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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2024

우리들은 자란다




바람과 햇빛이 좋은 날, J는 아시안 식재료를 파는 마트에 구경 가자고 했다. J는 미국에서 첫발을 디딘 뉴올리언스에서 45년을 넘겨 살고 있다. 마트를 오가는 동안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민 이야기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났다.

70년대 끝 무렵, J는 먼저 도미한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에 남아 있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 도착한 J는 남부 시골 풍경에 무척 실망하였다. 미국이라면 영화에서 본 뉴욕처럼 높은 빌딩이 가득한 도시일줄 알았는데 J의 눈앞에는 녹슨 철도와 다리, 풀이 무성한 거리 뿐이었다. 서울 명동에 살면서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 사무직 공무원이었던 그는 이런 시골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집안에 틀어박혀서 티브이만 보던 그에게 어느 한인은 왜 젊은 사람이 놀고 있냐며 호텔 일을 권유했다. J는 그의 엄마와 함께 다운타운 한복판에 있는 하얏트 호텔 주방에서 접시 닦기를 시작했다. 호텔에서 일한 지 두어 달 지났을 때 그 모녀는 식품점으로 장을 보러 갔다

20대의 J는 예쁘장한 한국식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식품점을 둘러보던 그들에게 갑자기 강도가 다가와 J의 뒷목과 척추를 칼로 찌르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 그의 엄마는 딸의 가방을 되찾기 위해 강도를 붙잡았다. 강도는 엄마의 팔을 찔렀고 어수선한 상황을 보고 달려온 식품점 매니저의 어깨도 찌르고는 달아났다. J는 심한 장애를 입을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겨우 피했고 엄마와 함께 병원 치료를 받았다.

J는 호텔 의료보험이 좋아서 그 당시 병원비는 문제없었다며 그의 모험담을 마무리했다. 는 운전을 하면서도 다운타운을 지날 때 그가 일했던 호텔을 잊지 않고 알려주었다. 호텔 꼭대기에 있는 돔은 서울타워 레스토랑처럼 360도 회전하며 꽤 돋보이는 빌딩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트가 있는 동네에 들어서자 J는 이민 와서 처음 살았던 동네라서 익숙하다고 했다. 잊지 못할 장소에 와서 그랬는지 J는 그의 엄마에 대한 추억을 하나 더 들려주었다. 그의 엄마는 아주 씩씩하고 언변이 좋으셨단다

호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엄마는 재미난 말로 J의 고단함을 씻어 주시곤 하셨다. 엄마는 닭이 뭐라고 우는지 아느냐 물으시고는 수탉은꼬끼오~ I love you~”하고 암탉은 꼬끼오~ I don’t like you~”라고 대답하셨단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우스갯소리가 재미있는지 깔깔 웃는다.

J의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10년이 채 안 되었다. 그는 부모님을 가족이 모두 묻힐만한 넓은 묘지에 정성스럽게 모셨다. J여기는 엄마, 여기는 아빠유골이 묻힌 장소를 가리켰다. 부모님 곁에 자기가 묻힐 자리도 있다며 편안한 얼굴로 웃었다

부모님이 그리워 묘지를 자주 방문하는 J의 마음을 나는 알듯 모를 듯했다. 보통은 학교나 직장 혹은 결혼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는데 J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늘 함께 지냈으니 그 정이 더 깊은가 보다. J나는 여기서 살 거야. 부모님이 여기 계신데 어디를 가겠어라고 야무지게 말한다.

J는 호텔에서 8년쯤 일하다가 한식당, 코리안 하우스를 차렸다. 번화한 위치에 있던 한식당은 남동생까지 네 식구가 매달려 일했다. 그는 코리안 하우스가 지역내 유일한 한식당이어서 한국 연예인이나 고위 공직자나 유명 선수가 다녀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식당을 35년 동안 열정적으로 경영했을 J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J는 불쑥 자신이 젊었을 적에 아버지를 닮아 고지식하고 퉁명스럽고 말수가 적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교만하다고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현재의 J를 보면 마음은 따뜻한데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그렇게 보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J는 이제와 돌아보니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신문에라도 내야 할까? 그때 왔던 손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이야.”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실행하지 않을 해결책이었다.

부모님이 남겨 주신 추억이 J의 존재를 온통 감싸고 있다. 자녀에게 헌신하고, 당당하며 예의 바른 삶을 사는 J를 보면 말이다. 5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부모님의 사랑으로 오늘도 자란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15/2014

정직하고 친절한 기업들




얼마 전, 가끔 이용하는 백화점 콜스(KOHL’S)에서 수표(Check) 한 장을 받았다. 나에게 발행된 것이었다. 수표에 적힌 금액은 25달러였다. 수표 아래 쪽에 있는 메모 공간에는 신용카드 잔액을 환불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봄에 콜스에서 뭔가(이 몹쓸 기억력은 올 봄의 사소한 일들을 벌써 거의 잊었다)를 사고 그 백화점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사용한 금액은 그 다음 달에 어김없이 청구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몇 장 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지불 기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마감일 보다 몇 일 먼저 결제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하루 이틀 미루다가 콜스 신용카드 마감일 이틀을 남겨두고 온라인 뱅킹으로 결제를 시도했다. 보통은 이 결제가 당일이나 그 다음 날이면 가능하다. 여유롭게 들어간 온라인 뱅킹에서는 이틀이 지나 결제가 가능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불 마감일에서 하루 늦게 결제가 되는 것이었다. 우편으로 내 수표를 보낸다 해도 마감일을 넘기기는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뱅킹의 결제를 허락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그 백화점은 마감일을 넘긴 벌금으로 25달러를 나에게 청구했다. 마감일을 하루 넘긴 잘못은 분명 나에게 있었지만 25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고 너무 아까웠다. 난 그 벌금을 결제하기 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에게 결제가 왜 늦게 되었는지 설명을 한 뒤에, 그 동안 한 번도 마감일을 넘기지 않고 신용을 잘 지켜온 고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상담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시 돌아와, 일단 25달러를 내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에도 너그러이 벌금을 면제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환불을 어떻게 해 주겠다는 것인지는 말이 없었기에 잊고 지냈다. 한 달이 다시 지나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신용카드 잔액에 25달러를 넣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결국은 자기네 신용카드를 다시 사용하도록 해놓았지만 벌금을 받지 않고 돌려주어 고맙게 여겼다. 언젠가 콜스에서 그 잔액을 사용할 일이 있겠지 하고 넘겼다.

바쁘게 올 여름이 지나갔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매달 보내주는 청구서에는 25달러가 남아있음을 계속 알려주었다. 어서 사용하라고 재촉하는 듯하여 꼭 사야 할 생필품 가운데 25달러가 넘는 것을 찾고 있었다. 드디어 아이들 운동화가 필요했고 운동화 사는데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이어서 받은 청구서에는 그 25달러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에구구, 빨리 사용할 걸…… 그래도 그렇지 줬다 빼앗는 건 또 뭐람! ‘

조금 아쉬웠으나 콜스 쪽에서도 고객에 대해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보여주었다 여기기로 했다.

이렇게 몇 개월 동안의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나 싶었는데 콜스에서 수표가 우편으로 온 것이다. 25달러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수표로 말이다. ,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살짝 감동 받았다.

이웃 블로거(http://oldman-james.blogspot.com)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코스트코(Costco)에서 5월에 복숭아를 샀단다. 그는 얼마 전 이 복숭아에 박테리아 감염우려가 있어 리콜을 한다며 코스트코에 와서 환불을 받으라는 편지를 받았다.

이 복숭아는 이미 다 먹은 지 오래 전이고, 영수증도 없고 해서 환불 받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다 나처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코스트코를 방문하는 길에 점원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한다. 점원은 그의 멤버십카드로 거래 기록을 조회하더니 $7.87를 현금으로 손에 쥐어주더라는 것이다.

이웃 블로거는 많은 손실이 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감염 가능성의 사실을 판매상인 Costco에 알린 복숭아 과수원지기 혹은 중간 유통회사의 정직함, 몇 불 안 하는 복숭아 한 박스 구입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알리고 찾아 온 손님들에게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돈을 내주는 Costco라는 회사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다고 적고 있다.

적어도 이웃 블로거나 내가 경험한 기업들이 정직과 친절한 태도로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에게 신뢰가 가고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정직과 친절은 신뢰의 관계를 쌓아가는데 중요한 덕목들인 것이 분명하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덕목들을 실천한다. 하물며 이윤창출 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정직하고 친절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도와주시길 하나님께 빌어본다

8/26/2013

친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5년 반 만에 한국 방문. 한국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했습니다. 한국 방문이라기 보다는 고향 방문이 더 맞는 말 같습니다. 나라 전체를 다 돌아보는 것도 아니고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고향 언저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과 이천을 다녀오는 정도였습니다. 아파트 단지들이 크게 들어서고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곳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 다니던 주요 도로들은 그대로 있어서 다니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길도 한 두 번 오고 가면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기엔 어려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녹아 들어가 있는, 고향이 주는 편안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아버님이 사용하시던 자가용을 내주셔서 먼 거리를 가야 할 때나 가족이 함께 다녀야 할 때는 그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버스와 지하철이 서울과 위성도시들 웬만한 곳은 다 연결되어 있고, 버스 타고 여유롭게 바깥 구경하며 다니는 것이 좋기도 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기 위해서 사이 사이에 사람들과 뒤섞여 걷는 것도 좋았습니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 즐거운 점심 한 때를 보내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로 갈 길을 찾아 방향을 잡는데 저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야 하는데 도로 중앙으로 버스 정거장이 옮겨지고 나서는 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얘들아, 난 어디로 가야 되니?”
야 야, 얘 한국 왔다가 미아 되겠다. * *가 알려줘.”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남은 친구는 버스 정거장이 있는 곳만 알려주면 될 것 같은데 함께 걷습니다. 정거장에 도착해보니 말로만 듣고 왔으면 정거장을 찾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을 거 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방향이라도 버스 정거장이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도 갈 길이 먼 친구였기에 어서 가 보라고 하는데도 괜찮다며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제가 탄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서 있었습니다. , 이 느낌은 뭐지?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대학 선배인 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도록 돕고, 살아갈 동기와 희망을 주는 세미나를 하는, 유명 강사인 언니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언니와 만난 후에는 대학병원에 들려 아버님 주치의를 만나서 상담하고, 약을 타 가지고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어서 언니에게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시원한 병원 한 구석에서 읽을 책을 준비해왔기에 예약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는데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 너 병원 갈 시간까지 같이 있을 거야.” 똑 부러지는 언니의 대답이었습니다.
언니가 약속 시간을 착각해 늦게 나온 것이 미안해서 그러나.’ 혼자 생각했습니다.

병원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는 길이고 걸어가도 되는 거리입니다. 언니는 같이 가자, 며 함께 걷습니다. 걷다 보니 전에 알던 건널목이 없어지고 작은 터널을 지나서 길을 건너도록 바뀌어 있었습니다. 새로 지어진 병원 건물의 입구도 언니가 아니었으면 헤맬 뻔 했습니다. 언니는 제가 가지고 간 진료 예약증을 내 놓으라고 하더니 접수 창구까지 데려다 줍니다. 이 창구를 찾기 위해서도 몇 번 물어봤어야 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언니는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 이 느낌은 뭐지?
  
   여러 번 이사하면서 전화번호가 바뀌어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진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친구 찾기를 해 보았는데 찾아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 잠깐 있는 동안 친구가 제 페이스 북에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입니다. 바로 전화해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톤으로 이게 왠 일이니, 호들갑을 떨면서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잘 어울리던 다른 두 명의 친구들도 연락이 되어 같이 만났습니다. 사는 모습이 넉넉해진 그들의 생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흐뭇해서 웃고, 아이들 대학 입시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는 분명 한국말인데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과 준말들이 많아서 어이 없어서 웃는 시간이었습니다.

친구가 가져온 자가용의 GPS 덕분에 친구들과 수다 떨던 커피 집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을 어렵지 않게 찾았고, 긴 시간 정차할 수 없는 곳이었기에 서둘러 내렸습니다. 중간에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처음 만난 익숙한 장소에서 엄청 멀어져 있었습니다. 서울 변두리에 가까운, 처음 본 지하철 역이었습니다. 친구들이 탄 차가 움직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잘 가라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나만 뚝 떨어뜨려놓고, 살짝 아쉬움이 찾아오려는 순간이었습니다.
   “* *, 잘 찾아갈 수 있지?”
먼저 연락이 닿았던 친구가 자동차의 창문을 내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 이 느낌은….

멀리서 오랜 만에 고향을 방문한 친구가 길을 헤매지 않도록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는 친구들의 배려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아닌 척 살지만 외국에서 사는 것이 외롭긴 한가 봅니다. 그 감동이 지금까지도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니 말입니다. 친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을 적어봅니다. 그것은 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