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2014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


시카고에서




지난 주에는 가족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했다. 시카고 근처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 여행이 실행되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고 자동차로만 열두세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었고, 아직 미국 중북부를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의 풍광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으니 기회만 되면 그들에게로 달려가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이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둘째 아이는 성탄절 즈음에 친구네 가족을 따라 스키장에 가도 되느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딱히 계획이 없었던 지라 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허락했었다. 아이는 방학이 가까워지자 스키장에서의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스키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홈페이지도 보여 주었다. 거기엔 스키복과 스키 장비를 빌리는데 드는 비용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는 맨몸으로 가서 모든 장비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속셈을 해보니 그것들을 하루만 빌린다 해도 몇 백 달러가 필요했다. 이거 너무 비싸다, 했더니 안 되겠지, 라는 대답이 바로 이어서 나왔다. 렌트 비용을 미리 살펴본 눈치였다. 아이와 이런 짧은 대화가 오고 간 다음날 남편은 시카고 여행을 제안했다. 중북부를 여행할 기회가 바로 이때라고 판단되었나 보다.

가족 여행 계획이 친구와 스키장을 가지 못한 아이의 아쉬움을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았다. 남편의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방학 동안 심심해 할 아이들을 위해서도, 단순한 일상 속에 묻혀 있는 아내를 위해서도, 그리고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여행이라 여겨졌는지 일을 진행하는 모습에 파드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100세가 가까워 오시는 권사님께서 성탄주일이 되기 일주일 전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날마다 병문안을 다니던 남편은 아무래도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어느 정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이러한 형편을 알리자 우리 가족이 그렇지, , 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원래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전날, 권사님께서 퇴원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사님께서 입원해 계시는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권사님의 병세가 어떠신지 직접 눈으로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권사님의 눈동자와 말소리에 힘이 조금 생기신 것 같았다. 우리는 권사님이 퇴원하시게 되었으니 시카고로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씀 드렸다. 권사님은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며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셨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부리나케 여행 가방을 꺼냈다. 그래도 혹시 권사님께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마음은 들뜨지 않도록 잘 붙들어 두었다.




그런 복잡한 사정을 뒤로하고 떠난 여행은 감사하게도 순조로웠다.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도로 사정이 좋았다. 북부지역이라 눈이 오면 어쩌나 했는데(눈이 오면 오는 대로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남부에서는 눈을 보기가 어려우므로) 우리 가족이 남부의 따뜻한 기온을 몰고 왔다고 농담할 정도로 그다지 춥지 않았다. 미주리 주의 선배 목사님네를 시작으로 아이오와 주와 일리노이 주의 친구들을 찾아 다니는 동안 비록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일지라도 구경도 많이 했다. 친구들이 사는 크고 작은 도시들, 고속도로 주변에 스치는 여러 분위기의 도시들, 추수가 끝나 빈들이 되어버린 탁 트인 평야와 풍력발전에 사용되는 거대한 바람개비들,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끝없는 하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지루한 줄 모르는 신선한 경치들이었다. 아이가 영화에서만 보던 시카고는 몇 군데 걸어 다녀보기도 했다.

여행에서 만난 동료 목사님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우리 가족에게 정성스런 음식과 편안한 잠 자리를 내어주었다. 밤이 깊어지는 것도 모른 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목회 현장에 대한 이야기와 신앙인으로써 이 시대에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지 진지하게 풀어 놓았다. 신학적 주제에 대해서도 열띤 논쟁이 있었다. 다들 중년에 이르러서인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견해를 풀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들을 들을 때에는 감동이었다. 오래 묵은 친구들에게서만 풍겨 나오는 진한 향기를 맡는 듯했다.

또 노래도 엄청 불렀다. 어느 부부 목사가 기타 반주를 하며 오 거룩한 밤노래에 화음을 넣어 멋있게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가 젊었던 8,90년대에 거리에서 불렀던 노래나 대중 가요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불러 보았다. 가사를 모르거나 연주 코드가 헷갈리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척척 내놓았다. 부부끼리 노래 부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기도 했다. 잘 불러도, 틀리게 불러도 웃기고 재미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사는 모습이 조금씩은 달라도 노래 부르는 동안은 나라의 발전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던 젊은 시절의 그들 같았다.

둘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 노래가 지금 노래 보다 더 좋은 것 같아. 내가 나이 들어서도 엄마, 아빠들처럼 그렇게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길 수 있을까?”
엄마, 아빠들이 같이 노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대화의 내용도 많이 엿듣다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이번 여행에서 스키장에 못 가는 아쉬움과 여행이 취소될 뻔해서 느꼈던 감정들 대신에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여행을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도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가족, 친구, 동료, 교우……

12/21/2014

그 플러그(plug)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고 나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된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집안에서  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거나 교회에 가는 일 따위로 외출을 하든 말이다. 머리를 감은 후에 급하게 집 밖을 나갈 일이 아니라면 헤어 드라이어를 쓰지 않고 젖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마르도록 나둔다. 헤어 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열기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헤어 드라이어의 열기를 때로 피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열로 머리 모양을 잡아주는 플랫 아이론(flat iron)을 사용해야 하는 단계가 남아 있다. 플랫 아이론은 직사각형 모양을 한 넙적한 판이 마주보고 달린 고데기 같은 도구이다.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물기가 마르는 동안 부스스해지고 이리저리 삐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펴주는데 아주 쓸모 있는 도구이다. 이 플랫 아이론의 열이 머리카락을 더 손상시킬지도 모르지만 지난 몇 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랫 아이론은 미용실 원장님이 쓰던 것을 받아온 것이다. 원장님이 내 머리에 퍼머를 해주었는데 잘못되어 머리카락이 거의 다 타버렸었다. 뜨거운 압축기로 눌러놓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작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구부려졌다. 그걸 만지면 바사삭 바스러질 것처럼 건조하고 거칠기가 이를 데 없었다. 머리를 묶지 않고 풀러 놓으면 가발을 쓴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머리를 삭발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냥 괴상한 머리카락을 달고 그냥저냥 시간이 가서 머리카락이 자라는 대로 조금씩 잘라내며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때문에 참담함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원장님은 미안한 마음에 다시 퍼머도 해주고(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쓰던 플랫 아이론과 고데기도 주었다. 그렇게 플랫 아이론은 머리카락을 일시적으로 진정시켜주는 도구로 나와 친해졌다.

얼마 전, 머리를 감고 다 마르도록 그냥 놔두었다. 하던 일이 마무리 되어 머리를 마저 정리하기 위해 플랫 아이론이 있는 화장실로 갔다. 플랫 아이론의 플러그를 찾아 콘센트에 꽂았다. 어라! 전원이 들어온 걸 표시하는 빨간 불이 켜지지가 않았다. 그 전날까지 멀쩡했기에 별 생각 없이 플러그를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그 쬐그만 등이 고장 났나 싶었다. 아이론이 뜨거워지기만 하면 등이 고장 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아이론에 손을 대보았는데 차가웠다.

그렇다면 화장실 콘센트 전체의 전원이 꺼져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인지 같은 벽면에 있는 콘센트의 전원을 한꺼번에 차단할 수 있는 장치들이 되어 있다. 안방 화장실은 아이들이 주로 쓰는 화장실 콘센트에서 전원을 켜고 끌 수 있다. 가서 확인을 해 보니 전원은 들어와 있었다. 기대를 살짝 하며 다시 돌아와 플러그를 꽂아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확 들었다. 손에 익은 아이론을 더 이상 쓸 수 없어 아쉽기도 했고, 그 아이론에 묻어 있는 기억의 조각들도 더 멀어져 가는구나 싶었다.

그 엉망이었던 퍼머를 하게 된 까닭은 40대 중반을 넘어 도전하게 된 지역 전문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머리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간편한 스타일로 바꾸려는 마음에서였다. 영어 실력을 넓히고 미국식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한 학기가 지나 그만 두었다. 더 공부할 마음이 있었으면 주변 상황이나 조건을 따지기 보다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나 재정적인 문제에 부닥치자 나는 곧 학교를 미련 없이 그만 두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엄청 흥미로운 일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얄팍하나마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가치관과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름 진지했던 도전과 재빠른 포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플랫 아이론을 이제는 보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 잠깐! 잠깐만! 이 플러그가 아니잖아!’  
    
화장실 서랍 속에는 헤어 드라이어와 플랫 아이론이 같이 들어 있다. 헤어 드라이어의 플러그를 꽂아 넣고는 플랫 아이론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어이가 없었다. 플랫 아이론과 연결된 플러그를 꽂자 빨간 전원등이 수줍게 켜졌다. 얻어서 쓰던 조그마한 미용 도구의 수명이 다 했다고 여기며 지난 몇 년 전 일들을 떠올려 정리하고 있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전기가 공급된 플랫 아이론은 뜨거워졌고 거울을 보며 삐친 머리카락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도전한 것은 제대로 된 플러그를 사용했던 걸까?’
지금은 어떤 플러그를 쓰고 있는 거지? 인내의 플러그? 건강한 신앙 공동체에 대한 소망의 플러그?’
한 동안 감사의 플러그가 빠져 있었던 것 같아. 그건 하나님을 신뢰하는 플러그도 함께 서랍 속에 갇혀 있었다는 거겠지?’

머릿속에 날아다니는 어쭙잖은 생각들도 아직까지 잘 작동하는 플랫 아이론이 닿을 때마다 가지런하고 예쁘게 정리되면 좋으련만.

12/08/2014

새로운 설거지 짝꿍




우리 교회 주일 점심 식사는 늘 푸짐하다. 반찬이 항상 열 가지가 넘는다. 와우! 후식도 떡과 빵이 늘 있다. 교인들이 각자 알아서 해 온 음식들이다. 대부분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다. 각자 집에서 늘 해 먹던 음식이 아닌 다양한 것들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미국 교인들도 한국 음식을 잘 드신다. 미국 남편과 사시는 교인들은 집에서 한국 음식을 요리할 기회가 아무래도 적다 보니, 그들 또한 주일 점심 식사에 대한 기대가 있는 듯하다. 예배를 드리며 영적인 갈망을 채우는 것만큼 음식에 대한 욕망을 맘껏 채우는 시간이다.

음식은 정해진 순서 없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알아서 준비하고,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는 당번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한다. 두 사람이 한 조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교인들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설거지에 동참하고 계신다.

나와도 한 조를 이룬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설거지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바람에 당번인 주일에 혼자 설거지를 했다. 물론 정말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다른 집사님들이 도와주셨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설거지 짝꿍이 생겼다.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 얼마 안 된 분이다. 어느 집사님이 내 설거지 짝이 없는 걸 아시고 그분께 설거지를 권유하셨나 보다. 그 분은 흔쾌히 내 설거지 짝꿍이 되어 주셨다. 나도 좋아서 그분께 다가가 저와 설거지 같이 하시는 거예요!” 했다. 그분은 그래유~” 하면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하셨다. 설거지 하자는데 뭘 이렇게 기뻐하시나 싶었다. 그분은 언제가 당번인지를 물어오셨다. 나는 11월 마지막 주쯤 될 거라고 알려드렸다. 주일에도 한 주 건너마다 직장에 나가셔야 하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짜두셔야 했다. 그 뒤에도 설거지하는 날짜를 계속 확인하셨다.

설거지 당번인 주일. “설거지 할까요?” 했더니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또 그래유하셨다. 마음이 넉넉해 보이던 첫인상 그대로였다. 갈아 입을 옷과 앞치마까지 준비해 오셨다. 그릇을 세제로 깨끗하게 닦아서 헹구고, 종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그릇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죽 늘어놓았다. 처음이라 뭘 해야 될 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이셨다. 짝꿍이 있으니 얘기도 나누고, 일도 하는 것 같지 않게 빨리 끝난 것 같았다.

그분과 짧은 시간 동안 설거지를 같이 하면서 마음이 흥분되었다. 설거지는 누가 보아도 궂은 일인데 기꺼이 즐겁게 일하는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하여지는 듯했다. 교회 안에 특별히 친한 사람도 없지만 교인들도 목사 아내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겐 교인들끼리의 관계가 우선인 것이다. 한 지역에서 평생을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에 도드라지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자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짝꿍에게서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짝꿍은 흰 설탕도 여러 봉지 나누어 주셨다. 사실 그 설탕은 거의 매주 떡을 해 오시는 집사님에게 드리려고 가져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설탕을 쓰지 않으신다고 하여 나에게 흰 설탕을 먹냐고 물어오셨다. 나도 흰 설탕을 먹지는 않지만 효소 담글 때 쓰기는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효소 담그는 방법을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며 자동차에서 설탕 몇 봉지를 꺼내 주셨다. 거저 받는 설탕 무게만큼이나 설거지하면서 느끼던 설렘도 더해졌다.  

꽤 무거운 설탕 봉지들을 끌어 앉고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설탕을 땅 위에 내려놓고 트렁크를 열어 문을 높이 올렸다. 허리를 굽혀 설탕을 들어올리는데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다. 두 손은 설탕을 들어올리느라 머리카락을 뒤로 넘길 손이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설탕을 들어올림과 동시에 트렁크 안으로 밀어 넣는데, 으악!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트렁크 문이 스르르 반쯤 내려와 있었나 보다. 눈과 눈 사이에 있는 높지도 않은 콧등을 트렁크 문 모서리에 힘차게 들이댄 것이다.

아무도 주차장에 없길 바라며 뒤로 돌아섰는데 짝꿍이 그대로 서서 지켜보고 계셨다. “괜찮아요?” 물어보시길래 하며 멋쩍게 콧등을 쓸어 내렸다. , 만지지 말 걸…… 가로로 움푹 패인 것이 손을 댈 수 없게 아팠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짝꿍과 헤어졌다.

설거지하면서 그리고 설탕을 받으면서 설레었던 마음이 한 순간에 가라앉았다. 콧등이 욱신거릴 때마다 교인들을 대하는 평정을 잃지 말며 거저 받는 것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새로 온 교인과 함께 설거지하며 설렌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길 기도하고 있다

12/01/2014

두 권사님


2011 부모님들과 디즈니월드에서(올랜도, 플로리다)



한국에 계신 두 권사님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기질도 다르고 각각 다니는 교회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꽤 많다.

우선, 70대의 여성분들로 삶이 곧 신앙생활 그 자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기도이며, 일상 속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그들의 태도나 언어에 배어 있다. 주일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물론이요(중병으로 수술을 해도 병원에 마련되어 있는 예배실에서 주일을 지킨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나 모임에 빠지지 않으신다. 헌금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드린다.

두 분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쌓아두는 법이 없다. 그러면 이웃들은 이 권사님들께 무엇인가를 다시 나눈다. 그들의 나눔은 계속 순환되기도 하고 혹은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그걸로 만족하기도 한다. 권사님들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살고 계신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부지런하여 일을 미뤄두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장 끝장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몸이 지치기도 하는데, 입술에 물집이 여러 개 생기면서 부르트는 모습도 비슷하셨다. 두 분 모두 일을 하시다가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리셨다. 몸살 치료하려고 병원에 가셨다가 14, 12년 전에 대장암을 진단받기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대장암 수술이 큰 수술이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겠노라, 그래도 살려주시면 신앙생활 더 잘 하겠노라 기도하시고 들어가셨다. 두 분의 수술은 잘 되었다. 그 뒤로 혹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내셨고 5년 동안 정기적으로 몸 상태를 살펴야 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살려두셨을 거라며 더욱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이웃과 나누는 생활을 이어가고 계신다.

두 권사님은 감리교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엄청 규칙쟁이다. 먼저 수술 받은 권사님은 입원했던 병실에서 만난 어느 환우로부터 야채 스프와 현미차에 대하여 소개를 받으셨다. 권사님은 퇴원하신 다음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5년 이상을 만들어 드셨다. 뒤이어 같은 암에 걸린 다른 권사님은 친분이 깊던 앞서 권사님의 권유로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또 오랫동안 드셨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해 보여도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손수 만들어 오랜 시간 드셨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력과 정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식이요법회 회장, 다테이시 가즈(立不一)가 개발한 야채 스프에는 무(4분의1), 무우청(4분의 1), 당근(2분의 1), 우엉(4분의 1, 작은 것은 2분의 1), 표고버섯(화고, 자연 건조한 것 1)이 들어간다. 야채 스프를 먼저 드시기 시작한 권사님은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텃밭에 야채를 무농약으로 키우기 시작하셨다. 집에서 기를 수 없는 것은 재배지에서 직접 구해오기도 하셨다. 또 재료를 많이 구해서 나중 권사님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셨다.

야채 스프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야채는 물로 씻어서 큼직큼직하게 썬다.
     야채를 많이 넣지 말고 기본 분량을 꼭 지킨다.
     모든 야채 재료의 양에 3배의 물을 붓고 센 불로 끓인 후 약한 불로 60분 달인다.
     끓이는 기구는 스텐, 알미늄, 유리그릇을 사용한다(테프론, 법랑 용기는 사용하지 말 것).
     보존 용기는 유리병이나 사기그릇을 사용한다.

현미차에는 현미 1홉과 물 8홉이 필요하다. 현미차를 만드는 방법도 옮겨 본다.
     현미를 짙은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기름기 없는 용기 사용).
     8홉의 물을 다른 용기에서 센 불로 끓인다. 끓으면 현미를 넣고 불을 끈다.
     5분쯤 후에 채에 받치어 낸 물이 1번 차이다.
     채에 걸러진 현미를 다른 용기에 넣고, 새로운 물 8홉을 부어 센 불로 끓인 후 약한 불에서 5-10분간 끓인다. 다시 채에 받쳐 낸 물이 2번 차이다.
 ⑤ 1번 차와 2번 차를 혼합하여 보관, 사용한다(용기는 유리병, 사기그릇을 사용).

두 권사님들께서는 야채 스프와 현미차를 지극정성으로 드셨을 뿐 아니라 식생활도 많이 달라지셨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육류를 많이 드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두 분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난 그것들을 마셔본 적은 없으나 두 분을 뵈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2012.1.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날. 주일예배 끝나고.

이 두 권사님은 나의 어머님(남편의 엄마)과 엄마이시다. 그들의 견고하고 부지런한 신앙 생활은 나에게 항상 자극을 준다. 내 신앙은 그들보다 유연하고 덜 부지런하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서 부딪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서로에게서 배운다.

주일 예배에 가려고 손거울을 들고 화장을 하다 보니 입술에 돋은 좁쌀만한 물집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시력도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것 같더니 거울에 비친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 보고서야 알았다. 입술에 물집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딱히 힘든 일도 없었는데…… 두 어머니가 문득 생각이 났다

11/24/2014

살아가게 하는 힘



이민 오는 날.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2014 추수감사주일에.


내가 이민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이민이라는 말은 그저 신문과 뉴스에나 나오는 낱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민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민 생활이 어떠한 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살림살이를 싸 가지고 미국에 들어오면서도 아예 살러 오는 것인지 살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일할 곳이 미국으로 정해졌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가족은 그저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하기에 좋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지극히 막연한 인식이 미국행을 결정하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뭘 모르니 용감하게 미국 땅으로 날아온 것이다.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미국 국적 비행기를 한 번 갈아 타고 애틀랜타에 있는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웠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하얀색 형광등과는 달리 공항에 수없이 밝혀져 있는 노란색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그 긴장감 마저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려고 찾아온 이방인답게 부피가 큰 이민 가방이 세 개, 크고 작은 여행용 가방도 세 개쯤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한 달이 걸린다 하니 미국에 도착해서 한 달 동안 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압축팩에 담긴 이불과 베개,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을 포함하여 몇 권의 책과 노트북도 있었다. 살게 될 곳에 큰 한인 마트가 여럿 있는 줄 몰랐으니 라면도 몇 개 챙겨 왔다.

저녁 때라도 공항은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15인승 교회 차는 우리 가족과 보따리를 싣고도 넉넉했다. 우리가 다니게 될 교회 가까이 가서는 한국 음식점에서 따뜻한 설렁탕으로 저녁도 먹여 주었다. 두 분 중 한 분 목사님은 지금도 연락이 되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는 변함이 없다.

애틀랜타에 도착한 날이 수요일이라 저녁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친 후 생각지 못한 남편의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 그는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300달러가 들어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어떤 집을 얻어야 할지 집을 구하기 전까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이 또한 몰랐다. 남편과 동료가 될 한 부목사님은 닷새 정도 머물 수 있는 집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장로님 댁이었다. 장로님의 따님이 다른 주에서 결혼을 하게 되어 며칠 집을 비우시게 되었다. 그 여러 날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가족에게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것이다. 주인이 없으니 조심스러우면서도 호텔과는 달리 집이 주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애틀랜타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우리 부부는 습관처럼 새벽기도회에 갔다. 자동차가 있을 리 없으니 어느 집사님께 부탁을 드린 것이다. 집사님은 새벽에 학교에 보내야 할 자녀도 있었고 집사님 집에서 우리가 머물던 장로님 댁까지 꽤 먼 거리인데, 자신의 사정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운전을 해주셨다. 미국에 살아보니 내가 새벽(!)기도 가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때는 뭘 몰라도 정말 한참을 몰랐다. 집사님은 아이들 학군을 고려하여 살기에 편안하고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구하는데도 동행해 주셨다.

닷새 안에 월세 집을 정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새로 온 부목사네 가정에 아무 물건도 없으니 있는 것들을 나눠 쓰시라, 광고해 주셨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을 나눠주신 분들, 식탁이 없어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한국 교자상과 숟가락을 사다 주신 분, 그 밖에 가재도구들도 많이 나눠주셔서 미국 생활의 모양을 잡아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3, 5년 살다 보면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옅어진다며 당장 영어 공부를 시작하라고 조언해주는 집사님이 있었다. 집사님은 적극적으로 지역 안에 있는 학교나 교회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 그 목록을 전해주었다. 미국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도서관에 함께 가서 직접 알려주었다. 미국 장애인 단체와 연결해 주기도 했다. 여름성경학교나 한국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집사님은 열정과 리더십이 뛰어나고,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 집사님처럼 이중언어나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날 늘 자극하였다.

11월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때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이 감사의 계절이 되면 처음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늘 떠오르곤 한다. 아무 조건 없이 같은 신앙공동체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나눠주신 분들이다. 정말 고맙다. 마음에 고이 간직하련다. 이민 생활 첫 부분에 만난 잊지 못할 고마운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나마 갈무리하는 모양새를 보니 내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이제야 슬슬 생기기 시작하나 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고백된 감사와 미처 깨닫지 못하여 고백되지 않은 감사가 있을 뿐이다. 감사는 과거를 의미 있게 하고 미래를 소망으로 채우며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이제는 올 한 해, 애틀랜타가 아닌 이곳에서 만난 고마움들을 되새겨보려 한다.

11/10/2014

숲길을 걸을 때




슬슬 걷기에 좋은 주립공원이 동네에서 가깝다. 숲 속과 호수 둘레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호수에는 몇 마리 오리가 떠다니거나 휴일이면 공원에서 빌려주는 노 젓는 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밖에 철마다 바뀌는 화려한 꽃이나 신나는 놀이 기구나 기암괴석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조용하고 수수한 공원이다.

운동 삼아 공원을 자주 가던 어느 해 봄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남편과 나는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숲에 가면 넓은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집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이 술술 풀려 나오곤 한다. 그날도 새로운 얘깃거리가 시작되려는 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한 발을 공중에 들고는 으아아~~”, 비명을 질렀. 처음 들어 보는 음색의 그 짧고 낮은 비명 소리는 두려움을 짙게 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남편의 팔에 매달리며 왜 그래?”, 다급하게 물었다.

잘 놀라는 아내를 배려한 것인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 이라고 대답했다. 뱀이라는 말에 남편 팔에 매달리기라도 할 것처럼 있는 힘껏 끌어 안고는 어디?”, 라고 말하면서 눈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숲 쪽을 가리켰다. 제법 굵고 길며 까만 뱀이 낙엽 위를 마치 헤엄을 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뱀이 그렇게 날렵한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우리 때문에 놀란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을 이 공원에서 만났다. 걷기에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더니 만남 장소를 공원으로 정한 것이다. 산책로의 중간쯤에 이르러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머지 남은 길을 가기로 했다. 둘 다 볼일을 보고 내가 먼저 화장실 건물을 나섰다.

화장실 입구 쪽 희고 넓은 벽에 검고 길쭉한 무엇이 움직이고 있었다. ! 얼른 그것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지난번 일을 사람들과 나누던 중 이곳에서는 까만색 뱀은 독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인은 아직 화장실 안에 있었고 알릴 방법이 없었다

곧이어 화장실을 빠져 나오는 지인에게 저기, ”, 하고 그저 가르쳐주었다. 지인은 그쪽을 돌아보고는 오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듯이 양손을 마구 저으며 두 발을 땅에 대지 않으려는 듯 겅중겅중 달려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성격이 엄청 차분하고 말소리도 엄청 작은 사람이 그런 모양으로 달아나니 웃음이 났다.

이번엔 개를 만난 일이다. 공원에 있는 표지판들 가운데 개를 묶어서 데리고 다녀야만 한다는 안내문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호수 둘레 길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길에서는 이 규칙이 잘 지켜진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는 열에 일곱, 여덟은 개들이 묶여 있지 않다.

개를 키우는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숲길에서는 개들을 자유롭게 다니도록 풀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숲길을 걸을 때가 있으며 그러다 그런 개들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훈련이 잘 된 개는 멈추라는 지시를 잘 따르고, 더 친절한 주인은 개를 그 순간에 줄로 묶어 좁은 숲 길 바깥으로 물러나서 우리가 지나가도록 기다린다. 이런 주인과 개를 만나면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숲 속에서 낙엽이 바스락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들개처럼 생긴 누런 세 마리 개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이마에는 꼭지점이 네 개인 별 모양 문신 같은 것이 있었다. 이 개들은 무슨 먹이를 포위한 짐승처럼 남편과 나를 세 면에서 둘러싸고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댔다. 정신이 황망하고 어이가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개들은 계속 의기양양하게 짖어대고 난 최대한 개들에게 적의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몰라도 꽤 긴 시간 같았다. 갑자기 남편이 멀리 보이는 주차장(공원 밖 어느 축구장의 주차장이 보이는 곳이었다)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면서 고우(Go)!” 라고 외쳤다. 그러자 개들은 지들이 언제 짖었냐는 듯이 깨갱거리며 눈에 힘을 뺐고 주차장 쪽으로 우리에게 왔던 것처럼 달려갔다.

개를 방치한 주인에게 화가 났다. 그 못된 주인과 개들 때문에 매우 언짢았지만 그날 걷기로 한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숲길을 걸으며 여태껏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한 욕을 그 들과 주인을 생각하며 몽땅 몰아 했다.

숲을 걸을 때 이 밖에도 우리가 호흡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좋아하는 쬐끔한 날 것들이나 곤충들이 귀찮게 하기도 한다. 송화 가루가 날리는 철에는 운동화나 바지가 노란 가루로 범벅이 되기도 한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갑자기 비를 만나 길이 질척해지면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숲은 공기 중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도 하고 피톤치드(식물이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를 내뿜어, 그것들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보며 시간의 흐름과 나와 우리의 삶따위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반면 숲에서는 뱀이나 정신 없는 개들과 그 주인처럼 두렵고 화나는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숲은 여전히 사람에게 유익하다. 숲길을 걷고 또 걸으며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게 될 터이다.

11/03/2014

솔잎을 긁어모으며





소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뒤뜰에 온통 흩어져 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초록 잎을 달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소나무는 가을이면 누런색의 잎을 떨구어 낸다.

담장 가까이에 엄청 키가 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 어림 잡아도 15미터(49피트)가 넘을 것 같다. 나무의 키도 크려니와 나무 껍질을 보면 두툼하고 쩍쩍 갈라진 것이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나무의 아래 절반에는 가지가 없고 위쪽에는 가지가 흐느적 흐느적 달려 있다. 또 나무 기둥에서 뻗어 나온 가지를 보면 가지 끝으로 갈수록 초록 솔잎이 손바닥을 힘껏 편 것처럼 달려 있다.

봄이 되면 가지 끝에는 노란색 송화도 피고 여린 연두색 솔잎도 나온다. 그렇게 새로 나온 잎들은 더우나 추우나 오랫동안 초록빛을 간직한다. 그러니까 가지 끝으로 갈수록 세상에 나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잎들이다. 낙엽은 항상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집 가까이에 사는 소나무 덕에 그렇지 않은 나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이 되면 가지 제일 안쪽에 있는 나이든 솔잎들이 누런색 옷으로 갈아 입고 나무 아래 땅으로 내려 앉는다. 누런 솔잎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은 없으나 여전히 솔잎이라는 이름으로 땅에서도 오랫동안 머무른다.

솔잎을 모으고, 나르는 아이들. 어느새 일 년 전 그림이 되었네요.

지난해,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이 뒤뜰에 가득하길래 아이들에게 솔잎을 긁어 모으라고 시켰다. 모아진 솔잎은 소나무 아래에 다시 뿌려줄 생각이었다. 둘째 녀석은 일 시킨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꼼꼼하게 모아놓은 솔잎을 보니 꽤 많은 양이었다. 일부는 뒤뜰 쪽 집 벽 아래를 덮는데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집 둘레의 세 벽면은 동네 관리하는 회사에서 이미 새로 갈아놓은 상태였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을 빼고는 집을 삥 돌아가면서 7센티미터(3인치) 이상 되는 두께로 솔잎을 깔아 놓는다. 검고 탁한 색으로 변한 묵은 솔잎 위에 누렇지만 싱싱한 솔잎이 얹어진다. 집 앞쪽 심겨진 나무들 아래에도 솔잎이 풍성하게 깔려 있다. 집 양 옆으로는 나무가 있든 없든 솔잎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데, 여기까지는 관리 회사에서 해마다 두 번씩 솔잎을 덮어준다.

뒤뜰 쪽은 개인이 알아서 관리한다. 솔잎이 필요하면 가게에 가서 사다가 깔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 살고 있는 키 큰 소나무가 솔잎을 넉넉하게 내어주는 바람에 솔잎을 사오는 비용과 수고를 덜어주었다. 솔잎은 두껍고 길수록 좋다고 한다. 가게에서 파는 보통 솔잎은 23센티미터(9인치) 정도이고 아주 좋은 솔잎은 35센티미터(14인치) 이상이다. 와우! 우리 집 솔잎의 길이를 재보니 어느 솔잎이나 고르게 28센티미터(11인치) 쯤 되었다. 꽤 괜찮은 솔잎인가 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집 둘레에 솔잎이 깔려 있는 모습은 아늑해 보이기도 하고 자연과 더 친밀한 느낌을 주어서 좋다. 게다가 큰 비가 내려도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는다. 꽃밭과 나무 주변을 덮고 있는 솔잎은 장식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기온 변화로부터 식물과 흙을 보호하기도 한다. 솔잎을 두껍게 깔수록 그 안은 빛이 차단되어 잡초가 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집을 갉아먹는 흰개미는 향 때문인지 솔잎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니 흰개미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떨어진 솔잎을 모아 집 뒤쪽에 깔아주었다. 이번엔 남편이 수고를 했고 큰 아이가 나르는 것을 조금 도왔다.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솔잎은 다시 모아서 소나무들 아래로 보내려고 한다.

무뚝뚝하게만 보이는 소나무가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생명을 다한 솔잎마저도 쓸모가 있다니 참 고마운 나무다. 오래 전에 떨어진 솔잎은 썩어서 흙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서 다시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고. 소나무가 자연이 순환하는데 한결 같이 기여하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10/27/2014

엉뚱한 상상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뒤뜰 민들레입니다.


한국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몇 개를 찾아서 보고 있는데 참 재미있다. 한국에 살 때는 언제든 볼 수 있어서 그랬는지 TV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때론 TV를 보지 않고도 살았다. 그런데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은 한국 TV 방송 가운데 몇몇 프로그램이 주는 즐거움이 대단하여 잘 챙겨서 보곤 한다.

요즘 몇 주는 어느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송되는 더 지니어스라는 리얼리티 쇼를 보았다. 정해진 참가자들은 매회마다 새로운 게임을 풀게 되고, 게임 결과에 따라 한 명씩 탈락한다. 여러 회에 걸쳐 마지막에는 남은 한 사람은 자신이 모아놓은 점수대로 상금을 타게 되는 오락 프로그램이다. 게임의 내용은 상당한 이해력과 지능, 사람의 심리를 잘 읽거나 리더십이 필요해 보이는 어려운(난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한참 걸린다) 과제가 매주 새롭게 제시된다. 어리바리인 나는 게임을 즐기면서 시청하기는커녕 방송을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머리가 좋을까, 똑똑한 사람이 참 많구나,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다.

참가자들은 직장인, 학생, 방송인 따위로 직업이 다양하다. 모두 게임을 잘 하는 사람들이 출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격은 저마다 달라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따라 가는 사람이 있다. 과제를 급하게 풀어가는 사람과 상황을 지켜보며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다. 자기 편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눈치껏 자기에게 유리한 편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참가자들은 게임을 잘 통과해서 마지막 우승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 잘 안 되는 쇼가 나에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다른 식구들이 시청을 하니까 같이 보게 될 뿐이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두 사람 가운데 탈락자 한 사람을 가리는 카드게임이 인상에 남았다. 한 사람은 승부욕이 강하고 게임도 능동적으로 풀어가는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편이고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날 방송의 흐름으로 볼 때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전자가 이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게임을 풀어가는 모양새도 전자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이 나왔고, 시원시원하게 점수를 얻어 갔다. 후자는 질 것 같으면 미련 없이 베팅을 포기했다. 자기가 이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베팅하는 양은 적고 일정했다. 그렇다 보니 이겨도 조금의 이득 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일관된 베팅을 이어가던 후자는 조금씩 조금씩 상대의 점수를 가져 왔다. 어설퍼 보이는 듯한 후자는 상대방 카드를 은근슬쩍 살피고 있다가 상대가 높은 숫자의 카드를 다 썼다고 판단되는 순간에 이르렀다. 전자는 게임 초반에 나온 유리한 카드를 어느새 다 써버리고 만 것이다. 후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블 베팅을 해서 결국은 이기게 되었다.

후자의 이러한 게임 운영 방식은 동료가 자세히 조언해 준 것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조용히(착해 보이는 캐릭터다) 게임을 하는 후자를 도와준 것으로 보였다. 물론 게임에 강한 전자가 이기는 것보다 착한 후자가 이기는 것이 다른 게임을 하게 될 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도와줬는지도 모르겠다.

이 게임의 결과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름 실력을 가진 순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 이겼다는 것(능력),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게임을 풀어갔다는 것(집중), 동료의 조언을 믿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는 것(지속)이었다. 이길 만 했다. 무엇보다 경쟁 사회에서 성품이 착한 것을 멍청하거나 덜 떨어졌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얕잡아 보고 이용하려고만 드는 요즘 풍조를 조용히 뒤집어 놓은 것도 같았다.  

나는 이 쇼를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다. 바라기는 참가자들 가운데 끝까지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면서도 동료들을 조용히 잘 도와주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우승자가 상금을 탔을 때 십 여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상금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데, 이 결과는 제작진도 모르게 참가자들끼리 합의된 것이었다, 뭐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하면서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봤나……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잠언 20:5)

10/13/2014

성찬식 풍경




우리 교회는 성찬식을 매월 첫 주 주일예배 때에 한다. 지금은 시월 성찬식에 참여했고 다음 달 성찬식이 오기 전, 그 중간쯤에서 살고 있다. 다른 교회의 성찬식과 비교해서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우리 교회 성찬식이다. 그런데 비슷하게 반복되는 우리 교회 성찬식이 언제부턴가 좋아졌다.

한 덩어리의 빵과 한 잔의 포도 주스(포도주가 아니다)가 준비된다. 어느 권사님이 성찬을 자신이 준비하기로 마음에 정하신 바가 있어 그 분이 때마다 마련하신다.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들어간 성찬 빵과 포도 주스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기 위한 예식임을 목사님은 선포하신다. 그리고 세례 받은 자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작정한 모든 교우들은 성찬식에 초대된다. 우리 교회는 어린 아이로부터 연세가 아흔여덟 되신 권사님까지 모든 교우들이 성찬식에 참여한다. 때로 방문한 분들도 자유롭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

성찬식을 위하여 준비된 빵과 포도 주스 앞에 교우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선다. 교우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순서를 기다리는 교우들은 늘 느긋하고 평화롭다. 연로하신 분들은 부축하여 나오시고, 노부부는 서로를 의지하여 손잡고 나오시고, 줄 서는 자리를 서로 여유 있게 양보하기도 한다.

예배실 안에 찬송가 반주 소리와 드문드문 목사님께서 성경 구절 낭송하시는 목소리만 들리다가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예배실에 들어서면 성찬식은 즐겁기까지 하다. 갓난 아이는 부모님 품에 안겨 들어오고, 조금 더 자라면서부터는 제 스스로 예식에 참여한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도 이미 성찬식에 익숙해서 성찬식의 흐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빵을 처음으로 찢는 사람은 목사님이시다. 그 다음은 성찬 나누는 것을 도와주시는 권사님들, 그리고 교우들이 빵 한 덩이에서 원하는 만큼 쪼개어 갖는다. 보통은 한 입에 들어가도록 조금 작은듯한 크기로 조심스럽게 뜯어 낸다.

그런데 한번은 개구쟁이 초등학교 녀석들이 무슨 이유인지 한 손 가득 빵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걸어나갔다. 배가 고팠는지, 고요한 예식의 틀을 깨보고 싶었는지……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는 살짝 당황스러운 분위기였으나 이내 교우들은 소리 없는 웃음으로 그 아이들을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두 번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 녀석들은 그전과 같이 다시 의젓하게 성찬식에 참여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나 교회 선생님께서 성찬식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셨을 것이다.

성찬 빵과 포도 주스를 먹는 모습도 여러 가지다. 포도 주스에 찍은 빵을 차마 입에 넣지 못하고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제자리로 돌아가 먹는 사람, 살금살금 씹어 삼키며 돌아가는 사람, 얼른 입에 넣고 자리에 돌아가 먹는 사람, 손으로 입을 가리고 먹는 사람, 묵상하며 먹는 사람…… 성찬 음식을 먹는 모습은 제각각이라도 모두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들이다. 교우들의 표정을 이리 살피는 나는 좀 덜 경건한가 보다. 핑계 같지만 교회가 작아서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함께 예배 드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교회력에 따른 절기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 난 참 좋다. 한 덩이의 빵과 한 잔의 포도 주스로 교우들 모두 나누어 먹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임을, 공동체임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니 말이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철저한 사랑의 헌신을 기념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주일 예배 시간에 교우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성찬식의 경건하고, 평화롭고,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도 성찬식에 참여하는 기쁨 가운데 하나다. (KING’S HAWAIIAN에서 나오는)도 맛있다. 그러고 보니 빵을 한 움큼 뜯어 먹은 녀석들도 나처럼 이 빵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작은 우리 교회의 성찬식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10/06/2014

영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을 보고






영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을 보았다. 점점 부드러워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을을 타고 있는 남편의 권유로 보게 되었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재미가 있든 없든 같이 영화 보자는 남편의 기분을 맞춰 주고 싶었다.

영화 시작부터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코에 튜브를 걸고 산소공급기를 가지고 다니는 헤이즐은 우리 교회 어느 교우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이즐은 갑상선 암이 폐까지 전이되었고 임상 실험용 약을 먹고 있는 암 말기 환자다. 곧이어 등장하는 순박한 청년 어거스터스도 골육종이라는 암에 걸려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했고 다행히도 일 년 넘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열 여덟 살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암환자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서로에게 소개하면서 더욱 가까워진다. 헤이즐은 어거스터스에게 소개한 거대한 아픔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를 엄청 만나고 싶어한다.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고는 자선 단체를 통해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두 사람의 몸은 불편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작가를 만나고 오는 여행을 하게 된다. 두 사람과 더불어 암스테르담의 풍경을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 현재와 영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십대 청년들이다. 청춘을 누리지도 못하고 지독한 병에 걸린 그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올해 하반기에 들어 암이 발견되어 투병하고 있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있다. , 칠십 대에 이른 분들이지만 영화의 젊은 주인공들만큼이나 안타깝고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 집사님은 오래 전에 폐에 있던 작은 종양이 온 몸에 퍼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남아 있는 삶이 삼 개월에서 육 개월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교우들은 황당해 했다. 하지만 그 집사님은 자신이 왜 죽게 되는지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더욱이 얼마 전부터 성경 읽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고 즐거웠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굳세지도록 준비시켜주신 거라고 고백하셨다. 집사님은 얼마 전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보고 오신 뒤로 많이 밝아지시고 항암 치료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

다른 한 집사님도 암 진단을 받으셨는데 치료 가능성이 많은 편에 속한단다. 혼자 사시고 기초 체력이 약하여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교우들과 이웃들의 집사님을 향한 관심과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집사님은 우리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는 오래된 교우들 가운데 한 분이다.



영화 속 헤이즐은 0 1 사이에는 무한대의 많은 숫자가 있음을 알려준다. 0.1, 0.12, 0.112…… 우리에게 주어진 나날들이 한정된 것 같아도 그 시간 안에는 작은 무한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무한대는 곧 영원을 뜻하는 것이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누리자고 한다. 한편 작은 무한대를 포함하는 더 큰 무한대가 있음도 이야기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신앙의 말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집사님들도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한 순간 한 순간을 꼭꼭 지르밟듯이 금쪽같이 살아내고 계신다.

영화가 끝났다. 앉았던 자리를 뜨지 않고 영화의 가시지 않는 여운을 느껴보고 있었다. 우리 집 특별한 아들, 산이의 한숨 섞인 말이 들려온다.

주여~, 마음이 아프다. 주여, 주여.
주여~, 마음이 안 좋다. 어떻게 하지?
강화 할아버지……”

산이에게는 이 영화가 지난 해 시월에 돌아가신 강화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나 보다. 암과 싸우시던 모습을 얼마간 지켜본 기억이 옅어지지가 않은 것 같다. 곧 아버님의 첫 추도일이 다가온다. 맑고 밝은 하늘 나라에 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산이와 얘기해 보아야겠다. 산이의 아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래지면 좋겠다.

가을은 열매로 풍성하기도 하고 생명을 다하여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뿐 아니라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될지라도 누군가에게 기억될 때 영원 속에 남게 된다. 그 기억이 희미해진다 해도 영원, 그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는다. 이왕 남겨질 흔적이라면, 그것이 사랑이면 참 좋겠다

9/29/2014

뜻밖의 은총






지난 두 주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친절하게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곳은 따뜻한 지역이라 요즘도 낮 평균 기온이 27도를 넘나든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여, 싸늘한 공기 어딘가에 이른 벼를 베고 난 들판에서 맡을 수 있는 흙과 지푸라기 냄새가 묻어있지 않을까 찾아 본다. 가을이 되면 방향제가 들어 있는 제품들 가운데 주황색 둥근 호박과 시나몬(계피) 향이 섞인 것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호박과 시나몬 향을 가을과 짝지어 추억하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올해 가을은 갑자기 열매가 한 번에 대여섯 개 달리는 호박이 주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호박 줄기들이 가을 첫머리에 내리는 비를 자주 맞더니 연두 빛의 애호박들을 마구 내놓았다. 여름 동안은 물을 매일 주었어도 호박에게는 넉넉하지 않았는지 가끔 하나씩 열매를 맺었었다. 그런데 이번 비에 호박들이 여기저기 쑥쑥 자라 재미를 보았다.





올 봄 남편을 귀찮게 졸라서 담 아래에 손바닥만하게 만든 텃밭이 있다. 땅이 모래가 엄청 많은 흙이라 가게에서 파는 흙과 퇴비를 사다가 섞어주었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높이로 이랑을 만들었다. 쑥갓 씨도 뿌려 보고, 시금치와 붉은 상추 같은 잎채소도 심었다. 고추는 모종을 내어 심었다. 호박은 구덩이를 파서 거름과 흙을 넉넉히 넣고 여러 날 묵혔다가 거기에 씨를 뿌렸다.

이곳 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텃밭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순한 생활에 흙이랑 풀 가지고 장난이나 쳐볼 수 있는 코딱지만한 놀이터라 여겼다. 혼자 처음 가꿔보는 텃밭이니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실험용 놀이터라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역시…… 식물들이 초보자를 알아 보는 것 같다. 쑥갓은 싹이 몇 개 나오더니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시금치와 붉은 색 미국 상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은 것이다. 그들은 3개월 정도 조그만 잎사귀만 보여주다가 없어졌다. 가지는 두 개의 열매를 주고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고추나무와 호박 몇 줄기가 텃밭을 처음 시도해본 나를 위로하고 있다. 우리 집 고추는 미국 이민 오셔서 몇 십 년 내내 텃밭을 가꾼 할머니 권사님네서 봤던 고추나무와는 비교도 안 되게 키가 작다. 열매도 권사님네 것은 길쭉하고 통통했는데 우리 것은 모양이 짧거나 구불거린다. 우리 고추나무 모종낼 때 할머니 권사님이 주신 씨로 한 건데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호박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이다. 두 구덩이에 씨를 심었는데 심은 씨의 개수대로 싹이 다 나고 처음부터 하루가 다르게 잎(!)이 잘 자라 재미있었다. 똑같이 구덩이를 만들고 물도 주었는데 한 구덩이에서 나온 줄기는 점점 노랗게 마르다 없어졌다. 그나마 다른 한 구덩이는 잘 살아 잎이 무성하고 호박꽃도 군데군데 피어 있어 멀리서 봐도 풍성해 보인다. 호박 열매가 별로 없어도 말이다.

그렇게 나의 처음 텃밭은 미숙하게 끝나나 보다 했다. 그런데!!! 가을을 알리는 몇 번의 비가 내리는 동안 고추와 호박이 마구 열린 것이다. 고추도 미끈하게 쭉쭉 뻗은 녀석들이 가지마다 가득하고, 호박도 줄기마다 꽃을 피우더니 통통하게 여물어 갔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열매가 맺힌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에 비하면 신통방통하기가 짝이 없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똑같이 물을 주어도 힘 없이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볼 때는 안타까웠다. 물 주고 풀 뽑아주며 그저 생명이 붙어있는 식물들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가끔 어줍잖은 열매를 얻을 때도 기분 좋았다. 식물들이 초짜의 손에 키워지면서도 열매를 내어줄 때는 고맙기까지 했다. 호박 몇 개를 다른 이들과 나눌 때는 쑥스러우면서도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런 저런 맛에 텃밭을 하나 보다. 나의 아빠는 텃밭을 하는 이유가 열매를 거두어 엄마에게 가져다 주면 어머!” 하며 놀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손수 가꾸는 수고가 담긴 열매가 주는 기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초가을에 문득 찾아온 텃밭의 열매들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기분 좋은 결과들이 주어지는 것은 나의 수고가 아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더 이상의 열매가 없을 거라는 엉성하고 허술한 내 생각의 한계 위에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는 가을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 뜻밖의 은총이다

9/22/2014

날마다 부르는 노래가




엄마! , 소리 좀 줄이라고 해!”

둘째 아이, 윤이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불평하며 소리치는 말이었다. 윤이가 이렇게 소리칠 즈음이면 큰 아이, 산이는 노래에 흠뻑 빠져 도취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때로는 얼굴은 벌개가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있기도 하다.

산이는 CD50 여장(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난 목사님들께서 챙겨주신 8장의 CD가 보태어졌다)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고 어릴 적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찬양모음이나 청소년기에 참여했던 여름캠프 찬양모음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친구가 TV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첫 번째 시즌에서 10곡을 뽑아 녹음해서 주고 간CD가 한 장 있다. 요즘 즐겨 부르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있는데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새찬송가이다. 그 새찬송가에는 반주도 들어 있고 찬송 부르는 목소리도 들어 있어서 산이가 많이 따라 부르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교를 다 마친 요즘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은 산이의 노래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레고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밑그림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색칠하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항상 두 손에 드럼 스틱이 들려져 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해 앞에 없는 드럼을 상상하며 치는 것이다. 때로는 밥 먹으러 식탁에 와서도 노래가 끊어지지 않아 밥 다 먹고 해”, 라는 말을 한두 번 듣고 나서야 멈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노래를 듣다 보니 가사를 잘 외우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산이는 줄줄이 불러댄다. 산이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도 반복해서 불러준 노래와 율동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학년별로 단체무용을 할 때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산이를 꼭 참석시키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단체무용을 훌륭히 해냈다. 그래서 산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애틀랜타 밀알선교회에 다닐 때는 장애가 있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수어 찬양을 예쁘게 하기도 했었다. 가사나 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은 산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현재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 무슨 노래를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 보지만 단번에 어떤 노래인지 알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산이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면 음의 높낮이가 많지 않고 발음도 어눌하다. 굵은 저음으로 부르다가 음이 높이 올라가거나 곡의 절정이다 싶은 곳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면 노래의 가락이나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예배 시간에 아는 찬양이나 찬송이 나오면 앗싸혹은 나 저거 알아하며 좋아한다. 가끔 회중 가운데 저 혼자 손 들고 찬양하기도 한다. 주먹을 꼭 쥐고 팔에 힘을 주어가며 부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추어 온 몸을 흔들며 부르기도 한다.

사실 산이가 어떤 마음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이의 그칠 줄 모르는 노래 부르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산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생이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노래 부르는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려고 한다. 동생도 형이 집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높여 노래를 해도 조용히 하라고 불평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스크린에 비춰지는 파워포인트의 화면을 순서대로 띄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산이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와우! 아직은 서툴어서 실수가 있기는 해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또 예배가 끝나고 이렇게 말씀해주신 집사님도 계셨다.

내가 오늘 무척 힘든 상태에서 교회에 왔거든요. 그런데 예배 시간에 산이가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힘이 생겼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되기도 한다. 산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와 꼼꼼한 성격(레고나 퍼즐 조립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이 잘 발휘되는 행복한 삶이 펼쳐져 가고 있음을 주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