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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2025

낚시




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낯선 길로 들어섰다. P는 I-10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 사용하던 옛길이라고 알려주었다. 한적한 도로였다. 얼마 지나 좁고 녹슨 다리를 건넜다. 곧이어 나무 방파제가 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나무 방파제는 낡았고 갓길에는 쓰레기가 너저분했다. 보통은 이곳에 차를 세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그곳은 물이 폰차트레인 호수에서 보른 호수로 흘러가는 길목이었다. 낚시꾼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P부부는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에 물고기가 잘 잡힌다고 이구동성으로 알려주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물고기가 거의 잡히지 않으며 너무 더운 여름과 겨울에는 낚시하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우리가 낚시터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지평선을 벗어나 있었다. 좀더 서둘러야 했을까? 햇빛은 습지 위 부시시한 관목의 실루엣을 따라 그윽하게 번졌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노인이 피우는 매캐한 마리화나 냄새는 우리 쪽으로 번졌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낚시할 채비를 서둘렀다. P부부는 낚시 먹잇감으로 살아 있는 새우를 가져왔다. 직접 잡았단다. 우리 가족에게 어떻든지 물고기를 잡게 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고마웠다. 릴낚시 던지는 법도 알려주었다. 검지로 줄이 늘어지지 않게 긴장을 조절한다. 그러다 낚시대를 앞으로 튕기며 줄을 적당한 때에 놓아야 한다. 일찍 놓으면 추가 코 앞에 떨어지고 만다. 나는 서너 번 P의 도움을 받았다. 내 힘으로 던진 낚시추가 개천 저쪽 가장자리 가까이 날아가면 기분이 좋았다.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우리 부부는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았다. 초보자의 행운이었다. 모두 캣피시였고 물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낚시줄이 당겨지니까 당황하여 낚시대를 얼른 P에게 넘겼다. 그 바람에 손맛이라는 걸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아쉬웠다. 나의 아들은 캣피시를 잡기도 하고 거두는 과정에서 놓치기도 했다. P는 우리를 돌보면서도 트라우트와 블루크랩을 한 마리씩 잡았다.

어수선한 순간이 지나고 보니 해는 나무 꼭대기를 벗어나 있었다. 물 위로 햇빛이 쏟아졌다. 윤슬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지러웠다. 지난밤부터 불던 바람이 잦아들지 않았다. 풍속이 12mph. 5mph이하이거나 바람 없는 날이 낚시하시에 좋다고 했는데… 다들 화장실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자리를 떠날 때였다.

우리는 다른 낚시 장소로 이동했다. 고속도로 옆으로 난 서비스도로가 끝나는 곳에 다리가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서너 명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한 사람은 통발로 꽤 많은 블루크랩을 잡았다. 게 잡는 명당인가 보다. P는 게가 좋아하는 닭 모가지도 준비했다. 우리는 다른 낚시꾼처럼 게라도 많이 잡히길 바랐다.

한 시간 정도 지났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피로가 슬슬 몰려왔다. 다른 사람들도 왔다가 금방 돌아갔다. 나는 고기 잡기에서 릴낚시 잘 던지기로 목표를 수정했다. 나는 다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낚시 던지기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와는 달리 아들은 우두커니 서있다가 고기를 잡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캣피시여서 다시 놓아주기는 했지만, 아들은 무척 좋아라 했다. 거기서는 P가 잡은 블루크랩 한 마리가 전부였다.

우리는 점심으로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바람 부는 날과 따뜻한 국물은 제대로 어울렸다. 점심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P와 대화하면서도 눈은 반쯤 감긴 상태가 되고 말았다.

 P 부부는 깨끗이 손질한 트라우트 한 마리, 블루크랩 두 마리, 그리고 수십 마리의 살아 있는 새우를 얼음에 재워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들을 라면에 넣어 끓여 먹으면 먹을 만하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그것들을 분리해서 얼른 냉동했다. 새우는 다음 낚시에서 미끼로 사용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라면은 쇼핑 목록에 추가했다.

아들은 낚시가 좋다며 또 가자고 연거푸 말했다.  “그러게. 엄마는 한 마리 밖에 못 잡았는데 산이는 여러 마리 잡았네!” 맞장구를 쳤다.

“나 기도했어.” 아들이 말했다.

“뭐라고? 물고기 잡게 해 달라고?” 내가 물었다.

“응!” 아들이 대답했다.

낚시가 이렇게 간절하고 사귐이 있는 활동이었나? 감사하게도 기억났다.



*이 글은 애틀랜타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10/21/2023

바람이 분다




영화 '더 이퀄라이저 3(The Equalizer 3)'가 최근에 개봉되었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 보았던 주인공 로버트 맥콜 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의 차가운 듯 따듯한 연기와 액션 영화라는 장르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시골 농장의 평화로움과 거기서 습격당한 부하들이 죽어 널브러진 사이를 걸어가는 보스의 긴장감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짧은 대화가 있다. 영화 초반에 총상 입은 맥콜을 낯선 의사가 정성껏 수술해준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맥콜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질문한다. 맥콜은 “모르겠다”, 고 대답한다. 

맥콜은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이번엔 맥콜이 의사에게 나 어떤 사람 같아요?, 묻는다. 총에 맞은 사람을 보고 구급차도, 경찰도 안 부르고 상처에서 회복하도록 긴 시간을 들여 돌봐준 이유를 의사에게서 듣고 싶었나 보다. 더군다나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맥콜 자신도 모르겠다는 의아한 대답을 받고서도 말이다. 

의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대답은 좋은 사람만 할 수 있어요.” 선과 악, 예와 아니오를 명확하게 나누어 선을 그어야 할 것 같은 지점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도 어떻게 대답할지 묻는다. 

맥콜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당하는 불의한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맥콜에게는 모든 이웃을 도울만한 능력도 없다. 생선가게 아저씨가 마피아에게 두들겨 맞고 아저씨네 집에 누군가 불을 질러도 맥콜은 지켜볼 뿐이다. 맥콜은 자신의 체력을 키우면서 미국 정보기관에 마피아에 대한 정보를 흘려 도움을 받는 정도다. 

맥콜이 머무는 동네는 이탈리아 작은 어촌이고 마을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고, 소박하고, 우애가 깊다. 그들은 미국인 맥콜을 기꺼이 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맥콜은 마피아가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게 악을 행하자 그제야 이퀄라이저로서 악당들을 척결하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 음과 양은 언제나 존재한다. 음양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도 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 맥콜은 물론이고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의 삶에서도 이런 균형을 찾아볼 수 있다. 계절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무더운 여름이 길게 느껴지는 몽고메리 날씨지만 한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서늘한 기온은 여름에 흘린 땀을 씻어주고 성실한 수고의 결실을 가져온다. 

아침이면 비슷한 시간에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쪽을 향하여 도로를 달린다. 가을이 오면 그 시간대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장관을 자주 목격한다. 오염이 적은 하늘이라 그런지 이곳이 정말 태양하고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태양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인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낀 날에 맞이하는 일출도 얼마나 당찬지 모른다. 태양은 구름 테두리를 맑게 빛나는 금빛으로 장식한 구름옷으로 차려입고 위엄 있게 등장한다. 또 온 세상을 붉은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언제 봐도 벅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것은 변화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다만 올가을에는 일상에 큰 변화가 있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잘 몰라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기대와 두려움으로 두 눈을 꼬옥 감는다.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화로운 바람이 흘러나온다. 그 신선한 바람은 나를 감싸 안고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도록 밀어준다. 

영화 속 맥콜처럼 나 역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 내 삶이 들어 있다는 것만은 안다. 불현듯 가수 조용필이 부른 '바람의 노래'가 입속에서 맴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