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2019

시시티브이(CCTV)가 말하다


<부활주일에>

교회 주차장에 시시티브이(CCTV)가 설치되었다. 얼마 전 나쁜 사람이 교회 주차장에 들어와 어느 교인의 자동차 창문을 깨고 가방을 훔쳐갔다. 예배 시간에 낯선 차량이 들어왔다 나가기도 하는 등 교회 안전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몇몇 교인들이 경비 서는 수고를 하다가 시시티브이를 단 것이다.

그것이 설치되고 다음 날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니 날씨가 좋았다. 다른 날처럼 주차장 가장자리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걷는 것도 녹화되나?
되겠지.

당연한 것을 물었나 보다.

나 이제 주차장에서 쓰레기 줍고 그런 거 안 할 것 같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편하게 그런 거 할 수 있는데,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주저하게 되던데 2 때 그 일 있잖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었다. 학교에 무슨 일이 있는지 그 날은 교실과 복도의 나무 바닥에 왁스칠을 해서 윤을 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전날 종례 시간에 헝겊 걸레나 스폰지를 꼭 가져오라고 당부하셨는데 그만 까먹고 말았다. 책상을 뒤로 옮기고 쓸고 다시 앞으로 옮기는 일은 열심히 했으나 그 다음으로 바닥 닦기는 어쩌나. 말수가 적었던 나는 다른 친구들이 떠는 수다를 들으며 그들 곁에 우두커니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담임이다!

누군가 담임선생님이 청소하는 것을 살피러 나타나셨음을 알렸다. 교실은 교무실과 가까웠다.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내고 교실까지 오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쯤.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오래된 교실 마루 바닥의 엉성한 틈새로 동전이 쏙 빠지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나처럼 왁스칠할 도구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은 다른 친구의 스폰지를 절반으로 잘라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바닥 닦는 시늉을 했다. 순발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나는 그냥 쪼그린 체로 그대로 굳었다. 게다가 하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청소하는 척하기도 싫었다. 순발력에 융통성도 없어 답답한 꼬락서니였겠지.

, 너 이리 와!

평소에도 신경질이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제대로 걸렸다. 선생님은 손인지 출석부인지로 내 머리를 때렸다. 머리를 맞은 것도 기분 나빴지만 청소 시간에 빈둥대거나 딴청 피운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깟 걸레질 좀 안하고 있었다고 혼을 내다니 서운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던 남편은 주차장 시시티브이 쓰레기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 얘기에 대해 주저함이 없이 대꾸했다.

교만해서 그래.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타내고 싶은.
…”

누구보다 내 성격이나 살아온 흔적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의 대답인지라 살짝 충격이 왔다. 선생님 말씀을 명심하지 않고 과제물을 챙겨오지 않은 일, 선생님께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것, 해도 될 일을 누가 보는 것 같다고 안 하려는 것 어느 지점이 교만한 지 되짚어 보았으나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 사고가 전환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그나마 살아온 세월이 있어 생각에 근육이 붙은 덕분이었다. 

그렇지 뭐. 남들이 보든 안 보든 무슨 상관이야. 해야 될 일이면 하는 거지.

침착한 척 말을 맺었다.

하루 종일 새벽에 있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욱 겸손하고 유연하여 옛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삶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답이 없다. 오로지 그 길은 지은 죄가 없으나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뿐.

4/17/2019

특별기도회가 특별한 이유


<교회에 있는 사철나무 꽃. 향기가 엄청나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21일 특별기도회를 하고 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기도회는 새벽과 아침 시간에 모인다. 여러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두 번의 기도 시간을 두었다. 각자 원하는 시간에 기도하고 있다.

난 평상시에 새벽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하던 대로 기도하면 되려니 했다. 그런데 남편인 목사님은 아침 기도회에도 참여하는 것이 좋겠단다. 어떤 일보다 교회 모임을 우선시하기로 마음먹고 있는 터라 목사님 말씀을 따랐다.

새벽 기도회는 특별기도회 기간이라도 나에겐 특별한 것은 별로 없다. 보통 때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가던 것을 접어두고 선포되는 말씀이 요한복음이라는 것만 빼고는 말이다. 기도는 여전히 읊조리듯 드리고. 그런데 아침 기도회는 새벽과 사뭇 다르다. 찬양도 여러 곡 부르고 기도도 소리를 내어 크게 기도한다. 새벽에는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거나 무엇인가 깨닫게 되기도 하고 깜빡 졸기도 한다면, 아침에는 생각을 말로 끄집어내어 기도하다 보니 정신이 희미해질 틈이 없다. 하루에 색다른 기도회에 두 번 참여하는 올해 사순절이 나에게 특별하긴 하다.

기도하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21일 기도회가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고 보니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느껴지는 간절한 마음이다.

우리 교회는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리적인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심히 살펴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도록 안내하시는 목사님이 두 분이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시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갈 젊은 에너지를 가진 삼, 사십 대 교우들이 많다. 재정은 자립 된다. 우리 교회 건물은 아니지만 거의 주인처럼 성공회 교회를 사용한다. 멀지 않은 날에 더욱 마음 편히 교회 건물을 사용하고 공간도 넓혀 가리라 기대하고 있다

교회 모임 때마다 여러 손길들이 커피와 차를 준비한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나눈다. 중장비를 끌고 와 주차장에 쌓인 토사를 치우고 교회 텃밭을 일구어 놓는다. 주일 예배를 위해 꽃으로 강단을 장식한다. 어떤 이들은 한 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미끄럼틀을 닦아내고, 어두운 아이들 예배실에 전등을 달아주고, 교회 주변 넓은 잔디를 깔끔하게 다듬어 놓는다. 안전한 환경을 위해 경비를 서기도 하고 CCTV도 설치한다. 주일 친교를 위해 많은 양의 점심을 만든다. 교사와 성가대의 부지런한 봉사도 빠뜨리면 안 된다. 그리고, 그리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수많은 헌신과 봉사가 교회에 가득하다

김포로 목회하러 갔을 때였다. 교회의 모든 상황은 바닥이었다. 남아 있는 교인 일곱 명만이 전부였다. 눈만 감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이 뜨겁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기도하는 자리에만 가면 교회를 위해 목놓아 부르짖었다. 살려주세요, 우리 교회 살려주세요. 기도하다 보면 머리통이 열기로 가득 차오르고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교회는 점점 회복되었다.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심도,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심도 모두 그 분의 뜻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 우리 교회는 객관적인 상황이 좋은 편인데 기도하면 또 눈물이 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교우들의 마음을 받아 주시고 그들을 기억해 달라는 호소가 자꾸 나온다.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나 보다. 가만 엿들어보니 남편의 간절함은 어떻게 해야 우리 믿음이 새로워지고 굳건할 수 있는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겐 너무 무거우나 거기에도 기도를 보태 본다. 교회를 위해 흘릴 눈물이 아직 남아 있음을 발견한 이 십자가와 부활의 절기가 특별하다

4/10/2019

우리들의 시간이 쌓여 가는 어느 봄날




주일 점심은 비빔밥. 교회 대청소를 하려면 힘을 써야 하는데 비빔밥은 꽤 든든한 한 끼였다.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변신을 한 교우들이 저마다 청소 도구를 들고 어딘가로 흩어졌다. 갈 곳을 못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는 나뿐인 것 같았다.

여성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방과 화장실 쪽에서 정리하고 쓸고 닦았다. 다른 화장실 쪽에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매달렸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일찌감치 끼지 못한 이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로 한 쪽으로 물러나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예배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비눗물을 풀어 친교실 바닥을 닦기도 했다. 여러 방들은 그저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 두서너 명이 들러 청소한 흔적을 남겼다.

건물 밖에서는 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전지가위의 철컥거리는 소리가 풀을 깎는 기계 소리에 묻혀버렸다. 짤린 풀과 마른 검불은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의 옷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열심히 일한 표시였다. 교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그늘진 작은 정원의 풀과 멋없이 길쭉하게 자라버린 장미 나무가 깔끔하게 이발을 했다. 올해 부활절 맞이 바깥 청소 절반의 완성!

또 다른 절반의 완성은 놀이터였다. 얼마간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지고 벌레와 개미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생겨서 놀이터를 벌레로부터 되찾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모아 잡초를 제거하고 벌레들을 물리치고 바닥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아동부 교사들의 바람대로 한 쪽에 모래 놀이터가 될 공간도 확보되었다. 일이 이 정도로 진척되었으니 다시 사용할 날이 멀지 않았다

가장 많은 인원이 놀이터 일을 도왔다. 따끈따끈한 햇볕 아래에서 하는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은 놀이터 쪽에 가서 잠시만 거들어도 얼굴이 벌개지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니 너덧 시간씩 일한 교인들의 수고가 짐작된다. 바깥일을 한 그들을 위해 팝씨클이며 김치전, 피자로 새참을 내준 이들도 있어 청소의 마무리가 넉넉한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부활절을 준비하는 일이니 몸은 힘들어도 뿌듯한 마음으로 헤어질 시간. 거의 돌아가고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남편은 고향에서 모내기 하다가 온 사람처럼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옷을 벗어 둔 담임목사실 쪽으로 가는 것 같더니 금방 돌아와서는 방문이 잠겼다는 것이었다. 따로 갖고 있는 열쇠는 없단다. 내 가방도 거기에 있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플라스틱 카드를 문틈으로 밀어 넣어 보기도 하고, 열쇠 구멍에 뾰족한 걸 넣어 돌려보기도 하고, 건물 밖 창문을 달싹여도 보았으나 그 방으로 들어갈 수가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려야 우리 세 식구가 갈 수 있으므로 남은 이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두 피곤한 상태일 텐데 그런데 묘하게 걱정이 안 되었다. 하다하다 안 열리면 남아 있는 누군가 우릴 재워주겠지, 그리고 다음 날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뭐, 하는 근거 없는 여유가 있었다.  

누군가는 잠긴 문고리와 씨름하며 땀을 또 흘렸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마치 자기 방문이 잠긴 것처럼 안타까워하며 문 여는데 도움이 될 듯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소용에 닿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교회 건물주인 성공회 교인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오후에 주일 예배를 드린다. 이제는 실내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햇빛이 엷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불고 있으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부드럽게 머물렀다. 정리된 화단 쪽에서는 베인 풀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돕던 교우들 몇이 끝까지 같이 있지 못해 미안하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 목사네와 김 장로님은 교회 건물 앞 돌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뿌리가 뻗으며 돌테이블을 밀어내 쓰러져 있던 것을 얼마 전 목사님 두 분이 바로잡아 놓았다. 삽으로 뿌리를 자르고 테이블 받침을 다시 흙 속에 묻어두었다. 하지만 어떤 테이블과 벤치는 아직도 삐뚜름하다.

교회 건물을 관리하는 어니스트가 온다고 하여 두서없는 얘기 보따리를 하나씩 끌러가며 기다렸다. 온다고 한 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한 어니스트는 100개도 넘어 보이는 열쇠 꾸러미와 공구가 들어 있을 법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몇 사람의 예상대로 그는 문을 열지 못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너무 웃겼다. 그래도 우리를 도와주러 온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김 장로님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와 관련 있는 열쇠공에게 이미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였다. 어니스트에게 먼저 기회를 준 것뿐이었다. 돌테이블에 둘러 앉아 가난한 사람들처럼 아무런 상차림도 없이 오로지 얘기만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쯤 더 기다려 장로님이 섭외한 사람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열쇠공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최후에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는 영업 비밀이라며 그 마지막 방법을 목사님들과 장로님에게 알려주었다. 어쨌든 문은 열렸고 장로님으로부터 수고비를 받아 휑하니 떠났다. 장로님도 그제서야 바쁘게 길을 나섰다.

아침 1부 예배부터 거의 열두 시간만에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마치 아늑한 봄날 오후에 의리로 뭉친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닥 피곤하지도 않았다. 교회 청소를 열심히 안 한 모양이다. 문이 어떻게 잠겼는지 모르지만 그 일로 인해 우리들의 시간이 돌테이블 위에 한 켜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