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14/2014

영화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보고





얼마 전 눈이 거의 안 오는 이곳에 눈이 내려 좋아라 했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더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많이 쌓인 곳은 거의 20 cm(거의 8 인치)쯤 된다. 아이들도 눈이 내리기 시작한 날은 수업을 절반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주 프레지던츠 데이(Presidents’ Day) 공휴일까지 합쳐 일 주일을 집에서 쉬는 방학 아닌 방학을 맞았다.

사르르 쌓이는 눈과 우박처럼 생긴 얼음 눈이 마구 섞여서 내렸다. 기상정보를 알려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교통사고, 정전, 학교나 공공기관 폐쇄와 같은 소란스러운 뉴스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눈 폭풍은 이 세상의 당황스러움과 시끄러움을 알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엄청난 눈과 비를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고 있다. 지구의 기후 변화뿐 아니라 뭔가 변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주, 지구, 내가 사는 곳……

!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뒤뜰에 눈 내리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나가서 눈 속에 서 있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뒤뜰로 나가는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눈이 쌓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눈을 쌓아 놓았다. 일기예보와 지난번 눈에 대한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눈이 쌓여도,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면 이 정도의 눈은 어느새 녹아버릴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뒤뜰로 나가는 문이 열리지 않으니(현관문을 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 집안에 갇힌 느낌이 살짝 들면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뜻을 찾아보니 고립되어 구원받을 데가 없다이다. 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에 힘없는 웃음이 풋, 하고 나왔다

꼬박 이틀이 지나 눈이 그쳤다. 먹이를 찾아 나온 새들도 보인다. 담 넘어 도로에 오고 가는 자동차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인다. 요즘 달달한 음식이 땡긴다는 둘째 아이의 말도 생각나고 하여 도넛을 먹고 싶다고 남편을 꼬드겼다. 도로 위에는 눈이 얼마나 녹았는지 살펴볼 겸 나갔다 오라고. 남편은 또 첫째 아이를 달래어 함께 나갈 채비를 했다. 두 사람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다. 도넛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손에 들려 있는 것은 DVD 두 장. DVD 자판기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 였다. 눈 때문에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약간의 갑갑함을 해소할 요량으로 영화에 집중했다. 주인공의 나이든 모습을 보니 오래 전에 찍은 영화는 아닌 듯 했다. 레드포드가 타고 있던 요트가 바다에 떠다니던 컨테이너에 부딪히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대사가 거의 없다. 영화 초반에 고장난 무전기가 잠시 작동을 하면서 구조 요청 하는 몇 마디 말을 들을 수 있다. 후반부에서는 마실 물이 담긴 통에 바닷물이 들어가 섞인 것을 보고 God / Fuck 라는 대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배를 만났을 때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Help를 몇 번 외치는 것을 빼고는 대사가 없다. 내 기억으로는 배경음악 조차도 영화가 거의 끝날 때쯤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인공의 몇 마디 말이 이 영화에 필요한 모든 대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바다와 배에 대하여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자기가 타고 있던 배 옆구리에 구멍이 났을 때도, 폭풍이 몰아칠 때도, 배가 침몰할 때도, 심지어 구명보트가 다 타버릴 때도 그는 침착하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잃어버리는 절망의 연속이다. 주인공은 이런 고립무원(이럴 때 딱 맞는 단어였다!)의 상황에서 맞서지 않고 능숙한 솜씨로 주어진 상황에 담담하면서도 부지런히 대처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가 타고 있던 구명보트까지 다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의지를 놓은 채 자신의 생명을 바다에 맡기려 한다.

안돼!”

영화를 보던 첫째 아이의 외침이다.

왜 여태껏 잘 해 놓고……”

나도 너무 아쉬웠다. 영화는 그 뒤에 한 장면이 더 남아 있다.

올해 78 세가 된 로버트 레드포드의 더 함도 덜 함도 없는 깊이 있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지난 해에 상영된 얼마 안 된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그 이야기 속에 우리네 인생의 단면이 들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한 발을 겨우 빼고 나면 다른 한 발이 이미 깊이 빠져들고 있는 수렁 같은 상황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었나. 폭풍우가 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구멍난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을 만나면, 난 얼마나 의연하고 능숙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 많던 눈들도 한 나절 만에 절반 넘게 녹아 내렸다


1/30/2014

서설(瑞雪)





아이들이 이틀 동안 집에서 쉬다가 학교에 갔다. 등교도 보통 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했다. 휴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간 것은 그제 밤에 내린 눈과 낮은 기온 때문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늦게나 눈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교육구에서는 아예 수업이 없는 것으로 전날 저녁에 이미 알려주었다. 교육구나 학교에서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학부모에게 안내 전화를 한다. 궂은 날씨나 비상상황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는 학부모 전화, 교육구 홈페이지, 그리고 지역 TV나 라디오 방송 채널에서도 안내해준다.

그날 볼일은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는 하늘을 살피며 눈이 오기만 기다렸다. 정말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살폈다.

곧 올 텐데, 뭘 그래?”

남편은 눈 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고 픽 웃는다. 나도 우습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겨울마다 보던 눈인데,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니 눈 오는 걸 보는 것마저 귀하고 그립다.

저녁 8시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을 휘감으며 힘차게 내렸다. 눈발이 굵어지고 잔디 위에 조금씩 쌓이기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같아서는 뒤뜰에 쌓이는 눈을 밤새 감상할 것 같았는데, 몸은 벌써 잠 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청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감성을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콜럼비아로 이사온 지 4년차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보게 되다니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추 2인치(5cm)쯤 쌓여있다. 학교를 쉴 정도의 눈은 5년 전쯤에도 왔었나 보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 많은 눈은 20년 만이라고 하셨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 내린 풍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분된다. 여느 아침과는 달리 바깥이 더욱 환하다. 눈에서 나오는 하얀 색 때문이다. 구름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에 반사된 눈빛이 반짝거린다. 화사하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미국 남동부에 눈 폭풍이 온 것은 뉴스에 나올만하다. 눈이 잘 오지 않으니 제설장비가 제대로 있을 리 없다. 부족한 제설장비와 재해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주지사나 시장을 향한 질책은 예상할 수 있는 뉴스거리들이다. 애틀랜타에서 처음 겨울을 맞이할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애틀랜타에서는 이번에 내린 눈이 미북부 지역에 비하면 많지도 않은 양인데, 그에 대한 행정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이 큰가 보다.

이곳, 콜럼비아는 안전하게 학교도 일찍 문을 닫았고, 교우들끼리도 안부를 물으며 서로 챙겨주었다. 하루, 이틀 먹을 물과 식료품은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오는 교우도 있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한국은 설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음력으로 새해를 다시 한번 시작하는 날이다. 미국에서는 음력 설을 쇠지는 않지만, 한국인인 나와 우리 가족, 교우들에게 이번에 온 눈은 새해에 복되고 좋은 일이 많으리라,고 알려주는 서설(瑞雪) 같다


때마침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만났어요.
잘 안보이나요???  ^^

2/12/201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산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윤이는 친구와 함께 눈을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답니다.*^^*>


오후 2시쯤부터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이 꽤 많이 왔습니다.
이곳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라 눈이 오면 저는 반갑고 좋습니다.

눈이 엄청 내린 워싱턴에 비하면 여기에 내린 눈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곳도 눈이 오면 어려움을 겪게 되는것 같습니다.
여기는 눈이 잘 내리지 않기 때문에 눈이 자주 오는 지역에 비해 대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나 교회의 오후(내일까지) 행사나 프로그램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연이어 눈이 오고 있다고 하던대….
설날을 준비하고 계실 부모님들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님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잔뜩 실려옵니다.
아들만 둘을 두신 어머님은 이럴 줄 알았으면 딸이라도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다고 하십니다.
아빠는 강산이 강윤이 목소리 듣고 싶다며 바꾸라고 하십니다.
명절이다보니 부모님들께서는 멀리 떠나 있는 우리 가족이 많이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아버님과 어머님, 아빠와 엄마, 어머니, 동생들과 조카들 그리고 명절이면 오고 가실 모든 친적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2-6)


<눈 온 다음 날 아침, 뒤 뜰 언덕에서 비닐 썰매를 탔답니다.>

1/15/2010

겨울눈(Winter Bud), 언제나 준비하고 있구나


날씨가 조금 풀린 것 같습니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가 등을 디밀고 앉아있자면 따뜻한 기운이 살살 퍼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햇빛이 없는 곳에서는 여지 없이 히터를 끼고 있어야 할 만큼 춥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10년 만에 찾아온 한파니 100년 만에 내린 폭설이니 하는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여기는 미국의 남부 지역이라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보통 때보다는 많이 추운 겨울을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넷 신문을 보니 이러한 기상이변에 대한 이유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여기저기 실려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는 북극의 찬 기운을 막아주던 제트 기류의 둑이 무너져서 북반구의 나라들이 이상 한파를 겪고 있다고 하고, 또 다른 교수는 지구 온난화가 계속 되면서 더워진 공기가 지구의 공기 순환을 빠르게 해 남극과 북극의 공기가 더 먼 곳까지 이동하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지구에 앞으로 2, 30년 동안 미니 빙하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들을 싣고 있습니다.




그 기사들을 보면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가 생각났습니다.
2004년 영화가 상영된 이후로 겨울이 오면 TV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기후학자인 주인공이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되어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는 내용입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꽁꽁 얼어버린 뉴욕을 배경으로,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줍니다.
최근까지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뉴욕이 얼어버리는 것은 완전히 허구이고, 퀴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아들이 눈과 얼음 속에 갇히게 되고 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찾아나서는 주인공 아버지와의 감동 스토리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이상 기후를 봐서는 그 영화에서 벌어진 일이 있을 법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오랜만에 추위로 잔뜩 웅크린 어깨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눈길이 나무들에게 가 닿습니다.
여기도 있나….
있습니다. 겨울눈(Winter Bud).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여러 집 엄마들이 뭉쳐 공동육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 데리고 박물관과 고궁 나들이를 자주 했었습니다.
어느 겨울 날, 경복궁에선가(?) 뭔가를 잘 설명해주는 얼씨구 엄마(엄마들 별명, 우리 가락과 사물놀이를 주로 가르치는 엄마였어요)가 겨울눈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도 나무에 겨울눈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고 신비로웠습니다. *^^*
그로부터 겨울나무들을 볼 때면 겨울눈이 있나 자꾸 살피게 됩니다.

겨울눈은 나무나 여러해살이 식물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겨울을 지내기 위해 만드는 눈으로, 봄에 새싹이 나올 수 있도록 겨울 내내 보호된다, 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잎으로 무성한 여름부터 다음 해를 다시 살기 위해 눈을 만들고, 가을을 지나 차가운 겨울을 견딘다고 하니 참 놀랍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계획과 준비, 강인함과 인내를 보여주는 겨울눈이 어느 때보다 더욱 살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눈들이 추운 이 겨울을 더욱 튼실하게 넘기고, 따뜻한 봄에 고운 새싹으로 만나게 되길 빌어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28-31)

5/29/2008

01/25/2007 - 하얀 사랑을 만나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소요산으로 가는 길을 온통 하얗게 덮고 있는 함박눈을 보며 알지 못할 야릇한 감정에 휩싸여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리랑신학동지회, 겨울 나들이, 소요산, 민박 집...

대학원 다닐 때 있던 두 개의 학회 가운데 하나였던 아리랑신학동지회에서 소요산으로 겨울 나들이를 갔습니다.
하루 일정 가운데 마지막으로 모두가 둘러 앉아 자기의 꿈이나 계획을 얘기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차례입니다.
신학공부를 더 하고 싶고 그런 다음 결혼은 하든지 말든지,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회원들의 반응은 무덤덤해 보입니다.
다만 한 사람만은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눔의 시간이 끝나기 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의 무게가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새해 아리랑의 임원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기에 그 말없음의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나오려는 그를 민박 집 밖으로 불러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더 용감한 것 같습니다.
그를 불러내기는 했으나 무슨 말부터 해야 될 지 모르겠고 한밤중이라 무지 춥기도 해서 소요산 입구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그 때 1월의 소요산은 언젠가 온 눈이 녹았다가 다시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어두워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터라 걷는데는 자신이 있지만 미끄러운 길에서는 유난히 둔해지는 저였습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 불편한 관계를 풀어야만 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당당하게 그 사람의 팔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자신을 의지해서 걷는 제가 싫지는 않았는지 그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 일년 반 동안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봐 주지도 않는 사람을 연모해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사랑이 어찌 대단했는지 주변 사람이 다 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저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묘해서 말로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된다고 지금까지 믿고 있는 나로서는 그 사람의 말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당사자인 나만 모르는 사랑이 있을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내 몸 어딘가로부터 떨려오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민박 집을 나서는데 함박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면 발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하얀 세상이 주는 신비로움을 간직하려는듯 회원들은 둘, 셋씩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과 나를 붙여놓더니 사진을 찍어줍니다.
서먹서먹한 그 모습 그대로 사진 속에 담겼고 그 사람 자취 방에 내내 걸려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이 지금은 남편의 청년 시절 앨범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꽉 찬 15년의 결혼 생활을 넘기며 저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하반기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영적 전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편과의 갈등이었습니다.
부부로 살면서 시시때때로 말다툼 하며 살아도 우리는 그런대로 잘 맞는 부부라 여겼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다툼은 했어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체 쌓여가고 있었고 우리가 잘 맞는 것은 인생의 큰 틀(세계관)이었습니다.

상처받기 싫어 꾹꾹 눌러가며 쌓아두던 문제들이 하나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틈을 비집고 꾸물꾸물 기어나온 것입니다.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인 부부가 어떻게 그다지도 무시무시한 말들로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처음엔 분노가 폭풍치듯 밀려옵니다.
'이러면 안되지. 이따위 감정에 내가 질 수는 없지.
이럴 때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잖아.
서로 채워주라고 가장 알맞은 베필을 하나님이 정해주신거야.
그런거야.'
나름대로 마음을 다스리고 숨도 크게 한번 내쉬고 다시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부딪침이 서로 잘해보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제가 일년 반 전부터 기도하던 아버지학교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눈물로 채워진 영혼을 가지고 인카운터 수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남편, 부모님 그리고 교우들과의 관계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 용서하지 못함, 분리의 영을 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셨습니다.

인카운터 수양회에는 기도사역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다 가깝게 경험하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던 중 멈출 수 없는 통곡이 터져나왔습니다.
강산이가 떠올랐습니다.
강산이를 낳은 저를 남편이 거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를 온전히 내어주지 못했으며 나를 지킬 수단으로 남편도 침범치 못할 마음의 제한구역을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를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엉엉 울다가 멈추었다가 또 흐느끼다가...

그러다 문득 이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하실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 순간 "네 남편은 내가 세운 신실한 나의 종이다" 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울림이 나를 일으켜세웠습니다.
일어나보니 기도하던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뜨고 없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제2의 신혼기를 맞은듯 합니다.

지난 해 12월 엄마가 관절수술로 입원해 계실 때 몇 일 간호를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잘잤어? 당신없는 새벽이 너무 추워 몸이 따뜻해지려면 한참걸려 당신도 그랬어? 오후에 봐"
남편은 문자 메세지를 통해 연애시절에도 맛보지 못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남들은 닭살이라고 하겠지만요.

얼마 전에는 남편이 5일 동안 정회원 연수교육으로 교회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첫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남편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어제 잘 못잤어 새벽기도에 늦을까봐 이럴 때면 목회에 대한 당신의 수고를 한번 더 생각하게 돼 편안히 있다 와요"
남편의 답장, "주몽 보고 일찍 자구려 새벽에 모닝콜 해줄까? 기도하겠슴"
"오늘 저녁 예배 잘 드리도록 기도할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오늘도 당신은 잘할거야"

남들이 말하는 모범적인 부부가 아니라 우리끼리 그냥 행복한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보려 합니다.
이 겨울 좀 더 깊어진 마음으로 16년 전 하얀 사랑을 다시 만나고 있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5/28/2008

02/24/2005 - 2층 높이만한 눈사람


눈이 많이 왔습니다.
새벽기도 갈 때 눈 속에 신발이 절반 정도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하얀 나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찬 얼굴을 잠자고 있는 강윤이 얼굴에 비벼대며 "밖에 눈 엄청 많이 왔다!" 했습니다.
강윤이는 엄마의 차거운 뺨을 밀어낸 적이 없습니다.
"아, 따뜻하다!" 하면 고개를 끄떡이며 새벽잠을 달게 잡니다.
눈 왔다는 소리에 창문이라도 열어볼 줄 알았는데 눈만 떳다가는 다시 잠들었습니다.

겨울을 아쉬운듯 보내는 기간이 아이들 봄방학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방학이지만 강윤이는 피아노학원에 가야 합니다.
내 속마음은 '길도 미끄럽고 눈도 꽤 많이 쌓였는데 나가서 놀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얼른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야, 너네 나가서 놀래? 오늘 학원 쉰대."
일부러 밀어내는 걸 알면 청개구리 같이 안 나간다고 할까봐 별일 아닌듯 물어보았습니다.
"앗싸! 옷 줘."
"나 여섯 살 때처럼 2층 높이 눈사람 만들어야지~~~ 엄마, 그 때 2층만한 높이였지?"
'글...쎄'

이른 9시쯤 나간 아이들이 늦은 4시가 넘어 들어왔습니다.
무심한 이 엄마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잘 모릅니다.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눈으로 신나게 놀다가 이웃에 사는 송희네 가서 놀다왔다는 것 밖에는.
교회 마당 눈 청소를 하고 돌아오신 옆집 아빠(보통은 친정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말씀에 의하면 잘 뭉치는 눈이 아니랍니다.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기는 어렵겠구나. 그 때 눈사람이 정말 2층 높이만 했나?'


사진을 찾아보니 2001년 1월 큰 눈이 내렸고 친구들과 아이 아빠들이 힘을 보태어 눈사람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눈이 그치고 마당에 쌓인 눈을 옆집 아저씨 포크레인으로 치울 만큼 많은 양의 함박눈이었습니다.
정말 큰 눈사람이었고 막 여섯 살이 된 강윤이에게는 2층 높이는 돼 보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해 1월 강화 할머니댁에 놀러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계단까지 있는 눈 미끄럼틀을 만들어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추억을 더듬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모습도 어린이 티를 벗어나고 있고 부모가 함께 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나가 놀다 들어오고.아마 잘 노는 것은 공동육아 시절 놀아본 판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봄방학이 끝나고 나면 강산이는 4학년(13세), 강윤이는 3학년(10세)이 됩니다.
아이들이 새 학년이 되면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만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좋은"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으나 굳이 한마디로 줄여 보자면 "인격적인" 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기도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이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천군천사로 보호하여 주시길 말 입니다.

아파트 가운데 있는 조형물 제목이 "소년과 새" 입니다.
강윤이 말대로 예비청소년이 된 강산이와 "아들" 하고 불러주면 좋아하는 강윤이가 신앙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시편 1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