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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2026

그녀를 지키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지켜준다는 의미는 그 존재가 오늘에 존재하도록 삶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이다. 그것을 사랑 혹은 우정이라고도 부른다. 소설 『그녀를 지키다 』는 1900년대부터 1940년대의 이탈리아가 주된 배경이다. 주인공 미모와 비올라는 당시 관습과 계급의 수많은 심연을 건너며 그들의 우정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를 지키다 』는 두 개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글을 전개한다. 한 부분은 3인칭 시점이다. 죽음을 앞둔 82세 미모와 그가 마지막으로 조각한 피에타상(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으로 인한 이상한 현상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다른 대부분은 1인칭 시점이다. 나이든 미모가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펼친다.

우리는 인생에서 실패하고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미모와 비올라 역시 그런 경험에서 비껴가지 않는다. 미모는 연골 형성 저하증을 갖고 프랑스에서 태어난다. 가난한 조각가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미모는12세에 홀로 그의 부모님의 나라 이탈리아로 보내진다. 공방에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암흑 같은 시기를 보내기도 한다.

비올라는 귀족 가문의 딸로, 똑똑하고 미래지향적인 꿈을 꾸는 여성이다. 비올라는 어릴 적부터 하늘을 날고 싶어했고, 대학에 가길 원했고, 이탈리아 파시즘 시대가 지나가자 제헌 의회 선거에 출마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문의 이익 때문에 비올라는 인생을 맘껏 펼치지 못한다.

반면에 미모의 재능은 낭중지추 같아서 조각하는 것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미모에게는 원석 안에 있는 형체를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 미모에게 조각은 그 형체를 풀어주기 위한 작업이다. 그에겐 현대적인 감각도 있어서 시대의 요구에 맞는 조각을 찾아낸다.

비올라는 이런 미모와 친구인 것을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는 오빠 프란체스코 신부에게 알린다. 그 후로 미모는 그의 공방도 갖게 되고 주교나 추기경, 정부 인사의 주문도 받는다.  미모는 오르시니 가문이 후원하는 조각가가 되어 가치가 한껏 높아진 작품들을 만들고 명성을 날린다.

오르시니 가문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는 미모의 욕망은 한껏 채워진다. 미모는 부요하게 되고 생활은 안정된다. 그러자 조각가로서 원석 안의 형체를 보는 능력은 사라진다. 이 능력은 미모의 삶의 절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이후에 되찾는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가 극적으로 전환할 때 자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중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다. 소설 초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르시니 가문의 저택 지붕에서 조각상 하나가 떨어진다. 미모는 그 조각상을 복원하러 갔다가 30년 우정을 쌓게 될 비올라를 대면한다.

소설 종반에서는 성당 지붕에 균열이 생기는 바람에 돌덩이 하나가 떨어져 나와 성당 마당에 있는 피에타상을 산산조각 낸다. 이 균열은 어떤 자연 현상의 전조이다. 미모는 새로운 피에타상을 조각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 즈음 비올라는 의원 선거에 출마하는데 고장을 통과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다. 그러자 권력에 붙어 경제적 이익을 보려는 자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미모는 비올라를 살리기 위해 선거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비올라는 포기하지 않는다. 미모는 비올라를 떠나고, 다시 한번 자연의 어떤 불협화음은 두 사람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미모는 비올라에게서 영감을 받아 피에타상을 조각하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관람자들에게 이상한 감정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사크라 수도원에 유폐된다. 피에타상에는 어떤 비밀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미모가 그녀를 기억하고 지키는 길이었다. 그리고 미모는 피에타상과 함께 수도원에서 그의 남은 생애 40년을 보낸다.

『그녀를 지키다 』를 다시 훑어보면서, 뉴올리언스 식물원에서 본 청동 조각상이 떠올랐다. 곧게 서서 한 손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젖을 먹이는 단호한 얼굴을 가진 엄마 조각상이다. 엄마의 다른 손은 몸 뒤로 뻗고 있다. 조각상의 뒤로 돌아가면 뜻밖의 장면과 맞닥뜨린다. 엄마는 장총을 붙들고 있다. 이 조각상은 엔리케 알페레스(1901-1999) 작가가 젊은 시절에 경험한 멕시코 혁명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미모의 피에타와 알페레즈의 엄마 조각상은 역사에서 고통받는 이가 누구인지 기억나게 하고 그들의 존재 가치를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12/2025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가치를 숫자로 측정하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책 제목은 삶의 흐름에서 잠시 멈추어 돌아보라고 채근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의 원제는 서비스베리(The Serviceberry). 서비스베리라는 이름도 처음 보았거니와 번역한 제목과 사뭇 달라 책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저자 로빈 윌 키머러에 대한 소개도 눈길을 끌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엄마라는 단어. 남성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닌 관계를 나타내는 어휘다. 뒤이어 아메리카 선주민 출신 생태학자라고 소개한다.

키머러는 시티즌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일원인데, 그들은 서비스베리를 베리 중에 최고로 취급한다. 키머러는 그 맛을 이렇게 알려준다. “블루베리님 맛이 나는 열매에 사과님의 묵직한 크기, 은은한 장미 향, 오도독 씹히는 작은 아몬드 맛 씨앗을 두루 갖춘 열매.” 달콤하고 낭만적인 맛일 것 같다. 사실 키머러는 서비스베리의 맛을 알려주려는 것보다 서비스베리가 담고 있는 의미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서비스베리는 포타와토미어로 보자크민이라고 부른다. 그 단어에는 ‘선물’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서비스베리는 대지에게서 받은 선물로, 그것을 먹고 나누는 새나 인간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이룬다. 키머러는 이러한 선물 경제의 화폐는 관계라고 말한다.

선물 경제는 감사와 나눔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의 이웃, 샌디는 글라디올러스 줄기 조림병, 호박, 붉은감자를 ‘공짜’라는 팻말과 함께 앞뜰 탁자에 내놓는다. 또 다른 앞뜰에서는 자신이 필요한 양보다 많이 갖고 있는 살림살이를 나눈다. 공짜 나눔을 하는 키머러의 이웃들은 여전히 시장 경제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선물 경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키머러는 상호부조, 지역 선물 경제, 돈이 오가지 않는 품앗이, 협동 농장, P2P 대출 등은 풍요와 나눔의 기쁨을 토대로 한 부의 재분배 체계라고 생각한다.

키머러는 선물 경제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나눔의 규모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경제가 여전히 작동하지만 선물 경제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쟁보다 협력을, 쌓아두기보다 나누기를,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인 경제를 이루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공공도서관이 있다. 키머러는 공공도서관의 개념과 실천을 숭배한다. 공공도서관은 도시 규모에서 실천되며 공동 소유 개념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원, 산책로, 그리고 문화 경관 등도 공공도서관처럼 소중한 공유 자원이다.

오래전부터 키머러는 더 기뻐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믿고 있다. 나의 이웃들도 텃밭이나 뜰에서 거둔 선물을 기쁨으로 나눈다. 꿀, 깻잎, 고추, 대추나 오디도 있다. 비록 작은 텃밭에서 거둔 열매지만 흥미롭게도 자연은 여럿이 나눌 만큼 넉넉하게 내어준다. 가게에서 산 배추나 무라도 필요 이상의 것은 기꺼이 나누곤 한다.

키머러의 서비스베리를 읽고 나니 나의 이웃 J의 멀베리(오디) 얘기도 하고 싶다. 가지마다 오디가 주렁주렁 열리면 J는 그것을 따 가라고 알려준다. 오디를 따는 일은 즐겁다. 통통하게 영근 오디를 따 먹으면 오디의 달콤한 즙이 입속에서 부드럽게 터진다. 한 알씩 먹기도 하고 여러 알을 모아 한 번에 털어 넣기도 한다. 입이 온통 자줏빛으로 물든다. 건강한 오디를 먹어 즐겁고 공짜라 더 즐겁다.

오디를 어느 정도 따다가 그만두려고 하면 J는 바람이라도 불면 다 떨어지고 만다며 어서 더 따라고 고운 소리를 한다. 멀리서 새들이 우리를 지켜본다. 새들도 우리와 오디를 나누는데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뽕나무의 높은 데 달린 오디는 그들의 몫이니까. J가 나눠준 오디를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어서 일부를 얼려두었다. 멀리서 사는 둘째 아들에게도 얼린 오디를 나눠주었다.

아들은 멀베리(그는 멀베리라고 부르는 것이 편한가 보다)를 받고 얼마 뒤, 그의 친구들과 블루베리를 따러 농장에 갔다. 더웠을 텐데, 열린 하늘을 보며 땅을 딛고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찾아내다니 아들이 제법이다. 아들은 친구와 함께 블루베리와 멀베리로 잼을 만들었다. 나는 아들이 만든 베리베리 잼을 사진으로만 맛보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아들이 그의 이웃들에게 잼을 선물하며 누렸을 기쁨을 생각하니 아쉬움보다 흐뭇함이 컸다. 풍요로운 삶의 비밀을 엿보는 것 같았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