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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2023

징검다리

 



앨라배마주에 있는 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정식 교과과정으로 채택하고 학점을 주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데 이바지한 단체가 있는데, 바로 에이킵(A-KEEP: Alabama-Korea Education and Economic Partnership)이다. 에이킵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공립학교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에이킵과 다른 일로 관계를 맺었는데 어느 날, 에이킵의 한 대표님은 내가 지난날 한국학교에서 가르친 경험과 책 한 권을 쓴 걸 경력으로 인정하셨는지 한국어 교사를 제안하셨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라 영어 실력이 어눌해서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대표님은 한국어를 90%, 영어를 10%만 사용하는 것이 한국어 교실 규칙이라며 잘 할 수 있다고 마구 격려해주셨다. 언젠가 이민 1.5세나 2세 한인 학생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에서 미국 학생 한 명을 같이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영어를 더 잘하면 좋겠다 싶었던 아쉬운 기억이 떠올라 그 규칙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색다른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대표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몽고메리에 있는 한 매그넛 중학교 방과후 클럽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매그넛 학교는 학업의 질을 높이고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뽑는다. 그리고 클럽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니, 이런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맡은 학생들을 가늠해보자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아이들이다. 실제로도 지난 학기에 그들은 수업에 집중했고 대체로 성실하게 출석했다.

지난 가을,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한국어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알아야 했다(에이킵은 현재 한국어 표준 교과과정을 만드는 중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그중 몇 명은 초등학교나 여름 캠프에서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었고,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대부분은 한국 문화와 언어에 관한 관심이었다. 더 나아가 나이가 들어 한국으로 이사하고 싶다, 한국인 친구와 대화하고 싶다, 한국으로 유학 가고 싶다, 는 눈에 띄는 이유도 있었다. 

케이푸드(K-Food)를 못 먹어본 아이들이 많았지만, 한국에 가면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응답이 꽤 있었다. 케이팝(K-Pop)이나 케이드라마(K-Drama)를 듣거나 시청한 아이들은 거의 다였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블랙 핑크의 노래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적은 것을 보고 아이들이 나보다 최근 유행하는 한국 노래나 드라마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서울(서울 타워, 명동), 제주도, 부산을 언급한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는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를 시청한 적은 있으나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기준으로 삼아 가르치고 있다.

올 봄학기 첫 수업 시간, 몇 년 동안 비닐에 싸여 옷장에 고이 걸려 있던 내 한복을 꺼냈다. 몇 안 되는 남자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들의 생활한복을 챙겼다. 아이들에게 설날을 소개하기 위한 준비물 중 하나였다. 떡국이나 연날리기는 사진으로 보여주더라도 세배할 때 입는 한복을 직접 입어보면 설날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복'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뿐 아니라 모두가 한복을 입어보길 원했고 한복 입은 모습을 서로 사진 찍어주며 즐거워했다. 지난 학기에는 추석 명절이 끼어 있어서 제기차기, 투호, 강강술래 놋다리밟기를 체험하도록 도왔다. 한국 음식을 소개하면서는 떡볶이와 김치를 가져가 직접 맛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매워요'라는 맛 표현을 확실히 익히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수업의 모든 내용을 한국어로만 하다가 클럽은 흥미로워야 할 것 같아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이 한국어 배운 것을 쉽게 잊어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어려움을 잘 알기에 그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아이들이 서툴더라도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면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에 놀라고 한편으로는 흐뭇하기 그지없다. 


이 중학교에서는 한국어 정규과정이 새학년을 시작하는 올 가을학기에 열릴 수도 있다. 아이들이 정규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그들을 위해 징검다리를 놓아주려 한다. 내가 마련한 징검다리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딛고 지나가면 좋겠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5/23/2021

덴마크의 '훌륭한 교사'들에게서 배우다


삶을 위한 수업인터뷰 · 글 마르쿠스 베른센기획 · 편역 오연호오마이북, 2020.


수학 공부를 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동기 부여를 하고 고등학교 수학을 어려워하면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를 내주어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교사, 학습의욕이 떨어진 학생에게 잠을 충분히 자고 흥미 있는 일을 해보라고 조언하는 교사, 다른 나라나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어울려 21세기에 맞이한 도전들을 담대하게 풀어가도록 세계시민의식을 길러주는 교사···. 이들은 '행복지수 세계 1' 덴마크의 '훌륭한 교사'들이 가르치는 모습이다.

든든한 신앙은 교회와 가정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삶을 위한 수업에서 훌륭한 교육은 학교와 가정의 연계를 말하고 있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엇보다 훌륭한 교사들의 교육 철학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후딱 읽어버렸다.

올해 3월부터 우리 교회는 세대통합 예배를 드리고 있다. 감사하고 미안하게도 미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확대되고 확진자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현장 예배에 나오는 교인들이 점차 늘어난다. 지난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현장 예배를 지킨 몇몇 교인들과 때때로 예배에 참여한 교인들은 부서별로 나누어 예배드릴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예배드렸다. 이 흐름을 이어가면서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세대통합 예배로 전환하였다.

연령대로 나눠진 예배는 또래끼리의 공감이나 전도에 유익한 장점이 있다. 반면 신앙 교육을 교회학교에 일임하고 부모의 역할이 약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사실 남편 목사는 2, 3년 전부터 세대통합 예배를 드리고 아동부 교육 방법을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있었다. 성경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할 책임을 말한다. 자녀는 부모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온전히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성품을 알아가고, 이것이 곧 믿음의 유산, 이라고 남편은 강조해왔다. 그러자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며, 생활에 적용하면서 믿음을 키워가는 신앙 훈련이 더 유익함이 분명하다.

삶을 위한 수업에서 말하는 '훌륭한 교사'들이 가진 태도는 학교에서뿐 아니라 가정이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들을만하다. 교사들이 지식을 나누기에 앞서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긍정적인 경험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배려하고(45), 세계시민으로서 가난한 나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 동정이나 한 번의 실천으로 끝나지 않고 국제적 관점을 견지하며(125), 배움에 어려움이 있어 특별한 배려를 받더라도 매일 교실에 나와 개인과 교실 공동체의 균형을 잡아주는(176) 등등.

삶을 위한 수업마지막 장에는 비영리단체 '현실 속의 학교'를 소개한다. 이 단체는 2000여 명의 현장 전문가를 확보하고 학생들에게 학교 밖의 실제 삶과 연결하도록 돕는다. 현장에 나가면 학생들 사이에 갈등은 줄고 서로 협력하며 교실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능력이 발휘되는 결과를 보였다. 이 단체는 지방정부가 주는 "국가혁신상"을 받았단다.

교회도 이런 혁신이 더욱 요구되는 때에 놓여 있다. 교인의 관심과 은사에 따라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일이 사회에서도 그 은사가 발휘되도록 구체적인 길을 열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이 기증한 땅을 수련회 장소로 가꾸는 일과 그동안 임대해 사용하던 미국교회가 매매 의사를 보여 건물 매입을 결정하였다. 우리 교회에 은혜로 주어진 이 기회가 신령한 통합예배와 건강한 선교로 나아가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혁신과 통합의 태도가 독후감을 쓰는 이 시점에는 꽤 유익하게 다가왔다. 감사한 5월이다.


*이 글은 모바일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9/08/2014

한국학교에서 배우기




한인 이민자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학교가 개강을 했다. 지난 학기에 임시 교사로 몇 주 참여한 것이 기회가 되어 이번 학기에 초등학교 3, 4 학년이 된 아이들이 있는 한 반을 맡게 되었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특별히 높아 보였다.

학교가 개강하는 날 부모님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우리 반 학생들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다. 그러던 중 손주들을 한국학교에 보낸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큰 아이는 한글을 읽는데 똑같은 기간을 배운 동생은 왜 아직도 읽지를 못하냐며 호통을 치셨다. 나는 할머니의 큰 손주를 맡게 되어 전화 드린 것이라 동생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와의 통화가 시원치 않으셨는지 오리엔테이션에 오셔서 교장을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영어권이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인데, 오히려 할머니께서는 손주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데 아주 열정적이신 듯했다. 이분은 선생님들 사이에 무서운 할머니로 불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학교가 시작하는 날 진짜로 찾아오셨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서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작은 아이를 한국어 수준이 높은 반에 넣기를 원하셨고, 교장 선생님은 결국 큰 아이와 동생을 같은 반으로 배정하셨다. 둘 다 나의 반이 된 것이다. 한 학기 혹은 한 학년이 지나 동생이 글을 읽지 못하면 난 할머니께 혼나게 생겼다.

우리 반의 또 다른 아이는 3 학년인데 세 살부터 한국학교를 꾸준히 다니고 있단다. 또 다른 두 아이의 아버지들은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학교를 열심히 돕고 계신다. 한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은 잘 하지만 잊지 않고 더 잘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어느 아버님은 숙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학기 시작하는 첫날에 말이다. 다른 지역 한국학교에서도 가르쳐 봤지만 숙제를 내줬는지 물어본 학부모님은 처음이었다. 한 학기 학습 계획을 만들면서 숙제를 내주어야겠다고 이미 마음 먹고 있었다. 그래도 첫날부터는 아니였는데…… 아이들은 숙제 있다고 하면 엄청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난 마음을 정했다. 학교 행사가 있어서 수업이 없어도 숙제는 빠트리지 않고 꼭 내주는 걸로!

또 이곳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 이외의 많은 시간을 한국학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인 이민자가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수백 명씩 모이는 한국학교가 여럿 있다. 주로 한인회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이다. 규모가 큰 학교는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과 재정이 넉넉해서, 운영을 책임지는 선생님들과 특별활동 선생님들이 따로 있고 교사들은 보통 자기 반 수업만 충실히 준비하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인 인구가 4,000 명쯤 되는 곳으로, 한인회 아래에 한국학교가 하나 있다. 30 명 안팎쯤 되는 학생들과 너덧 명의 선생님들이 작은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생 수가 많든 적든 한국학교는 한국어,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 보니 이곳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교 운영, 수업, 특별활동 등등을 거의 같이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선생님들과 사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그들이 학교를 위해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한국학교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난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시간과 선생으로써의 능력을 기꺼이 나누며 봉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그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선생님들에게는 지치지 않는 봉사의 마음과 가르치는데 필요한 지혜를, 학생들에게는 한국어를 잘 깨달아 배워갈 수 있는 지혜를, 학교 생활이 즐겁고 안전하기를,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넉넉히 채워지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마음을 나누면 될까?

7/30/2010

여름 캠프가 끝났어요


아이들이 참여했던 여름 캠프가 끝났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관한 여름 캠프에 참여했던 한국에서 온 조카들이나 저희 아이나 재미 있었던 모양입니다.
캠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수업 시간이나 매주 바뀌는 특별활동, 현장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주었던 걸 보면 두루두루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완전 제 생각인데, 조카들에게는 여기 생활 모두가 새롭고, 공부에 대한 무게감도 덜 하고, 매주 다른 곳으로 현장 학습도 가니 지루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때는 교회 가서 별로 말이 없던 저희 아이도 올 캠프에서는 수다스러울 정도였나 봅니다.
사촌 동생들이 곁에 있으니 힘을 얻어 좀 더 적극적으로 캠프에 참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주에는 2박3일 캠핑을 다녀 오고, 워터 파크에 가서 하루 종일 놀아 아이들 얼굴이 햇빛에 많이 탔습니다.
가만 보니 몸이 피곤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갈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캠프가 마무리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살짝 표시하기도 하면서요.

조카들이 일기 쓴 것을 확인 받으려고 가지고 내려 왔습니다.
다른 때는 날짜만 보고 일기 썼는지 확인을 하는데, 오늘은 얼른 내용을 훑어보았습니다.
캠프에 대한 제 생각과 조카의 생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카들 가운데 글쓴이의 허락을 받고(!) 일기를 올립니다.

12/12/2008

저는 어미입니다


사람들은 가정, 직장, 교회, 친구, 동호회 따위에서 그 역할에 맞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여성학, 여성신학, 여성해방에 관심이 있을 때는 그리고 결혼해서도 한참 동안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이기보다 의식적으로 제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팔,구년 전쯤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읽을 즈음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을 읽는 동안 내가 목사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이고 교회에서 사모인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축복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상담에서 사용하는 "통합(integration)"의 과정이라고 쳐주신다면 제가 그 언저리쯤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강산이가 흥얼흥얼 찬양을 합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 주를 찬양하리
햇빛 찬란한 낮에 주를 찬양하리
별빛 반짝일 때에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도 주를 나 찬양하리라”
한국에서 할머니들 오시면 불러드리겠답니다.

오늘은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도 꿈지럭대더니 결국은 스쿨버스를 놓쳤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먼저 가라 했더니 “~bring him" 뭐라고 합니다.
나보고 데리고 오겠냐고 하는 것 같아 “그러겠다”고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버스가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텐데 강산이 방에 가보니 부시럭 부시럭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른 척하고 “너 오늘 학교 안가지?” 하고는 켜있던 전등을 다 껐습니다.
그런데 계속 소리가 들리는걸 보면 먹고 씻고 입고 있나 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 차고로 나가는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 날까 싶어 얼른 뒤따라 내려가며 ‘이걸 그냥.... 아까 버스 기사한테 대답만 안했으면...’ 해봅니다.

아침 나절, 블로그에 올릴 글 끄적거리는 걸 일찍 마치고 싶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결국은 관두고 말았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된 아들 녀석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녀석 애기가 빠지면 이제는 글을 쓰는 것도, 저를 설명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회화 수업(Conversation Class)에서 간단한 시험을 본다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른 질문을 하고 그걸로 대화를 이어가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우리 아이들이 잘 다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물론 버벅 버벅...
그랬더니 질문을 바꿔서 “네 형제 자매가 있느냐? 그들과 싸운 적이 없느냐?”합니다.
뭐 싸운 기억이 별로 없어서 “내 동생들은 착하다” 그랬습니다.
그러자 “네 아이들은 안 싸우냐?”고 또 묻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예스” 하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 아들이 장애가 있는데...”
여기까지 대답하니까 이 사실을 아는 선생님은 얼른 말을 받아 “그 아이는 상냥하고(sweet) 그래서..."합니다.
저는 “맞다(sure)" 하고 대화 아닌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 수업 시간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긴장이 풀리면서 제 자신이 참 답답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은 몇 살이냐? 어떤 상황에서 잘 싸우냐?” 라고 다시 물어서 말을 이어가든지, 아니면 옆 친구가 눈치 주는 것처럼 “예스” 대답해 놓고 쉬운 말로 적당히 꾸며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융통성하고는 담 쌓고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제가 조금 특별한 강산이의 엄마가 분명합니다.
그걸 핑계로 저의 부족함이나 게으름을 이해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 삶이라는 것이죠!^^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강산이가 여느 때보다 한 시간이나 빠르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버스 시간을 새롭게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강산이는 들어오면서부터 제 눈치를 봅니다.
아침에 일어난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 한편 기분이 괜찮습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이 글을 계속 쓰고 있으려니까 옷 갈아입고 내려오며 “엄마한테 사과해야지~” 라며 혼잣말 하는 것이 들립니다.
학교에서 선물로 받은 지팡이 사탕과 브라우니라는 빵을 제 옆에 살짝 갖다놓으며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뭐라고 합니다.
저는 어디 다쳤나 싶어 “왜?” 그랬습니다.
강산이는 저의 손가락을 끌어다가 자기 새끼손가락으로 감싸 쥡니다.
“학교 일찍 안 돼.”
“학교 일찍 간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끄떡끄떡 합니다.
‘이 녀석아, 그 말이 그 말이야.’
강산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이 고마워 코끝이 시큰합니다.

이만큼 글을 쓰기까지-보기에는 몇 글자 되지 않아 보여도 저한테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강산이는 아직도 조용합니다.
“강산이 이리 와. 강산이 엄마하고 약속한 거 사진으로 찍어놔야겠어.”
“힝~”하고 오더니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내일 토요일 한국학교 갈 거야? 이건 뭐야?”
“강윤이는 크니까 좋겠다. 나도 크고 싶어.”
“학교 끝나고 할머니 오시면 공항 가?”하며 상황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줄줄이 합니다.
대충 대답을 해주었는데 엄마 마음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엄마 스마일~”합니다.
‘야, 이 녀석아, 너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계단 내려갈 때 화 다 풀렸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웃는 자가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다-메리 페티본 풀

11/21/2008

작은 승리의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으며


“강산아 스쿨버스 오고 있어.”
어디쯤 오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말입니다.
“시간 다 됐어. 이거 봐. 빨리 해야 돼.”
시간이 나오는 쪽을 보여주며 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서두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렇게 재촉을 할 때는 정말 스쿨버스 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강산이는 자기 리듬대로 움직입니다.
해뜨는 시간이 늦어져 새벽 어둠이 더욱 짙어서 그런지 강산이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더욱 어려워합니다.
밤에 늦어도 9시면 자도록 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이쯤 되면 제 속이 한번 홀딱 뒤집어집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스쿨버스를 꼭 타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접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태워다 주자.”
이 생각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쯤 학교에 못가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학교 못갔다고 강산이가 그걸로 자극을 받을지, 늦으면 아빠차 타고 가면 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있는지...

이런 긴장 속에서 강산이가 학교 가는 스쿨버스를 타고 나면 하루의 1/3은 성공한 듯이 여겨집니다.
길을 돌아 나가는 스쿨버스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선생님, 친구들, 버스 기사와 행복하고 유익한 하루되길 바라는 마음을 주님께 살짝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나면 날마다 시간을 지켜서 스쿨버스를 타는 이 경험들이 소중한 것이고 이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 조금 더 어렵고 큰일에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강윤이에게도 마찬가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자기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에 관심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도 배우고 있으며, 또 열심히 해서 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도 함께 연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숙제를 하려면 강윤이와 제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사전을 찾아가며 긴 시간을 써야했습니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아직도 한계가 있지만 엄마 공부하는 시간에 방해 되지 않으려고 숙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강윤이 모습도 흐뭇합니다.

이곳에서 자란 나무들은 키가 큽니다.
아마 햇빛이 잘 비춰주고 영양분이 많은 좋은 흙에 심겨져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그런데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나무가 잘 쓰러집니다.
짧은 제 생각에는 나무들이 굳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메마른 곳에 있는 나무들은 물을 찾아 땅 속으로 깊이깊이 뿌리를 내려야만 하고 키도 그리 크지 않지만 왠만한 비바람에도 든든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넉넉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살면서 어렵고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적당히 타협해서 문제를 덮는다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실망한다거나 목표가 너무 멀어 보여 포기한다면,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극복한 사람은, 그래서 승리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좀 더 강하고 안정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만나는 어려움을 대신 살아주는 부모가 아니라 그들이 언제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승리하는 경험을 쌓아가도록 도울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쓰임받는 리더가 되도록 도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신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신앙인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37:3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9/10/2008

value free


일주일째 한쪽 귀가 은근히 불편합니다.
다른 곳이 아프면 그런가 보다 할텐데 귀가 아프니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 귀는 팔년 전쯤 크게 치료한 경험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요즘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귀가 아픈 쪽 잇몸과 눈도 덩달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다가 증상이 확실히 드러나면 일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약을 먹든 병원을 가든 빨리 상황을 개선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주말에 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없다며 남편이 서두르는 바람에 지난주에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다른 데는 아무 이상이 없고 입 안에 피곤하거나 하면 생기는 궤양 때문에 다른 곳에 통증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진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입 안 상처를 치료하는 처방전도 받아왔습니다.

입 안에 생기는 상처쯤이야 수없이 겪어본 것이라 약이 굳이 필요할까 싶어 약을 사지 않고 주일을 넘겼습니다.
말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상처가 따끔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귀도 편안치가 않습니다.
결국은 어제 남편이 출근하면서 처방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귀만 아프지 않았으면 버틸 수 있었는데....’

어제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약값이 원래 이렇게 비싼거야?”
“얼만데?”
“44불이 넘어.”
“어 이상하다. 선생님이 4불쯤 할거라고 그랬는데. 벌써 계산했지?”
약국에 가서 다시 물어볼 처지도 아니고 처방전에 따라 준 약은 환불이 안될거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좋은 약을 쓰게 되었습니다.
잠자기 전 이를 닦고 튜브에 담긴 그 약을 짜내어 잇몸과 혀의 상처에 바르는 순간 마취가 되면서 통증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약을 또 발라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참 신기합니다.

이곳 병원비와 약값이 엄청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비단 그것 뿐만 아니라 한국 물건을 파는 마트에 가도 한국 가격보다 한배 반이나 두배 가량 비싼 것을 보게 됩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책 사는 즐거움도 접어두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쑥날쑥 할 때는 한국을 떠나올 때 선배 목사님이 말씀해 주신 “value free”가 기억납니다.
아마도 한국과 미국 살림살이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테니까요.

남편과 함께 코칭 세미나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사람의 의식과 능력이 발전하는 단계에 대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무의식 무능력 상태로 있다가(무의식/무능력),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나 아직은 무능력 상태로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타보겠다는 의식은 있는데 자전거를 운전할 줄 모르는 때입니다(의식/무능력).
의식한대로 연습을 열심히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의식/능력).
그러다 몸에 익숙해지면 자전거를 잘 타보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무의식/능력).

이곳 살림살이는 의식/무능력 상태이면서 동시에 의식/능력 단계로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바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자동으로 한국과 가격 비교가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아시고 한 말씀이겠거니 하면서 마음을 넉넉히 가져보아도 말입니다.
이제 반년쯤 지내고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뒤뚱뒤뚱 이곳 형편에 맞게 살림이 꾸려지는 듯도 합니다.

한편 살림이야 제게 주어진 고유한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 그렇다 쳐도 다른 일에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릴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능력을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인으로서 이곳에서 사는 것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가치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럴 때 해주실 무슨 말씀 없으세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9-14)

7/22/2008

함께 크는 집

책을 사면 이름을 써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다른 종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표지를 들추고 한두 장을 넘기면 제목, 지은이와 출판사가 찍힌 표지와 거의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 어딘가에 언제, 어디서, 왜 사게 되었는지 두어 줄로 쓰고 남편과 제 이름 혹은 저와 남편 이름을 적어 놓습니다.
아이들 책에는 형, 동생의 이름을 혹은 강윤이 이름만 남겨 놉니다.

어릴 적 엄마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과 세계백과사전을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대학 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 책들 가운데 하나를 무심코 폈는데 표지 안쪽에 책을 구입한 날짜와 저와 동생들, 세 남매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오늘에야 돌아보니 자녀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남겨 놓은 엄마의 흔적이 기분 좋았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부터 엄마를 따라 하게 되었고 책꽂이에 자리 잡고 있는 책 가운데 여러 책들에 저의 흔적을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오면서 가지고 있던 책을 거의 지인에게 주거나 재활용으로 버렸습니다.
끝까지 남은 책들은 최근에 관심있게 본 책, 목회에 필요한 교과서 같은 책,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영성(?)과 관련된 책, 그리고 한글과 한국 정서를 기억할 수 있는 아이들 책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아이들 책을 몇 권 꺼내어 열어보니 그 책들을 갖게 되었던 때가 확 살아납니다.
『짜장 짬뽕 탕수육』 “당당하게 살자” 2002.11.6(수) 강산.강윤
『조커-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엄마가 사주려고 했는데 강윤이가 고른 책” 2005.3.22
『리네아의 이야기3-신기한 식물일기』 강산.강윤 “언제 봐도 해맑은 리네아가 좋다” 2007.5.23
제가 뭘 이야기 하려고 책에다 남들도 많이 하는 싸인(sign) 얘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는지....


얼마 전 다시 읽게 된 책 안쪽을 열어보니 “*** 목사님의 저자 소개로 구입하다/2000.11” 라고 쓰여 있습니다.
개신교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의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라는 책입니다.
아마 그때는 십대를 바라보는 지은이의 관점이 궁금해서 그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읽고 나서 구체적인 내용 보다는 전체적으로 “그래, 맞아” 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12개의 작은 제목 하나하나에 대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강요하지 마세요” “왜 날 항상 못 믿으시는 거예요” “엄마 아빤 위선자예요”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

강윤이는 요즘 들어 부쩍 무엇인가를 제안하면 생각이 같거나 하고 싶은 것이어도 “아니” “싫어”가 먼저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조정이나 타협 없이 “마땅히” 해야 할 것들도 강윤이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개학하면 중학교에 가게 되는데 해야 할 방학 숙제가 딱 하나 있습니다.
학교에서 제안해준 6권의 책 가운데 하나를 읽고 독후감 같은 것을 자기소개와 함께 쓰는 것입니다.
강윤이는 처음부터 숙제를 하지 않겠답니다.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저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가을에 지은이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그 책을 사다 주었습니다.
185 페이지나 되는 영어 소설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표지에 있는 소개의 글이나 머릿글이라도 함께 읽고 숙제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강윤이는 초지일관입니다.

그렇다면 영어 공부 쪼끔 하느라 도서관에서 빌린 그림책들 가운데 생각나는 부분들을 옮겨보고, 한국에서 읽었던 그림책 가운데 영어로 된 책이 있어 그걸로 숙제를 대신해 보자 제안했습니다.
아직 강윤이에게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다.

강윤이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부모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통제하는 것이 많았다면 이제는 독특한 강윤이 자신이 되도록 허용할 부분이 커지나 봅니다. 통제와 허용의 경계가 어딘지 조금 혼란스럽지만 깨닫고 경험하게 되겠지요.
유진 피터슨은 “젊은 성인에게 아기가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청소년기 자녀는 중년의 성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면서 자칫 성장이 멈춰버린 중년의 부모가 자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와서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결국은 강윤이를 빌미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때문에 사람과 관계 맺는데 어려움 겪는 것을 보면서 또 그것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기도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Summer Camp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강윤이-더불어 가족들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제 간절한 소망 받아 주시길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Summer Camp 마지막인데 제 나름대로 정한 40일도 끝날 것 같습니다.
기도할 수 있도록 예민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사랑스러운 강윤이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깰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이 우리 강윤이를 엄청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요.
강윤이도 하나님 사랑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게 해주세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되게 해주세요.
강윤이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우리가 깨닫길 원합니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지혜도 주세요.
오늘 Summer Camp 즐거운 시간되게 함께 해주세요.
신실하고 정직하고 즐겁게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에 오래 전 남겨놓은 메모 위에 이렇게 덧붙여 놓았습니다.
“강산 15세, 강윤 12세-2008.7 아틀란타에서 두 번째 읽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2)

5/30/2008

09/19/2007 - 엠마오에 다녀와서


“SWE 15기 마리아 테이블 이은주 자매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아래에는 엠마오라 할게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마지막 멘트였습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과 친절로 늘 보살펴 주시는 목사님의 추천으로 엠마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고 싶은 사모님이 있으면 추천해 보라고 하셔서 서너명 알아보았더니 이미 경험을 했거나 전도사인데 사모가 아닌 친구이거나 시간이 없거나....
그래서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또 추천해 주신 목사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남편이 데려다 준다고 하여 엠마오가 열리는 감리회 교육훈련원인 일영연수원에 도착해 보니 1시간쯤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요즘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아내 이야기 1시간 들어주기가 있었는데 그 동안 저에게 이야기 듣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할 마음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숙제하듯이 들이대서 제가 얄밉게 거절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1시간의 여유를 확인하고서는 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엠마오에 오면서 평안, 행복 담을 넉넉한 마음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웃음 한번 웃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5년 단위로 끊어 25살까지 이야기를 엮다보니 45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시계를 보고 있었는지 그 다음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라고 합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얼굴 벌개지며 얘기하고 있는데 나중에 듣자고 하니 조금 맥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모임에 늦지않게 마음을 쓰고 있던 남편의 배려와 엠마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얼른 바꾸고는 배낭을 메고 연수원 건물 앞쪽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건물을 돌아서는 순간 그 낯설음이란....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건물을 따라 늘어놓은 의자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죽 앉아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 등록하는 곳까지 2,30미터 걸어가는 동안 아주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정된 방에다 가방을 두고 나와서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어찌나 서먹서먹 하던지요.
‘아, 이래서 같이 갈 사람 있느냐고 하신건가? 이 낯설음을 어쩌지? 건물 뒤편으로 다시 가있을까? 시간이 다된 것 같은데’ 하고 있는데 저쪽에 몇 번 뵈었던 목사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 영성훈련의 첫 번째 과제는 낯설음을 극복하기다.
아니 사람들과 친밀해지기다.’
그 목사님에게 다가가서 혹 나를 기억 못하실까 싶어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자 기억을 더듬어 알아보십니다.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시고 현재 장애우와 관련된 사역하고 계심도 차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장애우와 함께 하는 사역은 우리 부부의 꿈이기도 한데....
그래서 내 걸음이 목사님에게 끌린 것 같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강화에서 목회할 때 같은 지방에 계시던 목사님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사모님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아는 사이인지라 얼른 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엠마오 기간 동안 그 사모님을 뵐 수도 있다고 하시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제 수첩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 ‘적극적인 나’가 주는 기쁨 누리기”라고.

엠마오로 가는 길을 함께 갈 테이블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둘러보니 테이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여성 이름들로 되어 있고 마리아 이름도 있습니다.
얼마 전 여성회관에서 영어 회화 공부할 때 닉네임을 만들라고 하여 마리아로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리아” 하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어머니로서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며 한편으로는 성령으로 잉태되는데 기꺼이 응답한 당당한 여성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또 영어 회화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마리아가 얼마나 자주 나오던지 부르기 편한 이름인 것도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마리아에 마음이 끌리고 있는데 그 테이블에 속한 사람 가운데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날 묵상 시간에 마리아에 대한 본문을 읽어주실 때는 마치 저의 영혼을 깨우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첫째 날을 시작하여 시간 시간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사랑과 섬김이 이어졌고 엠마오 72시간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습니다.

엠마오를 마무리 하는 시간에는 아직도 주님께 저를 고스란히 내어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얼마나 울었던지 이번에는 울지 않고 웃으면서 은혜를 경험해 보자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동이 살짝 살짝 밀려왔지만 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습니다.(웃음 조금)
그러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완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든지 웃든지 은혜 주시는대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을 제 멋대로 은혜를 편집한 것입니다.
고집스런 제 모습을 또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고 다듬어 주시며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엠마오 여정이 끝날 무렵 15기 팀멤버들로부터 받은 메세지는 저를 설레이게 했습니다.
사랑으로 축복하는 메세지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앞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봐주신 목사님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후배로 기억해 주신 분과 오랜만에 만난 선배 부부의 따뜻한 격려에 제 가슴은 벌렁벌렁 했습니다.
영성훈련이라는 귀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요.
또 다른 사역의 비전을 보여주시는 것인지....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설레임은 쉽게 가라앉질 않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긴 호흡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히 그리고 남편과 협력하여 순종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