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2009

약속으로 시작하는 사순절


이번 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음과 참회를 의미하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만을 기억하길 바라는 상징적인 예식으로 목사님들은 우리에게 잿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지니고 다닐 못도 하나씩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사순절 동안 예수님 십자가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 한 사람 사랑하기.
두 번째, 하나 좋은 것 나누기.
세 번째, 하나 나쁜 습관 버리기.
이 세 가지 제안을 보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부끄러운 것들이라 여기에 적지는 못하겠습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적당히 사랑하는 척하면 되고, 꼭 나누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버리지 않아도 사는데 큰 문제 없다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제 평생에 한번뿐인 올해 사순절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내려면 마음을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주신 못을 꼭 가지고 다니며 십자가의 예수님 생각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정한 약속들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 마음이 더 아프시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재의 수요일 예전 가운데 “고백과 용서”의 기도에 힘입어서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죄악의 사슬을 끊고 주께 돌아오는 모든 죄인들의 회개를 들으시고, 그 모든 죄과를 용서하시며, 이와 같이 회개하며 주께 나아오는 우리 모두의 삶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2/20/2009

각자의 삶터로


부모님들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한 달이 언제 가나 했는데 어느새 지나가버렸다”고 하셨습니다.
“만났을 때의 반가움은 좋았는데 또 헤어져야 하네.”
어떤 이별이든 그것이 주는 감정은 쓸쓸하고 서글픈 것 같습니다.

기쁨이든 허전함이든 시간의 엄청난 힘에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삶을 또 살아가겠지요.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족들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부모님들과 우리 가족, 그리고 사돈 사이에 친밀함과 더불어 서로의 다름에 대하여 느껴보고 조절해보는 경험이 보태어졌습니다.

공항으로 나가기에 앞서 모두 모여 기도했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며, 건강하고, 성령 안에서 교통하기를...

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모두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1,13)

2/13/2009

머리 하는 날


“보자기 하나 있으면 줘 봐.”
“뭐 하시게요?”
“머리 염색 좀 하려고 그래.
응, 그런데 네가 한번이라도 더 염색하려면 그거 그냥 놔두고 집에 가서 하려고.”

어머님은 이곳에 계시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쯤 흰머리 염색하시려고 염색약을 하나 사오셨나 봅니다.
언젠가부터 제 머리에도 새치가 제법 많아져서 가끔 염색을 해주곤 합니다.
한국에서도 머리카락 전체를 염색해야 할 때면 엄마가 해주곤 하셨기 때문에 이번에 우리 집에 오시면서 저 쓰라고 염색약 여러 개를 사오셨습니다.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는, 자신이 쓰시려고 사온 것도 저한테 보태어 주려고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괜찮아요.
어머님 염색 하세요.
저는 여기서 사서 쓰면 돼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제가 쓰겠다고 하면 자신이 염색하는 것을 그만두실 것처럼 머뭇거리셨습니다.
어머님은 저한테서 “괜찮다”는 말을 두어 번 더 들으시고는 아버님을 부르셨습니다.
아버님 머리를 먼저 깎아 드리려고 그러시나 봅니다.

어머님은 그럴싸한 자세로 얼마 남지 않은 아버님 머리를 다듬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머, 잘 깎으시네요.
늘 이렇게 깎아드리세요?”
엄마는 재미있게 바라보며 물어보십니다.
“네, 동네 할머니들도 다 이 사람이 깎아줘요.”
아버님은 자랑스럽게 한 마디 거드십니다.
“어이 저리 가 계세요.”
어머님은 엄마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우신가 봅니다.
엄마는 호호호 웃으시며 한쪽으로 물러나십니다.

“예배 시간에 뒤에 앉은 사람이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하얗다고...” 하시는 걸 들어보면, 머리를 단장하시는 것이 한국으로 돌아가실 준비라기보다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주일 예배에 예쁘게 하고 가시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도 미용실에 다녀왔습니다.
두 분 어머님들은 제 머리가 긴 것이 자꾸 거슬리시나 봅니다.
“너는 요렇게 짧게 한 것이 애잔해 보여.”
어머님은 얼마큼 짧아야 되는지 제 머리카락 길이를 재어 보이시며 몇 번 말씀하십니다.
엄마는 오신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제 머리를 꼼꼼하게 염색해 주시며 한 말씀 하십니다.
“사람이 가꾸고 살아야지. 좀 길지 않냐?”

머리를 좀 자르라는 소리를 이래저래 듣게 되기도 하고 어머니들에게 예쁘다는 소리도 듣고 싶어서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머리를 산뜻하게 자르고 퍼머도 하고 미용실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벚꽃 꽃망울이 분홍빛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과 하얀 목련이 하루 이틀 사이에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몇 개월 동안 제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던 풍광들이 오늘에서야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버님, 저 머리 했어요. 어때요?”
“머리 잘랐구나. 좋다!”
1층에 계시던 엄마, “어머 훨씬 낫다. 얼마나 좋아!”
2층에 계시던 어머님, “이쁘다. 넌 이렇게 해야 어울려.”
ㅋ ㅋ ㅋ

‘가난한 아들이 어머니 생신 때 해 드릴 것이 없어 어머니 앞에서 춤을 추었다던 그 옛날 이야기가 가당치도 않게 왜 생각이 나는지...
따지고 보면 너는 니가 좋아서 해놓고...’
어쨌든 어머니들께 예쁘다는 소리 실컷 듣고, 저는 저대로 분위기를 바꿔보니 좋고 그렇습니다.


제가 머리 하고 온 것에 힘입으셨는지 어머님은 아버님 머리를 깔끔하게 깎아드리고 염색해 드리고 어머님도 염색을 하셨습니다.
저는 제 방에 들어와 있는 동안 한 통의 염색약으로 어머님은 엄마도 염색해 주시고, 또 남은 것으로 엄마는 아빠도 염색해 드렸답니다.
네 분 머리카락 색이 똑같아졌습니다.
흰머리는 어디로 사라지고 모두 젊어지셨습니다.

재미난 그 분들 모습을 담아놓으려고 다시 사진기를 들고 옵니다.
엄마는 어머님이 머리를 빗겨드리는 동안 우리 네 식구가 한국을 떠나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퍼머를 연거푸 두 번이나 했는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제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눈물을 글썽이십니다.
“이 순간에 왠 눈물. 자, 찍을 거예요.”

남편 머리도 얼마 전에 교회 집사님이 다듬어 주신 것 같고, 강산이도 어제 밀알 미용 시간에 봉사해주시는 형제님이 언제나처럼 깎아주셨습니다.
강윤이는 머리를 길러보겠다고 합니다.

여덟 식구가 함께 지내는 며칠 남지 않은 날들 가운데 어제, 오늘 우리 가족 머리 하는 날이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2/06/2009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야


부모님들을 모시고 바람을 쐬고 오기로 했습니다.
가기로 한 곳은 아미카롤라 폭포(Amicalola Falls).
지난여름에 남편과 잠깐 들렸던 기억이 나서 한나절 시간 보내기에는 괜찮을 것 같아 그리로 정하였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쯤 걸려 가는 것 치고는 소박한 풍경을 가진 주립 공원입니다.
폭포 한 줄기를 놓고 주립 공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자연적인 환경을 될 수 있는 대로 꾸미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보존하려는 것이 미국적인 사고인가보다 했습니다.
볼거리가 많지 않은 나들이기에 “오고 가는 길 주위를 보시며 다녀오시자”고 했습니다.

부모님께 새로운 곳을 보여드리는 것과 더불어 저에게는 낯선 길을 남편이 아닌 GPS만을 의지해 운전해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길을 잘 찾아다닌다고 하시지만 지난번 스톤 마운틴도 그렇고 제가 얼마나 긴장하며 운전하는지 눈치채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기에 용감하게 나선 것이구요.
어쨌든 우리의 인도자(^^) GPS를 따라 아무 일없이 구경 잘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집 가까이에 와서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있었습니다.
점심 준비해서 먹으려면 시간도 걸리고 어머니들도 귀찮으실 것 같아 간단하게 먹고 들어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미국 햄버거는 아직 안드셔 보셨으니 어떻겠냐며 눙쳤습니다.
그랬더니 “집에 가서 밥 먹자! 집에 다 왔는데 뭘 사 먹냐” 하십니다.
저는 대답을 미루고 있다가 햄버거 가게로 차를 몰아세우며 “점심은 여기서 드시고 가겠습니다”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햄버거를 드시면서 다행히도 맛있다고 하십니다.
점심시간이 아까 지났기에 시장기가 한 몫을 한 것 같고, 햄버거 간이 짜지 않아 드시기에 괜찮았나 봅니다.

몇 가지 반찬거리를 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려면 귀찮을 것 같고, 이번에는 여자들끼리 장을 보고 싶었습니다.
끼니때마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야 하고,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고, 부족한 먹을거리는 장봐서 마련해놔야 합니다.
우리 집에서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 사람은 여자들이고, 만든 음식은 다 같이 먹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갈 때면 남자들의 반응은 ‘이런 걸 꼭 사야하냐’는 듯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들과 며칠 같이 지내다보니 저의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 하고 편하게 장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은 집에 계시죠. 장보고 올게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당신은 들어가 있어요. 우리끼리 얼른 갔다 올게” 하시며 “우리끼리” 가는 것을 분명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머나!
어머니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셨나 봅니다.
호호호.

집에서 한인마켓을 가는데 5분쯤 걸립니다.
누가 시킨 것처럼 어머니들은 소리를 높여 얘기를 꺼내 놓습니다.

“꼭 집에 가서 먹재요.
자기들은 바깥 모임 다니면서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지난번엔 순대국이 그렇게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그게 뭘 먹고 싶으냐며 집에서 먹는 게 최고랜다.
자기는 나가서 이래저래 먹잖냐.
아주 나가서 안먹을려고 그래요.”

“강산 아빠도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래요.
그래도 강산 아빠는 제가 나가서 먹자고 하면 그럴 거예요.
오히려 제가 안나가려고 해서 그렇지.”

“그래, 그러면 너네 세대는 그렇게 살아라.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지, 뭐.”
우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더욱 사이좋게 장을 보았습니다.

그 동안 남편이 “집에서 먹는 게 최고야” 하는 말이 듣기에 괜찮았습니다.
솜씨를 부려 만든 음식이 아니어도 내가 만들어준 것이 입에 맞나보다 했습니다.
집엣 음식은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고 양념을 하니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 여기며 그 말을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농사를 짓거나 퇴직해서 함께 집에 계시면서 하루 세끼를 날마다 같이 먹어야 된다면,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는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라는 말이 무색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 세대를 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설령 아버지들이 가끔 외식을 하자 하신다 해도 어머니들은 살림 생각하시느라 그만두라고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어머니들이 나가서 먹고 싶다고 하실 때만이라도 기분 좋게 들어주시면 어떨까요?
아내를 배려하는 따뜻한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9:9)

잘 되든 안 되든

지난 6 월 하순경 ,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 그 교회는 앞으로 2 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 여러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