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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2021

삶과 죽음의 중간 지대에서 모든 삶이 시작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인플루엔셜, 2021.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아빠의 직장을 따라 인천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도롯가에 코스모스가 가득 핀 계절이었다. 한 계절이 지나 눈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햇볕이 따사로운 날, 뒤뜰에서 새로 사귄 옆집 언니 H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언니, 여기 교회는 어디에 있어?“

시내에 살 때 어느 교회에 다녔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동네 언니들의 손에 이끌려 성탄절에 곱게 단장하고 율동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신앙 추억이 없는데 왜 교회에 가려는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H는 자신이 다니던 감리교회를 알려주었다. 아이 걸음으로 30분 넘게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일곱 살의 나는 은근히 독립심이 강했나 보다. 감리교회를 찾아가 예배드리기 시작했고, 그곳이 나의 모교회로 마음에 남아있으며, 감리교 신학을 배우고, 감리교 목사를 만나 결혼하여 살고 있다. H 언니와 놀았던 그 장면은 마치 스노우 글로브(Snow Globe)에 담겨 있는 듯해서 꺼내 볼 때마다 따뜻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나이가 들어 이 기억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상상을 하나 추가했다. 동네에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나 친구의 언니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면 그 자매가 다니던 교회를 소개받았을 것이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성당이었다. 만일 성당의 위치를 먼저 알게 되었다면 난 수녀가 되었을까? 신부님을 흠모하며 마음앓이 했으려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밤 12,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열리는 신비로운 곳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 시드는 11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해고된 날에 키우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고, 단 한 명뿐인 피아노 레슨 수강생도 그만둔다. 노라는 도통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죽기에 딱 좋은 때, 라고 결정하고 유서를 남긴다.

그 순간 노라는 중학교 때 좋아했던 사서가 있는 자정의 도서관으로 이동한다. 거기서는 후회스러운 선택을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 삶이 진정으로 좋다면 그곳에 남을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실망감을 느끼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바꿔보고 싶은 또 다른 인생, 계속 진행 중인 미래를 여러 차례 살아본다. 양자물리학의 양자 중첩에 근거하여 여러 우주에 동시에 존재하는 삶들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이야기는 마치 한여름 스릴러 드라마나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하다. 나에겐 엄청 흥미로운 장르다.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볼 기회를 잡았다는 측면에서는 노라가 부러울 지경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펼치면 노라와 사서가 체스를 두는 장면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얼마 전에 시청한 미국 드라마 "퀸스 갬빗(Queen's Gambit, 2020)"에서 엘리자베스 하먼이 학교 지하실에서 체스 배우는 모습이 연상되어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한편, 삶을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이야기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을 다시 보고 싶게 했다.

오늘의 나는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선택의 결과물이다. 인생은 아쉽게도 다시 살아볼 기회가 없으니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싶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나 위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끄는 대로 다녀보고 그들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

이왕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얘기를 나누는 판이니···, 목사의 아내가 아니라 초등학교 교사, 신발디자이너, 식물원관리자, 탐정소설가 등등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공상만으로도 웃음이 실실 삐져나온다.

! 수요예배에 갈 시간이다.

 

*이 글은 모바일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2/09/2015

묻어 둔 숙제




조각 하나.

지역 도서관에 자유롭게 수다 떠는(free talking) 반이 있어서 다닌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오후라 그런지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여서 각각의 그룹을 이끌어 가는 자원봉사자들이 더 많았다. 60대 초반의 백인 부부와 한 그룹이 되었다. 또 다른 참여자가 있기도 했는데 오다가 말다가 하여 내가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 좋았다.

대화 상대였던 백인 부부는 아주 꼼꼼해서 틀린 발음들을 잘 고쳐주었다. 특히 아내인 캐시 아줌마는 질문을 하면 간단히 답을 하지 않고 더 많이 가르쳐주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퀼트를 조금 해 본 적이 있고 관심이 있다고 했다. 캐시 아줌마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퀼트 모임이 있는데 언제든지 와 보라고 했다. 모임 시간과 교회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교회는 내가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규모가 큰 장로교회였다. 퀼트도 배우고 영어도 더 얻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퀼트 모임도 평일 오후 시간이었다. 퀼트 하는 방에 이르자 곧 캐시 아줌마가 도착을 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로부터 젊은 새댁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책상을 앞에 두고 넓고 크게 둘러 앉아 내 소개를 했다. 회원 몇 명이 그 즈음에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작품들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서너 명씩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소곤거릴뿐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캐시 아줌마는 그 모임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을 사진 찍어 모아 놓은 자료집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크기나 만드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했다. 완성된 것은 부모 없는 아이들, 환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부목사 등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된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모임에서는 완성된 퀼트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를 정하면 각자가 블록(조각 천을 붙여 만든 하나의 단위)들을 만들어오고, 누군가 그 블록들을 연결하고, 솜을 넣어 누비고……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퀼트를 잘 하는 사람들이고, 모임 시간에 퀼트의 오밀조밀한 방법들을 배우기는 어려워 보였다.

조각 둘.

한 주가 지나 다시 캐시 아줌마와 그 남편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캐시 아줌마의 남편과의 대화가 자꾸 막혔다. 시작은 exercise라는 단어였다. 나는 연습문제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중학교 때부터 영어책에서 수도 없이 봐온 단어이기에). 그랬더니 아저씨는 그 단어의 뜻은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운동도 맞고 연습문제도 맞다고 했더니 어이없어 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온 사람이 아는 체하는 꼴이 된 것이다. 또 무슨 얘기 끝에 Systematic Theology(조직신학)라는 단어를 말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그런 단어도 있냐며 설명해보라고 했다. 이걸 영어로 설명하다니, 얼마나 버벅거렸는지…… 그리고 퀼트 모임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결국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비록 영어도, 퀼트도 서툴지만 아저씨가 나에게 뾰족하게 구는 태도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난 다음 날부터 그 동안 퀼트 하면서 남아있던 자투리 천들을 모두 꺼내, 캐시 아줌마네 교회 퀼트 모임에서 최근에 진행중인 블록과 같은 모양으로 커다란 이불을 만들기 시작했다. 캐시 아줌마의 친절함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이불 만드는 것을 알고는 이불 뒷감으로 쓸 수 있는, 앞면과 잘 어울릴만한 커다란 천을 주기도 하였다. 솜을 살 때는 퀼팅 도구들을 파는 가게 Joann에도 같이 가 주었다. 캐시 아줌마는 이불 앞면이 완성되는 것까지만 보았다.

5개월에 걸쳐 나의 퀼트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불이 하나 만들어졌다. 천 조각 하나 하나마다 사연이 묻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처럼 저마다 다른 천들의 고유한 재질과 무늬들을 보고 있자면, 그 다양성에 놀랍기도 하고 뭔가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한다. 조각들이 이어져 쓸모 있는 무엇이 된 것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불을 만드는 동안 곱고 예쁜 조각천들 덕분에 캐시 아줌마 남편의 뾰로통한 인상도 많이 희미해졌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건 커다란 이불 하나를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이것은 큰 아들에게 먼저 주기로 했다.






조각 셋, .

작은 아이는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왕 천들을 손에 잡은 김에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작은 아이가 대학 가서도 엄마와 가족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자는 동기를 팍팍 부여하고 시작했다. 새로운 모양의 블록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가는 일이 코앞에 닥친 일도 아니고 다른 관심사가 생기는 바람에 그만둔 지 2년이 넘었다.

남편이 한국에 갔을 때 친구가 가진 천으로 만든 가방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 친구의 아내는 퀼트를 아주 잘 하는 이여서 자기 남편의 가방을 손수 만들어 준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와도 잘 아는 남편은 자기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했다. 그 아내는 내 남편의 빠듯한 출국 일정에 맞추어 엄청 멋진 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남편은 이 가방만 들고 다닌다. 작은 아이는 아빠의 퀼트 가방을 이른바 명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관심과 사랑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기 때문이란다.

이젠 묻어둔 숙제를 꺼낼 때가 되었다. 작은 아이가 대학갈 날이 몇 개월 후면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자기 이불은 언제 만들거냐고 숙제를 자꾸 상기시킨다. 집을 떠나면서 엄마의 애정 어린 기도와 손길이 담긴 물건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아이의 갸륵한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서둘러야겠다.

6/17/2011

도서관에서 발견하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시작한 지 두 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널널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가진 아이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지, 어딜 같이 가자고 하면 기꺼이 따라 나서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공공 도서관에 멤버십 카드도 만들 겸, 아이들이 볼만한 책도 빌려보려고 도서관에 가자고 했더니 군말 없이 따라 나섭니다.

미국에는 카운티마다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무료로 발급하는 멤버십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한 카운티 안에 여러 개의 도서관이 있어서 어디서든 책을 빌려 볼 수 있고, 반납도 어느 지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카운티에는 다운타운에 있는 메인(main) 도서관과 10개의 지점 도서관이 있습니다.
빌려보고 싶은 책이 자주 가는 도서관에 없어서 신청해 놓으면 찾아서 연락해 주기도 합니다.
도서관마다 특별한 이벤트나 프로그램들(책을 읽어준다든지, 작가를 초청하기도 하고, 영화 상영도 하고…)이 있는데 참여해 본 적은 없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그 풍경이 전에 살던 곳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시원하고,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고, 말소리가 크지는 않으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도 비슷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도서관 운영 시간입니다.
전에 살던 곳은 경제적인 이유로 운영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이곳은 월요일~목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고, 주말에도 더 긴 시간 도서관을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간단한 절차에 따라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이곳 저곳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네 사람이 모두 멈춰선 곳은 DVD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첫째 아이와 남편은 벌써 몇 개를 골라 놓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남편이 눈짓하는 DVD를 보니, 오래 전에 감동적으로 보았던 책이 영화(1997년) 로 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보기에 좋은 내용이고, 그 책이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졌나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는 마음이 보태져, 도서관에 방문한 보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를 한국어로 번역한 두 권의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작은 나무야 작은 나무야』는 신기하게도  두 권 모두 좋은 사람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고, 그 내용 또한 유익하고 감동적이어서 지금도 가까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 포리스터 카터(Forrest Carter)의 자전적인 소설로, 1976년 처음 출판 되었을 때는 얼마 안 가 절판되었지만 1991년에는 무려 17주 동안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2위로 기록되면서 ABBY(American Booksellers Book of the Year) 상을 받습니다.
그 당시 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서가에 꽂혀 있을 새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내용은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타고난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다섯 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그의 할아버지, 체로키 순수 혈통인 할머니와 산속에서 같이 살면서 겪는 1930년대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사는 숲은 테네시주의 스모키 마운틴입니다.
한국에서 책으로 읽었을 때는 그 배경이 어느 산인지 기억도 못했는데, 이번에 영화로 보면서는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 스모키 마운틴이 배경이라는 걸 알고 더 몰입해서 보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교육, 미국 인디언들과 관련된 미국 역사,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 하나 하나에서 배어 나오는 지혜가 제게는 반짝이는 소중한 보석과도 같이 여겨집니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글을 짧게 옮겨봅니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얼마 전 상영된 애니메이션 “아바타”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책 내용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들이 영화에도 거의 잘 담겨 있는데, 할아버지가 독사인 방울뱀에게 물렸을 때에 벌어진 일들, 주인공 작은 나무가 정부 법에 따라 고아원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겪는 일들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그렇듯이 책에서 얻는 감동이 훨씬 풍부합니다.
요즘 생활이 갑갑하고 팍팍하게 여겨지신다면 책이든 영화든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책 제목처럼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도서관 갔다 오길 잘 한 것 같습니다.
빌려온 DVD 반납하러 도서관 가는 길에 또 다른 기대가 생길 것 같습니다.
거기엔 또 어떤 DVD가 있을까 하는…. ^^
책도 빌려 봐야 하는데…. --;;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편 25편 4-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