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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2024

걷다 보면




폰차트레인 호수는 뉴올리언스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호수는 담수와 소금물이 섞인 소금호수로 분류되는데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 제일 큰 소금호수는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로 유타 주에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폰차트레인 호수가 가까운 줄은 알고 있는데 자동차로만 지나다녀서 거리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의 이웃집 여인은 폰차트레인 호수까지 걸어서 오가며 호숫가를 따라 쌓아놓은 둑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같이 걸읍시다, 제안했었다. 나도 걷는 걸 좋아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뒤집어쓰고 나면 맥을 못 출 게 뻔하므로 대꾸를 못했다. 아직도 낮기온은 초여름이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햇빛과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드디어 함께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몸의 감각의 살아난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화끈거린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고 콧물도 흐른다. 그럴 때면 교회 선생님이 주셨던 장 자크 상페의 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여지없이 떠오른다. 쉽게 얼굴이 빨개져서 곤란했던 소심한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양손가락이 구부리기에 갑갑하도록 부어오른다. 오랜만에 걸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경험이 있으니 그것 역시 별일 아니다.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뻐근하다. 아마도 몸이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몸의 힘을 좌우로 균일하게 분배한다고 생각하며 걸어야겠다. 걷기는 내 몸을 세밀하게 느끼는 시간이다.

걷다 보면 탐험가가 된다. 자동차로 빠르게 이동해서 도통 걸어볼 기회가 없던 길들을 걷는 것은 꽤 흥미롭다. 거리마다 붙여 놓은 이름을 불러가며 분위기를 음미하다 보면 그 거리와 친해진다. 거리의 양 옆으로 늘어선 집들이 가지각색이다. 1960, 70년대 지어진 오래된 집들이라 그런지 정겹다. 앞마당을 가득 채운 할로윈 유령 장식, 꽃과 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화단, 집 외벽의 이끼가 낀 벽돌 등 살펴볼 것들이 잔뜩 있다. 집 구경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남의 집을 엿보는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흘끔거려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같이 걷는 여인은 과실수에 관심이 많다. 이집에는 감나무가 있고 저집에는 대추나무가 있다고 알려준다. 길가에 서있는 일본 자두나무 앞에서는 꽃 향기가 상당히 달콤하다며 코를 들이댄다. 나도 그를 따라 나무가지를 끌어와 냄새를 맡아보았다. 꽃 피는 시기가 아니라 향기가 흥청거리지 않아 아쉬웠다. 올리브 나무도 찾아냈다. 연둣빛, 자줏빛 그리고 검은색에 이르는 올리브 열매가 졸망졸망 한가득 달려 있다. 잘 익은 것으로 하나씩 맛을 보았다. 열매를 곱씹고 조금 지나자 익숙한 올리브 맛이 났다.

걷다 보면 소리의 존재를 깨닫는다.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가운데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한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까마귀가 거친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까마귀들이 집 앞에 있는 소나무 주위를 맴돌다가 나와 마주친 것이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가는 부모들의 자동차 행렬이 길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골목길에서도 자동차들이 쌩하고 달아난다. 할아버지가 집 앞에 물을 뿌려 빗질을 하신다. 깔끔한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싹싹 빗자루 소리가 리듬을 탄다.

호수길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이 나란히 뻗어 있다. 넓은 길로는 순찰차와 자전거가 다니고 좁은 길은 사람들이 걷는 길인가 보다. 사람은 어느 길로 다녀도 상관없지만 자전거는 넓은 길로만 지나다닌다. 넓은 길을 걷다 보면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번은 빠르게 다가오는 말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았다. 자전거에 탄 중년의 여성과 남성은 자전거 속도를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간다. 낭만적인 소리의 여운이 길었다.

걷기는 공간과 시간을 몸에 기록하는 행위다. 사람과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기억이 몸 어느 구석엔가 보일 듯 말 듯 쌓인다. 걷는 속도를 잠시 늦추어 바라본 풍경이 주는 평화와 위로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 싱그러운 아침 햇빛이 비추는 길이든 곧 어둠을 불러올 석양이 붉게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길이든 좀더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걷기는 단순한 활동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낭만과 혜택은 생각보다 크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6/23/2023

그들의 짐은 가벼웠다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Y는 평소와 다르게 큰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모임에 나타났다. 

“웬 배낭이에요?”

“여기서 자려고요.”

그의 대답이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엉뚱하게 들려 그 가방을 매개로 한 인사는 거기서 끝났다.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다가 지난주에 G가 소개한 유튜브 '미니멀유목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몇몇 친구는 그 유튜버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최근 영상을 모두 시청했다며 인상에 남은 정보를 주고받았다. 제목처럼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는 말에 그제야 그의 영상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때 G는 Y에게 어서 그 가방을 보여 달라고 재촉했다. Y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사용했던 배낭과 그 안에 담긴 물품을 모임에서 소개하기로 했나 보다. 인사치레였던 Y의 가방에 관한 관심이 확 되살아났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만 얼마큼 멀리 걸을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최근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10㎞는 그럭저럭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걷기 능력으로 800㎞를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안일하고 막연한가? 나이 60대에 들어 그 먼 길을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들여 두 번이나 다녀온 Y가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런 Y의 배낭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배낭의 총 무게는 3.6㎏. Y는 자신에게 적절한 가방 무게를 그렇게 정했단다. 물건이 필요할 때 찾기 쉽도록 주머니가 많은 배낭이다. 걷는 동안 꼭 필요한 것들을 여러 날 생각하여 줄이고 또 줄여서 정하였고, 부피가 작고 가벼운 것이 선택되었음은 물론이다.

Y는 순례 여정에서 중요한 소지품은 몸에 꼭 지녀야 하고, 숙소에서는 나라마다 다른 잠자는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걷는 동안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그만의 방법도 알려주었다. Y는 순례길에 가지고 갔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으며 길 나서기를 주저하는 우리에게 “떠나보세요”, 용기도 주었다. Y는 동네 친구들 가운데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로써 그의 경험을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어떤 열매를 맺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긴다.

모임이 끝나고 나는 유튜브에서 미니멀유목민의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헉! 그 유튜브의 주인 박 작가는 빈손과 맨발로(물론 신발은 신었다)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객을 인솔한 것을 포함하여 6차례나 그 길로 다녀본 경험이 있다지만 대단한 실험정신이었다. 박 작가는 유튜버가 필요한 노트북을 포함하여 39가지 물품을 재킷 주머니에 나누어 담았다. 주머니를 아주 많게 디자인한 기능성 오리털 파카로 보였다.

나는 박 작가의 순례길을 열한 번째 에피소드까지 단숨에 따라갔다. 박 작가는 여행 작가이면서 미니멀리스트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은 가방 한 개와 소지품 80개란다. 그중에서도 쓰지 않거나 필요가 없어진 물건은 그때그때 팔아서 없앴다. 그것만 가지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자연 친화적인 생활, 꼭 필요한 지출, 건강 관리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해 보였다. 미니멀 라이프가 주는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인가 보다. 

  Y의 배낭과 박 작가의 빈손 순례를 만난 그다음 날은 이웃 S가 이삿짐 싸는 걸 도왔다. S는 다른 도시로 이사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가 덜한 물건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S는 주방용품을 상자에 담던 사람들에게 따로 밀어놓은 주방 도구 서너 개는 남겨두도록 부탁했다. 일손을 거들던 사람들이 떠나고 S는 무거운 질병이 있는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줄 팥죽을 쑤었다.

이번 한 주간은 여러 사람이 짐 싸는 걸 간접 혹은 직접 경험했다. 자신의 간절함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자연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그들의 짐은 모두 가벼웠다. 이전과 다르게 살려면 짐이 가벼워져야 할 테지. 내일 필요할지 몰라 쌓아놓은 나의 온갖 물건들은 어떻하나.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8/15/2019

새로 균형 잡기



“웤 웤 웤”

유튜브 동영상에서 나오는 소리다. 걷는(walk) 동안 힘내라고 넣어주는 추임새다. 이 동영상을 이끌어가는 레슬리의 구호에 맞추어 이렇게 저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난다.

이 동영상은 우리 교회 권사님한테서 정보를 얻었다. 권사님은 걷는 운동이고 집에서 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딱 내 스타일! 권사님이 보내준 영상을 보고 나서 유튜브 검색창에 영어로 walk at home(워크 앳 홈)을 적어 넣었다. 여러 개 동영상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몇 개를 따라 걸어보니 15분짜리 동영상을 선택하면 1마일(1.6 킬로미터)을, 30분짜리는 2마일, 45분짜리는 3마일을 걷도록 편집되어 있는 것 같다.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걷기가 시작된다. 제자리에서 조금 걷다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으로 뒤로도 걷는다. 팔은 옆으로 혹은 위아래로 뻗기도 한다. 따라하기도 쉽고 땀도 제법 나서 운동하는 것 같다.

이렇게 며칠을 따라 하다가 조금 더 힘차게 걷는 동영상을 클릭했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기도 했다. 앞으로 몇 걸음 걷다가 4박자 때 박수를 한 번 짝! 뒤로 걷다가 짝! 이번엔 사선으로 걷는 동작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어머! 발이 꼬이고 박자를 놓치면서 손뼉 칠 순간이 지나가버렸다. 그럼 얼른 동작을 끊고 진행되고 있는 동작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무슨 고집인지 손뼉 치는 박자까지 갔다. 내 나름의 계산으로는 빨리감기 기능처럼 몸을 빠르게 움직여 따라가면 놓친 박자를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맘 같지 않았다. 이게 무슨 어려운 거라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폭발했다. 옆에서 자기 일하던 산이가 희한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배뚱! (배가 뚱뚱하다고), 하고 부르는 바람에 겨우 웃음을 추슬렀다.

내 몸의 균형이 깨졌나 보다. 사선으로 혹은 지그재그로 걷는 운동신경이 잠자고 있는 듯하다. 하긴 이것뿐이 아니다. 먹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에 치우쳐 있고, 책 읽는 시간도 엄청 줄어 있고, 지난 봄에 비해 교회 가서 기도하는 시간도 줄었다. 몸의 불균형이 생활 전반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해주었다.

혼자 집에서 운동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다. 목표가 분명해서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야무진 사람이어야 한다. 한편, 목표가 확실하지 않은 경박한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쉽다. 자신과 타협하는 것은 시간도 안 걸리고 의지가 필요치 않다. 그래서 운동을 꾸준히 하기 보다는 안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대단한 의지와 의지 없음, 나는 어느 쪽으로 얼마큼 가 있을까. 건강한 삶을 위해 새로 균형을 잡아보자.

감사하게도 맘만 먹으면 새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늘 주어진다. 방학과 개학, 한국방문과 미국이민생활, 일과 쉼,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더욱 사랑… 언제든 균형감각을 되찾을 수 이유는 중심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중심이고 변함없는 그분, 하나님. 

5/01/2019

너무 오래된 운동화




오크마운틴(Oak Mountain)에 도착했다. 어느 길로 걸을까 정하는데 산이는 무슨 이유인지 파란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미 가 있었다. 예상대로 점심 때가 다 되어 도착했다. 하루 중 기온이 제일 높아지는 오후 두, 세 시를 피하려면 너무 멀지 않게 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운 한낮에 바깥 활동하는 것은 끔찍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영 맥을 못 추는 까닭이다. 지난번에 갔던 길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짧게 걸어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사실 그렇게 괴로워하는 더위를 피해 산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날마다 일어나는 새벽 시간에 자연스럽게 잠이 깼다. 그때부터 슬슬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햇볕이 옅은 오전 시간에 걸을 수 있음을 멀쩡히 인지했다. 그렇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어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볼까. 휴대폰을 켜서 지난 밤에 올라온 뉴스를 훑었다. 흥미로운 제목들은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밝은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다 보니 눈이 피곤해졌다.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쯤 지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평상시처럼 아침을 챙겨 먹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산에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듯하여 자동차로 두 시간쯤 달려 노스트레일(North Trail) 입구에 다다랐다. 낮 12시. 아침 두 시간을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한 결과로 머리 꼭대기에 해를 이고 산길을 걸어야 했다.

남편과 빨간색 트레일을 걷기로 합의했다. 난 가깝게, 남편은 좀 더 멀리 걷고 싶어 했다. 어찌 할 지는 걷다가 결정하기로. 자, 산아 가자! 그런데 아들 산이는 파란색 길을 가리키며 꼼짝하지 않았다. 거 참… 지도에서 다시 파란 길을 살펴 적당히 돌아올 길을 확인하고는 산이가 원하는 길로 들어섰다.

에구구… 처음부터 오르막 길이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이도 땀을 뻘뻘 흘렸다. 그냥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지려는 때였다.

“이런!”
“왜?”

도통 놀라운 내색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 무슨 일로 그러나 걱정이 되었다.

“산이 신발 밑창.”

산에 간다고 보통 때 신던 신발은 아니라며 다른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그 정도로 낡은 줄 몰랐다. 다정하게도 양쪽 신발 밑창 모두가 절반 가까이 덜렁거렸다.




남편은 얇은 나뭇가지로 묶어주겠다며 가까이에 있는 식물 줄기를 꺾었다. 줄기에 붙은 잎을 떼어내고 신발에 동여매려 하자 뚝 끊어져버렸다. 남편은 산이의 운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신발끈을 어느 정도 풀었다. 그리고 얼기설기 밑창까지 함께 엮었다. 밑창이 더이상 덜렁거리지 않았다. 산이도 걸을 만한 것 같았다.

“그만 내려가자. 우리 삼분의 일 정도 밖에 못 온 것 같아. 왔던 길 다시 가는 것, 나도 재미없지만 그냥 돌아가자.”

덥고 숨차고 신발이 엉망이니 돌아가자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아니야. 우리 절반은 왔을 걸. 잠깐만…”

사진으로 찍어온 트레일 지도인지 인터넷 지도인지를 뒤져보더니 곧 빨간색 트레일과 만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가자고 했다. 아까 본 지도에서 파란 길이 빨간 길과 겹쳐지고, 이어서 빨간 길이 나오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기억났다. 더 멀리 걷고 싶었던 남편은 상황을 고려하여 짧은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욕구를 낮췄다. 뒤로 물러설 생각을 먼저 한 나와는 달리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숨을 헐떡이며 산을 좀 더 오른 뒤 곧 파란색 길과 빨간색 길이 만났다. 게다가 내리막 길이었다. 산이가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남편과 나는 번갈아 산이 손을 잡고 걸었다. 산이도 내리막 길을 만나 좋았는지 한 마디 외쳤다.

“살 빠져라! 살이 빠져! 엄마는?”
“응, 엄마도.”

배뚱이 아들과 뚱땡이 엄마의 바람이 기분 좋게 숲 속에 전해졌다.

길도 넓어지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몸을 통통 튕기며 걸어 내려왔다. 다 내려오도록 산이 신발은 특이하게 묶여진 채로 잘 버텼다.

안전하게 걸으려면 신발의 상태를 확인하고 길을 나서야겠다. 너무 오래된 운동화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이참에 새로운 등산화를 마련하리라 마음먹었다.

2/20/2019

찾으면 찾아지는 감사 - 오크 마운틴 주립공원(Oak Mountain State Park)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한다는 어느 집사님의 경험담을 귀담아 들어두었다. 그 집사님이 이용하는 트레일은 매년 우리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장소로 사용되는 오크 마운틴 주립공원(Oak Mountain State Park) 캠핑장을 지나서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가.

매표소에서 한참을 지나도 사람들이 걷기 시작할 것 같은 길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럴 땐 믿음과 느긋함이 필요하다. 집사님이 북쪽으로 가다보면 길이 있다고 했으니 믿고 가면 될 것이다. 공원길에서는 일반적으로 25-35마일 정도의 낮은 속도로 가야만 한다. 같은 거리의 길이라도 보통 길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멀게 느껴질테니 여유롭게  있으면 될 터이다.

참고로 오크 마운틴 입장료는 3세 이하는 무료, 4-11세이거나 62세 이상은 2달러, 12-61세는 5달러이다. 네 사람까지 가능한 가족 연간 이용료는 230 달러. 매표소에서 신용카드를 내밀었더니 현금만 받는단다. 직원은 현금이 없으면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라며 턱으로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면 차를 길 옆으로 빼고 차에서 내려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고, 타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를 물 수도 있다.

앨라바마에서 제일 넓은 주립공원답게 매표소로부터 10분쯤 지나 내비게이션에서 보이는 초록 숲이 거의 끝나갈 즈음 노스트레일헤드(North Trailhead)라는 팻말이 보였다. 주차된 차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집사님이 말한 곳이 이곳이려니 싶었다.

오크 마운틴에 두번째 방문이라 트레일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트레일마다 색깔을 달리 표시하고 있는데 이번엔 하얀색 길을 따라 가다가 노란색 길로 바꿔 원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우리가 걸어간 하얀색 길은 평지같아 아무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크고 작게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가며 걷는 길이라 심심할 틈이 없다. 개울이 있는 곳에는 편하게 건널 수 있도록 다리가 어김없이 있다. 그 다리들을 하나 둘 건너다보니 그 다음에 나타날 다리가 궁금해졌다. 단순하면서도 모두 다른 형태의 다리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이 산에 있는 다리들은 모두 다른 모양일까.






많은 사람들을 건네주었을 예스러운 다리. 보통 어른은 껑충 건너뛸 수 있는 실개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테니 밟기 좋게 놓여있는 평평한 돌, 널판지 한 쪽, 마주댄 널판지 두 쪽. 좀 더 넓은 계곡엔 쓰러졌으나 부러지지 않은 나무...

이 다리의 재료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이리라. 다리의 모양도 만든이의 솜씨를 뽐내기 보다는 소박하고 정겹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다리를 설계하고 만든이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지혜의 빛 한 줄기를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손수 지으신 세계와 지혜를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출애굽기35:35)

어느만큼 가다보니 긴 의자들이 여러 개 있어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 앞서 걷다가 사라진 은발의 노부부가 보였다. 그 은발의 남자는 우리를 보자 뭐 하나 말해도 되겠냐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라고 했다. 물가에 잎이 다 떨어진 작은 나무 어딘가를 가리키며 뱀이 있단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면서. 낙엽과 비슷한 갈색을 가진 뱀이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아리를 느슨하게 틀고 있었다.

그 노년의 부부와 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니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말을 걸어왔는지 뱀이 나오는 철이니 조심하라는건지 알 수 없으나 고마웠다. 난 그에게 우수 절기라 겨울잠을 깨고 나와 햇빛을 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영어로 버벅거릴 것이 분명하여 그만두었다. 언어가 친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한하고 있어 아쉽다.

그의 아내는 마침 긴의자 위로 찾아온 따스한 햇살을 베고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부부에게서는 트레일 초입에서 봤을 때부터 묵직한 인상을 받았었다. 산길을 자주 걸어본 사람들 같았다. 나의 남편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과 헤어져 노란색 길로 접어들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도 처음 걷는 것이라 맞게 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으나 지도와 방향 감각을 사용하여 가 보는 수 밖에 없다. 나보다 방향감감이 뛰어난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순간순간 의심이 생겨도 서로를 믿고 가야 한다. 길을 잘못들었다면 조금 돌아가면 되고, 그래서 계획하지 않았던 길까지도 보게 되고 그런거니까.

우리가 선택한 노란색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인도해주었다. 한 시간 반 조금 못 되게 걸었는데 느껴지기는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았다. 점잖은 사람들과 편안한 산책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산이 아니어도 하나님 은혜는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코스트코를 가서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해 돌아설 때 매장 직원이나 한국 사람이 떡하니 서있어서 질문할 기회를 갖게 되면 감사하다. 남편이나 아들과 같이 쇼핑을 하면 어디에도 없는 힘이 혼자 쇼핑을 할 때는 500ml 물병이 40개나 들어 있는 꾸러미를 번쩍 들어올려 카트에 싣는 엄청난 힘으로 발휘된다. 순간적인 힘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1/23/2019

쉐와클라 주립공원(Chewacla State Park)




몽고메리의 자연 환경을 보면 산이 없는 평야 지대이다. 내륙이다보니 바다하고도 멀리 떨어져 있고 강도 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다운타운 언저리에 있는 리버프런트 공원(Riverfront Park)에 가면 굽이굽이 흐르는 앨라배마 강의 어느 한 자락를 감상할 수 있다.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겐 산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대신에 새벽기도가 끝나고 나서 남편과 함께 교회 주차장을 여러 바퀴 돌곤 한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서없는 얘기를 떠들기도 하고. 교회 옆에 공원이 있긴 한데 짧은 거리라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고 2-30 여분 걷기를, 이동하는 시간에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이곳은 겨울이 우기라 그나마도 비가 오면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조금 추워도 비가 오지 않으면 옷을 더 껴입고 걷는다. 어둑해도 우리 교회 앞이니 마음이 더 없이 편안하다.

우리는 생활 영역을 넓혀 몽고메리를 벗어나 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주립공원은 일반 공원보다 자연이 더 잘 보전되어 있을 터이다. 집에서 자동차로 50분쯤 걸리는 쉐와클라 주립공원(Chewacla State Park)을 찾아갔다. 이 공원은 어번대학교와 자연 환경, 그리고 도시가 오밀조밀 어울려 있는 어번시에 자리하고 있다. 일단 입장료는 12-61세는 4달러이고 나머지 나이대는 2달러이다. 3세 이하는 입장료가 없다.

이왕 산을 다닐거면 1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통행증을 구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통행증을 가지고 있으면 해당하는 주에 있는 어느 주립공원이든지 일 년 동안 횟수에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쉐와클라 공원 입구에 도착하여 표를 사는 곳에서 물어보니 다른 주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이 이용하려면 155달러이고, 쉐와클라 주립공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담당자가 알려주었다. 통행증의 가격도 꽤 비싼 편이고, 우리 세 식구가 이 공원만을 일 년에 10번 이상 올 것 같지 않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매표소를 지나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가면서 둘러보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시선을 끄는 것이 없어 끝까지 가보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을 기념하는 공휴일(Martin Luther King Jr. Day)이라 그런지 차들이 꽤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숲 속을 걷기 전에, 트레일을 안내하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지도가 따로 설치된 것도 보이지 않았고 게시판도 텅 비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가지가 다 잘려 생뚱스러운 나무였다. 그 나무에 폭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이 공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 안내 팻말을 발견하도록 하는데 가지가 없어 초라해 보이는 나무가 얼마간 도움을 줄 것 같긴 하다. 우리는 그 표지를 따라 폭포 쪽으로 길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폭포가 나타났다. 무어스 밀 강(Moores Mill Rivers) 하류를 댐으로 막아 호수를 만들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가 된 것이다. 물빛도 흙탕물처럼 탁하고 근사한 모습의 폭포는 아니더라도 그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폭포를 등 뒤로 하고 강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갔다. 그러자 무어스 밀 강과 쉐와클라 강이 만나 섞이는 곳에 이르렀다. 무어스 밀 강이 끝나고 쉐와클라 강줄기가 더 넓어진다.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자연을 만나는 지점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김포 문수산에서.
멀리 보이는 강화대교.

쉐와클라 공원이 품은 산은 낮다. 한편 길에는 바위와 돌들이 많다. 낙엽만 있어도 걸음을 편안히 내딛지 못하는 산이는 바위가 나타나면 아빠의 두 손을 잡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산이가 어렷을 적에는 남편이 등에 업고서 산을 오르내렸다. 특히 왼발이 약해서 그랬었는데, 이제는 제 두 발로 걸어 산을 오르내리는 아들을 늘 대견해한다. 간혹 산이가 폴짝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칭찬이 만발한다.

“잘했어! 이런 데 자주 오면 평행 감각도 생기고 좋겠어!”

산이가 이런 길을 한 두 번 오간 것이 아닌데 새삼스럽기는... 산에 자주 오자는 얘기를 '산'이를 핑계 삼아 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결심하기까지 남편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나를 염두해 둔 말이다. 아들은 아빠를 믿고 의지하고, 아빠는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여기며 도와주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이것이 천국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산이가 영화 트랜스포머를 집에서 DVD로 보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의와 생명을 존중하는 오토봇의 수장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악의 무리인 디셉티콘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구 싸우는 장면이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힘에 부치는지 “오 갓(oh God)!” 이라고 말한다. 산이는 갓(God)이라고 말하므로 거기가 하늘나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을 도와주러 오토봇이 나타나자 오토봇끼리 도와주기 때문에 하늘나라란다. 산이는 죽을둥살둥 싸우는 모습 속에서도 하늘나라를 보고 있었다.

우리 교회 아동부에는 조이플 성가대가 있다. 올해 아동부 부장을 맡은 집사님은 조이플 성가대의 찬양이 은혜가 되었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찬양하는 동영상을 교회 홈페이지(http://www.montgomerykmc.org/)에 올리도록 관리자에게 부탁을 하셔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셨다. 부장님은 카톡을 통해 매주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휘하고, 반주하고, 동영상을 찍는 선생님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했다. 더 나아가 매주 성숙하고 멋져지는 아이들의 찬양 모습을 주변에 알려가자고 하시며 본인은 무척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주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 속에는 하늘나라가 있다. 그런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은 사랑, 생명, 정의와 같은 높은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하고 평온하며 기쁨을 누리게 된다.




강을 따라 얼마큼을 가니 산 위로 가는 길이 보였다. 등산이라고 하면 보통은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은 짧은 거리라도 가파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상쾌하게 얼굴에 와 닿으니 거친 호흡이 금방 진정되었다. 하늘은 몹시 파래서 눈도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루의 하늘나라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가운데 나날이 확대되어 나가길 빌어본다.

7/30/2018

5마일 혹은 7마일





올해 동남부지방 여름수련회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쥬날루스카 호수(Lake Junaluska)에서 열렸다. 지방에 속한 모든 교회의 교인들과 목회자 가족이 모이는 큰 행사로 2년마다 열린다. 성인들을 위해서는 하나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아침과 저녁 예배가 준비된다. 예배를 위해서 지방 밖에서 강사를 초청한다. 부모님이 예배 드리는 동안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중고등부는 수련회 기간 내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동한다.

지난 번 수련회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 목사인 남편과 아이들이 참여했었다. 나는 일한다는 이유로 함께 가지 못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여부가 불투명했는데, 남편이 예배 순서에 맡은 바도 있고 하여 우리 가족만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예배 드릴 때 보니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단출한 모임이 되었다.

쥬날루스카 호수 둘레에는 개인소유의 주택들도 있고, 수련회장에 속한 여러 건물들도 자리잡고 있다. 수련회장은 미연합감리교회 남동부 관할구역에 속한다. 언젠가 애쉬빌에 갔다가 감리교회와 연결된 곳이어서 잠깐 둘러본 적이 있었고 이번이 나에겐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자동차로 가서, 수련회에 등록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기 위해 웰컴센터에서 내렸다. 남편이 등록을 하는 동안 그 공간을 둘러보다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붉은 꽃에 이끌려 창가로 다가갔다. 밖으로 나가서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용무가 끝나면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건물 뒤쪽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는 나갈 수 있으나 들어올 수 없는 문 같았다.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와 한 가족이 분명한 꽃이었다. 우리 무궁화는 은은하고 단아한 모습이라면 그곳에서 만난 무궁화는 강렬하고 화려했다. 웰컴센터로 들어오다가 본 꽃들도 퍽 인상적이어서 어서 가서 살펴보고 싶었다.

아침 예배가 끝난 다음 저녁 예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호숫가를 걸으면서 예쁜 꽃들을 만나고 싶어 자유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숙소 건물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가서 호수 주변을 안내하는 지도를 얻었다. 난 사진을 찍을 마음에 휴대폰만 챙기고 받은 지도는 살펴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남편은 와 봤던 곳이라 그런 것인지 굳이 지도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옆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던 어느 지방 목사님은 워킹트레일을 따라 걸어보셨다며 정보를 하나 주셨다. 다리를 건너서 가면 5마일(대략 8킬로미터)이고, 그렇지 않고 호수 전체를 돌면 7마일(11킬로미터쯤)이라고 알려주셨다. 지도는 남편 바지 주머니로 들어가서 걷는 내내 나오지 않았다.

산에 둘러 쌓여 있고 구름이 많은 흐린 날이라 그런지 아침 기온이 선선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 부부와 산이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언덕 위에 있는 숙소를 나서서 왼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왔다. 넓은 호수가 곁에 있어서 마음도 여유로웠다. 언덕길 아래에 이르자 다리가 바로 나타났다. 도로와 인도가 따로 있는 넓은 다리다. 지방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신 5마일짜리 산책길로 들어서는 다리라 여기고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걷느라 너무 힘들지 않게 짧은 길이 적절하게 선택되었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전체 호숫가를 살펴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꽃들도 만나고, 모양이 모두 다른 집들도 지나치고, 이 모든 것이 호수 물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있는 풍경도 감상했다. 가장 많이 마주친 것은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한두 사람 빼고는 모두 빠짐 없이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복 받은 길이다.

그렇게 얼마를 걷고 나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곳에 이르렀다. 산책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길, 호수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는 길. 이 다리는 좁고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다리다. 나는 옆으로 새지 말고 앞으로 조금 더 걷자고 했고 남편은 동의했다. 산이는 그냥 따라왔다. 또 얼마큼 걸어가자 넓은 찻길이 나왔다. 눈에 익은 듯하여 가만 보니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쥬날루스카 호수를 향해 가던 그 길이었다.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재미있었다. 도로와 붙어있는 산책길의 오른쪽은 호수이지만 왕복 6차선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열기가 대단하였다. 산이는 이때부터 힘들어했다. 조금 더 힘을 내 호수 입구에 있는 웰컴센터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산이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내 얼굴에서도 살짝 열이 오른 것이 느껴졌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오니 다시 마음이 안정되었다. 수련회장에 속한 건물들 앞에는 꽃으로 꾸며놓아 그것들을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집 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에서 일 주일에 두세 번 5마일씩 걷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보통 1시간 50분쯤 걸렸었다. 호수 주변을 걸은 지 1시간 20분 남짓. 숙소까지 가면 걷는 시간으로 따져볼 때 5마일 코스려니 속셈을 하고 있는데, 산이가 또 쉬자고 했다. 나무 그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 무척 시원했다.

호수 위에 놓인 다리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두 갈래 길에서 다리를 선택했으면 우리가 건넜을 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고 있는 벤치로 바로 건너올 수 있는 다리였다. 다른 길을 선택하여 멀리 돌게 되었지만 건물들과 꽃들을 더 볼 수 있어서 후회가 없었다. 얼굴에 땀이 다 마를 즈음에 남편은 1마일 정도 남은 길은 자기 혼자 걸어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산이를 보니 더 걷자고 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남편의 수고로 나머지 길은 자동차로 편히 이동했고,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지에서 지도를 꺼내놓았다. 걷는 동안 한 번도 꺼내 볼 생각을 못했던 지도가 궁금해졌다. 구겨진 지도를 펼쳤다. 그제야 지도가 읽혔다. 우리가 걸은 길은 7마일 길이었다! 호수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5마일 길은 좁은 다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우리는 넓은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를 건넜으므로 5마일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한 것이었다. 경험상 산책 시간도 5마일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의심이 없었다. 시간을 잘못 재었는지 아니면 호수 경치와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날아간 것인지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다리가 뻐근하여 발끝에 힘을 주어 뻗어보려 하니 쥐가 났다. 마음은 즐거웠으나 몸은 무리를 했나 보다. 걸음이 어눌한 산이가 그만큼 걸은 것이 대견했다. 지도를 꼼꼼히 보고 5마일 길을 선택했으면 덜 힘들어서 좋았으려나. 그냥 선택한 길이 7마일 길이어서 힘은 들었으나 쥬날루스카 호수 수련장을 다 돌아볼 수 있어서 미련이 남지 않아 좋은가. 언젠가 걸었던 길들과 7마일 산책길이 많이 닮은 듯하여 웃음이 났다.