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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010

감사 또 감사

가정사역을 위해 귀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하이패밀리(www.hifamily.net)에서 받은 감사에 대한 글들을 보고 저의 감사하는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있는 듯 하나 한편에는 불만스러운 뾰로통한 모습,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는 감사이기 보다는 감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쩌나….
애쓰다 보면 언젠가 넉넉하게 감사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저에게 기대를 해보며(^^) 글을 옮겨봅니다.


*****
감사력(感謝力)을 높이기 위한 십계 -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제공
감사, 감사 또 감사

1. 생각이 곧 감사다.
Think & Thanks란 말이 있다. 생각과 감사는 그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인도속담에 <호랑이를 왜 만들었냐고 하나님께 투정하지 말고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지 않는 것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생각으로 감사를 열어라.

2. 작은 것부터 감사해라.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낳는다. 큰 강도 처음에는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것들을 먼저 감사하라. 그러면 큰 감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나중 감사가 아니다. 바로 지금부터 감사해라.

3. 자신을 감사하라.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높은 산과 거대한 바다의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저 광활한 우주의 태양과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는 감탄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을 감사하는 것이 가장 큰 감사다.

4. 일상을 감사하라.
가장 어려운 감사는 가장 단순한 감사다. 숨을 쉬는 것, 가장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감사가 가장 어려운 감사라는 것이다.

5. 문제를 감사하라.
문제는 항상 해결책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해결책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문제도 아니다.
그러므로 해결책이 있음에 감사하라. 그러면 동굴도 터널로 뚫린다.

6. 더불어 감사하라.
장작불도 함께 있을 때 더 잘 타는 법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감사할 때 감사는 시너지 효과를 띠게 된다.
가족들끼리 감사를 나누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온다.

7. 감사의 기어변속을 잘하라.
처음에는 <만일에> 감사다. 그 다음이 <때문에>의 감사다. 이어 <불구하고> 감사하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더불어>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저속기어를 넣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는 없다. 기어를 높여라.

8. 잠드는 저녁시간에 감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짜증과 분노, 근심 걱정을 껴안고 잠든다. 잠드는 시각에 감사하라. 저녁의 감사는 영혼의 청소가 된다.

9.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에는 메아리효과가 있다. 감사하면 뇌에 새겨진다. 그리고 감사의 반응은 언제나 긍정이 된다.
감사는 견인력이 있어 꼭 그런 방향을 가리킨다. 감사는 감사한대로 이루어진다. 이를 성취력이라 한다.

10. 받는 감사가 아니라 주는 감사를 하라.
우리말의 <고맙습니다.>는 말의 어원은 <고만 마세요.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어의 thanksgiving도 마찬가지다. thanks + giving이다. 때문에 give and take가 아니라 give, and take가 그 답이다. 언젠가 give and more take로 돌아올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3류 인생은 탓한다. 원망한다. 그리고 핑계거리를 찾는다.
2류 인생은 무조건 참아낸다. 하지만 일류인생은 감사한다. 그렇다면 나는?__

8/27/2008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강산이를 태운 스쿨버스가 오면 빨리 나가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예요>

어제부터 강산이가 스쿨버스를 탑니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는 시간이 6시15분으로 정해졌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될 것 같습니다.
강산이는 스쿨버스를 탄다는 새로운 사실에 어제, 오늘 아침 시간을 잘 지켜주었습니다.

아직 어둑한 새벽에 소리 없는 사이렌 불빛 같은 것이 번쩍거리면서 길모퉁이를 돌아오는 스쿨버스가 보입니다.
버스 기사와 강산이의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입니다.
버스 기사 아줌마와 “Good morning" 인사하면 기분이 더욱 좋습니다.

일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나가니 또한 좋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하다고 얘기해야 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하면 잘 써서 갖다 내야하고, 또 여기에 교우들의 도움이 보태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그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 때문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하나님께 그리고 같은 신앙의 길을 가는 교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우리 교회) 교사로서 이력서를 내야 했습니다.
이력서를 언제 써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저의 경력을 소개하면서 어떻게든 제 부족함을 메꾸어 보려고 이것저것 적어 넣었습니다.

삶을 수직적인 연대기로 살펴보는 이력서를 쓰면서 몇 년 전에 Hi Family의 가정사역 아카데미에 다닌 것도 적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성격 심리” 과목이 끝날 때 A4 한 장 반에 제출했던 짧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글대로 살지도 못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도 점점 없어질 뿐 아니라 다분히 선언적인 느낌까지 나는데 왜 생각났는지....
상대적으로 제가 누리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화로운 삶
“성숙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받고 내내 무엇일까, 무엇일까를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조화로운 삶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 조화로운 삶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나 스스로가 성숙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늘 가까이에 두고 빛으로 삼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며 모범으로 삼기도 하니 저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헨리 나웬, 마더 테레사와 티벳의 라다크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살았던 흔적을 잠시 살펴보며 제가 생각하는 성숙한 삶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헨리 나웬 (1932-1996)

나웬의 인생은 화려한 경력들이 많습니다. 화란에서 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가르쳤으며, 평균 일년에 한 권 이상씩 책을 썼고,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경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웬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의 여정에 있습니다.
나웬은 명문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버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라쉬(L'Arche Community)의 상주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곳은 데이브레이크(Daybreak)라는 곳이었습니다. 정신지체인들의 공동체인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 살아갑니다. 나웬은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을 부른다고 느낍니다. 나웬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그리고 넘쳐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데이브레이크에서 아담이라는 청년을 돌보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아담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20대의 중증장애인 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명예를 가진 나웬은 모두가 식물인간,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한 젊은이를 위해 사역했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담이 아니라 나웬 자신이었음을 점차 깨달아 갔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통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마더테레사 (1910-1997)

사람들은 마더 테레사를 ‘살아있는 성인’ ‘캘커타의 성인’ ‘사랑의 심장과 철의 의지를 가진 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가 가난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산 삶을 보면 노력해서 애써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흘러 넘치는 능동적인 사랑이기에 감동적입니다. 마데 테레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1백만 달러를 준다 할지라도 나병환자를 만지고 싶지 않다’고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이라면 2백만 달러를 준다 할지라도 지금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쁘게 그 일을 합니다.”
한번은 마더 테레사가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합니다. 큰 감동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캘커카에 가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봉사하기 위해 일부러 캘커타까지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들 이웃에 캘커타가 있으니 그 캘커타를 위해 일해 주십시오.”
마더 테레사는 종종 “가정 안의 캘커타”는 없는지 살펴보라고 일깨워 줍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정에서 지속되며 가정에는 사랑할 영역이 항상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천할 첫 번째 활동분야가 가정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천년 넘게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왔는데, 그것이 깊은 생태적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제 마음을 잡고 있는 부분입니다. 라다크 사람들은 낭비란 없이 모든 것을 재순환 시킵니다. 다 낡아 바느질도 할 수 없는 옷은 진흙에 뭉쳐서 수로의 약한 부분에 끼워 넣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합니다. 또 설거지 한 물도, 잡초들도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동체로 살면서 개인적 억압을 느끼기 보다는 깊은 안정감을 주는 곳,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 곳, 적은 자원으로 완전에 가까운 자립 생활 등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영적인 깊이를 더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라쉬같은 장애우 마을 공동체 이루는 것을 올해 우리 가족의 사명으로 선언했습니다. 나웬과 함께 했던 아담과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우리 아이가 있는 한 오랜 동안 그 사명을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헨리 나웬이나 마더 테레사나 라다크 사람들 마냥 그들을 흉내 내며 살다보면 지금 보다 성숙한 삶을 살게 될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12월 2002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막9:35)

5/27/2008

04/30/2004 - 김포 행복 발전소

* 아래의 글은 하이 패밀리-사랑의가정연구소 아카데미 게시판에 여한구 목사님께서 올린 글을 퍼온 것입니다.

집단상담 가는 길,
설레이는 마음으로 김포를 지나면서 들렀습니다.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주차가 불편하고
태양의 위치때문에 들어갈 때는 포기했습니다.
나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기도한 후,
사진을 찍었습니다.
처음 부지를 보았을때, 좁은 땅이라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골조가 선 교회를 보며 들판에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신 하나님의 능력에, 찬양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마송의 이은주 사모님(아카데미 7기), 기적의 인물,
여러가지 세심한 배려로 행복을 나누어 주시는 분,
사모님의 마음을 닮은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 같아 무척 흐뭇했습니다

교회 입구에 서 있는 "해피트리"아파트는 그 동안의 준비와 기도가
결실을 맺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백석마을이 "행복트리"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행복트리옆에 행복발전소가 생겼으니
이제 입주하시는 모든 분들의
행복은 이제 사모님과 목사님의 기도에 달려 있겠죠!

신일 행복트리 라는 화살표 옆에 행복발전소라는
에벤에셀의 표시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곧게 우뚝 솓은 십자가 탑이
넓은 벌판의 등대같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교회뒤로 숨어버린 태양,
행복발전소의 위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둥그렇게 그렇게
정말 발전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잃지 않은
교회의 전경은
모태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행복 마을, 행복나무 아파트에
행복발전소,
그 듬직함은 교회 뒤의 벽처럼 묵묵히 지역 주민들을 지키고,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서 빨리, 예배당이 완성되어
감사와 행복의 예배를 드리며,
행복 충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