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2008

04/17/2007 - 즐거운 대화 두 가지


아침에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학교에 보내고 나면 엄마로서 하루를 잘 시작한 것 같아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남편까지 교회로 가는 날은 아침 시간이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습니다.
서둘러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불려놓고 청소기를 돌려도 9시가 넘지 않습니다.

아! 이 짧은 아침의 여유로움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넓은 창문으로 봄볕이라도 부드럽게 내리비치는 날이라면 이 나른한 행복은 곱절이 됩니다.
아주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런 날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제 월요일 아침도 물 흐르듯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교우들과 강화 고려산 진달래 보기 위해 등산하고도 가뿐하게 새벽기도와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도 하고, 강윤이는 먼저 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도 스스로 이 닦고 세수하고 가방을 챙기고 있습니다.
요즘 강산이는 그 날의 요일도 알고 그에 맞게 시간표대로 책을 챙기기도 합니다.
"오늘은 월요일, 6교시."
학교에서 요일을 배우는 것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강산이가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강산이가 늦으면 교회차를 함께 타고 가는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게 될 테니까요.
"강산아, 엄마가 가방 마저 챙길 테니까 가서 옷 입어."
"싫어!"
다그친다고 행동이 빨라질 까닭이 없기에 강산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동생 방에 갔다 오더니 제 눈치를 살살 살핍니다.
왜 그러나 봤더니 강윤이 카드를 찾아와서는 자기 카드하고 합쳐서 가방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가 자기 물건에 손대는 것을 무척 싫어할 뿐만 아니라 싫은 소리를 저와 형에게 잘 때까지 할 것이 분명하기에 강산이를 막아야만 했습니다.

“강산, 안돼! 강윤이가 만지지 말랬잖아. 이리 줘.”
강산이는 카드 든 손을 뒤로 뺍니다.
‘가져가면 다 잃어버리고 오면서. 선생님이 학교에 가져오지 말랬잖아’는 입 속으로 꾹 삼키고는 “얼른!!!”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몸까지 뒤로 돌리며 카드를 꼭 가져갈 태세입니다.
시계를 보니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 벌써 지났습니다.
강윤이 카드를 과감하게 빼앗아 제자리에 갔다 놓고 와보니 강산이는 방에 주저앉아 “안 가!” 합니다.

강산이의 등,하교를 돕는 것은 남편의 몫입니다.
귀찮기도 하련만 남편은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빠요 고마운 남편입니다.
그런 줄 알지만 이 시간까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남편도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늦은 줄 알면 좀 참고 갔다 오든지 아니면 빨리 일을 마치고 나오든지....
생리적인 것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침에 화장실에서 책보며 긴 시간 앉아있는 습관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인지....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기에 나 몰라라 하고는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합니다.
“강산아, 왜 그래? 얘, 왜 그러는 거야?”
볼멘소리로 대충 설명을 해 주고는 이번엔 제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안에서 들어보니 어르고 달래고, 결국은 큰소리로 야단치는 것 아니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믿음의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이루어주실 줄 믿고 마음을 집중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강산이가 지금 상황을 끝내고 곧 학교에 갈 것을 믿습니다. 기쁘게 집을 나설 것을 믿습니다. 그리 되도록 도우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장실을 나와 보니 자기 방에서 거실까지 카드를 휙 던져놓고 울고 있습니다.
“강산아, 이따가 학교 6교시 끝나고 방과 후 그림 그리고 아빠 만날 때, 아빠가 강산이 카드 사준대. 다운문방구에서 떡볶이하고 카드하고 다 사준대. 이거 안 가져가도 돼. 알았지?”
남편과 의논해서 한 말도 아닙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오늘 강산이가 해야 할 일을 몽땅 싸잡아 카드 사는 것에 디밀어버리는 말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제 스스로 카드 사준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카드가 아무 유익이 없으며 그래서 그런 것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드를 사주겠다고 말하다니...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제 생각과 삶에 뭔가 변화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더 확증해 나가려 합니다.
신기하게도 강산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옷을 입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된 녀석이 카드 때문에 그 잘난 카드 때문에 울다니, 눈물을 닦아주며 한 번 더 상기시켜줍니다.
“강산아, 이따 그림 다 그리고 집에 올 때 아빠보고 카드 꼭 사주세요 해?”


강산이가 신발을 신고 일어섭니다.
그러더니 강윤이 신발을 냅다 걷어찹니다.
“바--보.”
이제는 카드를 뺏은 엄마가 미운 것이 아니라 강윤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잘 갔다 와.”
강산이는 얼굴을 돌려 씩 웃더니 집을 나섭니다.
"Oh, Jesus thank you!"

좀 더 좋은 엄마이려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강산이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지요.
“강산이가 카드를 학교에 갖고 가고 싶었구나. 이 카드 가져가서 어떻게 하려는 거야?”
대답을 하지 않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이면 강산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을 생각해서 다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친구들하고 놀려구? 누구하고 약속했어? 그냥 가져가고 싶어? 가지고만 있을 거야?”
강산이와 원활한 의사소통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읽어주려고 할 때 강산이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강산이는 소정 엄마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엊그제 주일에 고려산 갔다가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강산이가 좋아하는 소정 엄마와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강산이가 태어나서 그렇게 긴 시간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어찌나 수다스럽고 웃기던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니까요.

오늘은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합니다.
장애우 가족이 아닌 학부모가 장애체험 도우미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도움반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정 엄마와 고은미 집사님을 추천했고 두 분은 흔쾌히 “그러마” 하셨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강산이가 소정 엄마를 만나면 좋아라 할 것을 생각하니 저도 좋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남편이 강산이 하교를 저한테 맡기고 외출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강산이를 데리러 가기까지 남은 한 시간여 동안 이 글을 마무리해서 홈피에 올려야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강산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는 교회차를 보고 반가워하며 올라탑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학교~ 밥 먹었다. 그리고(정확한 발음으로) 소정 엄마 봤다!"
소정 엄마와 고 집사님의 봉사가 다 끝났으면 함께 집에 오려고 전화를 해봤더니 뒷정리가 한참 남았다고 합니다.
힘든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아주 바쁜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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