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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2025

평화가 온몸에 스며들다





9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뉴욕 북부에 있는 메이플릿지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했다. 나의 가족은 그곳에 두 번째 방문이었고, 여행을 함께 한 4명의 교우들은 처음 방문이었다. 2000년에 책 <브루더호프의 아이들>을 읽고, 그 공동체는 아이들 교육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23년, 그 이상향을 실제로 목격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나의 아들은 브루더호프를 경험한 이후로 거기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번 기회에 연세 많으신 교우들은 공동체에 사는 노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것 같았다. 우리는 브루더호프를 방문하기 전에 브루더호프와 관련된 여러 책들 중 한 권씩을 읽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책은 브루더호프를 설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쓴 <공동체로 사는 이유>였다. 얇고 작은 판형의 책이지만 신앙적 영감을 주는 글들이 알차게 들어 있다.

에버하르트(1883년~1935년)는 어릴 적부터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로 지냈다. 에버하르트가 열여섯 살 때, 목사인 삼촌과 구세군의 어떤 대표자가 만나서 친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 그 대화 속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며, 그는 내적 변화를 겪는다. 그런 후, 에버하르트는 중산층의 사교 생활을 거부하지만 브레슬라우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에버하르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에버하르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공동체로 존재하기에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길은 현실과 인간 개성으로 인해 위험과 고난이 따른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길을 걷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하나님은 현실을 극복하는 사랑의 힘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은 이 현실 보다 강한 분이기 때문이다.

에버하르트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교를 믿고 고백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역사 속에서 짧게 존재했지만 그 영향력은 여러 공동체에 미치고 있다. 공동체는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 누구도 공동체의 소유가 아닌 어떤 것을 따로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공동체가 소유한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1920년 독일 자네츠에서 시작한 브루더호프는 올해로 창립 105주년을 맞이했다. 브루더호프는 그동안 나치의 탄압이나 공동체 내부 분열 같은 “치명적인 위험과 괴로운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들은 공동체 초기부터 있었던 “어린이들의 공동체, 농장 일, 정원 일, 건축 일, 수공예, 출판, 방문객과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을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체험하며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교우들은 한결같이 꿈 속에 있다가 나온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한인 박성훈 님이 쓴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제목처럼 정말 이상한 나라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신선한 충격은 반나절도 안 지나 찾아온다고도 표현했다. 미국 안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다른 나라가 있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점심 공동 식사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어느 공동체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래였는데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자 은은한 화음이 이루어졌다.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천국의 소리가 있다면 이와 같을 거라는 소감에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교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연세가 많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돌보는 것 같지 않게 돌보는 일상의 모습.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 세밀한 보살핌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그런 모습일 수 없다고 우리는 얘기했다.

브루더호프는 미국,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에 3,000명 정도의 멤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영월에서도 2022년 브루더호프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미국 브루더호프의 방문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공동체에서는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브루더호프가 하나님을 믿으며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진정한 섬김, 나눔, 화해, 평화를 이루려는 그들의 삶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스며드니 말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20/2023

아빠가 부쉈어!




순이는 사우나를 하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순이가 사는 메이플릿지 공동체를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던 중 사우나집은 흥미로운 곳 가운데 하나였다. 숲속에 아담한 호수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나무로 지어놓은 집이 바로 그곳이다. 사우나는 좋으나 준비물을 챙기는 것과 사우나 이후에 머리를 말리고 단장하는 과정이 번잡스럽지 않을까 싶어 순이의 물음에 대답하는데 뜸이 들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주저하는 나와는 달리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보이는 순이의 기운은 이미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입을만한 반바지를 내어주고 빠르게 수건을 챙겨 길을 잡았다. 숲길을 자박자박 걸어가 호수를 다시 만났다. 호수 한쪽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모래밭이 보였다. 한낮에는 어린아이들이 수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모래밭까지 있어서 물놀이할 맛이 나겠구나 싶었다.

자그마한 사우나실에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사우나실의 냄새였다. 나무 향과 수증기가 섞인 건강한 냄새라고나 할까. 열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계단식 자리의 맨 윗자리에 앉았다. 머리맡에 길게 연결된 줄을 당기면 달구어진 기계에 물이 쏟아져 뜨거운 수증기를 만든다. 줄을 몇 번 잡아당겨 온몸이 땀에 젖자 순이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와우! 호수에 몸을 담가 땀을 씻어냈다. 냉온욕이 따로 없다.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한여름에 온몸으로 맛보는 달콤한 시원함이었다. 차분하게 내리는 빗소리뿐인 숲속 호수에 몸을 담그고 수다를 떨다니, 이런 경험은 살면서 쉽게 할 수 없을 듯하다. 이렇게 사우나실과 호수를 서너 번 오가며 열기와 냉기를 즐겼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손님의 피로를 풀어주려는 순이의 선택은 탁월했다.

메이플릿지에서 경험한 열기와 냉기의 반복은 사실 일상에도 이어진다. 비가 좀 많이 오면 내가 다니는 교회 건물 입구에 물이 흥건하게 고인다. 그 물웅덩이는 개구쟁이 아이들에게는 첨벙댈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발을 적시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피해가야 하는 곳이다. 왜 물이 안 빠지나 알아봤더니 입구 옆에 심어놓은 나무가 오랜 시간 자라면서 뿌리가 올라와 물길을 막고 있었다. 그 매그놀리아 나무는 모두 네 그루로 키가 크고 잎이 많아 현관을 어둡게도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난해에 그것들을 다 잘라내었고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요즘 교회 주변을 단장하느라 백호(Backhoe) 같은 중장비가 교회 마당에 와 있다. 언젠가 그 기계를 운전하는 법을 살짝 배운 남편은 이 기회에 쓸모없는 그루터기를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공적인 일에는 부지런히 열심을 내어 달려드는 편이다. 섬세함이 부족할 때도 있으나 마음을 다해 일을 이루어 간다. 워낙 덩치가 큰 기계를 건물 가까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라 마음이 쓰였지만,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나무뿌리를 캐내고 저녁때 들어온 남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던 아들 산이는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었다.

“아빠가 부쉈어! 나무뿌리로 팍 쳤어. 벽돌이 떨어졌어.”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남편을 찾았다. 그는 산이의 고자질을 다 듣고 있었는지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설명을 덧붙였다. 굴착기로 나무뿌리를 캐내는데 끝도 없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뿌리를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백호 한쪽에 달린 버킷으로 파헤친 땅을 다지고 끌어당기다가 깊숙이 뻗은 뿌리에 걸려 현관 앞 회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쳤단다. 기둥을 감싸고 있는 벽돌이 일부 부서지고 말았다.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데 남편은 속상했나 보다. 내심 걱정스러웠다는 나의 지나가는 말에도 그의 마음이 풀어지기는커녕 더 차가워진 걸 보면 말이다. 

남편이 작업한 곳에 물길을 내야 하는 일이 남았다. 누군가 수고하면 여러 사람이 산뜻하게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있다. 타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정을 쏟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일이 해결되지 않는 차갑고 시린 시간을 경험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모든 일을 멈추고 잠잠히 물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모든 시간이 쌓여 의미 있는 삶이 되고 미래가 된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8/21/2023

커피 한잔해요


몽고메리 아트 뮤지엄(MMFA)에서.


애틀랜타에 가까워지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지나서부터 북쪽으로 향하는 85번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네비게이션이 계산한 도착 시각보다 몇 분이라도 줄여 보려고 했는데 도로 사정이 맘 같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은 모두 애틀랜타에 산다. 그들은 일요일 저녁 시간에 모이기로 했고 몽고메리에 사는 우리 가족은 할 일을 다 마치고 가면 저녁을 같이 먹기는 어려웠다.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만남을 기대했다. 그 관심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얘기를 나눌 생각에 애틀랜타로 올라가는 내내 기뻤다.

늘 다니던 길을 포기하고 네비게이션이 찾아주는 빠른 길을 따라 갔어도 3시간이 훨씬 넘게 소요되었다. 한인이 많이 사는 도시 큰 길가에서 벗어나자 나무가 울창한 길들이 이어졌고 그 길가에 아담한 교회가 나타났다. 건물 중간쯤에 있는 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제법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받쳐 들고 문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문이 열리자 적막하고 처량한 바깥과는 달리 다정하고 흔쾌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람들도 보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지인이 나서서 큰 소리로 우리를 환영했다. 낯선 곳에서 어색할 뻔했는데 그의 기운찬 목소리가 환한 미소를 불러왔다. 그가 만들어준 웃는 얼굴로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오붓한 한쪽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그 교회에서 일하시는 부부가 우리 가족을 위해 다시 한번 밥상을 차려주셨다. 온갖 곡물과 열매를 넣은 쫀득한 밥, 소고기를 넣고 푹 끓인 미역국, 오랜만에 먹는 삼치구이, 채소 샐러드와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 처음 만난 그 부부는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말없이 주위에 계셨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린 박자로 흘러가는 정겨운 옛날 노래 같아 보였다.

사실 우리는 그 모임에서 나눈 얘기가 거의 없다.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 이름을 소개하고 얼마 동안 노래를 불렀다. 모인 사람 중에서 작사, 작곡한 '다 쓰며 살게 하소서 다 쓰고 가게 하소서'와 다 알만한 노래들은 합창했다. 그리고 대학가요제 출신인 분은 맑고 고운 목소리로 정성스레 노래를 불러주셨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듣고 싶을 정도다. 노래 제목도 불어볼 겸. 한 젊은이의 비올라 연주를 들으면서는 비올라를 배워놓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몰두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밥 먹고 노래만 부르다 헤어져서 조금 아쉬웠다. 언제 다시 만날는지 알 수도 없어 허전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타인을 기꺼이 식탁에 초대하고 서로를 이웃으로 맞이하는 이런 행위는 여운이 길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며칠 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 시간이 얼마큼 지났을 즈음, 기도 마치고 우리 모두 커피 한잔해요, 팔십 세가 가까우신 분이 제안하셨다. 난 소리를 빼고 입으로만 네, 하며 웃었다. 

기도하던 사람 중에는 몽고메리에 정착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벽에만 우리 교회에 나왔으므로 다른 분들과 사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놀랍고 기뻐서 다시 기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는 교회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갔다. 커피와 아침 메뉴를 가지고 가게 앞 테라스에 둘러앉았다. 밤새 내려앉은 기운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푸석한 아침과 정신 나게 하는 커피는 여전히 잘 어울렸다. 어르신들 뒤로 구름 많은 몽고메리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 어르신들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재물, 학력, 외모, 출신지만으로 사람을 짐작하는 것은 어리석다. 눈을 바라보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나눠보면 세상의 잣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을 만난다. 그곳도 환대가 이루어지는 자리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7/25/2023

나 혼자 살고 싶어




몸을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아이고, 눈물부터 난다. 요 며칠 아들 산이가 툭툭 내놓는 말들이 마음에 쌓이더니 어디론가 쏟아내야 했나 보다. 다시 눈을 감고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지 묻고 또 묻는다. 

지난 6월 말, 우리 가족은 뉴욕주에 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4박 5일 동안 방문했다. 20여 년 전 책 「브루더호프의 아이들 A Little Child Shall Lead Them」에서 그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브루더호프에서 16년 전부터 사는 박성훈 님이 지난해 발간한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를 읽고 공동체를 경험하고 싶은 구체적인 소망이 생겼다. 박성훈 님과 최순옥 님(이하 박 Park 가족)이 먼저 우리 집을 다녀갔고 이번엔 우리가 그들을 만나러 달려갔다.

브루더호프에서 지낸 며칠은 자유롭고 평화스럽고 꿈같았다. 그들은 우리 같은 손님이 그들의 일상인양 자연스럽게 대하였고 우리에게도 어떤 부담이나 꾸밈이 필요치 않았다. 소박한 생활, 각자 역할에 따른 일과 쉼, 그리고 전체 모임은 강물같이 유유히 흘러갔다. 

그들은 일을 가르쳐 줄 때도, 자신을 소개할 때도, 우리에게 질문할 때도, 집 앞을 오가다 만날 때도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또한, 전체가 모일 때마다 부르는 노래의 화음은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공동체가 위치한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허드슨강이 흘러 포근하면서도 멋스럽다.

브루더호프는 자급자족하기 위한 몇 가지 비즈니스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이 가구를 만드는 커뮤니티플레이띵스(Community Play Things)다. 나도 그 일을 경험하기 위해 거기에 갔다가 산이가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공중에 매달린 도구를 끌어다가 나사를 조이는 듯했다. 그런 일을 해 본 적 없는 녀석의 뒷모습에서 왜 그렇게 진지함이 뿜어져 나오던지 내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산이는 맡겨진 일이 할 만했는지 틈만 나면 일하고 싶다, 고 반복해 말했다. 산이가 그 일에 대해 엄청 적극적이어서 흥미로운 한편,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런 일자리는 없을 테니 산이에게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삶터로 돌아와 예상치 못한 산이의 변화 때문에 마음이 먹먹하다. 산이가 혼자 살고 싶단다. 박 가족이 있는 데서 일하고 싶고 동생 윤이처럼 자기도 혼자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산이가 전에도 이런 말들을 자주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대학 가서 따로 떨어져 살게 되자 자기도 윤이처럼 대학 가고 싶고,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했었다. 동생이 그리워서 그러려니 정도로 이해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살 수 있어?, 밥이랑 빨래랑 혼자 할 수 있어?, 라고 되물으면 산이는 아니!, 하고는 자기 말을 거두어들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산이의 태도가 바뀌었다. 엄마 아빠 없이도 살 수 있단다. 산이가 좋아하는 레고 조립하듯이 잠깐 일한 것이 재미있었다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가, 그의 속마음이 의심스러워 나는 거듭 확인을 했다. 박 가족이 사는 곳은 몽고메리에서 아주 멀어서 자주 만날 수 없다고, 밥 보다 빵하고 채소만 먹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산이는 다 괜찮다고 대답한다. 산이는 그동안 잘 먹지 않던 오이나 부추, 치즈 따위를 주어도 아무 불평 없이 다 먹는다. 비빔밥을 먹게 되자 채소를 먹어야 한다며 더 넣어달라고 주문한다. 

브루더호프에 박 가족이 없을 때가 있다고 해도 산이의 대답이 바뀌질 않는다. 부모 곁을 떠나도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낀 걸까.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그들의 배려를 엿보았나. 산이가 브루더호프에서 무엇을 느꼈기에 저러는지 그의 성장이 놀랍고, 지금 당장 들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안쓰럽다.

우리 부부가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산 세월이 꼭 산이 나이만큼이다. 서른 살이 된 산이에게 혼자 살고 싶은 의지가 생긴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산이와 우리 가족을 위해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묻고 있다. 그 계획을 조금만 보여주시길 말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5/08/2023

이상한 나라에서 온 손님




뉴욕주에서 온 손님을 남편은 몽고메리 공항에서 맞이하여 우리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서며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마주 보기도 전에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기대가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느끼는 반가움과 기대에 조금 더 보태 어서 오세요, 달려가며 답하였다. 남편은 그 부부를 평화 콘퍼런스가 열린 뉴욕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나는 그들과 첫 만남이었다. 그들은 소박하면서도 당차 보였다.

우리 두 부부는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체로 남편은 묻고 그들은 답하고 나는 들었다. 그들은 남편의 질문에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이야기는 내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내용이었으나 그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진솔하게 들렸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서로를 돌보는 모습이 다양했다. 식사 준비하는 사람, 옷 만드는 사람, 빨래하고 개어 주기까지 하는 사람이 따로따로 있다는 얘기가 많고 많은 이야깃거리 중에 흥미롭게 남았다. 한편, 그들이 동네 얘기를 하는 동안 이쯤에선 불평이나 험담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나의 지레짐작은 모두 틀렸다. 그럴 것 같은 순간에 그들은 말을 아꼈다. 오히려 내가 못 참고 험담 바가지를 깨트리곤 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눌수록 내 영혼의 바닥이 드러나는 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남편은 그들에게 민권운동의 성지인 몽고메리를 보여주길 원했다. 하루는 아프리카계-미국인 투표권을 얻기 위해 도보 투쟁을 시작한 셀마에 다녀왔다. 손님들은 이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몽고메리로 가기 위해 건너야만 했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걸어보길 원했다.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몸짓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공권력에 맞서야 했지만 끝내 투표권을 획득한 역사 속 사람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 같았다. 셀마로 가는 길가에 있는 현대 자동차 공장의 겉모습이나마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후에는 로사 파크스 박물관에 갔다. 로사 파크스는 그가 앉은 자리를 백인에게 내주라는 버스 운전사의 요구에 당당하게 저항했고, 그의 용기있는 행동이 미국 민권운동의 시작이었음을 소개했다. 민권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사 파크스 여사는 덱스터 애비뉴 침례교회에서 첫 목회를 하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만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벌인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그 교회에 들러서는 아쉽게도 교회 겉모습만 사진으로 남겼다. 코비드19 이후로 교회 안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한데 그것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또 다른 하루는 레거시 박물관과 국립 평화와 정의를 위한 기념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아프리카계-미국인이 겪은 노예의 삶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은 린치(Lynch)의 역사에 그들은 내내 마음 아파했다. 미국에 살면서 꼭 알아야 할 역사를 보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꼭 몽고메리를 방문하도록 권유해야겠단다. 사회적 약자에게 벌어지는 불의한 일을 안타까워하는 그들의 진심이 무뎌진 내 마음에도 깊숙이 다가왔다.

남편은 2000년 끄트머리에 책「브루더호프의 아이들」을 서점에서 발견했다. 책에 담긴 유익한 교육 철학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출판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쉴터교회에서 운영하는 걸 알았고, 그곳에 예배드리러 가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20년을 훌쩍 넘긴 지난해, 이번에도 남편이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브루더호프 이야기」책을 찾아내고는 저자 박성훈 님에게 연락했나 보다. 연락한 이유를 나누던 중 「브루더호프의 아이들」은 그가 출판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때는 한국에서 서로를 모른체 만났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미국에서 한 가정은 브루더호프 안에, 한 가정은 브루더호프를 바라보며 이루어진 이 만남이 참 재미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사람들과 3일을 같이 보냈으면 피곤하고 불편할 법도 한데 나는 그냥 여전하다. 이상한 일이다. 말이 아닌 삶으로 들려준 그들의 이야기는 첫인상처럼 소박하고 당찼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그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1부를 본 것처럼 그다음 이야기가 자못 궁금하다. 언젠가는 그들이 사는 이상한 나라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하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1/30/2019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모든 포스터는 tvN에서 가져오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데는 나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단순한 미국 생활이 때로 심심하고 지루해서. 한국 풍경이 그리워서. 작가의 이야기 전개에 이끌려서. 개성있는 혹은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 보느라.

어느 날 포털사이트에서 연예 섹션을 검색하던 중 “톱스타 유백이”는 자연적인 예쁜 배경을 많이 보여주는 드라마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문구 하나에 끌려 드라마 시청에 바로 들어갔다.

이미 방송된 지가 꽤 되어 여러 편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진짜 근사한 배경이 나오는 지는 시청을 해 봐야 알 수 있기에 첫회부터 성실하고 꼼꼼하게 살필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되자 촬영된 장소와 배경이 어떠한지 보다는 전혀 의외의 설정과 줄거리의 전개에 더 집중되었다.






연예인 유백은 거침없는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 여즉도라는 섬으로 잠시 피해 있는다. 여즉도는 인터넷, TV, 휴대폰이 연결되지 않는 섬이다. 이 섬에 사는 순수한 소녀 오강순은 유백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만나게 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주인공에 얽힌 이야기는 엉뚱발랄하다. 더불어 오강순의 동네 오빠인 최마돌은 해적을 물리친 최연소 선장이다. 두 주인공과 최마돌의 관계는 드라마 전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는 무엇보다 간질간질한 사랑이 여기저기 깔려 있다. 보통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것 같은 감정들을 그대로 꺼집어내어 보여준다. 사랑 표현이 노골적인데 정겹고 유쾌하다. 그래서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를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시카고에서 있었던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여 친구 목사 부부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은퇴 후 삶에까지 이르렀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나이가 되었던가. 그들은 모두(!) 오래된 친구들과 멀지 않은 곳에 혹은 공동체로 어울려 살고 싶다고 했다. 같이 살고 싶은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인지 아니면 각자가 생각하는 어떤 친구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노년을 보내길 원하는 그들의 바람에 살짝 놀랐다. 내 노후의 그림에는 남편, 아들 산이와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만 있었으므로. 

함께 살아온 시간과 추억이 있는 사람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산다면 어떤 모습일지... 직설적이고 거칠면서도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사는 여즉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강순이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음식도 소품처럼 놓여져 드라마에 정겨움을 더한다.

이 드라마는 지난주에 끝났다. 끝난 드라마는 몰아서 볼 수 있어 좋다. 모두 11회로 길지도 않다.

10/13/2014

성찬식 풍경




우리 교회는 성찬식을 매월 첫 주 주일예배 때에 한다. 지금은 시월 성찬식에 참여했고 다음 달 성찬식이 오기 전, 그 중간쯤에서 살고 있다. 다른 교회의 성찬식과 비교해서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우리 교회 성찬식이다. 그런데 비슷하게 반복되는 우리 교회 성찬식이 언제부턴가 좋아졌다.

한 덩어리의 빵과 한 잔의 포도 주스(포도주가 아니다)가 준비된다. 어느 권사님이 성찬을 자신이 준비하기로 마음에 정하신 바가 있어 그 분이 때마다 마련하신다.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들어간 성찬 빵과 포도 주스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기 위한 예식임을 목사님은 선포하신다. 그리고 세례 받은 자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작정한 모든 교우들은 성찬식에 초대된다. 우리 교회는 어린 아이로부터 연세가 아흔여덟 되신 권사님까지 모든 교우들이 성찬식에 참여한다. 때로 방문한 분들도 자유롭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

성찬식을 위하여 준비된 빵과 포도 주스 앞에 교우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선다. 교우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순서를 기다리는 교우들은 늘 느긋하고 평화롭다. 연로하신 분들은 부축하여 나오시고, 노부부는 서로를 의지하여 손잡고 나오시고, 줄 서는 자리를 서로 여유 있게 양보하기도 한다.

예배실 안에 찬송가 반주 소리와 드문드문 목사님께서 성경 구절 낭송하시는 목소리만 들리다가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예배실에 들어서면 성찬식은 즐겁기까지 하다. 갓난 아이는 부모님 품에 안겨 들어오고, 조금 더 자라면서부터는 제 스스로 예식에 참여한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도 이미 성찬식에 익숙해서 성찬식의 흐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빵을 처음으로 찢는 사람은 목사님이시다. 그 다음은 성찬 나누는 것을 도와주시는 권사님들, 그리고 교우들이 빵 한 덩이에서 원하는 만큼 쪼개어 갖는다. 보통은 한 입에 들어가도록 조금 작은듯한 크기로 조심스럽게 뜯어 낸다.

그런데 한번은 개구쟁이 초등학교 녀석들이 무슨 이유인지 한 손 가득 빵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걸어나갔다. 배가 고팠는지, 고요한 예식의 틀을 깨보고 싶었는지……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는 살짝 당황스러운 분위기였으나 이내 교우들은 소리 없는 웃음으로 그 아이들을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한, 두 번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 녀석들은 그전과 같이 다시 의젓하게 성찬식에 참여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나 교회 선생님께서 성찬식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셨을 것이다.

성찬 빵과 포도 주스를 먹는 모습도 여러 가지다. 포도 주스에 찍은 빵을 차마 입에 넣지 못하고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제자리로 돌아가 먹는 사람, 살금살금 씹어 삼키며 돌아가는 사람, 얼른 입에 넣고 자리에 돌아가 먹는 사람, 손으로 입을 가리고 먹는 사람, 묵상하며 먹는 사람…… 성찬 음식을 먹는 모습은 제각각이라도 모두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들이다. 교우들의 표정을 이리 살피는 나는 좀 덜 경건한가 보다. 핑계 같지만 교회가 작아서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함께 예배 드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교회력에 따른 절기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 난 참 좋다. 한 덩이의 빵과 한 잔의 포도 주스로 교우들 모두 나누어 먹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임을, 공동체임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니 말이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철저한 사랑의 헌신을 기념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주일 예배 시간에 교우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성찬식의 경건하고, 평화롭고,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도 성찬식에 참여하는 기쁨 가운데 하나다. 빵(KING’S HAWAIIAN에서 나오는)도 맛있다. 그러고 보니 빵을 한 움큼 뜯어 먹은 녀석들도 나처럼 이 빵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작은 우리 교회의 성찬식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4/08/2011

『울지마 톤즈』를 보고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고(故) 이태석 신부님(48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하던 중 사제가 되기로 결심을 한 이태석 신부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수단 남부에 있는 오지 중의 오지 톤즈 마을로 찾아갑니다.

수단은 남북 내전이 있을 뿐 아니라, 톤즈가 있는 남부 지역 내에서도 부족간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잦은 전투로 불안정한 분위기, 교육과 의료시설이 없는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은 그곳에 사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병원을 만들어 언제고 찾아오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또한 병원에서 백신을 보관하려면 냉장고가 필요한데 전기가 없어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소를 손수 짓고, 아이들 놀이를 위한 농구대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집이 먼 아이들을 위해 기숙사를 만들고, 기쁨과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고, 남부 수단 최초로 35인조 브라스밴드를 만드는 것을 통해 톤즈에 대한 사랑을 키워갑니다.

환한 웃음으로 7년 동안 톤즈를 위해 노래하던 이태석 신부님은 한국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들렸다가 대장암을 진단 받고, 1년 넘은 투병 끝에 2010년 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톤즈 마을 사람들과 신부님의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둘째 아이와 꼭 같이 보아야 한다며 남편이 가져온 것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지난해 9월에 한국에서 개봉되었고, 저희가 본 것은 KBS 스페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성경 말씀에 따라 진실되게,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고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에 그저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과 헌신이 나에겐 얼마나 있나, 아무도 몰래 헤아려 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더욱 사랑”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할 숙제가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아 퍼뜩 정신을 차려 보았습니다.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마태복음 25장 34절-40절 /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