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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2025

흐르는 강물처럼






나른한 오후를 깨우려고 뉴올리언스 시티 파크를 찾았다. 400살이 넘은 참나무들과 나무마다 수염처럼 늘어진 스패니시모스는 언제 봐도 이국적이다. 참나무들은 마치 재즈바에서 느릿하게 대화를 나누는 나이든 친구들 같다.

자연스레 발걸음은 조각 공원으로 향했다. 현대 조형물들이 , , 개울, 호수와 어우러져 생동감 있는 곳이다. 참나무 숲이 노년 같다면 조각 공원은 청장년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나뉜 조각 공원, 호수 가운데에서 물이 옹달샘 마냥 뿜어져 나온다. 물은 호수를 채우고 어디론가 흐르고 있을 터이다. 흐르는 물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개울로 이어진다. 개울 한쪽에선 척의 카약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1 한파 때문에 열대식물인 야자수와 봄꽃인 아가판서스가 누렇게 시들었다. 안쓰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냉기에도 불구하고 초록 잎을 지켜내거나 새싹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린 싹들이 기특하여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나무들마다 쌀알만한 겨울눈이 한가득이었다. 문득 얼마전에 읽은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 떠올랐다. 주인공 토리가 삶이 고되어도 때로는 순리대로 때로는 힘겹게 살아내는 모습이 겨울눈과 닮았다.

소설은 과수원 , 토리가 사랑을 하면서 소심한 소녀에서 대담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이야기이다. 열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토리는 가사를 도맡는다. 토리에게 관심이 없는 아빠, 삐딱한 남동생, 상이 군인 이모부의 뒤치다꺼리와 복숭아 수확, 판매는 토리가 일이다. 그러다 토리가 열일곱 살이던 1948, 길을 묻는 낯선 청년 윌과 사랑에 빠진다. 여성으로 사는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모르고 살던 토리는 폭풍처럼 다가온 사랑에 휩쓸려 버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리가 나눈 사랑이 순탄치 않다. 윌은 아메리칸 원주민이고 당시에는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아주 심했기 때문이다. 토리 가족과 동네 사람들 모두 윌을 배척한다. ! 이웃집 루비앨리스 아주머니는 윌에게 먹을 것과 이불을 준다. 루비앨리스도 동네에서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윌에게 현상금까지 건다. 윌은 사람들에게 쫓기면서도 토리를 떠나지 않는다. 윌은 어디를 가든 피부색만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은 차고 넘칠 거라며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결국 윌은 토리 뱃속에 아기를 남겨둔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열일곱 토리가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겪으며 자기 삶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정이 애틋하면서도 강인하다. 토리의 다음 선택이 궁금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토리는 온갖 걸림돌과 댐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고 흐르는 강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그저 그동안 쌓아온 가지고 계속 흘러가는 강물이 삶과 같았다 고백한다. 거센 물살 속에서도 강은 굽이치며 길을 찾아간다. 토리의 삶도 강물처럼 흐른다. 때론 막히고 때론 돌아가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 2023년에 발간되었고 셸리 리드가 50대에 데뷔작이다. 셸리 리드는 콜로라도 주민으로, 콜로라도 자연을 소설 배경으로 묘사한다. 작가가 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 고향이었다라고 것은 고향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작가의 삶을 함축하여 보여준다.

언젠가 콜로라도 덴버 주변을 여행했었다. 만년설을 로키산맥, 산을 품은 호수들, 끝없는 들판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작가는 주변환경에서 얻은 지혜를 토리의 속에 닮아낸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공원에서 추위를 이겨낸 연분홍 철쭉을 보고 있자니 분홍꽃이 흐드러지게 복숭아나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책에 몰입한 탓이리라. 토리네 복숭아나무는 조지아에서 가져왔단다. 조지아는 피치 스테이트 불리는 복숭아로 유명한 . 토리의 복숭아나무는 마치 윌이나 같은 이주민이 정착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상징 같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우리네 삶엔 이유가 있고, 만나야 풍경이 있으며, 견뎌야 계절이 있다. 삶이 흔들려도 흐름을 잃지 않기를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5/28/2023

예감




식물에게 물 주려고 그 집에 들렀다. 부부가 사는 그 집에는 일 년 전부터 키우는 식물이 한 그루 있다. 그 아내에게 부탁을 받고 물 주러 간 첫날, 집주인이 잘 보살폈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커다란 잎사귀는 연둣빛이 선명하고 길게 자라 늘어진 줄기는 튼실했다.

그들이 집을 비운 지 두어 달이 지났다. 그 남편이 매우 아파서 치료하러 다른 도시로 갔기 때문이다. 그는 병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중이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가엾이 여기며 정성을 다해 간호 중이다. 아내는 자기가 키우던 식물도 내내 살아있길 바랐다. 아내는 식물에게 일주일에 한 번쯤은 물을 주어야 한다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 부부가 건강하게 몽고메리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물을 화분에 골고루 뿌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블라운트 문화 공원에 있는 자동차 도로로 가면 시간은 비슷하게 걸려도 가로질러 가는 느낌이고 탁 트인 공원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어 그 길을 선택했다. 사실 얼마 전에 알게 된 셰익스피어 정원에 다시 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자동차가 먼저 가닿은 곳은 몽고메리 미술관 옆에 있는 조각 정원이었다. 여길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이쪽으로 들어서 버렸다. 

조각 정원은 어떻게 꾸며 놓았을까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내친김에 둘러보았다. 미국 남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과 곳곳에 있는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15분 정도면 충분한 아담한 정원이다.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된 정원은 한적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에 둔 다른 정원으로 얼른 가고파서 서둘러 나왔다. 그곳 조형물 가운데 4점은 그곳에 늘 있는 작품이고 나머지 5점은 현재 전시하다가 바뀔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 웹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아주 가끔 온라인으로 확인해서 작품이 바뀌면 다시 들려볼 만하겠다.

원래 가려고 했던 셰익스피어 정원은 다른 날도 얼마든지 가볼 수 있으련만 첫인상이 이국적이어서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동네 친구들의 제안으로 이 정원에서 그들을 만났다. 앨라배마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극장 옆에 이런 정원이 있는 줄 몰랐다. 운동 삼아 공원에서 걸을 때 극장 앞을 지나가면서도 보지 못했었다. 정원에 처음 들어서는데 마치 비밀의 정원 혹은 비밀의 원형 극장에 온 것 같았다.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친구들이라 정원을 둘러볼 짬 없이 모임만 하고 헤어지는 바람에 그 정원에 미련이 남았다. 무슨 꽃이 피었나 살펴보고 나무 아래 벤치에도 앉아보고 싶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서 더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보인다. 짚으로 지붕을 인 쉘터는 잘 가꾼 꽃밭이 둘러싸고 있다. 꽃밭에는 허니서클, 메리골드, 노란 나리꽃, 이름 모르는 보라색 작은 꽃, 로즈메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나무 그늘을 좋아하는 양치류와 헬레보루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팬데믹 초기, 집 밖을 나가기 두려울 때 유튜브에서 정원 가꾸는 영상을 어찌나 보았던지 새로 알게 된 꽃을 실제 정원에서 발견하고 이름을 기억해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정원 한쪽 출입구 앞에 있는 화장실마저도 초가지붕을 얹은 시골 부잣집 창고 같았다. 일보러 들어가서 너무 침침하여 어리둥절하다가, 이게 영국식 화장실인가 생각하다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하는 머릿속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동네 친구들은 이 정원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나만 뒤늦게 알게 된 곳이니 호들갑스럽게 얘기할 거리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가끔 이 정원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6년 보스턴 여행을 하고 내려오면서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주변 건물들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한참을 걸어서 다녀보았는데, 건물들 사이로 여러 형태의 자그만 정원(공원)들이 참 많아서 흥미로웠다. 몽고메리 셰익스피어 정원이 필라델피아에서 보았던 정원의 분위기와 겹치면서 어디 멀리 여행 온 기분이 들었던 걸까. 

되돌아 나오는데 벤치에 앉아 혼자서 뭔가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점심시간인가 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2/20/2019

찾으면 찾아지는 감사 - 오크 마운틴 주립공원(Oak Mountain State Park)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한다는 어느 집사님의 경험담을 귀담아 들어두었다. 그 집사님이 이용하는 트레일은 매년 우리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장소로 사용되는 오크 마운틴 주립공원(Oak Mountain State Park) 캠핑장을 지나서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가.

매표소에서 한참을 지나도 사람들이 걷기 시작할 것 같은 길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럴 땐 믿음과 느긋함이 필요하다. 집사님이 북쪽으로 가다보면 길이 있다고 했으니 믿고 가면 될 것이다. 공원길에서는 일반적으로 25-35마일 정도의 낮은 속도로 가야만 한다. 같은 거리의 길이라도 보통 길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멀게 느껴질테니 여유롭게  있으면 될 터이다.

참고로 오크 마운틴 입장료는 3세 이하는 무료, 4-11세이거나 62세 이상은 2달러, 12-61세는 5달러이다. 네 사람까지 가능한 가족 연간 이용료는 230 달러. 매표소에서 신용카드를 내밀었더니 현금만 받는단다. 직원은 현금이 없으면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라며 턱으로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면 차를 길 옆으로 빼고 차에서 내려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고, 타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를 물 수도 있다.

앨라바마에서 제일 넓은 주립공원답게 매표소로부터 10분쯤 지나 내비게이션에서 보이는 초록 숲이 거의 끝나갈 즈음 노스트레일헤드(North Trailhead)라는 팻말이 보였다. 주차된 차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집사님이 말한 곳이 이곳이려니 싶었다.

오크 마운틴에 두번째 방문이라 트레일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트레일마다 색깔을 달리 표시하고 있는데 이번엔 하얀색 길을 따라 가다가 노란색 길로 바꿔 원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우리가 걸어간 하얀색 길은 평지같아 아무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크고 작게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가며 걷는 길이라 심심할 틈이 없다. 개울이 있는 곳에는 편하게 건널 수 있도록 다리가 어김없이 있다. 그 다리들을 하나 둘 건너다보니 그 다음에 나타날 다리가 궁금해졌다. 단순하면서도 모두 다른 형태의 다리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이 산에 있는 다리들은 모두 다른 모양일까.






많은 사람들을 건네주었을 예스러운 다리. 보통 어른은 껑충 건너뛸 수 있는 실개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테니 밟기 좋게 놓여있는 평평한 돌, 널판지 한 쪽, 마주댄 널판지 두 쪽. 좀 더 넓은 계곡엔 쓰러졌으나 부러지지 않은 나무...

이 다리의 재료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이리라. 다리의 모양도 만든이의 솜씨를 뽐내기 보다는 소박하고 정겹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다리를 설계하고 만든이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지혜의 빛 한 줄기를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손수 지으신 세계와 지혜를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출애굽기35:35)

어느만큼 가다보니 긴 의자들이 여러 개 있어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 앞서 걷다가 사라진 은발의 노부부가 보였다. 그 은발의 남자는 우리를 보자 뭐 하나 말해도 되겠냐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라고 했다. 물가에 잎이 다 떨어진 작은 나무 어딘가를 가리키며 뱀이 있단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면서. 낙엽과 비슷한 갈색을 가진 뱀이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아리를 느슨하게 틀고 있었다.

그 노년의 부부와 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니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말을 걸어왔는지 뱀이 나오는 철이니 조심하라는건지 알 수 없으나 고마웠다. 난 그에게 우수 절기라 겨울잠을 깨고 나와 햇빛을 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영어로 버벅거릴 것이 분명하여 그만두었다. 언어가 친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한하고 있어 아쉽다.

그의 아내는 마침 긴의자 위로 찾아온 따스한 햇살을 베고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부부에게서는 트레일 초입에서 봤을 때부터 묵직한 인상을 받았었다. 산길을 자주 걸어본 사람들 같았다. 나의 남편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과 헤어져 노란색 길로 접어들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도 처음 걷는 것이라 맞게 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으나 지도와 방향 감각을 사용하여 가 보는 수 밖에 없다. 나보다 방향감감이 뛰어난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순간순간 의심이 생겨도 서로를 믿고 가야 한다. 길을 잘못들었다면 조금 돌아가면 되고, 그래서 계획하지 않았던 길까지도 보게 되고 그런거니까.

우리가 선택한 노란색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인도해주었다. 한 시간 반 조금 못 되게 걸었는데 느껴지기는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았다. 점잖은 사람들과 편안한 산책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산이 아니어도 하나님 은혜는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코스트코를 가서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해 돌아설 때 매장 직원이나 한국 사람이 떡하니 서있어서 질문할 기회를 갖게 되면 감사하다. 남편이나 아들과 같이 쇼핑을 하면 어디에도 없는 힘이 혼자 쇼핑을 할 때는 500ml 물병이 40개나 들어 있는 꾸러미를 번쩍 들어올려 카트에 싣는 엄청난 힘으로 발휘된다. 순간적인 힘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1/23/2019

쉐와클라 주립공원(Chewacla State Park)




몽고메리의 자연 환경을 보면 산이 없는 평야 지대이다. 내륙이다보니 바다하고도 멀리 떨어져 있고 강도 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다운타운 언저리에 있는 리버프런트 공원(Riverfront Park)에 가면 굽이굽이 흐르는 앨라배마 강의 어느 한 자락를 감상할 수 있다.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겐 산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대신에 새벽기도가 끝나고 나서 남편과 함께 교회 주차장을 여러 바퀴 돌곤 한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서없는 얘기를 떠들기도 하고. 교회 옆에 공원이 있긴 한데 짧은 거리라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고 2-30 여분 걷기를, 이동하는 시간에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이곳은 겨울이 우기라 그나마도 비가 오면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조금 추워도 비가 오지 않으면 옷을 더 껴입고 걷는다. 어둑해도 우리 교회 앞이니 마음이 더 없이 편안하다.

우리는 생활 영역을 넓혀 몽고메리를 벗어나 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주립공원은 일반 공원보다 자연이 더 잘 보전되어 있을 터이다. 집에서 자동차로 50분쯤 걸리는 쉐와클라 주립공원(Chewacla State Park)을 찾아갔다. 이 공원은 어번대학교와 자연 환경, 그리고 도시가 오밀조밀 어울려 있는 어번시에 자리하고 있다. 일단 입장료는 12-61세는 4달러이고 나머지 나이대는 2달러이다. 3세 이하는 입장료가 없다.

이왕 산을 다닐거면 1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통행증을 구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통행증을 가지고 있으면 해당하는 주에 있는 어느 주립공원이든지 일 년 동안 횟수에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쉐와클라 공원 입구에 도착하여 표를 사는 곳에서 물어보니 다른 주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이 이용하려면 155달러이고, 쉐와클라 주립공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담당자가 알려주었다. 통행증의 가격도 꽤 비싼 편이고, 우리 세 식구가 이 공원만을 일 년에 10번 이상 올 것 같지 않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매표소를 지나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가면서 둘러보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시선을 끄는 것이 없어 끝까지 가보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을 기념하는 공휴일(Martin Luther King Jr. Day)이라 그런지 차들이 꽤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숲 속을 걷기 전에, 트레일을 안내하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지도가 따로 설치된 것도 보이지 않았고 게시판도 텅 비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가지가 다 잘려 생뚱스러운 나무였다. 그 나무에 폭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이 공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 안내 팻말을 발견하도록 하는데 가지가 없어 초라해 보이는 나무가 얼마간 도움을 줄 것 같긴 하다. 우리는 그 표지를 따라 폭포 쪽으로 길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폭포가 나타났다. 무어스 밀 강(Moores Mill Rivers) 하류를 댐으로 막아 호수를 만들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가 된 것이다. 물빛도 흙탕물처럼 탁하고 근사한 모습의 폭포는 아니더라도 그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폭포를 등 뒤로 하고 강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갔다. 그러자 무어스 밀 강과 쉐와클라 강이 만나 섞이는 곳에 이르렀다. 무어스 밀 강이 끝나고 쉐와클라 강줄기가 더 넓어진다.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자연을 만나는 지점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김포 문수산에서.
멀리 보이는 강화대교.

쉐와클라 공원이 품은 산은 낮다. 한편 길에는 바위와 돌들이 많다. 낙엽만 있어도 걸음을 편안히 내딛지 못하는 산이는 바위가 나타나면 아빠의 두 손을 잡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산이가 어렷을 적에는 남편이 등에 업고서 산을 오르내렸다. 특히 왼발이 약해서 그랬었는데, 이제는 제 두 발로 걸어 산을 오르내리는 아들을 늘 대견해한다. 간혹 산이가 폴짝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칭찬이 만발한다.

“잘했어! 이런 데 자주 오면 평행 감각도 생기고 좋겠어!”

산이가 이런 길을 한 두 번 오간 것이 아닌데 새삼스럽기는... 산에 자주 오자는 얘기를 '산'이를 핑계 삼아 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결심하기까지 남편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나를 염두해 둔 말이다. 아들은 아빠를 믿고 의지하고, 아빠는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여기며 도와주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이것이 천국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산이가 영화 트랜스포머를 집에서 DVD로 보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의와 생명을 존중하는 오토봇의 수장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악의 무리인 디셉티콘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구 싸우는 장면이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힘에 부치는지 “오 갓(oh God)!” 이라고 말한다. 산이는 갓(God)이라고 말하므로 거기가 하늘나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을 도와주러 오토봇이 나타나자 오토봇끼리 도와주기 때문에 하늘나라란다. 산이는 죽을둥살둥 싸우는 모습 속에서도 하늘나라를 보고 있었다.

우리 교회 아동부에는 조이플 성가대가 있다. 올해 아동부 부장을 맡은 집사님은 조이플 성가대의 찬양이 은혜가 되었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찬양하는 동영상을 교회 홈페이지(http://www.montgomerykmc.org/)에 올리도록 관리자에게 부탁을 하셔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셨다. 부장님은 카톡을 통해 매주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휘하고, 반주하고, 동영상을 찍는 선생님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했다. 더 나아가 매주 성숙하고 멋져지는 아이들의 찬양 모습을 주변에 알려가자고 하시며 본인은 무척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주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 속에는 하늘나라가 있다. 그런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은 사랑, 생명, 정의와 같은 높은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하고 평온하며 기쁨을 누리게 된다.




강을 따라 얼마큼을 가니 산 위로 가는 길이 보였다. 등산이라고 하면 보통은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은 짧은 거리라도 가파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상쾌하게 얼굴에 와 닿으니 거친 호흡이 금방 진정되었다. 하늘은 몹시 파래서 눈도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루의 하늘나라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가운데 나날이 확대되어 나가길 빌어본다.

11/10/2014

숲길을 걸을 때




슬슬 걷기에 좋은 주립공원이 동네에서 가깝다. 숲 속과 호수 둘레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호수에는 몇 마리 오리가 떠다니거나 휴일이면 공원에서 빌려주는 노 젓는 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밖에 철마다 바뀌는 화려한 꽃이나 신나는 놀이 기구나 기암괴석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조용하고 수수한 공원이다.

운동 삼아 공원을 자주 가던 어느 해 봄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남편과 나는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숲에 가면 넓은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집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이 술술 풀려 나오곤 한다. 그날도 새로운 얘깃거리가 시작되려는 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한 발을 공중에 들고는 으아아~~”, 비명을 질렀. 처음 들어 보는 음색의 그 짧고 낮은 비명 소리는 두려움을 짙게 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남편의 팔에 매달리며 왜 그래?”, 다급하게 물었다.

잘 놀라는 아내를 배려한 것인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 이라고 대답했다. 뱀이라는 말에 남편 팔에 매달리기라도 할 것처럼 있는 힘껏 끌어 안고는 어디?”, 라고 말하면서 눈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숲 쪽을 가리켰다. 제법 굵고 길며 까만 뱀이 낙엽 위를 마치 헤엄을 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뱀이 그렇게 날렵한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우리 때문에 놀란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을 이 공원에서 만났다. 걷기에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더니 만남 장소를 공원으로 정한 것이다. 산책로의 중간쯤에 이르러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머지 남은 길을 가기로 했다. 둘 다 볼일을 보고 내가 먼저 화장실 건물을 나섰다.

화장실 입구 쪽 희고 넓은 벽에 검고 길쭉한 무엇이 움직이고 있었다. ! 얼른 그것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지난번 일을 사람들과 나누던 중 이곳에서는 까만색 뱀은 독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인은 아직 화장실 안에 있었고 알릴 방법이 없었다

곧이어 화장실을 빠져 나오는 지인에게 저기, ”, 하고 그저 가르쳐주었다. 지인은 그쪽을 돌아보고는 오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듯이 양손을 마구 저으며 두 발을 땅에 대지 않으려는 듯 겅중겅중 달려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성격이 엄청 차분하고 말소리도 엄청 작은 사람이 그런 모양으로 달아나니 웃음이 났다.

이번엔 개를 만난 일이다. 공원에 있는 표지판들 가운데 개를 묶어서 데리고 다녀야만 한다는 안내문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호수 둘레 길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길에서는 이 규칙이 잘 지켜진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는 열에 일곱, 여덟은 개들이 묶여 있지 않다.

개를 키우는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숲길에서는 개들을 자유롭게 다니도록 풀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숲길을 걸을 때가 있으며 그러다 그런 개들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훈련이 잘 된 개는 멈추라는 지시를 잘 따르고, 더 친절한 주인은 개를 그 순간에 줄로 묶어 좁은 숲 길 바깥으로 물러나서 우리가 지나가도록 기다린다. 이런 주인과 개를 만나면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숲 속에서 낙엽이 바스락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들개처럼 생긴 누런 세 마리 개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이마에는 꼭지점이 네 개인 별 모양 문신 같은 것이 있었다. 이 개들은 무슨 먹이를 포위한 짐승처럼 남편과 나를 세 면에서 둘러싸고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댔다. 정신이 황망하고 어이가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개들은 계속 의기양양하게 짖어대고 난 최대한 개들에게 적의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몰라도 꽤 긴 시간 같았다. 갑자기 남편이 멀리 보이는 주차장(공원 밖 어느 축구장의 주차장이 보이는 곳이었다)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면서 고우(Go)!” 라고 외쳤다. 그러자 개들은 지들이 언제 짖었냐는 듯이 깨갱거리며 눈에 힘을 뺐고 주차장 쪽으로 우리에게 왔던 것처럼 달려갔다.

개를 방치한 주인에게 화가 났다. 그 못된 주인과 개들 때문에 매우 언짢았지만 그날 걷기로 한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숲길을 걸으며 여태껏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한 욕을 그 들과 주인을 생각하며 몽땅 몰아 했다.

숲을 걸을 때 이 밖에도 우리가 호흡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좋아하는 쬐끔한 날 것들이나 곤충들이 귀찮게 하기도 한다. 송화 가루가 날리는 철에는 운동화나 바지가 노란 가루로 범벅이 되기도 한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갑자기 비를 만나 길이 질척해지면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숲은 공기 중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도 하고 피톤치드(식물이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를 내뿜어, 그것들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보며 시간의 흐름과 나와 우리의 삶따위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반면 숲에서는 뱀이나 정신 없는 개들과 그 주인처럼 두렵고 화나는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숲은 여전히 사람에게 유익하다. 숲길을 걷고 또 걸으며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게 될 터이다.

5/11/2014

올바른 쪽으로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주립공원이 있다. 공원의 대부분은 숲이고, 숲 속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그리고 캠프장, 늘 고요한 호수, 호수에서 탈 수 있는 배를 보관하는 건물,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는 단층 건물 두어 채가 있다. 동네나 상가 입구에 철철이 색과 종류를 달리하여 심겨지는 꽃들을 늘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정문 표지판 근처에 심겨진 몇 그루의 꽃나무를 빼면 인위적으로 심겨진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공원 밖도 마찬가지여서 정문 쪽에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한가해 보이는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공원 이름을 적어 놓은 표지판이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밋밋하다. 넓은 공원의 안이나 밖이나 참으로 수수하다.

자칫 지루하게 보일 만큼 조용한 이 공원은 남편과 나에게 치료실 같은 곳이다. 나무 사이로 한 시간 반쯤 걷는 일을 반복하면서 남편의 불편한 허리가 거의 다 나았다. 한국에서보다 움직임이 많이 적어져서 살만 둥실둥실 늘어난 나에겐 그나마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또 맘놓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면 갈 길 못 찾던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기도 하고, 답답한 문제들은 해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공원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며 언젠가 공원에 뭐라도 기부해야겠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는 이 공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공원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차선 도로만 건너면 이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 이쪽 입구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옮겨 갈 만큼 익숙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9월쯤인가, 우리가 다니는 출입구에 표지판이 하나 세워졌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라는 빨간 글씨의 경고용 안내판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가 있는 이곳은 주차장도 있고 숲길을 알려주는 게시판도 있지만 요금을 받는 곳은 없다. 정문 쪽으로 들어갈 때도 요금을 받는 곳이 닫혀 있어서 그냥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개방해 놓은 공원인줄 알고 다닌 것이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집에서 가까운 출입구를 이용한 것인데 입장료를 내야만 하는 곳이었나 보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나 편한 대로 생각한 것이다. 공원 측에서 보면 입장료도 내지 않고 숲을 휘젓고 다니는 뻔뻔한 방문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무슨 배짱인지 몇 번 더 뒤쪽 입구로 다녔으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았으니 공원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기분이 찜찜했다. 공원에 갈 때마다 그쪽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여럿 만나곤 했는데 사람들 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정문 매표소를 찾아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다음에 다시 매표소 앞에 차를 멈추었다.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하는 순간 매표소 벽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이에 따른 요금표였다. 매표원이 없으면 방문객이 자율적으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 공원의 숲이 주는 편안함을 되찾고 싶었다. 공원 정문 쪽에서 가까운 관리사무실을 찾아갔다. 공원입장료는 방문할 때마다 한 사람당 2달러(65세 이상은 1.25달러, 15세 이하는 무료). 남편과 나는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본 뒤, 내가 살고 있는 주의 주립공원은 어디든지 일년 동안 무제한으로 입장할 수 있는 75달러짜리(사용범위에 따라 99달러, 50달러짜리도 있다) 입장권을 샀다. 이 입장권을 걸어둔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권이 있으니 정문으로 들어가든 뒤쪽으로 들어가든 마음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 어느 날 웬일인지 매표소에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느낌에 자원봉사자 같았다. 우리는 일 년짜리 입장권을 보란 듯이 자동차 뒷거울에 걸어놓았다. 할머니께서는 얼른 입장권을 확인하시고 들어가도 좋다는 표시를 웃는 얼굴로 보여주셨다. 우리도 상쾌하게 굿모닝인사를 남기고 매표소를 쌩 하니 빠져 나왔다.

정해진 규칙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율적으로 지켜서 사회 질서가 원만하게 유지되고 이런 체계에 자부심을 갖는 분위기를 이 나라에서 경험한다. 한편,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금을 물게 하는 엄격함도 함께 경험한다. 숲에게 고마워서 기부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이 기회에 입장료라도 내게 되어 숲에게 받기만 하는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다. 작은 규칙이 지켜지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한 걸음 옮겨갔을 뿐인데 마음이 편하고 당당하다

2/04/2011

나루터에서




가까운 호수에 나가 보았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좋은 곳입니다.
호수 곳곳에 있는 나루터에는 날씨가 아직은 춥고 궂어서 그런지 크고 작은 배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언제고 배 주인이 와서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빌려주는 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젠가 화창한 날 배를 타고 호수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새번역 / 호세아 6장 3절)

11/05/2010

감사와 함께 걸어보았어요


이곳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늦가을 날씨가 이어져서 바깥 활동하기가 좋았습니다.
깔끔한 햇빛과 선선한 바람 덕분에 하루 가운데 틈새 시간을 이용해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은 미국 선거일이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질 않고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고 느슨해지는 오후 시간에 자전거를 타든지 걷든지 하려고 공원에 나갔습니다.
바람이 조금 부는 듯 했지만 숲으로 들어가 걷기를 시작하자 바람은 사라져버리고 상쾌함만 느껴졌습니다.

둘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먼저 목적지까지 달려갑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헤어져 있다가 남은 세 식구가 걷고 있는 곳을 찾아 옵니다.
이 날은 5마일쯤(!) 멀리 걸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둘째와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네 식구가 산책로에서 다시 만나면 남편은 남은 길을 다 걷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걷기 시작한 곳, 그러니까 자동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갑니다.
이 공원의 산책로가 워낙 길기 때문에 끝에서 끝을 왕복하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듭니다.
남편이 주차해 놓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 시간과 남은 길을 걸어야 하는 시간을 얼추 맞추어 둘째 아이가 돌아와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와 저는 그냥 걷기만 하지만, 남편과 둘째 아이는 전화를 주고 받으며 걷는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고, 만나는 장소를 설명합니다.
공원에 갈 때마다 걷는 거리가 달랐으므로 만나는 장소도 늘 바뀌어서, 옆에서 지켜만 보아도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
건강하고, 지혜롭고, 마음 따뜻한 둘째 아이가 있어서 누리는 기쁨으로 인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디를 가든 걸을 때마다 맨 뒤에서 따라옵니다.
뒤에 있으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앞세워 걸어보게 해도 다시 뒤로 갑니다.
앞에서 걷는 것이 두려운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화요일 걷기에서는 첫째 아이가 저희 부부보다 앞서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씩씩한 걸음걸이로, 산책로 옆으로 나타나는 다람쥐와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나누며 목적한 곳까지 계속해서 앞서 나갔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나 봅니다.

첫째 아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것이 정말 느렸습니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발달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과 걷기에 있어서는 저희 아이가 유난히 늦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만2세 하고도 6개월이 되었을 때 혼자서 잠깐 동안 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걸음마 연습을 해서 혼자 걸을 수 있는 만5세가 되어서야 장애 어린이를 위한 조기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걷는 것이 불안하고 계단은 혼자 오르고 내려가지 못해서 안거나 업어주어야 했습니다.
           
일년이 지난 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걷는 자세가 안정되게 바뀌었는데, 그 당시 조기교육을 같이 시작했던 엄마들이 저희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교육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며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지금까지도 기적과 감사를 경험하게 하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미어지고 고통스러운 경험도 하게 합니다.
지난 화요일도 그런 날들 가운데 하루였습니다.
꽤 먼 거리를 부모보다 앞서 힘차게 걸어가는, 어느새 어깨가 넓어진 열일곱 살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건강하고, 착하고, 순수한 첫째 아이가 있어서 날마다 경험하는 기적으로 인해 다시 한번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인데, 거기에 감사까지 찾아와 동행해주니 그 시간, 그곳은 하늘 나라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