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형,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를
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 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단체무용을 할 때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산이를
꼭 참석시키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단체무용을 훌륭히 해냈다. 그래서 산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애틀랜타 밀알선교회에 다닐 때는 장애가 있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수어 찬양을 예쁘게 하기도 했었다. 가사나 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은 산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현재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 무슨 노래를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 보지만 단번에 어떤 노래인지 알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산이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면 음의 높낮이가 많지 않고 발음도 어눌하다. 굵은 저음으로 부르다가 음이 높이 올라가거나
곡의 절정이다 싶은 곳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면 노래의 가락이나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예배 시간에 아는 찬양이나 찬송이 나오면 “앗싸” 혹은 “나 저거
알아” 하며 좋아한다. 가끔 회중 가운데 저 혼자 손 들고
찬양하기도 한다. 주먹을 꼭 쥐고 팔에 힘을 주어가며 부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추어 온 몸을 흔들며 부르기도
한다.
사실 산이가 어떤 마음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이의
그칠 줄 모르는 노래 부르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산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생이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노래 부르는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려고 한다. 동생도 형이 집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높여 노래를 해도 조용히 하라고 불평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스크린에 비춰지는
파워포인트의 화면을 순서대로 띄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산이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와우! 아직은 서툴어서 실수가 있기는 해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또 예배가 끝나고 이렇게 말씀해주신 집사님도 계셨다.
“내가
오늘 무척 힘든 상태에서 교회에 왔거든요. 그런데 예배 시간에 산이가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힘이 생겼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되기도 한다. 산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와 꼼꼼한 성격(레고나
퍼즐 조립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이 잘 발휘되는 행복한 삶이 펼쳐져 가고 있음을 주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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