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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2019

이런 소리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잠이 설핏 깼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젠 일어날 때 되지 않았어?, 남편이 낮은 소리로 깨웠다. 먼저 들은 소리는 남편이 교회 가려고 일어나 준비한 것이었고, 다음 것은 자신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려주는 소리다. 콩 자루가 굴러떨어지듯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늘 하던 대로 준비를 마치고 교회로 갔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지 밖은 어두웠다. 얼마 전부터 남편 자동차에 있는 시계가 무슨 이유인지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시간대는 달라도 분은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기에 흘깃 숫자를 읽었다. 평상시보다 몇 분 빠르게 교회로 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현관문 안쪽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며 친교하는 커다란 원형 탁자들과 의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에 대한 첫인상을 주는 곳이다. 제자리를 벗어난 의자들만이라도 탁자 아래로 쏙쏙 밀어 넣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는 단정한 것이 나으므로. 이번엔 정수기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쌓여있던 일회용 컵들은 다 사용되고 하나만 남아 있었다. 별로 손댈 것이 없네.

아무도 없는 예배실, 익숙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의지했다. 편안하게 또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으려나. 아직 예배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예배를 시작해야 할 시간도 지난 것 같았다.

'월요일 지나 화요일 새벽까지 모두가 피곤한 모양이군.‘

'주여, 우리와 함께. 우리 교회와 함께...‘

정적 속에 눈을 감고 있으니 더이상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빠르게 튕기는 기타 소리의 알람 때문에 눈을 떠야 했다. 어이쿠, 왜 이 시간에 알람이? 얼른 가방을 뒤져 알람을 껐다. 그때 난 봤다. 익숙한 숫자의 나열을. 이제야 집에서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는 숫자였다.

"여보!“

이번엔 내가 예배실 앞쪽에 앉은 남편을 낮은 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돌아보는 남편에게 벽에 걸린 시계를 보라고 가리켰다. 천천히 자신의 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왜 안 바뀌었지?"

전날 반가운 몇몇 목회자 부부들을 만나기 위해 조지아주 콜럼버스에 다녀왔다. 지금 살고 있는 앨라배마주 경계를 넘어 조지아주로 들어서면 셀폰이나 자동차의 시계가 한 시간 빠르게 자동으로 바뀐다. 네 개의 시간대를 가진 미국에서 그중 한 경계를 넘나들며 다니는 일이 자주 있다. 조지아주로 넘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니 셀폰이 자기가 알아서 시간대를 고쳤어야 했는데 조지아주 시간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이없게도 남편 것만.

이젠 기대가 생겼다. 조금 더 있으니 부목사님도 오시고 집사님도 오셨다. 남편은 새벽 말씀을 나누던 중 이래저래 한 시간 일찍 나왔노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도 새벽 기도에 안 오길래 기도가 더욱 간절히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엔 같이 기도하자며 여느 때처럼 소리를 내어 기도를 시작했다. 난 이미 한 시간을 기도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뻐근하게 느껴졌다. 예배실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아직도 날이 샐 줄 모르고 어두웠다. 밖을 보니 그새 비가 꽤 내렸나 보다. 그래서 더 어두웠는지.

온통 교회 생각으로 가득한 남편은 초저녁 곯아떨어졌다가도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다시 교회에 간다. 이런 일이 잦다. 시간을 혼동할 만했다.

회계사무실에서 3년 일하는 동안 2개의 주황색 형광펜을 오롯이 썼더랬다. 자신의 색으로 주변을 도드라지게 밝혀주는 형광펜. 노란색 형광펜을 일반적으로 많이 쓰기에 주황색 형광펜이 그어지는 곳은 더 눈에 띈다. 주황색 형광펜은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잉크를 온전히 소모하며 나를 도왔다. 그 공로를 인정하여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남편을 보면 그 주황색 형광펜이 자꾸 생각난다.

오전 내내 흐려 쌀국수가 생각났다. 남편과 산이, 부목사님과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부목사님이 말했다.

"목사님, 새벽에 한 시간 일찍 나오셔서 피곤하시겠어요.“

", 잠잘 때가 아니다. 기도해라. 그런 신호였나 봐.“

식당에서 우리의 음식값을 대신 내어준 교우, 교회를 위해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나눠주는 교우,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교우... 그들의 목소리가 천사의 소리로 들린다는 남편. 자신의 새벽 알람 소리도 천사의 소리였다고 하려나.

4/17/2019

특별기도회가 특별한 이유


<교회에 있는 사철나무 꽃. 향기가 엄청나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21일 특별기도회를 하고 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기도회는 새벽과 아침 시간에 모인다. 여러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두 번의 기도 시간을 두었다. 각자 원하는 시간에 기도하고 있다.

난 평상시에 새벽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하던 대로 기도하면 되려니 했다. 그런데 남편인 목사님은 아침 기도회에도 참여하는 것이 좋겠단다. 어떤 일보다 교회 모임을 우선시하기로 마음먹고 있는 터라 목사님 말씀을 따랐다.

새벽 기도회는 특별기도회 기간이라도 나에겐 특별한 것은 별로 없다. 보통 때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가던 것을 접어두고 선포되는 말씀이 요한복음이라는 것만 빼고는 말이다. 기도는 여전히 읊조리듯 드리고. 그런데 아침 기도회는 새벽과 사뭇 다르다. 찬양도 여러 곡 부르고 기도도 소리를 내어 크게 기도한다. 새벽에는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거나 무엇인가 깨닫게 되기도 하고 깜빡 졸기도 한다면, 아침에는 생각을 말로 끄집어내어 기도하다 보니 정신이 희미해질 틈이 없다. 하루에 색다른 기도회에 두 번 참여하는 올해 사순절이 나에게 특별하긴 하다.

기도하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21일 기도회가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고 보니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느껴지는 간절한 마음이다.

우리 교회는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리적인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심히 살펴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도록 안내하시는 목사님이 두 분이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시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갈 젊은 에너지를 가진 삼, 사십 대 교우들이 많다. 재정은 자립 된다. 우리 교회 건물은 아니지만 거의 주인처럼 성공회 교회를 사용한다. 멀지 않은 날에 더욱 마음 편히 교회 건물을 사용하고 공간도 넓혀 가리라 기대하고 있다

교회 모임 때마다 여러 손길들이 커피와 차를 준비한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나눈다. 중장비를 끌고 와 주차장에 쌓인 토사를 치우고 교회 텃밭을 일구어 놓는다. 주일 예배를 위해 꽃으로 강단을 장식한다. 어떤 이들은 한 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미끄럼틀을 닦아내고, 어두운 아이들 예배실에 전등을 달아주고, 교회 주변 넓은 잔디를 깔끔하게 다듬어 놓는다. 안전한 환경을 위해 경비를 서기도 하고 CCTV도 설치한다. 주일 친교를 위해 많은 양의 점심을 만든다. 교사와 성가대의 부지런한 봉사도 빠뜨리면 안 된다. 그리고, 그리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수많은 헌신과 봉사가 교회에 가득하다

김포로 목회하러 갔을 때였다. 교회의 모든 상황은 바닥이었다. 남아 있는 교인 일곱 명만이 전부였다. 눈만 감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이 뜨겁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기도하는 자리에만 가면 교회를 위해 목놓아 부르짖었다. 살려주세요, 우리 교회 살려주세요. 기도하다 보면 머리통이 열기로 가득 차오르고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교회는 점점 회복되었다.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심도,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심도 모두 그 분의 뜻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 우리 교회는 객관적인 상황이 좋은 편인데 기도하면 또 눈물이 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교우들의 마음을 받아 주시고 그들을 기억해 달라는 호소가 자꾸 나온다.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나 보다. 가만 엿들어보니 남편의 간절함은 어떻게 해야 우리 믿음이 새로워지고 굳건할 수 있는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겐 너무 무거우나 거기에도 기도를 보태 본다. 교회를 위해 흘릴 눈물이 아직 남아 있음을 발견한 이 십자가와 부활의 절기가 특별하다

2/09/2015

묻어 둔 숙제




조각 하나.

지역 도서관에 자유롭게 수다 떠는(free talking) 반이 있어서 다닌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오후라 그런지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여서 각각의 그룹을 이끌어 가는 자원봉사자들이 더 많았다. 60대 초반의 백인 부부와 한 그룹이 되었다. 또 다른 참여자가 있기도 했는데 오다가 말다가 하여 내가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 좋았다.

대화 상대였던 백인 부부는 아주 꼼꼼해서 틀린 발음들을 잘 고쳐주었다. 특히 아내인 캐시 아줌마는 질문을 하면 간단히 답을 하지 않고 더 많이 가르쳐주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퀼트를 조금 해 본 적이 있고 관심이 있다고 했다. 캐시 아줌마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퀼트 모임이 있는데 언제든지 와 보라고 했다. 모임 시간과 교회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교회는 내가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규모가 큰 장로교회였다. 퀼트도 배우고 영어도 더 얻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퀼트 모임도 평일 오후 시간이었다. 퀼트 하는 방에 이르자 곧 캐시 아줌마가 도착을 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로부터 젊은 새댁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책상을 앞에 두고 넓고 크게 둘러 앉아 내 소개를 했다. 회원 몇 명이 그 즈음에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작품들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서너 명씩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소곤거릴뿐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캐시 아줌마는 그 모임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을 사진 찍어 모아 놓은 자료집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크기나 만드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했다. 완성된 것은 부모 없는 아이들, 환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부목사 등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된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모임에서는 완성된 퀼트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를 정하면 각자가 블록(조각 천을 붙여 만든 하나의 단위)들을 만들어오고, 누군가 그 블록들을 연결하고, 솜을 넣어 누비고……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퀼트를 잘 하는 사람들이고, 모임 시간에 퀼트의 오밀조밀한 방법들을 배우기는 어려워 보였다.

조각 둘.

한 주가 지나 다시 캐시 아줌마와 그 남편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캐시 아줌마의 남편과의 대화가 자꾸 막혔다. 시작은 exercise라는 단어였다. 나는 연습문제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중학교 때부터 영어책에서 수도 없이 봐온 단어이기에). 그랬더니 아저씨는 그 단어의 뜻은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운동도 맞고 연습문제도 맞다고 했더니 어이없어 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온 사람이 아는 체하는 꼴이 된 것이다. 또 무슨 얘기 끝에 Systematic Theology(조직신학)라는 단어를 말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그런 단어도 있냐며 설명해보라고 했다. 이걸 영어로 설명하다니, 얼마나 버벅거렸는지…… 그리고 퀼트 모임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결국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비록 영어도, 퀼트도 서툴지만 아저씨가 나에게 뾰족하게 구는 태도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난 다음 날부터 그 동안 퀼트 하면서 남아있던 자투리 천들을 모두 꺼내, 캐시 아줌마네 교회 퀼트 모임에서 최근에 진행중인 블록과 같은 모양으로 커다란 이불을 만들기 시작했다. 캐시 아줌마의 친절함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이불 만드는 것을 알고는 이불 뒷감으로 쓸 수 있는, 앞면과 잘 어울릴만한 커다란 천을 주기도 하였다. 솜을 살 때는 퀼팅 도구들을 파는 가게 Joann에도 같이 가 주었다. 캐시 아줌마는 이불 앞면이 완성되는 것까지만 보았다.

5개월에 걸쳐 나의 퀼트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불이 하나 만들어졌다. 천 조각 하나 하나마다 사연이 묻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처럼 저마다 다른 천들의 고유한 재질과 무늬들을 보고 있자면, 그 다양성에 놀랍기도 하고 뭔가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한다. 조각들이 이어져 쓸모 있는 무엇이 된 것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불을 만드는 동안 곱고 예쁜 조각천들 덕분에 캐시 아줌마 남편의 뾰로통한 인상도 많이 희미해졌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건 커다란 이불 하나를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이것은 큰 아들에게 먼저 주기로 했다.






조각 셋, .

작은 아이는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왕 천들을 손에 잡은 김에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작은 아이가 대학 가서도 엄마와 가족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자는 동기를 팍팍 부여하고 시작했다. 새로운 모양의 블록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가는 일이 코앞에 닥친 일도 아니고 다른 관심사가 생기는 바람에 그만둔 지 2년이 넘었다.

남편이 한국에 갔을 때 친구가 가진 천으로 만든 가방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 친구의 아내는 퀼트를 아주 잘 하는 이여서 자기 남편의 가방을 손수 만들어 준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와도 잘 아는 남편은 자기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했다. 그 아내는 내 남편의 빠듯한 출국 일정에 맞추어 엄청 멋진 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남편은 이 가방만 들고 다닌다. 작은 아이는 아빠의 퀼트 가방을 이른바 명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관심과 사랑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기 때문이란다.

이젠 묻어둔 숙제를 꺼낼 때가 되었다. 작은 아이가 대학갈 날이 몇 개월 후면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자기 이불은 언제 만들거냐고 숙제를 자꾸 상기시킨다. 집을 떠나면서 엄마의 애정 어린 기도와 손길이 담긴 물건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아이의 갸륵한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서둘러야겠다.

9/08/2014

한국학교에서 배우기




한인 이민자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학교가 개강을 했다. 지난 학기에 임시 교사로 몇 주 참여한 것이 기회가 되어 이번 학기에 초등학교 3, 4 학년이 된 아이들이 있는 한 반을 맡게 되었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특별히 높아 보였다.

학교가 개강하는 날 부모님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우리 반 학생들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다. 그러던 중 손주들을 한국학교에 보낸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큰 아이는 한글을 읽는데 똑같은 기간을 배운 동생은 왜 아직도 읽지를 못하냐며 호통을 치셨다. 나는 할머니의 큰 손주를 맡게 되어 전화 드린 것이라 동생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와의 통화가 시원치 않으셨는지 오리엔테이션에 오셔서 교장을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영어권이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인데, 오히려 할머니께서는 손주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데 아주 열정적이신 듯했다. 이분은 선생님들 사이에 무서운 할머니로 불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학교가 시작하는 날 진짜로 찾아오셨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서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작은 아이를 한국어 수준이 높은 반에 넣기를 원하셨고, 교장 선생님은 결국 큰 아이와 동생을 같은 반으로 배정하셨다. 둘 다 나의 반이 된 것이다. 한 학기 혹은 한 학년이 지나 동생이 글을 읽지 못하면 난 할머니께 혼나게 생겼다.

우리 반의 또 다른 아이는 3 학년인데 세 살부터 한국학교를 꾸준히 다니고 있단다. 또 다른 두 아이의 아버지들은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학교를 열심히 돕고 계신다. 한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은 잘 하지만 잊지 않고 더 잘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어느 아버님은 숙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학기 시작하는 첫날에 말이다. 다른 지역 한국학교에서도 가르쳐 봤지만 숙제를 내줬는지 물어본 학부모님은 처음이었다. 한 학기 학습 계획을 만들면서 숙제를 내주어야겠다고 이미 마음 먹고 있었다. 그래도 첫날부터는 아니였는데…… 아이들은 숙제 있다고 하면 엄청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난 마음을 정했다. 학교 행사가 있어서 수업이 없어도 숙제는 빠트리지 않고 꼭 내주는 걸로!

또 이곳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 이외의 많은 시간을 한국학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인 이민자가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수백 명씩 모이는 한국학교가 여럿 있다. 주로 한인회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이다. 규모가 큰 학교는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과 재정이 넉넉해서, 운영을 책임지는 선생님들과 특별활동 선생님들이 따로 있고 교사들은 보통 자기 반 수업만 충실히 준비하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인 인구가 4,000 명쯤 되는 곳으로, 한인회 아래에 한국학교가 하나 있다. 30 명 안팎쯤 되는 학생들과 너덧 명의 선생님들이 작은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생 수가 많든 적든 한국학교는 한국어,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 보니 이곳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교 운영, 수업, 특별활동 등등을 거의 같이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선생님들과 사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그들이 학교를 위해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한국학교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난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시간과 선생으로써의 능력을 기꺼이 나누며 봉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그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선생님들에게는 지치지 않는 봉사의 마음과 가르치는데 필요한 지혜를, 학생들에게는 한국어를 잘 깨달아 배워갈 수 있는 지혜를, 학교 생활이 즐겁고 안전하기를,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넉넉히 채워지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마음을 나누면 될까?

6/29/2014

여행 중에도 기도 시간을




몸을 뒤척이다가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났다. 아직 어두움이 가득한 거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어슴푸레 읽어 보았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잔 탓에 집안 공기가 후텁지근 했다. 창문 하나를 열어 강화어머님네(나의 시어머님이시다) 집 둘레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휘젓고 다니던 바람을 불러 들였다. 창문을 열자마자 밀려들어 오는 새벽 공기가 참으로 시원했다. 뒤뜰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님은 지난해 가을,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 주무실 때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 잠근다고 하셨다. 평생을 모든 것이 익숙한 고향의 한 마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님에게서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었다. 며칠씩 집을 비울 때는 모르겠지만 하루 안에 돌아오는 외출을 하실 때는 현관문도 잠그는 일이 없으셨다. 큰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되신 어머님이 아직 익숙지 않은 '혼자됨'을 힘들게 겪고 계시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강인하고 꾸밈이 없는 성격의 어머님이신지라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날 새벽 공기가 실어오는 상쾌함과 쓸쓸함을 들이키고 있는데 어머님이 깨어 나오셨다. 초여름이라도 으쓱한(어머님 표현에 따르면) 새벽 공기를 막아줄 얇팍한 긴팔 옷을 챙겨 입으시며 이미 깨어 있는 나에게 같이 새벽기도 가자, 고 하셨다.
 "목사 사모가 와 있는줄 다 알텐데, 왜 새벽기도도 안 나오나 할 거 아냐?" 
오랜만에 들어보는 꾸중 섞인 말씀이다.

어머님네 와서 밤잠을 자게 되는 경우는 주로 명절을 쇠러 올 때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고단하기도 하고, 모처럼 부모님 집에 왔으니 목회 현장에서 떠나 푹 쉬고 싶은 마음이다. 날마다 드리던 새벽기도도 접고 길고 깊은 잠도 자보고 싶다. 그런데 어머님은 새벽기도를 가시면서 잠들어 있는 남편과 나를 보시면 화를 내셨다. 목회자 부부가 새벽기도를 빼먹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목사는 안 나가도 사모는 기도해야 할 것 아니냐, 고도 하셨다(이것은 내가 이해가 안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도 꿈적하지 않으면, 새벽기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문을 소리나게 쾅쾅 여닫으시고 그릇도 더 달그락 소리가 나게 다루셨다. 아침 한나절은 어머님의 볼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어머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새벽기도에 대해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자 어느 때인가부터 더 이상 새벽기도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머님과 내가 고부지간으로 만난 지 이십 여년이 흘쩍 넘었으며, 미국에 살다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여 며칠 어머님 댁에 묵고 있는데 그 새벽기도 얘기가 다시 나온 것이다. 난 웃으며 어머님만 다녀오세요, 했다. 밖으로 드러나 훤히 보이는 어머님 고집이나 드러나지 않는 은근한 내 고집이나 만만치가 않다.

어머님의 새벽기도 시간은 남다르시다. 잠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시간이 교회가는 시간이다. 새벽 두, 세 시라도 일어나시면 곧바로 교회로 가시곤 했다. 요즘은 네 시쯤 가시는 것 같다. 새벽예배 후에도 한참을 기도하시다 집에 돌아 오신다. 그동안 어머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지켜본 바에 따르면 기도 드릴 때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실지 그려진다.

난 어머님과 같이 부지런하고 열정적이고 한결같은 기도를 드리지는 못한다. 나도 새벽기도를 드리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기도하며 대부분 읊조리거나 말없는 기도를 드린다. 삶이 단순하기에 생활하는 중에도 짧막한 기도를 자주 드리곤 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멀리 떠나 여행할 때는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어머님이나 나의 기도 생활이 온전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기도 생활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결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기도에 같이 가자는 어머님의 이번 요청을 따르지 못한 것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여행을 하는 중이라도 기도 시간을 따로 떼어놓지 않으면 깊이있는 기도를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이 생기는 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변화의 시점에 있는 내 교회와 부모님들이 다니시는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기를 위해서,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 그리고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주님이 함께 하여주시길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새벽기도 가시고 집에 남겨진 나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정돈하고 하나님께 내 기도를 올려 드렸다.

5/16/2014

두려움 없이 기도로 나아가기


<미국으로 이사올 때 친구가 만들어 준 십자가>


요즘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다 보면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기도 소리가 슬금슬금 닫힌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종알종알 읊조리다가 어느새 커져버린 내 목소리에 놀라, 다시 기도 소리를 안으로 삼켜버리고 만다. 몇 년간 새벽에 침묵 기도(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다. 미처 떨쳐내지 못한 졸음이나 잡생각에 빠져 있던 적도 꽤 많다)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마음에 생긴 갈급함이 소리를 타고 입 밖으로 자꾸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건강하게 믿음을 지켜가도록 지켜주십사 하는 것이다.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에 한인은 4,000명 정도이고,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과 그들의 가족을 빼면 한인들의 인구 이동이 거의 없는 곳이다. 간혹 우리 교회에 새로 등록한 교우들처럼 다른 주에 살던 다문화 군인 가정들이 육군 훈련소와 새로 마련된 국립묘지가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개신교 교회는 12개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SC) 근처에 있는 교회는 150여명으로 제일 많은 교인들이 있고, 너덧 교회의 교인들이 50-70여명쯤 되는 것 같다.

6,7년 전에 이 지역 여러 목회자들의 이동이 있었다. 그때는 이곳에 살지 않았으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교회 안에 문제들이 생겨 결과적으로 목회자들이 바뀌게 되고 교인들도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요즘 몇몇 교회들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다시 들려오고 있다. 어느 목사는 자신이 속했던 교단을 떠나 남미 선교사로 갔는데, 자신이 목회했던 지역을 방문하여 자신을 따르던 교인들을 따로 모아 여러 날 동안 만나고 갔다는 것이다. 선교비를 부탁하고 갔으며 6개월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단다. 그 목사의 상식 없는 행동이 새로 부임한 목사와 교인들, 교인과 교인 사이를 껄끄럽게 하고 있다. 어느 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이단 시비가 있었고, 이제 다른 한 교회에서도 목사가 이단이라며 교회가 어지러워졌다. 한 교회는 많은 수의 젊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고, 다른 교회는 교회 건물 구입 과정에 문제가 생겨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가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하나님 믿는 믿음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나 여기 한인교회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나 교인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혼란스럽고 아플까, 안타깝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에베소서 6:18)

이 말씀을 붙잡고,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베드로전서 5:8) 이때에 지역 교회들이 반석 같은 믿음 위에 든든히 서 가길 기도하고 있다. 다른 교회뿐 아니라 나의 교회를 위해서도 마땅히 같은 기도를 올려 드린다.

하나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기도는 모국을 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무능과 태만, 기업의 탐욕,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등을 온 국민이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생명이 존중되고, 정의로운 정치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가정의 가치가 회복되고, 백성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뜻이 여러 집회나 의식 있는 언론을 통해 모아지고 있음을 타국에서나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또 이러한 의지를 가진 국민들이 곧 있을 지방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출애굽기18:21)

이 말씀과 같은 지도자를 분별하는 영의 눈이 열려서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참된 지도자가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눈물, 콧물 뽑아가며 기도하다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음성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려는 결단이 있을 때 들려왔다. 조용하고 간결한 그 음성을 듣게 되면 평안이 찾아오며,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도와 주셨다. 그렇게 말씀만으로도 삶을 재창조하는 힘을 가진 분은 하나님뿐임을 고백한다. 교회와 나라를 위한 기도를 통해 무뎌진 영성을 일깨우시고 기도의 자리로 이끄심을 감지한다.

12/05/2013

영혼의 불꽃을 일으킨 한 단어, 순수


즐겨 걷는 길가에 서있는 오래된 참나무(Oak)다. 
나무 이름이 참(!) 좋다.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주일에 교회를 거의 안 빠지고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라면 외우고, 찬양을 예쁘게 부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교회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나는 더 열심히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랐다. 어린 나에게 교회는 유익하고 즐거운 놀이터였다.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성경 말씀과 그들의 신앙 태도를 여전히 배우면서, 중학교 2 학년 때부터 나도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어서 청년들도 많았는데 어린 나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어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고 그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 감당했을까, 돌아보니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늘 흥분되고 도전이 되었다. 아마도 교회는 나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꾸게 해준 곳이었던 것 같다.

교회 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귀찮은 일들이 있다. 행사준비, 청소, 식사준비, 설거지, 예배 후 뒷정리……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참 잘도 했다. 그때의 마음을 기억해보면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 뭐 이런 개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난 수녀가 되어야 하나 보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모교회는 내 삶의 태도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어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 전까지 신학대학이라는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난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세상 지식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대학이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 어떤 길이 하나님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는지, 일 년 동안 밤 9 시만 되면 교회 있는 곳을 향하여(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더 정성스럽다고 여겼는지…… 나의 과거지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물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 더 헌신하길 원하시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증거로 대입 학력고사 점수를 몇 점을 달라고 내 맘대로 정했다. 학력고사 결과가 나왔는데 점수는 기도하던 것에서 일 점도 어긋나지 않는 딱 떨어지는 그 점수였다. 난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일반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던 기대를 저버린 딸에 대한 부모님의 분노도, 친척들과 친구들이 찾아와 신학대학 가는 것을 말리는 충고도 이미 확실한 증표를 가진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면접이 있었던 날이다. 교수님은 왜 신학대학을 왔냐고 물으셨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님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난 교회가 좋고 교회를 위해서 뭔가 더 잘 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원서 접수를 할 때 신앙고백을 적어 내는 것이 있었다. 난 거기에 사도신경을 적어서 냈다. 그 보다 더 좋은 신앙고백문이 있을 수 없다는 고매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이라고는 사도신경 밖에 몰라 그걸 적은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교수님은 내 대답과 신앙고백문을 보고 어찌 생각하셨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웃으시며 나중에 교수님 자신의 아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다(교수님의 두 아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을 통해 그 아들을 소개받는 일은 없었지만 교수님은 재미있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 주셨다). 신학과 180 명 신입생 가운데 다섯 번째의 꽤 괜찮은 성적으로 입학을 했다.

성실한 교회 언니에서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20 여 년 전부터 목사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교회와 더불어 신앙생활 하면서 기쁘고 은혜롭고 감사한 일들과 슬프고 황당하고 괴로운 일들이 참으로 많이도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숲길을 걸으며 남편과 새해에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이야기 하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 속을 한 시간 반 이상 걷다 보면 수다를 많이 떨게 된다. 이 날은 이야기가 흘러 흘러 교회와 관련된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편은 당신의 순수함을 보시고 이 길로 이끄셨나 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발에 밟혀 부스러지는 나뭇잎 소리에 섞여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남편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신의 그 순수함을 회복해야 될 때 같은데.”
순수함?’
머릿속에서 반짝하는 불꽃이 튀었다. 일정한 주제도 없이 떠들어댄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나의 순수함을 읽어준 남편이 예뻐 보였다. 동시에 미국으로 와서 느슨해져 있던 기도의 끈을 다잡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들어가든 순수하게 살 수 있다. 어릴 때는 세상에 물들지 않아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라면 나이가 들어서도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 순수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미국으로 온 뒤로 난 자꾸 순수와는 거리가 먼 속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낯선 현실이 불안하게만 여겨졌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경 가방 속 깊숙이 밀어두고, 한 달의 수입과 지출에 맞추어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었다.
당신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아니야,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떡할 거야!”
남편과 이런 주제로 때때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나에게도 순수한 구석이 있었노라 남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을 때의 마음가짐도 보통 때보다 순수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불안과 걱정, 지식과 경험, 선택과 방법, 손해와 이익 계산을 다 떠나 보내고, 앞으로 열려질 모든 가능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 어떤 것을 주셔도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모형인 가족과 교회를 위한 응답을 바라는 마음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리라 믿고 마음을 텅텅 비우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셨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키워드를 찾아냈다. 바로 교회다. 미국에 온 뒤로 목사는 교회라는 일터에서 월급 받는 고용인 같다는 느낌이 많았다. 난 그 고용인의 월급으로 살림을 사는 아내일 뿐이고 말이다. 누구도 이렇게 얘기한 사람은 없다. 그냥 나의 시답잖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도 불필요한 것이므로 흘러 보내려 한다. 그저 나는 교회를, 교인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 말대로 혹여 교회를 사랑하는 나의 순수함을 보시고 지금의 자리로 이끄셨다면, 그래서 빈 마음으로 다시 교회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소망이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7/22/2011

마더 테레사의 기도문

인터넷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만나게 된 마더 테레사의 기도문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기도문

오 주 예수여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높임을 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롭게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칭찬 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오 주 예수여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
낮아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멸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책망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비방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조롱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시편 119:116-117절)

7/01/2011

짙어가는 여름



교우들이 나눠 주신 열매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저희 가정을 향한 마음을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귀한 선물을 받고는, 쑥스럽게도 감사하다는 말만 잔뜩 드렸습니다.
잘 나눠 먹도록 해보겠습니다.

한국에 계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며칠 전 태풍이 지나가면서 고추 밭이 엉망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드리자,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라. 영어공부 해라. 책 읽어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편)

1/21/2011

기꺼운 인내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습니다.
남편과 저는 식탁에 앉은 채로 이야기가 계속 오고 갔습니다.
미국에 오게 된 동기, 미국으로 오는 과정 속에서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움직였는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미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놓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이곳에서의 목회나 생활에도 똑같은 질문들을 하며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의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내는 솔직한 고백들이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이날 따라 고백들이 끊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그러기를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외출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말은 교회 행사로 바쁜 땐데 거기서 멀어져 있고, 교회 개척은 시도하는 것들마다 부정적인 대답만 들려오고, 그래서….”
큭--, 참아보려고 했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엉엉엉….

마주보고 앉아서 얘기하다가 이렇게 울어버리면 남편이 당황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치면서, 억지로 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 그래서 많이 속상하고 날카로워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차분해지고 괜찮아.”
남편은 말이 없습니다.
눈물이 자꾸 나와서, 세수하고 나가봐야겠다며 일어났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내려오니, 남편이 한번 안아보자며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 말이 꼭 하고 싶었어.”

*******

지난해 9월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교회에 간 시간에 저는 집에서 참담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한참을 기도하는데, 너희 거덜나기 전에 해결한다, 는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 경제적 형편이 거덜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니 올해 안에 혹은 머지 않은 시간에 해결하시겠다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 안에 뭔가 해결이 된다면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교회개척과 관련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새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도 연말과 연초에 더욱 초조해지고 날카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아직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거덜나다, 바닥난다는 말이 경제적인 형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경험…을 포함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주신 감동에 대한 응답이었노라 할만한 간증을 언젠가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요즘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기도와 말씀 묵상과 신앙 서적을 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과는 다르게, 이 고난의 시간을 억지로 참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지금도 그 계획을 실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장2절-4절)

저에게 주어진 지금은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으며 기쁘게 인내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어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서 2장10절-13절)

또한, 한국에서와는 달리 기도 생활에서 멀어진 저를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부르시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무엇이, 내 계획, 경제적인 형편…이 하나님과의 사귐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3절-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