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에 할머니 권사님께서 주셨던 채송화가 날마다 활짝 피고 있습니다.
채송화는 반짝이는 햇빛을 좋아하는지, 아침에 해가 쨍 떴을 때 피었다가 해의 기운이 스러지는 오후 서너 시쯤 되면 꽃잎을 어느새 오므리곤 합니다.
한 번 피었던 꽃 봉오리가 다음 날 또 다시 피는지는 모르겠는데 꽃봉오리가 계속 생겨서 피었다 닫았다 하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집을 드나들 때마다 채송화를 관찰하는 것은 요즘 우리 가족의 기쁨입니다.
거저 얻은 기쁨입니다.
아, 조금의 수고가 있기도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화분에 물을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물을 주다가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부터는 첫째 아이가 하고 있습니다.
방학 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꽃에 물 주는 일을 맡겼습니다.
하루 이틀 잘 하더니 어느 때는 하고 어느 때는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착한 마음씨를 자극하기로 했습니다.
“햇빛이 너무 쨍쨍해서 꽃이 목이 마르대.”
“꽃이 물 먹고 싶대.”
그렇게 말하면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하던 일을 잠시 두고 다 먹은 주스 병에 물을 받아 다섯 개의 화분에 물을 골고루 나눠주고 옵니다.
오늘 따라 아이가 꽃에 물을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기는 하고, 그러려면 저녁에 있는 금요기도회에 가기 전에 찍어야 하겠기에 아이 방으로 가서 사진 찍어줄 테니 꽃에 물을 주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랬더니 싫답니다.
노래 들으며 한글 타자 연습을 하던 중이어서 그랬는지 안 하겠답니다.
억지로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러면 관둬라, 하고 말았습니다.
저녁으로 간단하게 우동을 먹으려고 준비를 해놓고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큰 아이가 먼저 내려와 보더니 “와~ 우동이네. 엄마, 빨리 사진 찍어. 빨리” 하면서 병에 물을 담고 제 손을 끌고 나갑니다.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음식을 보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사진 찍자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더 많이 자라나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때때로 헤아리기도 하고 말이죠.
쇼핑을 가거나 길을 건널 때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 어느 순간 손을 슬쩍 놓습니다.
혼자 잘 갈 수 있다는 몸짓인 것 같습니다.
오늘 사진 찍으면서 보니 화분에 물 주는 것도 다섯 개에 골고루 물이 뿌려졌는지 꼼꼼히 살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늘 염려되는 마음에 눈길을 뗄 수는 없지만 마냥 어리게만 볼 수 없는 청년이 되어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채송화는 활짝 피고, 아이들은 자라가고 감사한 일입니다.
장애인 가족으로 마음을 나누던 아틀란타에 사는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는데 아이들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방학을 해서 집에 있으면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더 받고 싶은 것인지 뭐든지 엄마가 해주길 바라고, 친구는 힘들다 하면서도 아이의 요구를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제 아이 얘기하는 것이 괜히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이 친구의 가족과 늘 함께 하길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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