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2019

너무 오래된 운동화




오크마운틴(Oak Mountain)에 도착했다. 어느 길로 걸을까 정하는데 산이는 무슨 이유인지 파란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미 가 있었다. 예상대로 점심 때가 다 되어 도착했다. 하루 중 기온이 제일 높아지는 오후 두, 세 시를 피하려면 너무 멀지 않게 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운 한낮에 바깥 활동하는 것은 끔찍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영 맥을 못 추는 까닭이다. 지난번에 갔던 길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짧게 걸어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사실 그렇게 괴로워하는 더위를 피해 산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날마다 일어나는 새벽 시간에 자연스럽게 잠이 깼다. 그때부터 슬슬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햇볕이 옅은 오전 시간에 걸을 수 있음을 멀쩡히 인지했다. 그렇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어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볼까. 휴대폰을 켜서 지난 밤에 올라온 뉴스를 훑었다. 흥미로운 제목들은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밝은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다 보니 눈이 피곤해졌다.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쯤 지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평상시처럼 아침을 챙겨 먹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산에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듯하여 자동차로 두 시간쯤 달려 노스트레일(North Trail) 입구에 다다랐다. 12. 아침 두 시간을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한 결과로 머리 꼭대기에 해를 이고 산길을 걸어야 했다.

남편과 빨간색 트레일을 걷기로 합의했다. 난 가깝게, 남편은 좀 더 멀리 걷고 싶어 했다. 어찌 할 지는 걷다가 결정하기로. , 산아 가자! 그런데 아들 산이는 파란색 길을 가리키며 꼼짝하지 않았다. 거 참 지도에서 다시 파란 길을 살펴 적당히 돌아올 길을 확인하고는 산이가 원하는 길로 들어섰다.

에구구 처음부터 오르막 길이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이도 땀을 뻘뻘 흘렸다. 그냥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지려는 때였다.

이런!
?

도통 놀라운 내색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 무슨 일로 그러나 걱정이 되었다.

산이 신발 밑창.

산에 간다고 보통 때 신던 신발은 아니라며 다른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그 정도로 낡은 줄 몰랐다. 다정하게도 양쪽 신발 밑창 모두가 절반 가까이 덜렁거렸다.




남편은 얇은 나뭇가지로 묶어주겠다며 가까이에 있는 식물 줄기를 꺾었다. 줄기에 붙은 잎을 떼어내고 신발에 동여매려 하자 뚝 끊어져버렸다. 남편은 산이의 운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신발끈을 어느 정도 풀었다. 그리고 얼기설기 밑창까지 함께 엮었다. 밑창이 더이상 덜렁거리지 않았다. 산이도 걸을 만한 것 같았다.

그만 내려가자. 우리 삼분의 일 정도 밖에 못 온 것 같아. 왔던 길 다시 가는 것, 나도 재미없지만 그냥 돌아가자.

덥고 숨차고 신발이 엉망이니 돌아가자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아니야. 우리 절반은 왔을 걸. 잠깐만…”

사진으로 찍어온 트레일 지도인지 인터넷 지도인지를 뒤져보더니 곧 빨간색 트레일과 만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가자고 했다. 아까 본 지도에서 파란 길이 빨간 길과 겹쳐지고, 이어서 빨간 길이 나오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기억났다. 더 멀리 걷고 싶었던 남편은 상황을 고려하여 짧은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욕구를 낮췄다. 뒤로 물러설 생각을 먼저 한 나와는 달리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숨을 헐떡이며 산을 좀 더 오른 뒤 곧 파란색 길과 빨간색 길이 만났다. 게다가 내리막 길이었다. 산이가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남편과 나는 번갈아 산이 손을 잡고 걸었다. 산이도 내리막 길을 만나 좋았는지 한 마디 외쳤다.

살 빠져라! 살이 빠져! 엄마는?
, 엄마도.

배뚱이 아들과 뚱땡이 엄마의 바람이 기분 좋게 숲 속에 전해졌다.

길도 넓어지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몸을 통통 튕기며 걸어 내려왔다. 다 내려오도록 산이 신발은 특이하게 묶여진 채로 잘 버텼다.

안전하게 걸으려면 신발의 상태를 확인하고 길을 나서야겠다. 너무 오래된 운동화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이참에 새로운 등산화를 마련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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