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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008

12/18/2004 - 목사 새끼, 새끼 목사

목사 새끼? 새끼 목사?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을 가리켜 하는 말인듯 싶은데 귀로 들어만 봤던 말을 막상 글로 옮겨보니 그 말의 느낌이 참 강하네요.

"아유, 내 새끼 장하다" 할 때는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목사 새끼, 새끼 목사'는 목사 자신이 자기의 자녀를 속마음과는 다르게 속되게 표현한 말 같습니다.
그 말에는 뭐랄까, 목회자 부인인 제 편에서 볼 때 안쓰러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 가정에도 목사 새끼가 둘 있습니다.
열 두살 강산이와 아홉살 강윤이.
지난 주에 강윤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서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강윤이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발표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온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멋진 연주를 해냈습니다.

강윤이가 피아노 치는 것을 처음 보신 할머니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셨습니다.
둘레둘레 찾아보니 학원 아이들끼리 앉아있는 강윤이에게로 어느새 다가가 뭔가 속삭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발표회가 다 끝난 다음에도 "우리 강윤이 근사하다. 제일 멋졌어!"하며 얼굴을 보듬어 주십니다.
강윤이는 자판기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조금 참았다가 집에가서 물 먹자'고 했을텐데 "그래? 얼마야? 500원? 600원?" 합니다.
할머니, 아빠, 엄마가 동시에 주머니와 지갑을 뒤지며 동전을 찾습니다.

"우리 저녁 뭐 먹을까?"강산이와 강윤이는 입을 맞추어 "피자!" 합니다.
"좋아, 할머니가 강윤이 축하하는 기념으로 피자 산다!"

강윤이가 피아노 배운 지 2년 남짓.
지난 달에 바이엘 끝내고 체르니 100번을 시작했습니다.
4권으로 된 바이엘을 마쳤을 때에도 떡과 요구르트를 사들고 학원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책떨이를 했었습니다.

강윤이가 피아노 레슨받고 발표회 하는 것을 맘껏 지지해 주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강윤이가 뭔가를 '꾸준히'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그저 대견해서,그리고 피아노를 배우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그 목표는 바로 예배를 돕는 피아노 반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이 다음에 되고 싶은 꿈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려온 그림은 뜻밖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있는 한 사람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어림잡아 알듯도 했으나 강윤이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그것도 몰라! 넥타이 매고 있는 거 보면."
"목사님?"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옆으로 흘겨보며 "...."

강윤이의 표현대로 장래희망이 목사랍니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 집에 새끼 목사가 하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에서 어느 누구도 강윤이에게 목사가 되라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윤이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일년 반 전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목사가 될 거야. 두고 봐."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있는 남편의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목사 둘 다 남편의 영향이 미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강윤이가 상장을 받아왔습니다.
'봉사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시켜서 한 것인지 지가 스스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리가 아픈 친구를 날마다 도와주었나 봅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한 아들 강윤이와 형 강산이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이들의 엄마로서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사람되도록 양육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목사 새끼로, 새끼 목사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목사 가정에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꿈이 목사라고 해서 항상 점잖고 겸손하며 무엇이든지 양보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열 두살, 아홉살 된 꿈많고 개구쟁이인 사내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라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갈 때, 하나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과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끈기있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길, 조용히 기도로 돕는 어미가 되고 싶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12/01/2004 - 동행

얼마전 엄마와 피아노 독주회에 갔습니다.
엄마가 이사오시 전에 다니시던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곽집사님의 따님이 숙명여대에서 독주회를 하게 되었는데 '꼭 가겠노라' 이사오기 전에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연주회 하는 날이 토요일 오후라 교회 청소와 주일 준비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 이사온 이곳의 모든 것이 낯설고, 다리도 불편한 엄마를 '혼자 다녀오시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다녀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사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피아노 독주회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숙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 궁금증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줄 알지만 그저 알고싶고 보고싶은 호기심이 발동을 했습니다.

싱싱한 젊음이 넘쳐나던 20대 울적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혼자 이곳저곳 잘도 다녔습니다.
'버스 종점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인천에 살고 있었기에 7번(검단), 22번(신천리), 4번(박촌?) 버스를 타고 가서,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곳'을 확인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마도 내가 사는 동네나 나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보며 위로를 받았나 봅니다.

단순한 호기심을 빌미로 일상을 탈출해보려는 시도는 그만...
내가 본 그 대학은 커다랗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만 웅장하게 보일뿐 운치라고는 찾기 힘들었습니다-그 모습이 다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안있어 슬슬 잠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끝날때까지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선정된 곡의 작품해설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들려오는 리듬이나 선율을 느껴보려고 처절하게 애를 썼으나 허사였습니다.
하이든 Sonata Hob.XVI:52 E Major, 처음 들어보는 벨라 바르톡 Suite Op.14, 브라암스 Sonata Op.5 F-Moll.
피아노 독주회를 할만큼 수준있는 곡들일텐데 듣는 제게는 너무 무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엄마에게 나는 무척 힘들었노라 했더니 엄마는 "독주회가 다 그렇지 뭐" 하십니다.
엄마의 음악 수준이 이렇게 높은줄 몰랐습니다.

연주자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엄마는 고향 사람들을 만난듯이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관객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다니시던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사이에 목사 사모인 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나를 불러 인사를 시키기도 합니다.
그런 엄마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며 옆에서 가만 지켜보자니 그 며칠 사이에 저 교인들 가운데 엄마의 자리가 사라졌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습니다.

주최측의 실수로 저녁도 못먹고 전철역으로 걸어오는데 엄마의 절룩거리는 걸음이 더욱 힘들어보였습니다.
10년 넘게 다닌 교회를 뒤로 하고 이제 새로운 신앙의 자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내 손을 빌려드리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야,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길 나 혼자 어떻게 왔다가니!" 하십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의지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보였습니다.


기분이 영 가라앉기만 하는 것 같아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은데 도너츠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쵸코렛이 많이 묻어있는 도너츠를 골랐습니다.
이런 음식점에는 세번째 오는 것이라며 엄마는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전철역을 올라갔습니다.
전철이 플랫폼에 닿자 엄마는 날렵하게 노약자석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언제 내 다리가 아팠냐는듯이.무릎의 연골이 거의 없어지고 ㅇ자 모양처럼 휘어질대로 휘어진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얼마나 될지 전철이 달리는 내내 헤아려 보았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엄마와 하나 밖에 없는 딸.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여인의 삶을 조금씩 알아가며 철들어가고 있는 딸이 곁에 있음을 축복으로 여기실 수 있도록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10/02/2004 - 작은 천국에서 보낸 추석

올해 우리 가족이 보낸 추석은 차분하면서도 알찼습니다.
"차분했다"는 것은 추석 음식의 가지 수를 줄여 음식 만드느라 피곤하지 않고 음식 만드는 동안 더 많은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알찼다"는 것은 '가족됨'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이 함께 모일 때의 즐거움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추석은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추석 음식 가운데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송편빚기 입니다.
곱게 빻은 쌀가루를 서방님이 힘을 꾹꾹 주어 치대어 찰지게 반죽이 되었습니다.
반죽하는데도 아이들이 함께 주물주물 했음은 물론이고 송편 만드는 일에도 한몫을 합니다.

작은 집 예희는 우주선떡, 꽃떡, 네모난 주사위떡을 만들고 강산이는 모양은 송편인데 속으로 넣은 깨가 밖에도 묻어 깨버무리떡이 됩니다.
강윤이는 크게 빚어 왕떡을 만듭니다.
어머님은 이게 뭐냐고 하시면서도 말리지 않았고 동서와 나는 아이들이 만든 떡은 손님상에 놓지 않고 우리가 먹으면 된다며 그냥 놔누었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떡만드는 즐거움을 누릴 뿐 아니라 떡 만드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서?!?!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버님은 강산이의 깨버무리 송편이 점점 많아지자 솔잎 뜯으러 가자며 아이들을 몰고 나가십니다.
아이들은 좋아라 우르르 마당으로 달려 나갑니다.

점심은 자기가 만든 떡을 찾아 먹는 재미와 송편속이 밤인지 깨인지 맞추며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점심 먹고 특별한 저녁 식사를 위해 서방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읍으로 시장보러 갔다왔습니다.
그러더니 아이들에게 망둥이 낚시 가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펄쩍펄쩍 뛰고 서두르는 모양이 무척 신이 나는가 봅니다.
시댁 마을은 강화에서도 서쪽 거의 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가깝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수로에는 제법 고기가 잡히기도 합니다.
어느새 서방님은 그곳을 눈여겨 보셨나 봅니다.

서방님은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이고 컵스카웃 지도교사 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레크레이션, 체육 부문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올 추석에는 서방님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도 서방님도 아이들을 몰고 다니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들 옆에서 귀찮게 할까봐 그래서 일하는 것이 더 힘들까봐 그런 것입니다.
어머님과 동서, 저는 아이들이 나가서 노니 일하기 편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아주니 좋고 그렇습니다.
아직 예람(생후16개월)이가 어려 동서의 품을 떠나지 않지만 가끔 '예쁜짓'을 해서 웃음을 자아내곤 합니다.

저녁 먹을 때가 다되어 들어온 아이들은 엉망이었습니다.
낚시를 온몸으로 했는지 다 젖어 들어옵니다.
아이들을 씻기는 것은 아버님이 하십니다.
여자들은 계속 주방에 있었으므로...

추석빔으로 마련해 놓은 옷으로 죄다 갈아입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엄마들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망둥이는 8마리 잡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낚시하는 장소에서는 잡히지가 않아 물속으로 들어가 했더니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미 옷은 젖었으니 갯펄에서 맘껏 놀다 온 것입니다.
아이들 얘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어렷을 적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 고향이 일영유원지로 유명한 그곳입니다.
엄마의 할머니 일명 시골할머니 생신이 겨울이었는데 생신 때면 외삼촌 가족과 해마다 찾아 뵈었습니다.
서울 서부역에서 서둘러 기차를 타던 일, 일영역에서 시골할머니댁까지 하얗게 싸인 눈을 밟으며 걸어가던 일.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가 놓였지만 그 때는 솔잎에 진흙을 섞어 놓은 다리가 있었고, 깜깜한 저녁 집앞 다리 아래로 얼어붙은 계곡에서 돌맹이로 축구하며 미끄러져 넘어지던 일...
아주 오랜된 일인데도 생각해보면 마음이 참 푸근해집니다.
우리 아이들도 커서 강화할머니댁을 추억하는 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아이들에게 신나는 일이 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전에는 시댁 넓은 마당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는 조그마한 그릴도 준비해서 저녁식사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갯펄에서 한참 놀고온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구운 고기와 밥 한그릇을 뚝딱 헤치우고 맙니다.

추석 아침,푸짐한 아침을 먹은 다음 가족이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대표기도는 둘째네.
서방님이 마다하시니 예희가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모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음음..."
6살 예희는 몸을 앞뒤로 흔들며 얼마나 정성스레 기도하는지 예배가 마친후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희기도가 끝나자 어머님은 눈도 안뜨시고 "예희엄마 기도해라" 하십니다.
동서는 어머님과 아버님, 강산이네를 위해 기도하더니 어느새 동서는 울먹울먹 합니다.
"부족한 제가 믿음의 가족을 만나 한가족을 이루게 하신 것 참 감사합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우리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시듯 우리도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부모가 되게 하여 주세요."
예희가 기도 칭찬을 받은 것처럼 어머님은 동서의 기도가 은혜스러웠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끼리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고 놀아주고 게다가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모습은 마치 작은 천국 같았습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를 누리니 참 행복합니다.

08/28/2004 - 어둑한 공원의 추억

아이들 여름방학이 다 끝났습니다.
월요일이면 개학 입니다.

제가 어렷을 적에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도 방학 내내 놀다가 소나기 몰아치듯 방학 숙제를 합니다.
그나마 방학 선택 과제 가운데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에 부담이 덜 되었나 봅니다.

강산이는 특수학급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국어, 수학 문제집을 제발 그만 하자고 할 때까지 좋아라 하며 풀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공부하자고 하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강산이 입니다.
강윤이는 운동하기(태권도), 만들기, 부족한 교과 학습하기, 오카리나 배우기를 선택 했습니다.
태권도는 학교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하던 것을 방학 중에도 계속 하는 것으로 활동적인 강윤이가 무척 좋아하는 시간 입니다.
만들기는 여름성경학교 만들기 나라에서 한 것 가운데 하나를 제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교과 학습은 수학 문제집을 풀기로 했는데 오분의 일 정도 한 것 같습니다.
오카리나는 강윤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서 방학 특강으로 신청한 것 입니다.
교과를 복습하는 것을 제외 하고는 자연스럽게 숙제를 하게 된 것 입니다.

공통 과제는 4 가지 인데, 일기 쓰기, 교육방송 기록하기, 독후감 쓰기, 가족신문 만들기 입니다.날마다 해야 하는 두 가지는 관두고 독후감 쓰기와 방학 때 마다 하는 가족신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족신문은 부모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학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염두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막상 신문을 만들려고 하니 이번 여름에는 산이나 바다를 간 적도 없고 누구를 찾아가 만난 일도 없고 아이들이 신날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 첫 여름성경학교, 집 이사, 예배와 새가족에 온통 마음을 쓰고 있는 남편 덕분 입니다.
남편에게 휴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데라도 하루 다녀오자 해도 대꾸도 안합니다.
아이들 방학이 일주일 남자, 날마다 집에만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냐며 동정을 사 볼 요량으로 말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있다가 그러면 이천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네 들려 보자고 합니다.
친구도 만나고 아이들 끼리도 친하니 나는 얼른 좋다고 했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친구네 갈 수 있는 날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친구와 만나는 것을 빨리 포기 했습니다.
못 만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꾸 생각하면 속이 더 상할 것 같아서...

강산이에게 물어봤습니다.
"강산이는 어디에 놀러 가고 싶어?"
강산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손바닥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흉내를 내며 놀.이.공.원. 합니다.
이틀쯤 지난 후 남편은 '롯데월드는 얼마면 갈 수 있어? 내일 오후에 시간 내보지 뭐' 합니다.
그런데...못 갔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못 갔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쉬는 것을 가장 좋은 휴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 낯선 곳으로 휴가를 안간 지 5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휴가 없냐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남편은 요지부동 입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隋)라고 어느새 남편 생각이 제 생각이 되고 말았나 봅니다.
우리 부부는 그렇다쳐도 아이들에게 이번 여름은 너무 심심하게 지나갔습니다.

이런 저런 궁리만 하다 방학 마지막 한 주간 절반이 지난 목요일, '뭐 재미난 일 없을까?' 강윤이에게 물었습니다.
강윤이는 강화 바다를 바라보며 사발면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올 초 바람이 많이 불어 춥던 날, 강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다가 길가 쉼터 한 켠에서 팔던 사발면을 먹었던 것이 강윤이에게는 아주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봄에는 김밥과 평상시에는 전혀 먹지 않는 사발면을 사들고 강화 배터가 있는 외포리 쪽으로 드라이브를 갔었습니다.
하루 일들을 마무리 하고 길을 나섰기 때문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보일 뿐만 아니라 그 날도 바람이 많이 불어 가지고 간 사발면은 차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강윤이는 이 날의 일들을 너무나 재미 있었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 가자!
목요일 오후.강윤이 학원 갔다 오고, 교회 주방 설치하는 것 보고, 부족한 주방 기구 보러 김포 시내에 다녀오고...
어느새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네.
햇님은 제 집으로 찾아가는 손님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시간표대로 강화 바다로 돌아가고 있잖아.

남편은 지금 가도 바다는 못 볼 것 같으니 옆 동네 태산가족공원으로 가면 어떠냐고 제안을 합니다.
강윤이는 사발면 먹을 생각에 그랬는지 얼떨결에 그랬는지 공원 연못을 바다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자, 조금 더 서두르자.
김밥집에 들려서 얼른 김밥 몇 줄 사고, 사발면은 가다가 가게가 보이면 사자.

8시쯤 도착.
어! 왜 이렇게 어둡지?
가로등이 몇 개 밖에 안켜있네.
서늘한 밤공기 쐬러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데이트하는 중고생만 서너명.
바닥은 공사 중이라 다 파헤쳐 놓고.

나는 이럴 때 왜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건지.
남편과 아이들에게 지켜달라며 공중 화장실로 가 더듬더듬 전등 스위치를 찾아 켜보니 불이 안들어 오네.
문 열어 놓고 볼 일 보라며 남편과 아이들은 여자 화장실 입구에 죽 늘어서 뭐라고 속닥속닥.
나는 급해서 무슨 말을 하는 지 들리지도 않습니다.

가족공원에 왔던 기억을 살려 긴 의자가 있는 곳을 찾다보니 매점 옆으로 음료수 자판기 불빛이 보입니다.
그 불빛에 사발면을 비추어보며 스프를 넣고, 그런대도 어느 사발면에는 스프가 두 개 들어가고.
우리 집 저녁식사 시간인 6시가 지난 지 한참이라 모두가 정신없이 사발면과 김밥을 먹었습니다.
아이들도 제 몫의 사발면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습니다.
이게 뭐야?
오자마자 먹고만 가네.
연못가에서 바다를 상상해 볼 생각도 못하고 말입니다.
추억, 낭만, 여유. 모두 엉터리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윤이는 다음에는 진짜 바다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 바다 구경 하지 못한 서운함이 배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싱겁지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여 필요를 채워주고, 한 그릇에 스프를 두 개 넣은 아빠를 용서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너그러움을 담아 왔으니까요.

08/14/2004 - 봉숭아 물을 곱게 들였어요

엊그제 밤에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습니다.
해마다 이 맘 때 온 식구가 손톱, 발톱에 꽃물을 들이고, 남은 꽃은 이웃과 나누어 함께 들이곤 했습니다.
봉숭아 꽃과 잎사귀는 강화에 사시는 어머님께서 구해 주십니다.
지난 해까지는 어머님 동네 다른 집에서 꽃을 따다 주셨는데 올해는 우리를 위해 마당 한켠에 심어두신 것을 따 주셨습니다.
평상시에도 자녀를 위해 많은 사랑을 몸소 보여주시는 어머님이신데, 봉숭아를 심어 놓으셨다는 말씀에 자녀를 생각하시는 세심한 마음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봉숭아 물 들이는 것을 좋아하고 기다립니다.
밤새 손발이 묶여 있어 불편할텐데 그런 불편함을 얘기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언제 할꺼냐, 빨리 하자 조르기 까지 합니다.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서는 봉숭아 꽃과 그 잎, 백반 혹은 소금이 필요합니다.
봉숭아 꽃과 잎은 반나절 정도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서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꽃을 찧을 때 나오는 물이 줄어, 손에서 흐르는 것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이 가르쳐 주신 삶의 지혜 입니다.

꽃을 찧을 때 백반과 소금을 넣으면 색이 더 진하게 든다고 생각하고 올해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백반이 사람에게 안 좋다고 합니다.
뭐 화학물질이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금만 넣어도 효과는 비슷하다고 하니 돌아오는 해부터는 소금만 넣고 해봐야 겠습니다.


꽃과 잎을 찧는 일은 아이들이 서로 하려고 합니다.
강윤이에게 맡겨 놓아도 이제는 제법 잘 합니다.
거의 다 찧은 다음 마무리 찧는 것은 형에게 하라고 하며 사이좋게 준비를 합니다.

그 동안 나는 일회용 비닐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필요한 만큼 잘라놓고 종이테입을 찾아다 놓습니다.
종이테입은 실 대신 입니다.
종이테입으로 감아주면 손가락이 아프지도 않고 꽃물이 흐르는 것도 막아줍니다.

자, 준비는 다 되었고...
그 다음 역할은 남편의 몫 입니다.
강산, 강윤이 손톱과 엄지 발톱, 그리고 내 손톱까지 모두 묶어 주어야 합니다.
먼저 시작한 강윤이는 "아빠 진짜 꼼꼼하다!"며 아주 만족해 합니다.
다음 사람 강산이는 손을 자꾸 움직여 가만히 좀 있으라고 남편은 궁시렁 거립니다.
그래도 강산이는 아빠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움직여서 남편을 땀나게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저러다 나는 안해준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대충해. 두 개만 해줘"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거 두개만 하면 이뻐? 이상하지 않아?" 합니다.
남편의 그 말 한방에 내 걱정은 싹 날아가고 "그럼 마저 해줘" 했답니다.
그리고 내 양 손가락 세 개씩에도 테입이 칭칭 감겼습니다.

거실에 미리 넓게 깔아놓은 이불에 아이들이 신나하며 눕습니다.
지난 해를 미루어 보건대 아무리 꼼꼼하게 손가락을 싸놓아도 꽃물이 이불에 묻곤 했는데 어찌하면 좋지?
그러다 문득 아이들 손과 발에 비닐 봉투를 씌워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한테 제안을 했습니다.
답답해서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고 좋다고 하면 해 보리라 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들은 좋다고 합니다.
비닐봉투를 묶어주니 더 재미있어 합니다.
괜찮겠지...
내 손에도 묶어보고...

한 10 여분 뒤척이더니 아이들이 잠이 들었습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밤 늦게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드는데 밤11시 넘어 봉숭아 물들이기가 끝나니 금방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손발에 비닐봉투를 감고 자는 모습이 너무 웃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꽃물이 곱게 물들었을 손톱을 기대하며 저 불편함을 감수하는 아이들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우리 놀이문화가 찾으면 많아도 애써 찾지 않으면 사라지고 잊혀진 것이 많습니다.
그나마 강산이가 가끔하는 공기와 구슬치기, 강윤이가 하는 실뜨기와 노란 고무줄로 이리꼬고 저리꼬아 모양 만들기 따위가 요즘하는 것 입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일년에 한번 하는 것이지만 우리 놀이문화를 지킨다는 넓은 시각과 가족 사이에 서로의 손을 만져주며 예쁘게 꾸며주는 다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아빠가 품은 이런 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천사같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침이었습니다.

08/06/2004 - 강산,강윤이네 이사했어요

8월2일 무더운 날들 가운데 그래도 조금 덜 더운 날, 아주 넓고 환한 새집으로 이사했습니다.

1일까지 여름성경학교 기간이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 자고 일어나서 이사를 했고 더위와 피곤에 지쳐 좋은 지 어떤 지 모르게 사나흘을 지냈습니다.
이제 조금 정신을 차려보니 새로 이사한 이 집이 꽤 괜찮아 보입니다.
먼저 살던 집은 18평 다세대 주택이었습니다.
집이 어둡고 침침해서 낮에도 전등을 켜놓아야 했고 곰팡이는 집안 곳곳에 장식 무늬처럼 피어있는 곳 이었습니다.
두어 개 전등갓은 벗겨져 있고 베란다 천청 페인트는 눈오듯 하고 보일러와 변기 따위는 가끔 우리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집이 좋았습니다.
이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제 나름대로 꼭 필요한 살림살이만이 남게 되었고 아이들과 내가 만든 종이 작품이나 천 작품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햇빛의 그림자만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곳이었기에 10 여개의 그늘 식물들이 아주 잘 자라주어 바라보고 있자면 흐뭇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아늑하다, 깔끔하다, 넓어보인다, (늘어놓은 장식물을 보며) 이게 다 뭐야 하며 얘기해 주었습니다.
간혹 답답해 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습니다.

또 통집읍 중심지라 읍사무소, 은행이나, 마트, 문구점...을 이용하기도 편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식점에다 음식을 주문하면 거의 다 배달을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 집에서 조금 더 오래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년을 꽉 채우고 이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샘솟는교회 옆으로...

전에 살던 집에서 샘솟는교회 까지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입니다.
그렇다 보니 교회를 제일 많이 오고가야 하는 남편이 너무 힘들어 했고 교회 건물을 관리 하는데도 불편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아이들을 집에다 두고 오면 걱정이 되기도 했구요.

지금 이곳으로 이사하는 것은 샘솟는교회 터가 정해지면서 예정되어 있던 사실 이었습니다.
목회자 가정이 교회 가까이로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아파트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도 그러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왠지 이사하는 것이 시급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이사하기 사흘 전 까지도 이사할 집이 정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이사하는 날 까지 작용-반작용의 법칙(맞나?) 처럼 익숙하게 살던 집에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의 힘이 있었나 봅니다.
이사갈 집은 교회와 가깝고 32평형의 새 아파트 이니 좋을만도 할텐데 말 입니다......

이사 와서 5일째를 맞았습니다.
날마다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짐을 정리하고 나니 집이 훤하고 좋습니다.
뒷 건물이 없어 바람도 잘 들어오고 베란다 옆 쪽으로는 넓은 초록 벌판이 내다 보이기도 합니다.
화장실 바닥도 한 두 시간이면 뽀송뽀송하게 마릅니다.
강원도 어느 콘도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아직 좋은 지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건이나 사물이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면 역동성이 줄어들게 마련 입니다.
이제 열심히 살아 움직여야 할 샘솟는교회 한 지체인 제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이전 것은 다 지나가게 하시나 봅니다.

기질적으로 새로운 모험을 즐겨 감행하는 남편과, 조심스럽게 모험에 동참하여 한발 한발 성실함으로 내딛는 저와, 우리를 보며 하나님 이미지를 그려보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해 가는 아이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신나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07/13/2004 - 고향집을 떠나 사위네 교회 옆으로

어제는 엄마의 생신이었습니다.
인천 만수동에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뵈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생신 선물로 화장품을 살까 하여 전화를 했더니 지금 당장 쓸 것은 있다고 하십니다.
아무래도 현금이 제일 좋을듯 합니다.
또 가서 맛난 것 사드리려고 했는데 뭐하러 나가서 돈쓰냐며 집에서 먹자고 하십니다.
물론 먹을 것은 엄마가 장만하실 것입니다.

강산이 강윤이는 인천할머니네 간다고 하면 OK 입니다.
특히 강윤이는 오늘 인천할머니네 가서 확인할 것이 있기 때문에 더욱 OK 입니다.
아이들이 오늘 학교에서 '성취도평가 결과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결과표를 참고사항 정도로 보기 때문에, 강산이는 네 과목 모두 0점, 강윤이 국어 점수가 65점이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집필 시험 결과로는 볼 수 없는 삶의 지혜가 강산이 강윤이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2학년 국어 시험이 어려웠다는 엄마들의 말도 이미 들은 터라 강윤이의 65점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과표를 받아본 나는 강윤이에게 괜히 자극을 주고 싶어졌습니다.
"야, 심하다. 65점이 뭐냐? 이거 낙제점수야.
이 점수면 3힉년 못 올라가고 2학년 다시 다녀야 돼."그랬더니 내 말이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이 녀석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악을 써댑니다.
"그럴수도 있지! 65점이면 뭐 어때? 최선을 다했는데."
"야, 맨날 집에 오면 게임만하고 공부는 하나도 안해놓고 그게 무슨 최선이야?"
"가서 말해 봐라. 아무리 그래도 인천할머니는 엄마 아빠보다 좋게 말해, 뭐!"

인천에 도착하니 저녁 때가 되었고 나는 배고프다며 서둘러서 상을 차렸습니다.
엄마가 끓여놓은 삼계탕이 빨리 먹고 싶어서였습니다.상
을 차려놓고 막 앉으려는데 인천부모님 하시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강윤이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새 엄마 아빠께 강윤이가 꼬질렀나 봅니다.
강윤이가 날 보더니 하는 말 "거 봐 ~ ~ ~."
강윤이가 왜 그 말을 하는지 엄마 아빠께 설명을 해드렸더니 아빠는 "엄마 말도 맞아. 강윤이 더 잘 하라고 그러는거야" 하십니다.
우리는 훌륭한 해결자들을 만나 강윤이 마음도 풀어지고 재미있게 웃으며 맛난 저녁을 먹었습니다.
삼계탕도 먹고 케익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또 다른 의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딸네 곁으로 가서 사위 목회를 도와야 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몇번 하셨는데 두 분 다 이제 마음을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빨리 마음을 정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나이드신 어르신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고향 친구들, 정년퇴직 후 그나마 소속감을 주는 여러 친목회를 두고 김포로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자신의 강직한 양심만 믿고 대나무같이 바르게 살아오신 분이 주일은 예배에 나갈테니 다른 것은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마음을 정하신 것입니다.
오! 감사 또 감사!!!
저의 30년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또 엄마는 권사 직분을 받고 여선교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이사가는 것이 어렵겠다고 했는데, 본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쉽고 서운하지만 아빠가 신앙을 갖기로 하셨으니 이 때를 놓쳐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셨다고 했습니다.
목사 부부가 마음 놓고 사역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보시겠다며 교회 옆 아파트로 이사하시겠답니다.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드렸더니 지금 사시는 집을 내일 당장 부동산에 내놓겠다고 하십니다.
무슨 일이 이렇게 되어지는지 그저 희안합니다.
신기합니다.

결혼한 뒤로는 인천 부모님들과 이렇게 가까이 살게 될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의 문이 열리면 모든 일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지나 봅니다.
샘솟는교회 땅이 주어지고 건축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때 느꼈던 설레임과 기쁨이 흘러흘러 인천부모님 가정과 우리 가정에 가득 고여 넘치는 기분입니다.
엄마 생신 선물로 적은 것 밖에 못드렸는데 우리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사랑의 선물을 받고 황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06/18/2004 - 길 위의 가족

입주자 전도 18일째다.
오늘 함께 전도하던 이은경 집사님이 집으로 막 떠나고 강산이와 둘이 남았다.
300 여장 되는 전도지를 강산이와 정리하고 있었다.

두어 명 되는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아 눈을 들어보니 긴 장대 끝에 매단 낫으로 샘솟는 교회 입당.봉헌예배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었다.
순간 어찌해야 할 지 몰라 가까이 다가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상황을 가만 보니 철거한 현수막은 수거해 가는 모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떼어진 현수막을 지키는 일 뿐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낫으로 끈을 뚝뚝 끊어 떨어진 현수막을 치우려 했다.
나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거 교회 쪽에 붙일테니까 그냥 주세요' 했다.
말하면서도 '주지 않고 가져가면 달라고 다시 말해야 하나 어쩌나' 생각이 많았다.
다행히도 철거원은 교회꺼냐며 가져가라고 했다.

교회 안쪽에 현수막을 가져다 놓고 전도 파라솔로 돌아와 앉은 나는 기분이 침울해졌다.
그곳에 현수막을 건 것이 불법이면 철거당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 달래도 보고, 상가나 공사인부 등 주변에 많은 시선들이 있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척 표정관리도 해보지만 잘 안된다.
강산아빠가 있으면 지금 어서 파라솔을 정리하고 싶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강산이가 같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학원차가 아이들을 싣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걸보면 얼추 '차 봉사'를 파장할 시간인듯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강산아빠가 왔고 현수막이 없어진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고 꿀꿀(?)한 기분으로 파라솔이며 의자를 얼른얼른 정리하여 나르기 시작했다.
그 때 아파트를 돌아나오는 학원차가 있었다.
그 자동차를 운전하시는 분이 차에 앉아 생수를 줄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냉수통에 남아 있는 물을 따르고 있는데학원차 안에 타고 있던 어느 아이가 "야! 장애인" 하고 강산이를 부른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야! 장애인"하고 소리를 지른다.
또 다른 아이는 "김강산"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운전하는 분께 물을 갖다주며 열려 있는 창문으로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쟤 이름은 장애인이 아니고 김강산이야. 쟤 이름이 장애인이니?"
그러자 "나, 쟤 몰라요" "쟤 김강산이야" "나 쟤 봤어" 말들이 많다.
운전하는 분은 상황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음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주의주겠습니다" 하고는 우회전해서 가버린다.

의자를 교회 앞에 갖다놓고 다시 온 강산아빠에게 지금 일어난 일을 또 간단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산이와 집에 왔다.
강산아빠는 샘솟는 교회 공사를 봐야한다며 바쁘게 나갔다.
문닫는 소리와 함께 조금 전 일이 눈앞에 확 펼쳐지며 가슴이 무너진다.
철없는 아이들이 모르고 한 소리라고 또 달래보지만 그래도 서글프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날이 흐려서 그런가 자꾸 눈물이 나온다.
강산이에게 안들키게 울려고 하니 더 흐느끼게 된다.
별 수 있겠는가 강산이 강윤이와 먼 길 가야 하는 나를 추스리는 수 밖에...

05/28/2004 - 동검교회로 나들이 가다

아침을 먹으며 남편이 "오늘 동검교회 갈까?" 합니다.
요즘 교회 건축 현장에 갔다오면 공사가 더뎌 답답해 하더니 마음편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나서려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 선배인 김목사님이 강화 동검교회로 새로 부임해 오셔서먼저 계시던 지방 동문들과 점심을 하는 자리가 마침 오늘 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초대된 것은 아니었지만 '와도 된다'는 허락이 있어덕분에 반가운 여러 사람들을 만날 기대를 가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동검교회가 있는 곳은 예전에 동검도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면이 개펄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개펄과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다 바람만으로도 답답함을 덜어주는듯 합니다.
게다가...동검교회에 도착해 오랫만에 만나는 동문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정겹기 그지없습니다.
또 석가탄신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동문가족 아이들과 동검교회 아이들이 어울려 북적북적 대는 것이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목사님 사택과 붙어있는 교육관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삼겹살과 상추쌈, 숭어회, 불고기, 고사리무침, 상수리묵...나중에 안 사실인데 음식을 가정마다 한가지씩 마련해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참석한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사람이 많아져 준비한 삼겹살이 부족한듯 했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이 정도가 좋다며 만족해들 했습니다.

식사시간이 끝나자 어느 목사님께서 남자들이 설거지를 포함한 뒷정리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사모님들은 음식을 차리느라 수고하셨다면서...그러더니 모두가 일어나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섬에 들어가야 하는 분들은 배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많은 설거지에 보다 익숙한(?) 아내들이 하겠노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사모님들은 알아서 척척 자리를 잡고 그 많은 설거지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러고는 모두 밖으로 나와 동검교회 김목사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교회 아래쪽에 있는 좁은 마을 길을 따라 40 여명이 걷다보니제법 긴 행렬이 되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재배하는 그 유명한 강화 약쑥이 있는 길을 지나자모래톱이 있는 개펄이 보였습니다.
강화에는 모래톱이 있는 곳이 동막 밖에 없다고 들었는데정확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모래톱과 맞닿아 있는 개펄에서 아이들은 모래보다 개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개펄에는 살아 움직이는 게, 조개가 있었고 다양한 모양의 구멍들이 있었습니다.모래 위에 혼자 앉아있던 강산이나 누리가 개펄을 만지는 것만 지켜보던 강윤이가어느새 누리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 둘 아이들이 개펄로 들어갑니다.강윤이도 들어가겠다며 바지를 걷어달라고 합니다.

강산이도 겅중겅중 개펄로 발을 넣습니다.
그리고는 중학교에 다니는 세 형님들만 빼고 아이들은 다 개펄로 들어갔습니다.
개펄에서 놀고 나면 닦아야되고, 갈아입을 옷도 없지만아이들을 말리는 부모님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잡은 게를 모으는 재미에 점점 먼 곳까지 나갔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아이들은 개펄에서 나와근처에 있는 아주 조그만 웅덩이에서 대충 손과 발을 씻고 있었습니다.
집에 갈 시간도 되었고 강산이와 누리만 빼고 아이들도 모두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래톱 위에 모여 기념 촬영도 하고...

그런데 사진 찍으면서 보니 바다 쪽으로 100m쯤 나간 곳에 강산이가 계속 허리를 구푸리고 엎드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느낌이 이상하다 싶은데 강윤이 하는 말이 '형 발이 빠져서 못나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도와줘야지, 너 혼자 나왔어?" 라고 속상한듯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아직 개펄에 남아있던 누리에게 강산이 좀 도와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강윤이도 얼른 다시 개펄로 들어 갔습니다.
누리와 강윤이가 열심히 강산이 발을 빼 보지만 안되는 모양입니다.

지켜보던 강산 아빠가 바지를 걷고 나섰습니다.
초조한 나와는 달리 여유롭게 사진기를 챙겨서 말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이르자 아이 발은 안빼고 먼저 사진을 찍습니다.
강산이는 좋아라 손을 흔들며 폼을 잡습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

오랜만에 여럿이 함께,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은 지방 동문들이 함께 모이는 것, 음식을 나누어 장만하는 것, 함께 뒷정리하는 것,새로 부임하신 목사님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 목회이야기 나누는 것,강산이 때문에 잠깐 걱정스러웠지만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 짧지만 자연스러운 하루 일정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나갔다 오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다'는 남편 말을 들으니내 느낌과 비슷했구나 싶었습니다.

집에 오자 강윤이가 "아빠, 오늘 신나게 놀았다, 그치?"합니다.
강윤이에게서 신난다는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오늘 나들이 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식구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내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05/07/2004 - 날마다 춤추는 아이

강산이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음악(音樂)이라는 사전적인 뜻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주로 악음(樂音)을 소재로 하여 나타내는 예술'인 것을 보면 분명 강산이는 음악을 즐기는 아이가 맞습니다.
오디오에서 노래가 흘러 나오면 강산이는 바로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드럼을 치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에서는 진짜 드럼을, 집에서는 책 드럼을, 자동차에서는 앞의자 드럼을 신나게 연주합니다.
길을 가다 노래를 들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엉거주춤 춤이 바로 시작됩니다.
옆에 있는 엄마가 머쓱한 줄도 모르고 노래가 흘러 나오는 곳을 지날때마다 또 추고 또 추고... 이러한 강산이의 예술적인 끼는 어려서부터 알아봤습니다.

앉지도 못하는 애를 쿠션에 기대어 놓고 찬양과 율동을 반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그만할라치면 자꾸 내 손을 끌어가곤 했습니다.
또 하라는 의사표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노래만 불러주면 혼자 율동을 완벽하게 해냈고그것을 보는 가족들의 즐거움은 대단했습니다.
혼자 앉기 시작했을 때는 자기 얼굴이 비치는 유리나 거울을 보고 긴 원맨쇼를 했습니다.


그후 조기교실이나 공동육아, 유치원, 교회연합축제에서 보여준 강산이의 춤추는 모습은 여러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금파선교원에서 '달란트 발표회'(9살)를 할 때였습니다.
핸드벨 연주 순서에 강산이가 높은 도 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세번 되는 자기 음을 정확히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그 때의 감동과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강산이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거기까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뮤지컬 '솔티와 함께'(3집)를 40여분 넘게 노래와 율동으로 보여주었는데 강산이도 거의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선교원 선생님들도 무척 흐뭇해하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12살)인 강산이의 춤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강산이의 능력을 다시 보게 하고 있습니다.
1학년 운동회에서는 국민체조를 잘해서 같은 반 엄마들에게 관심을 끌었습니다.
2학년 때는 임시 담임선생님과 파트너가 되어 추었던포크댄스에서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올해 운동회에서도 훌라우프 춤을 멋지게 추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춤을 연습할 때 처음에는 훌라우프가 없어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놀았답니다.
나중에 훌라우프를 가져와 함께 연습하는데 모든 동작을 다 따라 하더랍니다.
선생님께서 깜짝 놀랐다며 운동회 시작하기 전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강산이는 '춤의 왕' 예수님을 닮은 것이 분명합니다.
춤을 추면서 자신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니 말입니다.
강산이가 다음에 보여줄 춤이 기대가 됩니다.

04/30/2004 - 김포 행복 발전소

* 아래의 글은 하이 패밀리-사랑의가정연구소 아카데미 게시판에 여한구 목사님께서 올린 글을 퍼온 것입니다.

집단상담 가는 길,
설레이는 마음으로 김포를 지나면서 들렀습니다.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주차가 불편하고
태양의 위치때문에 들어갈 때는 포기했습니다.
나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기도한 후,
사진을 찍었습니다.
처음 부지를 보았을때, 좁은 땅이라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골조가 선 교회를 보며 들판에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신 하나님의 능력에, 찬양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마송의 이은주 사모님(아카데미 7기), 기적의 인물,
여러가지 세심한 배려로 행복을 나누어 주시는 분,
사모님의 마음을 닮은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 같아 무척 흐뭇했습니다

교회 입구에 서 있는 "해피트리"아파트는 그 동안의 준비와 기도가
결실을 맺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백석마을이 "행복트리"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행복트리옆에 행복발전소가 생겼으니
이제 입주하시는 모든 분들의
행복은 이제 사모님과 목사님의 기도에 달려 있겠죠!

신일 행복트리 라는 화살표 옆에 행복발전소라는
에벤에셀의 표시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곧게 우뚝 솓은 십자가 탑이
넓은 벌판의 등대같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교회뒤로 숨어버린 태양,
행복발전소의 위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둥그렇게 그렇게
정말 발전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잃지 않은
교회의 전경은
모태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행복 마을, 행복나무 아파트에
행복발전소,
그 듬직함은 교회 뒤의 벽처럼 묵묵히 지역 주민들을 지키고,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서 빨리, 예배당이 완성되어
감사와 행복의 예배를 드리며,
행복 충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04/14/2004 - 강윤이가 학교에 안간 진짜 이유

강윤이가 학교에 못갔다.
이유는 감기 때문이다.
새벽녁에 오들오들 심하게 떨며 춥다고 한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있는듯 하다.
이불을 더 내어서 한겹 더 덮어주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더 덥히려는지 생일 선물로 사준 곰인형을 힘껏 끌어안고 있다.

그런데 비몽사몽 하는 말이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서 학교에 못갈것 같다고 한다.
'아니, 이 녀석 꾀병아냐?'
설핏 잠든 사이에 자세히 살펴보니 여전히 덜덜 떨고 있고 열 때문에 입술도 발그랗게 상기되어 있다.
엊그제 학교에서 특기적성으로 시작한 태권도가 힘에 부쳤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침이 되어 강윤이에게 왠만하면 학교에 가라고 했더니 못가겠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지독한 감기는 아닌듯 싶었지만 오늘 학교에 갔다와서 더 심해지면 후회할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는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이 몸살기운이 있다고 하여 주사 맞고 약도 먹었다.
약속을 잘지키는 편인 강윤이는 의사선생님이 뛰지 말고 편안히 쉬라고 했다면서 침대에 눕는다.
늘 무엇인가 하고있고 아니면 친구들 찾아다니며 노는 바쁜 강윤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강윤이 곁에 가서 이불을 끌어 당겨 도닥여주고 주사맞은 엉덩이도 만져보고 머리도 쓸어넘겨 주었다.

아이들 방을 돌아나오는데 잠이 안온다고 따라 나온다.
그리고 심심하단다.
그럼 책읽자고 했더니 좋다며 책을 골라온다.
[너는 최고의 작품이란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었다.
다읽자 책을 달라고 하더니 표지부터 차근차근 훝어본다.
한두장 넘기니 원제인 "HeRMie-A Common Caterpillar"가 쓰여있었다.
무슨 뜻인지 묻고, Caterpillar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며 가져온다.
조금 귀찮은 마음이 생기려고 했지만 아프다고 하니 사전을 찾아 애벌레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방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강윤이 너 학교에 가도 될 걸 그랬다"라고 한다.

아빠 말소리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던 강윤이는 아빠 휴대폰을 가지고 나온다.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는데 메세지 알림음이 들리자 "아빠 메세지 왔어"하며 휴대폰을 가지고 간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강윤이가 보낸 것이었는데 '아빠 나 감기 때매 주겠어'("죽겠어"의 강윤이 표현)라고 보냈다고 한다.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고 하니 밥도 뚝딱 잘먹고,과일도 먹어야 한다고 하니까 쟁반에 사과와 과도를 담아 가져오기도 한다.
평상시에는 자기에게 심부름 시킨다고 난리쳤을턴데 오히려 아프니까 심부름을 잘한다.
거 참.
어쨋거나 착하다고 칭찬을 한번 해 주었다.
잠시 뒤 나에게도 문자 메세지가 한통 도착했다.
'엄마 나 열심히 잘할께 나 칭찬만히해 조'
아!!! 마음이 찌르르...씩씩한 강윤이가 약한 감기 때문에 학교에 못간 아니 안간 진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형이 받는 관심을 자기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조금 특별한 형은 아픈것 같다 싶으면 학교에 안가고, 말 한마디만 잘해도 기특하다고 웃어주고 칭찬해주고 그러는 것에 대해 늘 부러움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안다고 하는 엄마가 그동안 강윤이 마음을 잘헤아려 주지 못한 것이 많았나 보다.

몸이 아프니 당연히 돌봐주고 마음 편히 해주는 것 뿐인데 강윤이는 감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몸'이 아픈 강윤이는 지금 기꺼운 '마음'으로 피아노 치러 학원에 갔다.

강윤이가 휴대폰이 있다면 이렇게 메세지를 보내고 싶다.
"강윤아 너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작품이란다"

강윤이가 학원갔다 오면 꽉 안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