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2018

콜럼비아 누들에 담긴 이야기





콜럼비아 짜장면은,

산이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 지 물어보는 한국 고촌교회 박정훈 목사님 부부의 배려입니다.

산이에겐 한국이 떠오르는 음식이고 아빠가 잘 만드는 음식입니다.

감리교의 설립자 존과 찰스 웨슬리의 흔적을 따라 찾아간 조지아주 세인트 시몬스 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쉬움입니다.

콜럼비아 집에 저녁 때쯤 도착하면 요리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독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산이 아빠와 더불어 박정훈 목사님, 박 목사님의 사위가 다시 시작하는 도전입니다.

정성으로 만들어져 입에서 마음에서 맛보는 놀라움과 기쁨입니다.

산이네와 박정훈 목사님네 가족이 담긴 추억입니다.








콜럼비아 냉면은,

여름이면 교우에게 대접하고 싶은 자 제임스 장로님의 배려입니다.

교우에겐 콜럼비아가 떠오르는 음식이고 자 장로님이 잘 만드는 음식입니다.

미국 어느 곳을 가도, 심지어 한국을 방문해서도 그런 맛을 볼 수 없는 아쉬움입니다.

8월이면 장로님네를 한 주 동안 방문하는 시동생네를 바쁘게 접대하면서도 요리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주일예배 후에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장로님과 더불어 성가대원들이 다시 시작하는 도전입니다.

정성으로 만들어져 입에서 마음에서 맛보는 놀라움과 기쁨입니다.

자 장로님네와 콜럼비아 제일교회가 담긴 추억입니다.

8/12/2018

여름을 함께 보낸 바질

<바질 꽃>




타주에 사는 친구는 식물이 예쁘고 쓸모 있게 자라도록 보살피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초여름, 그이 집에 놀러 갔을 전에 받아 씨로 싹을 틔운 것이라며 바질 모종을 한 움큼 싸주었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자란 것들이라 더위가 길고 심한 이곳에서 자랄지 궁금했다
그런데 바질이 자라주었다
이파리는 때때로 따서 먹기도 하고 생선 구울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바질 페스토라는 파스타 요리를 하면 좋겠지만 나만 먹을 분명하여 그만두었다.



겨울 동안 사용할 바질도 말리고 있다
꽃이 피기 직전의 잎이 가장 향이 좋다고 한다
꽃이 피는 중에라도 가벼운 바람만 스쳐도 제 향기를 감추지 못한다.
베인 풀에서 나는 풀 향이 응축된 ... 
산이는 치과 냄새가 난단다.



키는 80-90센티미터쯤 되고 꽃도 계속 피고 진다
꽃이 엄청 작은데도 벌들이 제법 날아든다
친구에게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씨를 내어 주려나, 기다리고 있다

8/06/2018

13년의 간격을 이어주는 추억


 

엄마!!!”

누가 부른 듯하여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면서 고개를 들었다. 둘째 아들 윤이의 입 모양이 ~’를 아직 끝내지 못해서 둥글게 벌어져 있었다. 우리 집 다른 두 사내의 눈길도 나를 향해 모아져 있었다. 다 늦은 저녁에 뭐 그리 애타게 엄마를 찾아댈 일이 있냐는 시큰둥한 얼굴로 그들을 죽 둘러 보았다.

내일 인크레더블 투(2) 보러 가자.”
싫어.”

요 몇 달 동안 영화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그러니 보러 가고 싶은 것도 있을 리 없다. 그렇더라도 너무 매정하게 대답을 했나 보다.

아빠하고 같이 가.”

형 산이랑은 당연히 같이 가는 거니까, 엄마 대신 아빠를 끼워 넣는 것이 적당했다.

아빠가 싫대!”

영화 구경에 대한 내 의사보다 아빠의 대답이 벌써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폰을 끼고 대중매체의 충실한 수신자 역할을 담당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럼 형이랑 둘이 가라, 고 성의 없는 두 번째 제안을 했다. 윤이는 무척 실망스러운지 두툼한 아랫입술이 비죽이 내밀어졌다. 다 큰 놈이 부모랑 영화 보러 가자고 하질 않나, 싫다니까 서운해하다니 별일이다 싶었다. 이번엔 거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극장 입장료를 내주겠다며 달랬다. 그랬더니 관두란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세 번째 제안은 대학 마지막 학년을 남겨 두고 있는 청년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린 것 같았다.

내 기억에는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게 인크레더블이야. 인크레더블 투가 개봉한 지는 꽤 됐지만 그냥 같이 가서 볼려구 그랬더니….”

윤이는 주절주절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아빠나 엄마의 결정이 바뀔 것 같지 않다고 짐작한 듯이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아이들이 보고자 하는 영화의 내용이 궁금해서라도-그래야 얘기 거리도 더 생길 테니- 같이 가겠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럴 맘이 통 생기질 않아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윤이가 며칠 집에 머무르는 동안 가만 보니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어깨가 더 넓어졌다. 애틀랜타한인교회 여름캠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카운슬러를 하고 오더니 생각이 깊어진 것도 같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슬쩍 엿보였다. 집에 온 첫 날에는 이번 여름에 경험한 것들을 세 시간 넘게 꼼짝 않고 풀어놓았다. 성실한 교회 오빠의 냄새가 폴폴 났다. 집에서는 아직 어린 애 같이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려 하고 툴툴대는 말투도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 녀석이 영화 보자고 제안하기 전 날에는 책장 앞에서 누워 뒹굴뒹굴 하다가 책장 맨 아래칸에 있는 폴더를 하나씩 꺼내 들쳐본 것을 알고 있다. 애기 적부터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거기서 영화 인크레더블홍보 전단지와 전단지에 쓰여 있는 2005 1월이라는 날짜를 발견하고는 옛날 추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때도 엄마랑 같이 가서 봤다고 했다. 윤이가 나중에 얘기해주었다.

다음 날 새벽 기도가 끝나고 남편과 함께 교회 주차장을 걸으며 영화관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얼른 그러라고 답했다. 남편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신앙의 원칙을 깨뜨리는 일이 아니라면 뭐든 하라고 격려한다. 그 원칙은 분명해서 영역이 그다지 넓지는 않다. 내가 하려는 대부분의 것들을 하도록 부추기기까지 하는 편이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어쨌든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아이들을 깨웠다. 잠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뭔 일인지 몰라 눈을 뜨지 않았다. 이불을 더 끌어당겨 얼굴을 덮길래 이번엔 내가 주절댔다.

아들, 엄마도 영화 보러 갈 거야. 영화비도 줄일 겸 오전 꺼 보면 어때? 점심은 아빠랑 같이 밖에서 먹자! 우리가 안 가봤던 식당 트라이(try) 해보자고 했잖아. 아침 먹게 빨리 일어나~.”

내가 식탁에 이르기도 전에 뒤따라 나오는 아들들. 이럴 땐 이십 대 청년이 아니라 애기들이다. 두 아들은 아침에 잠을 깨울 때 나를 성가시게 한 적이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일어나라한 마디만 하면 되었다. 산이가 씻고 나갈 준비하는데 느릿느릿 해서 그렇지 잠투정은 도통 없다. 고맙게 여긴다.

우리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인크레더블 투를 관람했다. 평점이 꽤 높은 영화인데 앞부분은 지루했다. 다만 히어로도 여성이고 악당도 여성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이는 재미있다며 이 영화 DVD를 사고 싶다고 했다. 윤이는 추억 쌓기 한 거지, 라고 애늙은이 같이 말했다. 윤이 말처럼 영화 하나로 한국과 미국에서, 13년의 간격을 이어주는 추억이 생겼다.

네 식구가 다 모인 점심 시간도 즐거웠다. 집 근처 쇼핑센터 초입에 있는 퓨전식당인데 콜럼비아에 8년째 살고 있으면서 우리 세 사나이들은 처음 가 보았다. 난 전에 한국학교 선생님들과 두 번 간 적이 있어서 오늘의 식당으로 추천한 것이었다. 영화를 같이 보지 않은 남편은 따로 식당을 찾아왔다. 식당은 자주 다니는 길 가에 있다. 남편은 운전해 오면서 식당 주변이 이렇게 좋았나, 새삼 느꼈다고 했다. 남편은 맛의 기준이 하도 높아서 비~싼 궁중요리를 먹으면 모를까 맛난 추억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느낌의 장소가 한 곳 더해진 것 같긴 하다.

요즘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날이 맑을 때 나온 햇빛은 유난히 깨끗하고 반짝거린다. 극장 앞도 식당 주변도 생기 넘치는 빛들로 가득한 한 나절이었다.




7/30/2018

5마일 혹은 7마일





올해 동남부지방 여름수련회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쥬날루스카 호수(Lake Junaluska)에서 열렸다. 지방에 속한 모든 교회의 교인들과 목회자 가족이 모이는 큰 행사로 2년마다 열린다. 성인들을 위해서는 하나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아침과 저녁 예배가 준비된다. 예배를 위해서 지방 밖에서 강사를 초청한다. 부모님이 예배 드리는 동안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중고등부는 수련회 기간 내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동한다.

지난 번 수련회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 목사인 남편과 아이들이 참여했었다. 나는 일한다는 이유로 함께 가지 못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여부가 불투명했는데, 남편이 예배 순서에 맡은 바도 있고 하여 우리 가족만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예배 드릴 때 보니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단출한 모임이 되었다.

쥬날루스카 호수 둘레에는 개인소유의 주택들도 있고, 수련회장에 속한 여러 건물들도 자리잡고 있다. 수련회장은 미연합감리교회 남동부 관할구역에 속한다. 언젠가 애쉬빌에 갔다가 감리교회와 연결된 곳이어서 잠깐 둘러본 적이 있었고 이번이 나에겐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자동차로 가서, 수련회에 등록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기 위해 웰컴센터에서 내렸다. 남편이 등록을 하는 동안 그 공간을 둘러보다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붉은 꽃에 이끌려 창가로 다가갔다. 밖으로 나가서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용무가 끝나면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건물 뒤쪽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는 나갈 수 있으나 들어올 수 없는 문 같았다.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와 한 가족이 분명한 꽃이었다. 우리 무궁화는 은은하고 단아한 모습이라면 그곳에서 만난 무궁화는 강렬하고 화려했다. 웰컴센터로 들어오다가 본 꽃들도 퍽 인상적이어서 어서 가서 살펴보고 싶었다.

아침 예배가 끝난 다음 저녁 예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호숫가를 걸으면서 예쁜 꽃들을 만나고 싶어 자유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숙소 건물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가서 호수 주변을 안내하는 지도를 얻었다. 난 사진을 찍을 마음에 휴대폰만 챙기고 받은 지도는 살펴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남편은 와 봤던 곳이라 그런 것인지 굳이 지도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옆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던 어느 지방 목사님은 워킹트레일을 따라 걸어보셨다며 정보를 하나 주셨다. 다리를 건너서 가면 5마일(대략 8킬로미터)이고, 그렇지 않고 호수 전체를 돌면 7마일(11킬로미터쯤)이라고 알려주셨다. 지도는 남편 바지 주머니로 들어가서 걷는 내내 나오지 않았다.

산에 둘러 쌓여 있고 구름이 많은 흐린 날이라 그런지 아침 기온이 선선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 부부와 산이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언덕 위에 있는 숙소를 나서서 왼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왔다. 넓은 호수가 곁에 있어서 마음도 여유로웠다. 언덕길 아래에 이르자 다리가 바로 나타났다. 도로와 인도가 따로 있는 넓은 다리다. 지방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신 5마일짜리 산책길로 들어서는 다리라 여기고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걷느라 너무 힘들지 않게 짧은 길이 적절하게 선택되었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전체 호숫가를 살펴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꽃들도 만나고, 모양이 모두 다른 집들도 지나치고, 이 모든 것이 호수 물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있는 풍경도 감상했다. 가장 많이 마주친 것은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한두 사람 빼고는 모두 빠짐 없이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복 받은 길이다.

그렇게 얼마를 걷고 나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곳에 이르렀다. 산책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길, 호수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는 길. 이 다리는 좁고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다리다. 나는 옆으로 새지 말고 앞으로 조금 더 걷자고 했고 남편은 동의했다. 산이는 그냥 따라왔다. 또 얼마큼 걸어가자 넓은 찻길이 나왔다. 눈에 익은 듯하여 가만 보니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쥬날루스카 호수를 향해 가던 그 길이었다.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재미있었다. 도로와 붙어있는 산책길의 오른쪽은 호수이지만 왕복 6차선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열기가 대단하였다. 산이는 이때부터 힘들어했다. 조금 더 힘을 내 호수 입구에 있는 웰컴센터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산이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내 얼굴에서도 살짝 열이 오른 것이 느껴졌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오니 다시 마음이 안정되었다. 수련회장에 속한 건물들 앞에는 꽃으로 꾸며놓아 그것들을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집 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에서 일 주일에 두세 번 5마일씩 걷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보통 1시간 50분쯤 걸렸었다. 호수 주변을 걸은 지 1시간 20분 남짓. 숙소까지 가면 걷는 시간으로 따져볼 때 5마일 코스려니 속셈을 하고 있는데, 산이가 또 쉬자고 했다. 나무 그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 무척 시원했다.

호수 위에 놓인 다리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두 갈래 길에서 다리를 선택했으면 우리가 건넜을 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고 있는 벤치로 바로 건너올 수 있는 다리였다. 다른 길을 선택하여 멀리 돌게 되었지만 건물들과 꽃들을 더 볼 수 있어서 후회가 없었다. 얼굴에 땀이 다 마를 즈음에 남편은 1마일 정도 남은 길은 자기 혼자 걸어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산이를 보니 더 걷자고 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남편의 수고로 나머지 길은 자동차로 편히 이동했고,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지에서 지도를 꺼내놓았다. 걷는 동안 한 번도 꺼내 볼 생각을 못했던 지도가 궁금해졌다. 구겨진 지도를 펼쳤다. 그제야 지도가 읽혔다. 우리가 걸은 길은 7마일 길이었다! 호수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5마일 길은 좁은 다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우리는 넓은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를 건넜으므로 5마일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한 것이었다. 경험상 산책 시간도 5마일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의심이 없었다. 시간을 잘못 재었는지 아니면 호수 경치와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날아간 것인지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다리가 뻐근하여 발끝에 힘을 주어 뻗어보려 하니 쥐가 났다. 마음은 즐거웠으나 몸은 무리를 했나 보다. 걸음이 어눌한 산이가 그만큼 걸은 것이 대견했다. 지도를 꼼꼼히 보고 5마일 길을 선택했으면 덜 힘들어서 좋았으려나. 그냥 선택한 길이 7마일 길이어서 힘은 들었으나 쥬날루스카 호수 수련장을 다 돌아볼 수 있어서 미련이 남지 않아 좋은가. 언젠가 걸었던 길들과 7마일 산책길이 많이 닮은 듯하여 웃음이 났다.






7/23/2018

그 날은 바로 오늘이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설교했던 기념교회(사바나,조지아주)


마지막 날, 그 날, 혹은 최후 심판이 있음을 성경을 통해 알고 믿으면서도 구체적인 성경 구절이 마음에 새겨지지가 않았다. 심판이 먼 훗날에 있을 일이고 두렵기 때문인가 자문해 보았다. 아마도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무게중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결과가 그렇지 않더라도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는 자기변호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빠진 느낌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린도전서 3:10-15)

어느 교우와 신앙 생활에 대해 재미나게 얘기하다가 그이로부터 이 말씀을 듣게 되었다. 전반부는 익숙한데 후반부의 낯선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교우는 마지막 날에 보석으로 남고 싶다고 부끄러운듯이 말했다. 나의 신앙생활은 불로 테스트를 한 후에 남는 것이 있을까. 영적인 생명은 있으나 공적이 없어 다 불타고 없어질 나무나 풀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무나 풀은 생명조차 없는 짚이나 매한가지로 모두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긴장되었다.

이 공적은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그 수고가 열매 맺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기대나 믿음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자신만 주목 받기를 바라는 것은 영원한 것에 속하지 못한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세워주며, 예배와 기도와 성경을 가까이하도록 서로 권면해야 한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는 공적, 사랑의 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둔 소망을 가지고 인내(데살로니가전서 1:3)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불을 통과해도 정결한 금, , 보석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그 날(13)은 바로 오늘이다. 지금 이곳에서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신실한 사람이고 싶다. 그냥 좋은 사람은 엄청 많다.

7/16/2018

분꽃






올 여름에도 분꽃이 피었다. 집 뒤쪽 담장 아래에 씩씩하게 피어있다. 처음 분꽃 씨앗은 돌아가신 김세영 권사님이 주신 것이다. 진한 분홍색 꽃이 더 예쁘다며 그 씨만 주셨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었다. 진한 분홍, 옅은 분홍, 노랑, 주황, 하양. 꽃들은 늘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해질녘에 피어 밤을 지나고 아침 햇살이 고르게 퍼질 때쯤에는 꽃잎이 다시 움츠러든다. 한낮에는 활짝 핀 꽃을 볼 수가 없다. 여름 내내 꽃이 피고 진다.

여름이 끝날 즈음에는 꽃이 핀 자리마다 씨앗이 맺힌다. 씨앗을 갈무리했다가 다음 해에 원하는 자리에 심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자라도록 씨앗이 그냥 떨어지게 두었다. 계절이 바뀌면 분꽃은 이파리를 눈깜짝할 새 떨구고 가지도 누렇게 말라 마디 마디 똑똑 부러져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다.

다시 봄이 되면 동그란 모양을 한 새싹이 오만 군데에서 올라온다. 어느 해 봄에는 그 새싹들을 솎으면서 한 곳으로 모으다가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다. 분꽃의 싹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다른 싹들과는 달리 성큼성큼 자라 눈길을 끌었다. 싹만 봐서는 분꽃이라는 확신이 안 들어 뽑아버리기로 했다. 싹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있으랴 싶어 손으로 잡아당겼는데 끔쩍도 하지 않았다. 흙 속으로 모종삽을 꾹 눌러 넣어 들어 올리려 했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싹 주변을 여러 삽 파내고 나서야 그 뿌리를 볼 수 있었다.

마치 고구마처럼 생긴 뿌리였다. 분꽃이 아닌 것 같아 그것을 파내어 담장 아래에 던져 두었다. 그런데 그 뿌리가 마르지 않고 어떻게 땅 속으로 들어갔는지 살아있다가 꽃을 피웠다. 분꽃이었다. 분꽃은 씨가 맺히는 걸로 봐서는 뿌리로 번식하는 식물은 아닌 것 같은데, 굵은 뿌리가 남아 있다가 거기서 싹이 나온다는 것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씨와 줄기 뿌리로 동시에 생명을 이어가는 여러해살이 꽃인 줄 그제야 알았다. 씨에서 자란 것과 뿌리에서 자란 것을 비교해보니 나중 것이 더 튼실하다.

한 번은 모아둔 분꽃 씨앗이 주방 바닥에 떨어져 있었나 보다. 식탁 의자에 앉다가 바지직 소리가 나서 봤더니 씨가 바스러져 있었다. 씨앗 겉은 검은색인데 검은 껍질 안에는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보였다. 이 흰 가루가 마치 여인들이 화장할 때 쓰는 분과 같아서 분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씨에서 나온 싹과 뿌리에서 나온 싹의 모양이 다르고, 한 줄기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고, 흙 위에 던져 둔 한 덩이 뿌리가 다시 살아나는 것, 모두 참 흥미롭다.

7/09/2018

사진을 정리하다가








셀폰에 저장된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여느 때처럼 사진을 연도별로 정리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사진을 살펴보다가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일하던 사무실 근처에서 바라 본 하늘이 담겨 있었다. 아마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 바라본 하늘이리라.

이곳은 건물이 높지 않아 좀 더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다. 공기도 맑아 하늘의 다채로운 색과 모양을 자주 감상한다. 구름은 무채색으로, 온갖 모양의 구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참 멋지다.

요즘은 책 읽는 시간이 행복하다. 글 뜻을 깨치는 능력이 나이 반백이 넘어 이제야 조금씩 생기는지 책들이 나에게로 마구 들어온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없이 멀리 있는 하늘이나 감상하다 보니 최근 읽은 토마스 머튼의 영적일기』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머튼이 영성 이념의 필요성에 대해 적은 것이다.

나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구체적이며 단정적인 어떤 자질, 가난과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공에 뜨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 곧 겟세마니에 가난과 겸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실제 이념이 되게 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가끔 생각이나 하고 그것에 대해 강론이나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222)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낼지 하늘이 내준 숙제가 남아 있다. 숙제는 늘 부담스럽다. 꼭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7/02/2018

보이지 않는 것




그 주일은 유난히도 힘이 빠졌다. 마음이 쓰이는 별 다른 일도 없었건만 말이다. 세끼 꼬박 챙겨 먹는 습관대로 아침 식사도 적당히 잘 먹었다. 성가 연습을 하려고 성가대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해가 짱짱하게 떠 있었다. 오후에 비가 오려나…. 몸이 무거운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 하고는 멀쩡한 날씨를 만만한 핑계거리로 삼고 있었다.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모이기로 한 성가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언제부터인가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성가대가 되었다. 성가 연습이 시작되었다. 성가 제목은 할렐루야 주의 믿음 갖고였다. 복음성가로 잘 알려진 곡을 4부 합창으로 부를 수 있도록 편곡한 것이다. 워낙 오래된 곡이고 기본 음정을 아는 곡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기존 음에 너무 익숙하여 오히려 편곡된 노래의 음을 못 잡는 곳도 있었고, 그나마 작은 목소리는 힘이 실리지 않아 입 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성가대에서 누구나 알 법해서 쉽다고 여겨지는 곡으로 정하는 때가 있다. 성가대원 가운데 여름이 되면 여행이나 휴가를 다녀오기 위하여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 있기 때문에, 그럴 때면 적은 인원으로 부르기 쉬운 곡을 선택한다. 그날도 성가대원 가운데는 한국으로 여행간 사람도 있었고 휴가간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부분에서 음정이 자꾸 틀리자 누군가 여행간 성가대원이 없어서 노래 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고 농담 삼아 웃으며 얘기했다.

예배는 시작되고 성가대석에 올라 갔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충 노래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님, 힘 주세요, 마음으로 속삭였다. 힘차게 불렀지만 그래도 어떤 마디는 여전히 틀리게 부르고 내려왔다. 내가 음을 잘못 냈다는 것은 다른 성가대원들에게 미안하게도 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배를 다 마치고 나니 오늘은 왜 이렇게 힘이 안 나죠?,  오늘 왠지 축 처져요, 라고 말하는 성가대원들이 여럿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비슷한 분위기를 여럿이 같이 느끼는 이런 날도 있나 보다(날씨의 변화가 자연 만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날 저녁 때쯤 급작스럽게 내리는 비가 한 차례 지나가기는 했다). 그런데 우리의 기분과 상관 없이 교인들 가운데 참 좋았다고 평해주신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가에 대해 한번도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신 적이 없던 분이 그런 피드백을 해주셨다는 것이었다. 어떤 교우들은 작게나마 박수도 치면서 성가를 들으셨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모든 주일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성가대에서 겪은 얘기를 남편과 나누었다. 몇 몇 성가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는 얘기, 기운이 없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성가를 불렀다는 얘기, 다른 주일에 비해 완성도가 높지 않은 성가였다는 얘기,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성가를 좋게 들었다는 얘기를 말이다. 다 듣고 나서 남편은 한 마디로 대꾸를 해주었다.

도우셨지 뭐.”

그리고 자신의 경험도 덧붙였다. 설교를 하고 나서 오늘은 죽 쑤었구나, 하며 참담한 심정이 되어 강단을 내려오면 그런 날은 꼭 한두 사람이 은혜 받았다는 말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주일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기 위한 기도는 경외심으로 빚어진 그릇에 가득 담아 드려진다. 성가대만 놓고 봐도 그렇다. 개개인의 준비 기도, 주일 아침 어느 성가대원의 대표 기도, 예배실에 들어가기 전 예배를 맡은 자들을 위한 목사님의 기도, 예배 중 회중의 대표 기도에 성가대를 위한 기도가 들어 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진 기도는 하나도 헛됨이 없다. 우리 기도의 그릇이 크든 작든, 성가대가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상관 없이 하나님의 은총이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미 함께 계신다. 영혼이 하나님께 집중하기만 하면 은총은 우리에게 오롯이 부어진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6/25/2018

한번뿐인 것처럼





어떤 개인 주택의 수도는 건물에서 떨어져 마당이나 뒤뜰에 설치되어 있다면 지금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집 바깥벽에 두 개의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양쪽 벽에 하나씩, 한 벽의 앞쪽에 그리고 다른 벽에는 뒤쪽에 설치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그 각각의 수도꼭지에다가 호스를 연결해서 사용한다. 뒤뜰에서 물을 쓸 일이 있을 때는 벽 뒤쪽에 있는 수도를 쓰는 것이 당연히 편리하다. 그 수도와 연결된 호스 끝에는 분무기가 달려 있어서 물을 흐르게 하거나 그치게 할 수 있고, 물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다. 손바닥만한 꽃밭과 텃밭, 화분에 심겨진 식물들에게 아침마다 물을 준다. 분무기로 뒤뜰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주는 일이 손쉽고 재미있다.

이 분무기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시원하고 활기찬 기분이 든다. 분무기의 방향을 잘 잡으면 아침 햇빛이 물방울에 닿아 무지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일곱 가지 색깔이 흐릿하게 뭉개져 있는 무지개, 반원에서 다시 절반만 보여주는 무지개, 깜박거리는 신호등처럼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무지개…… 모두 수줍음이 많은 무지개들이다. 어떤 날에는 데이릴리 꽃 더미에, 어떤 날에는 내 발등에 무지개가 걸리기도 한다.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동화 같은 얘기를 확 믿어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아침부터 80(26.6)로 시작되는 요즘 같은 때는 수도요금이 얼마가 나와도 걱정되지 않는다면 혹은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을 무시할 수 있다면, 허공을 향해 질릴 때까지 물을 뿌려본다든가 옷을 흠뻑 적셔가며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고맙게도 수도꼭지만 돌리면 와주는 물과 한 손 안에 들어오는 이 플라스틱 분무기만 있으면 신나는 물놀이가 가능하다. 음양오행에서는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물질로 금, , 나무, , 흙을 말한다. 그 가운데 나는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단다. 오래 전에 코칭과 관련된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알게 된 것인데 어떻게 따져보았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샤워할 때도 넋 놓고 마냥 물 세례를 받으며 그대로 있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낀다. 하여튼 식물들한테 물 주는 잠깐 동안은 즐겁게 책임을 다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 텃밭에 물 주기가 그리 흥이 나지 않는다.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열매를 얻어 보겠다고 심은 고추와 호박에게 날마다 물은 주는데 열매가 별로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집 밖의 일을 한다고 텃밭 가꾸기에 관심을 끊고 살았다. 그러다가 올해 어설프게나마 다시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하다. 씨 뿌릴 때 까먹었던 거름도 때때로 주고, 쓰고 싶지 않았지만 화학비료도 쬐끔 줘 봤는데도 신통치가 않다. 기온이 너무 높은 날에는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보살펴주건만 그럴 때만 반짝 살아나는 것 같다. 맛과 모양이 낯선 미국 고추 몇 개를 얻었을 뿐이다. 텃밭을 가꾸는 교인들 가운데는 호박이나 오이, 부추를 벌써 거두어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올해 텃밭 열매가 실하다는 얘기를 전해주기도 하는데 내 식물들은 얌전하다.

그 중에서도 더 서운한 것은 호박이다. 호박이 심겨진 곳은 수도 호스가 닿지 낳는 곳이라 물통으로 물을 날라야 하지만 물 주기를 거른 적은 없다. 호박 줄기가 귀찮지 않을 정도로 잡초도 뽑아준다. 넓적한 이파리들이 달린 줄기는 쭉쭉 뻗고 꽃은 연신 피면서도 열매는 없다. 벌이 없으면 사람이 손수 꽃가루를 묻혀 수정해 주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어머님의 조언을 생각하며 관찰해보니 다행히 벌도 엄청 많다. 호박 열매가 새끼 손톱만하게 컸다가는 똑 떨어지고 만다. 많은 열매를 기대하며 씨를 뿌린 것은 아니더라도 너무한다 싶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 호박은 열매를 하나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위로를 주는 식물도 있다. 향기로운 로즈메리나 멀리 사는 친구가 준 바질은 쑥쑥 자라고 있다. 메리골드는 눈부신 노란색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듯 찬란하게 피어 있다. 돌보지 않아도 힘차게 자라난 돌나물과 분꽃은 고맙다. 어쨌든 이미 심겨진 것들은 열매가 있든 없든 자연스럽게 스러지기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텃밭 가꾸기에서 재미를 보려면 몇 가지 바꿔보고 싶다. 호스가 닿을 만한 곳이면 좋겠다. 그러면 수도에서 멀리 있는 텃밭은 내버려두어야 한다. 차라리 집 가까이에 있는 꽃밭을 조금 더 넓혀서 사용하면 충분하다. 서너 가지 식물들을 심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면 된다. 모래가 많은 땅이니 흙을 더 넉넉하게 사다가 뿌리가 내릴 만큼의 두께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토양을 바꿀 수는 없으니 좋은 흙을 더 얹기라도 해봐야겠다. 그렇게 하려면 쌓인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텃밭 둘레를 나무 판자나 벽돌로 지금보다 높이 막아주어야 한다. 씨를 뿌리기 전에는 퇴비를 미리 섞어주어 흙 상태를 좋게 만들고, 좋은 퇴비 만드는 방법을 지금부터 알아봐야겠다.

지금 집에서 칠 년째 살고 있다. 처음 이사 올 때부터 텃밭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이제껏 흡족하게 만들지 못했다. 찔끔찔끔 소꿉놀이 하듯이 꽃이나 몇 개 심어 구경하고, 텃밭에서는 제대로 된 결실을 얻지 못했다. 현재 상태로라면 식물을 다시 심어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뿌리가 내릴 만큼 양이 많고, 영양이 풍부한 흙부터 다시 준비해야겠다. 마치 내 생애에 한번뿐인 것처럼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물 분무기로 물 장난도 한 번 신나게 못 해보고 풍성한 남의 텃밭만 부러워하다 말 것 같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텃밭을 다시 정비해야겠다. 그럼 올 여름엔 확장할 꽃밭 정리부터……?!

6/11/2018

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여름이 시작되는 때다. 낮 기온이 93-95(34-35)는 보통이다. 그래도 요즘 이른 아침 시간에는 바람이 살랑거려, 마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손끝이 빠르게 달궈지는 여름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새벽 기도가 끝나고 잠시 걷기에 좋은 시간이 계속 허락되고 있다. 손이 옷 주머니 속을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가는 쌀쌀한 봄 언제부터 새벽 기도가 끝나고 교회 주차장을 남편과 함께 돌고 있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을 되밟으며 여러 번 걷는다.

어느 날 새벽녘, 윗옷 위에 겉옷을 한 겹 겹쳐 입고도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교회 문을 나서서 몇 발을 떼지 않았는데 남편은 내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손을 잡혀줄지 거두어 들일지 빠른 판단을 위해 얼른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가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면서도 앞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옆얼굴에 멋쩍음이 가득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왜 그러시나? 하던 대로 하셔, 하면서 잡힌 손을 다시 빼내 왔을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남편은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런 남편의 태도와 약간 늘어진 볼살 위에 거칠게 솟아나온 수염마저도 안쓰러워 보였다.

신혼 때는 첫 목회지인 강화에서 살고 있었다. 강화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를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장을 보려면 신혼집에서 강화읍까지 버스로 30분을 가야 했다. 현재 강화터미널이 사용되기 전에 있던 옛날 강화터미널에 조금 못 미쳐 종합시장이라는 건물이 두 동인가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재래시장이 아니라 건물 안에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들어가 있어 종합시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종합시장의 정면에는 강화 양사면에서 시작되어 서울 세종로까지 이어진 48번 국도가 지나간다. 남편의 손이 미덥지 않다고 각인되던 그 사소한 일이 있었을 때는 왕복 2차선 도로였고 신호등 없이 횡단보도만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우리 일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그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생겼다.

읍에 장을 보러 간 것인지 약속이 있었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터미널 전 정거장인 종합시장 맞은 편에 서 있었다. 종합시장 건물 쪽으로 도로를 건너야 했다. 넓지 않은 도로이므로 자동차를 피해 이쪽저쪽 잘 살피고 건너면 되었다. 난 좀 겁이 많은 편이라 신호등이 없는 길을 혼자 건너길 꺼려했다. 동행을 의지하든지, 아무도 없을 때는 누군가 길 건너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슬쩍 묻어서 건너곤 하였다. 강화에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는데 그 남편이 옆에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더욱 안전하게 길을 건너려는 순간에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남편이 손을 비틀어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손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말이다. 누가 보면 어떡하냐, 고 남편이 말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조금 보태 삼십여 년 전만 해도 환한 대낮에 길거리에 손잡고 다니는 연인이 별로 없었다-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젠 확실치가 않다. 나같이 소심한 인간은 생각도 못할 행동이었다.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남편보다 내가 더 강함을 남편이 잘 알고 있다. 겁이 많은 것도 남편은 알고 있었고 길을 건널 때도 그렇다는 걸 말한 적도 있었다. 신혼이라 서로를 가까이서 겪어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해도, 알고 지낸 지는 꽤 여러 해가 지났었다. 연애할 때는 어떻게든 손이라도 잡아보려고 애쓰던 남편이었는데 결혼식이라는 형식적인 행사를 치룬 이후로는 고리타분한 남성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의식을 진보적으로 새롭게 하고 헌신할지언정 가부장제의 타파나 양성평등은 관념에 머물러 있었다. 남편은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을 남편도 이럴 때 사용한다. 어쨌든 난 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이후로 길에서 남편의 손을 잡는 일은 혹은 잡혀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에게도 옹졸하고 완고하기가 보통을 넘는 구석이 있다.

부부로 살면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풀지 못한 매듭들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하다. 굳이 그 매듭들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막상 드러내도 해결할 자신이 없거나 확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늘 성찰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모든 관계의 매듭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해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경에 비추어 살펴보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땐가 풀리는 매듭도 있으리라. 그날 새벽 시간이 바로 그 때였나 보다. 내 손을 잡은 남편은 최근 몇 년 전 나로부터 횡단보도 사건을 듣고 그럴 리 없다며 부인했었으나 그 매듭을 벌써 풀어 놓고 있었다. 온전히 풀리지 않은 매듭의 한 쪽은 내 몫이었다. 나도 어색함을 극복해야 했다. 남편 손 안에 내 손을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럴 땐 추운 게 낫군.”

남편은 친절하게도 자신과 나의 멋쩍음을 대신할 말을 찾아주었다.

이번 주 초반, 잠 자리에 들려는데 아랫배가 따끔거렸다. 한두 번 그러는 걸 느끼다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새벽이 되어 교회에 가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기도 드리기가 끝나고 힘이 좀 없었지만 그래도 걷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아주 더워지면 이른 아침 시간도 걷기에 불편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걸을 만할 때 걷자는 마음이었다. 뭘 잘못 먹어 배탈이 났나 남편과 함께 되짚어보았다. 점심에 교회 야외예배 때 쓰고 남아 냉동해 두었던 삼겹살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때는 친구가 준 바질을 텃밭에 심었는데 새로운 잎들이 돋는 것이 싱싱해 보여 이파리 여러 장을 땄다. 바질이 토마토와 잘 어울린다기에 토마토와 치즈 위에 얹어, 오랜만에 구운 스콘과 함께 저녁거리로 삼았다. 보통 때와는 다른 특별한 끼니를 먹기는 했으나 상할 음식들이 아닌 것 같아 의아했다. 화장실을 휴게실로 쓸 만큼 화장실과 친한 남편도 같은 음식을 먹었으나 멀쩡했다.

뭘 잘못 먹었다면 장이 예민한 당신이 먼저 탈났겠지!”

남편에게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음식 때문에 배탈이 난 게 아닌 확실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니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의 약한 곳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떠올리고 감격해 하다니 유치하다.

세상에서 당신 장이 예민한 거 아는 사람 몇 명이나 돼?”
많지 뭐!”

당신 밖에 없다는 낭만적인 말을 조금 기대했으나 역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남편다운 대답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 긴장된 타국에서의 생활이 십여 년 지나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다. 늘 가까이에 두고 보호해야 할 자녀가 남아 있으나 또 다른 자녀는 자신의 길을 찾아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다. 서로 의지하고 보살펴야 할 가족과 함께 부드럽게 손을 마주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가야지. 황금색 빛으로 헤치고 나오는 햇살이 어스름한 새벽 속에서 제일 또렷하게 보여주는 형체는 다름 아닌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남편이다. 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종결.

잘 되든 안 되든

지난 6 월 하순경 ,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 그 교회는 앞으로 2 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 여러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