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바느질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바느질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5/12/2025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나에게 25 넘은 재봉틀이 있다. 자급자족이 가능할까, 고민하던 때라 재봉틀이라는 도구로 의식주에서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기대했다. 사실 이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는 작고 가까운 데서 온다. 당시 몇몇 친구들이 생활한복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의 물결에 끼고 싶어서 얼른 재봉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벌의 생활한복을 만들어 가까운 식구들과 나누어 입었다.

그리고 퀼트에 재봉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퀼트를 처음 배울 , 조각천을 손바느질로 잇는 즐거움에 빠졌다. 하루 종일 손바느질만 하면서 살면 좋을 같았다. 하긴 재봉틀을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퀼트 초급 수준을 조금 벗어나자 재봉질과 손바느질을 섞어서 사용하니까 훨씬 효율적이었다. 퀼트로 생활 소품이나 이불을 만들어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제 나의 나이든 재봉틀은 바지 길이를 줄이는 단순한 재봉질에 사용된다.

한번은 이웃들과 중고 물건을 나누어 쓰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고품 중에는 옷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패션에 남다른 감각으로 옷을 다양하게 소유하고 있는 어느 이웃은 옷을 재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한발 나아가 중고 옷을 원하는 사람한테 맞춤 수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었다. 옷수선을 재봉틀을 만져본 내가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수선할 기술이 없었다.

즈음 읽은 <핀란드 사람들은 중고가게에 갈까?> 인상적이었다. 책의 지은이 박현선은 가구디자이너다. 지은이는 환경과 소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구디자인을 배우러 핀란드에 갔다가 중고 문화를 만난다. 핀란드는 유엔이 조사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까지 연속 7 동안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 중고 문화가 자리잡게 배경과 여러 중고 가게의 형태를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취급받던 나라였다. 핀란드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다가 1917 독립한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는 왕족이 다스렸는데 핀란드는 왕족이 없었다고 한다. 핀란드는 보통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생활용품도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용품이 자리잡고 있다. 국경 분쟁과 내전, 그리고 1990년대 경제 대공황을 겪기도 한다. 그들의 중고 문화는 대다수인 보통 사람들이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변화를 지체하지 않은 결과물 하나다.

나아가 환경을 생각하는 건강하고 경제적인 소비라는 생각을 근간으로 중고 문화가 성장한다. 핀란드에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역할을 하는 재사용 센터, 국민 브랜드와 협업하는 중고 가게, 시민 축제이면서 문화 공간이 되는 벼룩시장, 감성을 살린 리페어 카페 등이 있다. 핀란드에서는 낡은 물건을 고쳐 쓰거나 나누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지혜롭고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한편, 지은이는 중고 가게와 벼룩시장이 물건을 사기 위해 물건들을 빠르게 털어버리는 배출구로 이용되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수리와 수선을 강조한다. 트레쉬 랩이라는 행사에서는 고장 나거나 부서진 물건을 수리하고 관련 정보를 나눈다. 전문가가 직접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조언하기도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아껴 쓰고 고쳐 쓰는 운동이다.

이쯤 되니, 수선에 필요한 바느질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평생 사용할 있는 기술이자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줄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익힌 바느질 기술은 사용할수록 손끝을 여물게 터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사부작사부작 즐길 있는 일이다.

오래된 재봉틀은 한국에서 샀다. 전압이 다른 미국에서는 변압기를 이용하여 그걸 여태 썼다. 많은 일을 재봉틀이 아직 살아 있지만 먹고 새로운 재봉틀을 집으로 들였다. 도구를 가지고 앞으로 25 동안 재미있게 생각을 하니 흥미진진하다. 일상에 필요한 새로운 바느질 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힐 시간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2/09/2015

묻어 둔 숙제




조각 하나.

지역 도서관에 자유롭게 수다 떠는(free talking) 반이 있어서 다닌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오후라 그런지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여서 각각의 그룹을 이끌어 가는 자원봉사자들이 더 많았다. 60대 초반의 백인 부부와 한 그룹이 되었다. 또 다른 참여자가 있기도 했는데 오다가 말다가 하여 내가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 좋았다.

대화 상대였던 백인 부부는 아주 꼼꼼해서 틀린 발음들을 잘 고쳐주었다. 특히 아내인 캐시 아줌마는 질문을 하면 간단히 답을 하지 않고 더 많이 가르쳐주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퀼트를 조금 해 본 적이 있고 관심이 있다고 했다. 캐시 아줌마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퀼트 모임이 있는데 언제든지 와 보라고 했다. 모임 시간과 교회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교회는 내가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규모가 큰 장로교회였다. 퀼트도 배우고 영어도 더 얻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퀼트 모임도 평일 오후 시간이었다. 퀼트 하는 방에 이르자 곧 캐시 아줌마가 도착을 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로부터 젊은 새댁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책상을 앞에 두고 넓고 크게 둘러 앉아 내 소개를 했다. 회원 몇 명이 그 즈음에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작품들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서너 명씩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소곤거릴뿐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캐시 아줌마는 그 모임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을 사진 찍어 모아 놓은 자료집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크기나 만드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했다. 완성된 것은 부모 없는 아이들, 환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부목사 등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된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모임에서는 완성된 퀼트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를 정하면 각자가 블록(조각 천을 붙여 만든 하나의 단위)들을 만들어오고, 누군가 그 블록들을 연결하고, 솜을 넣어 누비고……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퀼트를 잘 하는 사람들이고, 모임 시간에 퀼트의 오밀조밀한 방법들을 배우기는 어려워 보였다.

조각 둘.

한 주가 지나 다시 캐시 아줌마와 그 남편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캐시 아줌마의 남편과의 대화가 자꾸 막혔다. 시작은 exercise라는 단어였다. 나는 연습문제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중학교 때부터 영어책에서 수도 없이 봐온 단어이기에). 그랬더니 아저씨는 그 단어의 뜻은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운동도 맞고 연습문제도 맞다고 했더니 어이없어 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온 사람이 아는 체하는 꼴이 된 것이다. 또 무슨 얘기 끝에 Systematic Theology(조직신학)라는 단어를 말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그런 단어도 있냐며 설명해보라고 했다. 이걸 영어로 설명하다니, 얼마나 버벅거렸는지…… 그리고 퀼트 모임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결국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비록 영어도, 퀼트도 서툴지만 아저씨가 나에게 뾰족하게 구는 태도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난 다음 날부터 그 동안 퀼트 하면서 남아있던 자투리 천들을 모두 꺼내, 캐시 아줌마네 교회 퀼트 모임에서 최근에 진행중인 블록과 같은 모양으로 커다란 이불을 만들기 시작했다. 캐시 아줌마의 친절함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이불 만드는 것을 알고는 이불 뒷감으로 쓸 수 있는, 앞면과 잘 어울릴만한 커다란 천을 주기도 하였다. 솜을 살 때는 퀼팅 도구들을 파는 가게 Joann에도 같이 가 주었다. 캐시 아줌마는 이불 앞면이 완성되는 것까지만 보았다.

5개월에 걸쳐 나의 퀼트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불이 하나 만들어졌다. 천 조각 하나 하나마다 사연이 묻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처럼 저마다 다른 천들의 고유한 재질과 무늬들을 보고 있자면, 그 다양성에 놀랍기도 하고 뭔가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한다. 조각들이 이어져 쓸모 있는 무엇이 된 것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불을 만드는 동안 곱고 예쁜 조각천들 덕분에 캐시 아줌마 남편의 뾰로통한 인상도 많이 희미해졌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건 커다란 이불 하나를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이것은 큰 아들에게 먼저 주기로 했다.






조각 셋, .

작은 아이는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왕 천들을 손에 잡은 김에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작은 아이가 대학 가서도 엄마와 가족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자는 동기를 팍팍 부여하고 시작했다. 새로운 모양의 블록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가는 일이 코앞에 닥친 일도 아니고 다른 관심사가 생기는 바람에 그만둔 지 2년이 넘었다.

남편이 한국에 갔을 때 친구가 가진 천으로 만든 가방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 친구의 아내는 퀼트를 아주 잘 하는 이여서 자기 남편의 가방을 손수 만들어 준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와도 잘 아는 남편은 자기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했다. 그 아내는 내 남편의 빠듯한 출국 일정에 맞추어 엄청 멋진 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남편은 이 가방만 들고 다닌다. 작은 아이는 아빠의 퀼트 가방을 이른바 명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관심과 사랑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기 때문이란다.

이젠 묻어둔 숙제를 꺼낼 때가 되었다. 작은 아이가 대학갈 날이 몇 개월 후면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자기 이불은 언제 만들거냐고 숙제를 자꾸 상기시킨다. 집을 떠나면서 엄마의 애정 어린 기도와 손길이 담긴 물건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아이의 갸륵한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서둘러야겠다.

7/02/2010

오랜만에 보는 인형놀이


여름 캠프에서 면장갑으로 인형 만들기를 했는데, 인형을 집에도 가져와 며~칠 동안 만지작거리며 재미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퀼트 하던 천을 주었더니 옷을 만든다고 도와 달라며 자꾸 말을 시키는 바람에 뭘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
“너희들 마음대로 하세요!”
서로서로 하도 질문이 많아서 만들어진 우리 집만의 유행어입니다.

블로그에 올릴 글 썼느냐며 딸들이 물어봅니다.
“아직 못 썼거든.”
지금도 인형한테 천을 뒤집어 씌워가지고 와서는 “큰 엄마, 이것 보세요” 또 말을 시킵니다.
이그그. >.< 자기네들 인형 옷 만드는 거 올리랍니다. ㅇㅎ, “블로그에 글 올리려면 사건을 만들어내야만 해.” 어찌 그리 제 마음을 콕 찍어서 얘기하는지, 웃깁니다. 또 아이들 넷이 제 주변으로 몰려들어 시끌시끌, 사진을 찰칵찰칵.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5/29/2008

12/01/2005 - 사랑을 꿰매는 아이


강윤이가 밤늦게 까지 바느질을 합니다.
'샘'에게 드릴 하트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학교에서 바느질 한다고 준비물을 챙겨 달랬습니다.
뭐 할거냐고 물으니 책을 펼쳐 보여줍니다.
홈질, 박음질...바느질 상자를 열어 새 바늘과 실, 쪽가위를 챙깁니다.

바느질 천으로는 오래 전 생활한복 만들고 남은 천을 아낌없이 잘라줍니다.
그 천 조각들은 왠지 언젠가 꼭 쓸 곳이 있을 것 같아 잘 보관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윤이가 바느질 연습을 한다니까 다른 천 조각들도 많이 있는데 이상하게 맘에 들어 아끼던 그 천으로 손이 갑니다.
빈 화장품 상자에 바느질 도구들을 담아 주니 강윤이가 조금 신이나는 것 같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엄마가 정성껏 챙겨줄 때면 강윤이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엄마, 애들이 하트 만들어달래."
"무슨 하트?"
"저기 저런 거. 내일 까지 세 개나 해야 되는데. 엄마가 도와 주면 안돼?"

언젠가 바느질 할 때 옆에서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여 천을 주었더니 "엄마 사랑해" 하며 만들어 놓은 하트 무늬를 말하는 것입니다.
"재규는 하트를 쿠션으로 해달래."
학교가서 뭐라고 했길래 그런 주문을 받아왔는지....


요즘 우리 속회에서는 모임이 끝나고 퀼트를 배우고 있습니다.
퀼트 강사를 했던 지연 자매가 자기가 모아두었던 천을 거저 내어주며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퀼트를 좋아하는 나도 얼씨구나 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핀쿠션을 만들었고 다음으로는 하트 바구니입니다.
하트 바구니는 동서 생일이 가까이 있기에 선물로 주려고 만들었습니다.
엄마가 하트 바구니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터에 학교에서 바느질 한다니까 아이들에게 '하트 쿠션 어쩌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이 무심한 엄마는 "야, 언제 3개씩이나 만들어! 그 시간에 기말시험 공부나 하지!!." 했습니다.
학원에 안다니는 대신 우리는 기말시험 문제집을 사서 저녁마다 풀기로 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어제입니다.
강윤이는 멋쩍게 있다가 "에이, 잘래" 하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두 아이가 모두 방으로 들어가고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두꺼운 종이에 하트를 그려 오려내고 강윤이에게 준 천에 하트를 3개 그려넣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강윤, 하트 3개 그려놨어."


이 날 강윤이는 저녁을 먹고는 열심히 바느질을 합니다.
뭐 하나 봤더니 하트 모양을 홈질하고 그 가운데에 '사랑 샘' 이라고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야?"나는 샘솟는교회의 '샘'을 떠올리며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나 홈질 잘한대. 선생님 드릴려구."
아! 사랑스러운 내 아들.

어제 일도 미안하고 하여 강윤이 기를 살려주기로 합니다.
"강윤아, 평면으로 하지 말고 하트 쿠션으로 만들어 드릴까? 니가 앞에 글씨 홈질하면 엄마가 쿠션 만들어줄게."
"정말? 솜 넣어서?"
엄마가 만드는 것을 보고 자겠다기에 잠잘 시간을 뒤로 미뤄 주는 아량도 보여주며 꼼꼼하게 하트 쿠션을 마무리 합니다.

무슨 때도 아닌데 강윤이 선물을 받은 선생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 지 자못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뭐라셔?"
"고맙대."
"또 뭐라고 하셔?"
"고맙다고 그랬다니까. 앞에는 내가 하고 뒤에는 엄마가 했다고 했어. 그랬더니 고맙대."

난 뭘 기대하고 자꾸 물어보는지...

선생님에게 뭔가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뭔가를 마련하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과의 관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강윤이 담임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을 종이 위에 드러내는 것은 서툴지라도, 봉사 정신이 있는 아이로, 리코더를 제일 잘 부는 아이로, 홈질을 잘 하는 아이로 인정해 주시니 말입니다.

선생님의 인정과 엄마, 아빠의 관심이 강윤이 자신에 대해 기분좋게 여기면서 자신감을 갖게 하나 봅니다.
하나님, 엄마, 아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강윤이 삶에 튼튼하게 꿰매어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빌어봅니다.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한 아이는 다음과 같은 것은 갖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이 확립된다.
-건전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뻐져들지 않는다.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이 생긴다.
-도전을 피하지 않고 환영하면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지능이 발달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폭력, 성적인 접촉, 극단적인 행동, 약물 남용 들 위험한 행동을 피한다.

월트 래리모어,<세상에서 가장 독한 엄마가 되라> 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