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한국학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한국학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9/28/2026

프로젝트 헤일메리



나는 영화나 드라마 보기를 좋아한다. 그 중 추리, 액션, 공상과학 장르에 특히 흥미를 갖는다. 올해 봄부터 공상과학 어드벤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재미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앤디 위어가 쓴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원작이고, 그 작가가 「마션」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션’은 영화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기대가 되었다.

한편, 인터스텔라나 인셉션 같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왠지 천체물리학이나 인지과학 분야의 지식이 있었다면 영화를 더 즐겼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순서를 바꿔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읽기로.

앤디 위어는 컴퓨터 공학도,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가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책으로 만난 위어의 작품은 과학적, 물리적 개연성이 뛰어나서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졌다. 또한 내 속도로 이야기를 이해할 시간을 얻는 장점도 있었다. 이 책에서 감명 깊었던 두 장면을 나누고 싶다. 앞으로 이 소설을 읽을 독자는 눈을 반쯤만 뜨고 읽어 주길.

하나는, 외계인과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긴 터널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외계인은 그들의 기술로 두 우주선 사이에 긴 터널을 만든다. 긴 터널에는 벽을 두어 그레이스와 외계인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한다. 외계인이 먼저, 다음은 그레이스가 반대편에서 벽을 두드린다. “똑, 똑, 똑.” 이 세 번의 노크가 이렇게 예의 바르고 배려가 느껴지는 소리일 줄이야. 그들의 노크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공명했다. 지구인과 외계인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조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레이스와 외계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알아본 것 같다. 의심보다는 탐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외계인의 우주선은 헤일메리호를 발견하고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 그레이스가 신호를 보내자 외계인도 같은 패턴으로 신호를 보낸다. 두 우주선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를 바라본다.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외계인은 어느 별에서 왔는지 가느다란 줄과 구체로 만든 모형을 원통에 담아 그레이스에게 띄운다. 마치 자기 소개를 담은 편지를 보는 듯했다. 그레이스는 외계인의 모습이 바위투성이 같다며 ‘로키’로 부른다.

인상 깊었던 다른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로 귀환하던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닥친 문제를 깨닫고 보여준 선택이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외계의 미생물인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각자의 항성계를 구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주에 왔다. 결국 둘은 아스트로파지의 포식자 타우메바를 찾아낸다.

그들은 아쉬운 이별을 하고 각자 별로 돌아가던 중 그레이스는 타우메바가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레이스는 타우메바를 담을 상자를 다시 만든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로키에게도 자기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음을 인지한다. 더구나 로키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할 재료가 없다. 로키는 우주 어딘가에 멈춰선 채 그의 별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레이스는 소형 우주선에 타우메바를 실어 지구로 보낸다. 그런 다음 식량이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걸 알면서도 로키와 외계인 종족을 구하러 헤일메리호를 돌린다. “가고 있어, 친구. 기다려…” 그레이스의 선택을 읽으며 마음이 먹먹했다. 로키의 표현대로 내 얼굴에서 물이 샜다.

나는 뉴올리언스 한국학교에서 초급과 중급 사이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수업 중에 외계인 얘기가 나왔다. 한 녀석이 외계인은 무섭다고 그랬다. 외계인의 입이 징그럽다며 입을 오물오물 움직인다. 녀석이 외계인을 흉내내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사실 나도 입이 징그러운 외계인은 무섭다. 게다가 사람을 죄다 죽이려 드는 외계인은 상상도 하기 싫다. 지구가 좋다면 부탁을 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집단 이기심은 참으로 쓸모가 없다.

그런데 한 아이가 안 무서운 외계인도 있다고 말했다. “로키!” 겁 많은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의외였다. 여름방학 동안 한국을 다녀온 아이는 비행기에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았다고 그랬다. 마침 나도 책을 읽고 감동이 남아있던 터라 무엇이 기억에 남았느냐고 물었다. “서로 도와주는 거”, 아이가 대답했다. 나도 답했다. 마음속으로.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 그리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거.’


*이 글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11/10/2025

다시, 가을 소풍




뉴올리언즈 한국학교에서 시티 파크로 가을 소풍을 갔다. 시티 파크는 꽤 넓다. 그 중에서 우리 학교가 소풍 장소로 정한 곳은 탁 트인 잔디밭. 그곳은 끝 간 데 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데칼코마니 같았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줄지어 선 야자나무 마저도 싱그러웠다. 올 초 한파 때문에 누렇게 시들었던 이파리들이 하나도 안 보였다. 우리의 가을 소풍을 위해 여름내 정성을 들여 단장한 모습 같았다.

이 야자수 길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첫 장면에 나오는 야자수 길이 떠오르게 했다. 영화에서 받았던 이국적이고 신비한 느낌이 정수리로 스멀스멀 올라오려 했다. 마침, 게임을 시작하기 전 몸풀기를 위해 국민체조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영화의 줄거리를 생각해내려는 공허한 시도를 거둬 들였다.

너무나 익숙한 국민체조 음악이 나오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체조를 인도하는 선생님의 동작은 절도가 있었다. 나도 동작을 큼직하게 따라하고 싶은데 티셔츠 길이가 짧아 팔을 높이 들면 넉넉한 배가 다 드러나게 생겼다. 체조를 하는 듯 마는 듯 하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6학년 때인가… 아침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국민체조를 할 때였다. 다 아는 동작이니 눈 감고 하면 어떨까 싶어 그렇게 했다가 다른 반 선생님한테 꿀밤을 맞았다. 눈을 떠보니 일렬로 서 있는 줄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두 상황이 겹치면서 웃음이 지나갔다.

네 살부터 성인까지의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선생님들은 준비한 게임을 하나씩 진행했다. 팀별로 한 줄로 섰다. 공을 머리 위로 마지막 사람한테까지 전달했다가 공을 다리 사이로 처음 사람에게 다시 보내는 게임. 다음으로, 같은 팀끼리 손에 손을 잡는다. 한 사람씩 훌라후프를 통과하여 마지막 사람까지 훌라후프를 보내는 게임. 단, 잡은 손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훌라후프를 손으로 잡지 말아야 한다. 나이든 학생들은 요령 있게 몸을 꼬았다. 꼬맹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영어로 알려주었다. 급한 상황에서는 영어가 먼저 나오나 보다. 학생들 대부분이 이민 1.5세이고, 나이가 제일 어린 반과 성인반은 모두 미국 원어민이다. 학국어를 배우려는 원어민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다.

입에 빨대를 물고 과자 양파링을 전달하는 게임도 했다. 처음에는 한 번에 4개까지 옮길 수 있다는 제한을 두었지만 다들 게임에 몰두하는 바람에 제한을 없앴다. 한 번에 예닐곱 개씩 너끈하게 옮긴 팀이 결국 이겼다. 컵에 물을 담아 멀리 세워놓은 병에 채우는 게임도 빠트릴 수 없다. 규칙을 이해하기 쉬운 게임이라 그랬는지 모두가 열성적으로 물을 날랐다.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마지막으로,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한 학생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비행기를 접었다. 그 비행기는 모양도 근사했고 꽤 멀리 날아갔다. 또, 언니들을 따라 소풍 나온 꼬마가 비행기를 제일 멀리 날렸다. 우리는 모두 놀라워하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사실 게임이 두 개 더 준비되어 있었지만 전체 일정과 비 올지도 모를 날씨를 고려하여 점심을 먹기로 했다. 거의 모두가 김밥을 싸 온 것 같았다. 나는 미국 올 때 엄마가 사준 찬합을 슬금슬금 풀어 놓았다. 나는 김밥 싸는 게 영 번거롭기도 하고 잘 말지도 못한다. 그래서 밥하고 반찬을 챙겨왔다. 반찬 그릇도 여러 개에다가 덜어 먹을 그릇까지 챙겨야 하니 이것도 번거로운 일이나 어쭙잖은 김밥보다 나을 것 같았다. 살짝 어색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내 도시락이랑 다른 선생님들 김밥이랑 나눠 먹었다. 다음번에는 나도 어떻게 하든 김밥을 말아올지도 모르겠다.

소풍 내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서두르는 선생님들이 없었다. 학생들은 게임을 열심히 하면서도 이기려고 아웅다웅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미소가 가을꽃처럼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난 선생으로 따라와서 이렇게 맘 편히 소풍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디지털게임이나 문화에 익숙한 시대를 살면서 몸을 부대끼며 노는 일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글은 앨라배마 코리아 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