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감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감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9/05/2019

다시 말 걸기



지난 6월 하순경,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그 교회는 앞으로 2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여러 교회를 돌보는 감리사 직분도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며 교회나 교인에게 부담되는 취임식을 하지 않기로 하신 것 같았다.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기에 같은 지방이라 해도 교회들은 멀리 뚝뚝 떨어져 있다. 지방 행사를 하려면 반나절 혹은 하룻낮 동안 자동차로 운전하여 모이니 보통은 하룻밤을 묵어가며 만나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만나면 서로 얼굴 보며 안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귀하다.

그래서였을까? 교역자회의를 마친 다음 날 감리사님은 헤어지기 전에 볼링을 치자고 제안하셨다. 그러면 점심도 대접하시겠다며.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셨나 보다. 아주 먼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분들은 동참하고 싶어도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형편이 허락하는 분들이 남게 되었다.

난 참 운동을 못 한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발야구를 종종 했었는데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라 게임 규칙을 잘 이해해서 그나마 껴주었다. 운동회 때 달리기는 항상 꼴찌에서 두 번째. 네 명이 달리든 여덟 명이 달리든. 둥그렇게 서서 자유 배구를 하면 공이 다른 데로 튕겨가게 하든지 공 잡으려고 뒷걸음질 치다 자빠지기 일쑤였고. 탁구를 해도 공이 오고 가길 서너 번 넘긴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이력으로 볼 때 볼링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결코 먼저 나서서 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보아 그냥 하는 거다.

목사님들과 떨어져 사모님들은 아이들과 섞여 두 레인을 차지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언제 볼링공을 잡아보았는지 기억도 없으나 몇 번 해 본 솜씨로 공을 굴렸다. 웬일로 공이 레인을 벗어나지 않고 핀들을 몇 개씩 쓰러트렸다. 스트라이크도 있었다. 별일이었다.

한 게임이 끝나고 게임이 좀 되는 날인 듯싶어 한 번 더 도전했다. 그럼 그렇지. 내 손을 떠난 공은 대부분 레인을 벗어나 도랑에 빠져 부끄러운 듯 달아났고 겨우 빵점만 면하였다. 차라리 첫판에 이랬으면 두 번째는 아예 나서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첫판은 엉망이더라도 두 번째가 좀 더 낫든지. 공을 굴리고 돌아서 자리로 들어올 때마다 점수는 상관없는 척하려 해도 얼굴 표정이 자꾸 어색해졌다. 레인 위에서 자리로 돌아오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몸에 힘도 점점 빠지면서 점수를 올리는 일보다 주변으로 관심이 흩어졌다. 슬쩍 옆 레인의 점수판을 보니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점수가 보였다. 누구지? 부목사님의 아들 결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결이. 결이는 볼링을 처음 해보는 것 같았다. 결이의 표정으로 봐서 그 녀석도 고전 중인 듯했다. 남 일이 아니었다. 나이 많은 내가 짐짓 여유를 부리며 결이에게 말을 걸었다.

"결이, 나랑 비슷한데! 우리 하이파이브하자.“

결이는 수줍게 미소지으며 내가 먼저 내민 손을 부끄럽지 않게 해 주었다. 결이도 공이 맘처럼 굴러가 주질 않아 속상해하던 참에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내가 말을 걸어 주어 마음이 조금 풀렸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결이가 있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무엇이든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공감하며 말 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자주 볼링장을 다닌다.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난 안 간다. 이러다 언젠가 맘 내키는 날 가게 되면 다시 한번 공을 굴려보아야지.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옆 사람에게 또 말을 걸어야겠다. 잘 되든 안 되든

8/07/2019

돌아온 둘째 아들

<회사가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 윤이 >

둘째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성경 속 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4년 동안 집을 나가 대학교를 잘 마친 어엿한 청년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부모에겐 투덜이 아이인 나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올 여름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집에서 먼 곳에 취직하려나 싶었는데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둘째 윤이의 취업을 위하여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과 우리 부부는 열심히 기도했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인 윤이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곳,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게 돈을 잘 벌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시길 바랐다. 윤이가 취업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더 생각하게 되었다.

윤이 소식을 들은 여러 교우들과 친구들은 아들이 곁으로 와서 좋은 지 나쁜 지 묻곤 한다. 좋기도 하고 불편한 것도 있어 난 얼른 대답을 못하고 좋지요, 하고 만다. 내 대답을 듣는 이들도 당연히 좋을 거라는 반응을 예상했는지 말끝이 흐려지는 이유를 다시 묻는 이가 없다. 사실 모든 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약간의 불편도 오히려 유익하다.

아무래도 가까이에 있으면 일상생활에 간섭하게 된다. 아들에겐 짜증나는 잔소리이고 나에겐 서운한 대거리가 될 수있다. 얘기하다 보면 아들은 직장에서,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서로에게 얹어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멀리 살면 모르고 지나갈 일도 시시콜콜 알게 되리라. 하지만 자기방어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이 분명하다.

크든 작든 셋이 혹은 혼자 사용하던 공간을 넷이 함께 나누어야 한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빌린 기간도 다 되어가고, 네 사람이 사용할 공간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내세워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고 준비중이다.

자녀가 하나이다가 둘째가 태어나면 일이 세 배(두 배가 아니다!)가 된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이가 둘이 되면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의 수가 두 배 이상이기 때문인가 보다. 나에게도 세 배로 늘어난 가사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하도 의자에만 앉아 있어서 몸에 살들이 다정한 척 눌러 앉아가는데, 하는 일이 늘어나면 열량 소비도 많아지고 살들도 적당히 떨어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집 나갔던 아들과 다시 같이 살게 되어 좋은 점은 더욱 많다.

다른 가족과 친척이 없는 타국에서 네 식구라도 같이 있게 되어 든든하다.
동생을 그리워하는 형의 슬픔을 씻어준다.
엄마에게 용돈 그리고 차를 사 주겠단다.
십일조 하려는 교인이 한 명 늘어났다.
아들에게 교회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교회 청년들을 모을 씨앗이 생겼다.
아들 곁에 하나님을 믿는 직장 선배들이 여럿이다.
……

남편에게도 물었다.

윤이가 돌아와서 좋은 점, 세 가지만 말해보시오.

가족이 모여 살게 된 것, 가족과 교회의 미래가 확 열리는 것, 형이 좋아한다.

남편은 고민 없이 단숨에 대답했다.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나와 겹쳤다. 두 번째 대답은 너무 추상적이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남편은 말 그대로라며 웃었다.

그럼 안 좋은 점 세 가지만 말해보시오.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이번에도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이 돌아왔다.

안 좋은 점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2/20/2019

찾으면 찾아지는 감사 - 오크 마운틴 주립공원(Oak Mountain State Park)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한다는 어느 집사님의 경험담을 귀담아 들어두었다. 그 집사님이 이용하는 트레일은 매년 우리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장소로 사용되는 오크 마운틴 주립공원(Oak Mountain State Park) 캠핑장을 지나서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가.

매표소에서 한참을 지나도 사람들이 걷기 시작할 것 같은 길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럴 땐 믿음과 느긋함이 필요하다. 집사님이 북쪽으로 가다보면 길이 있다고 했으니 믿고 가면 될 것이다. 공원길에서는 일반적으로 25-35마일 정도의 낮은 속도로 가야만 한다. 같은 거리의 길이라도 보통 길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멀게 느껴질테니 여유롭게  있으면 될 터이다.

참고로 오크 마운틴 입장료는 3세 이하는 무료, 4-11세이거나 62세 이상은 2달러, 12-61세는 5달러이다. 네 사람까지 가능한 가족 연간 이용료는 230 달러. 매표소에서 신용카드를 내밀었더니 현금만 받는단다. 직원은 현금이 없으면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라며 턱으로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면 차를 길 옆으로 빼고 차에서 내려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고, 타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를 물 수도 있다.

앨라바마에서 제일 넓은 주립공원답게 매표소로부터 10분쯤 지나 내비게이션에서 보이는 초록 숲이 거의 끝나갈 즈음 노스트레일헤드(North Trailhead)라는 팻말이 보였다. 주차된 차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집사님이 말한 곳이 이곳이려니 싶었다.

오크 마운틴에 두번째 방문이라 트레일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트레일마다 색깔을 달리 표시하고 있는데 이번엔 하얀색 길을 따라 가다가 노란색 길로 바꿔 원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우리가 걸어간 하얀색 길은 평지같아 아무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크고 작게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가며 걷는 길이라 심심할 틈이 없다. 개울이 있는 곳에는 편하게 건널 수 있도록 다리가 어김없이 있다. 그 다리들을 하나 둘 건너다보니 그 다음에 나타날 다리가 궁금해졌다. 단순하면서도 모두 다른 형태의 다리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이 산에 있는 다리들은 모두 다른 모양일까.






많은 사람들을 건네주었을 예스러운 다리. 보통 어른은 껑충 건너뛸 수 있는 실개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테니 밟기 좋게 놓여있는 평평한 돌, 널판지 한 쪽, 마주댄 널판지 두 쪽. 좀 더 넓은 계곡엔 쓰러졌으나 부러지지 않은 나무...

이 다리의 재료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이리라. 다리의 모양도 만든이의 솜씨를 뽐내기 보다는 소박하고 정겹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다리를 설계하고 만든이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지혜의 빛 한 줄기를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손수 지으신 세계와 지혜를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출애굽기35:35)

어느만큼 가다보니 긴 의자들이 여러 개 있어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 앞서 걷다가 사라진 은발의 노부부가 보였다. 그 은발의 남자는 우리를 보자 뭐 하나 말해도 되겠냐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라고 했다. 물가에 잎이 다 떨어진 작은 나무 어딘가를 가리키며 뱀이 있단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면서. 낙엽과 비슷한 갈색을 가진 뱀이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아리를 느슨하게 틀고 있었다.

그 노년의 부부와 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니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말을 걸어왔는지 뱀이 나오는 철이니 조심하라는건지 알 수 없으나 고마웠다. 난 그에게 우수 절기라 겨울잠을 깨고 나와 햇빛을 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영어로 버벅거릴 것이 분명하여 그만두었다. 언어가 친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한하고 있어 아쉽다.

그의 아내는 마침 긴의자 위로 찾아온 따스한 햇살을 베고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부부에게서는 트레일 초입에서 봤을 때부터 묵직한 인상을 받았었다. 산길을 자주 걸어본 사람들 같았다. 나의 남편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과 헤어져 노란색 길로 접어들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도 처음 걷는 것이라 맞게 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으나 지도와 방향 감각을 사용하여 가 보는 수 밖에 없다. 나보다 방향감감이 뛰어난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순간순간 의심이 생겨도 서로를 믿고 가야 한다. 길을 잘못들었다면 조금 돌아가면 되고, 그래서 계획하지 않았던 길까지도 보게 되고 그런거니까.

우리가 선택한 노란색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인도해주었다. 한 시간 반 조금 못 되게 걸었는데 느껴지기는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았다. 점잖은 사람들과 편안한 산책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산이 아니어도 하나님 은혜는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코스트코를 가서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해 돌아설 때 매장 직원이나 한국 사람이 떡하니 서있어서 질문할 기회를 갖게 되면 감사하다. 남편이나 아들과 같이 쇼핑을 하면 어디에도 없는 힘이 혼자 쇼핑을 할 때는 500ml 물병이 40개나 들어 있는 꾸러미를 번쩍 들어올려 카트에 싣는 엄청난 힘으로 발휘된다. 순간적인 힘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1/12/2015

아빠와 딸


 




아빠에게 첫아이이면서 첫딸인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이 전해주는 말에 따르면 식사를 할 때에 아빠는 꼭 나를 먼저 먹이고 나서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외출하실 때에도 마스코트처럼 가능한 한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육아에 엄마 아빠 모두 정성을 들이지만 거의 오십 년 전에는 어른들 앞에서 자기 자식을 드러나게 예뻐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던 때였다. 도리에 어긋나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마구 야단을 치시던 호랑이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그런 할머니 앞에서도 꿋꿋하게 딸을 아끼던 요즘 말로 딸바보셨나 보다.

서너 살쯤 되었을까? 무더운 여름이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자전거를 태워주셨다. 해가 길어서 그랬던지 밀집 모자를 씌워주시곤 했다. 살던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무지개 빛이 나는 분수대가 있었다. 아빠는 그곳까지 자전거로 달려가 잠시 분수가 뿜어내는 시원한 물을 보여주셨다. 인천 숭의동 로터리에 그 분수대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참으로 시원하고 환상적인 나들이였다.

아빠는 무척 꼼꼼하고 자상하시다. 말수가 별로 없으신 편인데, 당신이 말재주가 없어 마음이 잘 표현이 안 된다고 안타까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난 아빠의 말재주 없는 면을 닮은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 말을 재미있게 잘 하거나 유머가 풍부하거나 상황에 딱 떨어지게 대처하여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말이 적은 아빠의 오랜 취미는 낚시다. 그 아빠의 그 딸답게 어려서부터 낚시터에 잘 따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래 낚시터로 망둥이를 잡으러 다녔다. 망둥이를 잡으면 산 채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걸 먹는 나를 희한하게 보시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재미있어 하시니 나는 신나서 또 먹고

아빠가 다니시던 회사에 낚시 동우회가 있었다. 낚시 동우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전국 낚시터를 방문했고 일 년에 두어 번 TV 같은 큰 상품을 주는 대회도 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큰 낚시대회에 따라 간 적이 있었다. 밤낚시를 하고 다음 날 점심 전에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다. 45인승 관광버스 서너 대가 함께 갔으니 참가자가 꽤 많은 대회였다. 낚시터에 도착하자 아빠는 쫓아간 딸이 춥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줄 둔덕이 있는 곳을 찾아 작은 사이즈의 텐트를 치셨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고기가 잘 잡힐 것 같은 포인트로 빠르게 흩어졌다.

여기저기서 조용히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빠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셨다. 낚시하시다가 괜히 우리 라면 끓여 먹자, 며 시간을 보내셨다. 내가 심심해 할까 봐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다. 낚시 마감 시간이 다가오도록 별 소득이 없었다. 이번엔 안 되겠다며 낚싯대를 접으려는데 뭔가 걸렸다. 일단 물고기 길이가 30cm(12인치)가 넘으면 다른 이들과 겨루어볼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건져보니 36cm쯤 되는 놈이었다. 그놈으로 아빠는 장려상인가를 타셨다. 아빠의 취미 생활에 동행한 딸을 기특하게 여기셨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빠 낚시터에 따라오는 독특한 고등학생이거나 그 밖에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여학생이었지만 아빠에겐 그저 자랑스런 딸이었다.

그런데 그 딸이 늘 아빠의 기대를 만족시켜 드리지는 못했다. 신학대학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는 말씀을 드린 순간부터 아빠는 나와의 대화를 중단하셨다.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던 아빠는 여자가 신학대학에 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셨다. 아빠가 어찌어찌 정신을 가다듬고 상상할 수 있었던 딸의 모습은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다니는 전도부인이었다. 학교를 다 마치도록 아빠는 딸을 잃었고 딸은 아빠를 잃었었다. 난 가고 싶은 길을 갔지만 가족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가족은 내 삶의 울타리일 뿐 멀어진 사이가 좁혀지지 않는 듯했다. 나는 한 술 더 떠 신학대학원을 진학했고 거기서 목사가 될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다.

아빠는 소박하면서도 정겹게 목회 하는 모습, 장애를 가진 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장기수 같이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좋은 세상 만들어 보려는 애씀, 어려운 교회에 부임하여 교회 건축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딸네 모습을 죽 지켜보셨다. 그러시던 중에 정말 감사하게도 아빠는 하나님을 믿게 되셨다. 더불어 잃었던 아빠와 딸의 관계도 다시 회복되었다.

이젠 더 이상 아빠와 딸 사이에 걸릴 것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빠는 다시 얻은 딸과 또 멀어지게 되었다. 출국 날짜를 받아놓고 아빠에게 낚시를 가자고 했다. 1월 한겨울, 얼음 낚시였다. 강화 교동도 고구리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 저수지는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아빠와 나 둘뿐이었지만 이번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과 사위와 손자들이 함께 간 낚시였다

아빠는 얼음 낚시에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와 손자들에게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셨다. 엄청 추워서 얼음 위에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난 얼음 위와 땅 위를 왔다 갔다 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빠는 손자들이 얼음 구멍에 낚싯줄을 담그고 놀도록 도와주셨고 얼음 위에서 내려오지도 않으셨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도록 말도 없으셨고 웃지도 않으셨다.

미국 집에는 두 번 다녀가셨다. 이곳에 오시면 함께 낚시도 가자고 했었는데 그런 여유가 잘 생기지 않았다. 같이 낚시할 날이 다시 있을 지 모르겠다.

지난 주 북극에서 몰려온 한파가 이곳 미국 동남부까지 이르러 무척 추웠다.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곳인데 영하 7.7 ℃(18)까지 내려갔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교회에 갔다가 설핏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문득 온통 얼어버린 고구리 저수지에서 맞았던 바람 같았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11/24/2014

살아가게 하는 힘



이민 오는 날.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2014 추수감사주일에.


내가 이민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민이라는 말은 그저 신문과 뉴스에나 나오는 낱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민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민 생활이 어떠한 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살림살이를 싸 가지고 미국에 들어오면서도 아예 살러 오는 것인지 살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일할 곳이 미국으로 정해졌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가족은 그저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하기에 좋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지극히 막연한 인식이 미국행을 결정하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뭘 모르니 용감하게 미국 땅으로 날아온 것이다.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미국 국적 비행기를 한 번 갈아 타고 애틀랜타에 있는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웠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하얀색 형광등과는 달리 공항에 수없이 밝혀져 있는 노란색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그 긴장감 마저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려고 찾아온 이방인답게 부피가 큰 이민 가방이 세 개, 크고 작은 여행용 가방도 세 개쯤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한 달이 걸린다 하니 미국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 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압축팩에 담긴 이불과 베개,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을 포함하여 몇 권의 책과 노트북도 있었다. 살게 될 곳에 큰 한인 마트가 여럿 있는 줄 몰랐으니 라면도 몇 개 챙겨 왔다.

저녁 때라도 공항은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15인승 교회 차는 우리 가족과 보따리를 싣고도 넉넉했다. 우리가 다니게 될 교회 가까이 가서는 한국 음식점에서 따뜻한 설렁탕으로 저녁도 먹여 주었다. 두 분 중 한 분 목사님은 지금도 연락이 되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는 변함이 없다.

애틀랜타에 도착한 날이 수요일이라 저녁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친 후 생각지 못한 남편의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 그는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300달러가 들어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어떤 집을 얻어야 할지 집을 구하기 전까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이 또한 몰랐다. 남편과 동료가 될 한 부목사님은 닷새 정도 머물 수 있는 집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장로님 댁이었다. 장로님의 따님이 다른 주에서 결혼을 하게 되어 며칠 집을 비우시게 되었다. 그 여러 날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가족에게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것이다. 주인이 없으니 조심스러우면서도 호텔과는 달리 집이 주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애틀랜타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우리 부부는 습관처럼 새벽기도회에 갔다. 자동차가 있을 리 없으니 어느 집사님께 부탁을 드린 것이다. 집사님은 새벽에 학교에 보내야 할 자녀도 있었고 집사님 집에서 우리가 머물던 장로님 댁까지 꽤 먼 거리인데, 자신의 사정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운전을 해주셨다. 미국에 살아보니 내가 새벽(!)기도 가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때는 뭘 몰라도 정말 한참을 몰랐다. 집사님은 아이들 학군을 고려하여 살기에 편안하고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구하는데도 동행해 주셨다.

닷새 안에 월세 집을 정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새로 온 부목사네 가정에 아무 물건도 없으니 있는 것들을 나눠 쓰시라, 광고해 주셨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을 나눠주신 분들, 식탁이 없어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한국 교자상과 숟가락을 사다 주신 분, 그 밖에 가재도구들도 많이 나눠주셔서 미국 생활의 모양을 잡아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3, 5년 살다 보면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옅어진다며 당장 영어 공부를 시작하라고 조언해주는 집사님이 있었다. 집사님은 적극적으로 지역 안에 있는 학교나 교회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 그 목록을 전해주었다. 미국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도서관에 함께 가서 직접 알려주었다. 미국 장애인 단체와 연결해 주기도 했다. 여름성경학교나 한국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집사님은 열정과 리더십이 뛰어나고,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 집사님처럼 이중언어나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날 늘 자극하였다.

11월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때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이 감사의 계절이 되면 처음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늘 떠오르곤 한다. 아무 조건 없이 같은 신앙공동체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나눠주신 분들이다. 정말 고맙다. 마음에 고이 간직하련다. 이민 생활 첫 부분에 만난 잊지 못할 고마운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나마 갈무리하는 모양새를 보니 내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이제야 슬슬 생기기 시작하나 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고백된 감사와 미처 깨닫지 못하여 고백되지 않은 감사가 있을 뿐이다. 감사는 과거를 의미 있게 하고 미래를 소망으로 채우며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이제는 올 한 해, 애틀랜타가 아닌 이곳에서 만난 고마움들을 되새겨보려 한다.

9/22/2014

날마다 부르는 노래가




엄마! ,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단체무용을 할 때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산이를 꼭 참석시키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단체무용을 훌륭히 해냈다. 그래서 산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애틀랜타 밀알선교회에 다닐 때는 장애가 있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수어 찬양을 예쁘게 하기도 했었다. 가사나 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은 산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현재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 무슨 노래를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 보지만 단번에 어떤 노래인지 알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산이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면 음의 높낮이가 많지 않고 발음도 어눌하다. 굵은 저음으로 부르다가 음이 높이 올라가거나 곡의 절정이다 싶은 곳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면 노래의 가락이나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예배 시간에 아는 찬양이나 찬송이 나오면 앗싸혹은 나 저거 알아하며 좋아한다. 가끔 회중 가운데 저 혼자 손 들고 찬양하기도 한다. 주먹을 꼭 쥐고 팔에 힘을 주어가며 부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추어 온 몸을 흔들며 부르기도 한다.

사실 산이가 어떤 마음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이의 그칠 줄 모르는 노래 부르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산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생이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노래 부르는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려고 한다. 동생도 형이 집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높여 노래를 해도 조용히 하라고 불평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스크린에 비춰지는 파워포인트의 화면을 순서대로 띄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산이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와우! 아직은 서툴어서 실수가 있기는 해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또 예배가 끝나고 이렇게 말씀해주신 집사님도 계셨다.

내가 오늘 무척 힘든 상태에서 교회에 왔거든요. 그런데 예배 시간에 산이가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힘이 생겼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되기도 한다. 산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와 꼼꼼한 성격(레고나 퍼즐 조립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이 잘 발휘되는 행복한 삶이 펼쳐져 가고 있음을 주님께 감사한다

2/22/2011

인사



한국에서 미국올 때 이삿짐을 담고 온 상자들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남겨두었었는데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아틀란타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사용하던 인터넷 서비스도 내일이면 중단되고(1 개월 사용기간을 맞추려다 보니... ^^)  언제 다시 연결될지 몰라 블로그를 통해 인사드리려고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심을 전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웠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사랑인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곧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11/12/2010

감사 또 감사

가정사역을 위해 귀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하이패밀리(www.hifamily.net)에서 받은 감사에 대한 글들을 보고 저의 감사하는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있는 듯 하나 한편에는 불만스러운 뾰로통한 모습,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는 감사이기 보다는 감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쩌나….
애쓰다 보면 언젠가 넉넉하게 감사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저에게 기대를 해보며(^^) 글을 옮겨봅니다.


*****
감사력(感謝力)을 높이기 위한 십계 -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제공
감사, 감사 또 감사

1. 생각이 곧 감사다.
Think & Thanks란 말이 있다. 생각과 감사는 그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인도속담에 <호랑이를 왜 만들었냐고 하나님께 투정하지 말고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지 않는 것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생각으로 감사를 열어라.

2. 작은 것부터 감사해라.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낳는다. 큰 강도 처음에는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것들을 먼저 감사하라. 그러면 큰 감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나중 감사가 아니다. 바로 지금부터 감사해라.

3. 자신을 감사하라.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높은 산과 거대한 바다의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저 광활한 우주의 태양과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는 감탄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을 감사하는 것이 가장 큰 감사다.

4. 일상을 감사하라.
가장 어려운 감사는 가장 단순한 감사다. 숨을 쉬는 것, 가장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감사가 가장 어려운 감사라는 것이다.

5. 문제를 감사하라.
문제는 항상 해결책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해결책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문제도 아니다.
그러므로 해결책이 있음에 감사하라. 그러면 동굴도 터널로 뚫린다.

6. 더불어 감사하라.
장작불도 함께 있을 때 더 잘 타는 법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감사할 때 감사는 시너지 효과를 띠게 된다.
가족들끼리 감사를 나누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온다.

7. 감사의 기어변속을 잘하라.
처음에는 <만일에> 감사다. 그 다음이 <때문에>의 감사다. 이어 <불구하고> 감사하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더불어>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저속기어를 넣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는 없다. 기어를 높여라.

8. 잠드는 저녁시간에 감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짜증과 분노, 근심 걱정을 껴안고 잠든다. 잠드는 시각에 감사하라. 저녁의 감사는 영혼의 청소가 된다.

9.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에는 메아리효과가 있다. 감사하면 뇌에 새겨진다. 그리고 감사의 반응은 언제나 긍정이 된다.
감사는 견인력이 있어 꼭 그런 방향을 가리킨다. 감사는 감사한대로 이루어진다. 이를 성취력이라 한다.

10. 받는 감사가 아니라 주는 감사를 하라.
우리말의 <고맙습니다.>는 말의 어원은 <고만 마세요.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어의 thanksgiving도 마찬가지다. thanks + giving이다. 때문에 give and take가 아니라 give, and take가 그 답이다. 언젠가 give and more take로 돌아올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3류 인생은 탓한다. 원망한다. 그리고 핑계거리를 찾는다.
2류 인생은 무조건 참아낸다. 하지만 일류인생은 감사한다. 그렇다면 나는?__

11/05/2010

감사와 함께 걸어보았어요


이곳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늦가을 날씨가 이어져서 바깥 활동하기가 좋았습니다.
깔끔한 햇빛과 선선한 바람 덕분에 하루 가운데 틈새 시간을 이용해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은 미국 선거일이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질 않고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고 느슨해지는 오후 시간에 자전거를 타든지 걷든지 하려고 공원에 나갔습니다.
바람이 조금 부는 듯 했지만 숲으로 들어가 걷기를 시작하자 바람은 사라져버리고 상쾌함만 느껴졌습니다.

둘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먼저 목적지까지 달려갑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헤어져 있다가 남은 세 식구가 걷고 있는 곳을 찾아 옵니다.
이 날은 5마일쯤(!) 멀리 걸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둘째와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네 식구가 산책로에서 다시 만나면 남편은 남은 길을 다 걷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걷기 시작한 곳, 그러니까 자동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갑니다.
이 공원의 산책로가 워낙 길기 때문에 끝에서 끝을 왕복하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듭니다.
남편이 주차해 놓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 시간과 남은 길을 걸어야 하는 시간을 얼추 맞추어 둘째 아이가 돌아와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와 저는 그냥 걷기만 하지만, 남편과 둘째 아이는 전화를 주고 받으며 걷는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고, 만나는 장소를 설명합니다.
공원에 갈 때마다 걷는 거리가 달랐으므로 만나는 장소도 늘 바뀌어서, 옆에서 지켜만 보아도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
건강하고, 지혜롭고, 마음 따뜻한 둘째 아이가 있어서 누리는 기쁨으로 인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디를 가든 걸을 때마다 맨 뒤에서 따라옵니다.
뒤에 있으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앞세워 걸어보게 해도 다시 뒤로 갑니다.
앞에서 걷는 것이 두려운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화요일 걷기에서는 첫째 아이가 저희 부부보다 앞서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씩씩한 걸음걸이로, 산책로 옆으로 나타나는 다람쥐와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나누며 목적한 곳까지 계속해서 앞서 나갔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나 봅니다.

첫째 아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것이 정말 느렸습니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발달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과 걷기에 있어서는 저희 아이가 유난히 늦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만2세 하고도 6개월이 되었을 때 혼자서 잠깐 동안 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걸음마 연습을 해서 혼자 걸을 수 있는 만5세가 되어서야 장애 어린이를 위한 조기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걷는 것이 불안하고 계단은 혼자 오르고 내려가지 못해서 안거나 업어주어야 했습니다.
           
일년이 지난 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걷는 자세가 안정되게 바뀌었는데, 그 당시 조기교육을 같이 시작했던 엄마들이 저희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교육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며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지금까지도 기적과 감사를 경험하게 하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미어지고 고통스러운 경험도 하게 합니다.
지난 화요일도 그런 날들 가운데 하루였습니다.
꽤 먼 거리를 부모보다 앞서 힘차게 걸어가는, 어느새 어깨가 넓어진 열일곱 살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건강하고, 착하고, 순수한 첫째 아이가 있어서 날마다 경험하는 기적으로 인해 다시 한번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인데, 거기에 감사까지 찾아와 동행해주니 그 시간, 그곳은 하늘 나라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