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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019

물러설 때와 나설 때


<숲 속 길을 걷다가>


교회는 나의 삶이다.

난 교회가 참 좋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머물기를 좋아했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 성장하는 시기에 맞게 드려지는 예배나 행사에 빠지지 않았고, 어떤 일이나 과제를 주어도 싫어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했다. 교회에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했다.

김포에서 목회할 때였다. 상가건물을 빌려 10명도 안 되는 교인들과 어렵게 신앙생할을 하다가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다. 교회가 지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구석 구석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매주 교회를 방문하거나 등록하는 새가족이 생겨났다. 나의 부모님도 교회 옆으로 이사오시고 어려서부터 알던 고향 친구도 어찌어찌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내가 할 일도 적지 않았다. 전도, 심방, 예배 안내, 찬양 인도, 아동부 교육, 성인 교육, 주방일, 청소... 어릴 적 소원대로 교회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 남편은 당신은 부목사나 마찬가지야, 라며 고무하였다. 나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교인이 점점 늘어나던 그즈음 당회에서 남편은 나에게 맡겼던 교육부장을 다른 이로 바꾸어 발표하였다. 새로운 교육부장은 나의 친구였다. 나랑 한마디 의논도 없었다. 교육부장이든 아니든 나에겐 별로 의미가 없었지만 남편에게 서운했다. 사실 결혼해서 함께 목회하는 내내 교회학교 교육은 거의 내 몫이었다. '교육부장이든 아니든 별로 의미는 없었지만' 남편은 교육부장에 내 이름을 올려놓곤 하였다. 남편은 내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분-달라고 요청하거나 수락한 적도 없는-이 뭐가 중요하냐며 당신은 교회 전반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오히려 강조하였다.

그해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 때였다. 강습회에서 찬양과 율동을 잘 익혀 성경학교 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했다. 비용을 아낄 생각으로 율동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구입하지 않았다. 악보만 모아놓은 책도 한 권만 샀던 것 같다. 강습회에 세 명이 참석을 했는데 찬양 책은 주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찬양을 열심히 따라 했고 나는 율동을 기억하기 좋게 적어놓고 있었다. 열심히 율동을 익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교육부장이 악보가 담긴 책을 휙 끌어가 자기 앞에 놓았다. 난 순간 멍했고, 뭐가 잘못되었나 그 순간을  머릿 속에서 반복할수록 화가 났다.

나의 엄마도 나 만큼이나 교회를 사랑한다. 어쩌면 나보다 순수해서 교회에 더 심하게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모녀지간이니 기질적인 면에서 닮은 구석이 있겠지만 교회에 관하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부분이 많지 않은 듯싶다.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된 엄마 권사님은 주방 일을 거의 도맡아 하셨다. 엄마는 음식을 맛있게 만드신다. 양이 많은 음식도 겁내지 않고 만들어내신다. 성격이 깔끔하셔서 일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면 할 일이 하나도 없이 마무리를 해 놓으신다. 엄마는 나에게 교회에서 할 일이 많은데 주방 일은 이젠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딸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이다. 엄마 마음을 이해했기에 주방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교회 젓가락이 몇 벌인지도 알고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그곳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교회가 부흥하고 교인이 늘어나서,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고 협력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은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교회는 변화하고 성장하는데 난 옛모습에 머물러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맡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어떤 일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나님을 위해, 적어도 교회를 위해 열심히 무엇인가를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일을 나누기도 하고 아예 그 일을 놓고 물러서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 새로운 일(사명)로 나아가야 한다. 난 그걸 전혀 모르고 살다가 가족과 친구에게 제대로 한 방 맞고 깨달은 것이다. 그 한 방의 여운이 가시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미국으로 건너와 애틀랜타에서는 교회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천 여명 모이는 교회의 부목사 아내에게 요청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서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그런 상황을 어색해 하는 나에게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해서 하나님이 쉬라고 하시나 보다. 지금은 그냥 편안히 쉬어.”

엄마의 조언처럼 그저 쉬면서 내 믿음만 잘 지키면 되었다. 덕분에 영어공부하는 학교도 기웃거리고, 선교센터의 간사도 해보고, 한국학교에서 가르치는 경험도 갖게 되었다. 콜럼비아교회에서는 다시 담임 목회자의 아내로 지내야 했지만 한국에서처럼 온갖 일을 다하려고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일인데 하려는 사람이 적거나 없을 때 기꺼이 나섰다.

지난해 9월, 몽고메리제일교회가 새로운 목회지가 되었다. 한국에 계신 강화 어머님과 통화를 하면서 아동부를 돕게 되었는데 교회학교 교육에서 멀어져 있었기에 잘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고 말씀 드렸다.

“ 힘들어도 열심히 햐.~ 배운 게 아깝지 않니? 내가 할려고 하면 안 댜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햐.”

어머님은 연세가 70대 중반을 넘어선 강화 망월교회 권사님이시다. 어느 날 연합속회를 인도하시게 되었다. 순서에 따라 진행하시던 중 성경 읽는 것을 까먹고 다음 순서로 넘어 가려 하셨다. 그러자 어머님 가까이에 계시던 박장로님이 눈치로 알려주셨다고 한다.

“이렇다니까요!”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교인들이기에 모두가 공감이 되어 까르르 웃고 지나가셨단다. 그러고 나서 어머님은 속회 인도자를 그만 내려놓겠노라 목사님께 말씀드렸다고 얘기해주셨다. 어머님은 이 일로 물러설 때를 감지하신 것이다.

우리 가족이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할, 몽고메리제일감리교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배움이나 경험이 교회를 위해 쓰여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엄청 감사할 뿐이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물러서야 할 때 가벼이 발걸음을 돌리리라.

5/14/2018

거기 계셔주세요





아침 햇살이 수줍게 퍼질 즈음이면 뒤뜰에서 겨우 겨우 자라고 있는 고추와 호박이 지난 밤을 잘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4월 중순이 넘어 모종을 사러 가면 부실한 것들만 남아 있는듯하여 올해는 4월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호박은 지난해 추수감사주일에 얻은 늙은 호박에서 씨를 얻었다. 두 그루의 고추는 안전하게 양동이에 심었다. 그리고 호박은 잡초투성이인 텃밭을 삽으로 뒤집어 엎기만 하고 거기에 씨를 꾹꾹 박아 놓았다. 올해는 더도 말고 이 두 가지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으면서 주는 기쁨을 누려보리라 상상하며 넉넉하게 물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고추는 이파리가 군데군데 누렇게 되고 비실비실 댔다. 씨를 심고 3주쯤 지나서 호박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흙 밖으로 나와준 싹에게 고마워서 잘 자라거라, 하며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성하게 자라날 호박을 그리던 끝자락에는 밑거름도 안하고 씨를 뿌렸다는 사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호박은 거름을 충분히 줘야 하는데 까먹었다. 하긴 호박을 제대로 심어 열매를 얻어본 경험이 겨우 한 해 밖에 없으니, 차분히 기억해내고 알아보고 심었어야 했는데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어떻게 살려볼 길이 없을까 싶어 퇴비를 사다가 흙 위에 조심스럽게 뿌려주었다. 어찌 될 지 아슬아슬 하다.

한국에서 지키는 어버이 날이 되어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먼저 강화 어머님과 통화를 하였다. 전화를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부만 여쭙고 있다가 부실한 호박과 고추 생각이 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님한테는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 분명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다. 엉터리 텃밭의 상황을 설명 드렸다.

“응, 괜찮아. 고추나 호박 싹에서 한 뼘쯤 떨어져서 손가락으로 동그래미를 그려. 거기다가 거름하고 비료를 솔솔 뿌려. 거기 퇴비는 오래 된 건가? 그러면 가까이에 뿌려도 되긴 한데……”

아차 싶었다. 사 온 퇴비를 조금이지만 벌써 가까이에 뿌렸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님은 그게 별로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듯 다음 말씀을 곧 이어가셨다.

“거긴 벌 있니?”

뜬금없는 질문에 벌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신할 수가 없어 말끝을 흐리며 네, 라고 대답했더니 어머님은 틈을 주지 않고 설명하셨다. 호박 줄기에 달린 암꽃과 수꽃이 수정을 해야 호박이 되는데, 벌이 있으면 신경 안 써도 되고 벌이 없으면 사람이 수정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박꽃은 다 똑같은 꽃이 아니었나?’ 난 새로운 사실에 살짝 놀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호박의 암꽃과 수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들이 한 그루에서 같이 피는지 아닌지 몰랐다. 어머님은 애기호박에 달려 있는 꽃이 암꽃이고 수정 되지 않으면 호박이 자라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셨다. 어머님께서 사시는 곳에는 벌이 없어 직접 수정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벌이 없다니 정말 심각하네……’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언젠가 적어놓았던 마크 윈스턴이 쓴 『사라진 벌들의 경고』를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이 옆길로 빠지려는 순간, 근황을 전해주실 때의 담담한 목소리가 아니라 빠르고 높은 톤의 어머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내가 어머님 말씀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걸 눈치채신 모양이었다. 

“얘, 수꽃을 매정하게 확 잘라! 꽃 주둥이 쪽을 쭈욱 도려 내. 그리고 암꽃에다가 꽃가루를 묻혀줘.”
“네…...”
“나는 그대로 꽉 박아놓는다.”

그리곤 호호 웃으셨다. 꽃잎이 일부 잘려진 수꽃을 암꽃에다가 걸쳐놓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머님이 하도 신나게 말씀하셔서 호박꽃이 피면 그리 해 보겠노라 답해 드렸다. 그랬더니 다급하게 한 마디 더 보태셨다.

“어머, 얘! 호박꽃은 하루 이틀 밖에 안 펴. 피면 그냥 해야 돼!”

어머님은 심는 김에 가지나 토마토도 심어보라고 권해주셨다. 키우기 쉬운 것들이고 요즘 심어도 늦지 않았다고 알려주셨다. 난 다른 식물들을 더 심을 생각이 없어 얼른 화제를 바꾸어 가지치기에 대해 여쭤보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전문용어를 써 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잘 이해가 안 갔었다. 어머님은 그것도 쉽게 정리해주셨다.

고추나 가지는 뿌리에서 제일 가까운 이파리와 순만 따주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토마토는 열매가 튼실하려면 곁가지가 자라지 않게 순을 모두 따줘서 원줄기만 살려야 하고, 반대로 호박은 잎이 네댓 장 달린 후에 원줄기를 잘라주면 가지가 더 많이 뻗어나가면서 열매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그거 재밌어!, 라고 강조하셨다.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어 하나 둘씩 따서 드시고, 둘째 아들네나 이웃과 나눠 먹는 재미를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여겨졌다. 어머님과 다른 때보다 훨씬 오래 전화 통화를 했다. 텃밭 가꾸는 데 필요한 좋은 정보는 내가 얻었는데 어머님이 더 즐거우셨던 것 같았다.

엄마네도 전화를 했다. 엄마하고도 통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전화벨이 한참 울린 다음에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온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야.”
“응, 어버이 날이라 전화했지? 나 씻다가 나왔어. 다음에 통화하자. 별일 없지?”
“응.”
다음에 엄마한테 전화할 때는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여쭤보아야겠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다음 해에도, 그 다음 다음 다음……해에도 거기 계셔서 내 전화를 받아주시면 참 좋겠다.

12/01/2014

두 권사님


2011 부모님들과 디즈니월드에서(올랜도, 플로리다)



한국에 계신 두 권사님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기질도 다르고 각각 다니는 교회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꽤 많다.

우선, 70대의 여성분들로 삶이 곧 신앙생활 그 자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기도이며, 일상 속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그들의 태도나 언어에 배어 있다. 주일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물론이요(중병으로 수술을 해도 병원에 마련되어 있는 예배실에서 주일을 지킨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나 모임에 빠지지 않으신다. 헌금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드린다.

두 분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쌓아두는 법이 없다. 그러면 이웃들은 이 권사님들께 무엇인가를 다시 나눈다. 그들의 나눔은 계속 순환되기도 하고 혹은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그걸로 만족하기도 한다. 권사님들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살고 계신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부지런하여 일을 미뤄두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장 끝장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몸이 지치기도 하는데, 입술에 물집이 여러 개 생기면서 부르트는 모습도 비슷하셨다. 두 분 모두 일을 하시다가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리셨다. 몸살 치료하려고 병원에 가셨다가 14년, 12년 전에 대장암을 진단받기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대장암 수술이 큰 수술이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겠노라, 그래도 살려주시면 신앙생활 더 잘 하겠노라 기도하시고 들어가셨다. 두 분의 수술은 잘 되었다. 그 뒤로 혹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내셨고 5년 동안 정기적으로 몸 상태를 살펴야 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살려두셨을 거라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이웃과 나누는 생활을 이어가고 계신다.

두 권사님은 감리교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엄청 규칙쟁이다. 먼저 수술 받은 권사님은 입원했던 병실에서 만난 어느 환우로부터 야채 스프와 현미차에 대하여 소개를 받으셨다. 권사님은 퇴원하신 다음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5년 이상을 만들어 드셨다. 뒤이어 같은 암에 걸린 다른 권사님은 친분이 깊던 앞서 권사님의 권유로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또 오랫동안 드셨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해 보여도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손수 만들어 오랜 시간 드셨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력과 정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식이요법회 회장, 다테이시 가즈(立不一)가 개발한 야채 스프에는 무(4분의1개), 무우청(4분의 1개), 당근(2분의 1개), 우엉(4분의 1개, 작은 것은 2분의 1개), 표고버섯(화고, 자연 건조한 것 1장)이 들어간다. 야채 스프를 먼저 드시기 시작한 권사님은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텃밭에 야채를 무농약으로 키우기 시작하셨다. 집에서 기를 수 없는 것은 재배지에서 직접 구해오기도 하셨다. 또 재료를 많이 구해서 나중 권사님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셨다.

야채 스프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야채는 물로 씻어서 큼직큼직하게 썬다.
②     야채를 많이 넣지 말고 기본 분량을 꼭 지킨다.
③     모든 야채 재료의 양에 3배의 물을 붓고 센 불로 끓인 후 약한 불로 60분 달인다.
④     끓이는 기구는 스텐, 알미늄, 유리그릇을 사용한다(테프론, 법랑 용기는 사용하지 말 것).
⑤     보존 용기는 유리병이나 사기그릇을 사용한다.

현미차에는 현미 1홉과 물 8홉이 필요하다. 현미차를 만드는 방법도 옮겨 본다.
①     현미를 짙은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기름기 없는 용기 사용).
②     8홉의 물을 다른 용기에서 센 불로 끓인다. 끓으면 현미를 넣고 불을 끈다.
③     5분쯤 후에 채에 받치어 낸 물이 1번 차이다.
④     채에 걸러진 현미를 다른 용기에 넣고, 새로운 물 8홉을 부어 센 불로 끓인 후 약한 불에서 5-10분간 끓인다. 다시 채에 받쳐 낸 물이 2번 차이다.
 ⑤ 1번 차와 2번 차를 혼합하여 보관, 사용한다(용기는 유리병, 사기그릇을 사용).

두 권사님들께서는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지극정성으로 드셨을 뿐 아니라 식생활도 많이 달라지셨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육류를 많이 드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두 분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난 그것들을 마셔본 적은 없으나 두 분을 뵈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2012.1.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날. 주일예배 끝나고.

이 두 권사님은 나의 어머님(남편의 엄마)과 엄마이시다. 그들의 견고하고 부지런한 신앙 생활은 나에게 항상 자극을 준다. 내 신앙은 그들보다 유연하고 덜 부지런하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서 부딪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서로에게서 배운다.

주일 예배에 가려고 손거울을 들고 화장을 하다 보니 입술에 돋은 좁쌀만한 물집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시력도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것 같더니 거울에 비친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 보고서야 알았다. 입술에 물집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딱히 힘든 일도 없었는데…… 두 어머니가 문득 생각이 났다. 

6/29/2014

여행 중에도 기도 시간을




몸을 뒤척이다가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났다. 아직 어두움이 가득한 거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어슴푸레 읽어 보았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잔 탓에 집안 공기가 후텁지근 했다. 창문 하나를 열어 강화어머님네(나의 시어머님이시다) 집 둘레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휘젓고 다니던 바람을 불러 들였다. 창문을 열자마자 밀려들어 오는 새벽 공기가 참으로 시원했다. 뒤뜰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님은 지난해 가을,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 주무실 때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 잠근다고 하셨다. 평생을 모든 것이 익숙한 고향의 한 마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님에게서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었다. 며칠씩 집을 비울 때는 모르겠지만 하루 안에 돌아오는 외출을 하실 때는 현관문도 잠그는 일이 없으셨다. 큰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되신 어머님이 아직 익숙지 않은 '혼자됨'을 힘들게 겪고 계시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강인하고 꾸밈이 없는 성격의 어머님이신지라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날 새벽 공기가 실어오는 상쾌함과 쓸쓸함을 들이키고 있는데 어머님이 깨어 나오셨다. 초여름이라도 으쓱한(어머님 표현에 따르면) 새벽 공기를 막아줄 얇팍한 긴팔 옷을 챙겨 입으시며 이미 깨어 있는 나에게 같이 새벽기도 가자, 고 하셨다.
 "목사 사모가 와 있는줄 다 알텐데, 왜 새벽기도도 안 나오나 할 거 아냐?" 
오랜만에 들어보는 꾸중 섞인 말씀이다.

어머님네 와서 밤잠을 자게 되는 경우는 주로 명절을 쇠러 올 때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고단하기도 하고, 모처럼 부모님 집에 왔으니 목회 현장에서 떠나 푹 쉬고 싶은 마음이다. 날마다 드리던 새벽기도도 접고 길고 깊은 잠도 자보고 싶다. 그런데 어머님은 새벽기도를 가시면서 잠들어 있는 남편과 나를 보시면 화를 내셨다. 목회자 부부가 새벽기도를 빼먹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목사는 안 나가도 사모는 기도해야 할 것 아니냐, 고도 하셨다(이것은 내가 이해가 안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도 꿈적하지 않으면, 새벽기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문을 소리나게 쾅쾅 여닫으시고 그릇도 더 달그락 소리가 나게 다루셨다. 아침 한나절은 어머님의 볼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어머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새벽기도에 대해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자 어느 때인가부터 더 이상 새벽기도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머님과 내가 고부지간으로 만난 지 이십 여년이 흘쩍 넘었으며, 미국에 살다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여 며칠 어머님 댁에 묵고 있는데 그 새벽기도 얘기가 다시 나온 것이다. 난 웃으며 어머님만 다녀오세요, 했다. 밖으로 드러나 훤히 보이는 어머님 고집이나 드러나지 않는 은근한 내 고집이나 만만치가 않다.

어머님의 새벽기도 시간은 남다르시다. 잠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시간이 교회가는 시간이다. 새벽 두, 세 시라도 일어나시면 곧바로 교회로 가시곤 했다. 요즘은 네 시쯤 가시는 것 같다. 새벽예배 후에도 한참을 기도하시다 집에 돌아 오신다. 그동안 어머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지켜본 바에 따르면 기도 드릴 때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실지 그려진다.

난 어머님과 같이 부지런하고 열정적이고 한결같은 기도를 드리지는 못한다. 나도 새벽기도를 드리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기도하며 대부분 읊조리거나 말없는 기도를 드린다. 삶이 단순하기에 생활하는 중에도 짧막한 기도를 자주 드리곤 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멀리 떠나 여행할 때는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어머님이나 나의 기도 생활이 온전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기도 생활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결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기도에 같이 가자는 어머님의 이번 요청을 따르지 못한 것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여행을 하는 중이라도 기도 시간을 따로 떼어놓지 않으면 깊이있는 기도를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이 생기는 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변화의 시점에 있는 내 교회와 부모님들이 다니시는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기를 위해서,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 그리고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주님이 함께 하여주시길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새벽기도 가시고 집에 남겨진 나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정돈하고 하나님께 내 기도를 올려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