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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2023

바람이 분다




영화 '더 이퀄라이저 3(The Equalizer 3)'가 최근에 개봉되었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 보았던 주인공 로버트 맥콜 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의 차가운 듯 따듯한 연기와 액션 영화라는 장르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시골 농장의 평화로움과 거기서 습격당한 부하들이 죽어 널브러진 사이를 걸어가는 보스의 긴장감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짧은 대화가 있다. 영화 초반에 총상 입은 맥콜을 낯선 의사가 정성껏 수술해준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맥콜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질문한다. 맥콜은 “모르겠다”, 고 대답한다. 

맥콜은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이번엔 맥콜이 의사에게 나 어떤 사람 같아요?, 묻는다. 총에 맞은 사람을 보고 구급차도, 경찰도 안 부르고 상처에서 회복하도록 긴 시간을 들여 돌봐준 이유를 의사에게서 듣고 싶었나 보다. 더군다나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맥콜 자신도 모르겠다는 의아한 대답을 받고서도 말이다. 

의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대답은 좋은 사람만 할 수 있어요.” 선과 악, 예와 아니오를 명확하게 나누어 선을 그어야 할 것 같은 지점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도 어떻게 대답할지 묻는다. 

맥콜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당하는 불의한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맥콜에게는 모든 이웃을 도울만한 능력도 없다. 생선가게 아저씨가 마피아에게 두들겨 맞고 아저씨네 집에 누군가 불을 질러도 맥콜은 지켜볼 뿐이다. 맥콜은 자신의 체력을 키우면서 미국 정보기관에 마피아에 대한 정보를 흘려 도움을 받는 정도다. 

맥콜이 머무는 동네는 이탈리아 작은 어촌이고 마을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고, 소박하고, 우애가 깊다. 그들은 미국인 맥콜을 기꺼이 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맥콜은 마피아가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게 악을 행하자 그제야 이퀄라이저로서 악당들을 척결하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 음과 양은 언제나 존재한다. 음양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도 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 맥콜은 물론이고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의 삶에서도 이런 균형을 찾아볼 수 있다. 계절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무더운 여름이 길게 느껴지는 몽고메리 날씨지만 한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서늘한 기온은 여름에 흘린 땀을 씻어주고 성실한 수고의 결실을 가져온다. 

아침이면 비슷한 시간에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쪽을 향하여 도로를 달린다. 가을이 오면 그 시간대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장관을 자주 목격한다. 오염이 적은 하늘이라 그런지 이곳이 정말 태양하고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태양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인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낀 날에 맞이하는 일출도 얼마나 당찬지 모른다. 태양은 구름 테두리를 맑게 빛나는 금빛으로 장식한 구름옷으로 차려입고 위엄 있게 등장한다. 또 온 세상을 붉은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언제 봐도 벅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것은 변화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다만 올가을에는 일상에 큰 변화가 있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잘 몰라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기대와 두려움으로 두 눈을 꼬옥 감는다.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화로운 바람이 흘러나온다. 그 신선한 바람은 나를 감싸 안고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도록 밀어준다. 

영화 속 맥콜처럼 나 역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 내 삶이 들어 있다는 것만은 안다. 불현듯 가수 조용필이 부른 '바람의 노래'가 입속에서 맴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7/02/2018

보이지 않는 것




그 주일은 유난히도 힘이 빠졌다. 마음이 쓰이는 별다른 일도 없었건만 말이다. 세끼 꼬박 챙겨 먹는 습관대로 아침 식사도 적당히 잘 먹었다. 성가 연습을 하려고 성가대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해가 짱짱하게 떠 있었다. 오후에 비가 오려나…. 몸이 무거운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는 멀쩡한 날씨를 만만한 핑곗거리로 삼고 있었다.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모이기로 한 성가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언제부터인가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성가대가 되었다. 성가 연습이 시작되었다. 성가 제목은 할렐루야 주의 믿음 갖고였다. 복음성가로 잘 알려진 곡을 4부 합창으로 부를 수 있도록 편곡한 것이다. 워낙 오래된 곡이고 기본 음정을 아는 곡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기존 음에 너무 익숙하여 오히려 편곡된 노래의 음을 못 잡는 곳도 있었고, 그나마 작은 목소리는 힘이 실리지 않아 입 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성가대에서 누구나 알 법해서 쉽다고 여겨지는 곡으로 정하는 때가 있다. 성가대원 가운데 여름이 되면 여행이나 휴가를 다녀오기 위하여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 있기 때문에, 그럴 때면 적은 인원으로 부르기 쉬운 곡을 선택한다. 그날도 성가대원 가운데는 한국으로 여행간 사람도 있었고 휴가간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부분에서 음정이 자꾸 틀리자 누군가 여행간 성가대원이 없어서 노래 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고 농담 삼아 웃으며 얘기했다.

예배는 시작되고 성가대석에 올라 갔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충 노래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님, 힘 주세요, 마음으로 속삭였다. 힘차게 불렀지만 그래도 어떤 마디는 여전히 틀리게 부르고 내려왔다. 내가 음을 잘못 냈다는 것은 다른 성가대원들에게 미안하게도 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배를 다 마치고 나니 오늘은 왜 이렇게 힘이 안 나죠?,  오늘 왠지 축 처져요, 라고 말하는 성가대원들이 여럿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비슷한 분위기를 여럿이 같이 느끼는 이런 날도 있나 보다(날씨의 변화가 자연 만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날 저녁 때쯤 급작스럽게 내리는 비가 한 차례 지나가기는 했다). 그런데 우리의 기분과 상관없이 교인들 가운데 참 좋았다고 평해주신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가에 대해 한 번도 이렇다저렇다 말씀하신 적이 없던 분이 그런 피드백을 해주셨다는 것이었다. 어떤 교우들은 작게나마 박수도 치면서 성가를 들으셨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모든 주일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성가대에서 겪은 얘기를 남편과 나누었다. 몇몇 성가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는 얘기, 기운이 없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성가를 불렀다는 얘기, 다른 주일에 비해 완성도가 높지 않은 성가였다는 얘기,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성가를 좋게 들었다는 얘기를 말이다. 다 듣고 나서 남편은 한 마디로 대꾸를 해주었다.

도우셨지 뭐.”

그리고 자신의 경험도 덧붙였다. 설교를 하고 나서 오늘은 죽 쑤었구나, 하며 참담한 심정이 되어 강단을 내려오면 그런 날은 꼭 한두 사람이 은혜 받았다는 말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주일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기 위한 기도는 경외심으로 빚어진 그릇에 가득 담아 드려진다. 성가대만 놓고 봐도 그렇다. 개개인의 준비 기도, 주일 아침 어느 성가대원의 대표 기도, 예배실에 들어가기 전 예배를 맡은 자들을 위한 목사님의 기도, 예배 중 회중의 대표 기도에 성가대를 위한 기도가 들어 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진 기도는 하나도 헛됨이 없다. 우리 기도의 그릇이 크든 작든, 성가대가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총이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미 함께 계신다. 영혼이 하나님께 집중하기만 하면 은총은 오롯이 부어진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12/29/2014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


시카고에서




지난 주에는 가족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했다. 시카고 근처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 여행이 실행되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고 자동차로만 열두세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었고, 아직 미국 중북부를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의 풍광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으니 기회만 되면 그들에게로 달려가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이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둘째 아이는 성탄절 즈음에 친구네 가족을 따라 스키장에 가도 되느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딱히 계획이 없었던 지라 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허락했었다. 아이는 방학이 가까워지자 스키장에서의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스키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홈페이지도 보여 주었다. 거기엔 스키복과 스키 장비를 빌리는데 드는 비용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는 맨몸으로 가서 모든 장비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속셈을 해보니 그것들을 하루만 빌린다 해도 몇 백 달러가 필요했다. 이거 너무 비싸다, 했더니 안 되겠지, 라는 대답이 바로 이어서 나왔다. 렌트 비용을 미리 살펴본 눈치였다. 아이와 이런 짧은 대화가 오고 간 다음날 남편은 시카고 여행을 제안했다. 중북부를 여행할 기회가 바로 이때라고 판단되었나 보다.

가족 여행 계획이 친구와 스키장을 가지 못한 아이의 아쉬움을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았다. 남편의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방학 동안 심심해 할 아이들을 위해서도, 단순한 일상 속에 묻혀 있는 아내를 위해서도, 그리고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여행이라 여겨졌는지 일을 진행하는 모습에 파드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100세가 가까워 오시는 권사님께서 성탄주일이 되기 일주일 전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날마다 병문안을 다니던 남편은 아무래도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어느 정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이러한 형편을 알리자 우리 가족이 그렇지, , 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원래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전날, 권사님께서 퇴원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사님께서 입원해 계시는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권사님의 병세가 어떠신지 직접 눈으로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권사님의 눈동자와 말소리에 힘이 조금 생기신 것 같았다. 우리는 권사님이 퇴원하시게 되었으니 시카고로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씀 드렸다. 권사님은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며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셨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부리나케 여행 가방을 꺼냈다. 그래도 혹시 권사님께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마음은 들뜨지 않도록 잘 붙들어 두었다.




그런 복잡한 사정을 뒤로하고 떠난 여행은 감사하게도 순조로웠다.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도로 사정이 좋았다. 북부지역이라 눈이 오면 어쩌나 했는데(눈이 오면 오는 대로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남부에서는 눈을 보기가 어려우므로) 우리 가족이 남부의 따뜻한 기온을 몰고 왔다고 농담할 정도로 그다지 춥지 않았다. 미주리 주의 선배 목사님네를 시작으로 아이오와 주와 일리노이 주의 친구들을 찾아 다니는 동안 비록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일지라도 구경도 많이 했다. 친구들이 사는 크고 작은 도시들, 고속도로 주변에 스치는 여러 분위기의 도시들, 추수가 끝나 빈들이 되어버린 탁 트인 평야와 풍력발전에 사용되는 거대한 바람개비들,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끝없는 하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지루한 줄 모르는 신선한 경치들이었다. 아이가 영화에서만 보던 시카고는 몇 군데 걸어 다녀보기도 했다.

여행에서 만난 동료 목사님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우리 가족에게 정성스런 음식과 편안한 잠 자리를 내어주었다. 밤이 깊어지는 것도 모른 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목회 현장에 대한 이야기와 신앙인으로써 이 시대에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지 진지하게 풀어 놓았다. 신학적 주제에 대해서도 열띤 논쟁이 있었다. 다들 중년에 이르러서인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견해를 풀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들을 들을 때에는 감동이었다. 오래 묵은 친구들에게서만 풍겨 나오는 진한 향기를 맡는 듯했다.

또 노래도 엄청 불렀다. 어느 부부 목사가 기타 반주를 하며 오 거룩한 밤노래에 화음을 넣어 멋있게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가 젊었던 8,90년대에 거리에서 불렀던 노래나 대중 가요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불러 보았다. 가사를 모르거나 연주 코드가 헷갈리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척척 내놓았다. 부부끼리 노래 부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기도 했다. 잘 불러도, 틀리게 불러도 웃기고 재미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사는 모습이 조금씩은 달라도 노래 부르는 동안은 나라의 발전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던 젊은 시절의 그들 같았다.

둘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 노래가 지금 노래 보다 더 좋은 것 같아. 내가 나이 들어서도 엄마, 아빠들처럼 그렇게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길 수 있을까?”
엄마, 아빠들이 같이 노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대화의 내용도 많이 엿듣다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이번 여행에서 스키장에 못 가는 아쉬움과 여행이 취소될 뻔해서 느꼈던 감정들 대신에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여행을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도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가족, 친구, 동료, 교우……

9/22/2014

날마다 부르는 노래가




엄마! ,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단체무용을 할 때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산이를 꼭 참석시키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단체무용을 훌륭히 해냈다. 그래서 산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애틀랜타 밀알선교회에 다닐 때는 장애가 있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수어 찬양을 예쁘게 하기도 했었다. 가사나 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은 산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현재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 무슨 노래를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 보지만 단번에 어떤 노래인지 알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산이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면 음의 높낮이가 많지 않고 발음도 어눌하다. 굵은 저음으로 부르다가 음이 높이 올라가거나 곡의 절정이다 싶은 곳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면 노래의 가락이나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예배 시간에 아는 찬양이나 찬송이 나오면 앗싸혹은 나 저거 알아하며 좋아한다. 가끔 회중 가운데 저 혼자 손 들고 찬양하기도 한다. 주먹을 꼭 쥐고 팔에 힘을 주어가며 부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추어 온 몸을 흔들며 부르기도 한다.

사실 산이가 어떤 마음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이의 그칠 줄 모르는 노래 부르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산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생이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노래 부르는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려고 한다. 동생도 형이 집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높여 노래를 해도 조용히 하라고 불평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스크린에 비춰지는 파워포인트의 화면을 순서대로 띄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산이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와우! 아직은 서툴어서 실수가 있기는 해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또 예배가 끝나고 이렇게 말씀해주신 집사님도 계셨다.

내가 오늘 무척 힘든 상태에서 교회에 왔거든요. 그런데 예배 시간에 산이가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힘이 생겼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되기도 한다. 산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와 꼼꼼한 성격(레고나 퍼즐 조립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이 잘 발휘되는 행복한 삶이 펼쳐져 가고 있음을 주님께 감사한다

8/04/2014

청년 시절과는 다른




어렸을 적에는 내가 노래를 꽤 잘 부르는 줄 알았다. 이미 다섯 살 즈음에 대중가요의 제목만 대면 노래를 줄줄이 불러댔다고 친지 어르신들은 두고두고 얘기해 주셨다. 또 내 세상의 삼분의 일-가정, 학교, 교회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을 차지하는 교회에서 찬송 부르기 대회를 하면 상을 제법 받곤 하였다. , 고등부 시절에는 이웃 교회와 연합으로 찬송 부르기 대회를 해도 상 받는 자리에 한번씩 불려 나가곤 했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상을 두루두루 나눠 주었다 해도, 스스로 노래를 잘 하는 줄 착각할 만큼 격려를 많이 받았다

그러다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누가 보아도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면서 내 노래 실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음역도 엄청 좁고, 음정과 가락을 익히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닌 사람이란 걸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노래 부르는 실력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아갈 청년 시절에 교회 성가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좀 못 불러도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는 청년이었기에 성가대 자리라도 채우라고 성가대원을 시켜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성가대에 참여하지 못하다가 지금 다니는 교회의 성가대를 4 년째 하고 있다. 와우!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나 성가대에 참여하는 태도는 청년 시절과 달라진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노력을 조금 더 한다는 것이다. 다같이 연습하는 시간에 음정을 다 익히지 못하니 집에 악보를 가져와서 한두 번이라도 연습을 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정이 불안한 곳에서는 붕어 같이 입만 벙긋거려야 하기 때문이다(지휘자나 성가대를 바라보는 교인들도 이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지 늘 궁금하다. 그래도 물어볼 수는 없다. 만일 그들이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난 더 이상 성가대에 설 수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가사를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청년 때와는 달라진 점이다. 성경 말씀으로 가사를 삼은 것도 좋고, 찬송가를 편곡한 것도 좋고, 새로운 내용의 가사도 다 좋다. 예배 드릴 때 들려질 성가 곡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다. 우리 교회 성가대에 참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날 찬양을 할 때였다. “어버이의 그 사랑 나 어릴 때 몰랐으나 어른 되어 이제서야 그 사랑 알게 됐네라는 가사에 목이 턱 막혀 노래를 부르지 못한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할머니 생각이 나서였다. 할머니께서 베풀어주신 그 사랑을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 뒤로는 감정에 치우쳐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으나 마음 속으로는 울컥 울컥 하는 위로와 믿음을 주는 가사를 만날 때가 있다. “주 찬양해 주 찬양해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를 부를 때는 마치 천사들의 손에 들려진 나팔이라도 된 양 입을 쩍쩍 벌려 본다. 복식호흡으로 내는 소리가 나오기는커녕 목을 쥐어짜는 소리가 나올지라도 말이다.

세 번째는 여러 사람이 내는 음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새로운 곡을 받으면 곡이 예쁘네, 어렵네, 재미없네,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삐죽삐죽 울퉁불퉁 제 각각의 소리를 내는 것 같아도 여러 주에 걸쳐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파트마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동시에 다른 파트와 화음이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 교회 성가대원은 아홉 내지 열 명 남짓이다. 웅장한 소리가 나올만한 인원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가대원 가운데 서운해 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나 노래 부르는 실력이 특출한 사람 없이 다 그만 그만 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건가, 싶기도 하다.

우리 성가대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최고의 성가대이며 어려운 곡일수록 더 잘 부르는 성가대로 우리끼리(!) 인정한다. 우리 성가대는 나같이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고, 성가대원이 되고 싶은 교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좋다. 우리끼리 인정하는 최고의 성가대의 한 사람으로써, 주일 예배에서 성가를 부를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3/18/2011

그리울 때는



강산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거의 날마다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은 노래를 듣는 것입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동요를 많이 들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나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그리고 율동을 알 수 있는 곡은 아이를 앞에 두고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곤 했습니다.

만4세가 되어 조기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을 찾아가 면접시험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들은 많고, 뽑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행이나 신변 처리가 가능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강산이는 걷는 능력이 느린 편이어서 네 살이 되었어도 다리를 어정쩡하게 벌리고 걸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기억하기로는 인지 테스트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저는 이때다, 하면서 강산이가 동요를 아주 많이 안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시키지도 않은 노래를 부르면서 율동을 시작했습니다.
두 곡을 연이어 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강산이가 방실방실 웃어가면서 예쁘게 율동을 따라 하기도 하고, 혼자 기억해서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합격(!)하여 조기교육 2년의 혜택을 보게 되었고 신체적으로도 더욱 튼튼해지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훗날 어떻게 하다가 듣게 되었는데, 면접시험을 맡아 하셨던 선생님이 아는 것은 많은가 봐, 라고 강산이에대해 평가를 하셨답니다. *^^*

열여덟 살이나 된 지금의 강산이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마치 어미가 일찍부터 음악을 들려주어서 그렇다는 공치사를 하려고 옛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구요~.
날마다 노래 특히, 요즘 기독교인들이 많이 부르는 CCM을 즐겨 듣는 강산이를 보면서 생각이 “그저” 과거로 잠시 흘러갔을 뿐입니다.

(이렇게 글의 흐름을 바꾸고 싶을 때 글로 표현하는 재주가 부족하니, 아이가 어릴 때 찍어두었던 사진이 한 장 떠억 들어가면 좋으련만, 풀지 않은 이삿짐 꾸러미들 어딘가에서 쉬고 있나 봅니다.)

강산이는 노래를 MP3나 CD 플레이어가 아닌 이동용 DVD 플레이어로 듣기도 합니다.
이동용 DVD 플레이어는 이름 그대로 DVD만 볼 수 있는 기계인 줄 알았는데, CD 플레이어의 기능도 있으면서 화면에 노래 목록까지 보여줍니다.
오디오에 비디오까지 되니, CD 플레이어는 뒷전으로 밀리고 DVD 플레이어를 더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그날, 강산이는 제 노트북을 차지하고 앉아 한글 타자 연습을 하면서 이어폰으로는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타자 연습을 하려면 화면에 제시되는 문장을 따라서 쳐야 하는데, 기능적으로만 타이핑을 하는지 그것도 하고 동시에 노래를 들으며 입으로는 따라 부르기까지 합니다.
공부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노래를 듣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강산이에게서도 봅니다.

듣고 있던 CD가 다 끝났는지 다른 CD로 갈아 끼웁니다.
그 CD가 뭔가 해서 슬쩍 들여다보았더니, 지난해 아틀란타 밀알선교단에서 있었던 여름 캠프 사진을 모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배경 음악으로 깔아 놓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수어로 찬양하기도 하며, 사진에 등장하는 친구들 이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불러봅니다.

음, 밀알 친구들 이름을 다 알고 있군, 하는데, 옆에서 갑자기 밀알에 가고 싶어, 하며 웁니다.
강산이가 우는 모습은 정말 서러워 보입니다.
눈 주위가 일그러지고 순식간에 벌겋게 바뀌면서, 복받치는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왜 울어! 나중에 아틀란타에 놀러 가서 밀알 가면 돼.”
아틀란타는 이곳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라, 마음먹으면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 아틀란타에 가면 그럴 날이 있겠지, 하는 애매한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기약 없는 말에도 위로가 되었는지 울음을 멈춥니다.
“밀알 있잖아~ 누구 누구 누구…. 현지 선생님 있잖아~ 기도해야 돼!”

가끔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섬긴 교회에 있던 아주 연약한 동생인 ㅇㅂ 보고 싶다며 글썽이더니, 이제 보고 싶은 목록에 아틀란타가 첨가된 것 같습니다.
밀알 선교단, 다니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그리고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와~ 우리 교회라고 외치던 한인교회….

미국으로 이사 와서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감정이 무뎌지는 저와는 달리 아들 녀석은 사춘기라 그런 것 아닐까요?
생활 전반에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는 어른과 그렇지 않은 아이인 까닭일까요?

그런데 보고 싶어, 하며 서럽게 우는 아이가 문득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리워하는 사람들마다 떠올리며 기도해야 돼, 하는 아이의 믿음이 깊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을 향한 아이의 마음이 봄빛처럼 따스하게 제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린도전서 3장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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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전해드렸는데, 꼭 일 주일 만인 오늘,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노트만 들고 학교에 간 아이도 마음이 불편했겠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교우들은 안타까워하시기도 하고, 학교에 함께 찾아가 이 일에 대한 관심도 표명해주셨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나서서 일을 처리하겠다 약속하셨고, 사건(?)의 앞뒤도 알게 되고, 가방도 무사히 찾게 되었습니다.
누가 잘못한 것인가를 떠나, 가방을 되찾은 것이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고, 교우들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래저래 주위가 따사로운 것이 봄은 봄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