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2022

시구(始球)

 



지난해 가을쯤인가··· 한인 커뮤니티 단톡방에서 메디케이드 웨이버(Medicaid Waiver) 세미나가 줌에서 열린다는 알림을 보았다. 메디케이드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장애인에게 주는 의료 프로그램으로 큰아들 산이가 사용하고 있다. 어란(AURAN: Auburn University Regional Autism Network)에서 주최하고 에이킵(AKEEP: Alabama-Korea Education & Economic Partnership)에서 한국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포스터였다.

이런 알림은 그동안 수도 없이 지나갔는데 문득(!) 그 세미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한 '문득'의 순간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고백 밖에 다른 할 말이 없다. 그 세미나를 통해 메디케이드에 대한 정보가 뿐만 아니라 아주 친절하고 실력 있는 에이킵의 직원, I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I는 우리에게 에이킵과 지역사회에서 열리는 여러 이벤트를 안내하고 산이와 나는 I의 제안에 대해 대부분 적극적으로 응답한다.

지난주에는 몽고메리 야구팀 비스킷(Biscuits)이 홈구장에서 경기하는 날에 열리는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Korean Heritage Night)에 초대받았다.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은 에이킵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는 세 번을 계획했다고 한다. 에이킵은 이 행사에 에이시디디(ACDD: Alabama Council on Developmental Disabilities)와 장애인들을 초청하여 그 범위를 확장하였고 덕분에 우리도 초대해주었다. 나는 행사 시간이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과 겹쳐서 아쉽게도 산이만 보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은 지역 사람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더불어 비영리단체인 에이킵을 유지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린다. 올해는 애국가 제창, 스타토크(Startalk: 에이킵의 여름 캠프) 학생들의 케이팝 춤, 에이킵 소개 영상을 공연했다고 한다. 한편, 풀무원에서 준비한 음식, 티셔츠나 티켓 판매, 경매를 통해서는 기금을 모은다. 한인 지역사회에서도 이 행사에 참여해서 몽고메리에 한국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알리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몽고메리 홈팀의 경기도 관람하고 응원도 하면서 말이다.

산이에게는 코리안 헤리티지 나잇에서 시구(始球)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공 던지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서 산이에게 유튜브에서 투수의 자세를 찾아보라고 알려주었다. 어정쩡한 처음 모습과는 달리 그 다음번에는 한 다리를 뻣뻣하게 번쩍 들어 올렸다 내리며 공을 던졌다. 우습기도 하면서 그걸 따라 해보는 산이가 기특했다. I는 산이가 시구하는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주었다. 정작 경기장에서 산이는 다리를 들어 올리지도 않았고 공도 냅다 던지는 모습이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그래도 경기장 한가운데서 프로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는 멋진 경험이라니! 그 경험을 산이와 우리 가족에게 선사한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