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도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도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1/23/2019

쉐와클라 주립공원(Chewacla State Park)




몽고메리의 자연 환경을 보면 산이 없는 평야 지대이다. 내륙이다보니 바다하고도 멀리 떨어져 있고 강도 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다운타운 언저리에 있는 리버프런트 공원(Riverfront Park)에 가면 굽이굽이 흐르는 앨라배마 강의 어느 한 자락를 감상할 수 있다.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겐 산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대신에 새벽기도가 끝나고 나서 남편과 함께 교회 주차장을 여러 바퀴 돌곤 한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서없는 얘기를 떠들기도 하고. 교회 옆에 공원이 있긴 한데 짧은 거리라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고 2-30 여분 걷기를, 이동하는 시간에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이곳은 겨울이 우기라 그나마도 비가 오면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조금 추워도 비가 오지 않으면 옷을 더 껴입고 걷는다. 어둑해도 우리 교회 앞이니 마음이 더 없이 편안하다.

우리는 생활 영역을 넓혀 몽고메리를 벗어나 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주립공원은 일반 공원보다 자연이 더 잘 보전되어 있을 터이다. 집에서 자동차로 50분쯤 걸리는 쉐와클라 주립공원(Chewacla State Park)을 찾아갔다. 이 공원은 어번대학교와 자연 환경, 그리고 도시가 오밀조밀 어울려 있는 어번시에 자리하고 있다. 일단 입장료는 12-61세는 4달러이고 나머지 나이대는 2달러이다. 3세 이하는 입장료가 없다.

이왕 산을 다닐거면 1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통행증을 구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통행증을 가지고 있으면 해당하는 주에 있는 어느 주립공원이든지 일 년 동안 횟수에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쉐와클라 공원 입구에 도착하여 표를 사는 곳에서 물어보니 다른 주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이 이용하려면 155달러이고, 쉐와클라 주립공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담당자가 알려주었다. 통행증의 가격도 꽤 비싼 편이고, 우리 세 식구가 이 공원만을 일 년에 10번 이상 올 것 같지 않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매표소를 지나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가면서 둘러보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시선을 끄는 것이 없어 끝까지 가보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을 기념하는 공휴일(Martin Luther King Jr. Day)이라 그런지 차들이 꽤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숲 속을 걷기 전에, 트레일을 안내하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지도가 따로 설치된 것도 보이지 않았고 게시판도 텅 비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가지가 다 잘려 생뚱스러운 나무였다. 그 나무에 폭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이 공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 안내 팻말을 발견하도록 하는데 가지가 없어 초라해 보이는 나무가 얼마간 도움을 줄 것 같긴 하다. 우리는 그 표지를 따라 폭포 쪽으로 길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폭포가 나타났다. 무어스 밀 강(Moores Mill Rivers) 하류를 댐으로 막아 호수를 만들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가 된 것이다. 물빛도 흙탕물처럼 탁하고 근사한 모습의 폭포는 아니더라도 그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폭포를 등 뒤로 하고 강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갔다. 그러자 무어스 밀 강과 쉐와클라 강이 만나 섞이는 곳에 이르렀다. 무어스 밀 강이 끝나고 쉐와클라 강줄기가 더 넓어진다.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자연을 만나는 지점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김포 문수산에서.
멀리 보이는 강화대교.

쉐와클라 공원이 품은 산은 낮다. 한편 길에는 바위와 돌들이 많다. 낙엽만 있어도 걸음을 편안히 내딛지 못하는 산이는 바위가 나타나면 아빠의 두 손을 잡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산이가 어렷을 적에는 남편이 등에 업고서 산을 오르내렸다. 특히 왼발이 약해서 그랬었는데, 이제는 제 두 발로 걸어 산을 오르내리는 아들을 늘 대견해한다. 간혹 산이가 폴짝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칭찬이 만발한다.

“잘했어! 이런 데 자주 오면 평행 감각도 생기고 좋겠어!”

산이가 이런 길을 한 두 번 오간 것이 아닌데 새삼스럽기는... 산에 자주 오자는 얘기를 '산'이를 핑계 삼아 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결심하기까지 남편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나를 염두해 둔 말이다. 아들은 아빠를 믿고 의지하고, 아빠는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여기며 도와주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이것이 천국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산이가 영화 트랜스포머를 집에서 DVD로 보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의와 생명을 존중하는 오토봇의 수장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악의 무리인 디셉티콘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구 싸우는 장면이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힘에 부치는지 “오 갓(oh God)!” 이라고 말한다. 산이는 갓(God)이라고 말하므로 거기가 하늘나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을 도와주러 오토봇이 나타나자 오토봇끼리 도와주기 때문에 하늘나라란다. 산이는 죽을둥살둥 싸우는 모습 속에서도 하늘나라를 보고 있었다.

우리 교회 아동부에는 조이플 성가대가 있다. 올해 아동부 부장을 맡은 집사님은 조이플 성가대의 찬양이 은혜가 되었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찬양하는 동영상을 교회 홈페이지(http://www.montgomerykmc.org/)에 올리도록 관리자에게 부탁을 하셔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셨다. 부장님은 카톡을 통해 매주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휘하고, 반주하고, 동영상을 찍는 선생님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했다. 더 나아가 매주 성숙하고 멋져지는 아이들의 찬양 모습을 주변에 알려가자고 하시며 본인은 무척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주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 속에는 하늘나라가 있다. 그런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은 사랑, 생명, 정의와 같은 높은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하고 평온하며 기쁨을 누리게 된다.




강을 따라 얼마큼을 가니 산 위로 가는 길이 보였다. 등산이라고 하면 보통은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은 짧은 거리라도 가파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상쾌하게 얼굴에 와 닿으니 거친 호흡이 금방 진정되었다. 하늘은 몹시 파래서 눈도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루의 하늘나라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가운데 나날이 확대되어 나가길 빌어본다.

10/27/2014

엉뚱한 상상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뒤뜰 민들레입니다.


한국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몇 개를 찾아서 보고 있는데 참 재미있다. 한국에 살 때는 언제든 볼 수 있어서 그랬는지 TV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때론 TV를 보지 않고도 살았다. 그런데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은 한국 TV 방송 가운데 몇몇 프로그램이 주는 즐거움이 대단하여 잘 챙겨서 보곤 한다.

요즘 몇 주는 어느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송되는 더 지니어스라는 리얼리티 쇼를 보았다. 정해진 참가자들은 매회마다 새로운 게임을 풀게 되고, 게임 결과에 따라 한 명씩 탈락한다. 여러 회에 걸쳐 마지막에는 남은 한 사람은 자신이 모아놓은 점수대로 상금을 타게 되는 오락 프로그램이다. 게임의 내용은 상당한 이해력과 지능, 사람의 심리를 잘 읽거나 리더십이 필요해 보이는 어려운(난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한참 걸린다) 과제가 매주 새롭게 제시된다. 어리바리인 나는 게임을 즐기면서 시청하기는커녕 방송을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머리가 좋을까, 똑똑한 사람이 참 많구나,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다.

참가자들은 직장인, 학생, 방송인 따위로 직업이 다양하다. 모두 게임을 잘 하는 사람들이 출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격은 저마다 달라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따라 가는 사람이 있다. 과제를 급하게 풀어가는 사람과 상황을 지켜보며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다. 자기 편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눈치껏 자기에게 유리한 편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참가자들은 게임을 잘 통과해서 마지막 우승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 잘 안 되는 쇼가 나에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다른 식구들이 시청을 하니까 같이 보게 될 뿐이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두 사람 가운데 탈락자 한 사람을 가리는 카드게임이 인상에 남았다. 한 사람은 승부욕이 강하고 게임도 능동적으로 풀어가는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편이고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날 방송의 흐름으로 볼 때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전자가 이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게임을 풀어가는 모양새도 전자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이 나왔고, 시원시원하게 점수를 얻어 갔다. 후자는 질 것 같으면 미련 없이 베팅을 포기했다. 자기가 이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베팅하는 양은 적고 일정했다. 그렇다 보니 이겨도 조금의 이득 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일관된 베팅을 이어가던 후자는 조금씩 조금씩 상대의 점수를 가져 왔다. 어설퍼 보이는 듯한 후자는 상대방 카드를 은근슬쩍 살피고 있다가 상대가 높은 숫자의 카드를 다 썼다고 판단되는 순간에 이르렀다. 전자는 게임 초반에 나온 유리한 카드를 어느새 다 써버리고 만 것이다. 후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블 베팅을 해서 결국은 이기게 되었다.

후자의 이러한 게임 운영 방식은 동료가 자세히 조언해 준 것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조용히(착해 보이는 캐릭터다) 게임을 하는 후자를 도와준 것으로 보였다. 물론 게임에 강한 전자가 이기는 것보다 착한 후자가 이기는 것이 다른 게임을 하게 될 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도와줬는지도 모르겠다.

이 게임의 결과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름 실력을 가진 순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 이겼다는 것(능력),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게임을 풀어갔다는 것(집중), 동료의 조언을 믿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는 것(지속)이었다. 이길 만 했다. 무엇보다 경쟁 사회에서 성품이 착한 것을 멍청하거나 덜 떨어졌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얕잡아 보고 이용하려고만 드는 요즘 풍조를 조용히 뒤집어 놓은 것도 같았다.  

나는 이 쇼를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다. 바라기는 참가자들 가운데 끝까지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면서도 동료들을 조용히 잘 도와주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우승자가 상금을 탔을 때 십 여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상금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데, 이 결과는 제작진도 모르게 참가자들끼리 합의된 것이었다, 뭐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하면서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봤나……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잠언 20:5)

1/23/2014

빛바래지 않는 손길




우리 교회에서는 날마다 말씀을 읽기 위하여 말씀묵상집 『기쁨의 언덕으로』를 사용하고 있다. 『기쁨의 언덕으로』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발행되는 말씀묵상집이다. 사순절이나 대강절 같이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말씀을 보게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새벽기도 시간에도 『기쁨의 언덕으로』에 나와 있는 말씀을 나눈다.

올해는 온 교우가 더 적극적으로 성경을 읽기 위하여 매주 성경문제지를 만들어 성경공부를 한다. 교우들은 그 문제지를 집으로 가져가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고 문제에 답을 달아 온다. 그 성경 문제지의 내용도 『기쁨의 언덕으로』에서 제시되는 말씀을 따라가고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출애굽기 1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아말렉과 싸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붙들고 있었고, 여호수아는 용감히 싸워 아말렉을 무찌른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고등학교 체력장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쯤 대학 진학을 위한 체력장 평가가 있었다. 체력장 점수는 20점이 만점이었고 대입 시험인 학력고사에 반영되었다. 보통 체력을 가진 학생은 어려움 없이 만점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학력고사에서 20점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대입 체력장 종목에는 윗몸 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멀리뛰기, 멀리 던지기, 100M 달리기, 그리고 800M(?) 오래 달리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종목들이 다 치러지고 오래 달리기가 체력장 평가의 마지막 종목이었다. 학급에서 사용하는 번호 순서대로 운동장 트랙을 따라 달렸다. 체육 선생님뿐 아니라 고 3 담임 선생님들도 나오셔서 체력장 결과를 기록하셨다. 대입 시험에서는 1, 2점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적어도 체력장 점수에서는 인정을 넉넉히 베푸셨다.

내 순서가 되어 오래 달리기를 시작했다. 얼마큼 달렸을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다리는 몸에 붙어있기는 한 것인지 느껴지지 않고, 얼굴은 달아올라 불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30대에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나의 폐활량이 보통에 못 미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갔다. 뒤쳐져서 창피하다거나 20점을 받지 못할까 걱정된다거나, 뛰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였다.

가자!”

친구 두 명이 달려와 내 양쪽에서 팔짱을 끼었다(친구 한 명은 얼굴이 기억나는데 다른 한 친구는 기억에 없다. 아쉽다). 친구들이 날 붙잡고 함께 달려주어서 남은 거리를 마저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800M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서 운동장 한가운데 놓여 있던 하얀 매트리스에 난 한참을 누워있었다. ET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국사 선생님이 죽었나 살았나 내려다 보셨다(실제로 1994년 체력장 평가 때 학생이 사망한 뒤로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내 인생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을지 모를 체력장 점수 20점을 그렇게 얻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다. 얼굴을 아는 친구 Y는 운동장에서 헤매고 있는 날 보고 도와주고자 나섰을 것이다. Y는 그런 의리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 친구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계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Y와 가까이 지내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행복하다.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돕는 이야기와 체력장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견주어 보고자 함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온 위대한 지도자나 평범한 나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 만나는 가족, 친구, 교우들의 관심과 도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지치고 힘들 때 가자!” 하며 붙들어주는 이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솟기도 한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든 얕든, 도움을 주고 받는 그 순간만큼은 감동이다. 거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빌어주는 기도가 보태어지면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