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꽃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꽃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5/28/2023

예감




식물에게 물 주려고 그 집에 들렀다. 부부가 사는 그 집에는 일 년 전부터 키우는 식물이 한 그루 있다. 그 아내에게 부탁을 받고 물 주러 간 첫날, 집주인이 잘 보살폈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커다란 잎사귀는 연둣빛이 선명하고 길게 자라 늘어진 줄기는 튼실했다.

그들이 집을 비운 지 두어 달이 지났다. 그 남편이 매우 아파서 치료하러 다른 도시로 갔기 때문이다. 그는 병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중이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가엾이 여기며 정성을 다해 간호 중이다. 아내는 자기가 키우던 식물도 내내 살아있길 바랐다. 아내는 식물에게 일주일에 한 번쯤은 물을 주어야 한다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 부부가 건강하게 몽고메리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물을 화분에 골고루 뿌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블라운트 문화 공원에 있는 자동차 도로로 가면 시간은 비슷하게 걸려도 가로질러 가는 느낌이고 탁 트인 공원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어 그 길을 선택했다. 사실 얼마 전에 알게 된 셰익스피어 정원에 다시 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자동차가 먼저 가닿은 곳은 몽고메리 미술관 옆에 있는 조각 정원이었다. 여길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이쪽으로 들어서 버렸다. 

조각 정원은 어떻게 꾸며 놓았을까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내친김에 둘러보았다. 미국 남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과 곳곳에 있는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15분 정도면 충분한 아담한 정원이다.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된 정원은 한적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에 둔 다른 정원으로 얼른 가고파서 서둘러 나왔다. 그곳 조형물 가운데 4점은 그곳에 늘 있는 작품이고 나머지 5점은 현재 전시하다가 바뀔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 웹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아주 가끔 온라인으로 확인해서 작품이 바뀌면 다시 들려볼 만하겠다.

원래 가려고 했던 셰익스피어 정원은 다른 날도 얼마든지 가볼 수 있으련만 첫인상이 이국적이어서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동네 친구들의 제안으로 이 정원에서 그들을 만났다. 앨라배마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극장 옆에 이런 정원이 있는 줄 몰랐다. 운동 삼아 공원에서 걸을 때 극장 앞을 지나가면서도 보지 못했었다. 정원에 처음 들어서는데 마치 비밀의 정원 혹은 비밀의 원형 극장에 온 것 같았다.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친구들이라 정원을 둘러볼 짬 없이 모임만 하고 헤어지는 바람에 그 정원에 미련이 남았다. 무슨 꽃이 피었나 살펴보고 나무 아래 벤치에도 앉아보고 싶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서 더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보인다. 짚으로 지붕을 인 쉘터는 잘 가꾼 꽃밭이 둘러싸고 있다. 꽃밭에는 허니서클, 메리골드, 노란 나리꽃, 이름 모르는 보라색 작은 꽃, 로즈메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나무 그늘을 좋아하는 양치류와 헬레보루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팬데믹 초기, 집 밖을 나가기 두려울 때 유튜브에서 정원 가꾸는 영상을 어찌나 보았던지 새로 알게 된 꽃을 실제 정원에서 발견하고 이름을 기억해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정원 한쪽 출입구 앞에 있는 화장실마저도 초가지붕을 얹은 시골 부잣집 창고 같았다. 일보러 들어가서 너무 침침하여 어리둥절하다가, 이게 영국식 화장실인가 생각하다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하는 머릿속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동네 친구들은 이 정원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나만 뒤늦게 알게 된 곳이니 호들갑스럽게 얘기할 거리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가끔 이 정원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6년 보스턴 여행을 하고 내려오면서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주변 건물들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한참을 걸어서 다녀보았는데, 건물들 사이로 여러 형태의 자그만 정원(공원)들이 참 많아서 흥미로웠다. 몽고메리 셰익스피어 정원이 필라델피아에서 보았던 정원의 분위기와 겹치면서 어디 멀리 여행 온 기분이 들었던 걸까. 

되돌아 나오는데 벤치에 앉아 혼자서 뭔가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점심시간인가 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7/30/2018

5마일 혹은 7마일





올해 동남부지방 여름수련회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쥬날루스카 호수(Lake Junaluska)에서 열렸다. 지방에 속한 모든 교회의 교인들과 목회자 가족이 모이는 큰 행사로 2년마다 열린다. 성인들을 위해서는 하나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아침과 저녁 예배가 준비된다. 예배를 위해서 지방 밖에서 강사를 초청한다. 부모님이 예배 드리는 동안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중고등부는 수련회 기간 내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동한다.

지난 번 수련회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 목사인 남편과 아이들이 참여했었다. 나는 일한다는 이유로 함께 가지 못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여부가 불투명했는데, 남편이 예배 순서에 맡은 바도 있고 하여 우리 가족만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예배 드릴 때 보니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단출한 모임이 되었다.

쥬날루스카 호수 둘레에는 개인소유의 주택들도 있고, 수련회장에 속한 여러 건물들도 자리잡고 있다. 수련회장은 미연합감리교회 남동부 관할구역에 속한다. 언젠가 애쉬빌에 갔다가 감리교회와 연결된 곳이어서 잠깐 둘러본 적이 있었고 이번이 나에겐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자동차로 가서, 수련회에 등록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기 위해 웰컴센터에서 내렸다. 남편이 등록을 하는 동안 그 공간을 둘러보다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붉은 꽃에 이끌려 창가로 다가갔다. 밖으로 나가서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용무가 끝나면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건물 뒤쪽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는 나갈 수 있으나 들어올 수 없는 문 같았다.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와 한 가족이 분명한 꽃이었다. 우리 무궁화는 은은하고 단아한 모습이라면 그곳에서 만난 무궁화는 강렬하고 화려했다. 웰컴센터로 들어오다가 본 꽃들도 퍽 인상적이어서 어서 가서 살펴보고 싶었다.

아침 예배가 끝난 다음 저녁 예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호숫가를 걸으면서 예쁜 꽃들을 만나고 싶어 자유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숙소 건물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가서 호수 주변을 안내하는 지도를 얻었다. 난 사진을 찍을 마음에 휴대폰만 챙기고 받은 지도는 살펴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남편은 와 봤던 곳이라 그런 것인지 굳이 지도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옆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던 어느 지방 목사님은 워킹트레일을 따라 걸어보셨다며 정보를 하나 주셨다. 다리를 건너서 가면 5마일(대략 8킬로미터)이고, 그렇지 않고 호수 전체를 돌면 7마일(11킬로미터쯤)이라고 알려주셨다. 지도는 남편 바지 주머니로 들어가서 걷는 내내 나오지 않았다.

산에 둘러 쌓여 있고 구름이 많은 흐린 날이라 그런지 아침 기온이 선선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 부부와 산이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언덕 위에 있는 숙소를 나서서 왼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왔다. 넓은 호수가 곁에 있어서 마음도 여유로웠다. 언덕길 아래에 이르자 다리가 바로 나타났다. 도로와 인도가 따로 있는 넓은 다리다. 지방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신 5마일짜리 산책길로 들어서는 다리라 여기고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걷느라 너무 힘들지 않게 짧은 길이 적절하게 선택되었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전체 호숫가를 살펴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꽃들도 만나고, 모양이 모두 다른 집들도 지나치고, 이 모든 것이 호수 물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있는 풍경도 감상했다. 가장 많이 마주친 것은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한두 사람 빼고는 모두 빠짐 없이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복 받은 길이다.

그렇게 얼마를 걷고 나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곳에 이르렀다. 산책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길, 호수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는 길. 이 다리는 좁고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다리다. 나는 옆으로 새지 말고 앞으로 조금 더 걷자고 했고 남편은 동의했다. 산이는 그냥 따라왔다. 또 얼마큼 걸어가자 넓은 찻길이 나왔다. 눈에 익은 듯하여 가만 보니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쥬날루스카 호수를 향해 가던 그 길이었다.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재미있었다. 도로와 붙어있는 산책길의 오른쪽은 호수이지만 왕복 6차선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열기가 대단하였다. 산이는 이때부터 힘들어했다. 조금 더 힘을 내 호수 입구에 있는 웰컴센터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산이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내 얼굴에서도 살짝 열이 오른 것이 느껴졌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오니 다시 마음이 안정되었다. 수련회장에 속한 건물들 앞에는 꽃으로 꾸며놓아 그것들을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집 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에서 일 주일에 두세 번 5마일씩 걷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보통 1시간 50분쯤 걸렸었다. 호수 주변을 걸은 지 1시간 20분 남짓. 숙소까지 가면 걷는 시간으로 따져볼 때 5마일 코스려니 속셈을 하고 있는데, 산이가 또 쉬자고 했다. 나무 그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 무척 시원했다.

호수 위에 놓인 다리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두 갈래 길에서 다리를 선택했으면 우리가 건넜을 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고 있는 벤치로 바로 건너올 수 있는 다리였다. 다른 길을 선택하여 멀리 돌게 되었지만 건물들과 꽃들을 더 볼 수 있어서 후회가 없었다. 얼굴에 땀이 다 마를 즈음에 남편은 1마일 정도 남은 길은 자기 혼자 걸어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산이를 보니 더 걷자고 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남편의 수고로 나머지 길은 자동차로 편히 이동했고,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지에서 지도를 꺼내놓았다. 걷는 동안 한 번도 꺼내 볼 생각을 못했던 지도가 궁금해졌다. 구겨진 지도를 펼쳤다. 그제야 지도가 읽혔다. 우리가 걸은 길은 7마일 길이었다! 호수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5마일 길은 좁은 다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우리는 넓은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를 건넜으므로 5마일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한 것이었다. 경험상 산책 시간도 5마일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의심이 없었다. 시간을 잘못 재었는지 아니면 호수 경치와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날아간 것인지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다리가 뻐근하여 발끝에 힘을 주어 뻗어보려 하니 쥐가 났다. 마음은 즐거웠으나 몸은 무리를 했나 보다. 걸음이 어눌한 산이가 그만큼 걸은 것이 대견했다. 지도를 꼼꼼히 보고 5마일 길을 선택했으면 덜 힘들어서 좋았으려나. 그냥 선택한 길이 7마일 길이어서 힘은 들었으나 쥬날루스카 호수 수련장을 다 돌아볼 수 있어서 미련이 남지 않아 좋은가. 언젠가 걸었던 길들과 7마일 산책길이 많이 닮은 듯하여 웃음이 났다.






7/16/2018

분꽃






올 여름에도 분꽃이 피었다. 집 뒤쪽 담장 아래에 씩씩하게 피어있다. 처음 분꽃 씨앗은 돌아가신 김세영 권사님이 주신 것이다. 진한 분홍색 꽃이 더 예쁘다며 그 씨만 주셨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었다. 진한 분홍, 옅은 분홍, 노랑, 주황, 하양. 꽃들은 늘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해질녘에 피어 밤을 지나고 아침 햇살이 고르게 퍼질 때쯤에는 꽃잎이 다시 움츠러든다. 한낮에는 활짝 핀 꽃을 볼 수가 없다. 여름 내내 꽃이 피고 진다.

여름이 끝날 즈음에는 꽃이 핀 자리마다 씨앗이 맺힌다. 씨앗을 갈무리했다가 다음 해에 원하는 자리에 심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자라도록 씨앗이 그냥 떨어지게 두었다. 계절이 바뀌면 분꽃은 이파리를 눈깜짝할 새 떨구고 가지도 누렇게 말라 마디 마디 똑똑 부러져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다.

다시 봄이 되면 동그란 모양을 한 새싹이 오만 군데에서 올라온다. 어느 해 봄에는 그 새싹들을 솎으면서 한 곳으로 모으다가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다. 분꽃의 싹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다른 싹들과는 달리 성큼성큼 자라 눈길을 끌었다. 싹만 봐서는 분꽃이라는 확신이 안 들어 뽑아버리기로 했다. 싹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있으랴 싶어 손으로 잡아당겼는데 끔쩍도 하지 않았다. 흙 속으로 모종삽을 꾹 눌러 넣어 들어 올리려 했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싹 주변을 여러 삽 파내고 나서야 그 뿌리를 볼 수 있었다.

마치 고구마처럼 생긴 뿌리였다. 분꽃이 아닌 것 같아 그것을 파내어 담장 아래에 던져 두었다. 그런데 그 뿌리가 마르지 않고 어떻게 땅 속으로 들어갔는지 살아있다가 꽃을 피웠다. 분꽃이었다. 분꽃은 씨가 맺히는 걸로 봐서는 뿌리로 번식하는 식물은 아닌 것 같은데, 굵은 뿌리가 남아 있다가 거기서 싹이 나온다는 것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씨와 줄기 뿌리로 동시에 생명을 이어가는 여러해살이 꽃인 줄 그제야 알았다. 씨에서 자란 것과 뿌리에서 자란 것을 비교해보니 나중 것이 더 튼실하다.

한 번은 모아둔 분꽃 씨앗이 주방 바닥에 떨어져 있었나 보다. 식탁 의자에 앉다가 바지직 소리가 나서 봤더니 씨가 바스러져 있었다. 씨앗 겉은 검은색인데 검은 껍질 안에는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보였다. 이 흰 가루가 마치 여인들이 화장할 때 쓰는 분과 같아서 분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씨에서 나온 싹과 뿌리에서 나온 싹의 모양이 다르고, 한 줄기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고, 흙 위에 던져 둔 한 덩이 뿌리가 다시 살아나는 것, 모두 참 흥미롭다.

8/25/2014

작은 화분 속의 기적




뒤뜰 쪽으로 난 창문 아래에 좁고 길쭉한 꽃밭이 있다. 꽃 몇 뿌리만 심으면 꽉 차는 조그마한 공간이다. 그래도 아침에 블라인드를 열었을 때 고운 빛깔로 웃음을 건네는 몇 송이 꽃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꽃밭의 한쪽은 백합이 심겨져 있다. 부활주일 강단을 장식했던 백합 화분들에서 나의 꽃밭으로 이사온 녀석들이다. 백합의 알뿌리는 번식력이 좋은지 해가 지날수록 봄이면 올라오는 꽃줄기가 늘어나고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메리골드, 빈카 따위를 심었었다. 이런 한해살이 꽃은 해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여러 종류의 꽃들을 심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가 올해는 여러해살이 식물에 마음이 더 가길래 제라늄과 데이릴리를 두 뿌리씩 심어보았다.

물만 줄뿐인데 제라늄은 빨간색 꽃을 연이어 피우고 있다. 키우기 쉬운 식물이지 싶다.  제라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 밖으로 이 꽃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종류도 색깔도 다양했다. 잎에 독특한 향이 있어서 모기가 오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단다. 또 가지를 잘라 심어놓으면 어느새 한 그루의 제라늄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꽃이 많이 피는 제라늄과는 달리 데이릴리는 서너 주가 지나도 처음 심어놓았을 때와 별다른 차이 없이 가느다란 초록 잎만 보여주었다.

이파리 사이사이에 징그러운 고놈들이 아주 많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물을 주러 나갔는데 데이릴리에 민달팽이들이 여러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제라늄이나 백합 쪽에서는 민달팽이를 찾아볼 수 없는데 바로 옆에 있는 데이릴리의 이파리에서는 꿈틀대고 있었다. 민달팽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그것들이 징그럽고 싫었다. 하루 이틀 두고 보니 이파리들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고놈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이파리가 노랗게 죽어갔다.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벌레나 곤충들을 별로 안 좋아하기에 남편에게 민달팽이를 처리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걔네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냥 두라는 것이다.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서 집 벽에도 덕지덕지 붙어 기어 다녔다.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퇴치법을 찾아보니 맥주에 담배 가루를 뿌려 놓으면 맥주 마시러 왔다가 담배의 독성 때문에 죽는다는 얘기만 많았다. 민달팽이 잡자고 맥주나 담배를 사느니 집에 있는 곤충 잡는 약이라도 뿌려보자고 했다. 화학약품이 안 좋으니 뭐니…… 대의명분으로 사는 남편도 아침마다 민달팽이를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내의 끈질긴 볼멘소리를 못 견디고, 약도 뿌리고 몇 마리는 직접 잡아 죽이기도 했다. 결국 할 거면서 왜 그리 버티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도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데이릴리의 이파리를 괴롭혔다. 꽃봉오리도 갉아먹어서 똑똑 떨어뜨려 놓았다. 노란 색 꽃 한 송이가 겨우 살아남아 피었는데 꽃이 너덜너덜 했다. 불쌍했다. 잘 돌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다 헤어진 노란 색 이파리들한테 미안해서 그 다음부터 내 눈에 띄는 민달팽이는 다시는 초록 잎의 맛을 보지 못하도록 엄단했다!

이렇게 그것들에게 맘을 독하게 먹은 이유가 또 한가지 있다. 첫째 아이가 어머니 날이라고 사온 페튜니아가 있었다. 특수학급 선생님, 친구들과 단체로 가서 샀을 것이다. 딱 주먹만한 화분에 심겨져 있는 진분홍색 꽃이었다. 학교를 통해서 어머니 날 꽃을 받는 것은 마지막이기에 오래 두고 볼 요량으로 민달팽이의 피해를 입지 않은 제라늄 근처에 옮겨 심어놓았다. 그런데 민달팽이가 페튜니아는 데이릴리 보다 더 만만한지 홀딱 먹어버렸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줄기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남은 페튜니아 줄기를 원래 것보다 조금 큰 화분에 심어주고, 민달팽이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생명력이 강한 페튜니아라도 손상이 심해 보였다. 줄기 끝이 마르고 있었다. 민달팽이를 포함해서 꽃밭을 둘째 아이에게 맡기고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돌아와 꽃밭을 살펴보니 민달팽이가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볕에 다 숨어버렸는지 어쩐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제라늄은 착하게도 여전히 붉은색 꽃을 내놓고 있었고 데이릴리는 더 이상 민달팽이에게 시달림을 받지 않고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페튜니아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잎과 꽃이 화분에 가득했다. 포기하지 않고 물만 주었을 뿐인데 말이다. 와우!

꽃나무를 괴롭히는 민달팽이는 언젠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줄기만 짤록하게 남아 말라 들어가던 페튜니아가 다시 살아 진한 분홍색 꽃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면 기적 같다. 이 작은 화분 속에서 일어난 기적이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길 바라는 우리 교회나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로 가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7/15/2011

꽃이 있는 여름

꽃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요즘은 겨울을 뺀 나머지 봄, 여름, 가을 어느 때나 꽃을 많이 볼 수 있어 여름 꽃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이할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봄에는 씨를 뿌리고, 가을은 열매를 거두는 때라고 흔히들 말하니까 여름은 꽃이 피는 계절이라고 실없이 우겨보면서, 교회와 집 주변에 있는 꽃을 눈에 담아 보았습니다.
사십 중반의 나이를 먹은 저의 삶은 어느 계절을 살고 있나 생각하면서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장 3-4절)

6/24/2011

꽃은 피고, 아이들은 자라가고





지난 달 초에 할머니 권사님께서 주셨던 채송화가 날마다 활짝 피고 있습니다.
채송화는 반짝이는 햇빛을 좋아하는지, 아침에 해가 쨍 떴을 때 피었다가 해의 기운이 스러지는 오후 서너 시쯤 되면 꽃잎을 어느새 오므리곤 합니다.
한 번 피었던 꽃 봉오리가 다음 날 또 다시 피는지는 모르겠는데 꽃봉오리가 계속 생겨서 피었다 닫았다 하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집을 드나들 때마다 채송화를 관찰하는 것은 요즘 우리 가족의 기쁨입니다.
거저 얻은 기쁨입니다.




아, 조금의 수고가 있기도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화분에 물을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물을 주다가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부터는 첫째 아이가 하고 있습니다.

방학 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꽃에 물 주는 일을 맡겼습니다.
하루 이틀 잘 하더니 어느 때는 하고 어느 때는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착한 마음씨를 자극하기로 했습니다.
“햇빛이 너무 쨍쨍해서 꽃이 목이 마르대.”
“꽃이 물 먹고 싶대.”
그렇게 말하면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하던 일을 잠시 두고 다 먹은 주스 병에 물을 받아 다섯 개의 화분에 물을 골고루 나눠주고 옵니다.

오늘 따라 아이가 꽃에 물을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기는 하고, 그러려면 저녁에 있는 금요기도회에 가기 전에 찍어야 하겠기에 아이 방으로 가서 사진 찍어줄 테니 꽃에 물을 주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랬더니 싫답니다.
노래 들으며 한글 타자 연습을 하던 중이어서 그랬는지 안 하겠답니다.
억지로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러면 관둬라, 하고 말았습니다.

저녁으로 간단하게 우동을 먹으려고 준비를 해놓고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큰 아이가 먼저 내려와 보더니 “와~ 우동이네. 엄마, 빨리 사진 찍어. 빨리” 하면서 병에 물을 담고 제 손을 끌고 나갑니다.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음식을 보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사진 찍자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더 많이 자라나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때때로 헤아리기도 하고 말이죠.
쇼핑을 가거나 길을 건널 때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 어느 순간 손을 슬쩍 놓습니다.
혼자 잘 갈 수 있다는 몸짓인 것 같습니다.
오늘 사진 찍으면서 보니 화분에 물 주는 것도 다섯 개에 골고루 물이 뿌려졌는지 꼼꼼히 살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늘 염려되는 마음에 눈길을 뗄 수는 없지만 마냥 어리게만 볼 수 없는 청년이 되어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채송화는 활짝 피고, 아이들은 자라가고 감사한 일입니다.

장애인 가족으로 마음을 나누던 아틀란타에 사는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는데 아이들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방학을 해서 집에 있으면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더 받고 싶은 것인지 뭐든지 엄마가 해주길 바라고, 친구는 힘들다 하면서도 아이의 요구를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제 아이 얘기하는 것이 괜히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이 친구의 가족과 늘 함께 하길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9절)

4/29/2011

계속되는 부활의 기쁨



누가 하라고 시켰으면 정말 하지 않았을 못된 심보를 가진 제가 별 거 아닌 종이꽃을, 하지만 부활절 기쁨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스스로 나서서 접어본 것입니다.

교회 권사님께서 정성스레 장식을 해주셨고, 교우들은 예쁘다 해주셨습니다.
우헤헤.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라디아 5장13절)

4/22/2011

신앙의 추억을 만드는 부활주일

<꽃꽂이 하기 전 모습입니다. 나중에 멋있게 장식된 모습도 보여 드릴게요.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성(聖)금요일입니다.
둘째 아이에게 성금요일 저녁예배와 부활주일 새벽예배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나도 꼭 가야 돼?” 아이가 묻습니다.
“그럼!”
뭔가를 더 물어올 것 같아 아이가 있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예배에 가겠다는 게로군, 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지금 둘째 아이 나이 또래에 경험했던 부활주일 새벽예배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부활주일 새벽연합예배를 드리는지 알지 못하나, 제가 어릴 적 살던 지역에서는 인천광역시 도원동에 있는 공설운동장에서 모이곤 했습니다.
그 큰 공설운동장에 예수 믿는 자들이 꽉 들어 차게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양초를 밝혀 손에 들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연합성가대는 해마다 특송으로 헨델의 “메시아(할렐루야)”를 불렀고,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찬송을 다 함께 부를 때 이곳과 저 건너편 쪽의 박자가 맞지 않는 것도 저를 감격스럽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 번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비가 그쳤던 것 같습니다), 공설운동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서서 예배를 드렸던 광경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중학생이던 제가 살고 있던 곳은 제물포였고, 공설운동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10 분쯤(아마도)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새벽에 버스가 다니지 않았으므로, 저는 혼자 걸어서 오전 5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었다 싶은데, 그때는 세상도 지금보다는 그리 험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어린 시절은 참으로 순수하게 신앙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참석할 수 있는 모든 예배 시간은 으레 가야 하는 것으로 여겼나 봅니다.
가끔 다른 신앙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부흥을 이루던 7, 80년대에는 아마도 순수하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억지 같지만, 한국교회의 부흥의 물결 속에 어린 저도 끼어 있었다고 해도 될까요? ^^

저희 아이들은 부활의 아침을 맞는 느낌이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부활의 아침에 대한 기억이 있기나 한 지….
지금 여기 교회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부활의 아침에 대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 앞에서나 교회 마당에 있는 쉼터(Shelter)에서 예배를 드리셨다고 하니, 어떤 분위기의 예배가 될 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주일 점심 식사를 위해 음식을 각자 만들어 오기로 했는데, 저는 식탁 위에 올려 놓을 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화사하고 밝은 부활주일 식탁이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둘째 아이와 함께 여러 가지 색깔의 색종이를 접고, 풀로 붙여 나름 열심히 만들어 보았습니다.
화분에 꽃을 장식하는 것은 꽃꽂이를 잘 하시는 권사님께서 도와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예배나 음식, 그 밖에 것으로 표현해보고 기억에 간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지치고 힘든 시기를 만날 때, 그런 신앙의 기억들을 꺼내보며 살포시 미소 지어볼 수 있다면 살아갈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누가복음 24장 44-48절)

3/11/2011

집 앞에 핀 꽃


새로 이사온 집 앞에 그 모습이 초라한 식물이 심겨져 있습니다.
초록색 잎들의 끝은 아무렇게 잘려져 나가 누렇게 변해 있었고, 꽃이 나올 자리도 흙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고 모양도 고르지 않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이사를 가고, 이사 오면서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거나 커다란 이삿짐에 쓸려서 보잘 것 없는 모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양새로 봐서는 언젠가 수경재배로 키워본 히야신스라는 꽃 같습니다.
양파 같이 생긴 알뿌리에서 올라온 꽃대에 크지 않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 피어나면 그 향기가 꽤 진하게 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초라한 식물들을 보면서 쟤들이 꽃을 피울 수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이번 주에 비가 왔는데, 비가 그치고 새벽에 기도하러 나가다 보니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벽녘 빛 속에서 얼핏 보아도 기억 속에 있는 풍성하고 화려한 히야신스와는 달리 지저분하고 어설퍼 보이는 꽃입니다.
그래도 꽃은 꽃인지라 눈길이 머물고, 꽃을 피워낸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꽃이 핀 날 아침, 학교에 가는 작은 아이가 문 밖을 나서며 “꽃 폈다” 합니다.
교회를 갔다 오는 남편이 “꽃 피네” 합니다.
그 작은 꽃들이 제 눈에만 띈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전에 키웠던 히야신스는 농장에서 꽃 피우기 좋은 환경에서 재배된 것이라면, 집 앞의 것은 땅 속에서 겨울을 저 혼자 보내고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대견한 그 히야신스의 아직 피지 않은 남은 꽃봉오리에서도 꽃이 나오길 기대해 보려고 합니다.
꽃이 피면 더 좋고, 피지 않으면 다른 키 낮은 꽃들을 심어서 친구 삼아 주어야겠습니다.
두 뼘 밖에 안 되는 꽃밭이지만 생명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큰 아이가 뭘 잘못 먹었는지 토하고 설사해서 당황하게 하더니, 둘째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답니다.
큰 아이가 이틀 지나 아무렇지 않게 회복한 것처럼, 둘째 아이 일도 월요일에 학교에 가 보면 뭔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방을 찾으면 좋고, 찾지 못하면 꼭 필요한 것들만 다시 사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사건이지만 여기서는 어떤 재미가 있을 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장3-4절)

9/17/2010

열심히 살되 잘 살고 있나?

<나디아 코마네치>
중앙일보 스포츠 USA 어제 신문에 실린 기사 가운데, 체조 경기에서 만점을 받아 체조계의 전설로 알려진 나디아 코마네치가 김연아 피겨 선수에게 한 따뜻한 조언이 실렸습니다.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 이단평행봉에서 사상 첫 10점 만점을 받았을 뿐 아니라, 7차례나 만점 연기를 펼쳐서 금메달 3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4년 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도전해서 금메달 2개를 다시 얻었답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세계 지적발달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인데 코마네치가 바로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부회장이라고 합니다.
2013년 대회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되어 “스페셜올림픽 겨울대회 평창 유치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코마네치는 장래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김연아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고 합니다.

“(줄임) 만일 경쟁이나 금메달을 원했다면 더 도전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케이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면 또 다른 도전을 해봐도 좋겠다. (줄임)”

그 기사를 읽으면서 지금의 저는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는 무엇이며, 하루 하루의 우선 순위도 잘 정해서 그렇게 살고 있나?
열심히 살되 잘 사고 있나?


산에 갔다가 어느 꽃에 유난히 벌과 곤충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꽃이 활짝 피거나 화려하지도 않아 꿀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보기와는 다른지 그 꽃 주변에는 어김없이 곤충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일하는 곤충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그 곤충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이루고 살아갈까? 뜬금없이 궁금했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들을 떠올리는 것은, 열심히 살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삶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며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첫 장면에선가 나왔던 “너나 잘하세요!” 대사가 떠오릅니다.
정말 나부터 잘 해야 되겠지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에베소서4:2-4)

5/14/2010

Mountain Laurel



지난 주 제 블로그에 글이나 그림을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 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변변치 않은 블로그이기는 하나, 그저 일 주일에 한 번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으려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 블로그를 찾아야할 그 때쯤, 분주한 일이 있어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또 어디를 갔다 와야 했기에 제 딴에는 작은 아들에게 성경 한 장을 타이핑해서 블로그에 올려달라고 부탁하리라 생각하고, 성경을 뒤적이다 잠언 16장에 눈길이 머물길래 그것을 마음에 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탁한다는 것마저도 깜빡 잊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그로부터 또 한 주가 지났습니다.
요즘 시간 가는 걸 보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정말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까 그런가 싶었는데, 교회 어느 청년과 얘기하다 보니 그이도 미국에서의 시간이 더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답니다.
그래서 그이에게 하나님이 이곳의 시계를 한국보다 더 빨리 돌리시는 것은 아닐까 했더니, 그러게요 해서, 한번 웃었습니다.


공원을 걷다가 예쁜 꽃을 발견했습니다.
꽃은 다 예쁜 것 같습니다.
전에 종이접기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접었던 어떤 꽃과 똑같이 생긴 진짜 꽃이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 공원에는 유난히 그 꽃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나서 공원을 소개하는 건물을 통과해 나오는데 그 꽃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해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꽃 이름이 Mountain Laurel 이랍니다.
로렐?
한국에서 유명한 제화회사의 구두 이름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은데…. ㅋㅋㅋ

집에 돌아와서 꽃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쳤더니 많지 않은 정보가 떠올랐습니다.
철쭉과에 속하고 미국 동부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철쭉과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단순한 하루 하루를 살다 보니 작은 발견이나 깨달음도 오랜 여운을 가지고 제 곁에 남아있습니다.
로렐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왔다가 떠나고, 또 왔다가 떠나갑니다.

어떤 시험에서, 주제를 주면 자신의 생각을 써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요즘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건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육체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의 조화를 결론으로 정하고 글을 썼습니다.
같은 시험에서 또 한번은,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갔을 때 그곳의 새로운 문화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문화를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새로운 문화를 존중하고 배워가되 자신의 문화도 소중히 여기는 조화로움을 결론으로 설정하고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두 번 모두 “조화” “어울림”을 글을 펼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글 쓰기 편한 구조인가요??? *^^*

이번에는 로렐 꽃을 생각하면서도, 눈에 잘 띄고 보기에 좋은 꽃과 어울려 있는 다른 것들에 마음이 갔습니다.
큰 나무들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이 쌓여 썩은 푹신한 이불 같은 거름, 누군가 나무 밑에 정성스레 덮어준 나무 조각들(woodchips), 꽃을 받쳐주는 벌레 먹은 잎사귀, 곤충들, 주변의 나무들, 신선한 공기와 바람과 하늘, 그 곁을 편안한 얼굴로 지나쳐가는 사람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그 꽃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레 접혔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어울림에 대한 물음들이 생깁니다.
나는 주변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
둘러싼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4/23/2010

2/26/2010

예쁜 것들

<컴퓨터 어딘가에 들어 있는 사진>
꽃이 참 예쁩니다.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도 정말 예뻤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자신 있는 눈빛과 표정이 맘에 들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14년을 준비한 열매라고 하니 그 동안의 노력도 어림 짐작해봅니다.

꽃도, 김연아 선수도, 처음 스케일링 해서 깨끗하게 닦인 강산이 이(치아)!!!도 다 예쁩니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하는도다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찌로다 /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찌로다 /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려 오실 것임이로다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역대상 16:30-34)

5/08/2009

어머니 날 꽃을 보며


참으로 바쁜 한 주를 보냈습니다.
“바쁘다”는 말이 저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번 주를 돌아보면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터에서도 바빴고, 집에 돌아와 강산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발 치료 하러 갔다 오고, 그때부터 한국학교 학기 마지막 준비인 상장, 학습평가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작은 선물들을 만들면서 저녁 준비해서 먹고요.
오늘이 아무래도 바쁠 것 같아 내일 한국학교에 필요한 준비물을 이미 다 준비를 해 두었는데도 하루가 뚝딱 가버렸습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을 한 가지 한 가지 마무리할 때마다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옵니다.--!

휘몰아치듯 바쁜 하루였지만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늘이 “어버이의 날” 입니다.
가끔은 어버이의 날에도 부모님들과 동생들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기도 하고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고 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보내셨을까 “살짝” 궁금합니다.

엄청 궁금해 하지 않고 조금만 궁금해 하는 것은 이곳에서 제대로 섬겨 드리지도 못하거니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길 바라는 제 멋대로의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다음 주 월요일쯤 되어 전화 드릴 때 어버이 날은 어떻게 보내셨느냐 여쭤보는 정도로 지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래도 되는지…

여기는 이번 주일이 어머니의 날입니다.
어머니에게 선물도 많이 하고 가족끼리 식사도 하는 날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물이 좋을지 텔레비전에서 광고도 제법 많이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용돈 받는 것을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앙케이트 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는 보석, 향수, 옷 광고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비단 어머니의 날 뿐만 아니라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라도 더욱 뭉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날들에 여행을 가더라도 가족끼리 같이 가고 말이죠.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의 이혼율이 세계 1위인지…’
이그~, 쓸 데 없는 생각!


며칠 전에 강산이가 학교에 갔다 오면서 화분을 하나 갔고 왔습니다.
이거 뭐 잘못 가져온 것은 아닌가 싶어 슬슬 구슬리며 물어보았습니다.
“강산아, 이 화분 뭐야?”
“코스코에서~ 게미지 선생님하고~ 샀어.”
“어, 산거야? 게미지 선생님 하고? 언제? 왜?”
“…….”

강산이는 이층으로 올라가 책가방을 내려 놓고 옷을 갈아 입고 내려옵니다.
“자!”
절반으로 접은 초록색 도화지를 살짝 제 옆에 놓습니다.
펼쳐보니 어머니 날 카드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 큰 화분이 어머니 날 선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선물하기 위해 꽃을 고른 사람이 강산이인지 게미지 선생님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저에게 온 선물인 듯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분을 현관문 앞에 햇빛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주고 꽃이 더욱 활짝 피라고 물을 주면서 저는 마음으로 이 화분을 한국에 계신 어머니들께 보내드렸습니다.
어머님, 엄마, 어머니, 그리고 막내 동생댁의 어머니,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기도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마음뿐이지만 여기 올린 사진 가득 제 마음을 담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 사랑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100:1-5)

3/13/2009

봄꽃을 보는 기쁨


3월 첫날에 눈이 많이 내려 꽃을 세상에 막 내어놓은 나무들은 어떻게 하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겨울을 지내고 나온 꽃봉오리들이라 그런지 어쩌다 내린 눈에는 끄떡없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여기저기서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나무들이 고운 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 시작할 때는 날씨가 갑자기 여름이 된 것처럼 덥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봄은 봄인지라 옷을 가볍게 입으면 바깥 활동하기에 그만이었습니다.
수요일쯤 되니까 건물 안에 있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땡땡이를 쳤습니다.
영어 수업이 30 여분만 있으면 끝날 텐데, 집에 가기 전에 장볼 것이 있음을 핑계 삼아 교실에서 일찍 나와 버렸습니다.

지하에 있는 교실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 마치 고등학교 때 몸이 아프거나 해서 일찍 조퇴를 하고 거리로 나섰을 때와 비슷한 느낌!!
보통 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주차장과 거리가 더 한가해 보이고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오렌지를 파는 곳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갔습니다.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꽃이 한가득입니다.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은 하얀 꽃을 피운 나무입니다.
더그우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쩜 그리도 풍성하게 꽃을 안고 있는지 볼 때마다 탐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또 함박웃음을 웃고 있는 듯한 하얀 나무를 많이 보다가, 분홍빛 벚꽃나무나 자주빛 목련을 어쩌다 만나면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그 모습이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인다고나 할까요.
이들이 있어 봄꽃의 색이 단조롭지 않은 것 같아 반갑습니다.

장보기 위해 도착한 곳에 이 두 가지 빛의 꽃을 모두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과일만 사고 나와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지난 해 이맘때는 미국으로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가용도 없고 해서 거의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꽃이 많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보지는 못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봄을 다시 맞이하니 이제는 이곳에 찾아온 봄이 조금씩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봄을 느끼는 만큼 이곳 생활에 대한 긴장감도 풀려가는 것일테지요.

삶 속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고마워지는 순간입니다.
풍성한 봄꽃을 보는 기쁨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4-5)

5/28/2008

07/28/2005 - 다 너희들 꺼야


강화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삼계탕 먹게 모두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학교 때 수고도 했고 이것 저것 가져갈 것도 있다고 하십니다.
무슨 날인가...남편은 어림잡아 "중복 아냐?" 합니다.

옆집 부모님과 모두 강화로 출발.
엄마는 강화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가자고 하십니다.
엄마는 강화에 가져갈 과일로 제일 좋은 포도를 고르셨습니다.
이웃과 나누기를 너무 좋아하는 엄마다운 선택입니다.

어머님은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추어 삼계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대로 된 삼계탕이었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영계에 어머님이 농사 지은 찹쌀을 가득 넣고 뒷마당에서 따놓은 대추와 강화 인삼과 황기가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한상에 둘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특별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남편이 식사기도를 하고 모두 숟가락을 들고 나서는 오랜만에 영양보충 하려는 사람들처럼 말없이 먹기만 했습니다.
옆집 엄마만 삼계탕과 반찬들을 가리키며 어머님에게 "아주 맛있어요.
이것도 맛있고 이것도 맛있고" 하셨습니다.

양쪽 부모님 모두 부지런하셔서 먹고 난 상을 그냥 두고 보는 사람들이 없는지라 저녁 먹는 일이 끝나고 상이 순식간에 치워졌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남자 어른들은 포도를 드시며 얘기를 나누십니다.
여자들은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져갈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쌈으로 먹을 수 있는 깻잎, 상추, 호박순을 땄습니다.
바다 둑에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오고 텃밭 일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할머니들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깻잎을 따서는 한손에 차근히 모으시는 어머님을 바라보던 강윤이는 "할머니는 손이 큰가봐. 이거 봐. 이렇게 많은걸 한손으로 잡잖아" 합니다.
강윤이한테는 농사 전문가인 강화 할머니라기 보다는 손 큰 할머니로 보였나봅니다.
마늘도 가져가기 편하게, 쓰레기 된다고 줄기와 뿌리를 떼어냅니다.
마늘을 담고 있는 것을 보더니 강윤이가 또 한마디 합니다.
"가져오는 것은 별로 없는데 집에 갈 때는 엄청 많이 가져가!"
순간 이런 상황에서 강윤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강윤이 대답이 이번에는 시시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옆집 엄마는 이 때를 놓칠세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늘 감사해야 돼. 이게 다 얼마나 귀한 건대."
나는 '오늘 가져갈 것이 많지 않은가 보다' 싶어 손톱에 물들일 봉숭아를 따러 가자고 했습니다.
어머님은 "그래라" 하시고 아이들은 얼른 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옆에 옆집 할머니 권사님네 마당에 봉숭아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습니다.
해마다 봉숭아 꽃을 부탁해도 언제나 마련해 주시는 어머님이 좋습니다.
"자, 이제는 가시죠?" 남편이 말하자 덧붙이는 말 한마디 없이 모두들 일어섭니다.
사돈끼리는 그리 긴 말이 필요없나 봅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오이 김치와 깻잎 무침을 가지러 들어갔다 나오니 식구 모두가 창고에서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옵니다.
새로 찧은 쌀, 옆집 엄마 야채스프를 위한 무, 오이, 참외, 토마토, 콩, 아까 다듬어 놓은 마늘과 쌈...
강윤이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일을 같이 하다보면 어머님은 "이게 다 너희들 꺼지 뭐냐?" 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녀에게 헌신적일 수 있는지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한 강화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 가득 채워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옆집 부모님이 강화에 여러 번 왔어도 고인돌을 아직 못보았다고 하셔서 잠깐 둘러보았습니다.
남편은 강화 사람답게 고인돌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가는 고인돌은 뒷부분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고인돌은 앞쪽(북쪽)에서 바라봐야 더욱 웅장한 모습과 조형의 신비함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밤은 열대야가 두렵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강화 부모님과 어릴 적 한밤 중에 일어나보니 모기를 쫓느라 당신들은 잠을 설치던 옆집 부모님 사랑에 겨워 한 여름 열기쯤은 거뜬히 이겨낼 듯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