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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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는 때다. 낮 기온이 93-95℉(34-35℃)는 보통이다. 그래도 요즘 이른 아침 시간에는 바람이 살랑거려, 마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손끝이 빠르게 달궈지는 여름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새벽 기도가 끝나고 잠시 걷기에 좋은 시간이 계속 허락되고 있다. 손이 옷 주머니 속을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가는 쌀쌀한 봄 언제부터 새벽 기도가 끝나고 교회 주차장을 남편과 함께 돌고 있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을 되밟으며 여러 번 걷는다.
어느 날 새벽녘, 윗옷 위에 겉옷을 한 겹 겹쳐 입고도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교회 문을 나서서 몇 발을 떼지 않았는데 남편은 내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손을 잡혀줄지 거두어 들일지 빠른 판단을 위해 얼른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가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면서도 앞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옆얼굴에 멋쩍음이 가득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왜 그러시나? 하던 대로 하셔, 하면서 잡힌 손을 다시 빼내 왔을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남편은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런 남편의 태도와 약간 늘어진 볼살 위에 거칠게 솟아나온 수염마저도 안쓰러워 보였다.
신혼 때는 첫 목회지인 강화에서 살고 있었다. 강화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를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장을 보려면 신혼집에서 강화읍까지 버스로 30분을 가야 했다. 현재 강화터미널이 사용되기 전에 있던 옛날 강화터미널에 조금 못 미쳐 종합시장이라는 건물이 두 동인가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재래시장이 아니라 건물 안에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들어가 있어 종합시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종합시장의 정면에는 강화 양사면에서 시작되어 서울 세종로까지 이어진 48번 국도가 지나간다. 남편의 손이 미덥지 않다고 각인되던 그 사소한 일이 있었을 때는 왕복 2차선 도로였고 신호등 없이 횡단보도만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을 그리워하는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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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산이는 불쑥 불쑥 동생을 떠올린다. 식사 시간에 불고기를 먹다가도 이거 윤이가 좋아하는데, 중얼거린다. 신발 가게에서는 점원에게 앞뒤 없이 내 동생은 대학교에 다니는데, 아파트에 살고 있다, 고 알려준다. 카운티 장애인부서에서 지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온 담당자에게는 동생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는 룸메이트 이름까지 말해 준다.
5월 첫 주일, 교회에서 야외예배를 드린 다음, 놀이 시간이었다. 산이도 두 팀 중 한 쪽에 들어가 게임을 같이 하고 있었다. 팀원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낱말을 말 없이 행동으로 표현하면 그 낱말이 무엇인지 팀의 나머지 사람들이 맞추는 게임이었다. 낱말을 설명하는 사람은 열 손가락을 반쯤 오므리고 앞으로 찍어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뭘까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재빠르게 ‘타이거’라고 크게 외쳤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 낱말을 맞춘 사람은 오! 대학교, 내 동생, 하며 신나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누가 그 낱말을 맞췄는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산이었다. 타이거는 동생이 다니는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주황색 호랑이 발자국이 그 학교의 심볼이고, 그 심볼이 새겨진 옷을 보거나 그 모양의 스티커가 붙은 자동차를 보면 여지없이 동생과 학교의 이름을 외친다. 어디서나 동생 생각이 가득하다. 다행히도 교우들은 빨리 답을 맞추어야 하는 게임 시간에 아무도 몰라도 될 정보를 제공하는 산이를 기특하게 여겨주는 듯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산이에게는 동생이고, 나에게는 둘째 아들인 윤이가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언제 올 수 있는지 전화로 물어보고 있었다. 그 통화 내용을 들은 산이는 동생이 오는 날을 물어보았다. 한 번 알려주었더니 아침마다 동생 오는 날을 계속 확인했다. 그 질문을 줄이기 위해 달력에 동생 오는 날을 표시하기로 했다. 산이는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숫자 아래에 동생 이름을 적었다. 이름 옆에는 ‘게임기’ 라고 함께 적어두었다. 지난 번 동생이 새로 산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지고 왔었는…

다리미질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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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의 흰 와이셔츠가 다리미질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이 벗어놓은 것들을 한꺼번에 몰아 빨래를 하고 다려놓아야 한다. 한 주에 한 번쯤 하는 일이다. 물 자국이 남아 얼룩덜룩한 다리미판, 스팀 다리미와 물이 담긴 스프레이, 일명 칙칙이가 한 자리에 모이면 일이 시작된다.
다림질이 시작되면 적어도 한 시간은 뚝딱 지나간다. 똑같은 동작을 한 시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휴대전화로 보고 싶은 동영상을 켜 두기도 했었다. 이렇게 하면 조그만 화면 보랴 다려지는 옷 보랴 정신이 없다는 게 흠이다. 대신에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면 이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 팟캐스트는 음성 파일로 된 것이 많기에 이럴 때 듣기에 적합하다. 팟캐스트에는 온갖 분야가 많은데 그 중에서 개그우먼 송은이 & 김숙 씨가 진행하는 ‘비밀보장’을 가끔 듣는다. 내 감각으로는 지어낼 수 없는 엄청난 유머와 재치, 요즘 젊은 여성들의 당찬 모습 따위를 담고 있어 단순 반복의 다림질이나 운전하다 졸릴 때 들으면 웃느라 시간도 잘 가고 잠도 깬다. ‘비밀보장’ 한 회를 듣는 시간과 다림질 하는 시간도 얼추 맞아 더 좋다. 이어폰은 계속 움직여야 하는 팔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둘째 아들이 사 준 무선 이어폰을 사용한다. 흡족한 아이템이다. 때로 마음이 시끄럽고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다 집어치우고 다림질만 하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앞에 펼쳐진 하얀 옷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다리미판은 한국에 계신 엄마가 주신 것이고 다리미는 미국에 살러 와서 가전제품 장만할 때 구입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새로운 모든 환경이 낯설고 두려울 때 애틀랜타 교회에서 만난 홍권사님이 동행해주셔서 처음 가본 Bed Bath & Beyond에서 산 것이다. 또 남편의 와이셔츠는 모두 한국산이다. 특별히 와이셔츠는 자신의 체형에 한국 것이 잘 맞는다는 남편의 소신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시거나 우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할 때 몇 장씩 챙긴…

느리고 틈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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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다르게 봄이 길어지면서 봄철의 매력인 쌀쌀함이 계속되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얼굴과 손 끝만 남겨놓고 담요로 온몸을 돌돌 말았다. 담요를 뒤집어 쓴 채로 소파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차가운 기운이 닿지 못하게 담요 끝을 요리조리 꼼꼼하게 여몄다. 쿠션 두 개를 무릎 위에 포개고 그 위에 책을 올렸다. 담요 밖에서 한 손가락만 움직이면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졌다. 다른 날에는 커다란 창문 옆에 있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집이 좀 추운 편이라 거기 앉아 있으면 더욱 서늘해서 정신도 더 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 주에는 수술을 하신 집사님의 일터에서 일손이 꼭 필요하다고 하여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한 주 동안 수고한 보답으로 몸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마음이었다.
아들 산이는 친구들 만나러 갔고 남편은 주일 예배 준비하러 교회로 갔다. 산이는 일 주일에 한번 만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점심을 먹고 올 것이었다. 지역 장애인 단체가 제공하는 respite service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다. 주중 프로그램에 연결되지 않은 장애인들이 주말 하루는 집 밖 활동을 하도록,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이들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서너 시간 동안 쉴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이다. 산이가 없는 토요일 점심은 남편과 오붓하게 두 사람의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남편은 아들을 놀이 장소에 데려다 주고 그날 따라 교회에 있는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겠다고 전화로 알려 왔다. 포근한 담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던 차에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 혼자 먹는 끼니는 더욱 아무 문제가 없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허전하면 냉장고 뒤져서 바로 먹을만한 것 꺼내서 배만 채우면 된다. 이제 며칠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오후까지 느긋하게 읽어야지, 여유로움이 담요 안에 사르르 퍼졌다.
책의 흐름을 되새기기 위해 목차를 훑어보았다. 그리곤 지난 번 읽다가 멈춘 곳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에 이어서 두어 페이지를 읽었다. …

거기 계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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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수줍게 퍼질 즈음이면 뒤뜰에서 겨우 겨우 자라고 있는 고추와 호박이 지난 밤을 잘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4월 중순이 넘어 모종을 사러 가면 부실한 것들만 남아 있는듯하여 올해는 4월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호박은 지난해 추수감사주일에 얻은 늙은 호박에서 씨를 얻었다. 두 그루의 고추는 안전하게 양동이에 심었다. 그리고 호박은 잡초투성이인 텃밭을 삽으로 뒤집어 엎기만 하고 거기에 씨를 꾹꾹 박아 놓았다. 올해는 더도 말고 이 두 가지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으면서 주는 기쁨을 누려보리라 상상하며 넉넉하게 물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고추는 이파리가 군데군데 누렇게 되고 비실비실 댔다. 씨를 심고 3주쯤 지나서 호박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흙 밖으로 나와준 싹에게 고마워서 잘 자라거라, 하며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성하게 자라날 호박을 그리던 끝자락에는 밑거름도 안하고 씨를 뿌렸다는 사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호박은 거름을 충분히 줘야 하는데 까먹었다. 하긴 호박을 제대로 심어 열매를 얻어본 경험이 겨우 한 해 밖에 없으니, 차분히 기억해내고 알아보고 심었어야 했는데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어떻게 살려볼 길이 없을까 싶어 퇴비를 사다가 흙 위에 조심스럽게 뿌려주었다. 어찌 될 지 아슬아슬 하다.
한국에서 지키는 어버이 날이 되어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먼저 강화 어머님과 통화를 하였다. 전화를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부만 여쭙고 있다가 부실한 호박과 고추 생각이 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님한테는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 분명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다. 엉터리 텃밭의 상황을 설명 드렸다.
“응, 괜찮아. 고추나 호박 싹에서 한 뼘쯤 떨어져서 손가락으로 동그래미를 그려. 거기다가 거름하고 비료를 솔솔 뿌려. 거기 퇴비는 오래 된 건가? 그러면 가까이에 뿌려도 되긴 한데……”
아차 싶었다. 사 온 퇴비를 조금이지만 벌써 가까이에 뿌렸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님은 그게 별로 심각…

전환시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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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27일은 나의 조국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는 날이었다. 그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은 한국과 13시간 차이가 나기에 26일 저녁 식사 후에 조그만 아이패드 스크린을 앞에 두고 앉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을 향해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설레었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두 지도자가 만나 두 손을 꼭 잡을 때는 약간(!) 목이 메면서 감격스러웠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있었다. 몸짓, 말투, 목소리에도 집중이 되었다. 유머가 있고 생각에 여유가 있는 젊은 지도자로구나 여겨졌다. 북한에 대한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기분 좋게 잠 자러 들어갔다. 물론 남편은 졸면서도 밤이 새도록 아이패드를 켜놓고 그 앞을 지켰다.
새벽기도 갈 시간보다 조금 일찍 잠이 깨었다. 엉겁결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회담 일정이 잘 진행되고 있음이 확실했다. 들뜬 기분으로 교회에 다녀왔다. 아침을 먹으면서는, 정성스레 잘 준비된 잔칫집에서 격조 높게 손님 접대를 하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랑스러웠다. 8천만 동포의 염원을 담아, 우리 겨레가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전환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장 생활한다고 미루고 쌓아두었던 지난 3년의 개인적인 삶을 정리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내 삶이 곧 교회와 붙어있는 신앙생활이다 보니 교회 얘기가 주가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좌절이 되거나 희망이 있거나 교회는 내 삶터다. 우리교회도 새로운 사명으로 초대받고 있는 전환시대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 사명을 분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우리교회 얘기를 좀 더 해보련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미주연회 동남부지방 실행부 회의를 거쳐 우리교회는 2016…

전환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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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첫 주일이었다. 신년예배 설교를 하면서 남편은 한 해 목회 계획도 얘기했다. 남편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그 연장선에 있는 두 가지 목표였다. 하나는 친교실 증축이고, 다른 하나는 교단 가입이었다. 우리교회의 과거 역사나 지역사회에서의 평판, 분위기를 갈아 엎고 복음이 자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새로운 토양을 준비하자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이 목표들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 교회에서 목회를 계속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탁의 말도 덧붙였다.
“앞서 말한 두 가지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는 분들은 반대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반대하고 싶으시다면 잠잠히 있는 것으로 보여 주십시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상황을 몰고 올 수 있는 말이었다. 뭘 저렇게 까지, 목회 여부를 걸고…… 안정지향적인 나한테는 끔찍했다. 2014년 교인 총회 후에 미국 중북부에서 목회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었다. 아이들과 같이 단란한 가족 여행처럼 다녀왔지만 남편은 내내 묵직한 분위기였던 이유를 그제야 알 듯 했다. 제일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하나님의 뜻이 무얼까, 이 시점에서 목회자로서 어떤 지도력을 가져야 할까 고민이 많았나 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마음 속은 정말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맞다. 남편의 성정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보기 좋게 업적을 세워서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꾸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목회적인 사명을 위해 모험을 감행할 결단과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제일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었다. 이 설교가 교우들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을 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오면 협력하면 되고, 마음에 다가오지 않으면 가만 있으면서 진행되는 일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려니 정도로 이해했다.
신년 예배를 드리고 나서 교회 증축을 반대하는 교우들은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들은 몇 분 되지 않았지만 교회 의사 결정에 중심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