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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2013

엉성하고 느슨한 성탄축하예배


2012 성탄축하예배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텔레비전에서는 성탄이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어떤 채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듣거나 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남부,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면 겨울철인가 보다 할 정도의 날씨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담긴 컵에 손을 녹이며, 커다란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아련히 들려오는 캐럴이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으며 곧 한 해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같은 동부인데도 북쪽은 요즘 눈 폭풍이 휩쓸고 있고 정부가 셧다운할 정도라고 하니, 눈이 마냥 낭만적이지 않고 재해인 곳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여튼 추운 계절에 듣는 캐럴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캐럴을 즐겨 들으며 성탄 장식이 자주 보이는 미국 영화도 가끔 찾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내레이터가 성경 본문을 읽으면 교인들이 그걸 몸으로 표현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성탄극이었다. 하지만 극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었고 소품도 아기자기 하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이 대사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리 교회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탄을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성경 말씀을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미를 두고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찾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셀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내레이터가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면 셀원들은 몸으로 본문을 표현했다. 때로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성탄이라는 의미를 계속 강조했으나 성탄 때마다 들어온 말씀을 그대로 읽고 표현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성극인데 잘 참여하시려나 아주 조금 걱정했다. 그런데 성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60 세, 70 세 넘으신 분들이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로 조언해주며 하하 호호 즐겁게 극을 꾸며갔다. 96 세나 되신 할머니 권사님께서도 참여하셨다. 와우! 극중 의상도 솜씨 좋은 분들은 만들기도 하고, 언젠가 성극할 때 입었던 옷을 찾아오신 분도 있고, 이집트 여행할 때 사두었던 옷을 가지고 오신 분고 계셨다. 성극에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은 대부분 찬양이나 연주 등으로 준비를 했다.

성탄주일 예배는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드려졌다.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예배를 드리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무대에 나가서 자기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었다. 연습한 시간도 길지 않았고 대사도 없는 성극은 예상대로 어설펐다. 무대 위에 올라가 서로의 자리를 정하느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내레이터 맡으신 어느 집사님은 평상시에도 혼자 잘 웃으시는데, 이 날 어떤 장면에 눈길이 가셨는지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셨다. 교인들 모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성탄의 기쁨이 슬그머니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듯 했다. 이 날 성탄예배는 엉성하고 느슨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로 드려졌다.

올해 성탄축하예배는 지난해와 구성은 비슷하나 성극이 대사가 많아졌다. 이번에도 주인공들은 60 대 중반 되신 권사님들이다. 지난해보다는 각자 좀 더 열심히 준비 중이신데 서로 만나서 연습하는 시간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느 권사님은 대사를 못 외우면 극본을 보고 하면 되고, 틀리면 그게 더 재미있는 거라고 하신다.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이 성탄 축하에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탄예배가 좀 엉성하고 느슨하면 어떤가! 그 엉성하고 느슨한 빈 틈을 따라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곳으로 인도할 유난히 밝고 시린 별빛이 흘러 들어오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 별빛을 따라 거친 들판을 걸어가는 목자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다.   

 




12/26/2008

변화가 많았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누군가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제 사진기는 너무 낡아서...>

올해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전혀 낯선 나라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어 당황스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알게 된 교우들과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데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과 조금 특별한 강산이 덕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아주 잠깐 동안 같아서, 정말 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후회가 덜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마무리 될 때든지, 요즘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라야 정신 차리고 이런 다짐도 해보지만 마음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느슨해질 때가 많습니다.
뭔가 보려고 길을 나섰으나 정확히 무엇을 보고자함인지 모르거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자신과 자주 마주치는걸 보면 그렇습니다.

성탄절 아침입니다.
딱히 무엇을 할 계획이 없는지라 잠 자리에 그저 누워있었습니다.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서야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 동안 이번엔 반대로 남편이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강산이는 자기 방에서 음악 듣느라 보이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강산이에게 CD에 담긴 찬양을 맘대로 들을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사주마 약속했던 것을 이번 성탄에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소유의 조그만 CD 플레이어를 가지고는 한나절 동안 방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강윤이는 컴퓨터 게임.
언제나 봐왔던 것과 비슷한 성탄절 풍경입니다.

어느 정도 잤는지 남편은 점심 먹고 어디든 나갔다오자며 스모키 마운틴을 제안합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러자 했습니다.
점심 먹고 탁자 위에 놓인 과자, 쵸코파이, 바나나 2개, 그리고 물과 쥬스를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성탄절에는 식당이나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고 스모키 마운틴까지 두 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라고 하니 저녁 식사는 집에 와서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날씨가 꼭 봄 같습니다.
그런데 북쪽에 있는 그 산에 가면 눈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북조지아 어딘가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아 더 북쪽인 그곳에 가면 정말 눈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고 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 조지아의 경계를 지나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가보는 것이니 그곳은 뭐가 다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동차로 어느 정도 달리다보니 단조로운 고속도로와는 달리 마을 풍경이 도로 가까이에 있어서 눈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441번 도로라고 하는데 왕복 8차선 혹은 4차선의 지방 도로(?)쯤 되는가 봅니다.
북조지아와 맞닿아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모습은 그다지 특이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고 단지 산이 가깝고 많아 보였습니다.
멀리 산 꼭대기를 눈길이 닿는 곳까지 바라보았으나 쌓인 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을 알려주는 GPS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휑하니 뚫린 도로를 달려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t.) 국립공원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성탄절을 제외하고는 늘 문을 연다는 방문자 센터에 내려 보니 화장실 말고는 문이 모두 닫혀있습니다.
알고 왔으니 망정이지 서운할 뻔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주유소와 와플 하우스만 영업을 하고 “모든” 상가들에 불이 꺼져 있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산을 얼른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산 쪽으로 길을 잡고 차가 달리는데 GPS가 자꾸 돌아가라고 합니다.
목적지를 스모키 마운틴 파크라고 분명히 입력하고 왔는데 산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니 어찌된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산으로 계속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GPS 말씀대로(--;;) 다시 내려 왔습니다.
GPS가 알려주는 곳은 아무래도 방문자 센터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입력한 목적지를 지우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도 그저 산길이고 가끔씩 가드 레일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있을 뿐입니다.
GPS에도 길만 표시될 뿐 아무 정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 이제 내리막 길이야! 이대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데? 다시 돌아가자!!”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면서도 미리 계획되거나 확실한 정보가 없으면 어설퍼지는 저의 자연스러운 한 마디였습니다.
“저것 봐. 차들이 줄줄이 내려오네.”
내려가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저에게는 올라가는 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새 내려가는 자동차에는 전조등이 켜져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보고.”
요즘 들어 제 의견을 대놓고 무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말입니다.
“아빠, 그냥 계속 가! 쭉쭉쭉.”
뭘 안다고 계속 가라는 것인지 강윤이는 끝까지 가봐야 된다고 우깁니다.

잠깐 다시 오르막 길이어서 강윤이 말이 맞나 싶은데 다시 내리막 길이 이어지고...
그러더니 이럴 수가...
“이걸 못보고 갈 뻔 했네. 오길 잘 했지?”
의기양양한 남편과 강윤이의 말입니다.
“그러게.”
산 정상의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꽤 여러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붉은 노을이 멀리 산 끄트머리에 걸린 풍경을 보며 저마다의 언어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화가가 그려놓은듯 색깔이 점점 옅어지는 산 너머 산을 보니 장엄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해의 마감을 멋있게 사진으로 남겨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 곁을 지나 전망대처럼 보이는 곳으로 나아가는데 익숙한 언어도 들립니다.
남편은 그들에게 “안녕하세요” 합니다.
그들도 “안녕하세요”로 답합니다.
강산이는 자꾸 “야호”해보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의식되어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일 년 내내 안개가 껴있는 큰 산답게 어둠이 내리는 속도가 빠릅니다.
이제는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하니 도착하기 까지 4시간쯤 걸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올라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는데 아무 불빛이 없습니다.
오고 가는 차들의 불빛만 있을 뿐입니다.
산을 다 내려온 다음, 남편은 운전하면서 차의 전조등을 껐다가 얼른 다시 켜봅니다.
또 한 번.
얼마나 어두운지 보려는 것이랍니다.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입니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집에 돌아왔는데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없습니다.
늦은 밤, 저녁으로 라면을 먹으면서도 즐겁습니다.

각자의 기질대로 제 역할을 하며 조화를 이뤄내는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같이 걸어 가는 가족이 있어 좋습니다.

여전히 서툴고 어설프지만 올 한해를 발판 삼아 예수님 은혜 안에서 영과 육이 더욱 성숙해지길 소망합니다.
GPS나 자동차 전조등보다 더욱 자세하고 밝게 우리 갈 길을 인도하시고 비춰주시는 주님이 계시니, 새해에도 그 분만 믿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렵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시25: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