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2019

잘 되든 안 되든



지난 6월 하순경,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그 교회는 앞으로 2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여러 교회를 돌보는 감리사 직분도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며 교회나 교인에게 부담되는 취임식을 하지 않기로 하신 것 같았다.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기에 같은 지방이라 해도 교회들은 멀리 뚝뚝 떨어져 있다. 지방 행사를 하려면 반나절 혹은 하룻낮 동안 자동차로 운전하여 모이니 보통은 하룻밤을 묵어가며 만나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만나면 서로 얼굴 보며 안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귀하다.

그래서였을까? 교역자회의를 마친 다음 날 감리사님은 헤어지기 전에 볼링을 치자고 제안하셨다. 그러면 점심도 대접하시겠다며.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셨나 보다. 아주 먼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분들은 동참하고 싶어도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형편이 허락하는 분들이 남게 되었다.

난 참 운동을 못 한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발야구를 종종 했었는데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라 게임 규칙을 잘 이해해서 그나마 껴주었다. 운동회 때 달리기는 항상 꼴찌에서 두 번째. 네 명이 달리든 여덟 명이 달리든. 둥그렇게 서서 자유 배구를 하면 공이 다른 데로 튕겨가게 하든지 공 잡으려고 뒷걸음질 치다 자빠지기 일쑤였고. 탁구를 해도 공이 오고 가길 서너 번 넘긴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이력으로 볼 때 볼링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결코 먼저 나서서 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보아 그냥 하는 거다.

목사님들과 떨어져 사모님들은 아이들과 섞여 두 레인을 차지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언제 볼링공을 잡아보았는지 기억도 없으나 몇 번 해 본 솜씨로 공을 굴렸다. 웬일로 공이 레인을 벗어나지 않고 핀들을 몇 개씩 쓰러트렸다. 스트라이크도 있었다. 별일이었다.

한 게임이 끝나고 게임이 좀 되는 날인 듯싶어 한 번 더 도전했다. 그럼 그렇지. 내 손을 떠난 공은 대부분 레인을 벗어나 도랑에 빠져 부끄러운 듯 달아났고 겨우 빵점만 면하였다. 차라리 첫판에 이랬으면 두 번째는 아예 나서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첫판은 엉망이더라도 두 번째가 좀 더 낫든지. 공을 굴리고 돌아서 자리로 들어올 때마다 점수는 상관없는 척하려 해도 얼굴 표정이 자꾸 어색해졌다. 레인 위에서 자리로 돌아오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몸에 힘도 점점 빠지면서 점수를 올리는 일보다 주변으로 관심이 흩어졌다. 슬쩍 옆 레인의 점수판을 보니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점수가 보였다. 누구지? 부목사님의 아들 결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결이. 결이는 볼링을 처음 해보는 것 같았다. 결이의 표정으로 봐서 그 녀석도 고전 중인 듯했다. 남 일이 아니었다. 나이 많은 내가 짐짓 여유를 부리며 결이에게 말을 걸었다.

"결이, 나랑 비슷한데! 우리 하이파이브하자.“

결이는 수줍게 미소지으며 내가 먼저 내민 손을 부끄럽지 않게 해 주었다. 결이도 공이 맘처럼 굴러가 주질 않아 속상해하던 참에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내가 말을 걸어 주어 마음이 조금 풀렸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결이가 있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무엇이든 잘 하면 잘 하는 데로, 못 하면 못 하는 데로, 공감하며 말 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자주 볼링장을 다닌다.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난 안 간다. 이러다 언젠가 맘 내키는 날 가게 되면 다시 한번 공을 굴려보아야지.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옆 사람에게 또 말을 걸어야겠다. 잘 되든 안 되든

8/28/2019

이런 소리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잠이 설핏 깼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젠 일어날 때 되지 않았어?, 남편이 낮은 소리로 깨웠다. 먼저 들은 소리는 남편이 교회 가려고 일어나 준비한 것이었고, 다음 것은 자신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려주는 소리다. 콩 자루가 굴러떨어지듯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늘 하던 대로 준비를 마치고 교회로 갔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지 밖은 어두웠다. 얼마 전부터 남편 자동차에 있는 시계가 무슨 이유인지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시간대는 달라도 분은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기에 흘깃 숫자를 읽었다. 평상시보다 몇 분 빠르게 교회로 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현관문 안쪽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며 친교하는 커다란 원형 탁자들과 의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에 대한 첫인상을 주는 곳이다. 제자리를 벗어난 의자들만이라도 탁자 아래로 쏙쏙 밀어 넣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는 단정한 것이 나으므로. 이번엔 정수기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쌓여있던 일회용 컵들은 다 사용되고 하나만 남아 있었다. 별로 손댈 것이 없네.

아무도 없는 예배실, 익숙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의지했다. 편안하게 또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으려나. 아직 예배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예배를 시작해야 할 시간도 지난 것 같았다.

'월요일 지나 화요일 새벽까지 모두가 피곤한 모양이군.‘

'주여, 우리와 함께. 우리 교회와 함께...‘

정적 속에 눈을 감고 있으니 더이상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빠르게 튕기는 기타 소리의 알람 때문에 눈을 떠야 했다. 어이쿠, 왜 이 시간에 알람이? 얼른 가방을 뒤져 알람을 껐다. 그때 난 봤다. 익숙한 숫자의 나열을. 이제야 집에서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는 숫자였다.

"여보!“

이번엔 내가 예배실 앞쪽에 앉은 남편을 낮은 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돌아보는 남편에게 벽에 걸린 시계를 보라고 가리켰다. 천천히 자신의 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왜 안 바뀌었지?"

전날 반가운 몇몇 목회자 부부들을 만나기 위해 조지아주 콜럼버스에 다녀왔다. 지금 살고 있는 앨라배마주 경계를 넘어 조지아주로 들어서면 셀폰이나 자동차의 시계가 한 시간 빠르게 자동으로 바뀐다. 네 개의 시간대를 가진 미국에서 그중 한 경계를 넘나들며 다니는 일이 자주 있다. 조지아주로 넘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니 셀폰이 자기가 알아서 시간대를 고쳤어야 했는데 조지아주 시간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이없게도 남편 것만.

이젠 기대가 생겼다. 조금 더 있으니 부목사님도 오시고 집사님도 오셨다. 남편은 새벽 말씀을 나누던 중 이래저래 한 시간 일찍 나왔노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도 새벽 기도에 안 오길래 기도가 더욱 간절히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엔 같이 기도하자며 여느 때처럼 소리를 내어 기도를 시작했다. 난 이미 한 시간을 기도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뻐근하게 느껴졌다. 예배실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아직도 날이 샐 줄 모르고 어두웠다. 밖을 보니 그새 비가 꽤 내렸나 보다. 그래서 더 어두웠는지.

온통 교회 생각으로 가득한 남편은 초저녁 곯아떨어졌다가도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다시 교회에 간다. 이런 일이 잦다. 시간을 혼동할 만했다.

회계사무실에서 3년 일하는 동안 2개의 주황색 형광펜을 오롯이 썼더랬다. 자신의 색으로 주변을 도드라지게 밝혀주는 형광펜. 노란색 형광펜을 일반적으로 많이 쓰기에 주황색 형광펜이 그어지는 곳은 더 눈에 띈다. 주황색 형광펜은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잉크를 온전히 소모하며 나를 도왔다. 그 공로를 인정하여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남편을 보면 그 주황색 형광펜이 자꾸 생각난다.

오전 내내 흐려 쌀국수가 생각났다. 남편과 산이, 부목사님과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부목사님이 말했다.

"목사님, 새벽에 한 시간 일찍 나오셔서 피곤하시겠어요.“

", 잠잘 때가 아니다. 기도해라. 그런 신호였나 봐.“

식당에서 우리의 음식값을 대신 내어준 교우, 교회를 위해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나눠주는 교우,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교우... 그들의 목소리가 천사의 소리로 들린다는 남편. 자신의 새벽 알람 소리도 천사의 소리였다고 하려나.

8/15/2019

새로 균형 잡기



웤 웤 웤

유투브 동영상에서 나오는 소리다. 걷는(walk) 동안 힘내라고 넣어주는 추임새다. 이 동영상을 이끌어가는 레슬리의 구호에 맞추어 이렇게 저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난다.

이 동영상은 우리 교회 권사님한테서 정보를 얻었다. 권사님은 걷는 운동이고 집에서 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딱 내 스타일! 권사님이 보내준 영상을 보고 나서 유투브 검색창에 영어로 walk at home(워크 앳 홈)을 적어 넣었다. 여러 개 동영상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몇 개를 따라 걸어보니 15분짜리 동영상을 선택하면 1마일(1.6 킬로미터), 30분짜리는 2마일, 45분짜리는 3마일을 걷도록 편집되어 있는 것 같다.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걷기가 시작된다. 제자리에서 조금 걷다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으로 뒤로도 걷는다. 팔은 옆으로 혹은 위아래로 뻗기도 한다. 따라하기도 쉽고 땀도 제법 나서 운동하는 것 같다.

이렇게 며칠을 따라 하다가 조금 더 힘차게 걷는 동영상을 클릭했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기도 했다. 앞으로 몇 걸음 걷다가 4박자 때 박수를 한 번 짝! 뒤로 걷다가 짝! 이번엔 사선으로 걷는 동작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어머! 발이 꼬이고 박자를 놓치면서 손뼉 칠 순간이 지나가버렸다. 그럼 얼른 동작을 끊고 진행되고 있는 동작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무슨 고집인지 손뼉 치는 박자까지 갔다. 내 나름의 계산으로는 빨리감기 기능처럼 몸을 빠르게 움직여 따라가면 놓친 박자를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맘 같지 않았다. 이게 무슨 어려운 거라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폭발했다. 옆에서 자기 일하던 산이가 희한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배뚱! (배가 뚱뚱하다고), 하고 부르는 바람에 겨우 웃음을 추스렸다.

내 몸의 균형이 깨졌나 보다. 사선으로 혹은 지그재그로 걷는 운동신경이 잠자고 있는 듯하다. 하긴 이것 뿐이 아니다. 먹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에 치우쳐 있고, 책 읽는 시간도 엄청 줄어 있고, 지난 봄에 비해 교회 가서 기도하는 시간도 줄었다. 몸의 불균형이 생활 전반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해주었다.

혼자 집에서 운동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다. 목표가 분명해서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야무진 사람이어야 한다. 한편, 목표가 확실하지 않은 경박한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쉽다. 자신과 타협하는 것은 시간도 안 걸리고 의지가 필요치 않다. 그래서 운동을 꾸준히 하기 보다는 안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대단한 의지와 의지 없음, 나는 어느 쪽으로 얼마큼 가 있을까. 건강한 삶을 위해 새로 균형을 잡아보자.

감사하게도 맘만 먹으면 새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늘 주어진다. 방학과 개학, 한국방문과 미국이민생활, 일과 쉼,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더욱 사랑 언제든 균형감각을 되찾을 수 이유는 중심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중심이고 변함없는 그분, 하나님

8/07/2019

돌아온 둘째 아들

<회사가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 윤이 >

둘째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성경 속 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4년 동안 집을 나가 대학교를 잘 마친 어엿한 청년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부모에겐 투덜이 아이인 나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올 여름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집에서 먼 곳에 취직하려나 싶었는데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가까운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둘째 윤이의 취업을 위하여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과 우리 부부는 열심히 기도했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인 윤이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곳,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게 돈을 잘 벌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시길 바랐다. 윤이가 취업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더 생각하게 되었다.

윤이 소식을 들은 여러 교우들과 친구들은 아들이 곁으로 와서 좋은 지 나쁜 지 묻곤 한다. 좋기도 하고 불편한 것도 있어 난 얼른 대답을 못하고 좋지요, 하고 만다. 내 대답을 듣는 이들도 당연히 좋을 거라는 반응을 예상했는지 말끝이 흐려지는 이유를 다시 묻는 이가 없다. 사실 모든 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약간의 불편도 오히려 유익하다.

아무래도 가까이에 있으면 일상생활에 간섭하게 된다. 아들에겐 짜증나는 잔소리이고 나에겐 서운한 대거리가 될 수있다. 얘기하다 보면 아들은 직장에서,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서로에게 얹어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멀리 살면 모르고 지나갈 일도 시시콜콜 알게 되리라. 하지만 자기방어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이 분명하다.

크든 작든 혼자 그리고 셋이 사용하던 공간을 넷이 함께 나누어야 한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빌린 기간도 다 되어가고, 네 사람이 사용할 공간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내세워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고 준비중이다.

자녀가 하나이다가 둘째가 태어나면 일이 세 배(두 배가 아니다!)가 된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이가 둘이 되면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의 수가 두 배 이상이기 때문인가 보다. 나에게도 세 배로 늘어난 가사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하도 의자에만 앉아 있어서 몸에 살들이 다정한 척 눌러 앉아가는데, 하는 일이 늘어나면 열량 소비도 많아지고 살들도 적당히 떨어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집 나갔던 아들과 다시 같이 살게 되어 좋은 점은 더욱 많다.

다른 가족과 친척이 없는 타국에서 네 식구라도 같이 있게 되어 든든하다.
동생을 그리워하는 형의 슬픔을 씻어준다.
엄마에게 용돈 그리고 차를 사 주겠단다.
십일조 하려는 교인이 한 명 늘어났다.
아들에게 교회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교회 청년들을 모을 씨앗이 생겼다.
아들 곁에 하나님을 믿는 직장 선배들이 여럿이다.
……

남편에게도 물었다.

윤이가 돌아와서 좋은 점, 세 가지만 말해 보시오.

가족이 모여 살게 된 것, 가족과 교회의 미래가 확 열리는 것, 형이 좋아한다.

남편은 고민 없이 단숨에 대답했다.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나와 겹쳤다. 두 번째 대답은 너무 추상적이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남편은 말 그대로라며 웃었다.

그럼 안 좋은 점 세 가지만 말해 보시오.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이번에도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이 돌아왔다.

안 좋은 점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5/22/2019

여름날의 지혜를 찾아 떠나는



<아들 산이가 찍은 사진이에요.>

이곳 아이들이 이번 주중에 여름 방학을 맞이한다. 올여름은 유난히 많은 교우들이 방학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떠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우리 교우들은 한 해 걸러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는 경향이 있단다. 그것이 올해인가 보다.

여름성경학교도 조금 서둘러 지난 주말에 열렸다. 성경학교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우리들의 열심이 미흡함을 말로 하지는 않았으나 서로들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부족함을 마음으로나마 인정하고 있어서 그랬을까. 성경학교가 하루 하루 마무리될 때마다 우리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이끌어가고 계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빈 틈을 은혜로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성경학교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보조하는 중고등부 학생들, 시간과 재물과 기도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이들이 어찌 예쁘게 보이던지 그저 감사함으로 바라보니 원망과 시비없이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어렴풋이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립보서 2:13-14)





여름성경학교 전 주에는 둘째 아들 윤이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간다고 집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4년이 지났다. 주거지의 독립에, 이젠 경제적인 독립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축하하면서도 조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이 자신의 자랑거리인 산이도 집에 와서 이틀을 울었다. 아무 소리가 안 들려 뭐하나 봤더니 의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강화할머니 인천할머니 강화할아버지 윤이 보고 싶어서…”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오셨으면 좋겠고, 강화할아버지가 윤이 보고 싶으실 텐데 돌아가셔서 볼 수가 없으니 슬프다는 뜻이었다. 금요기도회가 끝나고 나서는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윤이가 집에는 안 오냐며, 보고 싶다나 뭐라나.

졸업식 때, 윤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 옆 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신목사님 가족과 학교와 가까운 한인교회에서 사귄 목사님 가족과 집사님을 뵈었다. 또 몇몇 분이 멀리서 윤이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윤이가 한 사회인으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커가는 데는 여러 이웃들이 베풀어 준 사랑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다.

예상치 못한 밀물 때를 만나 급하게 배를 띄워 바쁘게 일하다가 어느 틈에 벌써 썰물이 되어 물 빠지는 바닷가에 서 있는 것 같다. 습하고 덥고 긴 몽고메리 여름이 시작되었다. 무더운 지역이니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는 지혜도 주셨을 것이다. 청량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까지 느긋하게 그 지혜를 찾아 나서야겠다.

5/09/2019

물방울 보다 맑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




에엥~
동네방네 떠나가라 사이렌이 울린다. 한국에서 민방위 훈련 때도 이렇게 소리가 크고 날카롭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울리는 이 경보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집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소리가 내는 파장에 온 세상이 갇힌 듯이 귀가 멍했다.

지난 수요일 오후였다. 날씨 예보 알림 창이 휴대폰 화면에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었다. 그 정도 열심이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 줄만 했다. 화면을 열었다. 오후 다섯 시 근처에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였다. 멀리 하늘을 내다보니 먹구름이 한가득이었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싶었은데 먹구름을 순식간에 우리 동네까지 몰고 왔다. 아까 불어 대던 사이렌이 아마 폭풍우를 조심하라는 경보였나 보다. 순식간에 깜깜해지더니 후두둑 후두둑 탕탕 퉁퉁 쏴아 촤악 비가 쏟아져 내렸다. 뒷문으로 나가 굵고 세찬 빗줄기를 무심하게 감상했다. 이따가 교회 가는 시간에는 그만 그쳤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교회 갈 준비를 하러 몸을 돌렸다.

비는 오래지 않아 그쳤다. 비가 더 올까 봐 다른 날보다 이십여 분 서둘러 교회에 도착하였다. 남편이 교회 앞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왜 나와 있느냐고 물었더니 비 온 뒤라 서늘한 공기가 좋아 잠시 걷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걸어볼까. 교회 현관 앞쪽에 있는 인도를 따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가 갔다가 수요 저녁 예배를 앞둔 설교자와 걷고 있자니 뭔가 생각할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같이 걸어도 좋단다.   

교회 안에서 우릴 지켜보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우리가 걷는 방향을 따라 장난스러운 잔걸음을 치며 따라오는 아이들.

저녁은 먹었니?
.
뭘 먹었니?
콩나물국이랑, 달걀말이랑 여기서 먹었어요.
그래? 엄마가 도시락 싸 오셨구나? 맛있었겠다!
!

엄마가 마련한 도시락을 교회에서 먹는 맛은 집에서 먹는 것과는 색다를 것 같았다. 다시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지가 인도 쪽으로 늘어지고 봄이라 피워낸 초록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 녀석이 다람쥐처럼 나무 중간쯤에 올라가 있었다. 녀석이 얼마나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지 그만 그 아이의 속셈을 눈치채버렸다.

너어~

아이는 천진스럽게 미소를 보냈다. 곧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이에게 모른 척 속아주며 놀아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무 밑을 피해 빙 둘러 걸어갔다. 그래도 아이는 맑은 얼굴로 웃어주었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아이들도 나무에 올라간 형아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나무 그늘을 피하지 않고 달리기 준비 자세를 하더니 쌩하고 뛰어나갔다. 가늘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렸으나 잎사귀에 달린 물들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폭우로 많은 물방울을 머금고 있던 나무가 시원하게 몸을 털었다.

우와! 헤헤헤.

머리가 젖고도 좋단다. 이 작고 동글동글한 녀석들의 웃음 소리가 사랑스러웠다. 내 아이들도 어릴 적에 저런 낭랑한 웃음을 들려줬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쉽다.

조심해~

혹시 물 묻은 가지가 미끄러울까 싶어 나무에 올라가 있는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 잔소리 같이 들리지 않게 말끝을 최대한 공손하게 했다.

네에~

아이도 예의 바르게 대답을 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편한 녀석의 억양이라 더 예쁘게 들렸다.

5/01/2019

너무 오래된 운동화




오크마운틴(Oak Mountain)에 도착했다. 어느 길로 걸을까 정하는데 산이는 무슨 이유인지 파란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미 가 있었다. 예상대로 점심 때가 다 되어 도착했다. 하루 중 기온이 제일 높아지는 오후 두, 세 시를 피하려면 너무 멀지 않게 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운 한낮에 바깥 활동하는 것은 끔찍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영 맥을 못 추는 까닭이다. 지난번에 갔던 길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짧게 걸어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사실 그렇게 괴로워하는 더위를 피해 산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날마다 일어나는 새벽 시간에 자연스럽게 잠이 깼다. 그때부터 슬슬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햇볕이 옅은 오전 시간에 걸을 수 있음을 멀쩡히 인지했다. 그렇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어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볼까. 휴대폰을 켜서 지난 밤에 올라온 뉴스를 훑었다. 흥미로운 제목들은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밝은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다 보니 눈이 피곤해졌다.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쯤 지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평상시처럼 아침을 챙겨 먹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산에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듯하여 자동차로 두 시간쯤 달려 노스트레일(North Trail) 입구에 다다랐다. 12. 아침 두 시간을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한 결과로 머리 꼭대기에 해를 이고 산길을 걸어야 했다.

남편과 빨간색 트레일을 걷기로 합의했다. 난 가깝게, 남편은 좀 더 멀리 걷고 싶어 했다. 어찌 할 지는 걷다가 결정하기로. , 산아 가자! 그런데 아들 산이는 파란색 길을 가리키며 꼼짝하지 않았다. 거 참 지도에서 다시 파란 길을 살펴 적당히 돌아올 길을 확인하고는 산이가 원하는 길로 들어섰다.

에구구 처음부터 오르막 길이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이도 땀을 뻘뻘 흘렸다. 그냥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지려는 때였다.

이런!
?

도통 놀라운 내색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 무슨 일로 그러나 걱정이 되었다.

산이 신발 밑창.

산에 간다고 보통 때 신던 신발은 아니라며 다른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그 정도로 낡은 줄 몰랐다. 다정하게도 양쪽 신발 밑창 모두가 절반 가까이 덜렁거렸다.




남편은 얇은 나뭇가지로 묶어주겠다며 가까이에 있는 식물 줄기를 꺾었다. 줄기에 붙은 잎을 떼어내고 신발에 동여매려 하자 뚝 끊어져버렸다. 남편은 산이의 운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신발끈을 어느 정도 풀었다. 그리고 얼기설기 밑창까지 함께 엮었다. 밑창이 더이상 덜렁거리지 않았다. 산이도 걸을 만한 것 같았다.

그만 내려가자. 우리 삼분의 일 정도 밖에 못 온 것 같아. 왔던 길 다시 가는 것, 나도 재미없지만 그냥 돌아가자.

덥고 숨차고 신발이 엉망이니 돌아가자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아니야. 우리 절반은 왔을 걸. 잠깐만…”

사진으로 찍어온 트레일 지도인지 인터넷 지도인지를 뒤져보더니 곧 빨간색 트레일과 만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가자고 했다. 아까 본 지도에서 파란 길이 빨간 길과 겹쳐지고, 이어서 빨간 길이 나오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기억났다. 더 멀리 걷고 싶었던 남편은 상황을 고려하여 짧은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욕구를 낮췄다. 뒤로 물러설 생각을 먼저 한 나와는 달리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숨을 헐떡이며 산을 좀 더 오른 뒤 곧 파란색 길과 빨간색 길이 만났다. 게다가 내리막 길이었다. 산이가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남편과 나는 번갈아 산이 손을 잡고 걸었다. 산이도 내리막 길을 만나 좋았는지 한 마디 외쳤다.

살 빠져라! 살이 빠져! 엄마는?
, 엄마도.

배뚱이 아들과 뚱땡이 엄마의 바람이 기분 좋게 숲 속에 전해졌다.

길도 넓어지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몸을 통통 튕기며 걸어 내려왔다. 다 내려오도록 산이 신발은 특이하게 묶여진 채로 잘 버텼다.

안전하게 걸으려면 신발의 상태를 확인하고 길을 나서야겠다. 너무 오래된 운동화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이참에 새로운 등산화를 마련하리라 마음먹었다.

4/24/2019

시시티브이(CCTV)가 말하다


<부활주일에>

교회 주차장에 시시티브이(CCTV)가 설치되었다. 얼마 전 나쁜 사람이 교회 주차장에 들어와 어느 교인의 자동차 창문을 깨고 가방을 훔쳐갔다. 예배 시간에 낯선 차량이 들어왔다 나가기도 하는 등 교회 안전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몇몇 교인들이 경비 서는 수고를 하다가 시시티브이를 단 것이다.

그것이 설치되고 다음 날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니 날씨가 좋았다. 다른 날처럼 주차장 가장자리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걷는 것도 녹화되나?
되겠지.

당연한 것을 물었나 보다.

나 이제 주차장에서 쓰레기 줍고 그런 거 안 할 것 같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편하게 그런 거 할 수 있는데,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주저하게 되던데 2 때 그 일 있잖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었다. 학교에 무슨 일이 있는지 그 날은 교실과 복도의 나무 바닥에 왁스칠을 해서 윤을 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전날 종례 시간에 헝겊 걸레나 스폰지를 꼭 가져오라고 당부하셨는데 그만 까먹고 말았다. 책상을 뒤로 옮기고 쓸고 다시 앞으로 옮기는 일은 열심히 했으나 그 다음으로 바닥 닦기는 어쩌나. 말수가 적었던 나는 다른 친구들이 떠는 수다를 들으며 그들 곁에 우두커니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담임이다!

누군가 담임선생님이 청소하는 것을 살피러 나타나셨음을 알렸다. 교실은 교무실과 가까웠다.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내고 교실까지 오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쯤.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오래된 교실 마루 바닥의 엉성한 틈새로 동전이 쏙 빠지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나처럼 왁스칠할 도구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은 다른 친구의 스폰지를 절반으로 잘라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바닥 닦는 시늉을 했다. 순발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나는 그냥 쪼그린 체로 그대로 굳었다. 게다가 하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청소하는 척하기도 싫었다. 순발력에 융통성도 없어 답답한 꼬락서니였겠지.

, 너 이리 와!

평소에도 신경질이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제대로 걸렸다. 선생님은 손인지 출석부인지로 내 머리를 때렸다. 머리를 맞은 것도 기분 나빴지만 청소 시간에 빈둥대거나 딴청 피운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깟 걸레질 좀 안하고 있었다고 혼을 내다니 서운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던 남편은 주차장 시시티브이 쓰레기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 얘기에 대해 주저함이 없이 대꾸했다.

교만해서 그래.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타내고 싶은.
…”

누구보다 내 성격이나 살아온 흔적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의 대답인지라 살짝 충격이 왔다. 선생님 말씀을 명심하지 않고 과제물을 챙겨오지 않은 일, 선생님께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것, 해도 될 일을 누가 보는 것 같다고 안 하려는 것 어느 지점이 교만한 지 되짚어 보았으나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 사고가 전환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그나마 살아온 세월이 있어 생각에 근육이 붙은 덕분이었다. 

그렇지 뭐. 남들이 보든 안 보든 무슨 상관이야. 해야 될 일이면 하는 거지.

침착한 척 말을 맺었다.

하루 종일 새벽에 있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욱 겸손하고 유연하여 옛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삶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답이 없다. 오로지 그 길은 지은 죄가 없으나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뿐.

잘 되든 안 되든

지난 6 월 하순경 ,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 그 교회는 앞으로 2 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 여러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