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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2023

징검다리

 



앨라배마주에 있는 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정식 교과과정으로 채택하고 학점을 주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데 이바지한 단체가 있는데, 바로 에이킵(A-KEEP: Alabama-Korea Education and Economic Partnership)이다. 에이킵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공립학교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에이킵과 다른 일로 관계를 맺었는데 어느 날, 에이킵의 한 대표님은 내가 지난날 한국학교에서 가르친 경험과 책 한 권을 쓴 걸 경력으로 인정하셨는지 한국어 교사를 제안하셨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라 영어 실력이 어눌해서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대표님은 한국어를 90%, 영어를 10%만 사용하는 것이 한국어 교실 규칙이라며 잘 할 수 있다고 마구 격려해주셨다. 언젠가 이민 1.5세나 2세 한인 학생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에서 미국 학생 한 명을 같이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영어를 더 잘하면 좋겠다 싶었던 아쉬운 기억이 떠올라 그 규칙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색다른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대표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몽고메리에 있는 한 매그넛 중학교 방과후 클럽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매그넛 학교는 학업의 질을 높이고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뽑는다. 그리고 클럽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니, 이런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맡은 학생들을 가늠해보자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아이들이다. 실제로도 지난 학기에 그들은 수업에 집중했고 대체로 성실하게 출석했다.

지난 가을,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한국어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알아야 했다(에이킵은 현재 한국어 표준 교과과정을 만드는 중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그중 몇 명은 초등학교나 여름 캠프에서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었고,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대부분은 한국 문화와 언어에 관한 관심이었다. 더 나아가 나이가 들어 한국으로 이사하고 싶다, 한국인 친구와 대화하고 싶다, 한국으로 유학 가고 싶다, 는 눈에 띄는 이유도 있었다. 

케이푸드(K-Food)를 못 먹어본 아이들이 많았지만, 한국에 가면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응답이 꽤 있었다. 케이팝(K-Pop)이나 케이드라마(K-Drama)를 듣거나 시청한 아이들은 거의 다였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블랙 핑크의 노래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적은 것을 보고 아이들이 나보다 최근 유행하는 한국 노래나 드라마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서울(서울 타워, 명동), 제주도, 부산을 언급한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는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를 시청한 적은 있으나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기준으로 삼아 가르치고 있다.

올 봄학기 첫 수업 시간, 몇 년 동안 비닐에 싸여 옷장에 고이 걸려 있던 내 한복을 꺼냈다. 몇 안 되는 남자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들의 생활한복을 챙겼다. 아이들에게 설날을 소개하기 위한 준비물 중 하나였다. 떡국이나 연날리기는 사진으로 보여주더라도 세배할 때 입는 한복을 직접 입어보면 설날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복'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뿐 아니라 모두가 한복을 입어보길 원했고 한복 입은 모습을 서로 사진 찍어주며 즐거워했다. 지난 학기에는 추석 명절이 끼어 있어서 제기차기, 투호, 강강술래 놋다리밟기를 체험하도록 도왔다. 한국 음식을 소개하면서는 떡볶이와 김치를 가져가 직접 맛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매워요'라는 맛 표현을 확실히 익히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수업의 모든 내용을 한국어로만 하다가 클럽은 흥미로워야 할 것 같아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이 한국어 배운 것을 쉽게 잊어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어려움을 잘 알기에 그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아이들이 서툴더라도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면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에 놀라고 한편으로는 흐뭇하기 그지없다. 


이 중학교에서는 한국어 정규과정이 새학년을 시작하는 올 가을학기에 열릴 수도 있다. 아이들이 정규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그들을 위해 징검다리를 놓아주려 한다. 내가 마련한 징검다리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딛고 지나가면 좋겠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24/2022

한국 조각보 전시회






난 요즘 지금껏 잘 하지 않던 일을 덥석덥석 저지르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파티 비슷한 사전 행사에 참여하기, 누가 함께 가자고 하지도 않은 워크숍에 등록하기, 지역 중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기...

지난달, 몽고메리 프로 야구팀이 에이킵(A-Keep: Alabama-Korean Education and Economic Partnership)을 후원하는 행사에서 강산이가 멋있게 시구를 던졌다. 그것이 에이킵 홈페이지에 업로드되었다. 그 내용이 궁금하여 에이킵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9월 행사 소개란에 있는 'International Quilts Exhibition(국제 퀼트 전시회)'가 눈에 들어왔다. 퀼트를 자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관심 있는 분야였기에 전시회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냉큼 생겼다. 게다가 국제 퀼트라고 하니 다양한 나라의 퀼트를 비교하여 볼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행사 내용을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그 전시회는 한국 조각보가 주인공이었다. 이곳에서 한국 전통 퀼트를 보게 될 줄이야기대가 가득한 마음으로 전시회 일정을 달력에 정성스레 적어두었다. 전시회가 시작하는 첫날 이른 시간에 방문하여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고, 며칠 뒤에 있는 조각보 워크숍(Jogakbo(Korean Patchwork) Workshop)에도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즈음 한국어 가르치는 일로 에이킵 사무실에 들렀는데 한미순 대표님은 사전 오프닝에 가족과 함께 오라며 초대해주셨다. 사전 오프닝에서는 작품들을 조용히 음미하기보다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시간이 될듯하여 몇 초를 망설였지만, 곧 대표님께 초대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사전 오프닝 예약자 명단에 등록도 하고 워크숍에도 등록했다.

조각보 전시장은 다운타운에 있는 무역센터(Alabama Commerce Center)였. 사전 행사는 전시장 주변 직장인들이 퇴근했을 법한 시간에 시작되었다. 직장인들이 빠져나간 한적한 거리와 가로수에서 떨어진 도토리는 가을 분위기를 돋우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가면 전시장이겠지. 곧 천정이 높은 공간에 눈에 익은 색들을 조합한 조각보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그냥 반가웠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우리가 사는 미국 남부 작가의 퀼트도 몇 작품도 보였다. 그래서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어가 전시회 이름에 사용되었나 보다,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강산이 직업훈련 과정을 도와주는 미스 던(Alabama Department of Rehabilitation Services, Counselor)과 만났다. 미스 던은 한국의 오방색을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어느 조각보 작가에게서 설명을 들었단다. 그런데 잠깐. 남쪽이 빨간색이라고? 남편과 나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태극기에서도 남쪽은 파란색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미스 던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다른 작가 한 분이 오방색에서는 빨간색이 남쪽을 상징한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스 던 앞에서 부끄럽게 웃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몇 장 남기는 사이에 대표님의 인사 말씀과 작가들 소개가 이어지고 몽고메리 야구팀이 에이킵을 위해 모은 기금을 전달했다. 이어 에이킵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한국 음식으로 잘 알려진 불고기, 김치, 김밥, , 잡채와 수정과를 맛있게 먹었다. 우와! 그 음식을 만든 주방장이 누구였는지 무척 궁금했다. 나중에, 특별한 자격증을 가진 미국인 요리사의 솜씨였다는 걸 알고는 한 번 더 감탄했다.

며칠 뒤 조각보 워크숍도 편안하고 좋았다. 워크숍은 넓은 공원 안에 자리한 몽고메리 순수예술 박물관(MMFA: Montgomery Museum of Fine Art)에서 열렸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등록하여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였다. 나와 강산이도 대기자에 들어 있어서 조금 기다리다가 자리가 허락되었다. 다기보를 만드는 워크숍이었다. 간단한 홈질을 하고 줄을 꿰어 잡아당기면 완성되도록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다기보는 두 가지 색의 한복 천을 조합한 것으로 각각의 다기보 색감은 왜 그리 고운지 다 예쁘게 보였다.

사전 오프닝이나 워크숍 모두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를 많이 했나 보다. 한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 자신이 모처럼 맘에 들었다.

8/08/2022

시구(始球)

 



지난해 가을쯤인가··· 한인 커뮤니티 단톡방에서 메디케이드 웨이버(Medicaid Waiver) 세미나가 줌에서 열린다는 알림을 보았다. 메디케이드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장애인에게 주는 의료 프로그램으로 큰아들 산이가 사용하고 있다. 어란(AURAN: Auburn University Regional Autism Network)에서 주최하고 에이킵(AKEEP: Alabama-Korea Education & Economic Partnership)에서 한국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포스터였다.

이런 알림은 그동안 수도 없이 지나갔는데 문득(!) 그 세미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한 '문득'의 순간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고백 밖에 다른 할 말이 없다. 그 세미나를 통해 메디케이드에 대한 정보가 뿐만 아니라 아주 친절하고 실력 있는 에이킵의 직원, I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I는 우리에게 에이킵과 지역사회에서 열리는 여러 이벤트를 안내하고 산이와 나는 I의 제안에 대해 대부분 적극적으로 응답한다.

지난주에는 몽고메리 야구팀 비스킷(Biscuits)이 홈구장에서 경기하는 날에 열리는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Korean Heritage Night)에 초대받았다.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은 에이킵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는 세 번을 계획했다고 한다. 에이킵은 이 행사에 에이시디디(ACDD: Alabama Council on Developmental Disabilities)와 장애인들을 초청하여 그 범위를 확장하였고 덕분에 우리도 초대해주었다. 나는 행사 시간이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과 겹쳐서 아쉽게도 산이만 보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은 지역 사람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더불어 비영리단체인 에이킵을 유지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린다. 올해는 애국가 제창, 스타토크(Startalk: 에이킵의 여름 캠프) 학생들의 케이팝 춤, 에이킵 소개 영상을 공연했다고 한다. 한편, 풀무원에서 준비한 음식, 티셔츠나 티켓 판매, 경매를 통해서는 기금을 모은다. 한인 지역사회에서도 이 행사에 참여해서 몽고메리에 한국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알리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몽고메리 홈팀의 경기도 관람하고 응원도 하면서 말이다.

산이에게는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에서 시구(始球)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공 던지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서 산이에게 유튜브에서 투수의 자세를 찾아보라고 알려주었다. 어정쩡한 처음 모습과는 달리 그 다음번에는 한 다리를 뻣뻣하게 번쩍 들어 올렸다 내리며 공을 던졌다. 우습기도 하면서 그걸 따라 해보는 산이가 기특했다. I는 산이가 시구하는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주었다. 정작 경기장에서 산이는 다리를 들어 올리지도 않았고 공도 냅다 던지는 모습이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그래도 경기장 한가운데서 프로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는 멋진 경험이라니! 그 경험을 산이와 우리 가족에게 선사한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