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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2026

어복






남편은 낚시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양머리돔을 손질하여 식탁에 올렸다. 분홍빛이 선명한 회가 접시에 푸짐하게 담겼다.  그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맛있는 회라고 감탄했다. 쫄깃하고 고소하다고 그랬다. 다음 날, 나는 또 다른 양머리돔으로 고추가루와 간장 양념을 얹어 찜을 했다. 우유 빛 생선살이 두툼했다. 젓가락으로 살을 떼어도 흐트러지지 않고 촘촘한 형태를 유지하다가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사라졌다. 사실 이 두 마리 양머리돔은 남이 잡은 물고기다.

괜히 마음이 답답하다는 핑계로 나는 남편에게 낚시를 제안했다. 낚시 채비를 마련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갑작스러운 출조가 가능할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끼를 담는 양동이를 못 찾아 마트에 가야만 했다. 남편은 아들 산이와 나를 마트 주차장에 두고 양동이를 사왔다.

그러자 이번엔 양동이 뚜껑에 달린 산소호흡기를 작동하기 위해서 가져간 건전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남편의 한숨 소리가 제법 컸다. 남편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객쩍이 이것저것을 열고 닿다가 아이스박스 안에서 우리 양동이를 찾아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마트에 다시 다녀와야 했다. 방금 사온 양동이를 반품하기 위해.

조금 지체되었지만 길을 나서니 기분이 휠씬 좋아졌다. 그랜드아일에 다가갈수록 바다에 갈색 습지식물 군락이 섬처럼 떠있는 풍경을 자주 만난다. 이국적이다. 날씨는 겨울 속 봄처럼 온화했다. 공기 중에 달달한 향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정오쯤, 우리는 낚시터에 도착했다.

낚시터 끝에 아저씨 한 분이 계셨고 그 옆으로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보였다. 그 부부는 낚시하기 보다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커다란 그늘막 아래에서 부부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한인 같았다.

나는 낚시를 하기 전에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말을 건넸다. 그들은 네, 안녕하세요, 라고 응답했다. 물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라고 물으니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 끝에 있는 아저씨도 한국 분인데 고기가 안 잡힌대요, 라고 아저씨가 현황을 알려주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데 아들 산이가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제 아들이에요, 라고 그들에게 소개를 하고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은 낚시터 입구에서 산 생새우를 낚싯바늘에 꿰고 있었다. 새우를 20마리 샀으니 물고기 10마리만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낚시 이웃이 산이에게 어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산이가 먼저 바다송어를 낚았다. 조금 있다가 나도 한 마리 잡았다. 그리고 다시 산이가 제법 큰 놈을 잡아 올렸다. 그후 네 시간 동안 우리는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반짝이는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물멍으로 점점 생각이란 것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거, 아들 주세요. 나는 말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 아저씨가 양머리돔을 잡아 펄떡펄떡 뛰는 놈을 우리 곁에 풀어 놓았다. 그 귀하고 맛있는 물고기를 두고 아저씨는 자기 자리로 총총히 돌아갔다. 왜 그걸 주는지 이유는 몰라도 엄청 고마웠다.

아저씨는 조금 지나 또다시 양머리돔을 잡아 우리에게 주었다. 나는 얼른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니 왜 우리에게 다 주세요? 그랬더니, 우린 한 마리면 돼요, 라고 말씀하셨다. 낚시터 끝에서 혼자 낚시하던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뜨면서 옆 부부에게 뭔가를 주고 가는 것 같았는데 돔이었나 보다. 아저씨와 그의 아내도 우리에게 돔 두 마리를 주고 자리를 정리했다.

남편이 그 부부에게 들은 바로는 12월까지 비즈니스를 하고 연초3개월은 여행을 한다고. 그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봤는데 그랜드아일이 낚시하면서 지내기에 좋더라, 고 그랬단다. 낚시할 때 마음을 비워도 물고기가 잡혀야 재미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작은 물고기 세 마리만 가지고 가볍게 돌아올 뻔했는데, 옆 부부 덕분에 아이스박스가 꽉 찼다.

지난번에는 낚시 이웃이 잡은 한 마리뿐인 돔을 우리에게 주어 고마웠다. 그리고 초면의 부부에게서 돔을 두 마리나 얻었다. 산이가 어복이 있긴 한가 보다. 복은 나누는 것이니, 우리도 물고기를 많이 잡아 이웃과 나누고 싶다. 물고기에게는 너무 살벌한 생각일 테지만.



*이 글은 앨라배마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12/18/2025

낚시질



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소설 <노인과 바다>를 아직, 청년이라 불리는 육십 대를 앞두고 읽었다. 이 소설을 영화로 봤기에 그동안 정독하려는 마음이 없었나 보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른바 세계 명작을 읽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노인과 바다>에 이르렀다.

몇 년 전 성탄절 즈음에 미국 플로리다 남단에서 섬들이 서쪽으로 이어진 키웨스트를 갔었다. 연말 해넘이를 그곳에서 보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키웨스트에서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멕시코만-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초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지명을 변경하는 행정명령을 내려서 구글 지도에는 아메리카만으로 나온다-이 멀지 않은 뉴올리언스에 살게 되면서 <노인과 바다>는 내게 점점 더 가까워졌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늙은이였다.’ 첫 문장에서 평생을 욕심 없는 어부로 산 노인이 보인다. 노인이 사는 곳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 소설은 노인 산티아고가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다가 85일째, 먼 바다에서 5.5m나 되는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는 이야기다.

노인은 그의 조각배보다 긴 청새치를 잡기 위해 사흘을 고군분투한다. 노인은 자신을 잘 안다.  이젠 생각만큼 강하지 않을 지 몰라도 고기 잡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고 배짱도 있다고 확신한다. 거대한 청새치가 삼킨 낚싯줄을 풀고 당기기 위해 노인은 그의 어깨와 손을 아끼지 않는다.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이 하루의 식량 전부였고, ‘노인은 오래전부터 먹는 것을 귀찮아해서’ 배에는 물 한 병뿐이었다. 청새치가 낚인 줄을 잠시도 놓을 수 없기에 낚싯줄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사용하여 미끼로 쓰려고 잡은 다랑어를 잘라먹거나 갈고리대로 해초를 건져 그 사이에서 떨어진 작은 새우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랜다.

노인은 끝내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조각배에 청새치를 길게 묶는다. 노인의 집이 있는 아바나 항구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된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상어와도 싸우지만 머리와 뼈만 남기고 청새치를 빼앗긴다. 앙상한 청새치를 가지고 아바나로 돌아온 노인은 항구에 배를 대고 돛대를 거두어 어깨에 멘다. 노인의 판잣집이 있는 언덕을 오르며 돛대를 멘 채로 여러 번 쓰러지기도 하고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온 노인은 사자 꿈을 꾸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책을 읽는 내내 노인에게서 어부로서 노련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보았다. 반면에 어부로서 고단함과 가시지 않는 외로움도 보았다. 나는 노인이 집에 돌아왔다는 것에 무척 안도했다.  노인을 따르는 소년 마놀린이 돌아온 노인을 살갑게 챙기고, 동네 사람들이 노인의 안부를 묻는 모습은 바다에서의 거친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다시 한번 마음이 놓였다.

사실 노인이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반복해서 소리친 혼잣말이 있다. “그 소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은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고 배도 같이 탔었다. 언젠가 87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3주 내내 큰 고기를 잡았을 때도 함께 있었으나, 다시 40일 동안 어획량이 없자 소년은 그의 부모 뜻에 따라 다른 사람의 배를 탔다. 그래서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혼자였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이 소년은 노인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노인을 돌보는 소년이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한 지 나는 소년에게 머리를 숙였다. 어찌 노인이 그 소년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몇 주 전 우리도 낚시할 기회가 있었다. 이웃 P부부는 가슴이 답답해질 때 한적한 길을 달려 낚시를 하러 간다고 그랬다. P는 우리 가족이 낚시에 관심 있는 것을 알고는 그들의 낚시 포인트로 바로 초대했다. 낚시 도구는 물론 미끼로 살아 있는 새우를 챙겨왔다. 하루 전에 직접 잡은 새우였다. P와 처음 낚시했을 때는 서너 시간 동안 메기만 한두 마리 잡았다. 얼마 뒤 P는 멕시코만에 가까운 그랜드 아일로 우리를 인도했다. 거기서는 생선 조기와 맛이 비슷한 바다 송어를 신나게 잡았다.

나는 낚시를 하러 가는 것 자체가 좋다. 물론 노인이 어부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고통스럽다고 한 말에 완전 동의하지만 말이다. 나는 고기를 잡으면 좋고 못 잡아도 괜찮다. 그런데 P에게서는 물고기 잡는 재미를 우리 가족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노인이나 우리나 삶은 홀로 동시에 함께 하는 낚시질 같다.


*이 글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