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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2013

IEP (2)


Prom 2013


 
앞으로 두 번 정도 남은 IEP 미팅이라도 잘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 년 전 받았던 IEP 서류를 꺼내 다시 훑어보았다. 모든 학교 생활이 끝나면 부모와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음식 조리해 먹기,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사용하기, 시계보고 시간 알기, 동전과 지폐의 가치 알고 헤아리기, 일터에서 다른 사람의 건설적인 비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 이러한 목표들을 학교에서, 집에서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묻고 답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을 적어보기 위해 강산이가 그 동안 일했던 곳과 맡겨진 일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여기 지역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ass, 만 18-21 세)의 직업훈련은 기본적으로 다니던 고등학교에 출석하면서, 학교 안에서 일하는 것(school-based work experience)과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것(community-based work experience)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직업훈련이 ADAPT(Assisting Developing Adults with Productive Transitions)와 STRIVE (Supported Training and Rehabilitative Instruction In Vocational Education)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다. ADPAT는 다니던 고등학교에 계속 머무르면서 학교와 지역사회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STRIVE는 교육 시간 내내 일터로 직접 나가서 직업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것 역시 공교육 과정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4 년을 마친 후 이 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주마다 다르고, 같은 주라도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실 강산이를 통해 미국의 특수교육을 아주 조금 경험했을 뿐 새로운 현실에 맞닥뜨리면 여전히 어리바리 하다.

강산이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직업훈련은 학교 소식지 발송을 위해 라벨 붙이기, 온실 관리, 일정 지역 청소 등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산이가 지역사회에서 했던 일은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수건 정리하는 일, 백화점이나 Family Thrift shop(재활용품 파는 곳)에서 옷 따위를 옷걸이에 걸어 진열,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USC School of Medicine(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약학대학)에서는 사무실 업무 보조 역할로 편지 발송을 위한 라벨 붙이기와 간단한 서류 정리를 했다고 한다. 직업훈련과 관련되어서는 실습을 나간 곳에서 강산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가장 재미있게 잘 하는지를 꼭 물어보리라 적어두었다.

그리고 강산이가 학교 밖에서 잘 하고 있는 일 한 가지를 더 적어두었는데, 교회 재정부에서 집사님들을 도와드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집사님들이 헌금 정리하시는 시간에 강산이가 교회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일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 같아 집사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하루는 사무실 문을 살짝 열고 강산이 보고 그만 나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집사님은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한 집사님께서 강산이가 어디 있느냐며 찾으셨다. 재정부 일 볼 시간이라면서 말이다. 집사님은 일부러 강산이와 함께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집사님들 곁에 강산이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그 배려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강산이가 사무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재정부 일이 끝났는지 종이 두 장을 들고 나온다. 그 중 하나인 헌금 수입 보고서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교회 게시판에 걸어두고, 다른 하나인 재정보고서는 재정부장님과 목사님의 사인을 받아가지고 간다. 그 일을 하는 동안 강산이의 걸음은 얼마나 힘찬지 모른다. 이 사실을 IEP에 가서 얘기하고 싶어 잘 보이게 적어놓았다.

정해진 IEP 미팅 시간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현관에서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이 있는 3층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마침 강산이와 담임 선생님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와 있었다. 회의실이 1층으로 바뀌었다며 내려가자고 했다. 엄마가 학교에 온다고 강산이가 많이 좋아라 했다며 선생님께서 전해주셨다.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바람에 금방 잊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면 조금 헤맬 뻔 했다. 학교가 생각보다 넓고 복잡하다.

담임 선생님은 회의를 시작하자며, 그 동안 여러 차례의 IEP 미팅을 하느라 애쓰셨을 텐데 오늘이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2014 년 1월에 강산이가 스물 한 살이 되므로 이번 학년도가 마지막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장애 학생은 스물 두 번째 생일 전 날까지, 그러니까 교육 받을 수 있는 21 세까지는 꽉 채워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 강산이는 이번 학년도가 끝나는 2014년 6월이 끝이 아니라 스물 두 살 생일이 들어있는 2015년 1월이 끝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년 6월이 끝인지 몇 번 확인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이다. 한 학기 일찍 학교를 마친다고 해서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 심리학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강산이가 학교를 마친 후에 일할 곳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산이가 자원봉사든, 보수를 받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것은 사회와 소통하는 길 가운데 중요한 하나다. 그 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일지라도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어떤 노력도 하기 전에 단정지어 얘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한편 일터와 더 먼 거리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을 생각하면 강산이의 경우는 투정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강산이가 지난 IEP 목표들을 대체로 잘 수행했다고 평가해주셨고, 나는 준비해간 직업훈련과 관련된 질문들을 주로 했다. 선생님은 강산이가 특히 사무실 업무를 좋아하고 잘 한다고 하셨다. IEP 초안에도 사무실 일과 관련된 기술들을 강화하는 계획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약학대학 사무실에서도 일을 아주 잘 했다고 하셨다. 강산이가 교회 재정부에서 일을 돕고 있다는 것도 비슷한 종류의 일인 것 같아, 선생님의 평가에 이어 자연스럽게 잊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다. 보통은 IEP 회의에 가도 난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데, 이번엔 미리 준비한 얘기가 적절하게 강산이의 강점을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신기하고 감사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 IEP모임을 한 장에 정리한 문서를 나중에 보내주셨는데, 강산이가 사무실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지역 내 다른 교회나 미술을 가르치는 사무실 등에서 훈련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잘 되었다.

또 마지막 IEP 모임이기 때문에 가디언십(Guardianship, 장애인의 법적인 후견인을 세우는 일)이나 직업재활센터에 대한 정보를 다른 때보다 구체적으로 제공해주었다. 데이케어(day care, 주간보호시설)에 대해서는 지난 번과는 달리 언급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방문하여 알아본 데이케어 종일반에 다닐 경우 매월 3,000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또 현재 어느 장애학생이 다니는 데이케어에서도 그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고 그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다. 이 비용은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도 하고, 메디케이드 웨이버(Medicaid waiver, 연방정부가 정한 기준에 해당되는 장애인에게 주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주정부가 그 비용을 담당하게 되므로 장애인 본인은 무료로 데이케어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메디케이드 웨이버 대기자가 몇 천명에 이른다. 여기는 5,000 명 정도 된다고 했다. 강산이가 데이케어를 이용하려면 그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와우! (더 적은 비용으로 다닐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이 있는지, 이것을 지원하는 정부차원의 다른 서비스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와우! 반면, 만약 저렴한 비용으로 다닐 수 있는 데이케어가 있다면 애틀랜타에서 만난 여러 장애우들이 다니고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내가 만난 이들 중에 한 명도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갑갑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면 되겠지, 하면서도 산 넘어 산 같이 여겨진다. 당장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서 그 짐을 덜어내리라. 애틀랜타에 살 때 알고 지내던 어느 장애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공립학교에 언제까지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대로 스물 두 번째 되는 생일 전 날까지 다니는 거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애틀랜타에서는 스물 두 살 생일이 되는 전 날까지 학교를 다니는데 강산이에게 이번 학년도가 마지막인 것이 맞느냐고 말이다. 선생님은 바로 답장을 주셨다. 주마다 법 적용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정책에 따르면 21 세 생일이 들어 있는 학년도까지만 학교에 다니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내년 6월 6일이 마지막 날, 맞는다고 하셨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답글을 보내드렸다.

보통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직장을 갈 나이쯤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는데 우리 강산이는 더 가까이 오게 된다. 강산이가 학교를 다 마친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패턴의 삶이 딱 한 학기만큼 더 가까이 와 있다.  

10/30/2013

IEP (1)


<고등학교 첫해에 참석한 홈커밍 파티에서 >
 


IEP는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혹은 Individual Education Plan(개별교육프로그램)의 준말이다. 나의 첫째 아들 강산이 같이 장애가 있는 학생(student with special needs-장애인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는 the handicapped, the disabled, 그리고 special needs 따위가 있다. 그 가운데 special needs가 제일 맘에 든다)은 일 년에 한 번씩 IEP를 검토, 수정, 보완하기 위한 모임을 갖는다.

보통은 일 년을 주기로 IEP 모임을 갖지만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장애학생을 교육하는데 IEP 모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모나 교사는 언제고 모임을 요청할 수 있다. IEP 모임 일정은 학교측에서 한 달 전, 그리고 적어도 5일 전, 이렇게 두 번 알려주도록 되어있다. 한 달 여유를 두고 모임 날짜를 알려주지만 사정이 생기면 날짜와 시간을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도 있다.

이 회의에는 학생, 부모, 특수학급 교사, 일반학급 교사는 꼭 참석하고 IEP를 결정해야 하는 사항에 따라 학교 심리학자, 과도기 전문가(transition specialist), 상급학교 교사, 학교 사회복지사(school social worker) 등이 참석하기도 한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부모는 통역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교사들에게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학교 밖에서의 생활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초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교회학교 교사나 과외활동 지도교사 등이다. 이런 경우에 부모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학교에 미리 알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IEP 모임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규칙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미국에서 아이를 어려서부터 키운 부모나 이민 생활이 오래된 부모들은 IEP에 대한 경험이 많을 터이니 여기에 덧붙일 것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산이는 현재 공립학교의 과도기 학급(transition class, 만 18-21 세)에 속해 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은 공립학교에 만 21 세까지 다닐 수 있도록 특수교육법에 정해져 있다. 과도기 학급은 학교를 떠나서 사회에 나가면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일자리를 얻어 봉사하거나 급여를 받아 생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곳이다. 과도기 과정을 위한 계획은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만 14 세부터 세워진다. 그리고 고등학교 4년 과정 이후에 과도기 학급에서는 사회에 통합할 수 있는 학습과 훈련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모님은 고등학교 이후에 정규 교육 과정으로 과도기 학급에 다니는 아이들을 두고 대학 다닌다고 재미있게 얘기하기도 한다.

미국에 와서 처음 살았던 애틀랜타에서 첫번째 IEP 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선생님들이 물어보는 것에 답하는 것 밖에는 말을 거의 안 한 것 같다. 이 모임의 성격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학교에 처음 다니게 되는 강산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 속이 상해있기도 했다. 낯선 사람과 환경 속에서 강산이는 자기를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 몸도 마음도 웅크리고 있던 때였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선생님이 뭘 지시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그 지시를 따를 수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선 한 학년이 새로 시작되는 시기였으나 미국은 학년 말이어서 많은 부분 기다려주고 설명해주어야 하는 새로운 전학생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고 학교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며 두어 달을 괴롭게 보내고 모인 자리였다.

그 모임에는 고등학교 선생님 두 분이 와 있었다. 강산이는 한국에서 홈 스쿨을 하다가 남편의 목회지가 옮겨지면서 더 이상 홈 스쿨을 할 수 없어 뒤늦은 만 9 세에 초등학교 일 학년에 입학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중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측에서 강산이를 어찌 생각했는지 나이를 문제 삼았다. 미국 학제에 따르면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나이이므로 고등학교 선생님을 초청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중학교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는 것이 어찌 이상했다. 학생, 부모, 선생님이 동의가 되면 나이가 한 살 많아져도 중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다른 장애학생 부모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선생님 두 명 가운데 남자 선생님은 짧지만 한국 경험이 있는 분이었는데, 강산이에게 다가가 한국 말로 인사를 나누어주셨다. 또 다른 선생님도 잔잔한 목소리로 영어 인사를 건네며 웃어주셨다. 강산이는 고등학교 남자 선생님과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면서 관심을 나타냈다. 매가리가 하나도 없고 웃음을 보여주지 않는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 심술궂고 딱딱한 표정의 특수학급 전담 교감 선생님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이러한 인상은 중학교 선생님들이나 나나 서로에게 마음이 열려있지 않았기에 그리 보였을 거란 걸 안다). 세 시간 가까이 엄청 오랫동안 진행된 IEP 모임에서(그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함께 참석하고 있던 강산이는 매우 의젓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중학교 교감 선생님의 친절한(!) 지시에 따라 주어진 과제도 문제 없이 수행했다. 중학교 측의 강산이를 밀어내는 듯한 입장이나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강산이 서로의 호의적인 태도, 공립학교에 소속된 어느 한국인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강산이는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 나갔고, 일 년이 지나 IEP 모임에 갔을 때는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고, 자기 반 친구들 친절하게 잘 도와주며, 게다가 영어로 학교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우리 식구 중에서 영어를 두려움 없이,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강산이가 되었다(강산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한국어를 읽거나 쓰는 것도 문제 없다. 이 또한 자랑스럽다). 또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로 이사 와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 윤이가 전해주는 말에 따르면, 형이 학교에서 무척 인기가 높고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특히 여학생들과 친한데 서로 아는 척하며 포옹하는 것을 늘 본단다. 누굴 닮은 것인지……

지난 주에 강산이를 위한 IEP 모임이 있었다. IEP 회의에 가려면 늘 긴장됐는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여러 해 동안 IEP에 참석했다고 여유가 생겼나, 생각했다. 담임 선생님이 미리 작성한 IEP 초안을 가지고 회의를 하다 보면 그 문서의 내용이 자세하고 강산이에게 필요한 교육 목표들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질문하기 보다는 잘 듣고, 동의하고 그와 관련된 강산이의 강점을 애기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강산이가 사회로 나갈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직업 훈련과 관련된 질문들이 여러 개 떠올랐다.
 
---다음에 이어서

9/10/2010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지인이 보내준 사진들입니다.>


11년 전쯤, 서울에서 살 때는 공동체로 “사는 것”에 참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여 유기농 상품이나 친환경 생산물을 공정하게 거래하는 생활협동조합, 아이들 교육을 부모와 교육자가 함께 풀어가는 공동육아조합, 입양이나 위탁을 통해 여러 자녀들을 보살피고 홈스쿨링을 하는 가족공동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공동체….
이런 여러 공동체의 이웃,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정신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보태져 도시에서 가능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보자며 남편과 친구 목사님이 공동목회를 하던 때였습니다.

공동목회보다 먼저 시작된 것은 공동육아였는데, 초등학교 가기 전 아이들을 가진 몇몇 부모들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아빠들은 마음으로 힘이 되어주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직접 교육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 내용 가운데, 각자가 관심 있거나 전문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영역을 나누어 아이들과 놀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품앗이 교육이었습니다.
노래와 놀이를 맡은 방글 엄마, 그림과 만들기를 맡은 색종이 엄마, 우리 가락과 악기를 가르치는 얼씨구 엄마, 나들이를 맡은 산들 엄마, 건강과 위생을 책임지는 ** 엄마(왜 생각이 안 나지? 미안...생각났음. 튼튼 엄마 ^^), 책 읽어주는 호호 엄마….

다 기억이 안 나지만 7~8가정이 늘 공동육아에 함께 했고 10가정쯤 되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3, 4년 지속되었던 공동육아의 경험은 교육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건강하게 살아보려는 노력들이었고, 교육 내용은 정말 창조적이어서 기쁘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동육아에 참여하던 아이들 가운데 저희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에 대안교육의 하나인 홈스쿨링 하는 여러 가정이 사례를 발표하면서 제법 큰 모임이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고, 우리 가정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를 보낼 것인지, 홈스쿨링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복잡한 서울, 넓지 않은 골목을 두고 마주 보는 집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주택가, 여러 가구가 한 집에 사는 다가구 주택 2층, 거실 큰 창문 앞에 앉아 있던 어느 날이였습니다.
갑자기 제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점점 위로 올라가서 서울을 벗어나고, 한반도를 벗어나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어느 곳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방금 전 제가 떠나온 지구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여러 갈래의 길과 그 길들을 따라 움직이는 작은 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지고 저렇게 갈라진 길들은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었는데, 그 모든 길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한 곳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는 아주 작은 점들이 길 위에서 옴지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창가에 앉아서 졸았던 것 같지는 않고 지금도 그 순간이 또렷하게 생각이 나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어느 선배님은 저의 그런 경험을 유체이탈(OBEs :Out of body experiences)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표현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쨌든 왜 그때 그런 장면을 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길들을 가게 되는데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나지 않던가? 그리고 수없이 많은 길들이 있는데 내 앞의 사람이 간 길이라고 해서 내가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그리고 나서 첫째 아이의 홈스쿨링을 마음의 갈등 없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사역하던 목회지가 옮겨지면서 공동육아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첫째 아이는 10 살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들어간 초등학교 생활을 저희 아이는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지금은 아이 나이에 맞게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구요.


이제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하는 아니, 벌써 그 길에 들어서 있으면서, 오래 전 유체이탈의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의식의 수준에서 새로운 모험을 결심했다면, 지금은 감히 영적인 수준으로 통찰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경계에서 어정쩡하게 서성거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떠나야 하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찾아올 때면, 10년 전, 20년 전, 40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제 인생 가운데 펼쳐지는 온갖 모험을 지휘하셔서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꼬~옥 알맞는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믿음 가지고 나아가렵니다.
이 믿음 지킬 수 있게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 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시편62편5-6, 표준새번역)

10/01/2008

강산이도 추남(秋男)

강산이도 가을을 타는지 “비행기 타고~ 한국 가면~” 이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찬양을 부르다가 할머니들이 좋아하셨던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이 나오면 그러고, 어린이 가요를 듣다가 삼촌하고 기타치고 싶다고 그러고, 음식을 먹다가도 그럽니다.

어제도 강산이가 한국 가고 싶다고 하길래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강산이 **** 하이 스쿨 좋다고 했잖아. 영어도 배우고 농구도 하고 공원도 가고. 한국 가면 **** 하이 스쿨 못가는데 괜찮아?”
“.....”
뜻밖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래도 한국 좋아”라고 하든지 선택하기 어려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르든지 할텐데 생각해 보더니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올 2월 이곳에 와서 학교에 갔을 때는 5월에 학사일정이 끝나니까 학년 끝자락에 편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7학년 특수학급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정말 낯선 교육 환경에 전이해(pre-understanding) 없이 놓여지게 된 것이죠.
말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부부도 이곳 교육 현장을 경험한 바가 없기에 ‘어디가나 진실하려는 마음은 마음과 통하게 돼있다’는 어줍잖은 신념만 가지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짧은 몇 주 동안 강산이가 학교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와 의사소통은 잘되지 않았고 어줍은 신념 한쪽 귀퉁이는 깨어지고 그랬습니다.

어쨌든 며칠 밖에 다니지 않은 중학교이지만 고등학교에 적응하는데 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곳 학교 환경을 경험하는 기회였고 개별교육프로그램(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IEP)을 위한 평가도 때에 맞게 되었습니다.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도 만나서 강산이가 학교에 대해 마음을 여는데 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개학하고 두 주 동안 통학을 도우며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 버스 기사들을 멀리서 볼 기회가 되었는데 친밀감있고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아닌 선생님들도 강산이나 저에게 늘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강산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특수학급은 융통성있게(flexible) 운영되고 있는 듯 합니다.
IEP 평가가 끝나고 고등학교를 미리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 때 살펴본 바로는, 학교에 도착해서는 자기 반으로 먼저 가고 운동할 때, 컴퓨터 할 때, 공부할 때...에 따라 여러 선생님들과 각 각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일반 학급 학생들(Peer leaders)이 와서 도와주기도 하나 봅니다.
강산이가 이따금 “영어 친구 좋아” 하는데 그 친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특수학급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서 자립과 직업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머핀 같은 빵을 구워 파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한 달에 얼마씩(20불쯤) 미리 학교로 보내면 카페에서 일한 댓가로 하루에 1불씩 받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예산을 세우고 지출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강산이는 아직 카페 일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식탁을 치우고 닦기, 간단한 설거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카페에서도 잘 배워서 강산이가 만들어주는 아침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좋겠다” 벌써 커피향이 집 안에 가득한 기분입니다.

강산이는 학교에서 주는 유인물을 편지라고 하며 전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에서 학교로 보내기 위해 써주는 메모도 편지라며 좋아하기 때문에 편지가 있는 날은 학교 보내기가 수월합니다.
엊그제 강산이가 가져온 편지를 보니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9월 한달 동안 여러 가지 활동(Community Skills) 한 것을 알았습니다.
볼링도 하고, 카운티 공공 버스도 타보고, 영화도 보고, 대형 할인 마트에도 가보고, 공원에도 가고요.
거기에 20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0월은 더 바쁠거라면서 일정을 알려주었습니다.
October9 Varsity Volleyball Game
October10 Special Olympics Basketball Skills
October17 Swimming at Bogan Park
October24 Swimming at Bogan Park
October25 Homecoming Dance
November7 Football Game

특수교육의 목표가 사회에 적응하여 직업을 갖고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학문적인 부분도 그 목표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요즘 강산이가 숙제를 가끔 가져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강산이가 영어로 된 문장을 읽고 문장과 관련된 그림과 줄긋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억양까지 넣어가며 읽는 것이 제법이었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이렇게 배우다 보면 더욱 놀랄 일이 많을 것이라고 욕심을 내어봅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밀알 선교단에서 장애인 교육법안과 개별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장애우를 둔 부모의 권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도 참여해서 하나 하나 알아가려고 합니다.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계절을 강산이가 맘껏 누리면서 키도, 지혜와 지식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도 쑥쑥 컸으면 좋겠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6-9)

6/23/2008

밀알 여름학교를 마치고



강산이는 지난 3주 동안 있었던 밀알 여름학교를 잘 마쳤습니다.
아틀란타 밀알 선교단에서 주최한 여름학교였습니다.
여름학교의 내용은 예배와 찬양, 성경공부, 식사, CRAFT, FIELD TRIP 그리고 찬양대회, 연극 경연, 댄스 파티 같은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밀알 단장이신 목사님, 여름학교 디렉터 전도사님, 담임 선생님들, 자원 봉사자들, 도우미 어머니들 모두 사랑이 폴폴 묻어나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강산이는 GREEN TEAM이였어요.
강산이를 지켜본 분들은 한결같이 강산이가 찬양과 율동을 좋아하고 잘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날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강산" 자신을 밀알에서도 그대로 드러냈나 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강산이가 지시하는 내용에 대한 반응이 느리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런 평가를 들으면 언어나 문화가 다른 이 곳에 와서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보냈지만 강산이가 SOCIAL SKILL을 배우는데 좀 더 열심을 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지금까지 익숙해진 생활 패턴을 어떻게 바꾸고 무엇을 강화해야 하는지 희미하게나마 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 올린 사진 가운데 끝에 있는 두 장 빼고는 밀알에서 찍은 것을 옮긴 것이랍니다^^

5/08/2008

IEP MEETING

“휴~우”
집에 들어서자 등산하고 온 것처럼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눕고 싶은 마음뿐 이었습니다.

어제 강산이 IEP(Individual Education Plan) Meeting이 있었습니다.
학교 심리학자가 강산이 평가한 것과 임시 담임 선생이 평가한 것을 바탕으로 선생과 부모가 서로의 의견을 내어 교육 계획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4 시간여 동안 긴 회의를 하면서 이런 회의 자체가 낯설고 부모 요구 사항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잘 전달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변 분들이 격려를 많이 해주셨는데.....

여기서는 대화할 때 서로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자신감이 없거나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 얘기할 때마다 똑바로 바라보며 들어보려 하고 이렇게 많은 관심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회의 결과는 강산이 나이를 볼 때 고등학교(9학년)에 가야한다고 하고, 고등학교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강산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잠시 다녔던 학교 선생님들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8월부터 고등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산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내용들-선생님 지시에 순응하도록 하는-로 계획되었습니다.
선생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학문적인 것이든 공동 생활에 필요한 기술(community skill)이든 배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시에 잘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들이 제시되었고 이것과 더불어 회의 모든 내용에 대한 동의한다는 뜻으로 싸인을 여러 군데 했습니다.
한 고비를 넘은 듯 합니다.

어제 회의 할 때나 오늘 하루 지나면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돕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회의 하는 동안 강산이가 회의실이 들여다 보이는 문 밖에서 책 보며 기다리거나 넓은 회의실로 옮겼을 때는 회의실 안에 같이 있을 때 보여준 강산이의 태도는 엄청 의젓했습니다.
회의실 한편에 있는 테이블에서 조용히 책을 베껴 쓰거나 자를 가지고 선을 긋기도 하고 배고프다고 말하고 교감 선생님이 쿠키와 주스를 주겠다고 따라오라고 하자 가서 먹을 것을 가져와 조용히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 강산이와 특수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 강산이를 품는 넉넉함, 교사들 사이의 융통성 있는 관계를 보여주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보면서 ‘오, 주님’ 소리없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부탁받은 분들의 중보 기도와 제가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리를 돕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8월11일 새 학년 시작되기 전까지 강산이에게 생활에 필요한 영어 공부와 집 밖의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과제가 제게 남겨졌습니다.
올 여름은 짜임새 있는 알찬 시간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강산이와 저는 영어 공부와 여름성경학교 참여로, 강윤이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름학교(6주)로, 남편은 셀 목회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6,28)

5/02/2008

함께 돌아오는 길은

강산이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져 미용실에 갔습니다.
머리 깍자고 얘기한 엊그제부터 “머리 깍으러 언제 가?”를 생각날 때마다 묻습니다.
“그래, 오늘 학교도 안가는데 깍으러 가자” 하니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미용실에 와서는 고개를 숙이고는 안경을 벗자고 하니 “끄~~응” 소리를 내며 잘 따라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라 하며 미용실 까지 와서는 이 무슨 반응인지 모르겠습니다.
“강산아, 니가 머리 깍자고 했잖아.”
“야, 너 이름 뭐니? 강산이? 아줌마가 멋있게 깍아줄께.”
미용실 원장님도 분위기를 얼른 아시고 말을 돕습니다.

다행히(?) 미용실에 손님이 많지 않아 호흡을 가다듬고 강산이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낯선 미용실이라서, 점심부터 먹지 않아서, 아하, 외출할 때 쓰는 안경으로 바꾸어 끼지 않고 와서....
자, 이제 강산이가 계속해서 머리를 깍지 않으려 하면 하나씩 물어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강산아, 안경 벗고 깍자.”
안경을 바꾸지 않은 것이 제일 그럴듯한 이유일 것 같아 안경 얘기를 먼저 꺼내봅니다.
“엄마가 안경 벗겨 줄게.”
머리를 반대 쪽으로 휙 돌리며 또 “끄~~응” 합니다.
이 때다 싶어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말을 하려고 하는데 안경을 벗더니 머리 깍을 자세로 고쳐 앉습니다.
‘아, 됐다. 그런데 안경 때문이 아니었나?’
쑥스럽게도 아들에 대해 잘 아는 엄마인 척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님을 인정하게끔 만듭니다.

어제 이른 10시 반쯤 되어 강산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니 오늘은 왜?’
강산이네 반-special education class-아이들 모두 스페셜 올림픽에 가서 강산이 혼자 교실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아이가 교실에 혼자 남아 있는 상황을 “또” 만들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학교에 일이 생기면 교회에 있던 남편이 달려오곤 했는데 오늘은 심방가야 할 시간이기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학교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니 한국에서라면 운동 삼아서라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다만 이곳은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자동차로 움직이기 때문에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강산이를 얼른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낡은 모자를 눌러 쓰고 집을 나섭니다.
햇빛은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내리쬡니다.

단지(subdivision) 안을 벗어나 4차선 교차로 신호등 앞에 섰습니다.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자동차 밖에 서있는 사람은 저 한 사람 뿐입니다.
교통 신호에 따라 차들이 멈춰섭니다.
횡단보도 끝에 서있는 저만 바라보는 듯 합니다.
빨리 보행 신호등이 켜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향으로 좌회전 차량이 두 번이나 지나 갔는데도 신호등 색이 바뀌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TO ACROSS와 함께 화살 표시가 되어 있고 버튼을 누르라고 쓰여 있는데 버튼은 보이질 않습니다.
‘고장났나, 이 교차로는 사람이 건너갈 수 없는 건가.’
다시 횡단 보도 쪽으로 왔다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살펴보니 버튼인지 아닌지 모를 조그마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달리 어찌 할 수 없이 그것을 눌러봅니다.
그러자 바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뀝니다.
될 수 있는대로 걸음을 빨리빨리 하여 길을 건넜습니다.

미국에 2월 20일에 도착하여 3월 첫 주부터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 특수학급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곳 특수학급은 장애 유형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나누어져 있습니다.
강산이는 중간 정도의 지적 장애 학생들을 위한 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주 정도 지났을까.
우리를 위해 통역해 주시는 집사님을 통해 학교에서 강산이가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고집 부린다, 욕을 했다, 친구 얼굴을 만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기 시작합니다.
아차 싶습니다.
언어와 문화적인 충격이 누구 보다 강산에게 클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가 강산이를 잘 돌보아 줄 것이라고 어렴풋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강산이는 임시 학생이 되어 현장학습 가는 날 혼자 남겨졌고 그 후로 바깥 활동에 함께 갈 수 없게 되었고 우리 부부와 통역해 주시는 분들은 선생님 만나러 학교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강산이를 위한 적절한 평가가 있기 전까지는 임시 학생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럴지라도 아이들이 교육 받을 권리가 있고 세금의 대부분이 교육비로 들어가니 교사나 학교측에 요구 사항이 있을 때는 부모가 당당히 나서야 된다고 충고해 주시기도 합니다.
부모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면 만족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답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반은 참고 반은 마음을 나누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깥 활동이 있으면 분명히 강산이는 데리고 가지 않을 거면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임시 학생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임시 담임 선생님이 조금 괘씸하게 여겨집니다.
부당하게 여겨지는 이런 마음을 누군가에게든 표현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문장 하나를 열심히 외우며 학교 안으로 들어섭니다.
학교 현관에서 아이를 check out 하러 왔다고 하니 강산 엄마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특별교육을 담당하는 교감 선생님 비서가 나와서 따라오라고 합니다.
강산이 교실로 가는 것 같습니다.

조용한 교실에 도서실처럼 칸막이 되어있는 자기 책상에 앉아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있습니다.
아이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인지 교감 선생님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런 강산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교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스페셜 올림픽 갔다고 설명해줍니다.
우선 알겠다고 해놓고는 외우고 있던 말을 합니다.
“Please let us know one or two days before if you want to pick up Gangsan from school."
강한 어조로 말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기억하여 말하려고 그러지 못했죠.
그랬더니 담임에게 얘기하겠다고만 합니다.
자기 반을 책임지는 것은 담임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영어로 말할 수 없어 강산이 돌봐줘서 고맙다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멋진 사람인척까지 했습니다.
진심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함께 있다가 강산이 식사가 끝나면 돌아가겠냐, 그럼 자기는 가겠다, 갈 때 교실 문을 닫아주겠냐, 뭐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말들인 것 같아 OK만 몇 번 했습니다.

피자가 좋다며 꾸역꾸역 먹고 있는 강산이 옆에 앉습니다.
생각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인지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 먹더니 배부르다며 일회용 식판, 음료수 병들, 구겨진 냅킨을 정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교실 문 닫고 갈까?" 했더니 강산이는 문 옆에 있는 교실 전등 스위치를 찾아 불을 끄고는 교실 문을 닫습니다.

학교를 빠져 나와 왔던 길을 다시 갑니다.
“강산아, 다른 친구들 만지면 안되지? 다른 친구가 강산이 만지면 뭐라고 그런다고?”
“돈 터치.”
“트림 자꾸 하지마. 트림 나오면 뭐라고 해야 돼?”
“익스큐 미”
“고맙습니다.”
“댕큐.”
“친구들하고 부딪쳤을 때 미안해.”
“소리.”
“기침할 때는 어떻게 한다고?”
강산이는 소매에 입을 갔다대고 기침하는 시늉을 하며 웃습니다.
발음이 어눌하지만 시켜보면 재미있어 하며 따라합니다.
여기 선생님하고도 웃으며 가르치고 즐겁게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길가에 보이는 색깔들을 영어로 말하며 걷습니다.
교차로 횡단보도도 문제없이 건넙니다.
강산이 팔을 잡고 길을 다 건너고 나니 강산이가 제 손을 가리키며 “돈 터치” 합니다.

햇빛은 더욱 따갑고 지나가는 차안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강산이와 함께 돌아오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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