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계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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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수줍게 퍼질 즈음이면 뒤뜰에서 겨우 겨우 자라고 있는 고추와 호박이 지난 밤을 잘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4월 중순이 넘어 모종을 사러 가면 부실한 것들만 남아 있는듯하여 올해는 4월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호박은 지난해 추수감사주일에 얻은 늙은 호박에서 씨를 얻었다. 두 그루의 고추는 안전하게 양동이에 심었다. 그리고 호박은 잡초투성이인 텃밭을 삽으로 뒤집어 엎기만 하고 거기에 씨를 꾹꾹 박아 놓았다. 올해는 더도 말고 이 두 가지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으면서 주는 기쁨을 누려보리라 상상하며 넉넉하게 물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고추는 이파리가 군데군데 누렇게 되고 비실비실 댔다. 씨를 심고 3주쯤 지나서 호박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흙 밖으로 나와준 싹에게 고마워서 잘 자라거라, 하며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성하게 자라날 호박을 그리던 끝자락에는 밑거름도 안하고 씨를 뿌렸다는 사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호박은 거름을 충분히 줘야 하는데 까먹었다. 하긴 호박을 제대로 심어 열매를 얻어본 경험이 겨우 한 해 밖에 없으니, 차분히 기억해내고 알아보고 심었어야 했는데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어떻게 살려볼 길이 없을까 싶어 퇴비를 사다가 흙 위에 조심스럽게 뿌려주었다. 어찌 될 지 아슬아슬 하다.
한국에서 지키는 어버이 날이 되어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먼저 강화 어머님과 통화를 하였다. 전화를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부만 여쭙고 있다가 부실한 호박과 고추 생각이 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님한테는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 분명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다. 엉터리 텃밭의 상황을 설명 드렸다.
“응, 괜찮아. 고추나 호박 싹에서 한 뼘쯤 떨어져서 손가락으로 동그래미를 그려. 거기다가 거름하고 비료를 솔솔 뿌려. 거기 퇴비는 오래 된 건가? 그러면 가까이에 뿌려도 되긴 한데……”
아차 싶었다. 사 온 퇴비를 조금이지만 벌써 가까이에 뿌렸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님은 그게 별로 심각…

전환시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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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27일은 나의 조국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는 날이었다. 그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은 한국과 13시간 차이가 나기에 26일 저녁 식사 후에 조그만 아이패드 스크린을 앞에 두고 앉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을 향해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설레었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두 지도자가 만나 두 손을 꼭 잡을 때는 약간(!) 목이 메면서 감격스러웠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있었다. 몸짓, 말투, 목소리에도 집중이 되었다. 유머가 있고 생각에 여유가 있는 젊은 지도자로구나 여겨졌다. 북한에 대한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기분 좋게 잠 자러 들어갔다. 물론 남편은 졸면서도 밤이 새도록 아이패드를 켜놓고 그 앞을 지켰다.
새벽기도 갈 시간보다 조금 일찍 잠이 깨었다. 엉겁결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회담 일정이 잘 진행되고 있음이 확실했다. 들뜬 기분으로 교회에 다녀왔다. 아침을 먹으면서는, 정성스레 잘 준비된 잔칫집에서 격조 높게 손님 접대를 하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랑스러웠다. 8천만 동포의 염원을 담아, 우리 겨레가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전환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장 생활한다고 미루고 쌓아두었던 지난 3년의 개인적인 삶을 정리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내 삶이 곧 교회와 붙어있는 신앙생활이다 보니 교회 얘기가 주가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좌절이 되거나 희망이 있거나 교회는 내 삶터다. 우리교회도 새로운 사명으로 초대받고 있는 전환시대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 사명을 분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우리교회 얘기를 좀 더 해보련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미주연회 동남부지방 실행부 회의를 거쳐 우리교회는 2016…

전환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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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첫 주일이었다. 신년예배 설교를 하면서 남편은 한 해 목회 계획도 얘기했다. 남편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그 연장선에 있는 두 가지 목표였다. 하나는 친교실 증축이고, 다른 하나는 교단 가입이었다. 우리교회의 과거 역사나 지역사회에서의 평판, 분위기를 갈아 엎고 복음이 자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새로운 토양을 준비하자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이 목표들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 교회에서 목회를 계속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탁의 말도 덧붙였다.
“앞서 말한 두 가지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는 분들은 반대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반대하고 싶으시다면 잠잠히 있는 것으로 보여 주십시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상황을 몰고 올 수 있는 말이었다. 뭘 저렇게 까지, 목회 여부를 걸고…… 안정지향적인 나한테는 끔찍했다. 2014년 교인 총회 후에 미국 중북부에서 목회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었다. 아이들과 같이 단란한 가족 여행처럼 다녀왔지만 남편은 내내 묵직한 분위기였던 이유를 그제야 알 듯 했다. 제일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하나님의 뜻이 무얼까, 이 시점에서 목회자로서 어떤 지도력을 가져야 할까 고민이 많았나 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마음 속은 정말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맞다. 남편의 성정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보기 좋게 업적을 세워서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꾸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목회적인 사명을 위해 모험을 감행할 결단과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제일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었다. 이 설교가 교우들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을 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오면 협력하면 되고, 마음에 다가오지 않으면 가만 있으면서 진행되는 일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려니 정도로 이해했다.
신년 예배를 드리고 나서 교회 증축을 반대하는 교우들은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들은 몇 분 되지 않았지만 교회 의사 결정에 중심이었다. …

전환시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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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콜럼비아제일교회에 오기 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인 김성은 목사가 제일교회에 부임하기도 전에 친교실을 넓히려는 계획이 있었다. 교회가 부흥되어 교우들의 수가 조금만 더 많아져도 친교실이 복잡했다. 그러니 손님들을 초청하는 행사 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여러 교우들이 친교실 증축을 건의하였고 그러한 요구들이 모아져 증축을 위한 몇 가지 일이 진행되기도 했다. 2008년, 설계도가 그려졌고 어떤 건축업자의 공사비 제안서도 있었다. 그에 따라 은행 대출도 받았으나 미국 금융 위기기 시작되면서 대출도 되갚아버리고 이 일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2011년,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고향이 된 애틀랜타를 떠나 사우스 캐롤라니아 주의 주도인 콜럼비아로 이사 왔다. 우리가 온 그해부터 일년을 마감하는 교인 총회가 열릴 때마다 일부 교우들에 의해 친교실 증축에 대한 안건이 계속 상정되었다. 목사님은 증축에 대하여 온 교우가 한마음 될 때까지 기도하자고 했다. 그때 우리 교회는 아이들을 포함하여 35명쯤 되었는데, 교우들이 점점 더 결합하면서 50명쯤 모이는 작은 교회였다.
2014년 8월이었다. 연세가 칠십 중반 되신 양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에서 폐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열 일을 제치고 권사님 댁으로 달려갔다. 권사님은 사실 수 있는 날들이 삼 개월 내지 육 개월 정도라고 의사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주셨다. 권사님의 남편 되시는 딕스집사님은 무거운 표정으로 아무 말씀도 없었다. 나는 2013년 뇌종양 수술을 받으시고 몇 개월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체 계시다가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서, 양권사님이 암 말기라는 얘기에 상황이 예측되는듯하여 마음이 무척 아프고 슬펐다.
권사님은 그 즈음에 시편을 한국어로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이고 그래서 괜찮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셨다. 죽음이 눈 앞에 있는데 그리 말씀하시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분명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 …

친구가 준 졸업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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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태가 숨을 쉬는데 산소호흡기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어디 있더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래된 물건들을 넣어둔 조그만 그릇 뚜껑을 열었다. 타원형 모양에 은색 칠이 되어 있고 유리로 된 뚜껑에 크리스털 컷을 흉내 낸 플라스틱 구슬 손잡이가 붙어 있는 그릇이다. 내가 찾는 게 그 안에 있으리란 기대가 손놀림을 빠르게 했다. 3박4일 영성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받은 액세서리들이 제일 많이 보인다. 선배 목사님이 미국 다녀오셔서 주신 콕스베리(기독교 용품 파는 곳) 제품도 거기에 있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마지막 핸드폰에 걸고 다니던 것, 종이로 만든 브로치,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구입하여 결혼식 때 썼던 꽃 모양 귀걸이 한 세트, 대학 때 친구와 이름을 새겨 넣어 끼고 다니던 플라스틱 반지,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학교에서 준 열쇠고리, 고등학교 교복에 달고 다니던 학교 배지……
생각 없이 모아놓은 물건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희태에게서 받은 그것을 찾으려다 보니 다른 것들도 꼼지락 꼼지락 나를 보며 배시시 다정하게 웃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응대해 줄 여유가 없는 것을 무표정으로 알리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좁은 그릇 바닥을 더듬거렸다. 아, 다행이다. 희태가 준 대학 졸업 반지가 거기에 있었다.
미국 이민 와 살면서 오 년쯤 지나면 한국을 꼭 갔다 오자는 다짐 같은 것이 있었다. 왜 꼭 다섯 해였는지 모르겠다. 좌충우돌 이민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면 그쯤에서 모국의 익숙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숨 고르기가 필요할 것 같았나 보다. 2013년 드디어 한국에 갔을 때 안타깝게도 아버님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셨다. 아버님은 우리 가족을 보고 반가워 하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뇌종양이 발견되어 연이어 수술을 받으셔야만 했다. 수술 후 반신불수가 되셨고 며느리를 알아보시는지 어쩐지 잘 모르는 상태로 퇴원을 하셨다. 인천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공기는 엄청 편안하고 자유로웠지만 아버님이 계시는…

마냥 좋지는 않아도 봄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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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 사시는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중부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 봄 가뭄이 심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리조합에서 관리하는 물이 삼분의 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좀처럼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다. 여긴 비가 많이 와야 댜~, 라는 말씀에 물이 부족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겨울이 우기라서 눈은 거의 오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린다. 겨울 내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비가 오더니, 봄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도 흐린 날이 많고 비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어머님네는 비가 오길 바라고 있는데 이곳은 비는 그만 오고 따뜻한 햇볕이 나서주길 기다리고 있으니 사는 처지가 참 다르다.
교인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분이 계셔서 병문안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전날 비가 오기도 하고 기온도 떨어져서 그런지 하늘이 더없이 깨끗하고 파랬다. 높이가 낮은 건물들 덕분에 넓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고, 솜 덩어리 같은 뭉게구름도 하늘 한가득 그림 같이 떠 있었다. 이렇게 맑고 포근한 하늘을 몇 달 만에 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슬슬 좋아졌다. 이왕이면 자동차의 창문을 열고 봄바람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창문을 반쯤 열고 잠시 달렸는데 목이 컥, 하고 막혔다.
꽃가루 때문이었다. 특히 천지에 퍼져 있는 송홧가루. 봄철 동안에는 노란 송홧가루가 건물 밖에는 어디나 날아다닌다. 그래서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재채기, 콧물, 눈병, 가려움 따위로 아주 힘들어 한다. 알러지가 없던 사람들도 이곳에 사오 년 살다 보면 알러지가 생긴다고 한다. 사람이 무던한 건지 둔한 건지 나는 아직 꽃가루의 영향을 별로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송홧가루에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청명한 봄하늘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꽃가루는 몸을 괴롭게 했다. 모든 것이 마냥 좋을 수는 없는가 보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교회에서 대청소를 했다. 교회 마당에서는 나무와 꽃들 사이에 솔잎을 깔아주었다. 남성 교우들과 아이들이 그 일을 맡아주었…

일상 속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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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사님께서 심장 기능이 안 좋아져서 치료 받으시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약물로 치료를 하다가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페이스메이커(Pacemaker)라는 심박조율기를 심장과 연결하게 되었다. 이 조그마한 장치는 집사님의 어깨 아래 피부 속에 심겨졌다. 페이스메이커에서 나온 전선은 심장에 가 닿아 있어서 심장 박동이 정상이 되도록 자극을 주는 기계라고 했다. 이런 기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연세 드신 어르신들 가운데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는 분들이 여럿 계심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자연스레 튼튼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인공적으로 만든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라 여겨졌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면 페이스메이커는 이것을 감지하고 심장을 자극하게 되는데, 가만히 보면 일상 속에서도 안일하거나 게을러진 삶의 태도를 자극하는 여러 일들을 만나곤 한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곳 한국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학기에 나의 반이었던 아이들과 새로 등록한 아이들을 만나 한글 낱말들을 익히고 그 낱말들을 이용하여 문장 만들기를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매주 숙제를 내주고 받아쓰기 하는 것은 웬만하면 거르지 않는다. 집에서 쉬고 싶은 토요일에 한국어를 배우러 나온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나름 이 궁리 저 궁리 하여 학습계획안을 작성하기는 하는데,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부족함을 종종 느낀다.
수업 일정에는 특별활동 시간도 있어서 만들기나 노래, 소고춤, 장구춤, 그리고 케이팝을 부르며 춤을 추는 반으로 나누어진다. 나의 반 아이들은 장구춤을 추는 반에 모두 들어가 있다. 이번 학기 특별활동에서 배운 것들은 가을에 열리는 한인축제에 나가 공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활동 내용을 좀 더 확실히 익힐 필요가 생겼고 장구춤반은 내게 맡겨졌다. 장구춤반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들과 지지난 학기부터 배워오고 있었고 난 몇 번 지켜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