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2008

함께 돌아오는 길은

강산이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져 미용실에 갔습니다.
머리 깍자고 얘기한 엊그제부터 “머리 깍으러 언제 가?”를 생각날 때마다 묻습니다.
“그래, 오늘 학교도 안가는데 깍으러 가자” 하니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미용실에 와서는 고개를 숙이고는 안경을 벗자고 하니 “끄~~응” 소리를 내며 잘 따라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라 하며 미용실 까지 와서는 이 무슨 반응인지 모르겠습니다.
“강산아, 니가 머리 깍자고 했잖아.”
“야, 너 이름 뭐니? 강산이? 아줌마가 멋있게 깍아줄께.”
미용실 원장님도 분위기를 얼른 아시고 말을 돕습니다.

다행히(?) 미용실에 손님이 많지 않아 호흡을 가다듬고 강산이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낯선 미용실이라서, 점심부터 먹지 않아서, 아하, 외출할 때 쓰는 안경으로 바꾸어 끼지 않고 와서....
자, 이제 강산이가 계속해서 머리를 깍지 않으려 하면 하나씩 물어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강산아, 안경 벗고 깍자.”
안경을 바꾸지 않은 것이 제일 그럴듯한 이유일 것 같아 안경 얘기를 먼저 꺼내봅니다.
“엄마가 안경 벗겨 줄게.”
머리를 반대 쪽으로 휙 돌리며 또 “끄~~응” 합니다.
이 때다 싶어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말을 하려고 하는데 안경을 벗더니 머리 깍을 자세로 고쳐 앉습니다.
‘아, 됐다. 그런데 안경 때문이 아니었나?’
쑥스럽게도 아들에 대해 잘 아는 엄마인 척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님을 인정하게끔 만듭니다.

어제 이른 10시 반쯤 되어 강산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니 오늘은 왜?’
강산이네 반-special education class-아이들 모두 스페셜 올림픽에 가서 강산이 혼자 교실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아이가 교실에 혼자 남아 있는 상황을 “또” 만들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학교에 일이 생기면 교회에 있던 남편이 달려오곤 했는데 오늘은 심방가야 할 시간이기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학교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니 한국에서라면 운동 삼아서라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다만 이곳은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자동차로 움직이기 때문에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강산이를 얼른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낡은 모자를 눌러 쓰고 집을 나섭니다.
햇빛은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내리쬡니다.

단지(subdivision) 안을 벗어나 4차선 교차로 신호등 앞에 섰습니다.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자동차 밖에 서있는 사람은 저 한 사람 뿐입니다.
교통 신호에 따라 차들이 멈춰섭니다.
횡단보도 끝에 서있는 저만 바라보는 듯 합니다.
빨리 보행 신호등이 켜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향으로 좌회전 차량이 두 번이나 지나 갔는데도 신호등 색이 바뀌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TO ACROSS와 함께 화살 표시가 되어 있고 버튼을 누르라고 쓰여 있는데 버튼은 보이질 않습니다.
‘고장났나, 이 교차로는 사람이 건너갈 수 없는 건가.’
다시 횡단 보도 쪽으로 왔다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살펴보니 버튼인지 아닌지 모를 조그마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달리 어찌 할 수 없이 그것을 눌러봅니다.
그러자 바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뀝니다.
될 수 있는대로 걸음을 빨리빨리 하여 길을 건넜습니다.

미국에 2월 20일에 도착하여 3월 첫 주부터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 특수학급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곳 특수학급은 장애 유형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나누어져 있습니다.
강산이는 중간 정도의 지적 장애 학생들을 위한 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주 정도 지났을까.
우리를 위해 통역해 주시는 집사님을 통해 학교에서 강산이가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고집 부린다, 욕을 했다, 친구 얼굴을 만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기 시작합니다.
아차 싶습니다.
언어와 문화적인 충격이 누구 보다 강산에게 클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가 강산이를 잘 돌보아 줄 것이라고 어렴풋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강산이는 임시 학생이 되어 현장학습 가는 날 혼자 남겨졌고 그 후로 바깥 활동에 함께 갈 수 없게 되었고 우리 부부와 통역해 주시는 분들은 선생님 만나러 학교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강산이를 위한 적절한 평가가 있기 전까지는 임시 학생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럴지라도 아이들이 교육 받을 권리가 있고 세금의 대부분이 교육비로 들어가니 교사나 학교측에 요구 사항이 있을 때는 부모가 당당히 나서야 된다고 충고해 주시기도 합니다.
부모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면 만족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답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반은 참고 반은 마음을 나누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깥 활동이 있으면 분명히 강산이는 데리고 가지 않을 거면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임시 학생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임시 담임 선생님이 조금 괘씸하게 여겨집니다.
부당하게 여겨지는 이런 마음을 누군가에게든 표현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문장 하나를 열심히 외우며 학교 안으로 들어섭니다.
학교 현관에서 아이를 check out 하러 왔다고 하니 강산 엄마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특별교육을 담당하는 교감 선생님 비서가 나와서 따라오라고 합니다.
강산이 교실로 가는 것 같습니다.

조용한 교실에 도서실처럼 칸막이 되어있는 자기 책상에 앉아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있습니다.
아이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인지 교감 선생님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런 강산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교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스페셜 올림픽 갔다고 설명해줍니다.
우선 알겠다고 해놓고는 외우고 있던 말을 합니다.
“Please let us know one or two days before if you want to pick up Gangsan from school."
강한 어조로 말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기억하여 말하려고 그러지 못했죠.
그랬더니 담임에게 얘기하겠다고만 합니다.
자기 반을 책임지는 것은 담임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영어로 말할 수 없어 강산이 돌봐줘서 고맙다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멋진 사람인척까지 했습니다.
진심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함께 있다가 강산이 식사가 끝나면 돌아가겠냐, 그럼 자기는 가겠다, 갈 때 교실 문을 닫아주겠냐, 뭐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말들인 것 같아 OK만 몇 번 했습니다.

피자가 좋다며 꾸역꾸역 먹고 있는 강산이 옆에 앉습니다.
생각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인지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 먹더니 배부르다며 일회용 식판, 음료수 병들, 구겨진 냅킨을 정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교실 문 닫고 갈까?" 했더니 강산이는 문 옆에 있는 교실 전등 스위치를 찾아 불을 끄고는 교실 문을 닫습니다.

학교를 빠져 나와 왔던 길을 다시 갑니다.
“강산아, 다른 친구들 만지면 안되지? 다른 친구가 강산이 만지면 뭐라고 그런다고?”
“돈 터치.”
“트림 자꾸 하지마. 트림 나오면 뭐라고 해야 돼?”
“익스큐 미”
“고맙습니다.”
“댕큐.”
“친구들하고 부딪쳤을 때 미안해.”
“소리.”
“기침할 때는 어떻게 한다고?”
강산이는 소매에 입을 갔다대고 기침하는 시늉을 하며 웃습니다.
발음이 어눌하지만 시켜보면 재미있어 하며 따라합니다.
여기 선생님하고도 웃으며 가르치고 즐겁게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길가에 보이는 색깔들을 영어로 말하며 걷습니다.
교차로 횡단보도도 문제없이 건넙니다.
강산이 팔을 잡고 길을 다 건너고 나니 강산이가 제 손을 가리키며 “돈 터치” 합니다.

햇빛은 더욱 따갑고 지나가는 차안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강산이와 함께 돌아오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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