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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010

혼자 또는 여럿이


<남편은 어디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상영되자마자 구해왔길래 보았던 것입니다.>
"솔로이스트"(The Soloist)
LA 타임즈 기자와 노숙자 나다나엘이 음악을 매개로 하여 우정을 만들어 가는 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영화는 LA 타임즈 기자인 스티브 로페즈의 글을 바탕으로 한 실화라고 합니다.

친구되기일상에 지친 기자는 어느 날 공원에서 두 줄 밖에 남지 않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다나엘을 만나게 됩니다.
나다나엘에게 흥미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줄리어드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하다가 중퇴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칼럼에 나다나엘의 이야기를 싣게 됩니다.
그 칼럼을 읽은 어느 할머니 독자는 자기가 50년 동안 사용했던 첼로를 나다나엘에게 선물로 줍니다.

기자는 이 첼로를 빌미로 거리가 아닌 노숙자 단체로 거처를 옮기라고 하기도 하고, LA 교향악단이 연주하는데 게스트로 참가해 볼 것을 권유해 보기도 하고, 교향악단의 첼리스트에게 부탁해서 개인 레슨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독주회를 열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나다나엘이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없고, 나다나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이 영화가 한참 지나도록 기자는 정신적 질환을 가진 나다나엘을 돕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노숙자 공동체에 찾아가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나다나엘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으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자, 운영자는 필요한 건 하나, 친구, 라고 대답합니다.
그래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자는 의사를 만나는데 동의하는 서류를 나다나엘에게 보여줍니다.
나다나엘은 그 서류를 보고는 기자에게 죽일듯이 덤벼들고, 기자는 겨우 몸을 피해 도망합니다.

다시 나다나엘을 찾았을 때, 나다나엘은 그렇게 심하게 했는데도 친구가 되겠다니 안 믿어져, 합니다.
기자는 손을 내밉니다.
“Mr. 에어스(나다나엘), 당신 친구가 돼서 영광이야”

친구는 서로의 관심사를 알아주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기자는 나다나엘이 음악으로 인해 행복해 하고, 음악에 완전히 빠져있는 것을 압니다.
디즈니 콘써트 홀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거리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준비된 무대보다는 거리의 소음과 새들이 들어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나다나엘과 기자가 나란히 앉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합니다.
그 장면은 마치 친구를 위해, 기자는 더 이상 나다나엘에게 연주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으며, 나다나엘은 말끔히 차려 입고 훌륭한 관객이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혼자 또는 여럿이나다나엘은 갇혀 있는 듯한 공간을 싫어합니다.
또 여럿이 어울려 연주하는 것을 방해하는, 뭔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복잡한 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는 나다나엘을 두고 “내 친구는 내면에서 잔다, 그의 정신 상태와 내면은 불확실하다” 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트인 공간에서 혼자 연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다나엘은 타고난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혼자 연주한다면, 평범하지만 타고난 음악성을 가지고 혼자 연주하는 닮은 또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음악을 들으며 드럼 스틱을 들고 빈 공간에 있는 드럼을 상상하며 연주를 합니다.
그러길 한 시간 넘기는 것은 보통입니다.
드럼 연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솔로이스트입니다.
이 솔로이스트도 내면의 감각에 따라 드럼을 연주하는 것이라 여럿이 어울려 연주하는 것은 글쎄요….
벌~써 눈치채셨듯이 그 솔로이스트는 바로 강산입니다.


그런데 강산이가 나다나엘과 다른 것이 있는데, 여럿이 같이 연주하는 것을 즐거이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 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과 다른 교회 초청 공연 때요.
자기가 좋아하는 드럼이 아니라 트라이앵글이긴 하지만, 같은 타악기이니 자신의 음악적 감각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강산이는 오케스트라에 가는 것, 연주하는 것, 간식 먹는 것, 연주회 때 양복 입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편 강산이는 연습이 시작되면 자기 연습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강산이가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지휘를 맡고 계신 전도사님 덕분입니다.
전도사님은 강산이가 드럼 치기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한번 시켜보라고 권해주셨고, 타악기를 지도하는 선생님도 해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았습니다.
지난 12월 제9회 정기 연주회와 이웃 교회 초청 공연 때 각각 두어 곡 연주를 하였습니다.
강산이가 연주할 때, 같은 악기를 연주하며 이끌어주는 친구가 옆에 있었습니다.
모두 고마운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강산이의 연주가 많이 부족한 것을 압니다.
전체 연주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도 있구요.
그런데 정기 연주회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산이가 할 수 있다면 연주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도전이 되지 않을까?’
연주회가 끝나고 전도사님과 인사를 나누는데 전도사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전도사님은 강산이가 좋아하면 됐어요, 하시는 것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친구는 아니더라도, 강산이를 알아주는 분이 계셔서 고마웠습니다.
이거 사실 나보다 강산이가 더 고마워해야 되는 건데, 그렇죠?

한편, 강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강산이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를 경험하면서 그런 친구가 생기겠지요.(!?!)
지금은 보호와 배움이 필요한 시기이니 친구보다는 가족, 선생님들이 강산이 곁에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강산이 엄마이면서 동시에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강산이보다 먼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많은 삶의 잣대를 접어두고, 강산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강산이의 기쁨과 슬픔이, 저에게는 엄청난 환희가 되기도 하고 가슴 저리는 아픔이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감정조차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 이상을 넘나드는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저한테 강산이 친구 되라고 하지는 않지만, 엄마이면서 친구가 되도록 해보렵니다.
엄마의 사랑을 가지고 강산이의 시각으로 보려고 애써 보렵니다.
좋은 방법 있으면 나눠주시길….


영화 초반에 나다나엘이 기자로부터 첼로를 전해 받고, 조심스럽게 첼로를 꺼내 연주를 합니다.
연주하는 동안 스크린에는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바둑판 같은 모양의 아주 넓은 주차장 모습과 많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움직이는 엉킨 실타래 같은 교차로를 하늘 높이 나는 비둘기의 시각으로 비춰줍니다.
질서와 자유로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면과 함께 첼로곡의 선율이 정말 감미로웠습니다.
이 영화에 삽입된 첼로 연주곡들은 유투브(youtube.com)에서 soloist ost 라고 입력하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로마서 15:1-2, 5-7)

1/23/2009

드디어 부모님들이 오시다

<강윤이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중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모님들이 오셨습니다.
남편과 저의 부모님 네 분이 사이좋게 함께 오셨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우리가 한국을 떠나오던 날부터 계획하셨던 일입니다.

아틀란타 하츠필드-잭슨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한 지 두 시간쯤 지나 땀을 뻘뻘 흘리시며 입국 수속을 마치고 올라오셨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신 모양입니다.
짐 찾을 생각에 한 사람이 오지 않은 것도 모르고 먼저 가버려서 남은 한 분이 난감하기도 하고, 앞장 선 한 분이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따라 먼저 가버려서 남은 세 분이 어쩔 줄 몰라 하시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을 더욱 반가워 하셨습니다.≠≠

저희 집에 들어서면서 풀어놓은 짐이 거실과 주방에 한 가득입니다.
봄이면 며느리가 좋아하는 질경이 나물 해주시려고 캐서 말리고, 여름에는 밭에서 막 따온 싱싱한 호박을 동글게 잘라 말릴 뿐 아니라 고추를 잘 키워 매콤한 고춧가루 만드시고, 가을무가 다니까 무를 잘게 잘라 말려 무말랭이 만들고 상수리나무 열매를 주워다가 묵 가루 만들어서, 겨울 농한기에 먼 곳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저의 엄마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여러 가지를 짐 속에 꾸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동생들도 모두 저희 가족을 위해 넘치는 사랑을 담은 선물들을 잔뜩 보내주었습니다.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있는 짐 무게에 제한이 있으니 저울에 달아보고 또 달아보며 넣을 수 있는 만큼 담아 오셨습니다.
나라와 나라를 달리 하여 사는 가족을 방문할 때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인 듯싶은데, 그래도 가져오신 물건 하나하나에 담겨진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지 소중하게만 여겨집니다.

부모님들이 월요일에 오셨으니까 이제 닷새째 날이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부모님들은 밥해주시고 청소해주시고 저는 말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궁금해 하시는 것에 대답도 해드리고 짧은 시간 경험한 이곳 생활도 시시콜콜 이야기해드리고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앉아서 얘기하고 또 얘기합니다.

저는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수다에 빠져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려 사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지만 서로에게 충분하지 못했나 봅니다.
부모님들은 이곳 사는 모습이 상상이 잘되지 않으니 저희 생활을 이해하시는 것에 제한이 있었고, 저는 걱정하실 것 같은 일들은 접어두었는데 그런 것들이 맘 놓고 터져 나오는 모양입니다.

잠시 지난 며칠을 돌아보니 이렇게 부모님들께 마음을 한 달 동안 털어내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질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고 가뿐한 시간을 보내다가 한 달 뒤에 공항에서 어찌 보내드리나 싶습니다.
아주 먼 곳에서 살다가 오랜 만에 만난 것이 처음이라 그렇겠지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7/29/2008

Nice Guy

갑자기 바깥이 흐려지면서 집 안이 어두워지면 기대가 됩니다.
천둥이 우르릉 울리고 번개가 번쩍 하면서 조금 뒤에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질 것처럼 요란을 떱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에서 수십 번을 반복하다가 “쏴아~” 하며 내리쏟는 비가 시원스럽고 좋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가물어서 비가 조금 더 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쉬운 듯 비를 뿌리고는 천둥 소리만 멀리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면 그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버지니아에 사는 친구 부부는 아내와 남편이 똑같이 비 오는 날을 엄청 좋아라 하고 정서적으로 즐기는 모습이 언제나 청년 같습니다.
또 1984년 9월 초,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학교가 있는 동인천에서 석바위까지-버스로 30 여분 거리였던 것 같아요-비 맞으며 실내화 신고 함께 걸어갔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학교 모자 챙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시선을 고정하고 우산 가지고 학교로 마중 나온 엄마들과 함께 돌아가는 아이들이 부럽지 않은 척, 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척 논길을 걷고 있는 초등학교 때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있기도 합니다.

기질적으로 행동하는 삶 보다는 생각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삶의 구조가 정적(情的)이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혼(魂)의 조각들을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뭔가 글을 써야 될 것 같은 오늘 한나절은 "nice" 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곳에 와서 많이 듣게 된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nice guy"가 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nice"의 사전적인 의미 1번은 좋은, 괜찮은, 훌륭한, 기분 좋은, 만족스러운, 매력있는 입니다.
대화 속에서는 친절한, 다정한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스한 사람은 보기에 꽤 괜찮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주일 오후 교회에서 일일 가족 휴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찬양 사역팀이 중심이 되어 교우들이 장기 자랑도 하고 열린 음악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상품이 정말 푸짐해서 마지막 쿠폰 번호를 부를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장애우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 JUBILEE에서도 우리 친구들과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한 팀이 되어 출연했습니다.
한 형이 찬양을 랩으로 부르고 강산이가 드럼을 치고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했습니다.
연습한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훌륭한 노래와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랩퍼인 형은 은빛 나는 이른바 갈치 양복으로 멋을 냈고, 찬양을 맡은 선생님은 딸이 입는 찢어진 청바지로 분위기를 띄우시고, 강산이는 교회 연주팀이 사용하는 드럼으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한가득입니다.


또 다른 형은 이번 주에 생일인 교우들을 위해 실로폰으로 Happy Birthday와 God is so great를 선물했습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수줍은 듯 인사하는 형의 얼굴이 더욱 귀엽고 밝아 보였습니다.

무대 옆쪽에는 JUBILEE 팀을 응원하기 위해서 프로그램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친구들과 함께 앉아 계시던 선생님들과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우들은 우리 JUBILEE 친구들에게
“아니, 정말 걔는 뭔가 알고 있다니까요”
“정말 잘해요”
"I’m so proud of you"
“가슴이 찡 했어요”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연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격려하는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참 나이스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젊게 매력적인 삶을 사는 친구 부부도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147:1)

5/27/2008

12/18/2004 - 목사 새끼, 새끼 목사

목사 새끼? 새끼 목사?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을 가리켜 하는 말인듯 싶은데 귀로 들어만 봤던 말을 막상 글로 옮겨보니 그 말의 느낌이 참 강하네요.

"아유, 내 새끼 장하다" 할 때는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목사 새끼, 새끼 목사'는 목사 자신이 자기의 자녀를 속마음과는 다르게 속되게 표현한 말 같습니다.
그 말에는 뭐랄까, 목회자 부인인 제 편에서 볼 때 안쓰러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 가정에도 목사 새끼가 둘 있습니다.
열 두살 강산이와 아홉살 강윤이.
지난 주에 강윤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서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강윤이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발표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온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멋진 연주를 해냈습니다.

강윤이가 피아노 치는 것을 처음 보신 할머니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셨습니다.
둘레둘레 찾아보니 학원 아이들끼리 앉아있는 강윤이에게로 어느새 다가가 뭔가 속삭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발표회가 다 끝난 다음에도 "우리 강윤이 근사하다. 제일 멋졌어!"하며 얼굴을 보듬어 주십니다.
강윤이는 자판기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조금 참았다가 집에가서 물 먹자'고 했을텐데 "그래? 얼마야? 500원? 600원?" 합니다.
할머니, 아빠, 엄마가 동시에 주머니와 지갑을 뒤지며 동전을 찾습니다.

"우리 저녁 뭐 먹을까?"강산이와 강윤이는 입을 맞추어 "피자!" 합니다.
"좋아, 할머니가 강윤이 축하하는 기념으로 피자 산다!"

강윤이가 피아노 배운 지 2년 남짓.
지난 달에 바이엘 끝내고 체르니 100번을 시작했습니다.
4권으로 된 바이엘을 마쳤을 때에도 떡과 요구르트를 사들고 학원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책떨이를 했었습니다.

강윤이가 피아노 레슨받고 발표회 하는 것을 맘껏 지지해 주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강윤이가 뭔가를 '꾸준히'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그저 대견해서,그리고 피아노를 배우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그 목표는 바로 예배를 돕는 피아노 반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이 다음에 되고 싶은 꿈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려온 그림은 뜻밖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있는 한 사람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어림잡아 알듯도 했으나 강윤이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그것도 몰라! 넥타이 매고 있는 거 보면."
"목사님?"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옆으로 흘겨보며 "...."

강윤이의 표현대로 장래희망이 목사랍니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 집에 새끼 목사가 하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에서 어느 누구도 강윤이에게 목사가 되라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윤이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일년 반 전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목사가 될 거야. 두고 봐."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있는 남편의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목사 둘 다 남편의 영향이 미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강윤이가 상장을 받아왔습니다.
'봉사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시켜서 한 것인지 지가 스스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리가 아픈 친구를 날마다 도와주었나 봅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한 아들 강윤이와 형 강산이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이들의 엄마로서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사람되도록 양육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목사 새끼로, 새끼 목사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목사 가정에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꿈이 목사라고 해서 항상 점잖고 겸손하며 무엇이든지 양보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열 두살, 아홉살 된 꿈많고 개구쟁이인 사내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라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갈 때, 하나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과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끈기있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길, 조용히 기도로 돕는 어미가 되고 싶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12/01/2004 - 동행

얼마전 엄마와 피아노 독주회에 갔습니다.
엄마가 이사오시 전에 다니시던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곽집사님의 따님이 숙명여대에서 독주회를 하게 되었는데 '꼭 가겠노라' 이사오기 전에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연주회 하는 날이 토요일 오후라 교회 청소와 주일 준비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 이사온 이곳의 모든 것이 낯설고, 다리도 불편한 엄마를 '혼자 다녀오시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다녀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사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피아노 독주회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숙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 궁금증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줄 알지만 그저 알고싶고 보고싶은 호기심이 발동을 했습니다.

싱싱한 젊음이 넘쳐나던 20대 울적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혼자 이곳저곳 잘도 다녔습니다.
'버스 종점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인천에 살고 있었기에 7번(검단), 22번(신천리), 4번(박촌?) 버스를 타고 가서,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곳'을 확인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마도 내가 사는 동네나 나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보며 위로를 받았나 봅니다.

단순한 호기심을 빌미로 일상을 탈출해보려는 시도는 그만...
내가 본 그 대학은 커다랗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만 웅장하게 보일뿐 운치라고는 찾기 힘들었습니다-그 모습이 다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안있어 슬슬 잠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끝날때까지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선정된 곡의 작품해설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들려오는 리듬이나 선율을 느껴보려고 처절하게 애를 썼으나 허사였습니다.
하이든 Sonata Hob.XVI:52 E Major, 처음 들어보는 벨라 바르톡 Suite Op.14, 브라암스 Sonata Op.5 F-Moll.
피아노 독주회를 할만큼 수준있는 곡들일텐데 듣는 제게는 너무 무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엄마에게 나는 무척 힘들었노라 했더니 엄마는 "독주회가 다 그렇지 뭐" 하십니다.
엄마의 음악 수준이 이렇게 높은줄 몰랐습니다.

연주자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엄마는 고향 사람들을 만난듯이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관객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다니시던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사이에 목사 사모인 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나를 불러 인사를 시키기도 합니다.
그런 엄마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며 옆에서 가만 지켜보자니 그 며칠 사이에 저 교인들 가운데 엄마의 자리가 사라졌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습니다.

주최측의 실수로 저녁도 못먹고 전철역으로 걸어오는데 엄마의 절룩거리는 걸음이 더욱 힘들어보였습니다.
10년 넘게 다닌 교회를 뒤로 하고 이제 새로운 신앙의 자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내 손을 빌려드리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야,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길 나 혼자 어떻게 왔다가니!" 하십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의지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보였습니다.


기분이 영 가라앉기만 하는 것 같아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은데 도너츠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쵸코렛이 많이 묻어있는 도너츠를 골랐습니다.
이런 음식점에는 세번째 오는 것이라며 엄마는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전철역을 올라갔습니다.
전철이 플랫폼에 닿자 엄마는 날렵하게 노약자석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언제 내 다리가 아팠냐는듯이.무릎의 연골이 거의 없어지고 ㅇ자 모양처럼 휘어질대로 휘어진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얼마나 될지 전철이 달리는 내내 헤아려 보았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엄마와 하나 밖에 없는 딸.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여인의 삶을 조금씩 알아가며 철들어가고 있는 딸이 곁에 있음을 축복으로 여기실 수 있도록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