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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2019

그리움이라는 낯선 방문


<교회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 새싹의 빛이 곱다.>

3월에는 둘째 아들 윤이의 생일이 들어있다. 2월 달력을 접어 넘기고 3월에서 아들의 생일을 찾아 표시했다. 올해 생일은 월요일.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잠깐으로 보이듯이 윤이가 대학 들어간 때가 엊그제인 듯한데 어느새 마지막 학기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그동안 배운 것을 활용하여 어떤 결과물들을 내놓아야 하는 프로젝트 수업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이번 학기 월요일에는 수업이 없는 걸로 들었다. 윤이에게 전화를 했다.

“윤, 생일에 애틀랜타에서 만날래? 점심 같이 먹자. 너 장볼 거 있으면 그때 같이 보고.”

빠듯한 생활비로 살아가는 학생에게 꽤 괜찮은 제안 아닌가. 겨우 한 끼지만 메뉴를 잘만 고르면 영양 보충할 수 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게다가 장을 같이 보면 엄마가 고른 식재료들과 섞여 계산대를 자연스럽게 통과할 것이다. 단 몇 십 달러라도 아껴지니 수학 잘하는 아들은 벌써 계산이 끝났을 것이다. 역시 대답이 바로 나왔다.

“아유, 뭔 생일…”

뒤이어 만나자는 대답이 나오려니 기대하는 마음이 삐죽 고개를 쳐들려는 순간이었다.

“싫어! 나 바빠.”

쌀도 떨어지고 해서 생일 전 토요일에 애틀랜타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어차피 애틀랜타에 갈 거면 내 제안대로 움직이는 것이 여러모로 자신에게 유리할 텐데 대답의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가끔 엄마를 이해하는 척해서 감동받을 듯 말 듯한 경우가 몇 번 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상황인가 싶었다. 윤이가 사는 아파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사십 분이면 애틀랜타에 이를 수 있으나 엄마는 세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엄마의 고단함을 덜어주려는 마음이라고. 4학년이라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던 것을 그만 두어 생활비는 엄마에게서 나와야 하는데 이미 석 달치를 받아 가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더 주고 싶지 않은 거라고.

며칠 뒤 이번엔 윤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타이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걱정스러운 내용이었다. 타이어 하나가 교체된 지 오래되어 살이 쪄서 터진 것 같은 금들이 잔뜩 보이는 사진도 보내왔다. 안전 문제와 관련된 것이므로 남편은 어서 새 타이어로 바꾸라고 응답해주었다. 윤이는 토요일에 애틀랜타에 가는 길에 아틀란타한인교회 이권사님이 운영하시는 자동차 정비소에 들르겠노라 했다. 이권사님의 정비소는 우리 가족이 애틀랜타에 살 때부터 계속 이용하던 곳이다.

우리 교회 교우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번 주가 봄 방학이란다. 윤이와 통화하는 김에 봄 방학이 언제인지 물어보았다. 이곳과 같았다. 애틀랜타에서 만날 수 없으니 이번엔 봄 방학 동안 집에 다녀가라고 제안했다. 이번에도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유를 물었다. 너무 멀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다섯 시간이면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못 올 거리도 아니구만… 통화 중 아주 짧은 말없음에 어떤 분위기를 감지했나 보다. 윤이는 거절한 이유를 흐물흐물 주절거렸다.

“거리가 멀어도 집에 갈 때는 식구들 본다는 생각에 길지 않게 느껴지는데, 돌아올 때는 너무 지루해.”

그랬구나. 윤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5월에 있을 졸업식에서나 보겠구나 하며 만날 기대를 좀 더 뒤로 미뤘다. 

아들에게 만나자는 요청에 대해 두 번이나 퇴짜 맞은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이 옆에서 슬쩍 말을 흘렸다.

“집에 내려와서 생일도 보내고 여기 이 권사님네 가서 차도 고치라고 그래.”

이 권사님은 애틀랜타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의 몽고메리 지점도 갖고 있다. 윤이에게 앞서 제시했던 만남과 특별히 달라진 내용도 없으면서 남편의 부추김에 힘입어 세 번째 전화 통화. 세 번 모두 거절하기가 미안했던지 자동차 수리 비용이 신경쓰였던지 이번엔 만남이 드디어 성사되었다. 삼세번이 윤이에게도 통했다!

아껴두었던 소고기 한 덩이를 넣고 우려내 미역국을 끓였다. 일부러 미역을 넉넉하게 불려 큰 솥으로 한가득 만들었다. 다행히 김치 한 보시기만으로도 다른 밑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게 끓여졌다. 윤이에게는 어찌 하다 보니 미역국이 너무 많아졌다며 좀 싸 가지고 가라고 했다. 속마음은 꼭 가져가길 바라면서, 안 가져 가도 그만인 것처럼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두 번 먹을 정도만 담아 달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윤이 자동차는 집으로 가져오길 잘했다. 차를 타보니 멀쩡한 길을 달리는데 바퀴 쪽에서 터덜터덜 소리가 크게 들렸다. 타이어가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에 어깨가 자꾸 쪼그라들었다. 이 권사님은 자동차를 살펴보시더니 타이어를 바꿀 때는 아직 아니라며 위치만 바꿔 끼워 주셨다. 그런 다음 운전할 때 여전히 소리가 들리면 그건 베어링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진단하셨다. 타이어 위치를 바꾸고 잠시 달려보았더니 역시 권사님의 말씀처럼 베어링을 고쳐야 했다. 윤이 혼자 정비소에 갔으면 허둥댔을 수도 있었는데 아빠와 권사님 덕분에 맘 편히 자동차의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윤이는 미역국을 챙겨서 다시 멀쩡해진 차를 타고 자기 사는 곳으로 떠났다.

언제부터 아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대학 가면 그때부터 부모 품을 떠난 거라 여기고 제 앞가림하며 지내니 그저 고맙다고만 생각했었다. 갱년기라 그런가. 불면, 기억력 감퇴, 폐경, 얼굴 홍조 따위의 증상들이 인생을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신체적인 변화가 감정의 색깔도 바꾸어 놓는 것 같다. 떨어져 사는 둘째 아들이 가끔 보고 싶기도 하다. 고국에 있는 가족도 때때로 그립다. 연애할 때나 가질 법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요즘은 이렇게 가끔 낯선 방문을 하곤 한다.

아니면 봄이라 그런가. 나무에 물이 오르고 여러 빛깔의 새싹을 내놓으니 장차 무성해질 초록 이파리들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밝고 포근한 햇빛 아래 드러나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봄빛 따라 아물아물한 그리움이 슬쩍 찾아왔었나 보다.

8/10/2014

전문가와 비전문가


아들 산이가 찍어놓은 사진이 있길래... ^^


얼마 전 한국 여행 갔을 때 지난 해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타시던 자동차가 아직 있어서 편안하게 다닐 수가 있었다. 집에서 먼 곳으로 외출할 경우는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고 집에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곳은 자가용으로 이동했다.

그날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라 교통량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복잡한 시내를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라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이용하곤 했다. 터널이 여러 개 연속해서 나오는 구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차선에서 빠르게 저만치 앞서 달리던 자동차의 빨간 브레이크 등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 차의 속도도 줄이면서 옆 차선을 보니 다른 자동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었다.

뭐지? 차선을 잘못 선택했나 보군, 생각하는 순간 자동차 범퍼 보다는 작은 크기의 디귿 자 모양을 가진 물체가 내 차 앞에 뚝 떨어졌다. 내가 탄 자동차의 왼쪽은 터널 벽이고 옆 차선에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므로 그 물체를 밟고 지나갈 수 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오른쪽 앞 바퀴가 그 물체를 타고 넘는 것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고 운전하는 내내 계기판 어딘가에 주황색의 경고 등이 혹시라도 들어오는 지 신경을 써야 했다.

다행히도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동안 자동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소심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문제가 있다가 자동차가 달리는 도중에 탈이 날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운전이나 조심스럽게 할 줄 알았지 자동차 구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쪼그리고 앉아 자동차 밑면을 들여다 보았다. ! 자동차 아래로 액체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에어컨디션을 사용했으니 물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겁이 덜컥 났다.

자동차 수리나 검사를 하는 카센터를 운영하는 P 집사한테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미국에서라면 남편에게 전화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분이 있는 전문가에게 문제 상황에 대해 한국말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편안하던지…). 상황을 짧고 다급하게 설명을 했다. 집사님은 떨어지는 액체가 투명한 지 색깔이 있는 지 살펴보라고 차분하게 알려주었다. 다시 몸을 구푸려 살펴보니 색깔이 있거나 냄새가 나는 액체가 아니니 물인 것이 분명했다. 집사님의 한 마디에 자동차에 대한 걱정이 싹 날아가버렸다.

P 집사는 남편과 함께 카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신도 자동차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있는 듯했다. 나중에 이 상황에 대해 다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 전화로 정비 한 건 했어요라고 말하는 집사님 때문에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자동차에서 떨어지는 액체를 분별하여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상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동차 수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게는 P 집사의 처방은 전문가의 소견이었다. 나는 상황에 따라 지레짐작 하여 불안했지만 집사님은 차분하고 명료하게 대처했다.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차이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자동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난 어리바리 비전문가다. 그래서 삶을 바라보는 시야도 좁고, 생활이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느 순간 믿음의 능력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염려를 떨치지 못하기도 한다.

주일 예배 설교 시간에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목사님은 한 사람의 인생도 끝이 있으며 지구를 포함한 모든 별들도 언젠가는 소멸을 겪게 될 것이니, 우리는 하루를 천 년 같이 천 년을 하루 같이 여기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자고 했다. 그리고 죽음과 소멸은 끝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니 그 약속을 믿고 살자는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라 평강 가운데 말이다.

신앙인들이 늘 듣는 평이한 설교 같아도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나에겐 마음에 찔림을 주는 설교였다. 내 삶의 문제를 진단해주고 기꺼이 고쳐주는 전문가는 성경과, 그 성경을 해석하고 열정적으로 선포하는 일에 헌신하는 지금의 담임목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