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2011

인사



한국에서 미국올 때 이삿짐을 담고 온 상자들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남겨두었었는데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아틀란타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사용하던 인터넷 서비스도 내일이면 중단되고(1 개월 사용기간을 맞추려다 보니... ^^)  언제 다시 연결될지 몰라 블로그를 통해 인사드리려고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심을 전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웠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사랑인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곧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2/18/2011

청소

<"빛과 소금" (두란노, 2002년)에 실렸던 사진입니다.>


6학년 때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조금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접이식 의자를 펼쳐 놓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아직 의자가 접혀진 채였습니다.
의자를 펴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소심한 저는 내가 해도 되나,를 잠깐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의자를 하나하나 펼쳐서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예배 시간 전에 의자를 펼쳐 놓는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중등부에 들어가서는 토요일 오후에 지하실에서 방석을 깔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빗자루로 먼지를 먼저 쓸어내고 걸레질을 한 다음, 방석을 깔아놓으면 되었습니다.
예배와 2부 활동이 끝난 다음에는 방석을 걷어내고, 다시 쓸고 닦아서 다음 날 있을 어린이 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해놓았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에는 어린 아이가 매주 예배 시간 앞뒤로 청소를 하면 누군가 칭찬을 해줄 법도 한데, 이 일로 칭찬을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교회 어른들에게 사랑을 엄청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하면 자기 자랑이 될까요? ^^)
무슨 마음으로 청소를 했는지 어릴 적 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긴 시간이 지나버려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신학생이 되어 저의 모교회(母敎會)를 떠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신학생이 되고 나서는 신앙생활 하면서 누리는 자연스러운 기쁨이 많이 사라졌었습니다.
자발적인 신앙생활에서 누리는 편안함 보다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나 전도사가 되어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는 청소할 기회가 생겨도 전처럼 기꺼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사역에 대한 책임은 아무래도 목사에게 있으니 남편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돌보아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청소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교회 청소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할 때는 이유가 없어도 기꺼이 하던 일인데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이유가 많아집니다.
남편이 더 부지런히 잘 하니까 굳이 안 나서도 되고, 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하라고 시키면 그것이 싫어서 안하고, 임신해서 입덧이 심해서 못하고, 추워서 더워서 못 하겠고, 그냥 하기 싫으니까 안 하고….

교회 청소는 교인들 수가 많든 적든 하는 사람만 하는 것 같습니다.
또 뭐, 교인이라고 해서 꼭 교회 청소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기쁘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교회를 건축하고 나서, 몸이 불편한데도 교회 청소만큼은 빠지지 않는 권사님을 보면서,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여 교회 청소 시간에 달려오는 권사님을 보면서, 내 집같이 꼼꼼하게 교회를 살피는 아빠와 엄마를 보면서, 화장실 청소를 맡아 하는 집사님들을 보면서, 교회 청소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 저희 아이들을 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청소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말끔해진 예배당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집을 돌보고 이렇게 주일을 준비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우시나 봅니다.

남편과 저희 가족은 새로운 목회지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감당할 사역 위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과의 교제를 기대하며 저희 영혼의 그릇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합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셀라)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주 만군의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야곱의 하나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셀라)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 하나님은 태양과 방패이시기에,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새번역 / 시편 84편)

2/11/2011

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


첫 목회를 시작했던 강화 성은교회입니다.
남편의 고향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뒤로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들판이 있는 확 트인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좋은 쌀, 감과 밤이 많이 나고, 강화에서도 제법 큰 저수지가 가까이에 있는 경치 좋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 이름이 남편 이름과 같아서, 남편이 개척한 교회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호호호.
아무리 교회를 개척한다고 해도 자기 이름으로 교회 이름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재미난 질문을 하시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면 아니오,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자기도 이 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그곳에 살 때도 오고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은 때였으니, 남편이 어렸을 적에는 어지간한(?) 거리는 거의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한편, 남편은 모태 신앙으로, 어머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목회자로 키우기로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는 꿈만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던 어린 남편이 성은교회 앞을 지나 걸어갈 때면, 자기 이름이랑 같으니까 이 다음에 커서 이 교회에 와서 목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답니다.
“예사롭지 않은 끌림이 있었지” 라고 남편은 말합니다.


첫 목회지 성은교회는 신학교를 졸업했다고는 하나 나이도 어리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은 젊은 목회자를 목회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도록 키워준 부모님 같은 교회였습니다.
하나씩 배워나가는 목회가 서툴고 어설퍼도 교우들은 예쁘게만 봐주셨습니다.
그나마 교육 전도사를 하다가 목회를 나온 터라, 교회학교를 섬기는 일은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로 동네 아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이 재미있어 했던 것 같습니다.

아! 남편이 목회자로서 듬직해 보이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기억났습니다. ^^
농촌이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고, 그래서 초상을 치르는 일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저는 배운 기억이 없는데, 남편은 어디서 배웠는지 임종예배서부터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의젓하게 인도합니다.
그 모습은 언제 보아도 목회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성은교회를 섬기는 동안 저희 가족이 가족으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목회를 나가고 서너 달 지나서 결혼을 급하게 하게 되었고, 첫 아이를 낳은 곳이고, 목사 안수도 받았고, 둘째 아이를 태중에 갖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같은 장로님들과 어머니 같은 권사님들의 사랑을 저희 가족이 듬뿍 받으며 목회를 하다가 사임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다 싸고 교회 앞에서 장로님과 몇 분 교우들과 마지막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첫 사랑을 나눈 교회이고, 저희 가족을, 특별히 장애아인 첫째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함께 키워주신 교우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죄송스러워 꺼이꺼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교우들과 연락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마음에 없어서가 아니라, 맡았던 교회에 온 후임자를 위한 배려이고 새로 담임하게 된 교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담임했던 교회의 교우들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지속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일 어르신 장로님께서 큰 아이는 잘 있냐,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말이 별로 없으시고 살짝 까다로우신 장로님이셨기에 그저 안부를 묻는 전화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로 어~쩌다가 한번씩 전화를 해서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오셨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팔순 잔치에도 초청해주셨습니다.
“장로님, 안 그런 척 하셔도, 이제는 전화 연락이 안 되어도 장로님의 그 따뜻한 마음, 저희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어요. 건강하게 지내시는 지….”

성은교회에서의 첫 목회를 시작하여 올해로 목회도, 결혼도 2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선 채로 몇 개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교회에서 전문적인 사역자로서 열심히 감당하는 것이 남편의 소명이고 또한 제 소명이기도 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지난 2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목회 현장 가운데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첫 목회에서 가졌던 열정과 순수함에, 하나님을 경험한 삶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좀 더 깊어진 사랑을 더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를 정성껏, 천천히, 신나게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베드로전서5장1절-4절)

2/04/2011

나루터에서




가까운 호수에 나가 보았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좋은 곳입니다.
호수 곳곳에 있는 나루터에는 날씨가 아직은 춥고 궂어서 그런지 크고 작은 배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언제고 배 주인이 와서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빌려주는 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젠가 화창한 날 배를 타고 호수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새번역 / 호세아 6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