어쨌든 늦여름답게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길을 달리는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지난 월요일 강산이가 다닐 고등학교에 처음 데려다주러 갔을 때입니다.
어디다 차를 세워야할지 몰라 앞 차를 따라가 세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차할 사람이 정해져 있는 학생 주차장이었습니다.
이런 이런....
개학 첫 날부터 자기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주차했어야 할 학생에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주차장에 주차하는 바람에 자기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과 길게 늘어선 스쿨 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틈에 강산이와 저도 끼게 되었습니다.

새 학년을 시작하기 위해 학교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아이들, 그들을 비추는 노란 가로등과 연이어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불빛은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입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품어내는 향기도 언젠가 맡아본 것입니다.
......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레임, 기대, 긴장, 두려움, 낯설음.
바로 6개월 전 어둑해지는 초저녁 아틀란타 하츠필드 공항에 내렸을 때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것들입니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왔기에 긴 시간 비행했음에도 긴장되어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 없던 남편과 저.
여행하러 온 것인지 살러 온 것인지 모르는 강산.
부모가 가야한다고 하니 묵묵히 따라나선 강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여러 개의 살림살이 짐을 찾고, 얼굴도 모르지만 마중 나온 사람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가 남편 이름을 알고 있는 목사님 한 분과 교우를 만났을 때 얼마나 고맙고 마음이 놓이던지요.
공항 건물을 비추고 있는 노란 불빛과 헤드라이트를 켜고 사람을 찾아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 틈에서 교회에서 내준 자동차에 오르기까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보았던 풍경과 이전에 맡아보지 못했던 야릇한 그 향기는 오랜 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에서 배움을 시작하는 첫 날, 더욱이 이른 아침 시간에 하츠필드 공항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긴장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2-16)

8/06/2008

나의 보안 장치(My Security)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아이들이 개학을 해서 한 학년씩 올라가게 됩니다.
지난 주 후반부터는 “Back To School” 을 위한 학용품을 사러 다녔습니다.
학년마다 필요한 학용품 목록(School Supplies)에 따라 준비를 합니다.
강윤이가 갈 학교에서는 이 준비물을 꾸러미로 만들어 놓아 한꺼번에 살 수도 있답니다.
강윤이의 경우는 23가지 품목을 준비해야 하는데 학용품 이름도 낯설고 뭘 말하는지 모르기도 하여 학교에 신청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어떤 물건들인지 궁금증이 발동하는 바람에 가게에 가서 직접 사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필요한 물품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주는 "Tax Sale"이 4일 동안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다녀본 곳이 별로 없지만 이곳에는 곳곳에 대형 마트가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마트에서 Tax Sale을 하는데 그 가운데 그래도 W 마트가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Tax Sale 하는 첫 날 오전에 가 보았습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나와 학용품이 진열되어 있는 복도마다 가득 메우고 있었고 저와 우리 아이들도 그 틈에 끼어 한 시간쯤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학용품 목록이 인쇄된 종이를 들고 다니며 물건을 찾아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물건 싣는 수레를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며 몰고 다니느라 형제가 토닥거리며 말씨름을 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찾아 낼 때마다 보물찾기 하는 것 같습니다.
복도를 누비고 다니다가 권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권사님 손주들 학용품을 사러오셨다고 합니다.
권사님 안부를 묻고는 “그런데 권사님 이게 뭐예요?” 하며 잘 모르겠는 학용품 이름을 보여드립니다.
권사님은 “딸하고 같이 왔는데 걔가 잘 알거예요” 하시며 따님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십니다.
그 따님도 학용품을 고르고 있었는데 물어보는 것마다 물건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물건 찾아 다니다 또 만나서 물어보면 또 알려주어 그 따님 덕분에 쇼핑을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월요일 개학을 앞두고 이번 주에는 예비소집일 같은 "Open House"가 있습니다.
다른 엄마들과 얘기하다 보니 Open House 일정을 알려 주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강산이에게는 아무 편지도 오지 않았습니다.
가야 할 고등학교에 전화해 보니 이름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강윤이는 "Reading" 재시험에서도 점수가 조금 모자라 진급할지 말지 논의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해야 합니다.
영어가 제2 외국어인 학생들을 위한 ESOL반 아이들은 Reading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런데 오늘 오전에 이 모든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강윤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9시 10분에 회의가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강윤이는 조지아 주에서 해마다 1,2월에 치루는 영어 능력 시험이 끝난 뒤에 학교에 왔기 때문에 영어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고, 그래서 보통 아이들처럼 시험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 짧은 시간 동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며 수학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강윤이가 했던 과제물을 가지고 와서는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고 영어도 또박또박 잘 썼다며, 그러니까 문제없이 6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내일 중학교 Open House에 가서 등록을 하면 됩니다.

강윤이가 다녔던 학교를 나와 이번에는 강산이가 갈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를 맡게 될 선생님을 만나서 등록에 문제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중학교에서 강산이에 대한 서류가 미처 오지 않은 것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스쿨버스 일정도 정해지지 않아 개학하고 얼마 동안 통학시켜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만나서 필요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고 다 얻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것은 제가 영어로 말하고 들을 수가 있어서가 아니고 카운티 공립학교 안에 통역을 도와주시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 서로 연결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강산이와 강윤이가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라는 질문이 노트북 위에 올려져 있는 제 손을 멈추게 합니다.
......
아이들이 없다면 없는 대로 열심히 살았을 것 같습니다^^!

첫째 아이 강산이가 태어난 뒤로 지금까지 아이들 없이 된 일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먹고, 자고, 입고, 벌고, 번 것 쓰고, 배우고, 하는 온갖 것이 아이들과 이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구요.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제 믿음이 제자리에 멈추지 않도록 채근하는 역할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머니 같은 마음, 아버지 같은 마음을 느껴도 보고 경험도 하고, 그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돕고 계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물건을 찾아 마트 안을 헤맬 때에도, 누군가 대신 듣고 말해주어야 할 때에도 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잠14:26)

5/30/2008

09/20/2007 - 그 다음 날


영성훈련 72 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앞집에 사시는 엄마가 준비해 놓으신 저녁을 편하게 먹고 바로 저녁 기도회에 나갔습니다.
9월 한 달 동안 육신이 연약한 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겪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채 기도를 하는데 ‘자신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울어주는 사모와 함께 하는 교인들은 행복할 것’이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느껴보며 다른 때보다 더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하룻밤을 자고 나니 두 아들이 5,6학년 수련활동을 월요일에 2박3일로 떠나는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엠마오에 있는 동안 강윤이는 “엄마 운동화 사 줘”하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빠에게 사 달라고 해” 답장을 보냈는데 현관에 새 운동화가 보이질 않습니다.

토요일 아침이 바쁘게 시작됩니다.
운동화를 사려면 오후 4시에 교회 청소가 있으니 그 안에 시내를 다녀와야 합니다.
밀린 빨래를 두 번 돌리고 나니 조금 있으면 점심 때입니다.
시간이 어정쩡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기로 합니다.
교회 차는 남편이 볼 일이 있어 가지고 나갔기에 강산이는 앞집 엄마네 두고 강윤이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한 2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한 대도 오질 않아 결국은 직장에 오후 출근하는 동생 차를 얻어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바쁩니다.
강윤이 운동화 사고 은행에 들려 돈을 좀 찾습니다.
아침에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길래 큰 치킨 집 앞에서 “사 줄까?” 했더니 됐다고 합니다.
“그럼 도너츠 사 가지고 갈까?” 해도 언제 도너츠 좋아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지 운동화랑 운동복을 사야하니 엄마가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돈 없다고 궁색을 자주 떨었나? 남편과 얘기할 때 돈 얘기를 많이 했나?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보통 주부가 그렇듯이 저도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꼼꼼하게 가격비교를 하는 편입니다.
강윤이도 가끔 쇼핑에 함께 갈 때가 있는데 가격을 살피느라 쇼핑 시간이 길어지면 “대충 사!” 그러다가도 “그래야 돈 아끼지?” 합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것인지 강윤이의 이런 마음이 느껴질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진정한 부자로 살지 못하고 진정한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만 있나 봅니다.

수련 활동을 하려면 운동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편한 옷을 입어도 되련만 강윤이는 알림장을 보여주며 “운동복은 따로 적혀있다”고 자꾸 강조하기에 “사 주마”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정거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옷집으로 가서 형 것까지 두 벌을 삽니다.
강윤이는 기분이 좋은지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가라해도 싫다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보니 청소를 시작했을 시간입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저쪽 자동차 대기 선에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서있습니다.
강윤이와 저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버스가 오는 지 뒤돌아보며 정거장을 향하여 뛰어 갑니다.
버스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을 하고 여유 있게 버스에 올라 타고 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 하루가 또 지나 주일 저녁에는 외사촌 동생 아들의 돌잔치에 가야 합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잔치에 가기 전에 아이들이 가지고 갈 간식과 선생님 드릴 음료를 준비합니다.
간식꺼리를 자기가 고르겠다고 강윤이가 따라 나섰는데 가만 보니 강윤이가 수련활동 가는 것 때문에 들떠 있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저녁 예배였으면 잔치에 못 갔을텐데 오랜만에 가족 모임에 참여하여 두루두루 인사도 나누고 사촌 동생들 얼굴도 보니 가족이 주는 편안함도 맘껏 느껴봅니다.

### 아이들이 수련 활동을 떠나는 월요일 새벽.
새벽기도가 끝나고 김밥집에 들러 강산이와 학습 도움반 선생님 몫을 삽니다.
강윤이는 김밥 먹으면 멀미를 더 하는지 그냥 밥과 반찬으로 싸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깨우고 어젯밤에 챙긴 여행 짐에 빠진 것은 없는지 준비물 목록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꺼내야 할 것들도 다 내놓습니다.
아차! 먹을 물이 빠졌습니다.
가져갈 음료가 이온음료이니 그것으로 됐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강윤이는 다른 날처럼 학원 차를 타러 먼저 나가고 강산이는 다른 날 보다 서둘러 교회 차를 타러 뒤따라 나갑니다.

운동 가방을 메고 있는 남편의 비어있는 손에 강산이 학습 도움반 선생님 도시락을 쥐어 주었습니다.
강산이가 작년 수련 활동 떠날 때와 올 해 수학여행 갈 때는 학교까지 가서 배웅하고 왔는데 별탈없이 잘 갔다 오기에, 이번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아이들 준비시키느라 세수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그만두기로 합니다.
제가 따라나서지 않자 남편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궁시렁 궁시렁거리며 갑니다.

아이들이 여행 떠난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9시 15, 10분 전쯤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입니다.
격양된 여자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내용인즉 강산이가 버스에 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 선생님 몇 사람이 버스로 태워보려고 했으나 강산이가 힘이 세서 되지 않으며 자신의 팔찌도 끊어졌고 이미 버스 3대가 출발해서 뒤따라 가야 하는데 강산이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어느 학부모의 전화입니다.
“......”
‘강산이를 설득하러 가려면....
교회 차는 남편이 운동하러 타고 갔고 버스를 타고 간다면 2,30분은 걸릴 것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 학부모는 강산이를 바꿔주겠다고 합니다.
“강산아, 강산아!”
“응~”
“강산아 버스 타고 여행 갔다 와.”
그리고 뭐라고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나 싫어. 여행 안갈꺼야.” 울먹울먹 대답을 합니다.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것이 느껴집니다.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만을 전달하는 그 분에게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 했습니다.
이미 버스가 앞서서 출발했다는 대답만 들려옵니다.
“그럼 강산이 두고 출발하세요.”
“알았어요.”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합니다.
‘강산이가 고집 부린 이유를 알게 되면 그 때 보자.’

앞집 엄마네로 가서 동생이 출근했는지 물어보니 아직 잔다고 합니다.
동생에게 다짜고짜 강산이 학교에 가는데 운전 하라고 깨웁니다.
착한 동생은 하라는대로 들어줍니다.
학교로 가면서 동생에게 학교 가는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을 합니다.

학교 정문.
정문 앞에 관광 버스 서는 곳도 운동장도 텅비어 있습니다.
강산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를 떠나보내고 어딘가 혼자 있을 강산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본관 건물 앞을 살펴보다가 여행을 함께 가기로 한 도움반 선생님한테 전화를 합니다.
“선생님, 강산이 어디 있나요.”
“저랑 같이 5학년 7반에 있어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3반, 4반까지 밖에 없고 7반은 학습 도움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반 학급과 도움반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선생님도 함께 떠나지 못했고 강산이가 어딘가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선생님을 만나 아까의 상황 이야기를 듣습니다.
현명하신 선생님은 누구도 탓하지 않으셨고 저를 위로해주십니다.
고집을 세게 부릴 때의 강산이 태도 그리고 도움반 보조 선생님만 떠난 상황이라 도움반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선생님 입장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강산이는 먼저 교실을 떠났고 저도 얼른 학교를 벗어나고픈 마음뿐입니다.
다시 학교 본관 건물 앞으로 내려와 보니 강산이가 없습니다.
놀이터에도 없습니다.
동생 차는 본관 옆에 세워져 있는데 교회 차를 타는 곳으로 갔나봅니다.
학교 안에서 허둥대는 제 모습이 너무 싫습니다.
강산이는 교회 차가 늘 서는 곳, 신도시 건설을 위해 길게 쳐놓은 흰 철제 담장 밑에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아있습니다.
선생님 드릴 도시락은 자기 바로 옆 땅바닥에 놓고 배낭을 그대로 메고 있는 강산이를 보니 또 속상합니다.

집에 돌아와 하다 말고 간 청소를 계속합니다.
강산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요.
강산이도 무척 속상할텐데....
강산이도 아무 말없이 집에서 입는 옷을 옷장에서 꺼내 갈아입고는 나가버립니다.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그런 건가?
그럼 따라간 아빠는 뭐 한거야.
내가 안갔다고 아이한테 짜증낸거야?
강산이가 특별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학교 행사 때마다 꼭 부모가 챙겨야 하는거야?
언제까지.
선생님은 뭐하고?
그리고 그 엄마는 무슨 자격으로 전화한거지?’
하지만 이런 물음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압니다.
강산이가 고집 부린 이유를 저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모두 최선을 다한 거야.’
생각을 바꾸어 봅니다.
이번 일은 강산이처럼 특별한 아이를 이 지역 사회와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얼마큼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보게 해주었다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맘이 들 때 얼른 저에게 전화를 주었던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강산이를 위해 애써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해드릴 것은 없지만 즐거운 여행 되세요” 라고.

저녁기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강산이는 이 날도 참석합니다.
교우들이 왜 강산이가 여기 있냐고 묻습니다.
무슨 일인지 고집부려서 선생님들도 강산이를 당해내지 못하고 떠났노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 강산이가 수련 활동을 떠나지 않은 다음 날 아침, 도움반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냐고.
하지만 제게 전해지는 느낌은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으면 하는 행정적인 절차로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은 “아빠가 왜 야단은 쳐 가지고” 합니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지.
마음 속 그 놈이 비집고 올라올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전화를 끊고 거의 방 한 구석에 있는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한 시간 동안 눈감고 앉아있습니다.
호흡을 고르게 해보려 합니다.
방에서 나올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무슨 전화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 때다’ 싶어 감정은 있는대로 누르고 “당신이 강산이 야단쳤어?”로 답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교장은 그렇게 말하는거야? 책임회피 하는거야 뭐야 도대체....”
제 말을 듣던 남편은 “당신은 다 정리된 게 아니네” 합니다.
나름대로는 판단하려는 마음을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말을 듣는 순간 찬 물을 확 끼얹는 기분입니다.
아마도 겨우 겨우 참고 있던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을 남편에게는 마음대로 털어놓기도 하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화되지 않은 속마음을 내놓으면 남편에게도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데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요.
다시 제 속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봅니다.
‘맞는 말이잖아.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조금만 더 말을 아끼고 있는 그대로 보자.’



이 날 저녁기도회도 은비, 광호 그리고 강산이가 어김없이 함께 합니다.
목사님은 오늘은 자기 아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하십니다.
저는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강산이 뒤로 가서 등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님, 우리 강산이가 하나님 사랑하는 맘이 날로 자라고 커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도 하나님 사랑의 빛이되고 영광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 강산이에게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주세요....” 하는데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아버지, 아버지” 소리지르며 눈물로 하소연합니다.
어느새 15 살이 되어 넓어진 등에 얼굴을 대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강산이는 엄마가 기댈 수 있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강산이가 수련 활동에 가지 않은 것은 저녁기도회에서 그 만큼 간절히 기도하라고, 그리고 내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으로 여기라고 망월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도 비슷한 마음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엠마오를 통해 주신 은혜가 제 영혼을 깨어있도록 붙잡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저를 가만히 바라보니 의식은 확장되고 있으며 영적 능력이 깊어져간다고 더욱 믿게 됩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저보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제 안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 싸우는 것도, 누구의 손을 들어 승리하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그런 저를 맑고 평온한 눈동자로 지켜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6-19)

5/29/2008

04/17/2007 - 즐거운 대화 두 가지


아침에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학교에 보내고 나면 엄마로서 하루를 잘 시작한 것 같아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남편까지 교회로 가는 날은 아침 시간이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습니다.
서둘러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불려놓고 청소기를 돌려도 9시가 넘지 않습니다.

아! 이 짧은 아침의 여유로움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넓은 창문으로 봄볕이라도 부드럽게 내리비치는 날이라면 이 나른한 행복은 곱절이 됩니다.
아주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런 날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제 월요일 아침도 물 흐르듯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교우들과 강화 고려산 진달래 보기 위해 등산하고도 가뿐하게 새벽기도와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도 하고, 강윤이는 먼저 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도 스스로 이 닦고 세수하고 가방을 챙기고 있습니다.
요즘 강산이는 그 날의 요일도 알고 그에 맞게 시간표대로 책을 챙기기도 합니다.
"오늘은 월요일, 6교시."
학교에서 요일을 배우는 것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강산이가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강산이가 늦으면 교회차를 함께 타고 가는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게 될 테니까요.
"강산아, 엄마가 가방 마저 챙길 테니까 가서 옷 입어."
"싫어!"
다그친다고 행동이 빨라질 까닭이 없기에 강산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동생 방에 갔다 오더니 제 눈치를 살살 살핍니다.
왜 그러나 봤더니 강윤이 카드를 찾아와서는 자기 카드하고 합쳐서 가방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가 자기 물건에 손대는 것을 무척 싫어할 뿐만 아니라 싫은 소리를 저와 형에게 잘 때까지 할 것이 분명하기에 강산이를 막아야만 했습니다.

“강산, 안돼! 강윤이가 만지지 말랬잖아. 이리 줘.”
강산이는 카드 든 손을 뒤로 뺍니다.
‘가져가면 다 잃어버리고 오면서. 선생님이 학교에 가져오지 말랬잖아’는 입 속으로 꾹 삼키고는 “얼른!!!”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몸까지 뒤로 돌리며 카드를 꼭 가져갈 태세입니다.
시계를 보니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 벌써 지났습니다.
강윤이 카드를 과감하게 빼앗아 제자리에 갔다 놓고 와보니 강산이는 방에 주저앉아 “안 가!” 합니다.

강산이의 등,하교를 돕는 것은 남편의 몫입니다.
귀찮기도 하련만 남편은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빠요 고마운 남편입니다.
그런 줄 알지만 이 시간까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남편도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늦은 줄 알면 좀 참고 갔다 오든지 아니면 빨리 일을 마치고 나오든지....
생리적인 것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침에 화장실에서 책보며 긴 시간 앉아있는 습관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인지....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기에 나 몰라라 하고는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합니다.
“강산아, 왜 그래? 얘, 왜 그러는 거야?”
볼멘소리로 대충 설명을 해 주고는 이번엔 제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안에서 들어보니 어르고 달래고, 결국은 큰소리로 야단치는 것 아니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믿음의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이루어주실 줄 믿고 마음을 집중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강산이가 지금 상황을 끝내고 곧 학교에 갈 것을 믿습니다. 기쁘게 집을 나설 것을 믿습니다. 그리 되도록 도우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장실을 나와 보니 자기 방에서 거실까지 카드를 휙 던져놓고 울고 있습니다.
“강산아, 이따가 학교 6교시 끝나고 방과 후 그림 그리고 아빠 만날 때, 아빠가 강산이 카드 사준대. 다운문방구에서 떡볶이하고 카드하고 다 사준대. 이거 안 가져가도 돼. 알았지?”
남편과 의논해서 한 말도 아닙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오늘 강산이가 해야 할 일을 몽땅 싸잡아 카드 사는 것에 디밀어버리는 말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제 스스로 카드 사준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카드가 아무 유익이 없으며 그래서 그런 것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드를 사주겠다고 말하다니...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제 생각과 삶에 뭔가 변화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더 확증해 나가려 합니다.
신기하게도 강산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옷을 입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된 녀석이 카드 때문에 그 잘난 카드 때문에 울다니, 눈물을 닦아주며 한 번 더 상기시켜줍니다.
“강산아, 이따 그림 다 그리고 집에 올 때 아빠보고 카드 꼭 사주세요 해?”


강산이가 신발을 신고 일어섭니다.
그러더니 강윤이 신발을 냅다 걷어찹니다.
“바--보.”
이제는 카드를 뺏은 엄마가 미운 것이 아니라 강윤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잘 갔다 와.”
강산이는 얼굴을 돌려 씩 웃더니 집을 나섭니다.
"Oh, Jesus thank you!"

좀 더 좋은 엄마이려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강산이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지요.
“강산이가 카드를 학교에 갖고 가고 싶었구나. 이 카드 가져가서 어떻게 하려는 거야?”
대답을 하지 않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이면 강산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을 생각해서 다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친구들하고 놀려구? 누구하고 약속했어? 그냥 가져가고 싶어? 가지고만 있을 거야?”
강산이와 원활한 의사소통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읽어주려고 할 때 강산이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강산이는 소정 엄마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엊그제 주일에 고려산 갔다가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강산이가 좋아하는 소정 엄마와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강산이가 태어나서 그렇게 긴 시간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어찌나 수다스럽고 웃기던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니까요.

오늘은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합니다.
장애우 가족이 아닌 학부모가 장애체험 도우미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도움반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정 엄마와 고은미 집사님을 추천했고 두 분은 흔쾌히 “그러마” 하셨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강산이가 소정 엄마를 만나면 좋아라 할 것을 생각하니 저도 좋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남편이 강산이 하교를 저한테 맡기고 외출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강산이를 데리러 가기까지 남은 한 시간여 동안 이 글을 마무리해서 홈피에 올려야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강산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는 교회차를 보고 반가워하며 올라탑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학교~ 밥 먹었다. 그리고(정확한 발음으로) 소정 엄마 봤다!"
소정 엄마와 고 집사님의 봉사가 다 끝났으면 함께 집에 오려고 전화를 해봤더니 뒷정리가 한참 남았다고 합니다.
힘든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아주 바쁜듯 했습니다.

5/28/2008

05/04/2005 - 봄 운동회에서 생긴 일

어제는 강산이와 강윤이가 다니는 마송초등학교 봄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소풍만큼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석 주 동안 무용과 경기 연습을 하느라 검어진 강윤이 얼굴을 볼 때마다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네번째인 강산이는 그 동안 무용을 제대로 해내서 이번에도 잘 하리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무용은 3, 4학년이 함께 한다고 하여 강윤이를 통해 형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강산이는 준비물에 대한 전달이 되지 않아 이리저리 알아보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무용 준비물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강윤이와 똑같이 준비하면 되니까요.

이 곳 운동회에서는 부지런해야합니다.
그늘지고 아이들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으려면 말입니다.
집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우리는 넓은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옆집 엄마가 아이들과 8시30분쯤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보니 좋은(?) 자리는 새벽 6,7시부터 돗자리가 깔려 있었답니다.
저는 그 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해보니 엄마와 집사님들도 그런대로 괜찮은 운동장이 잘 보이는 관중석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점심으로 준비한 밥과 돼지불고기를 바쁘게 내려놓는데 옆을 흘깃보니 강산이가 앉아있었습니다.
"어, 너 왜 여기 있어? 너네 반 자리로 가야지!"가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4학년 경기 하나가 있었는데 할머니 옆에만 있으려고 해서 특수학급 최선생님이 달래고 엄마가 협박을 해서 겨우 경기에 참여시켰다는 것입니다.
"너 저기 안가면 할머니 집에 못올줄 알어. 정말 안가? 집에 가서 아주 혼날줄 알어. 얼른 가!"
고강도(高强度) 으름장이 있었다고 엄마가 알려줍니다.

순서지를 보니 곧 4학년 단체 경기가 있을 것 같아 강산이를 슬슬 구슬리고 있는데 마침 최선생님이 오셨습니다.
4학년 아이들이 경기 준비를 위해 운동장 뒤쪽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동시에 보였습니다.

"야, 얼른 가자. 강산이 하는 거 할머니랑 엄마한테 보여드리자. 강산이 연습 많이 했지? 강산이 잘 하잖아...."
"강산이 저기 안가면 핏자 못먹어! 조금 있으면 점심 먹을건데. 고기도 있다."
"가 하구 와. 강산이 하는 것 좀 보자!"
최선생님과 저, 집사님들까지 강산이를 움직일만한 말을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한참을 들은 척도 안하고 있더니 어찌 어찌 해서 겨우 운동장으로 내려가 최선생님과 함께 자기 반 줄로 갑니다.
"휴~"

한숨을 돌리며 강산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자, 와 줬지!' 하듯이 몸을 돌려 혼자 다시 돌아옵니다.
강산이가 관중석 우리 자리로 올라오기 전에 얼른 내려갑니다.
말로는 되지 않을듯 싶어 강산이 뒤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밀어봅니다.
그런데 "이잉~"하면서 무거운 몸을 뒤흔들어 내 손을 빠져나와 축구 골대 앞에 앉아버리고 맙니다.
'뒤에는 관람석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하긴 우리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겠지.'
뒤엣 시선은 애써 외면하고 강산이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흙만 만지작 만지작.
최선생님도 다시 오셔서 강산이 옆에 앉으셨습니다.

"선생님, 강산이 그냥 여기 있으면 안될까요?"
"안돼요. 그러면 다른 것도 다 안하려고 할 것 아네요. 안돼요 가야 돼요."

강산이는 땅바닥에 '김강윤 김강윤'을 썼다 지웠다 합니다.
이럴 때 왠 김강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은주 바보'를 썼다 지웠다 하며 혼자 웃습니다.

도대체 강산이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땅에 무언가 쓰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웃었겠지'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담임 선생님을 따라 자기 반으로 가서 섭니다.
강산이가 경기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최선생님은 강산이 바로 뒤에 서 계셨습니다.

그래도 경기는 못했습니다.
자리에서 안 일어나서.
답답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3,4학년 무용시간.

강산이가 또 안한다고 할까봐 얼른 달려가서 무용할 때 껴야되는 흰장갑을 꺼내옵니다.
동기유발이 될까 싶어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와 율동을 좋아하는 강산이는 장갑을 선뜻 받아들더니 자기 줄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아이들과 장난을 칩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20 여분 가까운 시간을 엄마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아이들과 어울립니다.


이때다 싶어 강윤이를 찾아봅니다.
어찌 내 아이는 그리 빨리도 눈에 띄는지요.
마침 강윤이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시길래 강윤이와 함께 사진도 찰칵.
"잘해. 이따 엄마가 강윤이 무용하는 거 사진 찍어줄게."
그리고는 또 강산이를 찾습니다.
기대했던대로 강산이는 즐겁게 무용을 잘했습니다.
아이들 속에 어울려 한껏 웃으면서.

강윤이에게로 달려가 무용 동작이 바뀔 때마다 셔터를 눌러댑니다.
제 할 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이 아들이 있어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 강산이에게 모아지고,형은 못해도 괜찮은데 자기에게는 늘 잘하라고 하는 것이 불만스러운 강윤이.
그래서 마음과는 달리 비뚤어진 말을 해대는 강윤이.
엄마는 이 아들이 자랑스럽고 든든한대 아직 강윤이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점심 시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많습니다.
점심도 그렇습니다.

그 때 제가 살던 곳에는패스트 푸드 파는 가게도 없었거니와 집집마다 최고로 맛난 반찬을 자랑하듯 도시락을 싸 왔습니다.
한술 더 떠 고향이 강화인 집사님은 가마솥 걸어놓고 동네 잔치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핏자와 치킨, 밥과 과일을 준비해 먹고 싶은대로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식사 준비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 시간이 끝나자 바로 5,6학년 여자 아이들의 고전무용이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색의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드라마 대장금 시그널 음악에 맞추어 운동장으로 들어옵니다.
단아하게 인사를 하고 무용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집사님들과 함께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무용 배경 음악은 '아리랑 목동'.
어찌 빠르고 경쾌하던지 고전 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산이와 강윤이는 모두 백군인데 올 해는 어찌되 일인지 백군이 영 시원치않습니다.
경기마다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학부모 줄다리기와 남자 이이들 청백계주만 남겨 놓았습니다.
이 두 경기만 이기면 점수를 뒤집을 수도 있는데...

"학부모 줄다리기에 참가할 분은 모이라"고 방송을 합니다.
저는 나가지도 않으면서 힘 좀 쓸 것 같은 이웃 엄마에게 나가서 백군에 힘 좀 보태라고 떠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선생님이 어느새 오셔서 "강산이 엄마, 종남이 엄마, 얼른 나가세요. 얼른" 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까지 일부러 오셔서 나가라고 하시는 선생님 마음을 몇 초간 헤아려봅니다.
아마도 특수학급 학부모도 학교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또 그런 엄마들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일꺼라고 넘겨짚어 봅니다.

이왕 나가는거 이기면 아들들도 좋아할 것이기에 못이기는 척 나섭니다.


이겨보리라는 마음에 "으쌰!" "영차!" 소리를 내질러봅니다.
세 판 했는데 백군이 또 졌습니다.
마지막 경기 계주에 기대를 걸고 힘껏 응원했는데 이상하게(??) 또 졌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정리체조에 이어 교장선생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흐느적 거리나! 차렷. 열중 쉬어.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경기에 임한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박수!'"
"운동회를 위해 지도하시고 지금까지 수고하신 선생님을 위해 박수!"
"우리를 지켜봐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을 위해 박수!"
초여름 같은 날씨에 조금은 지친 아이들 박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치는듯 마는듯 합니다.

"이상 끝!"
교장 선생님의 짧은 말씀에 모두 환한 얼굴로 "새로 오신 분"이라는 둥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짐들을 정리하고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아직 고촌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출발하지 않고 있다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침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되살아나며 남편을 향한 심술궂은 짜증이 되어 몰려옵니다.

한쪽 구석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바라보니 학교 안은 빨리빨리 정리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선생님들도 거의 사라지고 운동장은 휑하니 비었습니다.

엄마는 "오늘 몇 시간 바라보니 알겠다. 강산이에 대해 욕심내지 말자구. 학교나 오고가면 다행이지" 하십니다.
욕심이라...

강산이는 학교라는 제도적인 울타리와 선생님의 책임 아래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론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살아야 할 더 넓고 험한 세상이 있는데 단체 생활을 위한 작은 규칙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은 게 제 심정입니다.
그런데 욕심이라니, 차라리 욕심이나 맘껏 부려보았다면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지만 자꾸 더 답답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강산이는 엄마가 씻기겠다며 데리고 가셨습니다.
다음 날 상품을 타기 때문에 손등에 찍힌 달리기 2등 도장이 지워지면 안된다고, 머리감기 싫다고 소리지르는 강윤이를 달래서 깨끗이 씻겼습니다.

학교에 가지고 갔던 그릇을 닦고 흙묻은 옷들을 세탁기에 돌립니다.
다 치우고 나면 내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리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