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
지난 주에는 가족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했다. 시카고 근처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 여행이 실행되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고 자동차로만 열두세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었고,
아직 미국 중북부를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의 풍광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으니 기회만 되면 그들에게로 달려가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이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둘째 아이는 성탄절 즈음에 친구네 가족을 따라 스키장에 가도 되느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딱히 계획이 없었던 지라 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허락했었다. 아이는
방학이 가까워지자 스키장에서의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스키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홈페이지도
보여 주었다. 거기엔 스키복과 스키 장비를 빌리는데 드는 비용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는 맨몸으로 가서 모든 장비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속셈을 해보니 그것들을 하루만 빌린다 해도 몇 백 달러가 필요했다. 이거 너무 비싸다, 했더니 안 되겠지, 라는 대답이 바로 이어서 나왔다. 렌트 비용을 미리 살펴본 눈치였다. 아이와 이런 짧은 대화가 오고
간 다음날 남편은 시카고 여행을 제안했다. 중북부를 여행할 기회가 바로 이때라고 판단되었나 보다.
가족 여행 계획이 친구와 스키장을 가지 못한 아이의 아쉬움을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았다. 남편의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방학 동안 심심해 할 아이들을 위해서도, 단순한 일상 속에 묻혀
있는 아내를 위해서도, 그리고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여행이라 여겨졌는지 일을
진행하는 모습에 파드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100세가 가까워 오시는 권사님께서 성탄주일이 되기 일주일 전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날마다 병문안을 다니던 남편은 아무래도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어느 정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이러한 형편을
알리자 우리 가족이 그렇지, 뭐, 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원래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전날, 권사님께서 퇴원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사님께서 입원해 계시는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권사님의 병세가
어떠신지 직접 눈으로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권사님의 눈동자와 말소리에 힘이 조금 생기신 것 같았다. 우리는 권사님이 퇴원하시게 되었으니 시카고로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씀 드렸다. 권사님은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며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셨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부리나케 여행 가방을 꺼냈다. 그래도 혹시 권사님께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마음은 들뜨지
않도록 잘 붙들어 두었다.
그런 복잡한 사정을 뒤로하고 떠난 여행은 감사하게도 순조로웠다.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도로 사정이 좋았다. 북부지역이라 눈이 오면 어쩌나 했는데(눈이
오면 오는 대로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남부에서는 눈을 보기가 어려우므로) 우리 가족이 남부의 따뜻한 기온을 몰고 왔다고 농담할 정도로 그다지 춥지 않았다. 미주리 주의 선배 목사님네를 시작으로 아이오와 주와 일리노이 주의 친구들을 찾아 다니는 동안 비록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일지라도 구경도 많이 했다. 친구들이 사는 크고 작은 도시들, 고속도로 주변에 스치는 여러 분위기의 도시들, 추수가 끝나 빈들이
되어버린 탁 트인 평야와 풍력발전에 사용되는 거대한 바람개비들,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끝없는 하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지루한 줄 모르는 신선한 경치들이었다. 아이가 영화에서만 보던 시카고는 몇 군데 걸어 다녀보기도 했다.
여행에서 만난 동료 목사님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우리 가족에게 정성스런 음식과 편안한 잠 자리를 내어주었다. 밤이 깊어지는 것도 모른 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목회 현장에 대한 이야기와 신앙인으로써 이 시대에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지 진지하게 풀어 놓았다. 신학적 주제에 대해서도 열띤 논쟁이 있었다. 다들 중년에 이르러서인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견해를 풀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들을
들을 때에는 감동이었다. 오래 묵은 친구들에게서만 풍겨 나오는 진한 향기를 맡는 듯했다.
또 노래도 엄청 불렀다. 어느 부부 목사가 기타 반주를 하며 “오 거룩한 밤” 노래에 화음을 넣어 멋있게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가 젊었던 8,90년대에 거리에서 불렀던 노래나 대중 가요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불러 보았다. 가사를 모르거나 연주 코드가 헷갈리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척척 내놓았다. 부부끼리 노래 부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기도 했다. 잘 불러도, 틀리게 불러도 웃기고 재미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사는 모습이 조금씩은
달라도 노래 부르는 동안은 나라의 발전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던 젊은 시절의 그들 같았다.
둘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 노래가 지금 노래 보다 더 좋은 것 같아. 내가
나이 들어서도 엄마, 아빠들처럼 그렇게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길 수 있을까?”
엄마, 아빠들이 같이 노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대화의
내용도 많이 엿듣다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이번 여행에서 스키장에 못 가는 아쉬움과 여행이 취소될
뻔해서 느꼈던 감정들 대신에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여행을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도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가족, 친구, 동료, 교우……
사모님 안녕하세요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송드려라'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송희에요 엄마랑 같이 교회 얘기를 하다가 샘솟는 교회가 생각이나서 찾아보다 이 글을 봤어요 엄마께서 강산이 오빠랑 강윤이 오빠가 많이 컷다고 좋아하세요 목사님이랑 사모님도 잘 계시죠?
답글삭제사모님 안녕하세요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송드려라'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송희에요 엄마랑 같이 교회 얘기를 하다가 샘솟는 교회가 생각이나서 찾아보다 이 글을 봤어요 엄마께서 강산이 오빠랑 강윤이 오빠가 많이 컷다고 좋아하세요 목사님이랑 사모님도 잘 계시죠?
답글삭제송희야, 반가워~
삭제지지난해 여름에 샘솟는교회에서 송희를 본 것 같은데... ^^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어. 송희네 가족도 올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일이 가득하길 바라. :)
송희야, 너와 너의 어머니를 뵌 지 꽤 오래되었는데... 내가 착각했구나. 정말 미안~~^^;;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