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엥~
동네방네 떠나가라 사이렌이 울린다. 한국에서 민방위 훈련
때도 이렇게 소리가 크고 날카롭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울리는 이 경보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집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소리가 내는 파장에 온 세상이 갇힌 듯이 귀가 멍했다.
지난 수요일 오후였다. 날씨 예보 알림 창이 휴대폰 화면에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었다. 그 정도 열심이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 줄만 했다. 화면을 열었다. 오후 다섯 시 근처에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였다. 멀리 하늘을 내다보니 먹구름이 한가득이었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싶었은데 먹구름을 순식간에 우리 동네까지 몰고 왔다. 아까 불어 대던 사이렌이 아마 폭풍우를 조심하라는
경보였나 보다. 순식간에 깜깜해지더니 후두둑 후두둑 탕탕 퉁퉁 쏴아 촤악 비가 쏟아져 내렸다. 뒷문으로 나가 굵고 세찬 빗줄기를 무심하게 감상했다. 이따가 교회
가는 시간에는 그만 그쳤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교회 갈 준비를 하러 몸을 돌렸다.
비는 오래지 않아 그쳤다. 비가 더 올까 봐 다른 날보다
이십여 분 서둘러 교회에 도착하였다. 남편이 교회 앞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왜 나와 있느냐고 물었더니 비 온 뒤라 서늘한 공기가 좋아 잠시 걷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걸어볼까. 교회 현관 앞쪽에 있는 인도를 따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가 갔다가… 수요 저녁 예배를 앞둔 설교자와 걷고 있자니 뭔가 생각할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같이 걸어도 좋단다.
교회 안에서 우릴 지켜보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우리가
걷는 방향을 따라 장난스러운 잔걸음을 치며 따라오는 아이들.
“저녁은
먹었니?”
“네.”
“뭘
먹었니?”
“콩나물국이랑, 달걀말이랑… 여기서 먹었어요.”
“그래? 엄마가 도시락 싸 오셨구나? 맛있었겠다!”
“네!”
엄마가 마련한 도시락을 교회에서 먹는 맛은 집에서 먹는 것과는 색다를 것 같았다. 다시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지가 인도 쪽으로 늘어지고 봄이라 피워낸 초록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 녀석이 다람쥐처럼 나무 중간쯤에 올라가 있었다. 녀석이 얼마나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지 그만 그 아이의 속셈을 눈치채버렸다.
“너어~”
아이는 천진스럽게 미소를 보냈다. 곧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이에게 모른 척 속아주며 놀아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무 밑을 피해
빙 둘러 걸어갔다. 그래도 아이는 맑은 얼굴로 웃어주었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아이들도 나무에 올라간 형아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나무 그늘을 피하지 않고 달리기 준비 자세를 하더니 쌩하고 뛰어나갔다. 가늘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렸으나 잎사귀에 달린 물들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폭우로 많은 물방울을 머금고 있던 나무가 시원하게 몸을 털었다.
“우와! 헤헤헤.”
머리가 젖고도 좋단다. 이 작고 동글동글한 녀석들의 웃음
소리가 사랑스러웠다. 내 아이들도 어릴 적에 저런 낭랑한 웃음을 들려줬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쉽다.
“조심해~”
혹시 물 묻은 가지가 미끄러울까 싶어 나무에 올라가 있는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 잔소리 같이 들리지 않게 말끝을 최대한 공손하게 했다.
“네에~”
아이도 예의 바르게 대답을 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편한 녀석의 억양이라 더 예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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