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아침 7시면 깨는데 학교 안가는 날이라 그런지 더욱 가볍게 한 시간 일찍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저녁 9시면 자기 때문에 아침에 잠에서 깨우는 것으로 성가시게 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식목일이라 늦잠을 자도 되련만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잠을 떨쳐버립니다.
방학이 되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해졌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학교'가 주는 무게감은 옛날이나 요즘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학교가 신나고 즐겁고 자유롭고 성취감이 있는 배움터라면 수업 있는 날 더욱 부지런을 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집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하는 듯 합니다.
아이들과 옆집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를 계획해 봅니다.
남편은 "**네는 오늘 뭐하나? 같이 가자고 할까?" 합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가벼운 나들이에도 다른 가족과 함께 가는 것, 아는 사람네 찾아가는 것을 제안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보통은 남편 생각과 같았습니다.
결국 옆집 아빠는 아침 일찍 친구와 낚시를 가셨고, "나, 돈 없다" 하시며 뜨거운 커피 물을 준비하신 엄마와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들과 여러 번 와 본 곳이기에 그리 흥미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 잔디꽃 폈다!"
"응, 정말. 예쁘다. 그런데 강윤아, 이거 제비꽃이야."
"어쨋든 예쁘잖아!"
올 봄은 늦게까지 눈이 많이 오고 기온도 낮아 꽃이 피는 시기가 늦어진다고 합니다.
이 곳도 도무지 꽃이라고는 볼 수가 없는데 강윤이 눈에는 낮게 피어있는 보라빛 꽃이 예뻐보였나 봅니다.
교회 식구 가운데 농사 짓는 분들은 모판 준비를 끝내셨습니다.
농사 일정을 지켜보니 강화는 김포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은것 같습니다.
강화 부모님은 모판할 때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일할 때가 된듯 한데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전화를 드려봤습니다.
다른 해에 비해 날씨가 안좋아 냉해 입을까봐 늦게 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의 질서가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집니다.
나들이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먹는 것입니다.
김밥이 펼쳐지자 바람이 세게 불어 돗자리가 들썩거려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센 바람에 날려오는 커피향은 커피 맛을 한층 돋구어 줍니다.
아이들은 놀이터로 달려가고 엄마와 덕포진 아랫길로 내려왔습니다.
엄마는 가방에 작은 칼과 비닐 봉지를 여러 개 준비해 오셨습니다.
봄냉이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그 동안 쌀쌀한 날씨나 제초제 사용 때문에 냉이가 제대로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나물 캐는 기쁨을 안겨줄 냉이가 몇 뿌리쯤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논 길을 택했습니다.
얼마쯤 걷던 엄마는 "여기 있다!" 하시며 가방을 서둘러 뒤지십니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하얀 면장갑을 꺼내 끼시고 빠른 손놀림으로 냉이를 건져내십니다.
"그거 먹어도 돼?" 하면서도 잘됐다 싶었습니다.
나는 짐을 맡은 채 바라만 보고 있고 엄마는 "이것도 먹는 거야. 얼마나 맛있는대" 하시며 근대라는 나물을 보며 너무 반가워하십니다.
어느새 아이들도 우리를 찾아내고는 "나도, 나도" 합니다.
강산이는 할머니 나물 봉지 들고 다니는 것을, 강윤이는 화분에 쓸 흙담기를 맡았습니다.
땅바닥에 털썩 앉아 온 몸에 흙묻히며 제 할 일-아이들에게는 놀이겠지요-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저는 좋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전교생이 학교 화단을 정리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이런 행사(?)를 하다보면 열심히 하는 아이, 하는 척 하는 아이, 아예 딴 짓하는 아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화단 정리가 끝나고 다른 반은 교실로 들어가는데 우리 선생님은 화단 앞에 한 줄로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손 한번 얼굴 한번 바라보며 지나가셨습니다.
선생님이 그리 하시는 까닭을 알 것 같아 화단 손질에 관심이 없던 나는 얼른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흙은 아주 조금 묻어 있었고 '이 정도로는 안될텐데'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손을 다 돌아 보시고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그 장면이 또렷이 남아있고 오늘까지 그 말씀없는 교훈을 되새기곤 합니다.
봄나물로 한 끼 국거리를 장만한 엄마는 다음에 오면 더 많이 캘 수 있겠다며 아쉬워 하셨습니다.
가지고 간 시원한 물과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덕포진을 떠났습니다.
다음 놀이터는 조각공원.
점심을 먹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두 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고 있는 강산이와 멋진 모습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잘 타는 강윤이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시간 쯤 아이들은 땀 흘리며 신나게 놀고, 강산이 3학년 때 잘 돌봐주던 다혜와 다혜 어머니도 만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땀과 흙먼지로 얼룩진 아이들을 보니 흐뭇합니다.
이 여유로움이 아주 좋습니다.
가정에서는 목사와 사모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로, 아이들과 진한 사랑을 표현하며 나누려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으로 감싸면서 가정에서는 교훈적이고 지시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의 시간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심방이나 예배로 바쁩니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산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내 한 쪽 곁은 가족을 위해 비워두려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도 늘 깨어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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