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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2015

마냥 좋지는 않아도 봄은 새롭다






강화에 사시는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중부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 봄 가뭄이 심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리조합에서 관리하는 물이 삼분의 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좀처럼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다. 여긴 비가 많이 와야 댜~, 라는 말씀에 물이 부족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겨울이 우기라서 눈은 거의 오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린다. 겨울 내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비가 오더니, 봄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도 흐린 날이 많고 비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어머님네는 비가 오길 바라고 있는데 이곳은 비는 그만 오고 따뜻한 햇볕이 나서주길 기다리고 있으니 사는 처지가 참 다르다.

교인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분이 계셔서 병문안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전날 비가 오기도 하고 기온도 떨어져서 그런지 하늘이 더없이 깨끗하고 파랬다. 높이가 낮은 건물들 덕분에 넓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고, 솜 덩어리 같은 뭉게구름도 하늘 한가득 그림 같이 떠 있었다. 이렇게 맑고 포근한 하늘을 몇 달 만에 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슬슬 좋아졌다. 이왕이면 자동차의 창문을 열고 봄바람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창문을 반쯤 열고 잠시 달렸는데 목이 컥, 하고 막혔다.

꽃가루 때문이었다. 특히 천지에 퍼져 있는 송홧가루. 봄철 동안에는 노란 송홧가루가 건물 밖에는 어디나 날아다닌다. 그래서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재채기, 콧물, 눈병, 가려움 따위로 아주 힘들어 한다. 알러지가 없던 사람들도 이곳에 사오 년 살다 보면 알러지가 생긴다고 한다. 사람이 무던한 건지 둔한 건지 나는 아직 꽃가루의 영향을 별로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송홧가루에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청명한 봄하늘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꽃가루는 몸을 괴롭게 했다. 모든 것이 마냥 좋을 수는 없는가 보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교회에서 대청소를 했다. 교회 마당에서는 나무와 꽃들 사이에 솔잎을 깔아주었다. 남성 교우들과 아이들이 그 일을 맡아주었다. 커다란 솔잎 덩어리 80단이 교회 울타리 아래로 넓게 흩어졌다. 교회 건물 뒤편에도 솔잎이 필요한 곳이 있었는데 솔잎이 모자라 올해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전에 솔잎을 주문하던 교우가 없어 100단 정도가 필요한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교회 주변에 솔잎이 깔리고 나니 더욱 깔끔하고 넉넉해 보였다.

교회 안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물건들을 전부 정리하여 버리기로 했다. 방마다 사물함이나 책상 위에 무심히 쌓여 있는 물건들은 거침없이 커다랗고 까만 쓰레기 봉투로 들어갔다. 주방에 있는 그릇 수납장은 여러 사람이 일을 거들어야 했다. 주방 도구들을 죄다 끄집어내고, 수납장 바닥을 깨끗이 닦고, 꺼내 쓰기 편리하게 그릇들을 재배치 하였다. 쓰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것들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든가 버렸다. 있는지 몰라서 사용하지 못했던 물건들을 찾아냈을 때는, 지난날 적절히 쓰여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편리하게 사용될 것을 기대하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올해 부활절 맞이 대청소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많은 교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전에는 교회 일이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따라가거나 아예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대청소는 친교실 증축과 함께 여러 교우들이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구태의연한 교회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흐름이 교우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마음들이 모아져 결정된 친교실 증축이 못마땅하여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마냥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우들 대부분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 뜻이 무엇일까를 묻고 또 물으며 이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끈기 있게 동참하고자 마음 먹고 있다. 생명이고 진리이신 주님이 동행해주시길 겸손히 바라며 새로운 길을 가다 보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음을 고백하게 되리라 믿는다. 새로운 변화를 이어갈 담대한 용기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길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9/29/2014

뜻밖의 은총






지난 두 주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친절하게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곳은 따뜻한 지역이라 요즘도 낮 평균 기온이 27도를 넘나든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여, 싸늘한 공기 어딘가에 이른 벼를 베고 난 들판에서 맡을 수 있는 흙과 지푸라기 냄새가 묻어있지 않을까 찾아 본다. 가을이 되면 방향제가 들어 있는 제품들 가운데 주황색 둥근 호박과 시나몬(계피) 향이 섞인 것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호박과 시나몬 향을 가을과 짝지어 추억하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올해 가을은 갑자기 열매가 한 번에 대여섯 개 달리는 호박이 주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호박 줄기들이 가을 첫머리에 내리는 비를 자주 맞더니 연두 빛의 애호박들을 마구 내놓았다. 여름 동안은 물을 매일 주었어도 호박에게는 넉넉하지 않았는지 가끔 하나씩 열매를 맺었었다. 그런데 이번 비에 호박들이 여기저기 쑥쑥 자라 재미를 보았다.





올 봄 남편을 귀찮게 졸라서 담 아래에 손바닥만하게 만든 텃밭이 있다. 땅이 모래가 엄청 많은 흙이라 가게에서 파는 흙과 퇴비를 사다가 섞어주었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높이로 이랑을 만들었다. 쑥갓 씨도 뿌려 보고, 시금치와 붉은 상추 같은 잎채소도 심었다. 고추는 모종을 내어 심었다. 호박은 구덩이를 파서 거름과 흙을 넉넉히 넣고 여러 날 묵혔다가 거기에 씨를 뿌렸다.

이곳 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텃밭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순한 생활에 흙이랑 풀 가지고 장난이나 쳐볼 수 있는 코딱지만한 놀이터라 여겼다. 혼자 처음 가꿔보는 텃밭이니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실험용 놀이터라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역시…… 식물들이 초보자를 알아 보는 것 같다. 쑥갓은 싹이 몇 개 나오더니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시금치와 붉은 색 미국 상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은 것이다. 그들은 3개월 정도 조그만 잎사귀만 보여주다가 없어졌다. 가지는 두 개의 열매를 주고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고추나무와 호박 몇 줄기가 텃밭을 처음 시도해본 나를 위로하고 있다. 우리 집 고추는 미국 이민 오셔서 몇 십 년 내내 텃밭을 가꾼 할머니 권사님네서 봤던 고추나무와는 비교도 안 되게 키가 작다. 열매도 권사님네 것은 길쭉하고 통통했는데 우리 것은 모양이 짧거나 구불거린다. 우리 고추나무 모종낼 때 할머니 권사님이 주신 씨로 한 건데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호박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이다. 두 구덩이에 씨를 심었는데 심은 씨의 개수대로 싹이 다 나고 처음부터 하루가 다르게 잎(!)이 잘 자라 재미있었다. 똑같이 구덩이를 만들고 물도 주었는데 한 구덩이에서 나온 줄기는 점점 노랗게 마르다 없어졌다. 그나마 다른 한 구덩이는 잘 살아 잎이 무성하고 호박꽃도 군데군데 피어 있어 멀리서 봐도 풍성해 보인다. 호박 열매가 별로 없어도 말이다.

그렇게 나의 처음 텃밭은 미숙하게 끝나나 보다 했다. 그런데!!! 가을을 알리는 몇 번의 비가 내리는 동안 고추와 호박이 마구 열린 것이다. 고추도 미끈하게 쭉쭉 뻗은 녀석들이 가지마다 가득하고, 호박도 줄기마다 꽃을 피우더니 통통하게 여물어 갔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열매가 맺힌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에 비하면 신통방통하기가 짝이 없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똑같이 물을 주어도 힘 없이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볼 때는 안타까웠다. 물 주고 풀 뽑아주며 그저 생명이 붙어있는 식물들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가끔 어줍잖은 열매를 얻을 때도 기분 좋았다. 식물들이 초짜의 손에 키워지면서도 열매를 내어줄 때는 고맙기까지 했다. 호박 몇 개를 다른 이들과 나눌 때는 쑥스러우면서도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런 저런 맛에 텃밭을 하나 보다. 나의 아빠는 텃밭을 하는 이유가 열매를 거두어 엄마에게 가져다 주면 어머!” 하며 놀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손수 가꾸는 수고가 담긴 열매가 주는 기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초가을에 문득 찾아온 텃밭의 열매들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기분 좋은 결과들이 주어지는 것은 나의 수고가 아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더 이상의 열매가 없을 거라는 엉성하고 허술한 내 생각의 한계 위에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는 가을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 뜻밖의 은총이다

3/21/2014

더 진지하게




3월 첫 주간에 재의 수요일을 보내고 사순절 기간을 살고 있다.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는 말씀을 들었다. 짧은 의식이지만 뭔가 모르게 숙연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해 재의 수요일에서는 그 잔잔한 속삭임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잿물이 너무 질척하게 개어진 탓에 이마와 콧등을 간질이며 흘러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와 섞여서 흘러내리는 올리브유를 닦아낼 휴지를 가지러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여러 사람이 휴지를 찾아 허둥지둥 댔다.

어쩌나…… 난 그런 웃음 나는 상황이 싫지 않으니 말이다.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의 고난, 예수님 때문에 어떤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나,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살고 있나, 이런 거창한 주제들은 흘러내리지 않는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있을 지라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그런데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리던 비실비실한 잿물에 대한 기억 덕분에, 재의 수요일은 진작 지났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한 번 더 묵상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사순절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남편은 그제서야 금식 얘기를 꺼냈다. 교회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것이 간절히 필요하다면 하루에 한 끼, 금식한 끼니만큼 헌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끼에 들어가는 식사 비용을 금식한 끼니 수대로 모아 건축에 필요한 헌금으로 드리자는 내용이었다. 교우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누면 어떨까 물어왔다. 밥 굶는 것도 힘든데 굶은 만큼 헌금을 하라니, 난 관두라고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 금식하라고 하면 힘들어서 일 못 한다, 이미 하루에 두 번만 식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무엇보다 나처럼 저혈압인 사람은 끼니를 거르면 까부라져서 안 된다, 며 오지랖 넓은 걱정을 쏟아냈다. 남편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는 표정이었다.

내 말이 그렇게 일리가 있었나?’

그러고 나서 돌아온 사순절 첫 번째 주일 예배 때, 남편은 금식에 대한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 얄미운 남편.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고 설교를 하던지. 금식은 꿈에서라도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금식이라는 말에 걱정부터 한 보따리 풀어놓는 믿음 없는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남편에게는 이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 나 혼자 찔려서…).

금식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설교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금식이 될 거라고 했다. 금식 기도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것이기에 그 간절함이 더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자기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금식 하자고 설교를 했다.

금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알려주었다. 예수님처럼 사십 일 금식(이건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다니엘처럼 물과 채식만 하는 열흘 금식, 에스더 같이 삼 일 금식, 그리고 몸 비우기 운동에서 하는 일 주일 금식도 예로 들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기색을 내지 말고,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마태복음 6장의 말씀도 함께 전해주었다. 본인은 하루 한 끼 금식을 해보련다고 했다.

남편은 점심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는 어쩐다…… 내 자신을 위한 금식이라면 꾸준히 밥 잘 먹으면서 기도하면 된다고 했을 것이다. 한편, 교회를 위해서라고 하면 조금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긴 하다. 그래서 다니엘처럼 점심을 채식으로 하리라 마음 먹었다. 평소에 육류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그걸 절제하되 굶지는 않겠다는 속셈으로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점심 때가 되면 혼자 먹을 거리를 야무지게 준비한다. 아침에 먹다 남은 과일 조각에 어린 시금치 잎이나 양상추를 보탠다. 그 위에 그리크 요거트 두 숟가락과 마른 크랜베리 한 꼬집을 올린다. 말이 절제지 푸짐한 샐러드 한 접시가 된다. 이건 틀림없이 금식과 상관 없이 한 끼를 해결하는 모양새다.

, 꼭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생겨서 점심을 먹게 되면 맛있게 먹을 작정이다. 사람을 만나 삶을 나누다 보면 홀로 조용히 샐러드 한 접시를 마주할 때와는 다른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순절 동안 조~금 절제하는 한 끼 식사를 하겠다는 다짐은 상황에 따라 바뀔 가능성이 많은 나와의 약속 같지 않은 약속인 것이다.

사순절 기간 동안만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보자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커피 안 마시기, TV 드라마 안 보기, 아이스크림 안 먹기(어느 어린이의 결심), 쇼핑 덜 하기, 낮잠 안 자기 따위다. 여기에 이번에 실행하고 있는 한 끼 곡물과 육류 안 먹기도 추가해 본다. 편리하고 가벼워 보이는 제안들 같아도 사십 일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제안들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 순간에는 마음 속에 정한 기도가 떠오르곤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정한 기도와 절제하는 삶을 얼마만이라도 살아보는 것이 일상 생활을 유지하며 기도하는 것보단 더 간절함이 있는 것 같다. 절제의 방법으로 선택한 야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보니, 한 끼를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남편이 나보다 더 진지하게 여겨지는 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2/12/2013

엉성하고 느슨한 성탄축하예배


2012 성탄축하예배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텔레비전에서는 성탄이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어떤 채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듣거나 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남부,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면 겨울철인가 보다 할 정도의 날씨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담긴 컵에 손을 녹이며, 커다란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아련히 들려오는 캐럴이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으며 곧 한 해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같은 동부인데도 북쪽은 요즘 눈 폭풍이 휩쓸고 있고 정부가 셧다운할 정도라고 하니, 눈이 마냥 낭만적이지 않고 재해인 곳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여튼 추운 계절에 듣는 캐럴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캐럴을 즐겨 들으며 성탄 장식이 자주 보이는 미국 영화도 가끔 찾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내레이터가 성경 본문을 읽으면 교인들이 그걸 몸으로 표현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성탄극이었다. 하지만 극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었고 소품도 아기자기 하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이 대사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리 교회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탄을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성경 말씀을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미를 두고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찾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셀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내레이터가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면 셀원들은 몸으로 본문을 표현했다. 때로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성탄이라는 의미를 계속 강조했으나 성탄 때마다 들어온 말씀을 그대로 읽고 표현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성극인데 잘 참여하시려나 아주 조금 걱정했다. 그런데 성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60 , 70 세 넘으신 분들이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로 조언해주며 하하 호호 즐겁게 극을 꾸며갔다. 96 세나 되신 할머니 권사님께서도 참여하셨다. 와우! 극중 의상도 솜씨 좋은 분들은 만들기도 하고, 언젠가 성극할 때 입었던 옷을 찾아오신 분도 있고, 이집트 여행할 때 사두었던 옷을 가지고 오신 분고 계셨다. 성극에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은 대부분 찬양이나 연주 등으로 준비를 했다.

성탄주일 예배는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드려졌다.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예배를 드리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무대에 나가서 자기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었다. 연습한 시간도 길지 않았고 대사도 없는 성극은 예상대로 어설펐다. 무대 위에 올라가 서로의 자리를 정하느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내레이터 맡으신 어느 집사님은 평상시에도 혼자 잘 웃으시는데, 이 날 어떤 장면에 눈길이 가셨는지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셨다. 교인들 모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성탄의 기쁨이 슬그머니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듯 했다. 이 날 성탄예배는 엉성하고 느슨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로 드려졌다.

올해 성탄축하예배는 지난해와 구성은 비슷하나 성극이 대사가 많아졌다. 이번에도 주인공들은 60 대 중반 되신 권사님들이다. 지난해보다는 각자 좀 더 열심히 준비 중이신데 서로 만나서 연습하는 시간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느 권사님은 대사를 못 외우면 극본을 보고 하면 되고, 틀리면 그게 더 재미있는 거라고 하신다.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이 성탄 축하에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탄예배가 좀 엉성하고 느슨하면 어떤가! 그 엉성하고 느슨한 빈 틈을 따라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곳으로 인도할 유난히 밝고 시린 별빛이 흘러 들어오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 별빛을 따라 거친 들판을 걸어가는 목자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다.   

 




4/22/2011

신앙의 추억을 만드는 부활주일

<꽃꽂이 하기 전 모습입니다. 나중에 멋있게 장식된 모습도 보여 드릴게요.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성(聖)금요일입니다.
둘째 아이에게 성금요일 저녁예배와 부활주일 새벽예배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나도 꼭 가야 돼?” 아이가 묻습니다.
“그럼!”
뭔가를 더 물어올 것 같아 아이가 있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예배에 가겠다는 게로군, 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지금 둘째 아이 나이 또래에 경험했던 부활주일 새벽예배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부활주일 새벽연합예배를 드리는지 알지 못하나, 제가 어릴 적 살던 지역에서는 인천광역시 도원동에 있는 공설운동장에서 모이곤 했습니다.
그 큰 공설운동장에 예수 믿는 자들이 꽉 들어 차게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양초를 밝혀 손에 들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연합성가대는 해마다 특송으로 헨델의 “메시아(할렐루야)”를 불렀고,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찬송을 다 함께 부를 때 이곳과 저 건너편 쪽의 박자가 맞지 않는 것도 저를 감격스럽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 번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비가 그쳤던 것 같습니다), 공설운동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서서 예배를 드렸던 광경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중학생이던 제가 살고 있던 곳은 제물포였고, 공설운동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10 분쯤(아마도)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새벽에 버스가 다니지 않았으므로, 저는 혼자 걸어서 오전 5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었다 싶은데, 그때는 세상도 지금보다는 그리 험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어린 시절은 참으로 순수하게 신앙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참석할 수 있는 모든 예배 시간은 으레 가야 하는 것으로 여겼나 봅니다.
가끔 다른 신앙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부흥을 이루던 7, 80년대에는 아마도 순수하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억지 같지만, 한국교회의 부흥의 물결 속에 어린 저도 끼어 있었다고 해도 될까요? ^^

저희 아이들은 부활의 아침을 맞는 느낌이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부활의 아침에 대한 기억이 있기나 한 지….
지금 여기 교회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부활의 아침에 대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 앞에서나 교회 마당에 있는 쉼터(Shelter)에서 예배를 드리셨다고 하니, 어떤 분위기의 예배가 될 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주일 점심 식사를 위해 음식을 각자 만들어 오기로 했는데, 저는 식탁 위에 올려 놓을 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화사하고 밝은 부활주일 식탁이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둘째 아이와 함께 여러 가지 색깔의 색종이를 접고, 풀로 붙여 나름 열심히 만들어 보았습니다.
화분에 꽃을 장식하는 것은 꽃꽂이를 잘 하시는 권사님께서 도와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예배나 음식, 그 밖에 것으로 표현해보고 기억에 간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지치고 힘든 시기를 만날 때, 그런 신앙의 기억들을 꺼내보며 살포시 미소 지어볼 수 있다면 살아갈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누가복음 24장 44-48절)

12/24/2010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께요

창틀 위에 촛불이 까만 밤을 수놓으며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가겠죠

헤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도
나에겐 아무 상관 없어요
아직도 내 맘은 항상 그대 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 노래 불러요
온 세상이 그대 향기로 가득하게요



성탄종이 환하게 우리 맘에 울리면
그대 오시는 그길 위해 기도할게요

헤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도
나에겐 아무 상관 없어요
아직도 내 맘은 항상 그대 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 노래 불러요
온 세상이 그대 향기로 가득하게요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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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옮겨보았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장21절)

12/17/2010

저희 집에도 빈 방 있어요

          <몇 년전 만들어두었던 것을 오랜만에 꺼내 창문에 걸어놓은 성탄 장식들입니다.>


성탄절 행사 때 하는 연극이기도 하고, 성탄절 설교의 예화로도 쓰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빈 방 있습니까”입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한국의 어느 연출가가 대본을 쓰고 연극으로 만들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연극은 성탄절 즈음이 되면 대학로 소극장에서 오랫동안 상연되곤 하였답니다.

연극 내용은 교회 고등부 아이들이 성탄절 축하 연극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 가운데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덕구가 있었는데, 연극 담당 선생님은 덕구도 연극에 참여시키고자 대사가 아주 짧은 여관집 주인 역을 맡깁니다.
덕구가 해야 할 대사는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집에 오면 “빈 방 없어요”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덕구와 함께 연극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덕구는 연극 연습을 아주 열심히 합니다.

연극을 발표하는 날이 되어 막이 오르고 연극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집 문 앞에 이르렀고, 그들을 본 덕구는 자기가 맡은 대사 “빈 방 없어요”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덕구는 잠깐 연극과 현실을 혼란스러워 하며, “빈 방 있어요. 마구간에 가지 마세요” 하면서 웁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자기가 연극을 망쳤다고 우는 덕구에게 담당 선생님은 오히려 덕구 때문에 성탄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위로하며 연극은 마치게 됩니다.


이 연극이 올 성탄절에 생각나는 것은 저희 집에도 빈 방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덕구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예수님께 드릴 맑고 깨끗한 사랑이 저한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저희 집 빈 방에 초청하고픈 간절한 마음은 있습니다.
빈 방에 오셔서 저희의 기도 소리를 들어주시고, 저희의 찬양을 들어주시고, 저희의 예배를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 빈 방도 보잘것없으나 아기 예수님이 누우신 곳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낯선 목자들이나 동방박사들의 방문도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예수님, 저희(저희들 이름 아시죠?) 집에도 빈 방 있어요!!!”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누가복음 2장 7, 10-12, 20절/ 새번역)

4/09/2010

견신례에 참여했어요

<매주 인터넷으로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인천 할머니에게 너희들 모습 보여드리자고 꼬셔서 찍은 사진이어요.>

부활주일을 시작으로, 아이들 봄 방학이었던 이 한 주간도 참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부활주일 예배 때 견신례(Confirmation)와 입교식이 있었습니다.
견신례는 부모의 신앙에 따라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이 7학년 이상(우리 교회 기준)이 되면, 다시 신앙 교육을 받고(8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연합감리교회의 회원이 되는 입교식도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견신례를 받을 때 부모와 멘토가 함께 강단에 올라가 아이들 어깨에 함께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지난해에 견신례를 지켜보았을 때, 새롭게 신앙을 다짐하는 이를 위해 그렇게 여럿이 함께 기도해주는 모습이 참 든든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올해는 모두 20 여명의 학생들이 견신례에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강산이와 강윤이도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학생들이 다들 얼마나 예쁘고 멋져 보이던지요.
저희 아이들이 그 가운데 있어서 그랬는지 사랑스러운 느낌이 폴폴 풍겨 나왔습니다.

강단에 올라가 아이들을 축복하며 담임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부활주일 하루 전에 미리 연습한 대로 순서에 따라 예식에 참여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다른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예식에 참여하고 강단을 내려오는 얼굴 표정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긴장된 표정들입니다.
나도 그랬겠지.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신앙을 키워가는 의미 있는 시간을 좀 더 기쁜 얼굴로 맞이 했으면 좋았을 걸,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우들 몇 분이 축하한다는 인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미국 생활에 한 단계 한 단계 적응해가는 저희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격려해주시고 축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분들의 세심하고 넉넉한 마음 씀씀이는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교회 주차장을 가로 질러 가다 보니, 나무에 돋은 새순이 마치 믿음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을 닮은 것 같아 보입니다.




**미국을 방문하신 인천 할머니가 강윤이를 위해 적어주신 성경 말씀입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언12: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언13:1)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잠언13:18)

4/02/2010

부활의 계절에 보고 싶은 분

<제가 첫돌 때 찍은 가족 사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1학년 가을 학기가 되었을 때 아빠는 새로운 직장을 다니게 되셨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은 인천 시내에 살다가 아빠의 새 직장이 있는 인천 변두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사 갈 집에 수리가 필요한 상태라서 할머니는 집이 고쳐진 다음에 이사 오시기로 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할머니와 떨어져 살았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할머니에 대해서 애틋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아주 긴 시간 떨어져 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할머니 집에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시내에 계신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엄마는 이런 저런 일을 보신 것 같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갖다 드린다며, 두꺼운 종이 조각에다가 이불 꿰매는 하얀 면실과 검은 색 재봉실을 둘둘 얼마큼 감아서 챙겨두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왜 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할머니 집에 도착해서 보니, 그 때 50대 중반이신 할머니는 일터에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지만 집에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무슨 일인가 보러 나가시고 저 혼자 할머니 방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번뜩 할머니가 일 갔다가 오시면 저녁 드실 밥이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기억이 나질 않는 부분인데(나중에 엄마한테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엄마가 해 놓은 밥인지, 할머니가 우리가 올 줄 모르고 아침에 한 그릇 남겨놓고 일 가신 것인지,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담긴 밥 한 그릇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할머니가 오셨을 때 따뜻한 밥을 드시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랫목 이불 밑으로 밥그릇을 가져다 놓았는데 이것 가지고는 밥이 따뜻해질 것 같지가 않아 밥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다시 갔습니다.
연탄불 위에 올려진 솥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물을 퍼서 밥에 붓고, 뚜껑을 다시 덮어, 딱 밥 한 그릇 들어가게 만든 스티로폼 통에 밥그릇을 넣어 아랫목에 펴져 있는 이불로 잘 감싸두었습니다.
예닐곱 살짜리가 그런 생각을 해낸 것이 스스로 꽤 괜찮다고 여기며, 할머니께 들을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셨고 저를 보고 무척 기분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곧이어 할머니 드시라고 꽁꽁 묻어둔 스티로폼 통에서 밥그릇을 꺼내 내어드렸습니다.
밥그릇의 뚜껑을 여신 할머니는 물에 불어 있는 밥을 보시고, 밥이 왜 이러냐고 물으셨습니다.
저 또한 밥에 물(게다가 따뜻한 물)을 부어 놓으면 밥이 불어 오를지 몰랐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만저만 해서 할머니를 위해 따뜻한 물을 부어 놓았노라 말씀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제 설명을 듣고 흐뭇해 하시면서, 퉁퉁 불은 밥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드셨습니다.
게다가 한참 동안 친척들이나 친구 분들을 만나시면 이 어이 없는 밥 사건과 엉성하게 감긴 실 꾸러미에 대해 두고두고 애기하셨습니다.
아마도 어린 것이 할머니를 생각한답시고 한 짓이라 사랑스레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 보다 더 어렸던, 둘째 동생이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제가 서너 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할머니는 딸이지만 첫 손주인 저를 많이 위해주셨는데, 아빠가 장남이시고 남동생이 태어나자 그 동생을 정말 이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동생에게 젖을 먹이고 나면 할머니는 그 동생을 업고, 저는 옆에 걸려서 마실 다니시곤 하셨습니다.

바로 옆집에 할머니는 우리 남매를 데리고 놀러 가셨다가, 집에 돌아오려고 동생을 업고 계셨습니다.
동생을 등에 올려 포대기로 감싸고, 끈으로 돌려 매듭을 짓기 전에 아이가 흘러내려 오지 않도록 한번 추켜 올려주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월남 치마라고 했던가요?
허리는 고무줄로 되어 있고 길이가 발목까지 내려오던 치마요.
할머니가 동생을 추켜 올리면서 허리춤에 있던 치마의 천이 달려 올라갔습니다.
그 모습을 뒤에 지켜보고 있던 저는 “늙은 년이 치마도 하나 간수 못해” 하며 맹랑하기 짝이 없는 말을 했습니다.

예의 바르지 못한 말에 야단을 치실 만도 한데, 할머니와 친구 분들은 허리가 구부러져라 웃어주셨습니다.
지금에서야 변명 같지만 할머니들이 하시는 말투를 흉내낸 것이 아닐까요?
--;;
말도 잘 하고 기억력도 좋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손주들 자랑(?) 목록에 그 아이답지 않은 말투와 가요 제목만 대면 줄줄이 가사를 외워 노래하는 것이 늘 들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말도 똑 부러지게 잘 했다는데 지금은 영....


교외로 이사간 집에 방도 한 칸 더 들이고 하여 할머니도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할머니와 한 방을 썼습니다.
잠 잘 때는 할머니가 꼬옥 끌어 안아주시곤 하셨는데, 겨울이면 차가운 저의 손을 끌어다가 할머니 몸에 얹어 녹여 주셨고 발은 끌어다가 할머니 다리 사이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잠 자리에서 무슨 주문 외듯이 날마다 저에게 속삭이셨습니다.
“손에 물 묻히지 말고 발에 흙 묻히지 말고 살아라. 비행기 타고 유학 가서 공부도 많이 해라.”
이렇게 사는 것이 여성으로서 최고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또 할머니는 언제나 제 편이셨습니다.
속상하게 했던 일이나 친구들 얘기를 하면 상대방에게 얼마나 욕을 하시는지 속상했던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기도 하고, 상대가 그렇게 엄청난 욕 먹을 정도는 아니지 싶어 스르르 마음이 풀어지곤 했습니다.
어느 정도 제 기분이 괜찮아진 것 같으면 할머니는 사람이란 이런 거야, 사람 마음은 저런 거야 하시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정말 위로 받고 싶은 일은 온전히 제 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께 가져갔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늘 변함 없는 저의 지지자였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글쎄 할머니가 저 때문에 가출하신 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교 시절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어느 때, 할머니가 작은 집에 가서 며칠 동안 머무르셨던 이유가 제가 너무 까칠하게 굴어서였다고, 스무 살이 넘어 좀 컸다고 여기셨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손주 삼 남매가 곁에만 있어도 좋아하실 뿐 상처 받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었습니다.
무척 죄송했는데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은 다음에도 할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돈 많이 벌면 옷 한 벌 맞춰드리겠다고 했는데, 돈 벌어 학비에 보태며 학교만 다니다 결혼을 해버렸습니다.
결혼해서는 자동차가 생기면 할머니 태우고 좋은 데 구경시켜드린다고 했는데,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딸이 없어 딸 같이 여겨주시기도 하던 첫 손녀 결혼하는 거 보고 돌아가시려고 그러셨는지 제가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나 돌아가셨습니다.
….

할머니를 기억하며 몇 줄 글을 쓰고 보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저네요.
이렇게 이기적인 기억일 줄이야….

지금도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많이 많이 보고 싶고, 그 품에 안기어 살아 가는 이야기뿐 아니라 풀지 못한 마음의 숙제도 다 털어놓으면, 제 편이 되어 무슨 말씀을 해 주실지 궁금합니다.
할머니께 강산이도 강윤이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가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한결 같은 사랑과 삶의 지혜를 나눠주시며 자주 하셨던 “사람은 줏대가 있어야 해” 라는 말씀은 삶을 만들어가는 제게 오늘도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내어주시며 그 사랑을 확증시켜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사랑으로 살도록 도우시는 우리 주님-“주님”이라 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을 기억하는 부활의 계절이 되면, 왜 할머니가 자꾸 생각나고, 더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16:32-33)

2/19/2010

고난 묵상이 아니라 제 기도를 드려도 될까요

<못을 받은 다음 날, 못이 들어있던 아이들 봉투를 살펴보니 두 녀석 모두 어디다 못을 두었는지 빈 봉투만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못을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었지만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절제하거나 나쁜 습관을 버리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으로 삼자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지난 해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아마도), 무엇을 실천했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주변의 몇몇 집사님들은 커피도 끊어보고, 한국 드라마도 끊어보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사순절을 보낼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습니다.
무엇 하나 포기 하고 싶지 않은 나태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어찌할거나….





설교가 끝나고 재의 수요일 예전으로 죄를 회개하면서 잿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셨습니다.
모두가 차례로 줄을 서서 조용히 그 예식에 참여했습니다.
강윤이가 먼저 서고 강산이, 제가 뒤를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점점 차례가 다가오자 강산이가 무슨 맘이 들었는지 얼른 제 뒤로 자리를 옮깁니다.
자기가 아는 교우가 눈에 띄었는지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하기도 합니다.
웃고 그럴 분위기가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강산이는 자기 이마에 십자가를 받고는 큰소리로 “아유~” “에이~” 하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죄를 고백하며 숙연한 분위기에서 십자가를 받고 있는데 어찌 당황스럽던지요.
강산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느낌이 있었나봅니다.
이그그.

집에 돌아와 자기 이마에 그어진 십자가들을 거울로 비춰보며, 강윤이는 자기 십자가는 아래 한쪽이 없다는 둥, 강산이는 “닦어?, 하지마?” 물으며 재미있어 합니다.
아이들은 제가 느끼는 십자가의 무게만큼 무겁지 않은가 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며 무엇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것인가 보다 주님께 바라는 기도 제목이 더 선명해지니, 이런 저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래도 너그러이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10-11)

2/12/201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산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윤이는 친구와 함께 눈을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답니다.*^^*>


오후 2시쯤부터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이 꽤 많이 왔습니다.
이곳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라 눈이 오면 저는 반갑고 좋습니다.

눈이 엄청 내린 워싱턴에 비하면 여기에 내린 눈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곳도 눈이 오면 어려움을 겪게 되는것 같습니다.
여기는 눈이 잘 내리지 않기 때문에 눈이 자주 오는 지역에 비해 대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나 교회의 오후(내일까지) 행사나 프로그램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연이어 눈이 오고 있다고 하던대….
설날을 준비하고 계실 부모님들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님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잔뜩 실려옵니다.
아들만 둘을 두신 어머님은 이럴 줄 알았으면 딸이라도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다고 하십니다.
아빠는 강산이 강윤이 목소리 듣고 싶다며 바꾸라고 하십니다.
명절이다보니 부모님들께서는 멀리 떠나 있는 우리 가족이 많이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아버님과 어머님, 아빠와 엄마, 어머니, 동생들과 조카들 그리고 명절이면 오고 가실 모든 친적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2-6)


<눈 온 다음 날 아침, 뒤 뜰 언덕에서 비닐 썰매를 탔답니다.>

1/01/2010

맑고 밝고 또렷한 2010년이 되길


20 여년 전, 신학생으로 봉사하던 교회에서 수요일(?) 저녁 예배 대표기도 하실 분이 안 나오시는 바람에 갑자기 대신 기도를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어찌나 당황스럽고 떨리던지 뭐라고 기도하면 좋을까 하다가, 성경 말씀을 넣어 기도하면 그럴 듯 하겠다 싶어 성경을 잡고 아무 곳이나 펼쳤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말씀이 있었는데 로마서 12장 11절이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대표기도 하면서 뭐라고 기도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새해 첫날에 그 말씀이 다시 눈에 띕니다.

올해 기도제목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이뤄지길 바라는 소원들 뿐입니다.
바람들로 가득한 기도제목과 함께, 로마서의 말씀을 읽으며 어찌 살아야 할 지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겸손히 말씀처럼 살도록 도와주세요.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로마서 12장 9절-13절)

12/25/2009

좀 더 넉넉해진 성탄절을 보내며

*** Rock City에서. 호호호 ***

어머님이 써주신 글을 옮겨 적다보니 8주가 지나갔습니다.
어머님 글을 타이핑하고, 교정하고, 블로그에 올려놓고 다시 읽어보는 시간 동안 그 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어머님의 신앙 열정을 다시 한번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에너지를 조금 아낄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 아낀 에너지를 요즘 영어책(???) 들여다 보는데 사용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혀야 잘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영어와 친해져 보려고 다시 애쓰는 중이랍니다.
또 한편으로는 모임이나 볼만한 것들을 찾아 다니면서 자꾸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성탄절 밤을 보내고 있는 지금, 지난해를 떠올려보니 그 때보다 생활이나 마음이나 관계에 있어서 훨씬 넉넉한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첫 해는 긴장 속에 살았던 것 같고, 두 번째 해는 쉽지는 않았어도 여유가 조금 생겼고, 이제 또 한 해를 살면 이곳 삶에 더욱 익숙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더 나아가서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더 깊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서3:12-16)

10/02/2009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는 어제 준비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추석날 아침 식사를 하셨을 겁니다.
추석 아침 식사가 지나고 많은 설거지를 마친 다음 조금 한가해지는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드려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예희네가 들렸다 갔어.
예희네 작은 아빠가 복숭아도 한 상자 사오시고 형 대신이라며 용돈도 주고 가셨어.
형 대신이라고…………….
고맙다고 전화 한번 해.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전화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다지 밝지 않은 것 같아 강윤이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손자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아하시려나 했는데 지금 송편 만들고 있다며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우리 가족이 곁에 없어서 허전하신지…

강화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할아버지, 난 강윤이.”
“그래, 강윤이구나.’
“응.”
“응이 뭐야. 존댓말 해야지!”
“아빠 바꿀게요.”
“저예요.”
“(흐뭇한 웃음) 그래, 그래.”
아버님은 손자보다 아들이 더 좋으신가 봅니다.
강화 부모님들을 제 나름대로 이해해 보면 이렇습니다.
조금 특별한 첫 손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시는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둘째 손자를 맞이해서는 첫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그대로 지내다 보니 손자들과 많은 정을 나누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자잘한 정을 나누는데 서투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목회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아깝지 않게 헌신하신 부모님들이십니다.
어머님은 미국에 다녀가신 후, 강산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기도를 많이 했는데 강윤이를 위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아들이든 손자든 다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압니다.

예희네 목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돈 어른-그러니까 제 부모님이시죠-용돈까지 챙기는 서방님과 동생(동서) 부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어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감동입니다.
보통 때도 가족들에게 늘 베풀고 나누는데 인색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서방님이나 동생이나 장애우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들을 가르치는 사랑 많은 특수교육 교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누리는 복이 참으로 큽니다.


그리고…
올 추석에는 아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멀리 있는 딸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시는지 전화도 잘 받으려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아빠 사촌들까지 다섯, 여섯 집에 걸쳐 딸이 저 하나라고 참으로 귀하고 예쁘게 키워주셨습니다.
연세도 들어가가시고 사랑을 많이 주신 딸이라 자꾸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명절 오후에 아빠를 찾아가면 작은 술상을 앞에 두시고, 말이 많지도 않으신 분이 이런 저런 얘기도 하시고 재미난 추석 특집 영화도 보시곤 합니다.
그럴 때 그냥 아빠 곁에 앉아서 말도 가끔 거들어 드리고 술상에 놓인 안주도 함께 먹으면 좋아하십니다.
맛있게 먹으면 아빠는 더 먹으라고 제 앞으로 밀어놓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 음식을 잔뜩 먹어 배가 불러도 더 먹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니시면서부터는 저에게 술을 권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도 한잔 주세요” 하면 아빠가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실수가 없으신 아빠 앞이라 조심스럽기도 하면서, 명절 전날의 바쁨과는 달리 명절 오후에 느끼는 어떤 허탈감-제 생각에는 아빠의 직계 가족에 대한-을 아빠와 저는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메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다시 한번 미국을 방문하실 마음을 갖고 계시다니, 그것을 소망 삼아 기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조금 여유 있게 오셔서 한국에서처럼 아이들 데리고 낚시 가요.
여기서는 얼음 낚시는 어렵겠지만 호수들이 여기 저기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교동으로 낚시 갔을 때는 부탄가스가 얼어 부르스타에 점화가 안 될 정도로 추웠잖아요.
그래서 승합차 안으로 들어가 라면 끓여먹고요.
아빠, 행복했던 때만 기억하세요.
저도 아빠 다시 뵐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예희네, 태영이, 준서네, 그리고 명절이면 오고 가는 모든 친척들, 모두 즐거운 추석 되시길 기도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5:8)

5/08/2009

어머니 날 꽃을 보며


참으로 바쁜 한 주를 보냈습니다.
“바쁘다”는 말이 저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번 주를 돌아보면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터에서도 바빴고, 집에 돌아와 강산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발 치료 하러 갔다 오고, 그때부터 한국학교 학기 마지막 준비인 상장, 학습평가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작은 선물들을 만들면서 저녁 준비해서 먹고요.
오늘이 아무래도 바쁠 것 같아 내일 한국학교에 필요한 준비물을 이미 다 준비를 해 두었는데도 하루가 뚝딱 가버렸습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을 한 가지 한 가지 마무리할 때마다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옵니다.--!

휘몰아치듯 바쁜 하루였지만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늘이 “어버이의 날” 입니다.
가끔은 어버이의 날에도 부모님들과 동생들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기도 하고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고 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보내셨을까 “살짝” 궁금합니다.

엄청 궁금해 하지 않고 조금만 궁금해 하는 것은 이곳에서 제대로 섬겨 드리지도 못하거니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길 바라는 제 멋대로의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다음 주 월요일쯤 되어 전화 드릴 때 어버이 날은 어떻게 보내셨느냐 여쭤보는 정도로 지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래도 되는지…

여기는 이번 주일이 어머니의 날입니다.
어머니에게 선물도 많이 하고 가족끼리 식사도 하는 날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물이 좋을지 텔레비전에서 광고도 제법 많이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용돈 받는 것을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앙케이트 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는 보석, 향수, 옷 광고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비단 어머니의 날 뿐만 아니라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라도 더욱 뭉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날들에 여행을 가더라도 가족끼리 같이 가고 말이죠.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의 이혼율이 세계 1위인지…’
이그~, 쓸 데 없는 생각!


며칠 전에 강산이가 학교에 갔다 오면서 화분을 하나 갔고 왔습니다.
이거 뭐 잘못 가져온 것은 아닌가 싶어 슬슬 구슬리며 물어보았습니다.
“강산아, 이 화분 뭐야?”
“코스코에서~ 게미지 선생님하고~ 샀어.”
“어, 산거야? 게미지 선생님 하고? 언제? 왜?”
“…….”

강산이는 이층으로 올라가 책가방을 내려 놓고 옷을 갈아 입고 내려옵니다.
“자!”
절반으로 접은 초록색 도화지를 살짝 제 옆에 놓습니다.
펼쳐보니 어머니 날 카드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 큰 화분이 어머니 날 선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선물하기 위해 꽃을 고른 사람이 강산이인지 게미지 선생님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저에게 온 선물인 듯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분을 현관문 앞에 햇빛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주고 꽃이 더욱 활짝 피라고 물을 주면서 저는 마음으로 이 화분을 한국에 계신 어머니들께 보내드렸습니다.
어머님, 엄마, 어머니, 그리고 막내 동생댁의 어머니,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기도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마음뿐이지만 여기 올린 사진 가득 제 마음을 담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 사랑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100:1-5)

4/10/2009

속물(俗物)과 속물(贖物)

<우리 교회 현관 안쪽 벽에 장식되어 있는 십자가들>
-교인들 가정마다 십자가를 하나씩 꾸며서 모은 것입니다.
십자가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랍니다.
성금요일 묵상예배에 다녀왔습니다.
며칠 마음을 힘들게 하던 문제를 가지고 드린 예배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가?
세상과 벗하여 살면서도 거기에 매이지 않는 자유한 삶.

길지 않은 지난 삶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대답은 아직도 속물(俗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대답만 남습니다.
조금만 시간 내어 기도해 보아도, 좋아하는 말씀 한 장만 읽어 보아도 온통 감사할 것 뿐인데 언제까지 이리 정신 못 차리고 투정하고 살 것인지 한심한 노릇입니다.

오늘 예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을 묵상하는 예배였습니다.
첫 번째 말씀과 두 번째 말씀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동안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예배당에 가득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때도 이런 소리가 났을까 싶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예배 분위기 하고 잘 어울리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에도 저는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동차에 송화 가루 천지인데 잘 됐다. 아주 깨끗해지겠는데.’
꽃가루가 많은 계절이라 제 차가 송화 가루에 온통 뒤덮혀 있어서 비가 언제 오려나 했었거든요.
어느 목사님은 교인 가운데 세차장 하는 사람이 있어 주말에 비오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는데 저는 제 것에만 관심 충만이지요.
게다가 예배에 집중해야할 시간이구요.
이러니 속물이지요.--!

우리 교회에서 드린 성 금요일 기도회 프로그램은 미 연합 감리교 예배서를 참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 예배에서는 순서 가운데 있는 공동기도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여러 개의 기도문 가운데 두 개만 옮겨보겠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만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교회를 도우셔서 하나님과 또 우리 서로간에 행하도록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케 하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불친절한 태도를 없애주시고, 성냄이나 덕스럽지 않은 말 따 위를 없게 하시옵소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서로가 깊은 관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도우소서.
다른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을 우리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하시며, 또 우리 서로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인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기적이지 않게 하시고 매일의 삶을 사랑 가운데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기도문에 끝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길” 이란 구절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 부분은 지금 발견한 것입니다.
어제 오늘 제 기도 내용이었거든요.
하~~~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 주님이 오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두가 십자가를 향한 믿음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들이 지니는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마음가짐이나 욕망을 십자가에서 버리게 하옵소서.
주님이 보여주신 남 섬기는 사랑을 매일의 기도를 통해 닮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진 모든 썩은 것들과 불신앙의 소산을 제거시키셔서 이제는 옳은 일함에 두려움 갖지 않게 하시고 옳지 않은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게 하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 당신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순절 동안 이 세상에서의 내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뻔한 결론으로 부활절을 맞게 될 것 같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제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속물(俗物)이라 해도, 속물(贖物)로 오신 예수님 따르는 길을 당당하게 갈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2/27/2009

약속으로 시작하는 사순절


이번 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음과 참회를 의미하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만을 기억하길 바라는 상징적인 예식으로 목사님들은 우리에게 잿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지니고 다닐 못도 하나씩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사순절 동안 예수님 십자가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 한 사람 사랑하기.
두 번째, 하나 좋은 것 나누기.
세 번째, 하나 나쁜 습관 버리기.
이 세 가지 제안을 보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부끄러운 것들이라 여기에 적지는 못하겠습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적당히 사랑하는 척하면 되고, 꼭 나누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버리지 않아도 사는데 큰 문제 없다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제 평생에 한번뿐인 올해 사순절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내려면 마음을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주신 못을 꼭 가지고 다니며 십자가의 예수님 생각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정한 약속들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 마음이 더 아프시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재의 수요일 예전 가운데 “고백과 용서”의 기도에 힘입어서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죄악의 사슬을 끊고 주께 돌아오는 모든 죄인들의 회개를 들으시고, 그 모든 죄과를 용서하시며, 이와 같이 회개하며 주께 나아오는 우리 모두의 삶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1/02/2009

제대로 된 불꽃이 될래요


지난 수요일 저녁 저녁을 먹고 나서 송구영신 예배를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창밖이 번쩍하며 꽝꽝 합니다.
비가 올 날씨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 폭죽을 터트렸나 했습니다.
‘여기는 새해를 맞이할 때 동네에서도 폭죽을 터트리는구나.
하려면 제대로 몇 번 더 하지 싱겁게 두 번하고 마네’ 했습니다.

그로부터 20 여분쯤 지나, 옷 갈아입고 교회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이 있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주황빛 불빛이 보이고 뭔가 이상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우리 집 앞에 있는 길 건너 잔디 언덕이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놀래라.’
불길이 점점 넓어지는데 사람들 몇몇이 그 가장자리에 서서 “불났나봐”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불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소방서에 누가 연락은 했는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소방차가 왔습니다.
사이렌은 울리지 않고 조용하게 와서 한 사람은 쟁기 같은 도구로 불을 덮고 한 사람은 물로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방차는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에서는 폭죽을 터트릴 수 없다고 합니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다음 날 새해 아침 CNN 뉴스에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화려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폭죽들이 터지면서 불꽃놀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는 폭죽은 터트리지 않았지만 새해가 되는 그 때에 100 여명이 넘는 찬양단과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함께 불렀습니다.

같은 폭죽이라도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있고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된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불꽃놀이에서 처럼 필요한 곳에 쓰여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과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5-6)

12/19/2008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성탄절

<강산이가 교회 Jubilee에서 만든 카드입니다.>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빨강과 초록빛의 성탄 장식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좋은 소식을, 큰 선물을 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선물을 주셨고, 새롭고 놀라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넉넉한 분임을 믿기에 언제나 이 맘 때가 되면 들뜨는가 봅니다.
또 그 선물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풍성하게 여겨집니다.

아기 예수님이 찾아오실 수 있도록 마음 한 구석 치워놓으려 합니다.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구주의 나심을 전해주었을 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15,16,20)

9/17/2008

살면서...

<이곳 생활방식에 따라 세탁기와 건조기가 늘 함께 있습니다.>

쿵덕 쿵덕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아래층에서 들으면 마치 방앗간 떡 찧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습니다.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더운 날 오후가 되면 세탁기가 있는 위층이 더욱 더워지고 올라가기 싫어집니다.
그러기 전에 모아진 빨래를 해치우려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추석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늘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명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부설 기관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유치원, 방과 후 학교, 노인 대학, 한국학교...
에~, 또...
토요일에는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에서 추석 행사를 했습니다.
제기 차기, 송편 만들기, 민요 배우기와 민속 춤, 사물놀이 공연도 있었습니다.
주일 점심 식사 때는 송편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한국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주일 저녁 집에 들어온 남편이 먼저 인터넷 전화를 연결한 것입니다.
“추석인데 한국에 전화했어?”
아직 안했을 거라는 확신과 더불어 주일이 주는 긴장감이 해소되는 주일 저녁에 느껴지는 피곤과 짜증이 말 속에 묻어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하는 시간은 주로 월요일 아침이나 저녁이고 그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저인데 이럴 땐 그 공(功)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명절을 함께 보내던 자녀들 없이 쓸쓸한 명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월요일마다 전화를 드렸다 하더라도 명절이니 그 당일에 전화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빨리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남편과 일이 주어지면 꾸준히 해나가는 저와 천생연분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같이 살면서 남편은 저에게서 성실함을 배우고, 저는 남편에게서 뛰어난 능률(能率)을 배울 수 있으니 참으로 환상적인 부부입니다.ㅋㅋㅋ

명절을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때가 되면 으레 치루고 지나가는 명절은 별로입니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만나서 음식 만들어 먹으며 사는 얘기 나누고 친척과 이웃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담아 선물도 하는, 마음이 담긴 명절이라야 제 맛이 납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 서로 배우고 감싸주면서 “우리” 가족, “우리” 친척, “우리”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명절이 주는 의미도 가볍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명절 지내는 재미를 느끼려는 순간 한국을 떠나온 것 같습니다.
동생들네나 우리네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저들끼리 잘 어울려 놀고, 가족이 모여 할 수 있는 재미난 일도 만들어 해볼 수 있는 참에 헤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더 큰 것을 도모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여기며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면서 가족 간의 정이 더욱 두터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곳에서 처음 명절을 보내면서, 조금은 쓸쓸했을 부모님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시댁에서 음식 만드느라 혼자 애썼을 동생과 보나마나 형의 빈자리가 표나지 않게 하려고 많이 웃고 떠들었을 서방님과 예희, 예람이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그리고 아빠 칠순 잔치 준비하는데 누나 대신 책임져야할 부담을 떠맡은 막내 동생과 동생댁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영어를 아주 잘한다는 일곱 살 된 준서와 준민이도 보고 싶고.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고 있는 동안 사람은 정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낀다. -모파상이 한 말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