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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2023

커피 한잔해요


몽고메리 아트 뮤지엄(MMFA)에서.


애틀랜타에 가까워지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지나서부터 북쪽으로 향하는 85번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네비게이션이 계산한 도착 시각보다 몇 분이라도 줄여 보려고 했는데 도로 사정이 맘 같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은 모두 애틀랜타에 산다. 그들은 일요일 저녁 시간에 모이기로 했고 몽고메리에 사는 우리 가족은 할 일을 다 마치고 가면 저녁을 같이 먹기는 어려웠다.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만남을 기대했다. 그 관심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얘기를 나눌 생각에 애틀랜타로 올라가는 내내 기뻤다.

늘 다니던 길을 포기하고 네비게이션이 찾아주는 빠른 길을 따라 갔어도 3시간이 훨씬 넘게 소요되었다. 한인이 많이 사는 도시 큰 길가에서 벗어나자 나무가 울창한 길들이 이어졌고 그 길가에 아담한 교회가 나타났다. 건물 중간쯤에 있는 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제법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받쳐 들고 문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문이 열리자 적막하고 처량한 바깥과는 달리 다정하고 흔쾌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람들도 보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지인이 나서서 큰 소리로 우리를 환영했다. 낯선 곳에서 어색할 뻔했는데 그의 기운찬 목소리가 환한 미소를 불러왔다. 그가 만들어준 웃는 얼굴로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오붓한 한쪽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그 교회에서 일하시는 부부가 우리 가족을 위해 다시 한번 밥상을 차려주셨다. 온갖 곡물과 열매를 넣은 쫀득한 밥, 소고기를 넣고 푹 끓인 미역국, 오랜만에 먹는 삼치구이, 채소 샐러드와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 처음 만난 그 부부는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말없이 주위에 계셨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린 박자로 흘러가는 정겨운 옛날 노래 같아 보였다.

사실 우리는 그 모임에서 나눈 얘기가 거의 없다.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 이름을 소개하고 얼마 동안 노래를 불렀다. 모인 사람 중에서 작사, 작곡한 '다 쓰며 살게 하소서 다 쓰고 가게 하소서'와 다 알만한 노래들은 합창했다. 그리고 대학가요제 출신인 분은 맑고 고운 목소리로 정성스레 노래를 불러주셨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듣고 싶을 정도다. 노래 제목도 불어볼 겸. 한 젊은이의 비올라 연주를 들으면서는 비올라를 배워놓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몰두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밥 먹고 노래만 부르다 헤어져서 조금 아쉬웠다. 언제 다시 만날는지 알 수도 없어 허전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타인을 기꺼이 식탁에 초대하고 서로를 이웃으로 맞이하는 이런 행위는 여운이 길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며칠 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 시간이 얼마큼 지났을 즈음, 기도 마치고 우리 모두 커피 한잔해요, 팔십 세가 가까우신 분이 제안하셨다. 난 소리를 빼고 입으로만 네, 하며 웃었다. 

기도하던 사람 중에는 몽고메리에 정착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벽에만 우리 교회에 나왔으므로 다른 분들과 사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놀랍고 기뻐서 다시 기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는 교회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갔다. 커피와 아침 메뉴를 가지고 가게 앞 테라스에 둘러앉았다. 밤새 내려앉은 기운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푸석한 아침과 정신 나게 하는 커피는 여전히 잘 어울렸다. 어르신들 뒤로 구름 많은 몽고메리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 어르신들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재물, 학력, 외모, 출신지만으로 사람을 짐작하는 것은 어리석다. 눈을 바라보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나눠보면 세상의 잣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을 만난다. 그곳도 환대가 이루어지는 자리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2/06/2014

아픈데, 즐겁다


달달한 마카롱~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caron)


새벽기도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읍!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목이 몹시 따갑고 아프다. 어젯밤에 먹은 감기약 기운이 남아 있는지 정신도 몽롱하다. 약을 찾아보니 종합감기약 밖에 없었다. 종합감기약을 사용하는 용도에 목 아픈 것도 있어서 그걸 먹고 잤다. 몸이 쳐지는 기분이 드는데, 다행히 목 아래쪽 몸은 괜찮은 듯하다. 새벽기도를 조용히 갔다 와서 그대로 쓰려져 다시 잤다. 아이들 학교 갈 준비는 남편에게 맡기고.

목이 아프기 시작한 때는 지난 토요일 오후부터다. 토요일에 콜럼비아 한국학교에 일일 교사로 갔었다. 한국학교 선생님 한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일일 교사로 추천한 사람은 한 동네에서 살면서 알게 된 지인이다. 그이는 오래 전부터 한국학교 교사로 일해 왔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틀란타한인교회에 속해 있는 한국학교에서 가르친 경험을 얘기했던 적이 있다. , 삼 년 전 일이다. 요즘 그 지인과 만나서 다시 한국학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곧바로 일일 교사 요청을 한 것이다. 나는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곳 한국학교의 모습도 궁금하고, 기분전환도 될 것 같았다.

한국학교에서는 설 행사가 있었다. 전체 인원이 35명쯤 된다고 했다. 이날에는 추위 탓인지 여러 명이 결석한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와서 설에 대해 배우고, 세배하는 법도 배웠다. 각방으로 나눠져서 딱지 만들기, 콩주머니 만들기, 댕기머리 만들기, 영상으로 설 배우기, 윷놀이 따위를 했다. 나는 윷놀이를 맡았다. 윷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설명하니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그래서 직접 윷을 두면서 놀이 방법을 익혔다. 놀이 규칙을 설명하랴 아이들이 던져서 나온 윷에 환호하랴 바빴다.

교실마다 설 행사가 마무리 되고 있을 때 미리 끝난 아이들을 모아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우리 집에 왜 왔니를 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흥미 있어 했다. 이 놀이는 지인인 선생님이 제안한 것이다. 그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동네 아주머니로 만났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날 모든 일정이 끝나고 교장선생님은 다음에 이런 행사가 있으면 또 와달라고 하셨다. 일일 교사로서 쓸만했다는 평가를 들은 듯 하여 좋았다.

오랜만에 귀여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안 하던 일을 해서 그런지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니 피곤함이 슬금슬금 몰려왔다. 정신 없이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그게 말을 못할 정도(?)의 목 아프기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 비가 꽤 많이 내리는 날, 어느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도 한 동안 뜸하다 만난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괜찮은 커피집이 있다며 가자고 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아니 비가 와서 그런지 커피집에는 손님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친구 말에 의하면 그 가게는 올 때마다 사람들이 많고, 때로는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고 했다. 실내장식이 특이하기는 했다. 마카롱 세 개, 애플 턴오버와, 복숭아 파이(점심을 먹은 사람들 치고는 너무 많은 간식!), 그리고 하우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자리를 잡기 위해 커피집을 한 바퀴 돌았다. 빈 자리가 없다. 건물 밖으로 나가니 같이 연결된 건물이긴 한데 히터가 들어오지 않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잠깐 앉아 있어보니 그다지 춥지도 않고 괜찮은 듯 했다. 거기서 수다를 한참 떨었다.

, ! 커피가 정말 맛있다. 내 입맛은 정말 단순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맛있게 느낀다. 커피 맛도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이 집 커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 사이에 맛있다는 느낌이 팍 왔다. 한국에 스타벅스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는 뒷맛이 깔끔한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친구 덕분에 향도 좋고 맛도 좋은 커피를 만났다.

커피집을 나와 그 친구와 함께 집안 장식품이나 생활 필수품을 사러 다니기도 했다. 친구는 가는 가게마다 일하는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았다. 모두 미국 사람들이었는데 안부의 내용이 그저 인사치레 정도가 아니었다. 서로를 잘 알고 지내는 사이 같았다. 친구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얘기 상대가 되어 주기도 하고, 저녁 식사에 초청 하기도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한 동네에 오래 살면서 사람들과 따뜻하고 깊은 사귐을 갖고 있는 친구가 다시 보였다.

그 다음 날 아침, 목이 더욱 잠겼다. 비 오는 날 히터가 없는, 실내도 아니고 야외도 아닌 특이한 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신 대가인가…… 그 다음 다음 날은 드디어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심하게 목이 아퍼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동네 지인과의 만남과 한국학교도, 어느 친구와의 만남과 맛있는 커피도, 그리고 목이 많이 아픈 것도 모두 오랜만이다. 결과적으로 아픈데, 즐겁다. 일상 속에 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진가를 발견할 때 기쁘다. 그들이 있음으로 내 삶도 풍요로워지고 뭔가 꿈틀대는 생동감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