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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2008

12/01/2005 - 사랑을 꿰매는 아이


강윤이가 밤늦게 까지 바느질을 합니다.
'샘'에게 드릴 하트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학교에서 바느질 한다고 준비물을 챙겨 달랬습니다.
뭐 할거냐고 물으니 책을 펼쳐 보여줍니다.
홈질, 박음질...바느질 상자를 열어 새 바늘과 실, 쪽가위를 챙깁니다.

바느질 천으로는 오래 전 생활한복 만들고 남은 천을 아낌없이 잘라줍니다.
그 천 조각들은 왠지 언젠가 꼭 쓸 곳이 있을 것 같아 잘 보관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윤이가 바느질 연습을 한다니까 다른 천 조각들도 많이 있는데 이상하게 맘에 들어 아끼던 그 천으로 손이 갑니다.
빈 화장품 상자에 바느질 도구들을 담아 주니 강윤이가 조금 신이나는 것 같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엄마가 정성껏 챙겨줄 때면 강윤이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엄마, 애들이 하트 만들어달래."
"무슨 하트?"
"저기 저런 거. 내일 까지 세 개나 해야 되는데. 엄마가 도와 주면 안돼?"

언젠가 바느질 할 때 옆에서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여 천을 주었더니 "엄마 사랑해" 하며 만들어 놓은 하트 무늬를 말하는 것입니다.
"재규는 하트를 쿠션으로 해달래."
학교가서 뭐라고 했길래 그런 주문을 받아왔는지....


요즘 우리 속회에서는 모임이 끝나고 퀼트를 배우고 있습니다.
퀼트 강사를 했던 지연 자매가 자기가 모아두었던 천을 거저 내어주며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퀼트를 좋아하는 나도 얼씨구나 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핀쿠션을 만들었고 다음으로는 하트 바구니입니다.
하트 바구니는 동서 생일이 가까이 있기에 선물로 주려고 만들었습니다.
엄마가 하트 바구니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터에 학교에서 바느질 한다니까 아이들에게 '하트 쿠션 어쩌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이 무심한 엄마는 "야, 언제 3개씩이나 만들어! 그 시간에 기말시험 공부나 하지!!." 했습니다.
학원에 안다니는 대신 우리는 기말시험 문제집을 사서 저녁마다 풀기로 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어제입니다.
강윤이는 멋쩍게 있다가 "에이, 잘래" 하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두 아이가 모두 방으로 들어가고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두꺼운 종이에 하트를 그려 오려내고 강윤이에게 준 천에 하트를 3개 그려넣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강윤, 하트 3개 그려놨어."


이 날 강윤이는 저녁을 먹고는 열심히 바느질을 합니다.
뭐 하나 봤더니 하트 모양을 홈질하고 그 가운데에 '사랑 샘' 이라고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야?"나는 샘솟는교회의 '샘'을 떠올리며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나 홈질 잘한대. 선생님 드릴려구."
아! 사랑스러운 내 아들.

어제 일도 미안하고 하여 강윤이 기를 살려주기로 합니다.
"강윤아, 평면으로 하지 말고 하트 쿠션으로 만들어 드릴까? 니가 앞에 글씨 홈질하면 엄마가 쿠션 만들어줄게."
"정말? 솜 넣어서?"
엄마가 만드는 것을 보고 자겠다기에 잠잘 시간을 뒤로 미뤄 주는 아량도 보여주며 꼼꼼하게 하트 쿠션을 마무리 합니다.

무슨 때도 아닌데 강윤이 선물을 받은 선생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 지 자못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뭐라셔?"
"고맙대."
"또 뭐라고 하셔?"
"고맙다고 그랬다니까. 앞에는 내가 하고 뒤에는 엄마가 했다고 했어. 그랬더니 고맙대."

난 뭘 기대하고 자꾸 물어보는지...

선생님에게 뭔가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뭔가를 마련하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과의 관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강윤이 담임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을 종이 위에 드러내는 것은 서툴지라도, 봉사 정신이 있는 아이로, 리코더를 제일 잘 부는 아이로, 홈질을 잘 하는 아이로 인정해 주시니 말입니다.

선생님의 인정과 엄마, 아빠의 관심이 강윤이 자신에 대해 기분좋게 여기면서 자신감을 갖게 하나 봅니다.
하나님, 엄마, 아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강윤이 삶에 튼튼하게 꿰매어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빌어봅니다.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한 아이는 다음과 같은 것은 갖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이 확립된다.
-건전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뻐져들지 않는다.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이 생긴다.
-도전을 피하지 않고 환영하면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지능이 발달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폭력, 성적인 접촉, 극단적인 행동, 약물 남용 들 위험한 행동을 피한다.

월트 래리모어,<세상에서 가장 독한 엄마가 되라> 가운데서

10/25/2005 - 덕분에

*만남 하나.
지난 주에는 두 분의 생신 축하가 있었습니다.
사돈지간인 아빠와 어머님 생신이 음력으로 같은 날입니다.
해를 달리 하여 강화에 한 번, 인천에 한번 가다가 우리 가족이 김포로 이사온 뒤로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직계 가족과 동서 어머니까지 모두 김포에서 모이는 날로 정하였습니다.
만나면 생신 선물도 드리고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서 음식도 대접하곤 합니다.
그리고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그 아이들이 커가면서 믿음이 자라고 제 역할들을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올해는 하남에 사는 동서네가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하여 그리로 나들이 했습니다.
집에서 꽤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음식점에 이르러 생신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새 네 살이 된 예람(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와 예희(예수님의 기쁨)가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아빠와 어머님은 나란히 앉아 촛불을 힘차게 끄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을 지켜주시고 우리 가족이 믿음 안에서 더욱 든든해지길 기도했습니다.


정겨운 식사가 끝나고 아빠는 동서와 서방님에게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어머님은 "야, 나도 너희 덕분에 맛난 것 잘 먹었다" 하십니다.
동서 어머니는 " 왠걸요? 이렇게 먼 데까지 오시라 해놓고." 하십니다.
그러자 엄마는 " 덕분에 이렇게 좋은 데도 와보잖아요" 하십니다.
오고가는 시간보다 더 짧은 만남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느끼지 못합니다.
뿌듯하고 따뜻한 기운만이 잔잔하게 우리를 싸고도는듯 합니다.

우리 집에 다와서 제가 얼른 내려 차 뒷문을 열어드립니다.
어머님이 내리시길래 "어머님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어요!" 했습니다.
어머님은 "얘는~".
말을 하고보니 우리는 모두 오늘의 즐거움을 서로의 '덕(德)'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5:18)


*만남 둘.
'아차, 사진을 안찍었네!'
송정역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타고서야 알았습니다.
어제 신학교 동기들을 만났는데 사진기만 무겁게 들고 다녔지 정작 사진은 찍지못한 것입니다.
그리운 얼굴들을 사진에 꼭 담아오고 싶었는데 앞으로도 마음으로만 그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김포 들판을 스쳐 지나가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풍성함, 감사함, 신선함, 고독, 그리움...혹은 허탈함, 좌절감.
우리네 생활 흐름이 한 해 단위로 짜여진다고 할 때, 이 가을은 한 해의 열매를 볼 수 있는 계절인듯 싶습니다.
그 열매를 보며 크든 작든 감사할 수 있다면 풍성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을 것이고그 열매에 만족할 수 없다면 답답하고 힘빠지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또 가을은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이지 싶습니다.
햇빛이 강렬했던 여름과는 달리 활동하기 좋은 기온과 신선한 공기가 사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우울해져서 모든 일이 텁텁하게만 여겨집니다.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은 인간의 행동이나 기분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이 멜리토닌은 여러가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분비되는데 그 가운데 햇빛도 주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일조량이 적은 북반구나 미국 시카고에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많고,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는 것도 그 이유랍니다.

모든 일이 심드렁해지고 힘이 없다고 느낄 때 햇빛을 찾아 나들이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구요.
지구에 발딛고 사는 저도 이래저래 올해를 마감하기까지 한층 열심을 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고, 소중한 사람들도 더 가까이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랬는지 동기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는 할 일을 제쳐두고 가겠다고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입학할 때 신학과 180명 가운데 여성은 18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어엿한 감리교 목사가 되기도 하고 목회 동역자가 되기도 하고, 전도사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교계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기획사 사장도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고 젊었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이렇게 편안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이제는 자주 보자"는 말을 가장 많이 남겨놓고 돌아왔습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가족들과의 만남도 밋밋한 이 가을을 넉넉하게 해주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롬15:33)

08/12/2005 - 바다 낚시


"어? 걸린 것 같은데!"
"그럼 건져봐."
"야, 4 마리다. 어떻게 넣자마자 잡냐!"
"강윤이 처음 낚시 할 때도 2 마리를 한 번에 잡더니. 강윤이, 할아버질 닮아서 낚시할 줄 아나본데~~"

주변에서 휴가를 가네 오네 합니다.
우리는 휴가가 언제냐고 강윤이가 묻지만 우리는 "글쎄" 합니다.
친구 목사와 이런저런 일로 전화를 하다보니 휴가는 언제 가냐는 질문을 또 받습니다.
"아직 계획이 없는데."
그러자 친구 목사는 답답하다는듯이 "그럼 계속 그렇게 살어" 합니다.

남편은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낚시꾼이신 옆집 아빠에게 여쭈어봅니다.
"식구구들하고 아버님 잘 가시는 바다 낚시 가면 어떨까요?"
"좋지! 그렇지 않아도 방학 동안 아이들 데리고 낚시 한 번 가야되는데 했어."

어느새 옆집 아빠는 낚시 달력 앞으로 가셔서 자세히 보시더니 손가락을 꼽으며 돌아오십니다.
"음, 이번 주 목요일, 다음 주 월요일, 화요일 괜찮겠는데. 물이 많을 때가 고기가 잘 잡히거든."
"그럼 아이들 학원 방학이 이번 주까지니까 목요일(4일)에 가시죠?"
"알았어."

하루에 갔다와야 하는 일정이기에 새벽기도 끝나자 마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새벽기도 나가면서 아이들을 깨워 세수하고 옷입고 있으라고 해놓았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 가족 즐겁고 행복한 시간되도록 함께해 주세요. 오고 가는 길도 안전하게 지켜주시구요.'
우리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교회 식구들이 보통 때보다 10분이나 일찍 기도를 끝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집에 와보니 강산이는 간식을 봉투 몇 개에 나누어 어설프게 담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윤이는 옷입고 다시 자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가자!"
벌떡 벌떡.
잠 자리를 그 까잇껏 대~충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과 옆집 부모님은 벌써 1층에 내려가 계셨습니다.

저와 우리 아이들은 그 단조로운 고속도로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운전하는 남편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누리는 '쉼'의 맛을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적지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휴게소가 주는 기쁨을 뒤로 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려갑니다.

홍성 나들목을 지나 태안, 안면도 쪽으로 가다 보니 천수만이 나옵니다.
바다를 갈라 만든 길 오른쪽은 논이고 왼쪽은 바다인데 길에서 멀지 않은 바다 위에 여러 낚시터 좌대가 떠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기예보에서 흐리고 약간의 비가 온다고 해서 오히려 바다낚시 하기에 좋겠다 했는데 이 곳에 와 보니 파란 하늘에 엄청 큰 뭉게구름이 한여름 날씨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만길호' 라고 쓴 배가 우리 앞에 와서 닿습니다.
"어이, 김사장."
이 낚시터 단골이신 아빠가 배 키를 잡고 있는 분께 손을 들어 인사를 하십니다.
"인천 사장님 오셨어요."
낚시터 사장님의 인사입니다.
여기서는 호칭이 사장님으로 통하나봅니다.

삼형제가 운영하는 만길호 낚시터에 도착해보니 이른 8시30분 쯤 되었고 손님은 우리 뿐이었습니다.
주말에는 30 여명의 손님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러면 낚시터가 꽉차서 정신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낚시터 사장님은 손님이 많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자리도 널찍하게 차지할 수 있고 낚시터가 한가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낚시터 사용료는 성인 남성는 3 만원, 성인 여성은 1 만원, 아이들은 무료입니다.
아빠는 사용료가 아깝지 않게 숭어를 30 여 마리씩 잡으시곤 하셨습니다.
오늘은 초보 낚시잡이 남편이 잘해보려는듯 떡밥에 낚시 바늘 끼우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낚시터 사장님 설명에 집중을 합니다.

저는 아빠를 따라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번 낚시터를 다녀봤습니다.
낚시동호회에서 가는 것이기에 모두 아저씨들 뿐이고 어쩌다 아내하고 같이 오는 아저씨가 한 분 정도 있었습니다.
낚시에 따라가서는 하루 종일 낚시 찌만 바라보다 왔습니다.
때로는 낚시터 주변에 동네가 있으면 혼자 둘러보곤 했습니다.
낚시꾼 딸답게 말없이 홀로 있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낚시터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아빠에게 2 대씩 주어진 낚시대 가운데 하나씩을 꿰차고 앉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강윤이는 질문을 연이어 해댈테고 강산이는 물고기가 입질을 해도 다른 사람은 낚시대 만지지도 못하게 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옆으로 가라는둥 어른들과 아이들이 자리 다툼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큰 사장님은 작은 사장님에게 소리를 칩니다.
"야, 전어 끼워서 두 개 가져와."
전어를 잡는 낚시 바늘을 끼운 낚시대를 가져오라는 말입니다.


어른들 낚시 자리와 다른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시더니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닐낚시 줄을 바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풀어주고 조금씩 들었다 놨다 하면 멸치가 잡힐 거라고 하셨습니다.
강산이와 강윤이는 자기 낚시대가 생겨 좋아라 하며 그럴듯한 자세로 낚시대를 드리웁니다.

그러기를 1분이나 지났을까.
강윤이 낚시대에 은색 왕멸치가 4 마리나 잡힌 것입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멸치잡이는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게 했습니다.

새우 모양을 한 낚시 바늘이 7 개 달려 있는데 한번 내려보내면 보통 서너 마리씩 올라오고 7 마리가 잡힐 때도 있습니다.
낚시 줄을 풀자마자 거두어 들여야 할 정도로 신나게 잡혔습니다.
옆집 엄마는 하루 동안 잡은 멸치를 보시더니 올 김장은 충분히 하겠다고 하십니다.


숭어잡이는 멸치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다른 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잡으시던 아빠에게도 잘 잡히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작은 것 두어 마리와 제법 큰 것 서너 마리가 전부입니다.
남편은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빠 낚시에 걸린 숭어를 끌어 올리는 '손맛'을 겨우 느껴보았습니다.


이른 10시 반 쯤 되어서는 아이들이 출출한 지 컵라면을 먹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장님은 물을 끓여주시더니 그 동안 잡은 숭어를 회로 쳐오셨습니다.
숭어회가 고급 횟감은 아니지만 바다 위에서 먹는 맛이 더해져서 그런지 아주 맛나게 먹었습니다.

옆집 엄마가 준비해 간 밥과 반찬들, 그리고 음식점 하시던 솜씨를 발휘해서 끓인 숭어 매운탕은 달디 달았습니다.
싸가지고 간 반찬과 과일, 간식은 낚시터 사장님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 중요한 준비물 한가지.
바로 물입니다.
바다 위라 깨끗한 물이 귀합니다.
마시기도 하고, 커피, 라면,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나중에 씻을 물로도 사용하면 좋습니다.


살이 벌겋게 익는 줄도 모르고 하루가 갔습니다.
늦은 6시면 낚시터가 파장을 한다고 합니다.
뒷정리 할 시간으로 한 시간쯤 여유를 두고 낚시대를 접었습니다.

우리가 잡은 숭어가 많지 않아 낚시터 사장님들이 잡아놓은 숭어를 보태어 가지고 가기 좋게 손질을 해주십니다.
남편과 아빠, 엄마는 다음에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만길호에 올라 먼저 뭍으로 가셨습니다.

두 번째 배에 탄 아이들은 올 때는 미처 못보았는지 배 옆으로 갈라지는 파도를 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배를 더욱 세게 몰아 더 큰 파도를 보여주셨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릴수록 낚시터 하늘 끝에 걸려 있던 뭉게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얗고 뽀얀 구름은 어느새 청회색이 되어 멀리 보이는 산 위로 흘러 내리는듯 합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세간에 말많은 어느 휴게소에 이르자마자 온통 먹구름이더니 쏟아붓듯 비가 옵니다.
갑자기 오는 비에 사람들이 술렁거립니다.
마치 우리가 그 비를 몰고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녁 먹는 사이에 그 소나기는 지나가고 어둑어둑한 하늘과 조금은 서늘해진 기운이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소란스럽거나 지나치게 피곤하지 않으면서도 낯선 풍경 속에서 가진 새로운 경험들이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하시는도다"(시103:5)

5/28/2008

07/28/2005 - 다 너희들 꺼야


강화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삼계탕 먹게 모두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학교 때 수고도 했고 이것 저것 가져갈 것도 있다고 하십니다.
무슨 날인가...남편은 어림잡아 "중복 아냐?" 합니다.

옆집 부모님과 모두 강화로 출발.
엄마는 강화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가자고 하십니다.
엄마는 강화에 가져갈 과일로 제일 좋은 포도를 고르셨습니다.
이웃과 나누기를 너무 좋아하는 엄마다운 선택입니다.

어머님은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추어 삼계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대로 된 삼계탕이었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영계에 어머님이 농사 지은 찹쌀을 가득 넣고 뒷마당에서 따놓은 대추와 강화 인삼과 황기가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한상에 둘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특별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남편이 식사기도를 하고 모두 숟가락을 들고 나서는 오랜만에 영양보충 하려는 사람들처럼 말없이 먹기만 했습니다.
옆집 엄마만 삼계탕과 반찬들을 가리키며 어머님에게 "아주 맛있어요.
이것도 맛있고 이것도 맛있고" 하셨습니다.

양쪽 부모님 모두 부지런하셔서 먹고 난 상을 그냥 두고 보는 사람들이 없는지라 저녁 먹는 일이 끝나고 상이 순식간에 치워졌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남자 어른들은 포도를 드시며 얘기를 나누십니다.
여자들은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져갈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쌈으로 먹을 수 있는 깻잎, 상추, 호박순을 땄습니다.
바다 둑에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오고 텃밭 일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할머니들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깻잎을 따서는 한손에 차근히 모으시는 어머님을 바라보던 강윤이는 "할머니는 손이 큰가봐. 이거 봐. 이렇게 많은걸 한손으로 잡잖아" 합니다.
강윤이한테는 농사 전문가인 강화 할머니라기 보다는 손 큰 할머니로 보였나봅니다.
마늘도 가져가기 편하게, 쓰레기 된다고 줄기와 뿌리를 떼어냅니다.
마늘을 담고 있는 것을 보더니 강윤이가 또 한마디 합니다.
"가져오는 것은 별로 없는데 집에 갈 때는 엄청 많이 가져가!"
순간 이런 상황에서 강윤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강윤이 대답이 이번에는 시시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옆집 엄마는 이 때를 놓칠세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늘 감사해야 돼. 이게 다 얼마나 귀한 건대."
나는 '오늘 가져갈 것이 많지 않은가 보다' 싶어 손톱에 물들일 봉숭아를 따러 가자고 했습니다.
어머님은 "그래라" 하시고 아이들은 얼른 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옆에 옆집 할머니 권사님네 마당에 봉숭아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습니다.
해마다 봉숭아 꽃을 부탁해도 언제나 마련해 주시는 어머님이 좋습니다.
"자, 이제는 가시죠?" 남편이 말하자 덧붙이는 말 한마디 없이 모두들 일어섭니다.
사돈끼리는 그리 긴 말이 필요없나 봅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오이 김치와 깻잎 무침을 가지러 들어갔다 나오니 식구 모두가 창고에서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옵니다.
새로 찧은 쌀, 옆집 엄마 야채스프를 위한 무, 오이, 참외, 토마토, 콩, 아까 다듬어 놓은 마늘과 쌈...
강윤이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일을 같이 하다보면 어머님은 "이게 다 너희들 꺼지 뭐냐?" 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녀에게 헌신적일 수 있는지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한 강화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 가득 채워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옆집 부모님이 강화에 여러 번 왔어도 고인돌을 아직 못보았다고 하셔서 잠깐 둘러보았습니다.
남편은 강화 사람답게 고인돌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가는 고인돌은 뒷부분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고인돌은 앞쪽(북쪽)에서 바라봐야 더욱 웅장한 모습과 조형의 신비함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밤은 열대야가 두렵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강화 부모님과 어릴 적 한밤 중에 일어나보니 모기를 쫓느라 당신들은 잠을 설치던 옆집 부모님 사랑에 겨워 한 여름 열기쯤은 거뜬히 이겨낼 듯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05/18/2005 - 모내기


밖이 우중충 합니다.
비는 오지 않으나 옅은 회색 구름이 하늘에 한가득입니다.
바로 이런 날씨가 딱입니다.
강화 망월 부모님도 "음~ 아주 좋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뜬금없이 흐린 날 타령을 하는 것은 커피나 한 잔 마시며 감상에 젖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날이 모내기 하기에 또는 모낸 다음에도 좋다는 농심(農心)을 흉내내 본 것입니다.

어제 그제는 망월부모님을 도와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하는 일을 오랫만에 한지라 몸이 말이 아닙니다.
허리는 말할 것도 없고 팔뚝이며 허벅지가 결리고 당깁니다.
옆집 아빠도 저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좀 어떠세요?"하고 문안을 여쭈니 "괜찮다" 하십니다.
"괜찮기는... 온몸에 파스로 도배를 하셨다" 엄마의 고자질입니다.
아빠의 딸 사랑은 대단해서 "딸이 못일어났을테니 가서 얘들 챙겨서 학교에 보내" 라고 엄마에게 부탁하셨답니다.

남편은 새로 산 이앙기에 앉아 운전하는 일을 했기에 덜(?) 힘든 것 같습니다.
남편은 이앙기 뿐 아니라 경운기, 트랙터도 잘 몹니다.

옆집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 해마다 이렇게 도왔니?" 물어보십니다.
"이렇게 힘든 일은 잘 안시키셔. 어쩌다 하는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은 "이 사람아,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거야" 합니다.
학교에 갔더오면 쓰레질 하고 물 위에 떠있는 지푸라기 건져내는 일을 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새삼 남편이 다시 보였습니다.

아빠와 저, 남편은 몸 상태가 보통 때와 같지는 않지만 힘들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일하고 계실 망월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초에 모내기를 하신다기에 이미 힘든 모내기를 경험해본 터라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등하교는 옆집 엄마가 맡기로 하셨습니다.
아이들 책가방이며 옷을 미리 챙겨 옆집에서 자고 학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애들은 할머니네서 잔다고 하면 그저 좋아합니다.


모내기 첫 날.
새벽기도 갔다와서 아침을 일찍 먹고 강화에 도착해 보니 아버님 어머님은 벌써 논에 나가 계셨습니다.
우리는 모판을 떼어 못자리한 논 둑에 올려놓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여럿이 할 때는 옆사람에게 넘겨주면 되니까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앙기 운전하러 가고 어머님은 떼어놓은 모판에 약주러 가시고 나머지 세 사람이 할려니까 발이 쑥쑥 빠지는 논을 헤집고 걸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장화는 왜 이리 크고 미끄러운지 논 속에 박혀 계속 벗겨집니다.
모판 나르랴, 플라스틱 판으로 모를 판에서 분리하랴 ,이앙기가 되돌아오면 올려주랴, 다 쓴 모판 날라 정리하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발만 안빠져도 좋겠는데 쓸어놓은 논을 걸어다니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은 논에서 걷다가 장화는 흙 속에 남아있고 발만 쏙 빠져나와 흙으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양말을 벗어버리고 장화를 신으니 오히려 덜 미끄러지고 걷기도 수월합니다.

너무 힘들어 하니까 어머님은 다른 논은 들어가지 않고 둑에서 모를 내어주면 되니 덜 힘들 것이라고 소망을 주십니다.
'그 동안 사람이 밀고 다니는 이앙기로 모를 낸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올 해 망월부모님은 큰 맘 잡수시고 두 집이 어울려 이앙기를 새로 장만하셨습니다.
사람이 올라 앉아 운전을 하는 것으로 운전자는 모가 모자라면 보충만 해주면 됩니다.
또 전에는 4줄 씩 모가 심겼는데 이제는 6줄 씩 심깁니다.
더 비싼 이앙기는 8줄도 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얘기나 신앙 얘기를 곧잘 들려주시는 어머님은 이앙기를 어떻게 바꾸게 되었나를 잠깐 쉬는 틈에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듣다보니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섣부를지 모르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앙기 하나 바꾸면 모판도 바꾸어야 하고 모판에 씨넣는 기계도 바꾸어야 합니다.
농사에 필요한 기계는 이것 말고도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가 있어야 합니다.
논 갈 때 트랙터를 쓰고 트랙터 한 부분을 바꾸어 벼베는 콤바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기계를 만들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수지가 안맞아 안만드는 것인지.

점점 허리 펴기가 힘들어지고, "이럴 땐 그거 한잔 있으면 좋은데" 하시며 눈을 찡긋해 보이시는 아빠와 이앙기 위에 앉아있는 남편은 안경이 흘러내려 코끝에 걸려있는데도 올릴 생각을 안하는 걸 보니 오늘 많은 시간 일을 한듯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은 일과 관련된 말씀 밖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순간 내일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이틀에 걸쳐 해야 할 일을 오늘 조금 더 하고 내일은 반나절만 하자고 하십니다.
'으아~~'

돼지갈비, 조기구이, 두부, 달걀찜, 보신탕 혹은 추어탕 혹은 조갯살 넣은 미역국-각자 선택- 따위의 단백질 식품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기운을 차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윤이가 특종이 있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자기는 예절상을 탔고 형은 질서상을 탔다는 것입니다.
"대단한데"
"그럼 뭐 사주면 안돼?"
"뭐? 아이스크림?"
"응. 그게 내가 바라던 바야. 마음이 통했네."
남편은 전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문닫을 시간이 다 된 마트를 향해 차선을 위반해서 U턴을 합니다.
마송에서 제일 큰 마트에 정차해 남편은 선뜻 내리더니 아이스크림을 3통이나 들고 나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자기가 두고 먹으려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안길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내기 둘쨋 날.

내일 온다는 비가 어찌 앞당겨졌는지 오늘 오후부터 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디 비오기 전에 모내기를 끝내기를 바랐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아버님은 먼저 모를 심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아버님은 남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아빠와 모판을 나르러 가셨습니다.

사돈지간에 이렇게 긴 시간 어울려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님은 농부로 아빠는 노동자로 생업을 삼으셨고, 아버님은 장로님이시고 아빠는 교회에 겨우겨우 나가는 초보신자입니다.
아버님은 격식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 편이고 아빠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하시는 내내 서로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논에 모내기를 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제법 떨어집니다.
우리는 바람도 막을 겸해서 비옷을 챙겨입었습니다.
비가 오다 말다 합니다.
널찍 널찍 떨어진 곳에 예닐곱 사람이 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이정도 비는 아랑곳하지 않나봐요." 했더니 아빠는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했잖아" 하십니다.


못자리에서 마지막 모판을 가지고 오신 아버님은 비옷을 입은 우리를 보시더니 오히려 이런 날이 모내기에 좋다고 하십니다.
"모내고 3일은 솥단지를 끼고 도망간댜. 무슨 뜻인지나 아냐?" 아버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여직 들어본 속담에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뭐라고 뭐라고 설명은 하신는데 그 뜻이 얼른 이해가 안갔습니다.

어머님에게 다시 여쭈어 보고서야 "아하!" 했습니다.
어머님은 '모내기'를 말하자면 모가 못자리에서 논으로 시집간 거라고 하셨습니다.
모내기를 하고난 3일 동안은 옮겨 심은 모가 힘이 없고 비실비실해 보인답니다.
그런 논을 보면서 이걸로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 가버린다는 말이랍니다.
그러니 모내기 할 때나 모낸 다음에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지만 않는다면 날이 흐리거나 비가 조금 오는 것은 오히려 모에 좋다는 것입니다.


*******
아까보다 밖이 환해졌습니다.
내다보니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시원스럽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강윤이에게 물어보니 바람이 세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도 남은 일을 하고 계실 망월부모님에게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05/04/2005 - 봄 운동회에서 생긴 일

어제는 강산이와 강윤이가 다니는 마송초등학교 봄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소풍만큼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석 주 동안 무용과 경기 연습을 하느라 검어진 강윤이 얼굴을 볼 때마다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네번째인 강산이는 그 동안 무용을 제대로 해내서 이번에도 잘 하리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무용은 3, 4학년이 함께 한다고 하여 강윤이를 통해 형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강산이는 준비물에 대한 전달이 되지 않아 이리저리 알아보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무용 준비물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강윤이와 똑같이 준비하면 되니까요.

이 곳 운동회에서는 부지런해야합니다.
그늘지고 아이들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으려면 말입니다.
집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우리는 넓은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옆집 엄마가 아이들과 8시30분쯤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보니 좋은(?) 자리는 새벽 6,7시부터 돗자리가 깔려 있었답니다.
저는 그 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해보니 엄마와 집사님들도 그런대로 괜찮은 운동장이 잘 보이는 관중석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점심으로 준비한 밥과 돼지불고기를 바쁘게 내려놓는데 옆을 흘깃보니 강산이가 앉아있었습니다.
"어, 너 왜 여기 있어? 너네 반 자리로 가야지!"가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4학년 경기 하나가 있었는데 할머니 옆에만 있으려고 해서 특수학급 최선생님이 달래고 엄마가 협박을 해서 겨우 경기에 참여시켰다는 것입니다.
"너 저기 안가면 할머니 집에 못올줄 알어. 정말 안가? 집에 가서 아주 혼날줄 알어. 얼른 가!"
고강도(高强度) 으름장이 있었다고 엄마가 알려줍니다.

순서지를 보니 곧 4학년 단체 경기가 있을 것 같아 강산이를 슬슬 구슬리고 있는데 마침 최선생님이 오셨습니다.
4학년 아이들이 경기 준비를 위해 운동장 뒤쪽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동시에 보였습니다.

"야, 얼른 가자. 강산이 하는 거 할머니랑 엄마한테 보여드리자. 강산이 연습 많이 했지? 강산이 잘 하잖아...."
"강산이 저기 안가면 핏자 못먹어! 조금 있으면 점심 먹을건데. 고기도 있다."
"가 하구 와. 강산이 하는 것 좀 보자!"
최선생님과 저, 집사님들까지 강산이를 움직일만한 말을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한참을 들은 척도 안하고 있더니 어찌 어찌 해서 겨우 운동장으로 내려가 최선생님과 함께 자기 반 줄로 갑니다.
"휴~"

한숨을 돌리며 강산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자, 와 줬지!' 하듯이 몸을 돌려 혼자 다시 돌아옵니다.
강산이가 관중석 우리 자리로 올라오기 전에 얼른 내려갑니다.
말로는 되지 않을듯 싶어 강산이 뒤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밀어봅니다.
그런데 "이잉~"하면서 무거운 몸을 뒤흔들어 내 손을 빠져나와 축구 골대 앞에 앉아버리고 맙니다.
'뒤에는 관람석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하긴 우리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겠지.'
뒤엣 시선은 애써 외면하고 강산이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흙만 만지작 만지작.
최선생님도 다시 오셔서 강산이 옆에 앉으셨습니다.

"선생님, 강산이 그냥 여기 있으면 안될까요?"
"안돼요. 그러면 다른 것도 다 안하려고 할 것 아네요. 안돼요 가야 돼요."

강산이는 땅바닥에 '김강윤 김강윤'을 썼다 지웠다 합니다.
이럴 때 왠 김강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은주 바보'를 썼다 지웠다 하며 혼자 웃습니다.

도대체 강산이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땅에 무언가 쓰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웃었겠지'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담임 선생님을 따라 자기 반으로 가서 섭니다.
강산이가 경기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최선생님은 강산이 바로 뒤에 서 계셨습니다.

그래도 경기는 못했습니다.
자리에서 안 일어나서.
답답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3,4학년 무용시간.

강산이가 또 안한다고 할까봐 얼른 달려가서 무용할 때 껴야되는 흰장갑을 꺼내옵니다.
동기유발이 될까 싶어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와 율동을 좋아하는 강산이는 장갑을 선뜻 받아들더니 자기 줄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아이들과 장난을 칩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20 여분 가까운 시간을 엄마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아이들과 어울립니다.


이때다 싶어 강윤이를 찾아봅니다.
어찌 내 아이는 그리 빨리도 눈에 띄는지요.
마침 강윤이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시길래 강윤이와 함께 사진도 찰칵.
"잘해. 이따 엄마가 강윤이 무용하는 거 사진 찍어줄게."
그리고는 또 강산이를 찾습니다.
기대했던대로 강산이는 즐겁게 무용을 잘했습니다.
아이들 속에 어울려 한껏 웃으면서.

강윤이에게로 달려가 무용 동작이 바뀔 때마다 셔터를 눌러댑니다.
제 할 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이 아들이 있어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 강산이에게 모아지고,형은 못해도 괜찮은데 자기에게는 늘 잘하라고 하는 것이 불만스러운 강윤이.
그래서 마음과는 달리 비뚤어진 말을 해대는 강윤이.
엄마는 이 아들이 자랑스럽고 든든한대 아직 강윤이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점심 시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많습니다.
점심도 그렇습니다.

그 때 제가 살던 곳에는패스트 푸드 파는 가게도 없었거니와 집집마다 최고로 맛난 반찬을 자랑하듯 도시락을 싸 왔습니다.
한술 더 떠 고향이 강화인 집사님은 가마솥 걸어놓고 동네 잔치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핏자와 치킨, 밥과 과일을 준비해 먹고 싶은대로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식사 준비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 시간이 끝나자 바로 5,6학년 여자 아이들의 고전무용이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색의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드라마 대장금 시그널 음악에 맞추어 운동장으로 들어옵니다.
단아하게 인사를 하고 무용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집사님들과 함께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무용 배경 음악은 '아리랑 목동'.
어찌 빠르고 경쾌하던지 고전 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산이와 강윤이는 모두 백군인데 올 해는 어찌되 일인지 백군이 영 시원치않습니다.
경기마다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학부모 줄다리기와 남자 이이들 청백계주만 남겨 놓았습니다.
이 두 경기만 이기면 점수를 뒤집을 수도 있는데...

"학부모 줄다리기에 참가할 분은 모이라"고 방송을 합니다.
저는 나가지도 않으면서 힘 좀 쓸 것 같은 이웃 엄마에게 나가서 백군에 힘 좀 보태라고 떠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선생님이 어느새 오셔서 "강산이 엄마, 종남이 엄마, 얼른 나가세요. 얼른" 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까지 일부러 오셔서 나가라고 하시는 선생님 마음을 몇 초간 헤아려봅니다.
아마도 특수학급 학부모도 학교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또 그런 엄마들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일꺼라고 넘겨짚어 봅니다.

이왕 나가는거 이기면 아들들도 좋아할 것이기에 못이기는 척 나섭니다.


이겨보리라는 마음에 "으쌰!" "영차!" 소리를 내질러봅니다.
세 판 했는데 백군이 또 졌습니다.
마지막 경기 계주에 기대를 걸고 힘껏 응원했는데 이상하게(??) 또 졌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정리체조에 이어 교장선생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흐느적 거리나! 차렷. 열중 쉬어.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경기에 임한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박수!'"
"운동회를 위해 지도하시고 지금까지 수고하신 선생님을 위해 박수!"
"우리를 지켜봐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을 위해 박수!"
초여름 같은 날씨에 조금은 지친 아이들 박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치는듯 마는듯 합니다.

"이상 끝!"
교장 선생님의 짧은 말씀에 모두 환한 얼굴로 "새로 오신 분"이라는 둥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짐들을 정리하고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아직 고촌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출발하지 않고 있다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침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되살아나며 남편을 향한 심술궂은 짜증이 되어 몰려옵니다.

한쪽 구석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바라보니 학교 안은 빨리빨리 정리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선생님들도 거의 사라지고 운동장은 휑하니 비었습니다.

엄마는 "오늘 몇 시간 바라보니 알겠다. 강산이에 대해 욕심내지 말자구. 학교나 오고가면 다행이지" 하십니다.
욕심이라...

강산이는 학교라는 제도적인 울타리와 선생님의 책임 아래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론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살아야 할 더 넓고 험한 세상이 있는데 단체 생활을 위한 작은 규칙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은 게 제 심정입니다.
그런데 욕심이라니, 차라리 욕심이나 맘껏 부려보았다면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지만 자꾸 더 답답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강산이는 엄마가 씻기겠다며 데리고 가셨습니다.
다음 날 상품을 타기 때문에 손등에 찍힌 달리기 2등 도장이 지워지면 안된다고, 머리감기 싫다고 소리지르는 강윤이를 달래서 깨끗이 씻겼습니다.

학교에 가지고 갔던 그릇을 닦고 흙묻은 옷들을 세탁기에 돌립니다.
다 치우고 나면 내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리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04/08/2005 - 식목일에 누린 여유로움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 얼굴 쓰다듬어 주려고 방문을 여는데 강윤이가 "엄마~" 하며 눈을 뜨더니 침대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옵니다.

보통은 아침 7시면 깨는데 학교 안가는 날이라 그런지 더욱 가볍게 한 시간 일찍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저녁 9시면 자기 때문에 아침에 잠에서 깨우는 것으로 성가시게 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식목일이라 늦잠을 자도 되련만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잠을 떨쳐버립니다.
방학이 되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해졌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학교'가 주는 무게감은 옛날이나 요즘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학교가 신나고 즐겁고 자유롭고 성취감이 있는 배움터라면 수업 있는 날 더욱 부지런을 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집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하는 듯 합니다.
아이들과 옆집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를 계획해 봅니다.
남편은 "**네는 오늘 뭐하나? 같이 가자고 할까?" 합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가벼운 나들이에도 다른 가족과 함께 가는 것, 아는 사람네 찾아가는 것을 제안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보통은 남편 생각과 같았습니다.

결국 옆집 아빠는 아침 일찍 친구와 낚시를 가셨고, "나, 돈 없다" 하시며 뜨거운 커피 물을 준비하신 엄마와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들과 여러 번 와 본 곳이기에 그리 흥미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 잔디꽃 폈다!"
"응, 정말. 예쁘다. 그런데 강윤아, 이거 제비꽃이야."
"어쨋든 예쁘잖아!"

올 봄은 늦게까지 눈이 많이 오고 기온도 낮아 꽃이 피는 시기가 늦어진다고 합니다.
이 곳도 도무지 꽃이라고는 볼 수가 없는데 강윤이 눈에는 낮게 피어있는 보라빛 꽃이 예뻐보였나 봅니다.

교회 식구 가운데 농사 짓는 분들은 모판 준비를 끝내셨습니다.
농사 일정을 지켜보니 강화는 김포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은것 같습니다.
강화 부모님은 모판할 때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일할 때가 된듯 한데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전화를 드려봤습니다.
다른 해에 비해 날씨가 안좋아 냉해 입을까봐 늦게 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의 질서가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집니다.


나들이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먹는 것입니다.
김밥이 펼쳐지자 바람이 세게 불어 돗자리가 들썩거려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센 바람에 날려오는 커피향은 커피 맛을 한층 돋구어 줍니다.

아이들은 놀이터로 달려가고 엄마와 덕포진 아랫길로 내려왔습니다.

엄마는 가방에 작은 칼과 비닐 봉지를 여러 개 준비해 오셨습니다.
봄냉이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그 동안 쌀쌀한 날씨나 제초제 사용 때문에 냉이가 제대로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나물 캐는 기쁨을 안겨줄 냉이가 몇 뿌리쯤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논 길을 택했습니다.

얼마쯤 걷던 엄마는 "여기 있다!" 하시며 가방을 서둘러 뒤지십니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하얀 면장갑을 꺼내 끼시고 빠른 손놀림으로 냉이를 건져내십니다.
"그거 먹어도 돼?" 하면서도 잘됐다 싶었습니다.


나는 짐을 맡은 채 바라만 보고 있고 엄마는 "이것도 먹는 거야. 얼마나 맛있는대" 하시며 근대라는 나물을 보며 너무 반가워하십니다.

어느새 아이들도 우리를 찾아내고는 "나도, 나도" 합니다.
강산이는 할머니 나물 봉지 들고 다니는 것을, 강윤이는 화분에 쓸 흙담기를 맡았습니다.
땅바닥에 털썩 앉아 온 몸에 흙묻히며 제 할 일-아이들에게는 놀이겠지요-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저는 좋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전교생이 학교 화단을 정리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이런 행사(?)를 하다보면 열심히 하는 아이, 하는 척 하는 아이, 아예 딴 짓하는 아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화단 정리가 끝나고 다른 반은 교실로 들어가는데 우리 선생님은 화단 앞에 한 줄로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손 한번 얼굴 한번 바라보며 지나가셨습니다.
선생님이 그리 하시는 까닭을 알 것 같아 화단 손질에 관심이 없던 나는 얼른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흙은 아주 조금 묻어 있었고 '이 정도로는 안될텐데'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손을 다 돌아 보시고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그 장면이 또렷이 남아있고 오늘까지 그 말씀없는 교훈을 되새기곤 합니다.

봄나물로 한 끼 국거리를 장만한 엄마는 다음에 오면 더 많이 캘 수 있겠다며 아쉬워 하셨습니다.
가지고 간 시원한 물과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덕포진을 떠났습니다.


다음 놀이터는 조각공원.
점심을 먹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두 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고 있는 강산이와 멋진 모습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잘 타는 강윤이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시간 쯤 아이들은 땀 흘리며 신나게 놀고, 강산이 3학년 때 잘 돌봐주던 다혜와 다혜 어머니도 만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땀과 흙먼지로 얼룩진 아이들을 보니 흐뭇합니다.

이 여유로움이 아주 좋습니다.


가정에서는 목사와 사모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로, 아이들과 진한 사랑을 표현하며 나누려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으로 감싸면서 가정에서는 교훈적이고 지시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의 시간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심방이나 예배로 바쁩니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산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내 한 쪽 곁은 가족을 위해 비워두려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도 늘 깨어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02/24/2005 - 2층 높이만한 눈사람


눈이 많이 왔습니다.
새벽기도 갈 때 눈 속에 신발이 절반 정도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하얀 나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찬 얼굴을 잠자고 있는 강윤이 얼굴에 비벼대며 "밖에 눈 엄청 많이 왔다!" 했습니다.
강윤이는 엄마의 차거운 뺨을 밀어낸 적이 없습니다.
"아, 따뜻하다!" 하면 고개를 끄떡이며 새벽잠을 달게 잡니다.
눈 왔다는 소리에 창문이라도 열어볼 줄 알았는데 눈만 떳다가는 다시 잠들었습니다.

겨울을 아쉬운듯 보내는 기간이 아이들 봄방학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방학이지만 강윤이는 피아노학원에 가야 합니다.
내 속마음은 '길도 미끄럽고 눈도 꽤 많이 쌓였는데 나가서 놀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얼른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야, 너네 나가서 놀래? 오늘 학원 쉰대."
일부러 밀어내는 걸 알면 청개구리 같이 안 나간다고 할까봐 별일 아닌듯 물어보았습니다.
"앗싸! 옷 줘."
"나 여섯 살 때처럼 2층 높이 눈사람 만들어야지~~~ 엄마, 그 때 2층만한 높이였지?"
'글...쎄'

이른 9시쯤 나간 아이들이 늦은 4시가 넘어 들어왔습니다.
무심한 이 엄마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잘 모릅니다.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눈으로 신나게 놀다가 이웃에 사는 송희네 가서 놀다왔다는 것 밖에는.
교회 마당 눈 청소를 하고 돌아오신 옆집 아빠(보통은 친정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말씀에 의하면 잘 뭉치는 눈이 아니랍니다.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기는 어렵겠구나. 그 때 눈사람이 정말 2층 높이만 했나?'


사진을 찾아보니 2001년 1월 큰 눈이 내렸고 친구들과 아이 아빠들이 힘을 보태어 눈사람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눈이 그치고 마당에 쌓인 눈을 옆집 아저씨 포크레인으로 치울 만큼 많은 양의 함박눈이었습니다.
정말 큰 눈사람이었고 막 여섯 살이 된 강윤이에게는 2층 높이는 돼 보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해 1월 강화 할머니댁에 놀러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계단까지 있는 눈 미끄럼틀을 만들어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추억을 더듬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모습도 어린이 티를 벗어나고 있고 부모가 함께 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나가 놀다 들어오고.아마 잘 노는 것은 공동육아 시절 놀아본 판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봄방학이 끝나고 나면 강산이는 4학년(13세), 강윤이는 3학년(10세)이 됩니다.
아이들이 새 학년이 되면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만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좋은"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으나 굳이 한마디로 줄여 보자면 "인격적인" 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기도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이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천군천사로 보호하여 주시길 말 입니다.

아파트 가운데 있는 조형물 제목이 "소년과 새" 입니다.
강윤이 말대로 예비청소년이 된 강산이와 "아들" 하고 불러주면 좋아하는 강윤이가 신앙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시편 1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