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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2024

식물과 이사 이야기




사람은 적어도 두 번은 이사한다. 어머니의 태에서 세상으로,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나는 그중 한 번을 포함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번 이사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사는 아무런 짐이 없으나 살아가는 동안 이사할 때는 이런저런 짐들과 함께 다닌다. 그런데 어떤 이사를 하든 아무 짐이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식물이다.

얼마 전 텃밭에서 살던 파와 부추 몇 뿌리를 화분으로 옮겼다. 나무를 심었던 두 개의 커다란 화분이 다른 식물을 품으려 기다리는 듯 보였다. 하나에는 텃밭에서 이사한 실파와 한인마트에서 이사한 대파를 섞어 심었다. 다른 하나에는 이파리가 넓적한 부추와 여리여리한 부추를 심었다.

파는 처음 심을 때 온통 마트에서 이사했고, 부추는 지인들의 텃밭에서 나의 텃밭으로 오래전에 이사한 녀석들이다. 이파리가 넓적한 부추는 Z가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다. Z는 꽤 튼실한 부추라며 나에게 그것을 나눠주었다. Z의 말처럼 이파리도 뿌리도 건강미가 넘치는 부추다. 이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긴 꽃대를 올려 하얀 별처럼 생긴 꽃송이를 터트린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부추꽃은 점점 까맣고 옹골찬 씨앗으로 에너지를 모아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그렇게 Z로부터 온 부추는 퍼지고 퍼져서 다른 집들로 이사하기도 했다.

또, 이파리가 가는 부추는 식물을 야무지게 키우는 A의 텃밭에 살았었다. A는 한 번 키운 식물들에서 꼭 씨를 받아 다음 해 텃밭을 만들었다. 고추는 물론이고 토마토, 오이에서도 씨를 받아냈다. A의 솜씨는 어려서부터 농사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식물을 돌본 덕분이라고 했다. 그의 손에서 식물들이 생명을 이어가는 재미난 실험을 구경했었다. A가 비닐하우스에서 씨를 뿌려 키우던 여린 부추를 나눠주었다. 그것들이 나에게 이사할 때는 그 모양새가 Z의 건장한 부추와 사뭇 달랐다. A의 부추는 먹잘 것이 없을 정도로 작고 가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두 종류의 부추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해졌다. 재미있는 텃밭 생활이다.

파나 부추는 한번 심어놓고 새로운 흙이나 거름을 더해주면 싱싱하게 이파리를 올려 자신을 내어준다. 이번에 그들을 텃밭에서 화분으로 이사시키면서도 신선한 흙과 닭똥을 발효시킨 거름을 선물로 주었다. 아, 그것을 심기 하루 전에 할 일이 있다. 파와 부추의 초록색 부분을 잘라내고 뿌리도 1.5cm 정도로 다듬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서 있는 힘을 다해 생명을 이어가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다. 짤막한 파와 부추를 그릇에 담아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물을 부어준다. 하루가 지나면 이파리가 나오는 부분에 초록빛이 돈다. 생명을 이어가려는 모양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이사는 변화의 계기를 준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물리적인 자리 옮김이다. 파와 부추는 텃밭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다가 화분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옮겨졌다. 식물에 덜 자연스러운 환경이지만 나의 보살핌을 더욱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이사다.

이사는 생존이다. 살아갈 환경을 찾아가는 일이다. 식물은 자연에 의지해서, 그리고 사람은 나름의 선택으로 살 곳을 찾아 나선다. 식물은 신이 창조한 자연과 우주에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은 이사하면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신의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한다. 나의 의지보다는 신에게 삶을 맡기려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식물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화분에서 식물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란다.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위해 어떤 짐도 만들지 않고 생명을 충실하게 이어가는 식물의 단순함이 필요에 따라 유익한 혹은 무익한 짐들을 복잡하게 쌓아놓은 내 환경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자연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속을 알차게 채워가면서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는 식물의 겸손함에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 

날이 따듯해지면 농원으로 나들이를 가 보련다. 다른 빈 화분으로 피튜니아나 마리골드나 제라늄같이 그만그만하게 섞여 살만한 꽃들을 데려와야겠다.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채소와 꽃의 어우러진 모습을 그려본다.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서 그들이 만들어낼 변주가 들어봄 직한 재즈 가락이 되어 흘러가는 상상에 빠진다. 벌써 어깨가 들썩거린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11/03/2014

솔잎을 긁어모으며





소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뒤뜰에 온통 흩어져 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초록 잎을 달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소나무는 가을이면 누런색의 잎을 떨구어 낸다.

담장 가까이에 엄청 키가 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 어림 잡아도 15미터(49피트)가 넘을 것 같다. 나무의 키도 크려니와 나무 껍질을 보면 두툼하고 쩍쩍 갈라진 것이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나무의 아래 절반에는 가지가 없고 위쪽에는 가지가 흐느적 흐느적 달려 있다. 또 나무 기둥에서 뻗어 나온 가지를 보면 가지 끝으로 갈수록 초록 솔잎이 손바닥을 힘껏 편 것처럼 달려 있다.

봄이 되면 가지 끝에는 노란색 송화도 피고 여린 연두색 솔잎도 나온다. 그렇게 새로 나온 잎들은 더우나 추우나 오랫동안 초록빛을 간직한다. 그러니까 가지 끝으로 갈수록 세상에 나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잎들이다. 낙엽은 항상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집 가까이에 사는 소나무 덕에 그렇지 않은 나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이 되면 가지 제일 안쪽에 있는 나이든 솔잎들이 누런색 옷으로 갈아 입고 나무 아래 땅으로 내려 앉는다. 누런 솔잎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은 없으나 여전히 솔잎이라는 이름으로 땅에서도 오랫동안 머무른다.

솔잎을 모으고, 나르는 아이들. 어느새 일 년 전 그림이 되었네요.

지난해,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이 뒤뜰에 가득하길래 아이들에게 솔잎을 긁어 모으라고 시켰다. 모아진 솔잎은 소나무 아래에 다시 뿌려줄 생각이었다. 둘째 녀석은 일 시킨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꼼꼼하게 모아놓은 솔잎을 보니 꽤 많은 양이었다. 일부는 뒤뜰 쪽 집 벽 아래를 덮는데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집 둘레의 세 벽면은 동네 관리하는 회사에서 이미 새로 갈아놓은 상태였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을 빼고는 집을 삥 돌아가면서 7센티미터(3인치) 이상 되는 두께로 솔잎을 깔아 놓는다. 검고 탁한 색으로 변한 묵은 솔잎 위에 누렇지만 싱싱한 솔잎이 얹어진다. 집 앞쪽 심겨진 나무들 아래에도 솔잎이 풍성하게 깔려 있다. 집 양 옆으로는 나무가 있든 없든 솔잎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데, 여기까지는 관리 회사에서 해마다 두 번씩 솔잎을 덮어준다.

뒤뜰 쪽은 개인이 알아서 관리한다. 솔잎이 필요하면 가게에 가서 사다가 깔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 살고 있는 키 큰 소나무가 솔잎을 넉넉하게 내어주는 바람에 솔잎을 사오는 비용과 수고를 덜어주었다. 솔잎은 두껍고 길수록 좋다고 한다. 가게에서 파는 보통 솔잎은 23센티미터(9인치) 정도이고 아주 좋은 솔잎은 35센티미터(14인치) 이상이다. 와우! 우리 집 솔잎의 길이를 재보니 어느 솔잎이나 고르게 28센티미터(11인치) 쯤 되었다. 꽤 괜찮은 솔잎인가 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집 둘레에 솔잎이 깔려 있는 모습은 아늑해 보이기도 하고 자연과 더 친밀한 느낌을 주어서 좋다. 게다가 큰 비가 내려도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는다. 꽃밭과 나무 주변을 덮고 있는 솔잎은 장식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기온 변화로부터 식물과 흙을 보호하기도 한다. 솔잎을 두껍게 깔수록 그 안은 빛이 차단되어 잡초가 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집을 갉아먹는 흰개미는 향 때문인지 솔잎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니 흰개미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떨어진 솔잎을 모아 집 뒤쪽에 깔아주었다. 이번엔 남편이 수고를 했고 큰 아이가 나르는 것을 조금 도왔다.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솔잎은 다시 모아서 소나무들 아래로 보내려고 한다.

무뚝뚝하게만 보이는 소나무가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생명을 다한 솔잎마저도 쓸모가 있다니 참 고마운 나무다. 오래 전에 떨어진 솔잎은 썩어서 흙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서 다시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고. 소나무가 자연이 순환하는데 한결 같이 기여하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8/18/2014

지나친 슬픔







1992, 텔레비전에서 성탄 특집으로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적이 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술이면서도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조용한 울음도 계속되었다. 해맑은 아이들이 수술 후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감정은 점점 짙어졌다.

수술 후 3일이 지나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쯤에서는 내 목구멍이 조여오는 아픔을 느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을 쉬려고 해도 몸이 맘처럼 따라 주지 않았다. 목줄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얼마간 견디다가 다시 숨이 돌아와 살았다. 울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다음 해에 아이가 태어났고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송을 볼 때는 내 아이가 장애아일줄 꿈에도 몰랐는데 뭐가 그렇게도 슬펐는지 죽을 만큼 울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달 뒤, 극장에서 영화 서편제를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본 이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소리꾼인 유봉은 금산댁을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유봉에게는 양딸인 송화가 있고, 금산댁에게는 아들 동호가 있다. 금산댁이 유봉의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된다. 유봉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고 동호에게는 북 치는 것을 배우게 한다. 소리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시절이라 세 사람의 삶은 퍽퍽하기만 하다. 동호는 이러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유봉과 송화의 곁을 떠난다.

유봉은 소리란 한()에 사무쳐야 제대로 나온다고 여기고 송화에게 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송화를 남겨두고 유봉은 세상을 뜬다. 그렇게 송화와 동호는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느 주막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송화는 소리를 하고 동호는 북을 치게 되는데, 앞을 못 보는 송화는 북소리만으로 동호임을 짐작한다.

이 오누이가 만나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하는 장면에서 난 또 한번 죽는 줄 알았다. 이미 몇 달 전에 울다가 죽을 뻔(?)한 경험이 있기에 감정을 조절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헤어져 살던 오누이가 마주 앉아 서로를 아는 체 하지 않고 들려주는 소리와 북소리에 내 온몸이 잠기는 것 같았다. 그들의 한이 온몸을 절절히 파고 들어 절여놓는 느낌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극장이기도 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간 남편에게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소리를 내지 않고 울다가 또 목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두 번의 울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뒤로 슬픈 영화나 드라마 따위는 아예 보지 않기로 했다. 어찌하다 보게 되더라도 목석 같은 심정이 되어 보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요즘 동영상도 아니고 멈추어 있는 사진 한 장만 보아도 가슴이 저릿하면서 눈물이 고이는 경우가 자꾸 생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광화문에서 단식하고 있는 희생자 아버지의 초췌해져 가는 모습,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가다가 경찰에게 끌려 나와 실신한 희생자 어머니가 길바닥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는 모습, 세월호 참사로 인해 죽어간 희생자들을 기억해 달라며 십자가를 지고 900 km를 순례한 희생자 아버지들의 울먹이는 모습……

샴쌍둥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 서편제를 보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슬픔을 느낀 이유를 그때는 몰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소식들을 듣고 보면서 그 이유를 이제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명, 가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보호되고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치들인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그 가치들이 존중 받지 못하고 훼손될 때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 나름의 삶의 굴곡과 장애아를 자녀로 둔 어미의 심정이 보태어져서 그런 슬픔을 느꼈나, 짐작해 본다.

아직은 나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그 울음이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오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4) 말씀에 기대어 보아야겠다

4/25/2014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단원고 촛불기도회(출처:뉴시스)


고국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네의 슬픔과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나의 어느 이웃은 방송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속이 꽉 막히는 바람에 소화제를 먹어야 했고 더 이상 방송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어느 목회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탐욕과 부패의 고리로 서로 얽히고설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명백하다며 침을 튀며 외쳤다. 지금 여기도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국 방송을 들쳐보던 중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완 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직접 하면서 곳곳을 소개하는 해설자는 타이루거 협곡을 소개하면서 협곡을 관통하는 길이 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그 길은 타이완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인데, 도로 공사를 하면서 주변에 살던 많은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더 깊은 산속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해설자는 원주민 부족 가운데 쩌우족 사람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 불만 있던 때에 어느 새가 부리로 불을 물고 가서 세상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전설을 기억하는 전통 놀이였다. 깜깜한 밤, 산 위에 불이 준비되어 있다. 청소년쯤 된 아이들은 저마다 들고 있는 횃대에 그 불을 나누어 붙이고 산 아래 정해진 곳까지 불을 운반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방송을 보면서 불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른에서 아이로 전수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불을 든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가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자기들이 들고 있는 횃불을 한 곳에 모았다. 불이 붙어 있는 횃대의 끝을 서로 서로 맞붙여 불을 커다랗게 만드는 것이었다. 횃불이 홀로 있으면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산바람에 불이 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횃불을 여럿이 함께 모아서 골짜기를 빠져 나오는 동안 좁은 산길을 걷는 아이들은 기꺼이 불편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한 사람도 불을 꺼트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산 밑으로 가져왔다. 불을 들고 옮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불을 잘 옮겨놓은 후에야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찬 바람이 불 때 옆에 있는 친구들과 힘을 모으니까 불도 지켜내고 친구도, 소수 민족인 자신들의 공동체도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쓰린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각성의 소리가 마음을 때린다. 이런 울림이 있는 이들의 각성의 횃불을 한 곳에 모아야 할 때다. 부정과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 찬 어둠이 몰려와도 함께 모아 만든 환한 불빛 앞에선 어림도 없다. 이 각성의 불꽃을 꺼트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길을 찾아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길, 진리로 나아가는 길(요한복음 14:6) 말이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나라도 산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결혼식을 올리는 전날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중간에 잠시 떨어져 산 적도 있지만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는 첫 손녀인 나를 엄청 귀하게 여겨주셨다.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자랑스러운 보물로 대해주셨다. 그래서 학생으로 지내는 동안은 집안 일을 도통 시키지 않으셨다. 결혼하면 싫어도 다 하게 될 일인데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며 손에 물을 묻히게 하지 않으셨다(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결혼해 살다보니 빨래도 하고 김치도 가끔 해 먹고 산다. 그런데 썩 잘 하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새하얗게 빨래하는 것과 맛난 김치 담그는 솜씨가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나에게 한없이 넓은 품을 가진 할머니가 화를 내실 때가 있다. 할머니께서 뭘 찾아오라고 시키셨는데 못 찾아 올 때다. 나도 아이들을 시켜봐서 안다. 물건을 둔 나는 어디에 있는지 훤히 보이지만 아이들은 코 앞에 두고도 못 찾을 때가 많다. 할머니는 일을 건성건성 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일을 시작했으면 똑 부러지게 하고 끝을 맺어야 한다고 하셨다. 심부름 시킨 물건을 찾아오지 못하면 할머니 눈에는 대충 살펴보고 온 것으로 보이셨나 보다. 그러면 할머니는 다시 가서 찾아보라며 말씀하신다.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찾아보라는 뜻으로 그리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정말로 코를 바짝 누르고 물건을 찾아내기도 했다. 물론 찾아내지 못하고 할머니의 꾸중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를 지휘, 감독하는 정부 관리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과 부패를 보길 바란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실종자를 찾고 있는 잠수부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쓰고 있으리라 믿어보겠다. 그리고 이런 부정과 부패,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 이대로는 절대 안 돼, 라고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코를 바짝 누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나서야 한다. 반드시, 멈추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