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2019

여름날의 지혜를 찾아 떠나는



<아들 산이가 찍은 사진이에요.>

이곳 아이들이 이번 주중에 여름 방학을 맞이한다. 올여름은 유난히 많은 교우들이 방학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떠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우리 교우들은 한 해 걸러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는 경향이 있단다. 그것이 올해인가 보다.

여름성경학교도 조금 서둘러 지난 주말에 열렸다. 성경학교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우리들의 열심이 미흡함을 말로 하지는 않았으나 서로들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부족함을 마음으로나마 인정하고 있어서 그랬을까. 성경학교가 하루 하루 마무리될 때마다 우리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이끌어가고 계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빈 틈을 은혜로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성경학교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보조하는 중고등부 학생들, 시간과 재물과 기도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이들이 어찌 예쁘게 보이던지 그저 감사함으로 바라보니 원망과 시비없이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어렴풋이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립보서 2:13-14)





여름성경학교 전 주에는 둘째 아들 윤이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간다고 집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4년이 지났다. 주거지의 독립에, 이젠 경제적인 독립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축하하면서도 조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이 자신의 자랑거리인 산이도 집에 와서 이틀을 울었다. 아무 소리가 안 들려 뭐하나 봤더니 의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강화할머니 인천할머니 강화할아버지 윤이 보고 싶어서…”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오셨으면 좋겠고, 강화할아버지가 윤이 보고 싶으실 텐데 돌아가셔서 볼 수가 없으니 슬프다는 뜻이었다. 금요기도회가 끝나고 나서는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윤이가 집에는 안 오냐며, 보고 싶다나 뭐라나.

졸업식 때, 윤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 옆 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신목사님 가족과 학교와 가까운 한인교회에서 사귄 목사님 가족과 집사님을 뵈었다. 또 몇몇 분이 멀리서 윤이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윤이가 한 사회인으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커가는 데는 여러 이웃들이 베풀어 준 사랑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다.

예상치 못한 밀물 때를 만나 급하게 배를 띄워 바쁘게 일하다가 어느 틈에 벌써 썰물이 되어 물 빠지는 바닷가에 서 있는 것 같다. 습하고 덥고 긴 몽고메리 여름이 시작되었다. 무더운 지역이니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는 지혜도 주셨을 것이다. 청량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까지 느긋하게 그 지혜를 찾아 나서야겠다.

5/09/2019

물방울보다 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에엥~
동네방네 떠나가라 사이렌이 울린다. 한국에서 민방위 훈련 때도 이렇게 소리가 크고 날카롭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울리는 이 경보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집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소리가 내는 파장에 온 세상이 갇힌 듯이 귀가 멍했다.

지난 수요일 오후였다. 날씨 예보 알림 창이 휴대폰 화면에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었다. 그 정도 열심이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 줄만 했다. 화면을 열었다. 오후 다섯 시 근처에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였다. 멀리 하늘을 내다보니 먹구름이 한가득이었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싶었은데 먹구름을 순식간에 우리 동네까지 몰고 왔다. 아까 불어 대던 사이렌이 아마 폭풍우를 조심하라는 경보였나 보다. 순식간에 깜깜해지더니 후두둑 후두둑 탕탕 퉁퉁 쏴아 촤악 비가 쏟아져 내렸다. 뒷문으로 나가 굵고 세찬 빗줄기를 무심하게 감상했다. 이따가 교회 가는 시간에는 그만 그쳤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교회 갈 준비를 하러 몸을 돌렸다.

비는 오래지 않아 그쳤다. 비가 더 올까 봐 다른 날보다 이십여 분 서둘러 교회에 도착하였다. 남편이 교회 앞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왜 나와 있느냐고 물었더니 비 온 뒤라 서늘한 공기가 좋아 잠시 걷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걸어볼까. 교회 현관 앞쪽에 있는 인도를 따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가 갔다가 수요 저녁 예배를 앞둔 설교자와 걷고 있자니 뭔가 생각할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같이 걸어도 좋단다.   

교회 안에서 우릴 지켜보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우리가 걷는 방향을 따라 장난스러운 잔걸음을 치며 따라오는 아이들.

저녁은 먹었니?
.
뭘 먹었니?
콩나물국이랑, 달걀말이랑 여기서 먹었어요.
그래? 엄마가 도시락 싸 오셨구나? 맛있었겠다!
!

엄마가 마련한 도시락을 교회에서 먹는 맛은 집에서 먹는 것과는 색다를 것 같았다. 다시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지가 인도 쪽으로 늘어지고 봄이라 피워낸 초록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 녀석이 다람쥐처럼 나무 중간쯤에 올라가 있었다. 녀석이 얼마나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지 그만 그 아이의 속셈을 눈치채버렸다.

너어~

아이는 천진스럽게 미소를 보냈다. 곧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이에게 모른 척 속아주며 놀아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무 밑을 피해 빙 둘러 걸어갔다. 그래도 아이는 맑은 얼굴로 웃어주었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아이들도 나무에 올라간 형아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나무 그늘을 피하지 않고 달리기 준비 자세를 하더니 쌩하고 뛰어나갔다. 가늘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렸으나 잎사귀에 달린 물들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폭우로 많은 물방울을 머금고 있던 나무가 시원하게 몸을 털었다.

우와! 헤헤헤.

머리가 젖고도 좋단다. 이 작고 동글동글한 녀석들의 웃음 소리가 사랑스러웠다. 내 아이들도 어릴 적에 저런 낭랑한 웃음을 들려줬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쉽다.

조심해~

혹시 물 묻은 가지가 미끄러울까 싶어 나무에 올라가 있는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 잔소리 같이 들리지 않게 말끝을 최대한 공손하게 했다.

네에~

아이도 예의 바르게 대답을 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편한 녀석의 억양이라 더 예쁘게 들렸다.

5/01/2019

너무 오래된 운동화




오크마운틴(Oak Mountain)에 도착했다. 어느 길로 걸을까 정하는데 산이는 무슨 이유인지 파란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미 가 있었다. 예상대로 점심 때가 다 되어 도착했다. 하루 중 기온이 제일 높아지는 오후 두, 세 시를 피하려면 너무 멀지 않게 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운 한낮에 바깥 활동하는 것은 끔찍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영 맥을 못 추는 까닭이다. 지난번에 갔던 길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짧게 걸어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사실 그렇게 괴로워하는 더위를 피해 산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날마다 일어나는 새벽 시간에 자연스럽게 잠이 깼다. 그때부터 슬슬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햇볕이 옅은 오전 시간에 걸을 수 있음을 멀쩡히 인지했다. 그렇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어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볼까. 휴대폰을 켜서 지난 밤에 올라온 뉴스를 훑었다. 흥미로운 제목들은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밝은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다 보니 눈이 피곤해졌다.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쯤 지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평상시처럼 아침을 챙겨 먹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산에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듯하여 자동차로 두 시간쯤 달려 노스트레일(North Trail) 입구에 다다랐다. 12. 아침 두 시간을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한 결과로 머리 꼭대기에 해를 이고 산길을 걸어야 했다.

남편과 빨간색 트레일을 걷기로 합의했다. 난 가깝게, 남편은 좀 더 멀리 걷고 싶어 했다. 어찌 할 지는 걷다가 결정하기로. , 산아 가자! 그런데 아들 산이는 파란색 길을 가리키며 꼼짝하지 않았다. 거 참 지도에서 다시 파란 길을 살펴 적당히 돌아올 길을 확인하고는 산이가 원하는 길로 들어섰다.

에구구 처음부터 오르막 길이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이도 땀을 뻘뻘 흘렸다. 그냥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지려는 때였다.

이런!
?

도통 놀라운 내색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 무슨 일로 그러나 걱정이 되었다.

산이 신발 밑창.

산에 간다고 보통 때 신던 신발은 아니라며 다른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그 정도로 낡은 줄 몰랐다. 다정하게도 양쪽 신발 밑창 모두가 절반 가까이 덜렁거렸다.




남편은 얇은 나뭇가지로 묶어주겠다며 가까이에 있는 식물 줄기를 꺾었다. 줄기에 붙은 잎을 떼어내고 신발에 동여매려 하자 뚝 끊어져버렸다. 남편은 산이의 운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신발끈을 어느 정도 풀었다. 그리고 얼기설기 밑창까지 함께 엮었다. 밑창이 더이상 덜렁거리지 않았다. 산이도 걸을 만한 것 같았다.

그만 내려가자. 우리 삼분의 일 정도 밖에 못 온 것 같아. 왔던 길 다시 가는 것, 나도 재미없지만 그냥 돌아가자.

덥고 숨차고 신발이 엉망이니 돌아가자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아니야. 우리 절반은 왔을 걸. 잠깐만…”

사진으로 찍어온 트레일 지도인지 인터넷 지도인지를 뒤져보더니 곧 빨간색 트레일과 만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가자고 했다. 아까 본 지도에서 파란 길이 빨간 길과 겹쳐지고, 이어서 빨간 길이 나오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기억났다. 더 멀리 걷고 싶었던 남편은 상황을 고려하여 짧은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욕구를 낮췄다. 뒤로 물러설 생각을 먼저 한 나와는 달리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숨을 헐떡이며 산을 좀 더 오른 뒤 곧 파란색 길과 빨간색 길이 만났다. 게다가 내리막 길이었다. 산이가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남편과 나는 번갈아 산이 손을 잡고 걸었다. 산이도 내리막 길을 만나 좋았는지 한 마디 외쳤다.

살 빠져라! 살이 빠져! 엄마는?
, 엄마도.

배뚱이 아들과 뚱땡이 엄마의 바람이 기분 좋게 숲 속에 전해졌다.

길도 넓어지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몸을 통통 튕기며 걸어 내려왔다. 다 내려오도록 산이 신발은 특이하게 묶여진 채로 잘 버텼다.

안전하게 걸으려면 신발의 상태를 확인하고 길을 나서야겠다. 너무 오래된 운동화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이참에 새로운 등산화를 마련하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