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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2015

새로운 리듬을 타고




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피트니스클럽은 자주 가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해에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등록해 두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겨우 간다. 해도 바뀌었으니 일주일에 세 번은 가리라 다짐을 해 본다!

지난 여름 동안에는 식구들이 함께 운동하러 갔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땀을 내고, 수영으로 개운하게 마무리하곤 했다. 난 수영도 못 하고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싫어 수영장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맨살을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더 싫었다. 그랬더니 이 기회에 수영을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 물속에서 걸으면 운동량이 더 많다더라, 며 꼬셔댔다. 수영장을 이미 다니고 있던 남편과 아이는 나보다 몸이 더 좋은 미국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며 안심(?)하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 라는 말로 식구들이 함께 수영하자는 의견에 쐐기를 박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아이들과 어울릴 겸해서 달갑지 않은 수영장에 들락날락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학교에 다니는 녀석은 피트니스클럽에서 하는 운동을 접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운동시간이 끝난 것이다. 동시에 나도 수영장 가기를 그만 두었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걷기운동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보통 트레드밀을 이용하여 운동할 때 뛰는 사람은 흔하게 본다. 내가 운동하는 곳에서도 나처럼 전혀 뛰지 않고 걷기만 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내 몸 상태에 맞게 걷는 운동을 선택했지만 트레드밀에 올라선 사람마다 달려가면, 내가 둔해 보이려나, 운동할 줄 모른다고 여기려나 잡생각들이 발걸음을 지치게 하기도 했다. 이럴 땐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 라는 남편의 말이 그런대로 쓸모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걷는 운동만 하는 사람이 점점 눈에 띈다. 운동하는 곳이 익숙해져서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레드밀에 올라가 활기차고 즐겁게 진행되는 아침 뉴스를 볼 수 있도록 TV 채널을 찾아놓는다. TV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어폰을 연결한 다음 슬슬 걷기 시작한다. 몸이 풀렸다 싶으면 속도를 조금 더 올려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속도가 높아진 얼마 동안은 숨도 차고 정강이에 힘이 들어가 발걸음이 무겁기도 하다. 아침 식사 때 마신 커피 탓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잠시 고민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때가 체육학에서 말하는 데드 포인트(Dead point). 운동의 강도를 높였을 때 곧 괴로운 상태에 이르게 되는 지점이다.

이런 몸과 마음의 상태를 눈치채면 차분히 살피고 달래준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고, 뒤로 젖혀진 목을 바로 세워 살짝 앞으로 잡아 당기고, 숨을 더 깊게 들이 마시고 내뱉는다. 건강한 몸을 위하여 운동하기로 정한 시간만큼 기쁘게 채우고 흐뭇한 마음으로 이 건물을 나서자고 나에게 부탁한다. 그러다 보면 속도가 빨라진 트레드밀에 몸이 익숙해져서 발걸음도 가볍고 호흡도 편해져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도 사라지고 없다. 걷는 것을 멈추지 않고 걷고 또 걷는 동안 몸은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세컨드 윈드(Second wind) 상태에 이른 것이다.

세컨드 윈드란 격렬한 운동에 대해서 모든 신체기능이 동원되어 새로운 평형 상태가 성립된 시기이고, 신체 활동에 적응하도록 각종 내분비선과 기타 장기의 작용이 조정되어 세컨드 윈드가 되도록 돕는다고 친절한 이웃(^^)인 네이버 지식백과가 잘 알려준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하지 않던 일을 하려 하거나 하던 일의 강도를 높이는 경우라면 곧 데드 포인트에 이를 확률이 높다.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자극이 몸을 잠시 괴롭게도 하지만, 잘 이기고 나아가면 더 건강해지도록 돕는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일주일에 세 번, 즐겁게 걸어야겠다. 운동이 몸에 새로운 리듬을 주듯 다시 주어진 한 해의 시간을 정성스레 걷는 동안 삶도 새로운 리듬을 타고 신나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11/10/2014

숲길을 걸을 때




슬슬 걷기에 좋은 주립공원이 동네에서 가깝다. 숲 속과 호수 둘레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호수에는 몇 마리 오리가 떠다니거나 휴일이면 공원에서 빌려주는 노 젓는 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밖에 철마다 바뀌는 화려한 꽃이나 신나는 놀이 기구나 기암괴석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조용하고 수수한 공원이다.

운동 삼아 공원을 자주 가던 어느 해 봄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남편과 나는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숲에 가면 넓은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집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이 술술 풀려 나오곤 한다. 그날도 새로운 얘깃거리가 시작되려는 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한 발을 공중에 들고는 으아아~~”, 비명을 질렀. 처음 들어 보는 음색의 그 짧고 낮은 비명 소리는 두려움을 짙게 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남편의 팔에 매달리며 왜 그래?”, 다급하게 물었다.

잘 놀라는 아내를 배려한 것인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 이라고 대답했다. 뱀이라는 말에 남편 팔에 매달리기라도 할 것처럼 있는 힘껏 끌어 안고는 어디?”, 라고 말하면서 눈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숲 쪽을 가리켰다. 제법 굵고 길며 까만 뱀이 낙엽 위를 마치 헤엄을 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뱀이 그렇게 날렵한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우리 때문에 놀란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을 이 공원에서 만났다. 걷기에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더니 만남 장소를 공원으로 정한 것이다. 산책로의 중간쯤에 이르러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머지 남은 길을 가기로 했다. 둘 다 볼일을 보고 내가 먼저 화장실 건물을 나섰다.

화장실 입구 쪽 희고 넓은 벽에 검고 길쭉한 무엇이 움직이고 있었다. ! 얼른 그것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지난번 일을 사람들과 나누던 중 이곳에서는 까만색 뱀은 독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인은 아직 화장실 안에 있었고 알릴 방법이 없었다

곧이어 화장실을 빠져 나오는 지인에게 저기, ”, 하고 그저 가르쳐주었다. 지인은 그쪽을 돌아보고는 오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듯이 양손을 마구 저으며 두 발을 땅에 대지 않으려는 듯 겅중겅중 달려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성격이 엄청 차분하고 말소리도 엄청 작은 사람이 그런 모양으로 달아나니 웃음이 났다.

이번엔 개를 만난 일이다. 공원에 있는 표지판들 가운데 개를 묶어서 데리고 다녀야만 한다는 안내문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호수 둘레 길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길에서는 이 규칙이 잘 지켜진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는 열에 일곱, 여덟은 개들이 묶여 있지 않다.

개를 키우는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숲길에서는 개들을 자유롭게 다니도록 풀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숲길을 걸을 때가 있으며 그러다 그런 개들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훈련이 잘 된 개는 멈추라는 지시를 잘 따르고, 더 친절한 주인은 개를 그 순간에 줄로 묶어 좁은 숲 길 바깥으로 물러나서 우리가 지나가도록 기다린다. 이런 주인과 개를 만나면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숲 속에서 낙엽이 바스락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들개처럼 생긴 누런 세 마리 개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이마에는 꼭지점이 네 개인 별 모양 문신 같은 것이 있었다. 이 개들은 무슨 먹이를 포위한 짐승처럼 남편과 나를 세 면에서 둘러싸고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댔다. 정신이 황망하고 어이가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개들은 계속 의기양양하게 짖어대고 난 최대한 개들에게 적의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몰라도 꽤 긴 시간 같았다. 갑자기 남편이 멀리 보이는 주차장(공원 밖 어느 축구장의 주차장이 보이는 곳이었다)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면서 고우(Go)!” 라고 외쳤다. 그러자 개들은 지들이 언제 짖었냐는 듯이 깨갱거리며 눈에 힘을 뺐고 주차장 쪽으로 우리에게 왔던 것처럼 달려갔다.

개를 방치한 주인에게 화가 났다. 그 못된 주인과 개들 때문에 매우 언짢았지만 그날 걷기로 한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숲길을 걸으며 여태껏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한 욕을 그 들과 주인을 생각하며 몽땅 몰아 했다.

숲을 걸을 때 이 밖에도 우리가 호흡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좋아하는 쬐끔한 날 것들이나 곤충들이 귀찮게 하기도 한다. 송화 가루가 날리는 철에는 운동화나 바지가 노란 가루로 범벅이 되기도 한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갑자기 비를 만나 길이 질척해지면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숲은 공기 중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도 하고 피톤치드(식물이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를 내뿜어, 그것들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보며 시간의 흐름과 나와 우리의 삶따위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반면 숲에서는 뱀이나 정신 없는 개들과 그 주인처럼 두렵고 화나는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숲은 여전히 사람에게 유익하다. 숲길을 걷고 또 걸으며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게 될 터이다.

3/28/2014

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날씨가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는다. 올해 첫머리에 기온이 뚝 떨어져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눈도 보고 좋다고 했더니, 그 추위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실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전기요금이 엄청 불어나고 바깥 운동을 하지 못하는 찌뿌둥함도 쌓여 있다. 기온이 조금 오른 날에도 운동 삼아 하는 숲 속 걷기를 아침에는 추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오후에 햇볕이 한참 풀렸다 싶을 때 나갔다 온다. 걷는 운동도 그나마 일 주일에 한 번 하면 다행이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나서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늘 가던 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춥다 춥다 해도 세상 만물이 제 역할을 하며 움직이고 있듯이 아직도 칙칙한 겨울 색깔을 벗겨내지 못한 나무에도 새순이 제법 올라와 있다. 새 생명을 세상 밖으로 기꺼이 밀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그들이 내어놓는 새순을 바라보면 경이롭고 앙증맞고 귀하다.

그 모양과 색도 가지각색이어서 오래 두고 볼 요량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거의 실패다. 핸드폰으로 어떤 대상을 가까이 찍으면 흐릿하게 나온다(요즘 스마트폰에 근접 촬영 기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것은 아이폰이다). 사진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줄 알면서도 자꾸 버튼을 눌러대는 이유는 새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때,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 고 혹시라도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하나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이는 새순마다 찍어댔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세찬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온 다음에 숲을 찾아가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무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약해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 같다. 제 삶을 다한 나무가 안쓰러워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덩치가 큰 나무는 쓰러져 있어도 그 기운이 당당하여 근처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나무는 그다지 굵지도 않았고 밑동을 보니 튼실해 보이지도 않았다. 올 겨울 추위와 바람은 그 소나무에게 숲 속 다른 나무와 동물들을 위해 거름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그 나무는 기꺼이 순응을 한 것인지……

공원 관리인들이 어떤 절차에 따라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지 모르겠다. 쓰러진 나무는 그렇게 길을 가로 막은 채 몇 개월이고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가보면 톱으로 잘려져 길을 다시 터 놓는다. 잘려진 나무 토막들은 숲 속에 그대로 둔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는 배려인 듯싶다.





죽은 나무를 뒤로 하고 다시 숲길을 걸었다. 이번엔 늘 다니던 길에서 일 년도 훨씬 전에 쓰러진 또 다른 나무에 다다랐다. 이 나무는 참나무의 일종으로, 쓰러지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나무 밑동에 연결되어 있다. 이 나무 밑을 지나려면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내려서 지나가야 한다. 길을 가로질러 낮게 쓰러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공원 측에서는 이 나무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쓰러져서 구부러진 모습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똑바로 서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나 여전히 새싹과 줄기를 내며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나무가 다시 보였다. 세상에! 다른 나무의 새싹은 조그맣게 열리고 있는데 이 나무는 새 줄기가 쭉쭉 뻗어 나와 새로 나온 잎들도 잔뜩 달고 있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 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성한 기운을 나눠주며 좋아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뿌리가 달린 밑동에서 떨어져 나간 소나무는 초록 솔잎이 달려 있었지만 누가 봐도 죽은 나무다. 그런데 구부러져 있을지언정 밑동에 붙어 있는 나무에서는 생명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구부러진 나무가 있는 길을 벗어나는데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첫번째로 암송했던 성경 구절이 문뜩 떠올랐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만 붙어 있으면 산다는 말씀이다. 난 이 말씀을 굳게 믿는다. 어둠이 나를 삼킬 듯이 덤벼들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겨우겨우 혹은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으면 된다. 힘든 때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소심한 몸짓으로 허우적거려도 괜찮다. 하늘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된다. 말라빠져 죽은 가지처럼 보여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꼬~옥 붙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난 그렇게 믿는다.

숲 속에서 만난 나무들에게 고마움을 남기고 공원을 총총히 떠났다.

12/05/2013

영혼의 불꽃을 일으킨 한 단어, 순수


즐겨 걷는 길가에 서있는 오래된 참나무(Oak)다. 
나무 이름이 참(!) 좋다.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주일에 교회를 거의 안 빠지고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라면 외우고, 찬양을 예쁘게 부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교회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나는 더 열심히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랐다. 어린 나에게 교회는 유익하고 즐거운 놀이터였다.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성경 말씀과 그들의 신앙 태도를 여전히 배우면서, 중학교 2 학년 때부터 나도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어서 청년들도 많았는데 어린 나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어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고 그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 감당했을까, 돌아보니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늘 흥분되고 도전이 되었다. 아마도 교회는 나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꾸게 해준 곳이었던 것 같다.

교회 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귀찮은 일들이 있다. 행사준비, 청소, 식사준비, 설거지, 예배 후 뒷정리……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참 잘도 했다. 그때의 마음을 기억해보면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 뭐 이런 개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난 수녀가 되어야 하나 보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모교회는 내 삶의 태도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어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 전까지 신학대학이라는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난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세상 지식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대학이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 어떤 길이 하나님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는지, 일 년 동안 밤 9 시만 되면 교회 있는 곳을 향하여(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더 정성스럽다고 여겼는지…… 나의 과거지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물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 더 헌신하길 원하시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증거로 대입 학력고사 점수를 몇 점을 달라고 내 맘대로 정했다. 학력고사 결과가 나왔는데 점수는 기도하던 것에서 일 점도 어긋나지 않는 딱 떨어지는 그 점수였다. 난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일반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던 기대를 저버린 딸에 대한 부모님의 분노도, 친척들과 친구들이 찾아와 신학대학 가는 것을 말리는 충고도 이미 확실한 증표를 가진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면접이 있었던 날이다. 교수님은 왜 신학대학을 왔냐고 물으셨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님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난 교회가 좋고 교회를 위해서 뭔가 더 잘 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원서 접수를 할 때 신앙고백을 적어 내는 것이 있었다. 난 거기에 사도신경을 적어서 냈다. 그 보다 더 좋은 신앙고백문이 있을 수 없다는 고매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이라고는 사도신경 밖에 몰라 그걸 적은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교수님은 내 대답과 신앙고백문을 보고 어찌 생각하셨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웃으시며 나중에 교수님 자신의 아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다(교수님의 두 아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을 통해 그 아들을 소개받는 일은 없었지만 교수님은 재미있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 주셨다). 신학과 180 명 신입생 가운데 다섯 번째의 꽤 괜찮은 성적으로 입학을 했다.

성실한 교회 언니에서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20 여 년 전부터 목사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교회와 더불어 신앙생활 하면서 기쁘고 은혜롭고 감사한 일들과 슬프고 황당하고 괴로운 일들이 참으로 많이도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숲길을 걸으며 남편과 새해에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이야기 하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 속을 한 시간 반 이상 걷다 보면 수다를 많이 떨게 된다. 이 날은 이야기가 흘러 흘러 교회와 관련된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편은 당신의 순수함을 보시고 이 길로 이끄셨나 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발에 밟혀 부스러지는 나뭇잎 소리에 섞여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남편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신의 그 순수함을 회복해야 될 때 같은데.”
순수함?’
머릿속에서 반짝하는 불꽃이 튀었다. 일정한 주제도 없이 떠들어댄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나의 순수함을 읽어준 남편이 예뻐 보였다. 동시에 미국으로 와서 느슨해져 있던 기도의 끈을 다잡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들어가든 순수하게 살 수 있다. 어릴 때는 세상에 물들지 않아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라면 나이가 들어서도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 순수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미국으로 온 뒤로 난 자꾸 순수와는 거리가 먼 속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낯선 현실이 불안하게만 여겨졌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경 가방 속 깊숙이 밀어두고, 한 달의 수입과 지출에 맞추어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었다.
당신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아니야,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떡할 거야!”
남편과 이런 주제로 때때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나에게도 순수한 구석이 있었노라 남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을 때의 마음가짐도 보통 때보다 순수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불안과 걱정, 지식과 경험, 선택과 방법, 손해와 이익 계산을 다 떠나 보내고, 앞으로 열려질 모든 가능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 어떤 것을 주셔도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모형인 가족과 교회를 위한 응답을 바라는 마음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리라 믿고 마음을 텅텅 비우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셨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키워드를 찾아냈다. 바로 교회다. 미국에 온 뒤로 목사는 교회라는 일터에서 월급 받는 고용인 같다는 느낌이 많았다. 난 그 고용인의 월급으로 살림을 사는 아내일 뿐이고 말이다. 누구도 이렇게 얘기한 사람은 없다. 그냥 나의 시답잖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도 불필요한 것이므로 흘러 보내려 한다. 그저 나는 교회를, 교인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 말대로 혹여 교회를 사랑하는 나의 순수함을 보시고 지금의 자리로 이끄셨다면, 그래서 빈 마음으로 다시 교회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소망이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7/15/2011

꽃이 있는 여름

꽃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요즘은 겨울을 뺀 나머지 봄, 여름, 가을 어느 때나 꽃을 많이 볼 수 있어 여름 꽃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이할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봄에는 씨를 뿌리고, 가을은 열매를 거두는 때라고 흔히들 말하니까 여름은 꽃이 피는 계절이라고 실없이 우겨보면서, 교회와 집 주변에 있는 꽃을 눈에 담아 보았습니다.
사십 중반의 나이를 먹은 저의 삶은 어느 계절을 살고 있나 생각하면서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장 3-4절)

3/25/2011

공명

한국에 있을 때, 언젠가 코칭 세미나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제를 두고 이틀인지 사흘인지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는데,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 감정을 알아 채고 다스리는 법이었습니다.

그 주제에 접근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기질을 알아보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을 각자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자기만의 몸짓이나 사인(sign)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움과 실습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려는 노력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사람들 속에서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알고, 남을 알고.

한편, 서로의 감정, 생각이나 말이 갖는 힘, 그것들은 각각 고유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간섭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과학적인 설명과 간단한 실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소리굽쇠의 공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소리굽쇠가 여러 개 있다고 가정하고, 하나를 울리게 되면, 그것과 같은 주파수를 가진 소리굽쇠는 진동을 하게 되고, 주파수가 다른 소리굽쇠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어 감정, 생각, 말도 그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뭔가를 썼다 지웠다… 그럽니다. 정리도 잘 안 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쓰려니 그런가 봅니다. --;;)

요즘 제가 무엇에 공명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새로운 사역지가 정해지고 나서, 교우들을 심방하며 사귀고, 기도 제목도 나누고 있습니다.
이곳 생활 환경과도 사귀고 있구요.
아마도 교우들과, 콜럼비아와 공명할 수 있는 주파수를 맞추고 있나 봅니다.
"우리"의 만남과 사귐이 소망을 실은, 사랑이 가득한, 맑고 깊은 공명이 되어서, 멀리까지 퍼지는 울림이면 참 좋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새번역 / 고린도전서 13장1절-3절)

2/11/2011

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


첫 목회를 시작했던 강화 성은교회입니다.
남편의 고향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뒤로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들판이 있는 확 트인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좋은 쌀, 감과 밤이 많이 나고, 강화에서도 제법 큰 저수지가 가까이에 있는 경치 좋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 이름이 남편 이름과 같아서, 남편이 개척한 교회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호호호.
아무리 교회를 개척한다고 해도 자기 이름으로 교회 이름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재미난 질문을 하시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면 아니오,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자기도 이 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그곳에 살 때도 오고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은 때였으니, 남편이 어렸을 적에는 어지간한(?) 거리는 거의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한편, 남편은 모태 신앙으로, 어머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목회자로 키우기로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는 꿈만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던 어린 남편이 성은교회 앞을 지나 걸어갈 때면, 자기 이름이랑 같으니까 이 다음에 커서 이 교회에 와서 목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답니다.
“예사롭지 않은 끌림이 있었지” 라고 남편은 말합니다.


첫 목회지 성은교회는 신학교를 졸업했다고는 하나 나이도 어리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은 젊은 목회자를 목회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도록 키워준 부모님 같은 교회였습니다.
하나씩 배워나가는 목회가 서툴고 어설퍼도 교우들은 예쁘게만 봐주셨습니다.
그나마 교육 전도사를 하다가 목회를 나온 터라, 교회학교를 섬기는 일은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로 동네 아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이 재미있어 했던 것 같습니다.

아! 남편이 목회자로서 듬직해 보이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기억났습니다. ^^
농촌이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고, 그래서 초상을 치르는 일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저는 배운 기억이 없는데, 남편은 어디서 배웠는지 임종예배서부터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의젓하게 인도합니다.
그 모습은 언제 보아도 목회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성은교회를 섬기는 동안 저희 가족이 가족으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목회를 나가고 서너 달 지나서 결혼을 급하게 하게 되었고, 첫 아이를 낳은 곳이고, 목사 안수도 받았고, 둘째 아이를 태중에 갖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같은 장로님들과 어머니 같은 권사님들의 사랑을 저희 가족이 듬뿍 받으며 목회를 하다가 사임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다 싸고 교회 앞에서 장로님과 몇 분 교우들과 마지막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첫 사랑을 나눈 교회이고, 저희 가족을, 특별히 장애아인 첫째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함께 키워주신 교우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죄송스러워 꺼이꺼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교우들과 연락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마음에 없어서가 아니라, 맡았던 교회에 온 후임자를 위한 배려이고 새로 담임하게 된 교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담임했던 교회의 교우들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지속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일 어르신 장로님께서 큰 아이는 잘 있냐,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말이 별로 없으시고 살짝 까다로우신 장로님이셨기에 그저 안부를 묻는 전화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로 어~쩌다가 한번씩 전화를 해서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오셨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팔순 잔치에도 초청해주셨습니다.
“장로님, 안 그런 척 하셔도, 이제는 전화 연락이 안 되어도 장로님의 그 따뜻한 마음, 저희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어요. 건강하게 지내시는 지….”

성은교회에서의 첫 목회를 시작하여 올해로 목회도, 결혼도 2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선 채로 몇 개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교회에서 전문적인 사역자로서 열심히 감당하는 것이 남편의 소명이고 또한 제 소명이기도 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지난 2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목회 현장 가운데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첫 목회에서 가졌던 열정과 순수함에, 하나님을 경험한 삶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좀 더 깊어진 사랑을 더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를 정성껏, 천천히, 신나게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베드로전서5장1절-4절)

1/21/2011

기꺼운 인내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습니다.
남편과 저는 식탁에 앉은 채로 이야기가 계속 오고 갔습니다.
미국에 오게 된 동기, 미국으로 오는 과정 속에서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움직였는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미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놓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이곳에서의 목회나 생활에도 똑같은 질문들을 하며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의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내는 솔직한 고백들이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이날 따라 고백들이 끊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그러기를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외출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말은 교회 행사로 바쁜 땐데 거기서 멀어져 있고, 교회 개척은 시도하는 것들마다 부정적인 대답만 들려오고, 그래서….”
큭--, 참아보려고 했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엉엉엉….

마주보고 앉아서 얘기하다가 이렇게 울어버리면 남편이 당황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치면서, 억지로 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 그래서 많이 속상하고 날카로워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차분해지고 괜찮아.”
남편은 말이 없습니다.
눈물이 자꾸 나와서, 세수하고 나가봐야겠다며 일어났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내려오니, 남편이 한번 안아보자며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 말이 꼭 하고 싶었어.”

*******

지난해 9월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교회에 간 시간에 저는 집에서 참담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한참을 기도하는데, 너희 거덜나기 전에 해결한다, 는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 경제적 형편이 거덜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니 올해 안에 혹은 머지 않은 시간에 해결하시겠다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 안에 뭔가 해결이 된다면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교회개척과 관련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새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도 연말과 연초에 더욱 초조해지고 날카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아직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거덜나다, 바닥난다는 말이 경제적인 형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경험…을 포함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주신 감동에 대한 응답이었노라 할만한 간증을 언젠가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요즘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기도와 말씀 묵상과 신앙 서적을 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과는 다르게, 이 고난의 시간을 억지로 참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지금도 그 계획을 실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장2절-4절)

저에게 주어진 지금은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으며 기쁘게 인내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어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서 2장10절-13절)

또한, 한국에서와는 달리 기도 생활에서 멀어진 저를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부르시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무엇이, 내 계획, 경제적인 형편…이 하나님과의 사귐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3절-4절)

11/05/2010

감사와 함께 걸어보았어요


이곳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늦가을 날씨가 이어져서 바깥 활동하기가 좋았습니다.
깔끔한 햇빛과 선선한 바람 덕분에 하루 가운데 틈새 시간을 이용해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은 미국 선거일이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질 않고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고 느슨해지는 오후 시간에 자전거를 타든지 걷든지 하려고 공원에 나갔습니다.
바람이 조금 부는 듯 했지만 숲으로 들어가 걷기를 시작하자 바람은 사라져버리고 상쾌함만 느껴졌습니다.

둘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먼저 목적지까지 달려갑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헤어져 있다가 남은 세 식구가 걷고 있는 곳을 찾아 옵니다.
이 날은 5마일쯤(!) 멀리 걸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둘째와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네 식구가 산책로에서 다시 만나면 남편은 남은 길을 다 걷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걷기 시작한 곳, 그러니까 자동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갑니다.
이 공원의 산책로가 워낙 길기 때문에 끝에서 끝을 왕복하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듭니다.
남편이 주차해 놓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 시간과 남은 길을 걸어야 하는 시간을 얼추 맞추어 둘째 아이가 돌아와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와 저는 그냥 걷기만 하지만, 남편과 둘째 아이는 전화를 주고 받으며 걷는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고, 만나는 장소를 설명합니다.
공원에 갈 때마다 걷는 거리가 달랐으므로 만나는 장소도 늘 바뀌어서, 옆에서 지켜만 보아도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
건강하고, 지혜롭고, 마음 따뜻한 둘째 아이가 있어서 누리는 기쁨으로 인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디를 가든 걸을 때마다 맨 뒤에서 따라옵니다.
뒤에 있으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앞세워 걸어보게 해도 다시 뒤로 갑니다.
앞에서 걷는 것이 두려운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화요일 걷기에서는 첫째 아이가 저희 부부보다 앞서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씩씩한 걸음걸이로, 산책로 옆으로 나타나는 다람쥐와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나누며 목적한 곳까지 계속해서 앞서 나갔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나 봅니다.

첫째 아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것이 정말 느렸습니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발달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과 걷기에 있어서는 저희 아이가 유난히 늦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만2세 하고도 6개월이 되었을 때 혼자서 잠깐 동안 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걸음마 연습을 해서 혼자 걸을 수 있는 만5세가 되어서야 장애 어린이를 위한 조기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걷는 것이 불안하고 계단은 혼자 오르고 내려가지 못해서 안거나 업어주어야 했습니다.
           
일년이 지난 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걷는 자세가 안정되게 바뀌었는데, 그 당시 조기교육을 같이 시작했던 엄마들이 저희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교육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며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지금까지도 기적과 감사를 경험하게 하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미어지고 고통스러운 경험도 하게 합니다.
지난 화요일도 그런 날들 가운데 하루였습니다.
꽤 먼 거리를 부모보다 앞서 힘차게 걸어가는, 어느새 어깨가 넓어진 열일곱 살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건강하고, 착하고, 순수한 첫째 아이가 있어서 날마다 경험하는 기적으로 인해 다시 한번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인데, 거기에 감사까지 찾아와 동행해주니 그 시간, 그곳은 하늘 나라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10/22/2010

이런 과수원 보셨나요?

<밀알사모님 웃음이 예뻐서 올려봅니다. 괜찮죠? ^^>

10월 초, 사과 과수원에 갔었습니다.
그 과수원에서는 상품 가치가 있는 사과는 기계로 따서 팔고, 남은 사과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자하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딸 수 있도록 하는 곳이었습니다.
마치 구약 성경에 나오는 보아스의 밭처럼요.

과수원은 이러한 뜻을 여기 지역 UMC(미연합감리교회)에 해마다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인여목회자인 김목사님이 담임하시는 미국인 교회가 주최가 되어 사과를 따고, 그 사과 가운데 일부를 밀알선교단을 위해서 쓰겠다는 계획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과를 따고 옮길 때 힘 쓸만한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며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시는 밀알선교단 총무님의 따뜻한 말씀을 듣고, 우리 가족 모두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좋은 일도 하고, 사과 과수원 구경도 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과수원에서 딴 사과를 파는 마켓도 안팎으로 얼마나 정겹게 꾸며놨던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도착한 사과밭은 얼마나 넓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상품으로 팔 사과는 이미 땄다고 했는데, 크고 작은 사과들이 나무마다 어찌나 많이 달려있던지 또 한번 놀랐습니다.
땅에 떨어진 사과들 가운데 멀쩡한 것들은 그것대로, 나무에 달린 것들은 그것대로 따서 자루에 담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미국 교회 교인 몇 분과 목사님, 그리고 밀알에서 어른들 몇 분 해서 15명 남짓(맞나요?)이 반나절 동안 차에 실을 수 있는 만큼만 사과를 땄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너무 많이 실으면 타이어가 펑크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과의 일부는 교회를 통해서 어느 자선단체에 보내졌고, 일부는 밀알선교단을 위해서 쓰도록 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거저 주는 사과이니 개인적으로는 가져갈 수 없고, 팔 수도 없으며, 떨어진 사과 때문에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과수원 주변에서 불을 피울 수도 없는데, 함께 참여한 밀알어머니들이 준비한 음식은 나누어 먹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허락되었습니다.

음~ 이러면 안 되는건대 밀알 총무님이 살짝 나눠주신 사과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연두색 사과는 다 시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팍 깨주었습니다.
아주 아주 달게 먹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과수원 주인의 넉넉한 마음과 이런 기회를 살려 밀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하려는 총무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 … /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룻 2:12, 15-16)

10/15/2010

지난 두 달은...



지난 두 달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의 혈압 수치가 176/138로 오르고, 좌골신경통으로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아야 하는 상태가 되어서 사역하던 교회에 병가(病暇)를 냈는데, 허락된 시간이 두 달이었습니다.

처음 한 달은 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며 검사하고, 치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집에서 쉬면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며칠을 보내다가, 혈압 수치가 병원에 입원해서 떨어뜨려야 할 정도로 높으며 그러다 갑자기 어찌 되면 더 큰 일이라는 주변 분들의 걱정에, 미룰 일이 아니다 싶어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혈압이 자연적으로 그리고 빨리 떨어져 정상 수치가 되기를 바랐는데, 결국은 약 처방을 받아 날마다 약을 먹어 혈압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혈압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좌골신경통은 조금 오래갈 모양입니다.
침을 맞고 약을 먹었는데 아직도 다리가 땡긴답니다.
남편은 아마 낫고 있는 과정이며 기도로 나야 되나 보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편이 치료를 하는 동안 어찌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남편에게도 저에게도 하나도 도움이 될 것이 없기에 떨쳐버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다가도, 특히 남편에게 불쑥 불쑥 치미는 화가 나면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을 아낍니다.
관계에 유익하지 않은 말이 될 게 뻔하며, 저도 잘 난 것 없기에 화낼 입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마음의 갈등을 차분한 영혼의 기도로 감싸 위로하며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또 이 위기의 때에 가족이 함께 운동하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어차피 자동차도 한 대여서 같은 시간에 한 사람만 사용해야 되고, 운동도 할 겸 해서 자전거를 타고 왕복 8마일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다닙니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 잘 하며, 둘째 아이는 사춘기라 툴툴 거리기는 해도 마른 빨래 정리는 물론 설거지도 하고, 성적도 부쩍 올라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저도 그 동안 관심 있던 장애인 단체인 Parent to Parent of Georgia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비영리 민간단체로 주로 장애인 가족들이 일하는 곳인데, 조지아 주에만 곳곳에 6개의 사무실이 있고 전국적인 기관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그들과 관계하며 어떤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일하는지 조금이나마 배우려고 합니다.

이렇게 가족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하며, 영육의 강건함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회할 곳을 찾는 기도가 이어질수록 예수님 앞에 더 낮아져야 함을 깨달으며, 부족하지만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 꼭(!) 달라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아, 요즘 좌골신경통을 낫게 하는 민간요법으로 만든 국물을 먹고 있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것인데 아는 몇 분이 이걸 먹고 나았다고 합니다.
북어 대가리 2개, 다시마 손바닥 크기만큼, 들기름 2숟가락, 물 2컵.
이것을 뭉근한 불에 한 시간 정도 끓인 다음, 거기서 우러난 국물을 하루에 두 번 정도 나누어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북어 대가리입니다.
북어 대가리를 얻기 위해서는 북어를 사야 되는데 매일 2마리씩을 쓰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님께 부탁하는 방법을 생각했었는데 어머님 걱정하신다고 남편이 그만두랍니다.
이 방법을 알려준 친구는 이러한 사정을 듣고, 자기에게 있던 북어 대가리 몇 개를 잘 모아두었다가 이거라도 먹어보라며 주었습니다.
약이라는 것이 나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남편은 친구가 마련해 준 몇 번 안 되는 기회를 오히려 감사하고 귀하게 생각하며, 그 관심과 사랑이 좋은 치료제라 믿으며 먹고 있습니다.

땡큐 친구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5-7)

10/08/2010

일단정지


정지(STOP)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는 차가 있든 없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언제나 멈추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엉키지 않고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제 생각도 정지 표지판을 앞에 두고 있는 듯 합니다.
그냥 멈추어 서서 작동을 안 하네요.
잠시 이대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9/17/2010

열심히 살되 잘 살고 있나?

<나디아 코마네치>
중앙일보 스포츠 USA 어제 신문에 실린 기사 가운데, 체조 경기에서 만점을 받아 체조계의 전설로 알려진 나디아 코마네치가 김연아 피겨 선수에게 한 따뜻한 조언이 실렸습니다.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 이단평행봉에서 사상 첫 10점 만점을 받았을 뿐 아니라, 7차례나 만점 연기를 펼쳐서 금메달 3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4년 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도전해서 금메달 2개를 다시 얻었답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세계 지적발달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인데 코마네치가 바로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부회장이라고 합니다.
2013년 대회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되어 “스페셜올림픽 겨울대회 평창 유치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코마네치는 장래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김연아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고 합니다.

“(줄임) 만일 경쟁이나 금메달을 원했다면 더 도전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케이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면 또 다른 도전을 해봐도 좋겠다. (줄임)”

그 기사를 읽으면서 지금의 저는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는 무엇이며, 하루 하루의 우선 순위도 잘 정해서 그렇게 살고 있나?
열심히 살되 잘 사고 있나?


산에 갔다가 어느 꽃에 유난히 벌과 곤충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꽃이 활짝 피거나 화려하지도 않아 꿀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보기와는 다른지 그 꽃 주변에는 어김없이 곤충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일하는 곤충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그 곤충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이루고 살아갈까? 뜬금없이 궁금했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들을 떠올리는 것은, 열심히 살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삶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며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첫 장면에선가 나왔던 “너나 잘하세요!” 대사가 떠오릅니다.
정말 나부터 잘 해야 되겠지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에베소서4:2-4)

9/10/2010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지인이 보내준 사진들입니다.>


11년 전쯤, 서울에서 살 때는 공동체로 “사는 것”에 참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여 유기농 상품이나 친환경 생산물을 공정하게 거래하는 생활협동조합, 아이들 교육을 부모와 교육자가 함께 풀어가는 공동육아조합, 입양이나 위탁을 통해 여러 자녀들을 보살피고 홈스쿨링을 하는 가족공동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공동체….
이런 여러 공동체의 이웃,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정신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보태져 도시에서 가능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보자며 남편과 친구 목사님이 공동목회를 하던 때였습니다.

공동목회보다 먼저 시작된 것은 공동육아였는데, 초등학교 가기 전 아이들을 가진 몇몇 부모들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아빠들은 마음으로 힘이 되어주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직접 교육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 내용 가운데, 각자가 관심 있거나 전문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영역을 나누어 아이들과 놀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품앗이 교육이었습니다.
노래와 놀이를 맡은 방글 엄마, 그림과 만들기를 맡은 색종이 엄마, 우리 가락과 악기를 가르치는 얼씨구 엄마, 나들이를 맡은 산들 엄마, 건강과 위생을 책임지는 ** 엄마(왜 생각이 안 나지? 미안...생각났음. 튼튼 엄마 ^^), 책 읽어주는 호호 엄마….

다 기억이 안 나지만 7~8가정이 늘 공동육아에 함께 했고 10가정쯤 되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3, 4년 지속되었던 공동육아의 경험은 교육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건강하게 살아보려는 노력들이었고, 교육 내용은 정말 창조적이어서 기쁘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동육아에 참여하던 아이들 가운데 저희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에 대안교육의 하나인 홈스쿨링 하는 여러 가정이 사례를 발표하면서 제법 큰 모임이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고, 우리 가정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를 보낼 것인지, 홈스쿨링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복잡한 서울, 넓지 않은 골목을 두고 마주 보는 집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주택가, 여러 가구가 한 집에 사는 다가구 주택 2층, 거실 큰 창문 앞에 앉아 있던 어느 날이였습니다.
갑자기 제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점점 위로 올라가서 서울을 벗어나고, 한반도를 벗어나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어느 곳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방금 전 제가 떠나온 지구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여러 갈래의 길과 그 길들을 따라 움직이는 작은 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지고 저렇게 갈라진 길들은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었는데, 그 모든 길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한 곳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는 아주 작은 점들이 길 위에서 옴지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창가에 앉아서 졸았던 것 같지는 않고 지금도 그 순간이 또렷하게 생각이 나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어느 선배님은 저의 그런 경험을 유체이탈(OBEs :Out of body experiences)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표현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쨌든 왜 그때 그런 장면을 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길들을 가게 되는데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나지 않던가? 그리고 수없이 많은 길들이 있는데 내 앞의 사람이 간 길이라고 해서 내가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그리고 나서 첫째 아이의 홈스쿨링을 마음의 갈등 없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사역하던 목회지가 옮겨지면서 공동육아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첫째 아이는 10 살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들어간 초등학교 생활을 저희 아이는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지금은 아이 나이에 맞게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구요.


이제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하는 아니, 벌써 그 길에 들어서 있으면서, 오래 전 유체이탈의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의식의 수준에서 새로운 모험을 결심했다면, 지금은 감히 영적인 수준으로 통찰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경계에서 어정쩡하게 서성거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떠나야 하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찾아올 때면, 10년 전, 20년 전, 40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제 인생 가운데 펼쳐지는 온갖 모험을 지휘하셔서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꼬~옥 알맞는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믿음 가지고 나아가렵니다.
이 믿음 지킬 수 있게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 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시편62편5-6, 표준새번역)

8/27/2010

걷는 것도 감사해라



요즘 걷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공원에 가서 걷기도 하고 동네를 돌기도 합니다.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30분쯤 걷습니다.

그러면 땀이 흐르고, 숨도 가쁘고, 얼굴도 빨개집니다.
게다가 온몸에 땀띠까지 확 솟습니다.
2년 넘게 운동을 하지 않았던 까닭인 것 같습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돌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면 어떨까 했는데 걷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목표한 운동량을 채우려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단순해지는 시간입니다.

경기장 둘레를 5바퀴 도는 것이 목표입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꼬마들 풋볼 경기가 있는데 다른 평일에는 시합이 없기 때문에, 사람도 별로 없고 경기장 뒤쪽 길은 작은 숲이 옆에 있어서 어두워지면 혼자 걷는 것이 살짝, 아니 조금 많이 무섭습니다.-별로 쓸데 없는 겁이 많아서요. --;;

어떤 날, 조금 늦게 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2 바퀴쯤 돌았는데 금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가끔 뵙는 어느 나이 많으신 부부도 운동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어쩌나, 하고 있는데 몸집이 뚱뚱한 여성 한 분이 트랙에 들어섭니다.
잘 됐다, 하며 한 바퀴를 더 돌았는데 그 여성이 안 보입니다.
또 어쩌나, 하는데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아저씨가 개에게 앉아라, 기다려라… 하며 훈련을 시킵니다.
잘 됐다, 하며 4 바퀴째 돌았습니다.
그 아저씨도 보이지 않을 때쯤 어디선가 한국말로 말씀을 나누시는 아주머니 세 분이 나타나 안녕하세요, 합니다.
그래서 5바퀴를 채웠습니다.
호호호, 모두 고마워라!

나름대로 정한 운동량을 채우고 나면 작은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면 요즘은 구름만 가득할 때가 많고 완전히 어둠으로 덮이지 않아서 그런지 별도 잘 보이지 않으나, 짙어지는 어둠을 포함하여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가만히 느껴봅니다.
사실 잘 느껴지지 않지만 저의 느낌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겠지요.
호호호, 정말 고마우셔라.

그 동안 일상 속에서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은혜로 고백하려 애썼던 믿음이 요즘은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으면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더욱 든든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핑계- 지난 주에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잘 안 돼서 블로그에 들어와 보지도 못했습니다. 히히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박국 3:17-19)

8/13/2010

김치 맛이 깊어져 간다면

엄마께

안녕하세요?
한국은 많이 덥고 비도 많이 오는 것 같은데 가족들 모두 어떻게 지내세요?

조카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지 꽤 여러 날 되었네요.
엄마나 어머님이나 아이들 돌보느라 수고했다, 말씀해 주셨는데 아이들이 저한테 준 것도 많아요.
많이 웃게도 해주었고, 말도 많이 하게 해주었고, 김치도(!) 여러 번 담그게 해주었요.

한국에서는 어머님이 김치가 떨어지지 않게 담궈 주셔서 내가 김치를 해 볼 기회를 주시지 않았잖아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서는 왠지 김치는 직접 만들어 먹어야 될 것 같아 엄마한테 몇 번씩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랬구요.
하지만 두어 번 만든 김치가 도무지 맛이 없어서 찌개로 끓여 먹었어요.
그래서 김치 만들기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그 동안 식품점에서 파는 김치를 사다 먹거나 누군가 김치를 나눠주면 큰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아하며 맛있게 먹었어요.

그러다가 올 여름 조카들이 온다기에 직접 담근 김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김치 담그기에 다시 도전을 했어요.
먼저 조금 쉬운 겉절이를 했어요.
바로 이어 배추 2포기를 잘라서 담그는 김치를 해 보았어요.
그런데 김치 냄새가 이상한 거에요.
새우젓과 까나라리 액젓을 넣었는데, 그 중 까나리 액젓이 오래 되어 그런가 하고 새 액젓을 사서 다시 담궈보았어요.
그래도 김치 맛이 산뜻하지가 않았어요.
엄마한테 전화로 물어봤더니 여름 김치에는 새우젓을 넣지 않는다고 알려주셨잖아요.
양파도 넣고, 설탕도 조금 넣어보라고요.

엄마의 충고에 힘입어 큰 맘먹고 배추 1상자를 샀어요.
크고 작은 배추 9포기 가운데 상한 것을 다듬어 버리고, 완전히 상한 1포기도 버리고 5포기를 새우젓을 넣지 않고 만들었어요.
아이들 보고도 맛과 간을 보아달라고 했더니,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둥 익으면 맛이 있을 것 같다는 둥 하며 저한테 용기를 줬어요.

네 번째 담근 김치는 제법 향이나 색깔이 김치 같아서 밥상에 자신 있게 내놓았어요.
그런데 김치가 별로 인기가 없는 거에요.
아이들이 하는 말이 시골 할머니가 담궈 주신 아삭아삭한 김치가 먹고 싶다, 그러는 거에요.
이그그. --;;

그래서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얘들아, 남아 있는 배추로 다시 한번 만들어줄게.” *^^*

이번에는 새우젓도 넣지 않고, 까나리 액젓이 아니라 교회 권사님이 알려주신 어떤 액젓을 넣고, 양파와 설탕을 넣어 남아 있던 배추 3포기로 뚝딱 김치를 만들었어요.
두 달이 채 안 되는 동안 김치를 다섯 번째 해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는 거에요. ㅎㅎㅎ

제가 먹어본 바로는 김치 맛이 훨씬 나아졌어요.
가족 누구도 맛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요. *^^*

엄마, 나 시간 나면 김치 또 담글 거에요.
어쩌면 사다 먹을지도 모르구요.
어쨌든 내가 담근 김치 맛이 깊어져 간다면, 그건 미국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될 거에요.
엄마나 어머님처럼 맛난 김치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요.

엄마,
오늘 따라 엄마가 해준 마늘쫑 조림도 먹고 싶고, 고추장으로 양념한 시금치 무침도 먹고 싶고, 명절 뒤에 남은 음식을 모아 끓인 잡탕찌개도 먹고 싶네.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더 먹고 싶다.
나중에 한국 가면 많이 많이 먹어야지~.

가족 모두 건강하세요.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곧 서늘한 바람 불겠죠.

여러 모로 모자란 딸 올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8/06/2010

고마운 테니스 시간


강산이가 일주일에 한번씩 테니스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운동이라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고 얼떨결에 시작했습니다.
테니스를 시작한 지 10 주쯤 된 것 같은데, 테니스 하러 가는 날을 언제나 기다리고, 운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며, 공도 제법 그럴듯한 자세로 잘 칩니다.


강산이에게 테니스를 지도해 주시는 최코치님은 밀알선교단을 통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코치님의 귀한 레슨 시간을 나누어 장애우 10 여명을 위해 자원 봉사하시는 것입니다.
왠지 운동하시는 코치님들은 무서우실 것 같았는데, 첫 시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털털하게 대해주셔서 강산이만 봐도 얼마나 편안해 하는지 모릅니다.


또 아이들이 테니스 하는 동안 공을 주워 모으거나 레슨이 끝난 아이들과 잠깐 동안 테니스도 쳐주는 고등학생 자원 봉사자들도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학생들입니다.
코치님께 감사한 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학생 자원 봉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마음입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테니스 하는 날 그 시간이 되면 하늘에 구름이 많이 껴서 흐려지거나 비가 와서 운동을 못하기도 하고, 여러 명이 레슨 시간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짧게 할애되어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산이가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5:9-11)

7/23/2010

용기를 어디서 얻나


<하이 뮤지엄(High Museum of Arts)에서 찍은 사진>

아이들과 하이 뮤지엄에 갔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전시관은 전시품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어 공간이 여유로와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작품의 제목을 읽어보아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추상화(?)들 같았습니다.
그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ㄱㅇ 이가 하는 말이 “여기는 작가가 어두운 생각을 가진 사람 같아요” 합니다.
별 느낌이 없었는데 ㄱㅇ이는 그렇게 느낀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전시관을 들어갔는데 작가가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듯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반갑게도 성서의 내용을 배경으로 한 것들 이었거든요. ^^
아이들도 자기가 알 것 같은 작품들 앞에서는 “이건 아담과 하와야” 하며 아는 척을 합니다.



곳곳에 서 있는 직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작품을 사진 찍어도 되는 지 물어보았더니, 플래시를 끄고 찍는 것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어딘가에 써 먹자,며 사진도 여러 개 찍었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날, 제 블로그에 써 먹는 것이죠. ㅎㅎㅎ

처음에 올린 사진의 작품에 써 있는 구절을 찾아보니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시편34:7)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다윗의 모습을 그려 보며, 폴 틸리히의 “존재의 용기”라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절망과 고통 가운데도 함께 하시며 또한 그것들을 초월하시는 분이어서, 존재의 용기를 지탱하고 지지하는 기반은 무한한 인격적 존재이신 하나님 이시라는 짧은 이해를 해 봅니다.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어느 책에 실려 있는 용기(Courage)에 대한 명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Courage stands halfway between cowardice and rashness, one of which is a lack, the other an excess of courage.
용기는 비겁함과 무모함의 중간에 있다. 그 중 비겁함은 용기가 부족한 것이고, 무모함은 용기가 지나친 것이다. –플루타르크

He who loses wealth loses much; he who loses a friend loses more; but he who loses courage loses all.
부(富)를 잃은 자의 손실은 크다. 친구를 잃은 자의 손실은 더 크다. 그러나 용기를 잃은 자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세르반데스

Courage without conscience is a wild beast.
양심 없는 용기는 야수(野獸)와 같다.
–R.G. 잉거슬(미국 정치가)

어찌하다가 사진 속에 담긴 작품, 그 작품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성서의 말씀이 작품을 만든 이나 다윗 왕과 다른 시대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저에게도 힘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34: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